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보기
-
-
영화 같은 사랑으로 완성한 파주 주택 비상 飛上
-
-
영화 같은 사랑의 결실을 맺은 건축주 부부. 하지만 그들에게 자녀의 행운은 없었다. 아홉 번이나 인공수정을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고, 결국 부부는 둘이 오붓하게 지내기로 마음을 바꿨다. 남편의 건강을 생각해 친환경 주택을 짓기로 했고, 그 과정에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새로 지은 주택에 만족하며 부부의 사랑은 현재 진행형이다. 글 사진 박창배 기자※ 기사 하단에 이 주택과 관련된 인터뷰와 영상을 링크시켰습니다. 자세한 사항이 알고 싶으시면 영상을 클릭해 주세요.
HOUSE NOTEDATA위치 경기 파주시 탄현면 대동리건축구조 중목구조지역/지구 계획관리지역대지면적 755.00㎡(228.39평)건축면적 159.18㎡(48.15평)건폐율 19%연면적 174.22㎡(52.70평) 1층 122.94㎡(37.19평) 2층 51.28㎡(15.51평)용적률 21%공사기간 2019년 6월~9월설계 최부용갤러리하우스건축비용 4억 원(엘리베이터, 부대시설 제외)시공 한다움건설(주) 1522-7187 www.handaum.co.kr
MATERIAL외부마감 지붕 - 징크 벽 - 세라스킨, 아키타일, 적삼목 외 데크 - 고흥석 천연석재내부마감 천장 - 실크벽지 벽 - 실크벽지 바닥 - 강마루계단실 디딤판 - 멀바우 집성판 난간 - 단조난간단열재 지붕 - 수성연질폼(아이씬) 외단열 - 앳홈 EPS 내단열 - 글라스울창호 독일식 시스템창호현관 성우스타게이트 조명 시티전기주방기구 건축주 별도 진행위생기구 비앤티, 아메리칸 스탠다드난방기구 가스보일러(경동나비엔)
1층 포치와 현관. 남편이 휠체어로 다니기 편하도록 경사가 완만하게 길을 내고 현관에서 내부로 들어가는 입구엔 턱을 만들지 않았다.
1997년 히트한 영화 <접속>. 전도연과 한석규가 주연을 맡은 영화 <접속>은 장윤현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으로, PC 통신으로 소통하게 된 두 남녀가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고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전도연이 24살에 찍은 영화로, 제18회 청룡영화상 신인여우상을 비롯해 대종상 신인 여자배우상 등을 수상했다. <접속>은 1997년, 서울 기준으로 전국 관객 67만 명을 동원했고, 그해 한국 영화 흥행 2위였다. 그 당시 온라인 채팅이나 커뮤니티는 참신한 낭만이 있던 시절이었다. 건축주 부부는 영화 <접속>처럼 20여 년 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만나 결혼에 골인했다. 남편은 경기도 파주가 고향이고 아내는 경북 상주. 파주와 상주는 지금도 자동차로 3시간 이상 걸리고 대중교통으로 4시간 이상 걸리는 먼 거리다. 온라인이 아니었다면 만나기 쉽지 않았을 거리다.
둘은 인터넷 음악 커뮤니티를 통해 인연이 닿았다. 남편은 고향 파주에서 부동산중개업을 하고 있었고, 아내는 상주에서 모 고등학교에서 교직생활을 하고 있었다. 남편은 소아마비 증세가 악화돼 휠체어 신세를 져야 하는 장애가 있었지만, 아내는 장애보다 서로가 정신적으로 통하고 음악적으로 교감할 수 있는 부분에 매료돼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결심했다. 결혼식 당일에도 아내의 어머니는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할 정도였다고. “그냥 남편이 좋았어요. 이 사람과 평생을 함께하고 싶었죠. 남편이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주변에서는 반대가 심했는데, 결혼하는 날에도 어머니는 저를 설득하려고 했어요. 하지만 저는 남편의 장애가 보이지 않았고 남편 그 자체만 보였어요.”
현관에서 바라본 모습.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과 거실 지나 주방이 보인다.
