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보기
-
-
고요함 속 움직임 돋보이는 세종 주택
-
-
집을 짓는다는 건 공간 계획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처럼 직·간접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이 원하는 공간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아늑한 다실茶室을 갖춘 이 주택은 건축주가 일본에서 생활한 경험, 그리고 주택의 기능과 건축구조에 관한 방대한 자료를 모으며 충분한 사전 준비를 거친 뒤 비로소 완성한 결과물이다.글 백홍기 기자 | 사진 이상현 기자 취재협조 우림건축사사무소
HOUSE NOTE●DATA위치 세종시 고운동지역/지구 제1종 전용주거지역, 지구단위계획구역건축구조 철근콘크리트조대지면적 339.70㎡(102.75평)건축면적 126.14㎡(38.15평)건폐율 37.13%연면적 217.18㎡(65.69평) 1층 118.34㎡(35.79평) 2층 98.84㎡(29.89평) 다락 14.85㎡(4.49평)용적률 63.93%설계기간 2017년 7월~9월공사기간 2017년 9월~2018년 3월건축비용 3억 5천만 원(3.3㎡당 530만 원)설계 우림건축사사무소 042-823-3825시공 건축주 직영
세종시 택지개발지구의 잘 정리된 단독주택지에 앉힌 주택. 지구단위계획에 따라 용마루 기준 최고 높이 8.67m(9m 이하)에 맞춘 뒤 일조권 사선제한에 맞춰 처마 끝 높이를 6.5m로 계획한 박공지붕을 얹었다. 폭 8m 단지 내 도로를 따라 북동으로 30°틀어진 대지는 북동과 서남으로 긴 직사각형이며, 이러한 대지 조건에 맞춰 평면 구조를 직사각형으로 구성한 주택을 동남향으로 앉혔다. 단지 내 도로가 대지 우측으로 지나기에 외부에서 진입하기 편한 전면 우측에 주차장과 연계해 현관을 배치했다.
주택은 사각형 벽체에 삼각형 지붕을 올린 단순한 형태지만, 비둘기색의 전벽돌과 징크로 마감해 세련된 중후함이 느껴진다. 또한, 층과 층 사이를 경쾌하게 가로지르는 계절별 일사각을 고려한 처마, 그리고 현관 앞 포치와 베란다는 기능성뿐만 아니라 단조로운 입면에서 변화를 엿보게 한다. 도로에서 바라본 측면은 부분적으로 볼륨감을 준 외벽과 농담을 달리한 전벽돌 컬러, 그리고 작은 창이 어우러져 조형미를 발산해 시선을 머물게 한다. ‘심플하면서 모던한 도시적인 감성이 담긴 주택’을 바라던 건축주 요구에 단순한 박스 형태에서 출발한 설계는 구조, 기능, 미를 더하고 도시 색을 입혀 견고한 듯 부드러운 인상의 주택을 완성했다.
현관
가벽을 활용한 공간 변화이 주택은 현관부터 여느 주택과 다르다. 다름은 공간 변화에 있다. 현관 우측에 있는 문을 열면 또 다른 공간이 나타난다. 족히 자전거 3대를 보관할 수 있는 넓이다. 이곳엔 벽장도 설치해 제법 수납을 해결할 수 있다. 여기서도 현관 중문과 동선을 연결해 실내로 진입할 수 있다. 가벽을 활용함으로써 하나의 현관에 기능적인 두 개의 공간을 확보한 것이다.
자전거 수납을 위해 현관을 넓힌 뒤, 가벽을 설치해 깔끔하게 두 개의 공간으로 나눴다. 가벽에는 현관문 옆에 문을 설치해 이동을 편리하게 했다.
현관 앞 계단실 오른쪽에 1층 화장실을 배치했다. 외출 후 집에 들어왔을 때 바로 손을 씻을 수 있도록 세면기를 밖에 뒀다. 잠시 머무는 공간이지만, 목제수납장과 따뜻한 느낌의 조명을 사용해 아늑하게 연출했다.
3연동 중문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서면 정면으로 계단이 눈에 들어온다. 1층을 둘러보기 위해 좌측으로 고개를 돌리면 긴 복도와 마주한다. 1층의 각 실은 복도를 중심으로 양쪽에 나란히 배치해 현관 전실에선 실내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두세 걸음 지나면 좌측으로 천장을 2층까지 높여 공간감이 시원스러운 거실이 반긴다. 거실과 마주보는 우측 가벽 뒤엔 팬트리 공간이 있다. 이 공간은 복도와 주방, 거실과 동선이 이어져 어디서나 자유롭게 드나드는 구조다.
