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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문인들이 즐겨 찾았다는 청량산은 가까이 다가갈수록 신비하다. 기암절벽을 끼고 낙동강이 감아 두른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에 이르면, 청량산의 풍광이 더욱 깊이 파고든다. 중앙고속도로 서안동 나들목을 빠져나와 안동시내를 통과하여 봉화 방향(35번 국도)으로 30여 분이나 달려야 하는 길이지만, 가송리 쏘두들마을로 꺾어들자 피곤은 사라지고, 가송협(佳松峽)이라 부르는 깎아지른 절벽 병풍과 유유한 낙동강이 펼쳐진다. 내병대와 외병대, 학소대라고 이름 붙여진 절경을 바라보자니 별유천지(別有天地)라는 말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퇴계 선생은 이 지역에 들어서면서 "자, 이제 그림 속으로 들어갑니다." 하고 외쳤다 하지 않는가!

푸른 강물에 황금빛 햇볕이 떠간다
'아름다운 소나무 동네'라는 가송리는 소나무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세상의 명예와 지위를 누리면서도 세속에 물들지 않아 퇴계와 함께 당대 유학의 정신적 지주로 존경을 받던 이현보(李賢輔)의 종택이 숨겨져 있어 깊은 문화적 향취를 자아내는 곳이다. "소리치며 흐르는 강물 소리에 귀 막고 있는 바위처럼, 세속의 소리에 나도 귀 막고 살겠다"는 뜻에서 스스로 농암(聾巖)이라는 아호를 붙인 이현보 선생이 태어난 곳이요, 또 여생을 보낸 곳이다. 연산군에게 바른말을 하다가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온 후로는 스스로 귀머거리 행세를 했다는 농암 선생이 일흔여섯에 낙향하여 귀먹바위라고 이름 붙인 바위에 올라 노래했다는 '농암가(聾巖歌)'가 생각나는 곳이기도 하다.

농암에 올라보니 노안이 더욱 밝아지는구나
인간사 변한들 산천이야 변할까
바위 앞 저 산 저 언덕 어제 본 듯하여라


'농암종택(聾巖宗宅)'은 퇴계의 제자들이 가송협 아래에 지었다는 고산정(孤山亭)을 뒤로하고 10여 분을 더 내려가는 강어귀에 아담하게 자리잡고 있다. 강줄기가 도산서원으로 휘돌아 흐르는 이곳은 요즈음 퇴계가 거닐었다는 '퇴계 오솔길' 복원공사가 한창이다. 옛 건물들을 복원 중인 농암종택 역시 바쁘기는 매한가지다.
농암종택은 1974년 안동댐이 세워지기 전에는 도산서원 아래쪽의 분천강변 영천 이씨 집성촌인 부내마을에 자리했었다. 30여 년이 지나 그 후손들이 여기저기 흩어졌던(移建) 건물들을 한 곳에 복원하기로 했다. 이현보 선생의 17대 주손인 이성원 박사(한국국학진흥원)가 그 프로젝트의 중심에 서 있다.

종가에서 양반문화와의 만남
농암종택은 아직 미완성이다. 그러나 현 상태로도 옛 정취를 즐기기에 족하다. 사당 복원과 함께 사랑채와 안채, 문간채, 별채 등이 새로 지어졌다. 그리고 이현보 선생이 태어났던 긍구당(肯構堂)을 옛 모습 그대로 옮겨왔다.

안동 지역 유교문화권에는 모두 47곳의 종택이 있다. 종택은 많은 자손을 거느린 명문가의 종손들이 대대로 전통과 문화, 정신을 지키는 집을 말한다. 그래서 종택에는 반드시 조상에게 제를 올리는 사당(祠堂)이 있다. 이러한 전통적 삶의 모습은 소위 '종갓집 며느리'라는 유행어를 낳았고, 그들의 종가살이가 얼마나 엄격하고 고매한가는 익히 알려져 있다.

