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보기
-
-
패시브하우스 핵심은 기밀과 습기 제어
-
-
단열은 건물의 에너지 성능을 좌우하는 요소다. 하지만 단열재 두께는 적정한 선이 있어 단열에 비용을 투자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 그리고 기밀도가 낮으면 단열 시공을 아무리 꼼꼼하게 해도 침기와 누기로 인해 단열 성능이 저하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단열 기준을 충족한 후 기밀에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건축 기술이 앞선 해외에서 기밀 성능 시험을 필수로 채택하는 이유다. 단열과 기밀을 적절하게 균형을 맞추고 습기를 제어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에너지 손실을 줄이는 방법이다.글 백홍기 기자 참고자료 ㈔한국패시브건축협회 www.phiko.kr 프로클리마 www.proclima.co.kr도움말 ㈜해강인터내셔널 이정현 대표 02-416-1511
기밀 시공, 왜 중요한가단열을 아무리 두껍게 해도, 건물에 틈새바람이 있다면 아무런 소용없다. 실제 일반주택은 수많은 틈새가 존재하며, 이러한 틈새로 드나드는 공기의 양이 생각보다 많다. 에너지 손실로 따지면 전체 창문을 통해 손실되는 에너지와 맞먹는다. (사)한국패시브건축협회 자료에 의하면, 일반주택의 틈새바람은 매 시간 주택의 전체 체적 40~60%에 달한다. 즉, 주택의 절반 크기에 해당하는 바람이 매시간 드나든다는 뜻이다(평균 0.5회/h @n2.5). 이는 차음 성능과 직결되므로, 도로의 소음이 잘 들리는 주택은 그만큼 틈새가 많다는 뜻이다. 또한, 기밀성이 떨어지는 주택은 실내에 유입된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 창문을 모두 닫고 공기청정기를 아무리 오래 가동해도 미세먼지 농도가 ‘0’이 되지 않는다. 안정적 수치에 도달해도 공기청정기를 멈추면, 수치는 급격하게 상승한다. 틈새를 통해 끊임없이 미세먼지가 들어오기 때문이다.기밀하게 시공하면 어떤 면이 좋은가. 첫 번째는 실·내외로 공기의 흐름이 없기 때문에 쾌적한 주거 환경을 유지한다. 두 번째는 외부 소음을 차단하기 때문에 실내가 조용해진다. 세 번째는 각종 틈새로 인해 발생하는 하자가 없고 손실되는 에너지기 적기 때문에 에너지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침기와 누기에 의한 열 손실공기의 흐름엔 외부 공기가 실내로 들어오는 침기浸氣와 실내 공기가 외부로 빠져나가는 누기漏氣가 있다. 주택에서 침기와 누기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부분은 바닥, 벽체, 천장이다. 침기와 누기는 내·외부의 압력차에 의해 발생하며, 이동하는 통로는 다공질, 틈, 갈라짐 등이다. 침기와 누기는 열 손실을 포함해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켜 세밀한 기밀 시공으로 차단해야 한다. 공기의 흐름에 의한 열 손실 메커니즘은 침기·누기 발생→외력에 의한 대류→자연 대류→단열재 내부 공기 흐름→단열재 주변 틈을 통한 공기 흐름이다.
이러한 공기 흐름을 차단하기 위해 고기밀 시공이 필요하며, 무엇보다 기밀면이 끊김 없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도록 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밀 시공은 순서가 뒤바뀌면 되돌리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많은 시공 경험이 필요하고 설계 단계부터 철저한 계획 아래 진행해야 한다.
건식구조 기밀건식구조는 벽체가 기밀하지 못해 다량의 실내 습기가 구조체 내부로 들어가지 않게 하는 ‘방습층’이 필수다. 목구조나, 경량 스틸하우스는 방습층을 기밀층으로 사용하면 공사비를 최소화할 수 있다. 주의할 것은 구조체를 만들 때, 내·외벽이 만나는 곳과 2층 바닥이 외벽과 만나는 곳은 기밀층을 먼저 시공해야 한다. 그래야 전체적으로 틈새 없이 기밀하게 시공할 수 있다. 최근 목구조에 사용하는 수성연질폼이 기밀층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수성연질폼은 글라스울 등 다른 단열재보다 기밀성이 좋을 뿐이다. 습기 투과가 자유로운 연질폼에 기밀/방습층이 없다면 장기적으로 구조체 내부에 발생하는 하자를 막을 방법이 없다.
건식구조에서 기밀층 선시공 부위
콘크리트 구조 기밀콘크리트 구조는 벽체 자체가 기밀해 건식구조보다 기밀한 주택을 수월하게 만들 수 있다. 이로 인해 기밀 시공비도 상당히 저렴하다. 개구부와 배관 주변에 전용 기밀 테이프로 마감하면 된다.