거실 뒤에 설치한 팬트리는 주방의 수납을 해결하면서 복도를 형성해 공간에 색다른 변화를 준다. 위에 보이는 격자유리는 2층 복도다.
●MATERIAL외부마감 지붕 - T0.5 징크패널 벽 - 현대 전벽돌내부마감 천장 - 실크벽지(LG하우시스) 벽 - 실크벽지(LG하우시스) 바닥 - 강마루단열재 지붕 - T180 압출법 보온판 1호 외단열 - T100 압출법 보온판 1호창호 로이 3중유리 창호(이건창호)현관 알루미늄 단열 도어계단 애쉬 집성목주방가구 한샘위생기구 대림바스난방기구 가스보일러(귀뚜라미)
주방은 수납을 팬트리 공간과 나누면서 한결 여유롭고 단순해졌다. 가전 및 가구를 11자형으로 배치한 주방은 마당을 향한 아일랜드 식탁에 개수대와 조리대, 가열대를 설치해 아이들과 눈을 맞추면서 편리하고 즐겁게 조리하는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주방은 아일랜드 식탁에 개수대와 조리대, 가열기기를 설치해 조리할 때 눈을 맞추면서 소통할 수 있다.
주방은 짧지만, 팬트리와 연결돼 좁다는 느낌이 없고 보기에도 한결 깔끔하다.
주택 규모에 비해 거실이 좁아 보이는데, 그 이유는 옆쪽의 다실茶室과 공간을 나눴기 때문이다. 다실은 1층 바닥보다 한 뼘 정도 바닥을 높이고 한지 창호지를 바른 듯한 네 짝 미세기 목문을 설치했다. 문을 닫으면 다실만의 고유한 정적인 공간이 된다. 또한, 다실은 주방과도 마주하기 때문에 편리하게 다과茶菓를 즐길 수 있다.건축주는 “설계부터 수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며, “벽을 이용해 공간을 세분화하고 동선을 단순화해 작은 공간들이 연속해서 이어지도록 계획했다”고 한다.
주방 정면에서 본 다실이다.
한지 창호지를 바른 듯한 미세기 목문을 설치해 더욱 아늑한 느낌을 준다.
안방은 짙은 회색으로 벽을 마감해 편안한 수면을 유도하도록 꾸몄다.
편의를 위한 층간 분리2층은 독립 공간이지만, 주거에 필요한 요소를 갖췄다. 침실을 비롯해 가족실과 세탁실, 미니 주방, 욕실을 배치해 1층을 거치지 않고도 생활할 수 있다. 아늑해야 하는 침실은 가족실과 거리를 둬 시선과 소음에 의한 간섭을 줄였다. 안방은 차분한 분위기로 편안함을 주고, 아이 방은 내벽에 박공 모양으로 개구부를 내 공부방과 침실 두 공간으로 나눠 재미있게 연출했다. 공부방 바로 옆엔 다락으로 통하는 계단이 있다. 놀이를 위해 다락을 오르내리는 아이는 아파트엔 없는 색다른 즐거움에 빠졌다고 한다.
2층 가족실에서 바라본 모습으로 왼쪽은 계단실, 오른쪽은 세탁실이다. 오른쪽 끝에 침실과 거리를 두고 배치한 가족실은 오락과 쉼, 가사를 위한 다목적 공간으로 활용한다.
2층 가족실
2층에서 눈에 띄는 건 복도 하부에 설치한 불투명 유리블럭이다. 1층 거실을 채우고 남은 빛은 유리블럭을 통해 2층 복도를 은은하게 밝힌다. 이 때문에 다소 어두울 수 있는 복도가 한결 넓고 환해졌다.
2층 복도 하부에 무릎 높이 크기의 유리블록으로 벽을 설치했다. 거실을 채운 빛이 유리를 통해 복도를 은은하게 밝힌다.
전체 인테리어는 흰색 톤을 주조로 넓고 안정적이며, 여기에 부분적으로 따듯한 질감의 목재를 가미해 따듯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아이의 방은 파스텔 톤의 재미난 공간 구성, 아기자기한 형상이 점점이 박힌 벽지로 마감해 아이의 감성을 담아냈다.
