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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주택 설계, 27평형 골목집
- HOUSE PLAN건축면적 39.96㎡(12.08평)연면적 88.89㎡(26.88평)최고높이 6.5m(가중평균 지표면 기준)공법 기초, 지하 - 철근콘크리트 매트 기초 지상 - 중목구조지붕재 컬러 강판외벽재 스타코 외단열 시스템창호재 72㎜ 알루미늄 3중창호내벽재 노출콘크리트, 백색 도장바닥재 강마루수전 등 욕실기기 아메리칸 스탠다드현관문 단열 강화도어가구 현장 제작설계 LOW CREATORs설계자 권재돈, 양인성 010-4789-820, 070-4130-3162www.lowcreators.comPLANNING침실 2개화장실 2개규모 지하 1층, 지상 2층 디자인 콘셉트 & 설계 계획도로에서 집까지 막힘없이 연결되는 또 하나의 길.일률적으로 조성하지 못하는 대지에서 건축하는 일은 쉽지 않다. 시간의 흐름에 의해 과거의 경계는 엉성해지고 모호해지기에, 그만큼 대지가 차지하는 면적은 줄어들기 일쑤다. 사람 중심의 건축에서 자동차 중심의 건축으로 변한만큼 골목에 내 집을 짓는 일은 도전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작은 스케일과 골목이 주는 운치는 많은 건축가에게 ‘한 번 해보자’라는 의욕을 불러일으킨다.좁은 길 끝에도 작지만 우리 가족만을 위한 충만한 집을 지을 수 있다. 지하 공간 1층 공간 2층 공간 공간구성좁은 골목 끝에 작은 대지가 있다.3인 가족으로 그리 큰 방이 필요하지 않다. 집에서 즐기는 시간이 많은 가족을 위해 작지만 다양한 공간을 느낄 수 있는 집을 제안한다.골목 끝에 있는 대지 특성을 받아들여 골목길을 집 안으로 끌어들인다. 현관 따라 길게 늘어진 가족실은 골목 특성을 그대로 끌어안는다. 좁고 길게 이어져 집 안 곳곳을 살필 수 있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자기들만의 놀이를 만들고, 어른들은 좋은 날 현관과 뒷문을 열어 골목 속의 또 다른 골목을 만든다.가족실에 서서 다음 길을 선택한다. 오르는 길을 선택하면 주방과 식당을, 내려가는 길을 선택하면 지하의 커다란 거실(가족실)을 만난다. 지하에 거실이 있으면, 가장 염려스러운 부분이 환기와 채광이다. 이를 위해 약 1평 규모의 드라이 에어리어Dry Area를 마련해 환기와 채광 문제를 해결한다. 드라이 에어리어에 대나무 다섯 그루를 심어 관조 정원을 통해 조용하지만, 깊이 있는 공간을 구성한다. 다시 1층으로 올라가 주방과 식당으로 향한다. 좁고 길게 뻗은 주방과 식당을 배치함으로써 발생한 자투리 공간은 가족과의 소통을 위한 작업대로 사용한다. 가족 구성원에 맞게 제작한 주방은 과하지 않고 ‘딱 이 정도’면 충분하다. 2층은 오로지 가족만을 위한 공간이다. 안방과 독립된 아이 방이 있으며 채광과 환기를 위한 창이 쾌적한 실내 환경을 만든다. 각 방은 골목(가족실)을 향해 창이 나 있어 집 안 어디에 있건 막힘없이 소통하는 온전한 가족만의 길이 완성된다.길은 막혀있을 때보다 열려있을 때 그 의미가 강해진다. 우리 도시에도 마을과의 소통과 함께 가족 간의 소통을 이을 수 있는 골목집이 더 많아지길 바라본다. 전원주택라이프 더 보기www.countryho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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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주택 설계, 27평형 골목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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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TECTURE DESIGN] 골목집