개구부 주변 기밀 테이프 시공
전선 공배관 기밀모든 전기선은 공배관을 사용해 시공한다. 이 때 외부 공기가 공배관을 타고 이동할 수 있다. 이러한 공기의 흐름을 막기 위해 외부에서 건축물로 연결되는 배전반을 기밀하게 처리하고, 전선과 공배관 사이에 전용 기밀 자재로 메우면 된다. 사진은 공배관 전용 기밀 자재를 사용한 것과 사용하지 않은 배관 주변의 공기 흐름을 비교한 것이다.
시공한 전선 공배관
창호 기밀창호는 단열과 기밀이 취약한 건물 외피에 속한다. 아무리 패시브하우스 요구 조건을 만족하는 고성능 창호를 설치해도 단열과 기밀 시공이 부실하면 창호 프레임 주위로 상당이 많은 에너지가 새나가고, 결로와 곰팡이가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선진 유럽에선 창호를 시공할 때 보편적으로 기밀테이프를 사용한다.
창호 열화상 카메라 빨간색 부분이 열이 새는 곳이다.
부틸butyl[합성고무]계열의 창호 기밀테이프는 방수 기능만 있고, 투습 성능이 없어 창호 프레임과 벽체 사이에 결로 현상이 생길 경우 수분이 증발하지 못해 곰팡이가 발생한다. 따라서 방습·투습 기능을 갖춘 창호 전용 기밀테이프를 사용해야 한다. 시공 시 접착제와 기밀테이프는 끊김 없이 모두 이어져야 기밀성을 유지한다. 창호 시공 전후의 시공 상황에 따라 기밀테이프를 시공해야 한다.
경량 구조 창호 기밀 테이프 시공(목조 및 스틸)
콘크리트, RC 구조 창호 기밀 테이프 시공(외부/내부)
단열 성능을 지켜주는 방·투습지단열재 성능은 대부분 단열재를 통한 공기의 이동을 차단할수록 높아진다. 또한, 단열재 성능을 떨어뜨리는 습기로부터 보호가 필요하다. 따라서 단열재 외측에 방풍·투습·방수지를 설치하고, 내측에 기밀·방습지를 설치해야 단열재의 성능을 유지할 수 있다. 이것은 결로와 곰팡이를 발생시키는 습기의 침투를 막음으로써 결과적으로 재실자가 건강하고 쾌적하게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건물의 손상을 방지하는 길이다.
투습, 방수지를 시공한 건물 외피 모습
투습·방수지[Vapor Permeable Membrane]_단열재 외측에 시공한다. 습기는 통하지만, 물과 바람은 통과하지 못한다. 투습·방수지의 투습 저항값[Sd Value]은 0.01∼0.1m 사이다.기밀 방·습지[Air & Vapor Barrier]_공기와 습기가 통하지 않게 단열재 내측에 설치한다. 투습 저항도에 따라 다음과 같이 구분한다.● 습기 차단재[Vapor Barrier]: Sd값이 굉장히 높아 습기가 거의 통하지 않는다.● 습기 지연재[Vapor Retarder]: 습기를 약간 통과시키면서 방습한다.● 가변형 방습지[Intelligent Vapor Barrier]: 상대습도에 따라 습기를 통과시키기도 하고 차단하기도 한다.단열재 내부로 흐르는 공기를 차단하는 ‘방풍지’그래프는 단열재 열전도 저항값에 미치는 공기 흐름의 영향이다. 가로축은 단열재 열전도 저항값, 세로축은 풍속이다. 방풍지를 설치한 저항값은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풍속 14mph일 때 열전도 저항값이 1은 10%, 2는 70% 정도 떨어진다. 방풍지 설치 여부에 따라 단열재 열전도 저항값은 최대 60% 정도 차이난다.