아이 방은 내벽에 박공 모양으로 개구부를 내 공부방과 침실 두 공간으로 나눠 재미있게 연출했다.
아이 방 옆에서 계단을 통해 바로 연결되는 다락은 경사지붕면에 천창을 설치했다. 자신의 방과 다락을 오르내리며 즐거워하는 아이의 모습이 그려진다.
건축주는 즐겁게 설계를 시작했다. 하지만, 시공 과정에서 난항에 부딪혀 우여곡절 끝에 주택을 완공한 것을 아쉬워했다. 건축주의 헛헛한 마음이 전해졌지만, 이내 아이와 함께 또 다른 행복을 기대하는 마음을 미소로 넌지시 알렸다.
견고하고 꽉 찬 느낌의 직사각형 주택은 창 배열과 층과 층을 분리한 처마, 박공지붕, 일부분에 약간 볼륨감을 가미해 지루하지 않도록 입면에 변화를 줬다.
전원주택라이프 더 보기www.countryhome.co.kr
-
2018-09-03
-
-
벽돌의 파이를 키우다, 브릭코 선릉 전시장
-
-
벽돌 브랜드 브릭코Bricko로 잘 알려진 청화요업이 서울 강남구 선릉로에 벽돌 전시장을 오픈했다. 전시장에선 브릭코 벽돌을 비롯해 벨기에 브랜드 넬리센NELISSEN과 덴마크 브랜드 랜더스RANDERS 벽돌까지 보고 만질 수 있으며, 전문가의 상담도 받을 수 있다.글 사진 이상현 기자 취재협조 청화요업 1644-8934 www.bricko.co.kr
건축구조가 같다고 하더라도 어떤 외장재로 마감하느냐에 따라 주택이 주는 느낌은 완전히 달라진다. 그래서 건축구조가 민낯이라면 외장재는 화장품과도 같다. 건축구조만큼 외장재 선택에 있어 건축주들의 고민이 깊은 이유다.많은 외장재 중 벽돌은 건축박람회장이 아니면 쉽게 보고 만지기 어렵다. 공장 대부분이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데다 간혹 대리점을 방문하더라도 사진으로만 구경하기 일쑤다. 이에 청화요업은 외장재로 고민하는 건축주들이 평상시에도 벽돌을 살펴볼 수 있도록 상설 전시장을 오픈했다. 1980년 창립 이래 50여 종의 벽돌을 출시해 온 청화요업은 자체 연구소를 설립해 제품 기술과 디자인을 연구해 벽돌의 품질을 높이는 데 힘쓰며 머니투데이에서 주최한 2018 소비자 만족 대상(벽돌 부문)을 수상했다.
국내외 벽돌을 한자리에서브릭코 전시장에 들어서면 다양한 벽돌이 빼곡하게 진열돼 있다. 자체 생산한 브릭코 벽돌 20여 종, 벨기에 브랜드 넬리센 벽돌 50여 종, 덴마크 브랜드 랜더스 벽돌 20여 종이다.넬리센은 핸드 몰드 타입의 벽돌 생산업체로 1921년 설립된 오랜 역사를 가진 브랜드다. 100% 천연재료로 만들며 100여 가지 이상의 컬러가 있다. 연간 1억 6천만 장 이상을 생산하며, 지금까지 세계 30여 개국에 수출해 그 품질을 인정받았다. 다양한 모양의 넬리센 핸드 몰드 벽돌은 실제 손으로 만든 것처럼 불규칙한 표면 질감을 통해 자연스러운 느낌이 든다. 그중 WASSERSTRICH 라인은 핸드 몰드 제품과 같은 방식으로 만들지만, 모래 대신 물을 사용해 표면 질감이 조금 매끄럽다. 거친 질감을 모래 코팅 없이 압출-프레스 방식으로 생산한다.랜더스는 북유럽 최대 규모의 공장을 가진 브랜드로 1911년 설립된 이래 지금까지 가업을 이어 벽돌을 만들고 있다. 덴마크와 독일에 생산 공장이 있으며 스칸디나비아반도 전역과 독일에 제품을 공급한다.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브랜드로 그 자부심이 대단하며 최근엔 설비에 적극 투자해 친환경 제품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궁금해하는 외장재로 벽돌이 지진에도 안전하냐는 질문에 청화요업 박원용 전무는 “내진설계가 된 건축물이라면 지진에도 문제없다”며 “구조 보강철물을 사용해 건물과 연결하고, 그 위에 시공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외장재로 벽돌을 고민하는 건축주들에게 서정규 차장은 “벽돌은 유지관리가 우수하며, 특별한 관리 없이도 50년 이상 변치 않고 처음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다”며, “국내 KS 기준에 명시된 강도 및 흡수율 등을 준수한 벽돌인지 확인하면 외장재를 고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한다.