1층 거실. 인테리어는 부부가 직접 연출한 것으로 화이트로 심플하고 산뜻하게 연출했고, 인테리어 소품과 조명 등도 부부가 발품을 팔아 직접 골랐다.
1층 거실
주방에서 본 모습_거실 안방 쪽
1층 주방. 내부는 현관에서 주방 및 다실까지 휠체어로 다니기 편하게 턱이 없고 널찍하다.
주방과 다실. 차를 즐기는 부부는 주방 옆으로 계획해 만든 다실을 가장 좋아한다고 한다.
주방 뒤편
1층 부부 침실.
부부 침실 옆에는 아내가 테니스 대회에서 받은 많은 상패가 진열돼 있다.
부부 침실과 이어진 욕실과 화장실 역시 휠체어로 편하게 다닐 수 있도록 공간이 넓다.
친환경 중목구조로 선택
결혼 후 부부는 남편의 고향 파주에서 정착해 지금까지 살고 있다. 남편은 파주에서만 줄곧 살아왔다. 반공이 강조되던 시절 남편의 고향집에서 북한이 보인다는 이유로 고향집을 떠나 윗마을로 이주해야 했다고 한다. 당시엔 이 마을 주민들조차 이곳을 드나들 때에는 검문소에서 허락을 받아야 할 정도로 마을 출입이 제한되고 까다로웠다. 제약이 풀려 고향집에 다시 살 수 있게 되자, 부부는 오랫동안 비워뒀던 옛 고향집을 허물고 다시 집을 짓기로 했다. 남편의 건강이 악화되다 보니 친환경 주택에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부는 전원주택 전문지를 탐독하고 건축박람회를 참관하면서 주택 관련 지식을 쌓았다. 짓고자 하는 주택의 밑그림이 그려지자 설계를 맡길 건축사사무소를 물색했는데, 최부용갤러리하우스가 설계해 놓은 주택에 마음이 끌렸다고. “친환경적인 집을 짓고 싶어서 중목구조를 선택했고, 외관이 좀 독특했으면 했어요. 최부용갤러리하우스에서 설계를 해놓은 ‘비상飛上’이란 주택이 맘에 쏙 들더군요. 철근콘크리트 주택용으로 설계돼 있던 거였는데 2년간 설계 변경을 거쳐서 완성했어요.” 시공사는 건축박람회에서 만났다. 한다움건설 관계자는 지난해 5월에 열렸던 건축박람회에서 어느 부부가 찾아와서는 대뜸 중목구조 잘하는 업체냐고 물었다고 한다. “MBC 건축박람회에서 휠체어를 탄 신사분과 사모님이 저희 부스에 오더니 그 자리에서 묻더군요. 중목구조 잘하냐고요. 마침 건축주가 주택을 지으려고 하는 부지 인근에 저희가 완공한 주택이 있어서 직접 보면서 얘기 나누면 좋을 것 같다고 답변을 드렸죠. 그 후 연락이 와서 현장에서 저희가 지은 중목구조 주택을 보면서 상담을 나눴고 그 자리에서 계약을 맺었죠.”
2층에서 바라본 1층 거실.
2층 엘리베이터 문과 취미실
2층 복도. 내부 공간에는 2층 복도에 중문과 화장실 두 곳에만 문을 설치했다.
2층 방은 독서와 음악 감상을 즐기기도 하면서 쉬는 공간이다. 손님이 올 경우엔 게스트룸으로 활용된다.
편하게 음악을 즐기는 공간인 2층 취미실. / 취미실 베란다에서 본 모습_북한 땅
공용으로 사용하는 2층 화장실과 1층 화장실
2층 테라스는 탁자를 두어 차를 마시며 즐기기에 안성맞춤 공간이다.