- 골목집 1층 공간 2층 공간 지하 공간 PLANNING 침실 2개 화장실 2개 규모 지하 1층, 지상 2층 HOUSE PLAN 건축면적 39.96㎡(12.08평) 연면적 88.89㎡(26.88평) 최고높이 6.5m(가중평균 지표면 기준) 공법 기초, 지하 - 철근콘크리트 매트 기초 지상 - 중목구조 지붕재 컬러 강판 외벽재 스타코 외단열 시스템 창호재 72㎜ 알루미늄 3중창호 내벽재 노출콘크리트, 백색 도장 바닥재 강마루 수전 등 욕실기기 아메리칸 스탠다드 현관문 단열 강화도어 가구 현장 제작 설계 LOW CREATORs 설계자 권재돈, 양인성 010-4789-820, 070-4130-3162 www.lowcreators.com 디자인 콘셉트 & 설계 계획 도로에서 집까지 막힘없이 연결되는 또 하나의 길. 일률적으로 조성하지 못하는 대지에서 건축하는 일은 쉽지 않다. 시간의 흐름에 의해 과거의 경계는 엉성해지고 모호해지기에, 그만큼 대지가 차지하는 면적은 줄어들기 일쑤다. 사람 중심의 건축에서 자동차 중심의 건축으로 변한만큼 골목에 내 집을 짓는 일은 도전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작은 스케일과 골목이 주는 운치는 많은 건축가에게 ‘한 번 해보자’라는 의욕을 불러일으킨다. 좁은 길 끝에도 작지만 우리 가족만을 위한 충만한 집을 지을 수 있다. 2층 평면도 1층 평면도 지하 평면도 공간구성 좁은 골목 끝에 작은 대지가 있다. 3인 가족으로 그리 큰 방이 필요하지 않다. 집에서 즐기는 시간이 많은 가족을 위해 작지만 다양한 공간을 느낄 수 있는 집을 제안한다. 골목 끝에 있는 대지 특성을 받아들여 골목길을 집 안으로 끌어들인다. 현관 따라 길게 늘어진 가족실은 골목 특성을 그대로 끌어안는다. 좁고 길게 이어져 집 안 곳곳을 살필 수 있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자기들만의 놀이를 만들고, 어른들은 좋은 날 현관과 뒷문을 열어 골목 속의 또 다른 골목을 만든다. 가족실에 서서 다음 길을 선택한다. 오르는 길을 선택하면 주방과 식당을, 내려가는 길을 선택하면 지하의 커다란 거실(가족실)을 만난다. 지하에 거실이 있으면, 가장 염려스러운 부분이 환기와 채광이다. 이를 위해 약 1평 규모의 드라이 에어리어Dry Area를 마련해 환기와 채광 문제를 해결한다. 드라이 에어리어에 대나무 다섯 그루를 심어 관조 정원을 통해 조용하지만, 깊이 있는 공간을 구성한다. 다시 1층으로 올라가 주방과 식당으로 향한다. 좁고 길게 뻗은 주방과 식당을 배치함으로써 발생한 자투리 공간은 가족과의 소통을 위한 작업대로 사용한다. 가족 구성원에 맞게 제작한 주방은 과하지 않고 ‘딱 이 정도’면 충분하다. 2층은 오로지 가족만을 위한 공간이다. 안방과 독립된 아이 방이 있으며 채광과 환기를 위한 창이 쾌적한 실내 환경을 만든다. 각 방은 골목(가족실)을 향해 창이 나 있어 집 안 어디에 있건 막힘없이 소통하는 온전한 가족만의 길이 완성된다. 길은 막혀있을 때보다 열려있을 때 그 의미가 강해진다. 우리 도시에도 마을과의 소통과 함께 가족 간의 소통을 이을 수 있는 골목집이 더 많아지길 바라본다. 단면도 lowcreator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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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TECTURE DESIGN] 골목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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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이 높고 서쪽이 낮은 곳이 가장 좋다