브릭코 선릉 전시장은 강남구 선릉로에 위치하며, 주차장이 마련돼 있다. 2호선 선릉역과 9호선 선정릉역에서 걸어서 5분 거리로 접근성도 높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평일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7시까지, 토요일은 오후 3시까지 운영한다. 운영시간 중 전문가와 함께 상담이 가능하며, 제품 구입을 원할 경우 가까운 대리점으로 연결해준다.
NELISSEN_GRIGIO ARTE
핸드 몰드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질감을 가졌다. 백색이 섞여 있어 주택의 분위기를 밝게 만든다.·크기:±240×70×50㎜(크기 조절 가능)
NELISSEN_NUANCE T16
독특한 질감에 따듯함과 중후한 분위기를 더했다. 오랜 시간 지나도 변하지 않는 느낌을 준다.·크기:±240×70×50㎜(크기 조절 가능)
LANDERS_ULTIMA RT156
ULTIMA 시리즈는 일반 벽돌보다 가로로 기다란 벽돌로 정갈한 느낌을 준다. ·크기: 468×108×38㎜
LANDERS_FUSION RT570
햇빛에 비치면 마치 금장한 듯 밝은 분위기를 내며, 그 분위기가 따듯함을 더한다.·크기: 228×108×54㎜ / 240×115×71㎜
Bricko_유니크 청고벽돌
Bulish gray를 바탕으로 전통미와 자연미를 잘 표현한 제품으로 독특한 질감과 함께 조적방식에 따라 다양한 조형미를 나타낸다. ·크기: 290×90×48㎜
Bricko_유니크 메탈
한국 전통의 먹색빛이 가지는 검정 컬러에 은빛이 감도는 벽돌이다. 모던함과 세련됨을 표현하기에 적합하다.·크기: 290×90×48㎜
전원주택라이프 더 보기www.countryhome.co.kr
-
2018-09-03
-
-
[사색의 공간] 집과 건축_디자이너와 엔지니어
-
-
글 양성필 건축사(건축사사무소 아키제주 대표)
디자이너와 엔지니어
거리를 걷다 보면 도대체 어떻게 만든 건지, 또는 재료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건축물을 자주 봅니다. 새로운 재료와 공법은 계속 쏟아지는데, 제가 직접 설계하면서 경험할 수 있는 건축물은 한정돼 있습니다. 그 때문에 새로 등장하는 수많은 재료와 공법을 아무리 노력해도 알 수 있는 데 한계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 아쉬움 때문에 가끔 산업전시회도 들러보지만, 현장에서 직접 적용해보지 못한 재료를 쓴다는 것은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지요. 만약, 건축사가 잘 알지 못하는 신소재를 의뢰인의 집에 쓰자고 해보세요. 마치 건축사의 호기심을 위해서 의뢰인의 집을 실험 대상으로 삼는 격이 되는 것이지요. 그러다가 잘못된 선택임이 확인됐다고 건축사가 책임질 수 있을까요?
새로운 건축재료나 그와 관련된 디테일 정보를 얻기 어려울 때, 대도시에서 설계하면서 대형 프로젝트를 경험할 수 있는 환경이 부러워지기도 합니다. 만약, 건축사가 “건물을 짓는 재료와 공법을 잘 모르겠다”고 하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요? 건축사에 대한 신뢰가 뚝 떨어지겠지요. 하지만, 저는 새로운 건축재료와 공법을 죄다 숙지하지 못합니다. 저뿐만 아니라 대개의 건축사가 그럴 텐데, 그것은 마치 의사가 좋은 신약이 나온 줄 모르고 약효가 떨어지는 이전의 약을 처방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왜, 새로 등장한 공법이나 재료가 건축사에게 전달될 수 있는 구조가 안 되어 있는 것일까요? 혹시, 그런 것을 몰라도 설계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어서일까요? 아니면, 설계단계가 아닌 나중에 재료와 공법을 결정할 수 있는 유연한 구조가 되어 있기 때문일까요?