문과 턱이 없는 내부 공간
전면 도로에서 뒤쪽으로 최대한 이격하여 프라이버시를 확보하고 후면으로는 확 트인 전망을 시원스럽게 감상할 수 있도록 주택을 배치했다. 입면이 빗각기둥으로 구성돼 있어 마치 카페를 보는 듯 선이 아름답고, 포인트 외벽을 세라믹 아키타일을 붙여서 입체감이 더욱 돋보인다. 외관상 아름답지만 시공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구조적 부분과 미적 부분을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있었다는 한다움건설 차승민 현장소장. “내력 기둥이 빗각이다 보니 설계팀과 구조기술사와 심도 있는 논의를 해야 했어요. 결국 중목(105×400㎜)을 2중 3중으로 대고 철제 브라켓을 활용해 시공했죠. 시간도 오래 걸렸고 비용도 예상보다 훨씬 더 들어갔어요. 골조 작업만 3일 걸렸고 비용은 3배 이상 들어갔죠. 다시 이런 집을 짓는다면 시행착오를 겪었으니 더 잘 하겠지만 안 할 것 같아요.” 단열은 중부 지방기준의 50T 가등급 자재를 붙이고 세라스킨이라는 광물 베이스 스타코를 시공해 반광의 광택이 은은하게 묻어 나온다. 인테리어는 화이트에 깔끔하고 심플한 콘셉트로 색상, 가구, 조명 등 부부가 직접 발품을 팔아 선택했다. 내부 곳곳에는 남편에 대한 배려가 깃들어 있다. 휠체어로 다니는데 불편하지 않도록 내부 공간엔 턱을 만들지 않았다. 그리고 2층 중문과 화장실 두 곳에만 문이 있고 그 외 공간엔 문이 없다. 또 1~2층 편하게 오갈 수 있도록 엘리베이터를 설치했다.
주택 입면이 빗각기둥으로 구성돼 있어 마치 카페를 보는 듯 선이 아름답고, 포인트 외벽을 세라믹 아키타일을 붙여서 입체감이 더욱 돋보인다.
내력 기둥이 빗각이어서 안전성을 강화하기 위해 중목(105×400㎜)을 2중 또는 3중으로 대고 철제 브라켓을 활용해 시공했다.
파주 주택은 2019년 6월에 착공을 해서 9월에 완공을 보았고 부대시설 등 마무리 공사를 끝마치고 11월에 입주했다. 장애인 혜택으로 1층 현관 포치와 엘리베이터 공간 등이 연면적에서 제외됐다. 시공사 관계자는 건축주가 믿어줬기에 최선을 다했고 작은 것 하나까지 더 잘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건축주 부부가 저희를 믿어줬고 우리는 그에 보답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죠. 특히 남편분이 다니는 동선을 최대한 고려하면서 조금이라도 불편함이 없도록 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어요. 두 분이 이 집에서 행복하고 건강하게 오래 사시길 기원합니다.”
추가
[목조, 통나무주택] 하늘을 날아오를 듯한 파주 주택, 비상飛上
한다움건설 기사 더 보기
전원주택라이프 더 보기www.countryhome.co.kr
-
2020-01-01
-
-
고택을 찾아서, 예전 만석꾼 거부의 별장은 어떤 모습일까 - 성북동 이종석 별장
-
-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재준 가옥으로 불리던 곳으로 최근 연구에 의해 이종석의 여름 별장이라는 것이 밝혀져 2009년 성북동 이종석 별장으로 문화재 명칭이 바뀌었다. 이종석(1875-1952) 가문은 대대로 재산이 많았는데 9900석을 소출하는 집안이었다고 한다. 이종석은 1933년 보인 학원을 설립하고 1952년까지 이사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가 거주하던 집은 성북동이 아닌 장교동에 위치한다.글 최성호 사진 전원주택라이프 편집부
강북 재산가들이 모여 산다는 서울 성북동은 예로부터 물 좋은 곳으로 유명해 좋은 집과 별장이 많았다. 이종석 별장 외에도 명승 제35호로 지정된 정원이 아름다운 성락원 城樂園, 마포 최사영 고택 麻浦 崔思永 古宅(성북구 문화재자료 제37호), 상허 이태준 가옥 尙虛 李泰俊 家屋(성북구 민속자료 제11호), 만해 한용운 심우장 萬海 韓龍雲 尋牛莊(성북구 기념물 제7호) 등이 인근에 있어 하루 시간을 내 둘러볼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이종석 별장은 1960년부터 대림산업이 소유하다 1985년 덕수교회에서 매입해 목사 사택으로 사용해 왔으며 현재는 교회 수양관으로 쓴다.