습기를 제어하는 가변형 투습·방습지건축물에서 물이란 주로 빗물을 말한다. 빗물은 중력, 모세관 현상, 바람, 압력차에 의해 침투한다. 빗물이 외장재만 적시면 큰 문제가 안 되지만, 단열재를 적시면 열전도 저항값을 떨어뜨려 열 손실을 일으킬 뿐만 아니라 구조재에도 치명적이다. 따라서 외부의 빗물과 습기가 단열재 속으로 스며들지 않도록 방수·방습용 하우스 랩을 시공해야 한다.습기 흐름은 분자 밀도(농도)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이동·확산한다. 습기와 물은 분자 구조(H2O)가 같지만, 물이 습기보다 입자가 50만 배 정도 크다. 습기는 공기 흐름과 확산으로 이동하고, 모든 공기는 습기를 품고 있다. 공기 온도가 높을수록 더 많은 습기를 품으며, 최대 습기는 20℃일 때 17.3g/㎥, 15℃일 때 12.8g/㎥, 10℃일 때 9.4g/㎥, 5℃일 때 6.8g/㎥, 0℃일 때 4.8g/㎥이다. 이 때문에 결로와 곰팡이가 발생한다. 즉, 20℃일 때 습기를 최대 17.3g/㎥ 품는데, 온도가 15℃로 떨어지면 품을 수 있는 습기의 양이 최대 12.8g/㎥이므로, 그 차액인 4.8g/㎥만큼 물(결로)로 뱉어낸다. 이처럼 따듯한 곳에 있는 공기가 찬 공기 또는 찬 표면을 만나 결로가 발생한다.
건식 벽체는 작은 다공질, 틈, 크랙 등이 발생하면, 이를 통해 습기가 밖으로 나오면서 찬 공기 또는 찬 표면과 만나 물로 바뀌며, 이 물이 단열재를 적셔 단열 성능을 떨어뜨린다. 이를 방지하려면 단열재를 중심으로 안쪽에 기밀·방습지를 설치해 공기와 습기가 단열재 쪽으로 흐르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 또한, 단열재 바깥쪽에 투습·방수지를 설치해 내부의 습기를 밖으로 빼내야 한다.기밀·방습용 하우스 랩은 수증기압이 높은 부위에 설치한다. 난방하는 추운 지역은 실외보다 실내가 수증기압(습기)이 높아 습기가 안에서 밖으로 흐른다. 이러한 지역에선 기밀·방습용 하우스 랩을 외피 안쪽에 설치해 단열재를 보호한다. 반대로 냉방하는 더운 지역은 실내보다 실외 수증기압이 높아 기밀·방습용 하우스 랩을 외피 바깥쪽에 설치해 단열재를 보호한다.
상황에 따라 대처하는 가변형 투습·방습지기밀·방습지는 시공 위치가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여름과 겨울이 확연하게 달라 방습(겨울)과 투습(여름) 기능을 갖춘 하우스 랩이 필요하다. 추운 지역은 실내가 고온다습해 단열재 내측에 기밀·방습지를 시공하고, 더운 지역은 실외가 고온다습해 단열재 외측에 기밀·방습지를 시공해야 한다. 그래야 단열재를 결로로부터 보호한다. 그런데 여름에 난방하고 겨울에 냉방하는 우리나라는 여름철에 역결로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기밀·방습지를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만약, 안쪽에 기밀·방습지를 시공했다면, 습기가 안에서 밖으로 흐르는 겨울철엔 괜찮지만, 밖에서 안으로 흐르는 여름철엔 방습지가 습기의 흐름을 막고 있서 에어컨을 틀면 곧바로 결로가 발생한다. 그래서 나온 개념이 가변형 투습·방습지이다.
다양한 기밀 관련 자재
설비층 기밀테이프(프로클리마 Kaflex Mono/Duo)
· 유연성, 신축성, 접착성 우수· 설비층에 연결된 전선으로 통하는 습기방지 및 기밀층 형성· 목조, 스틸, 조적 등 모든 면에 접착 가능· 구멍 크기: 3~30㎜
배관층 기밀테이프(프로클리마 Roflex 20~300)
· 신축성이 좋아 조금 큰 크기도 작업 가능· 취약했던 환기통 또는 파이프관 주변 기밀층 유지· 습기를 차단해 결로나 곰팡이 방지· 제품 규격: 50~250㎜(파이프 크기 40~290㎜ 작업 가능)
콘센트 기밀캡(프로클리마 Stoppa)
· 분전반 콘센트 CD관 기밀시공· 제품 규격: 16~40㎜
한국형 패시브하우스 선택 아닌 필수01Ⅰ살수록 건강해지는 집, 패시브하우스 (사)한국패시브건축협회 최정만 회장02Ⅰ패시브하우스 정의와 체크 요소03Ⅰ패시브하우스 핵심은 기밀과 습기 제어04Ⅰ우리 집 건강 지킴이, 열회수 환기장치
전원주택라이프 더 보기www.countryhome.co.kr
-
2019-02-14
-
-
【NEWS】 허가권자 지정감리 대상, 다가구주택까지 확대
-
-
앞으로 주택법 감리의 적용을 받지 않는 도시형 생활주택과 주상복합건축물, 건축주와 준공 후 거주자가 다른 다중주택(하숙집 등)과 다가구주택(원룸 등)과 같은 임대 목적 주택의 감리도 허가권자(지자체 등)가 지정하게 된다.국토교통부는 이러한 내용을 골자로 한 건축법 시행령이 2월 15일(금)부터 시행된다고 밝혔다. 공사감리자의 임무는 비전문가인 건축주를 대신해 시공자를 감독해 부실공사 등을 예방하는 것으로, 소규모 건축물 중 건축주가 직접 시공하는 직영 공사 등의 경우 부실 시공 사례가 다수 발생함에 따라 2016년 8월부터 <허가권자 감리 지정 제도>를 적용하여 오고 있다.※ 직영공사_건축주가 직접 시공하여 독립적인 감리가 어려운 소규모 건축물※ 허가권자 지정 감리제도_건축주와 준공 후 소유자가 달라 심도 있는 감리업무가 어려운 30세대 미만 분양 목적 공동주택(통상 30세대 이상은 주택 감리 대상). 부실시공 등을 감독하는 감리자에게 건축주가 부당한 압력을 행사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건축주 대신 허가권자가 감리자를 지정하는 제도 국토부는 이번 시행령 개정을 통해 허가권자 감리 지정제도를 보다 확대함으로써 건축주와 실제 거주자가 다른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부실 가능성을 최소화하고, 이를 통해 서민 주거의 안전을 강화할 계획이다.이에 따라 주택법의 적용을 받지 아니하는 도시형 생활주택과 주상복합건축물은 허가권자가 감리자를 지정하게 되고, 건축주와 준공 후 거주자가 다른 하숙집 등 다중 주택과 원룸 등 다가구주택과 같은 임대 목적 주택도 허가권자 지정 감리 대상 건축물에 추가됐다. 국토부 건축정책과 남영우 과장은 “분양 및 임대를 목적으로 할 수 있는 주택은 건축주가 본인의 이익을 위하여 감리자에게 부당한 압력을 행사할 개연성이 높다”면서 “이번에 지정감리제도의 대상을 확대함으로써 세입자들의 주거 편의 및 안전이 보다 강화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전원주택라이프 더 보기www.countryhome.co.kr