적절치 않을 수도 있으나, 이해를 돕기 위해 의사와 약사의 관계를 비유해 보면 어떨까 싶네요. 어떤 병이든 치료하기 위해서 약을 처방하고 조제합니다. 이때 무슨 약을 쓸지, 그 결정권이 의사에게 있어야 할까요, 아니면 약사에게 있어야 할까요? 환자가 결국 사용할 약은 한 가지인데, 그것을 결정할 수 있는 전문가는 두 명입니다. 두 전문가의 역할이 나뉘지 않는다면, 분명 권리와 책임에 대해서 분쟁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별개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제약회사의 입장에서도 누가 약의 사용을 결정하느냐에 따라서 홍보 대상이 달라집니다. 지금 제약회사는 약사를 만나러 갈까요, 아니면 의사를 만나러 갈까요?
자, 엘리베이터를 판매하는 회사가 있습니다. 엘리베이터를 많이 팔기 위해서 건축사사무소를 찾아갈까요, 아니면 건설사를 찾아갈까요? 어떤 엘리베이터를 선택할지 최종 결정권이 건축사사무소에 있을까요, 건설사에 있을까요, 건축주에게 있을까요?
환자를 위한 약을 결정하는 권한과 비교하면, 다들 자기가 결정권을 가지려고 노력할 것 같지요? 하지만, 건축에선 다릅니다. 반대로 다들 자기가 결정권을 가지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왜냐고요? 그에 따른 책임이 무겁기 때문입니다. 몇천만 원이 드는 엘리베이터를 구입을 결정하는 데 있어, 물론 그 기계의 성능 책임과 관리는 엘리베이터회사가 일차적이지만, 잘못된 제품을 추천함으로써 지는 부담 역시 적지 않습니다. 그 때문에 건축사사무소의 도면에는 특정 제품을 지정해서 사용하도록 하지 않습니다. 만약, 특정 제품을 지정했다면, ‘그와 동등 이상의 제품’이라고 명기합니다. 그 이유는 건축사사무소에서 적용 제품을 최종적으로 결정하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그러면 대개의 건설사 입장은 어떠할까요? 불행히도 국내의 중소 규모의 건설사들은 대개 건축사사무소의 도면을 공사용 도면으로 전환해 현장에 적용하고자 노력하고 시도하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아니, 건축사사무소에서 도면을 그리면, 집을 짓기 위한 도면 작업은 다 끝난 것이 아닌가요?”라고 묻는 것이 우리 건설현장의 현실입니다. 사실, 건축사사무소에서 그린 도면을 건설사에서 다시 체크해서 시공 가능한 도면으로 변환해야 합니다. 그게 시공도면[Shop Drawing]이라는 것이며, 엔지니어가 그려야 하는 도면입니다. 시공사에서 공사를 바르게 진행하기 위해서 모든 재료와 공법 등을 정확하게 적용할 수 있는 엔지니어의 도면을 그려야 합니다. 사실, 이 단계에서 제품도 정확히 지정하고 공법도 확인해야 합니다.
이러한 현실은 근본적으로 디자이너와 엔지니어를 정확하게 구분하지 않는 우리나라 설계 방식을 반영하며, 공학으로 이해되는 우리나라 건축과의 현주소이기 때문입니다. 대학교에 건축학과가 공과대학에 속해 있는 나라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와 일본 그리고 미국의 일부 대학이 공과대학에 건축학과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건축계획 및 설계 분야는 공학이 아닙니다. 물론, 최근 대학 교육과정에서 구조와 시공 위주로 교육하는 건축공학과와 건축설계 위주로 교육하는 건축디자인과를 구분하고 있습니다.