대청에서 누마루를 본 모습. 대청과 누마루 사이는 현재 접이 문을 달았으나 원래는 들어열개였을 것으로 추측한다.
부잣집 사랑채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집은 크게 두 가지 특징을 지녔다. 첫 번째 별장으로 지어진 집이라 구조가 일반 살림집과 조금은 다른 모습이고 두 번째는 거부 별장답게 곳곳에서 섬세함이 묻어난다.먼저 집 구조를 보면 일반 집은 행랑채 사랑채 안채 등으로 구분되고 각 시설 간 위계가 있기 마련이나 이 집은 별장으로 지어졌기에 별당과 그것을 관리하는 행랑채로 구분되었을 뿐 부속건물이 없다. 행랑채는 경관을 최대한 살리고자 본채 전면이 아닌 별장 좌측 뒷산에 붙여 배치됐다.
사랑방 너머에 위치한 부엌으로 원래는 방이였으나 최근 수양관으로 개조하면서 바뀌었다.
지금은 문 앞에 바로 별장 앞마당이 펼쳐지지만 과거에는 행랑 마당을 거쳐 안마당으로 들어가도록 해 층위를 중요시 한 당대 주택 기본 개념을 살렸다. 높이가 제법인 앞 담이 별장의 무게감을 떨어뜨리지 않을까 싶으나 그럼에도 집 자체가 워낙 높은 곳에 위치해 별장 기능은 충분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일단 거부 별장답게 당당한 모습이다. 잘 다듬어진 장대석 기단 위에 우뚝 선 집은 들어서는 이에게 위압감을 줄 만큼 웅장하고, 특히 솜씨가 빼어난 장대석 기단과 누마루 아래 장주초석長柱礎石은 건축 시 얼마나 많은 공력을 들였는지 짐작게 한다.
방 안에 들인 벽장으로 활용 범위가 넓다.
본채는 전면 6칸 측면 4칸 규모다. 우측 누마루가 전면으로 한 칸 돌출됐고 후면은 좌측 두 칸이 뒤로 한 칸 나와 전체적으로 집은 ㄴ자와 ㄱ자를 이어놓은 형태가 됐다. 또 마치 부잣집 사랑채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데 이는 별장이 바깥주인의 휴식이나 손님 접대를 위한 공간이기에 일반 사랑채와 유사할 수밖에 없다. 맨 좌측에 부엌과 방이 있고 다음으로 방 두 칸, 대청 두 칸, 누마루 한 칸으로 구성됐다. 1고주 5량 집으로 굴도리집이고 겹처마다.
칸 반 규모의 사랑방. 개조와 함께 모든 곳에 창호를 새로 냈는데 격에 맞게 잘 골랐다.
육간대청과 견주어도 손색없는 누마루최근 수양관으로 고쳐 쓰면서 많은 개조가 있었다. 먼저 좌측 뒤에 있던 방은 부엌으로, 부엌은 화장실로, 앞쪽 방은 현관으로 바뀌었다. 하인방 아래 검은 벽돌을 십자가 문양으로 대체했으며 뒤쪽 쪽마루를 늘려 퇴칸으로 만들었다. 퇴칸이 생기면서 지붕 선이 맞지 않게 됐는데 이점만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집은 과거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집과 대청은 두 칸 깊이고 사랑방은 칸 반 규모다. 대청 옆 누마루는 대청보다 한 자(30㎝) 정도 높다. 대청과 사랑방 사이, 대청과 누마루 사이는 현재 불발기 창에 접이 문을 달았으나 원래는 이런 형식이 아니었을 것이다. 원래 불발기 창이었다면 문은 들어열개로 설치하는 게 일반적이다.