-
2019-02-14
-
-
건축사의 집 이야기 12편, 삶을 통해 집을 설계할 수 있다면
-
-
글 양성필 건축사(건축사사무소 아키제주 대표) www.archijeju.com 064-751-9151
삶을 통해 집을 설계할 수 있다면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1887∼1965)라는 유명한 건축가는 ‘집은 삶을 담는 그릇’이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집을 규정한 이보다 더 명확한 말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제가 디자인하고픈 좋은 집도 삶을 담는 집이랑 다른 말은 아니지요. 우리말인 ‘집’에 가정이라는 의미가 들어있으므로, 집을 디자인한다는 것은 이미 삶을 고려해서 설계한다는 의미입니다.한동안 외지에서 살다가 온 저는 제주도의 고유한 건축에 대해서 정말 아무것도 몰랐기에 참 답답했습니다. 물론 제주도의 초가가 안거리와 밖거리로 되어 있고 일찍이 핵가족제도가 발달했다는 등의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초등학교인 국민학교 시절에 저도 초가에서 살았습니다. 지붕을 새로 이을 때면 쌓아놓은 새[茅] 묶음 속에서 친구들이랑 작은 집을 만들어서 놀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정작 건축과에 진학해서 공부할 때, 제가 본 것은 양동마을이니 하회마을이니 하는 육지의 양반 건축물이었습니다. 그때야 제가 자란 서귀포에서는 기와집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고 생각했으며, 집은 지역마다 모양이 다 다르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가 담아야 할 삶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도 조금씩 알게 됐습니다.지금은 세계화 시대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도 외국 건축가의 작품이 많이 세워졌고, 또한 우리나라 건축가도 해외에서 많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제주도에도 외국 건축가가 설계한 아름답고 좋은 건축물이 많습니다. 반드시 우리나라에서는 우리나라 건축가가 설계해야 한다는 것은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편협한 사고입니다. 마찬가지로 제주도에서는 제주도 출신 건축가가 설계해야 한다는 것 역시 편협한 생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의 본질은 누가 설계하느냐에 있지 않습니다. 그러면 좋은 집을 설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제주도라는 지역성을 잘 이해하는 건축사라면 그렇지 않은 건축사보다 그곳에 잘 어울리는 집을 설계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이 말에는 어떤 선입견이 있습니다. ‘제주도민의 삶은 그래도 제주도 출신 건축가가 더 잘 이해하겠지’ 하는 선입견이지요. 글쎄요. 정말 그럴까요. 저는 그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타지에서 온 성실한 건축사가 제주도에 더 어울리는 감성을 담은 건축물을 디자인해서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훌륭하고 능력 있는 건축사는 지역성의 중요성을 잘 이해하거든요.또한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에 특수한 부분도 있지만, 많은 사람이 공통으로 좋아하는 것이 분명히 있거든요. 그래서 대기업에서 만드는 자동차, 가방, 가구들이 대량으로 생산·판매되는 것이지요. 모두 개성만으로 살아간다면 똑같이 생긴 제품들은 팔리지 않겠지요. 제주도민은 분명 다른 지역 사람들과 다른 문화와 생활방식이 있겠지만, 그렇다고 보편적인 삶의 방식은 크게 차이나지 않지요. 어쩌면 제주도민이 갖는 특수한 방식을 이해하는 것보다 인간으로서의 보편적인 삶의 방식을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보편적인 인간은 어떤 사람일까요. 사실 저도 잘 모릅니다. 저는 제가 살아온 방식으로 인간을 생각합니다. 아마 보통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자기 기준으로 인간을 정의하려고 하겠지요. 그래서 남의 집을 설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작업이지요. 인간의 삶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집을 마음대로 만들면 안 되니까요.