건축사사무소에서 공학적인 지식을 습득하기 어려운 것은 어쩌면 매우 당연합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건축사가 설계를 잘하기 공학적인 기술을 다 이해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한 생각은 자동차 디자이너가 엔진의 작동 원리와 부속의 구성 등을 모두 이해해야 한다는 것과 같습니다. 물론, 디자이너와 엔지니어는 상호 보완적으로 업무를 진행해야겠지요. 하지만, 그 두 가지를 완전히 정복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엔지니어 이야기를 하다 보니 전에 직원으로 근무하던 건축사사무소에서의 경험이 생각나는군요. 그때 제가 근무하던 사무소에서 쌍둥이 빌딩으로 된 오피스를 설계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두 개의 빌딩을 연결하는 통로가 필요했는데, 누군가 “이 공중 통로를 엘리베이터처럼 위아래로 움직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습니다. 그러자 디자인 협력업체의 엔지니어팀에서 좋은 생각이라며, 그것을 정말 도면으로 그려왔습니다. 교량과 같은 엘리베이터는 아직 만들어진 게 없으니까, 그 아이디어를 기술적으로 어떻게 해결할지 아무도 모르는 상태에서 말이지요. 사실, 그 팀은 국내가 아닌 외국팀이었어요. 그때 그들이 그려온 도면을 본 팀원 모두 놀랐습니다. 어떻게 건축사사무소에서 세상에 아직 없는 제품을 도면으로 그릴 수 있는지, 그 기술력에 놀란 것이죠.
그런데 오히려 그 이후에 제가 계속 고민하던 것 중 하나는 ‘기술적으로 모른다고 디자인할 수 없는가’하는 점이었어요. ‘디자인하는 사람은 아이디어만 있으면 안 되는가’하는 것이죠. 실제로 건축사는 집을 짓기 위한 기술적인 모든 것을 이해하면서 도면을 그리지 않습니다. 최근 들어 너무나 빠른 변화들 때문에 최신 공법과 재료들을 이해하면서 도면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점차 많아졌습니다. 만약, 새로 나온 제품이나 공법이 있다면, 그것을 건축사가 그려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그 제품을 판매하고 싶은 쪽에서 기술 지원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건축사는 최소한의 설치 가능 여부를 확인하면 되는 것이죠.
엘리베이터의 경우 예전에 기계실이 모두 옥상 꼭대기에 있었는데, 최근 기계실이 필요 없는 엘리베이터를 많이 사용합니다. 처음, 이 제품이 나왔을 때 신제품의 장단점을 확신할 수 없어서 건축사가 적용하는 데 망설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생소한 신제품은 건축사가 먼저 추천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서 도면에 항상 필요할 때 다른 제품을 선택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건설사도 다른 더 좋은 제품이나 공법이 있다면, 변경을 유도할 수 있는 기술력이 필요합니다. “도면대로 시공했으니, 우리는 할 바를 다했다”는 건설사는 새로운 기술의 적용을 가로막는 불행한 우리의 현주소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좋은 시공사는 도면대로 시공하는 시공자가 아니라, 디자인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기술 지원할 수 있는 엔지니어입니다.
엘리베이터를 더 생각해봅시다. 위와 같은 내용은 디자인이 아닌 기술적인 문제들입니다. 먼저, 디자인 단계에서도 어느 제작사의 몇 인승, 어떤 시스템의 엘리베이터를 선택할지를 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엘리베이터를 설치할 수 있는 피트PIT 공간의 크기를 결정합니다. 만약, 엘리베이터를 바꾸고 싶다면, 레미콘을 엘리베이터 피트에 붓기 전에 판단해야 합니다. 골조공사가 일단 시작되면, 엘리베이터의 변경이 매우 힘들어집니다. 건설사의 발 빠른 도면 검토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이와 비슷한 상황이 창호와 문을 설치할 때도 발생합니다. 지붕재와 외벽재를 선택할 때, 여전히 기술적인 문제들을 검토해야 합니다. 공사하면서 바꿔도 늦지 않은 재료도 있지만, 미리 정해 놓지 않으면 바꾸기 어려운 재료도 있습니다. 모든 재료는, 그것을 설치하기 위한 사전 조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엔지니어들이 디자이너의 도면을 검토하고 조정할 부분은 너무도 많습니다. 그래서 디자이너가 그린 도면을 가지고 시공할 엔지니어는 도면대로 시공하는 데 문제가 없는지, 그리고 더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방법은 없는지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합니다. 엔지니어들이 그러한 기술을 검토하지 않으면, 오히려 기술력이 거의 없는 건축사사무소에서 엔지니어 도면에 근접하게 도면을 그리려고 하고, 그래야만 잘 그린 도면으로 치부됩니다. 그래 봐야 엔지니어가 아닌데 말이지요.
-
2018-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