일반 집 육간대청과 견줘도 손색없는 누마루 내부. 전면 한 칸 측면 세 칸 규모인 이곳은 사면이 모두 창으로 돼 있어 전망을 감상하기에 아주 좋다.
누마루에서 몇 가지 구조적 특징이 보인다. 첫 번째, 추녀 부분이다.당시 여러 명문 세가에서 선자서까래를 썼으나 이종석 별장은 반 선자서까래다. 집의 격을 볼 때 조금은 아쉬운 부분이다. 이렇게 된 것은 부재의 한계 때문이다. 부실한 부재를 활용하다 보니 반 선자서까래가 된 것이 아닌가 한다. 다음으로 눈에 띄는 곳은 소로다 이종석 별장은 인방과 장혀 사이에 소로를 끼워 놓은 소로수장집이다. 보통 소로수장집에서 소로는 기둥과 기둥 사이에 놓는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기둥 양옆에 소로를 반쪽으로 만들어 끼워 놓아 마치 주두처럼 보이게 했다. 이렇게 반쪽으로 만들어 붙이는 소로를 건소로라 한다
배치도
대청에서 목구조 상 특이한 점은 대공이다. 대부분 사가에서 사용하는 대공은 사다리꼴 판대공 형식으로 대공이 수축 팽창 시 휘어지는 것을 막고자 판재로 이어 붙여 만든다. 그런데 이곳에 쓰인 대공은 동자대공에 가깝다. 형태는 판대공과 비슷하지만 부재가 한 개로 돼 있어 동자대공으로 보는 것이 맞다. 이런 동자대공은 곳간 등과 같은 부속건물에서 주로 쓰지 일반 살림집에서 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 누마루는 전면 한 칸 측면 세 칸 규모인데 전면 한 칸이 일반 집의 두 칸과 비슷할 정도로 크다. 일반 집 육간대청과 견주어도 손색없다. 또 대청과 면하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사면이 모두 창으로 돼 있어 주변 경관을 잘 바라보기에도 그만이다.
우측이 사랑채 좌측이 별장을 관리하는 행랑채이다. 경관을 최대한 살리고자 전면이 아닌 좌측 뒷산에 붙여 배치했다.
이곳은 관리가 아주 잘 됐다. 최근 대대적인 수리를 통해 용도에 맞는 변형이 이뤄져 원래 모습에서 달라진 부분이 있긴 하지만 집이 가졌던 풍미를 찾는 데는 어려움이 없다.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예전 집보다 더 격이 높아졌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특히 후원 화계花階는 원래 없었던 것을 새롭게 만든 것이라고 한다. 이 정도 집이라면 당연히 가졌어야 했을 수준의 조경 시설이다. 집을 고칠 때 이런 배려까지 한 것이 놀랍기만 하다. 단 하나 아쉬운 점이라면 뒤편 장독대다. 후대 살림집으로 이용하면서 장독대를 들였을 것이지만 애초 별장이었기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가지런히 놓인 장독대가 과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그리 나쁜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후대에 살림집으로 이용하면서 장독대를 들였다. 과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어쨌든 이 집을 고칠 때 교회에서 많은 정성을 들였다는 것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고재古材와 신재新材의 차이를 느낄 수 없을 만큼 옛날 나무도 일일이 겉을 벗겨내 신재처럼 보이게 했고 새로 드린 창호도 격에 어울리는 모습으로 갖췄다. 그뿐만 아니라 부속품인 손잡이 하나하나에도 깊은 정성을 들였다. 고택을 연구하는 사람 입장에서 이런 부분까지 세세하게 배려한 덕수교회에 감사드린다.
행랑채. 이곳을 포함해 최근 대대적인 보수 작업이 있었지만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다.
글쓴이 최성호1955년 8월에 나서, 연세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했습니다. 1982년에서 1998년까지 ㈜정림건축에 근무했으며, 1998년부터 산솔도시건축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현재 전주대학교 건축학과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한옥으로 다시 읽는 집 이야기》가 있습니다.
다른 고택들 더 보기
전원주택라이프 더 보기www.countryhome.co.kr
-
2020-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