이처럼 엄격하기 그지없는 종가의 전통과 문화를 일반에게 제일 먼저 개방한 곳이 바로 농암종택이다. 종갓집으로는 파격 중에 파격이 아닐 수 없기에 세간의 화제를 모으고 있다. 또한 대부분의 폐쇄적인 종택들이 농암종택을 주목하고 있다. 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경북 북부지역의 유교문화유산을 관광자원으로 개발하려는 대규모 투자 계획과 함께, 종택의 개방은 현실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농암종택이 시범 케이스로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

농암종택의 개방을 통해 우리는 펜션 문화의 진정한 전형을 발견하게 된다. 서구적 주거문화에 준하는 펜션의 일반적 양식을 벗어나, 한국의 전통문화를 체험하게 하는 새로운 영역과 가능성뿐만 아니라, 한국적 펜션이 무엇인가를 잘 보여 주기 때문이다. 전월 호에서 소개했던 송소고택처럼 농암종택도 한옥의 맛을 한껏 즐기게 한다.

자연을 벗삼으며 빈둥빈둥
이른 아침, 넓은 사랑채 마루에서 내려다보이는 강변의 물안개와 그 사이로 드러난 단애(斷崖)는 무릉도원을 연상시킨다. 지난 밤, 장작을 패서 아궁이에 불을 지폈던 구들목의 온기를 즐기며 온갖 반찬이 가득한 아침상을 받으면, 옛 사람들의 삶의 정취가 그대로 전해오는 듯하다.
과감하게 농암종택을 개방한 이성원 박사는 안동 소재 한국국학진흥원 연구원으로, 경북지역의 유교문화 유산을 연구하며 농암종택의 완전 복원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그리고 농암종택을 찾는 손님들에게는 다정다감한 주인으로서 정성을 다한다. 특별히 마음이 통하는 분들과는 밤새도록 안동지역의 유교문화에 대해 담론을 즐기기도 하고, 농암이 주창했던 강호문학의 세계를 나누기도 한다. 그래서 전국 각 대학의 전통문화 동아리의 학생들과 교수들이 자주 방문한다. 물론 가족 단위의 방문객도 꾸준하다.

농암종택이 펜션 객실로 제공하는 방은 모두 12개. 사랑채에 3개, 안채에 2개, 문간채에 3개, 별채와 긍구당에 각각 1개 그리고 농가주택에 2개 등이 있다. 이렇게 하여 농암종택은 하루 50명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다.

여름 휴가철에는 강변을 찾는 인파로 분주하지만 평소에는 더없이 한가하다. 이곳은 낙동강 상류로 수질이 맑고 깨끗하여 물고기가 많이 서식하여 천렵의 진미를 제대로 맛볼 수 있다. 특히 도산서원까지 이르는 10여 리의 트래킹 코스는 일품이다. 휘도는 물굽이는 물론 병풍처럼 둘러선 절벽들이 절경을 이루어 많은 애호가들이 찾는다. 강 따라 내려가면 월명담과 한속담, 경암, 미천장담, 백운지, 단사협 등이 이어진다. 게다가 농암종택에서 도산서원까지 이르는 길목에는 시인 이육사 생가와 퇴계종택, 오천유적지 등 역사적 명소가 즐비하여 문화의 정취와 자연의 운치를 한꺼번에 즐길 수 있다.

펜션지기 이성원 박사는 이곳을 찾는 손님들에게 하룻밤이라도 빈둥빈둥 편안히 놀다 가라고 권한다. 뭔가를 억지로 찾아 즐기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 생긴 그대로, 농암종택에서 생활하다 보면, 아름다운 풍광 가운데 옛 사람들의 풍류에 젖어 그 멋과 맛을 알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이 박사와 얘기를 나누는 사이에 안채에서는 예부터 전하는 손님을 위한 다과상 준비를 했다. 잘 익은 감 몇 개와 안동식혜가 낯선 손님을 위해 정갈하게 차려져 나왔다. 가장 한국적인 펜션의 테마를 구태여 찾는다면 이처럼 인정과 정성을 담은 주인의 마음과 자연의 정취를 느끼고 즐기는 데 있는 게 아닐까? 田

농암종택(054-843-1202. www.nongam.com)

글 김창범<월간 전원주택라이프 편집위원,'펜션으로 성공하기' 저자>
사진 윤홍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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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풍스런 한옥에서의 하룻밤, 안동,농암 이현보 종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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