- 풍수지리 - 좋은 집터 고르기 동쪽이 높고 서쪽이 낮은 곳이 가장 좋다 선조의 묘자리가 주는 기(氣)가 후손을 잘되게 한 것인지, 집터가 좋아 훌륭한 후손을 낳았는지 그것을 어느 한쪽으로만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집터는 현재 그 집에 사는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고 묘지는 자손 대대로 미친다고 일컬어진다. 집터로 어느 곳이 좋은지 풍수지리적으로 알아본다. 유교문화권인 우리나라와 일본을 비교해보면 일본은 집터(양택)에 더 깊은 관심을 기울이는데 우리나라는 묘터(음택)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우리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임금을 만든 집에 대한 첫 공식기록은 삼국유사에 나타나 있다. 신라 4대왕인 탈해왕은 어렸을 때 경주 토함산에 올라가 7일동안 머물면서 초승달 형국의 집터를 발견하고 꾀를 써서 이 집을 차지하게 되는데 결국 이 집 때문에 그는 후일 왕이 되었다. 고려 태조 왕건도 그 출생이 풍수지리의 양택에서 연유되며 조선 태조 이성계의 생가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이성계는 고려 충숙왕 4년(서기 1317년) 10월 11일 지금의 함남 영흥에서 태어났는데 이성계가 왕이 된 것은 이성계의 태(胎)를 부근의 정자리 연못에 묻었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일찍이 이곳을 지나던 무학대사는 왕기가 일어날 수 있는 지역임을 감지하고 이성계의 아버지 이자춘에게 아들이 태어날 경우 태를 반드시 연못에 깊이 묻으라고 일렀다는 것이다. 이후 왕이 태어날 수 있는 집은 풍수지리적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는 생각이 조선시대때 신앙처럼 번져갔다. 따라서 풍수지리에 대한 연구도 활발할 수밖에 없었다. 양택에 대한 풍수지리도 음택과 다를 바 없다. 음택이 한 사람을 위한 자리임에 비해 양택은 여러 사람과 함께 기거한다는 점에서 범위가 더 넓다고 할 수 있으나 고인이나 후손에 미치지 않고 오직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에게만 미친다. 양택론의 원리 양택론에는 전해오는 몇 가지 원리들이 있다. 먼저 대지의 모양은 원만하고 방정해야 한다. 여기에다 지질(地質)은 신선도가 뛰어나야 하고 수질은 맑고 담백한 것을 최고로 친다. 울타리는 가옥과 음양이 조화되고 통풍이 가능해야 한다. 특히 가옥의 외벽과 울타리 사이에는 바람이 감돌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또 담이 집에 비해 높으면 음상(陰相)이요 낮으면 양상(陽相)인데 양택에서는 양상을 길(吉)로 본다. 도선유기에 의하면 다산(多山)은 양이고 고루(高樓)도 양이라 하여 우리나라는 다산, 즉 산이 많으므로 고루, 즉 높은 다락이 있는 집을 짓는다면 국운이 쇠멸할 것이라 했다. 따라서 평옥만 짓고 고옥(高屋)을 금했으며 이 때문에 조선조 말기까지 우리나라에는 고층건물은 고사하고 2층집도 없었던 것이다. 참고로 조선조 학자 가운데 집터에 대한 풍수론에 관심을 기울인 대표적인 사람은 홍만선(洪萬選)으로 산림경제 목거조에 나타난 집터에 관한 내용을 일부 옮겨본다. 집터는 동쪽이 높고 서쪽이 낮은 데가 가장 좋고 그 반대이면 부자는 못되나 부귀를 누린다. 앞이 높고 뒤가 낮으면 집안이 망하고 뒤가 높고 앞이 낮으면 집짐승이 늘어난다. 또 사면이 높고 가운데가 낮으면 비록 부자일지라도 점점 가난해지므로 평평한 터가 가장 좋다. 집터가 남북이 길고 동서가 좁으면 처음이 나쁘나 뒤에 잘된다. 집의 동쪽에서 흐르는 물이 강과 바다로 들어가면 좋으나 동쪽에 큰 길이 있으면 가난하고 북쪽에 큰길을 두면 나쁘며 남쪽에 큰길이 있으면 영화를 누린다. 사람의 주거지는 땅이 윤기가 있고 기름지며 밝은 곳이 좋고 건조해 윤택하지 않은 곳은 나쁘다. 탑이나 무덤터, 절이나 사당터, 대장간이나 군영터 그리고 전쟁터는 살 곳이 못 되고 큰 성문 입구와 옥문을 마주보는 곳은 역시 좋지 않으며 네거리 입구, 산등성이가 곧바로 흘러내린 곳, 흐르는 물과 맞닿은 곳, 여러 물이 모여서 나가는 곳, 초목이 나지 않는 곳은 나쁘다. 옛길, 영단(靈壇)과 신사앞, 불당 뒤, 논자리, 불을 땠던 곳은 모두 불길하다. 좋은 집터 찾기 이제 풍수사상의 양택론에 전해오는 좋은 집터의 선택요령에 대해서 알아보자. 좋은 집터는 첫째, 방향이 남향 또는 동향으로 햇볕이 잘들고 따뜻해야 한다. 