저는 집을 잘 설계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주의 민가를 공부하고 조사해보았습니다. 몇 번 건축을 답사하다 보니 제주도라는 작은 지역에서도 동쪽과 서쪽이, 또 남쪽과 북쪽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콘크리트로 지어진 현대건축은 지역과 관계없이 비슷하지만, 초가와 같은 목구조 집은 바람의 방향이나 물길의 흐름에 따라서 형태와 배치가 달라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것을 세세하게 여기서 나열할 필요는 없지만, 제게 참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하지만 옛집을 관찰한다고 해서 잘 설계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또한 주위에서 옛날에 그렇게 살았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그때와 삶의 방식이 다르지 않느냐고 합니다. 맞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을 건축공간에 담아내는 기술을 배워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건축 디자인을 위한 정보는 책과 인터넷으로 배울 수 있지만, 정작 좋은 집을 설계하기 위한 정보를 제가 얻을 방법이 없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삶을 담는 그릇과 같은 멋진 집을 디자인할 수 있을까요.책이나 인터넷을 통해서 얻는 건축 디자인에 관한 정보는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것이지요. 또한 제가 제주의 민가를 살펴본 것도 역시 보편적인 삶의 모습을 이해하는 것에 불과했습니다. 학문 역시 보편적인 지식을 추구하며, 책에서 서술하는 집도 많은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공간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설계한다는 것은 특정의 단 한 명의 주인을 위한 특별한 집이어야 하는 것이니까, 책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늘 한계가 있기 마련입니다.사람들은 종종 자기가 원하는 집을 ‘방은 3개고 면적은 30평 정도였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말하곤 합니다. 물론 여기에 매우 많은 정보가 이미 들어 있습니다. 방이 3개는 그만큼 가족 수가 많거나 제사 등으로 손님이 많을 수 있다는 의미고, 30평 면적에는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공사비에 대한 생각이 들어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자신이 원하는 집을 이야기할 때 좀 더 친절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방 3개를 원한다기보다 ‘집에 우리 부부와 중학생 남자애와 초등학교 3학년인 딸이 있는데, 아들은 공부보다 운동을 좋아하고 딸은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해준다면 더 좋겠습니다.집을 설계할 때 처음에 어떤 집이 좋을지 몰라서 이런저런 질문을 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집을 디자인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질문도 할 수 있고요. 하지만 사람이라는 것이 참 특이해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스스로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요. 저는 그런 희망 사항이 잡담하는 가운데서 은연중에 드러나는 경우도 많이 보았거든요. 그러다 보니 좋은 집을 설계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시간이 좀 필요한 것 같아요. 저는 일반적으로 주택설계를 위해 소요 시간을 대략 3개월을 고려하라고 말합니다. 대개 그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느냐고 반문합니다. 할 수 있다면 당연히 저도 빨리 끝내고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 회사 운영을 위해서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설계를 위해 대화하다 보면 그 정도 시간은 늘 필요합니다. 그것도 의뢰인이 놀랄까 보아 기간을 줄여서 말하는 것이지요. 그래도 서둘러서 후회하는 것보다 이참에 차분히 자기가 원하는 집이 어떤 집인지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그야말로 집을 짓는 것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이니까요.
본 기사는 연재물로 '전원주택 짓기' 시리즈에서 차례대로 볼 수 있습니다.
전원주택라이프 더 보기www.countryhome.co.kr
-
2019-0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