주거지의 땅은 지질이 좋고 윤기가 있어야 하며 햇볕이 잘드는 양명(陽明)한 곳을 최고로 치는데 우리나라는 집의 방향이 남쪽이나 동남향을 향해야 겨울에는 북서풍이, 여름에는 동남풍이 불어오기 때문에 따뜻하고 그 반대방향이면 겨울에 춥고 여름에 오히려 덥다. 그러므로 밝고 따뜻한 집을 좋은 집으로 본다. 모든 생물은 햇볕을 필요로 하는데 같은 햇볕이라도 기가 일어나는 아침 햇볕을 받아야 좋고 저녁 햇볕은 오히려 생기를 잃게 한다. 둘째, 대지는 평평하고 안정감이 있어야 한다. 안정감이란 대지의 형태뿐 아니라 건물자체에도 적용된다. 경사가 심해 불안한 형태의 가옥은 어딘지 안정감이 없고 대지의 모양도 한쪽이 불거지거나 들어간 곳보다는 모양이 원만하고 방정한 곳이 좋다. 셋째, 북서쪽이 높고 남동쪽이 경사진 곳으로 산을 등지고 낮은 곳을 향하는 것이 좋다. 즉,전형적인 배산임수로 뒤에는 산, 남쪽에는 물이나 길(도로)이 있어야 하며 집앞의 전경이 좋아야 한다. 넷째, 교통이 편리한 곳이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물건이라도 그 효용가치가 있어야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있듯이 교통이 좋아야 손님도 오고 복도 들어온다. 대지의 사면중에 최소한 한 면만은 도로에 접해야 하는데 그보다 더 좋은 것은 도로의 교차점으로 코너가 되는 대지이다. 실제로 도로가 없는 맹지는 건축법상 건축도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 코너땅과 그 옆의 땅과는 가격차가 매우 크게 나타나고 있는데 상업지역일수록 그 의미는 크다. 나쁜집터란 그렇다면 나쁜 집터는 어떤 것일까. 첫째, 막다른 골목집은 좋지 않다. 둘째, 생토(生土)가 아닌 매립지도 좋지 않다. 풍수지리 이론은 땅의 기는 생토에만 있는 것으로 간주해 매립토 위의 주택은 기를 받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셋째, 집안에 지붕보다 높은 나무가 있거나 사랑채가 본채를 압도하면 집안의 거주자에게 좋지 않다. 넷째, 망해서 나간 집은 좋지 않다. 다섯째, 연못이 마당에 있어도 좋지 않다. 여섯째, 기존의 두 집을 담을 터서 한 집으로 사용해도 좋지 않다. 일곱째, 형과 동생이 이웃에 나란히 집을 가지고 살면 좋지 않다. 이는 실제로 형제가 이웃에 살면 형이나 동생은 잘되는 쪽에 의지하게 되며 동서간은 시샘을 일으키게 돼 화목치 못하기 때문이다. 여덟째, 대문에서 안방이나 부엌문이 보이면 좋지 않다. 외인이나 내방객의 눈에 안방이 들여다보이면 견물생심 도난우려가 있고 부엌이 바로 보이면 딸이나 안주인이 외부와 연결돼 음탕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아홉째, 벽에 금이 가거나 물이 스며들면 좋지 않다. 기초공사의 중요성과 붕괴 우려를 나타낸 말이다. 끝으로 정원수는 어떤 것이 좋은지 알아보자. 집에 정원수를 심는 것은 집을 잘 가꾸고자 하는 생활인 동시에 미래지향의 마음가짐이며 인간의 본성에 따른 자연에로의 마음이다. 인간이 태어나서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도의 근본이고 역의 대원리다. 즉, 인간에게 길흉이 있듯이 식수 또한 길흉이 있다고 본다. 예컨대 집을 중심으로 해 동쪽에는 복숭아나무, 버드나무를 서쪽에는 산뽕나무, 느릅나무를 남쪽에는 매화나무, 대추나무를 북쪽에는 살구나무, 은행나무를 심으면 동의 좌청룡, 서의 우백호, 남의 주작, 북의 현무를 대신하는 길목(吉木)으로 집안의 기운이 번성하고 부귀하게 된다. ■ 글·청운 김영운(풍수지리 연구가, 02-845-5645) 양.택.의.삼.요.소 대문의 위치가 가장 중요 똑같은 남향집이면서도 대문이 남동쪽에 있는 것을 생기택(生氣宅)이라 한다. 집을 사거나 집을 새로 지을 때 반드시 그 길흉을 보아야 할 3대 중요 포인트를 양택삼요결(陽宅要決)이라 한다. 이 양택삼요결은 중국의 ‘지리오결’ 저자인 조구봉이 주장한 이론으로 대문, 본채, 부엌의 위치를 매우 중요시해 이 셋을 각각 어떻게 배치하는 것이 바람직한가를 따지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모든 주택은 동사택(東四宅), 서사택(西四宅) 즉 8방위에서 동쪽 4방위와 서쪽 4방위 둘로 나누고 여기에 대문, 안방, 부엌 등의 배치방식을 따지는 내용으로 양택풍수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양택삼요결에서 제일 중요시하는 것은 대문의 위치다. 이는 대문이 집안의 공기를 대량으로 환기시켜 줄뿐만 아니라 사람이 드나드는데 편안한가를 따지기 때문이다. 예컨대 똑같은 남향집이면서도 대문이 남동쪽에 있는 것을 생기택(生氣宅)이라 한다. 이 집은 부부 해로하고 영예로운 일이 많으며 대대로 영화를 누린다. 또 식구마다 건강하고 부녀자도 현숙하며 고루 귀하게 돼 제일 길한 집으로 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똑같은 집이라도 대문을 북동쪽으로 내면 오귀택(五鬼宅)이 돼 관재구설, 도둑, 화재 등으로 집안이 망하며 부자간이나 형제간에 불화, 아내와는 상극하고 아들이 다치거나 부모에게 불효하는 등 많은 고통을 당한다고 해석하고 있다. 이러한 동서 4택으로 구분하는 기본원리는 동양철학의 음양의 상배(相配)를 기본원리로 한 것으로서 주역의 육효(六爻)를 응용한 구궁도(九宮圖)를 따른다. 참고로 1950년생의 경우 100에서 출생연도를 뺀 후 9로 나누고 나면 나머지가 구궁배치도의 숫자가 돼 (100-50=50, 50÷9=5. …5) 5가 되므로 1,6,3,8,2,7은 동사택이 되고 5,10,4,9 숫자는 서사택이 되므로 자기자신(50년생)과 집과 대문의 방향에 따른 좌향은 서사택이 된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둘째로 중요시되는 것이 안방, 즉 잠자는 공간의 위치다. 이는 ‘자는 방’이 그 집터의 생기를 가장 많이 받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기(地氣)는 좋은 영향은 물론 나쁜 영향도 함께 줘서 가정주부나 노인, 어린아이와 같이 몸의 저항력이 약한 사람은 집 안방으로 수맥이 지나갈 경우 수파(水波)가 미쳐 좋지 않은 현상이 발생한다. 혈압이 높은 사람은 중풍에 걸리기 쉽고 신경쇠약증이 있는 사람은 머리가 아프다. 또 불면증에 시달리고 팔다리가 쑤시고 정서불안 등을 나타내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양택의 3요소 중 부엌은 먹을 것을 만드는 곳으로 동쪽과 동남쪽에 배치하는 것이 좋다. 출생년도에 따른 동서사택방향 조견표 본명성 여자 1 9 8 7 6 5 4 3 2 남자 5 6 7 8 9 1 2 3 4 해당 년도 서기 출생 년도 1932 1931 1930 1929 1928 1927 1926 1925 1924 1941 1940 1939 1938 1937 1936 1935 1934 1933 1950 1949 1948 1947 1946 1945 1944 1943 1942 1959 1958 1957 1956 1955 1954 1953 1952 1951 1968 1967 1966 1965 1964 1963 1962 1961 1960 1977 1976 1975 1974 1973 1972 1971 1970 1969 (동사택은 북, 동, 동남, 남 방향으로 위 조견표에서 3, 8, 2, 7, 1, 6이고 서사택은 북동, 남서, 서, 북서 방향으로 위 조견표에서 5, 10, 4, 9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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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하는 청춘, 아름다운 황혼을 맞다 -이동표 화백
- 계속되는 통화 연결음. 수화기 너머로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는다. 하릴없이 수화기만 바라보다 사뭇 비장하게, 일정에 쫓기는 다른 취재진들을 보낸다. 홀로 떨궈진 곳은 경기도 양평의 한 휴게소 앞. 약도라도 받아 놓을 것을, 이젠 어쩐다, 고민할 새도 없이 바람 한 줄기가 가슴팍을 후빈다. 버릇처럼 옷깃을 여미다가 코를 큼큼거린다. 얼마 전까지 칼날같이 시리던 바람이 한껏 봄을 품었다. 그 바람에 취해 무작정 걷는다. 이동표 화백. 분단된 조국의 아픔을 고스란히 받아 안은 사람. 그리고 그 아픔을 작품 속에 녹여내 자신의 세계를 구축한 사람. 그의 집을 찾아낼 수 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이 생긴다. 그에게 다가가는 길 얼마를 걸었을까. 발 아래로 그림처럼 굴곡진 길이 흐르고, 머리 위로 티 하나 없이 뚜렷한, 푸른 하늘이 펼쳐진다. 경기도 양평군 복포리다. 평온한 지세(地勢)와 풍광으로 이미 정평 난 곳인 듯, 개별 전원주택부터 단지까지 들어서 있다. 그냥 보기만 하면 척하니 알아볼 것 같던 처음의 자신감이 많은 집들 사이에서 사라져 간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동네사람에게 길을 물으니 이리이리 가라고 일러준다. 어떻게 생긴 집이냐 물으니 “어떻게 생기나 마나 거기서 물으면 대번에 알려줄 거요” 한다. 이동표 화백의 집은 전원주택 단지를 비껴 마을 안쪽으로 좀 더 들어가서야 모습을 드러냈다. 독일풍의 경사지붕과 조적벽을 가진 그의 집 옆에는 이웃집의 우사가 면해 있어 소가 개처럼 사람을 맞는다. 대문 대신 몇 개의 계단으로 입구임을 구별하고, 딱딱한 담장 대신 차폐수를 심어 경계를 지었다. 천장은 한지로, 벽은 벽돌로 마감한 거실에는 벽난로에서 태우는 나무향이 그윽하게 배어 있다. 그 창가에 앉아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이야기는 시작됐다. 칠순을 넘긴 나이가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건강한 몸에 활기 넘치는 목소리의 그가 입을 연다. 유토피아를 찾아서 “어두운 세파 속에서 자라난 풍란 같이, 말라빠진 몸둥이에서라도 고고한 향냄새 솔솔 날렸으면 얼마나 좋을까, 욕심도 부려본다. 다 털고 일어나 나만의 세상으로 가자. 거들먹거리는 저 살 피둥피둥 찐 사람들, 꼴 보기 싫어 서울 골목집 팔아 치우고 유토피아 찾아간 곳이 경기도 고양군 고양리다. 고향 가는 길목이어서 통일되면 남보다 더 빨리 가고파서, 그리고 외톨박이들 신세타령하며 살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이동표 화백이 십수 년 전 서울의 ‘골목집’을 팔아치우고 전원 속으로 가며 던진 말이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그의 근간을 이루는 정서다. 이러한 그리움들은 다시 흙에 대한 그리움으로 화하고, 흙을 찾아 나선 길 끝에 고양리가 있었다. 그 곳에서 평생을 살리라 결심하고 터를 잡았으나, 개발의 바람을 피할 수 없어 다시 터를 잡은 곳이 이 곳 복포리다. 이제 그는 이곳에서 마침표를 찍으려 한다. 태어난 지 돌도 못되어서 어머니를 여의고, 한국전쟁으로 가족과 생이별을 했다. 집도 절도 연고도 없이 오로지 살아남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버텨오던 젊은 시절. 그나마 그림이 있어 그는 ‘외톨박이 노인의 한풀이 굿’을 벌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늘 아내가 있었다. 그는 현재 더 바랄 것이 없다고 한다. “산 좋고 물 좋은 이곳에서 편안히 훨훨 날개 펴 날으라고, 좋은 친구, 많은 후배들 보내 주시니 지금은 외톨박이가 아닌 어디에서나 대환영이다. 어머니 품과 같은 넓고 따스한 양평땅에서 사랑 나누어가며 깨끗하게 살다가 황혼의 저쪽 하늘 붉게 물들이리라.” 그들만의 세상 7~8년 전, 그가 처음 이곳 복포리에 왔을 때만 해도 마을은 ‘시골’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마을 앞 성황당이며, 멀리 보이는 산 능선들이며, 흐르는 강이며, 나무들이며 할 것 없이 모든 것이 다른 곳과는 ‘상대가 안 될’ 정도로 좋았다. 당장 이주를 결심하고, 직접 집을 설계했다. 지하는 갤러리로, 1층은 거실과 침실, 식당 등의 필요실로, 2층은 화실로 꾸몄다. 각각의 재료들도 직접 선택했다. 특히 새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그가 원주 철도청에서 직접 구입한 침목은 외부 계단과 덱 등에 적절히 사용돼 집의 분위기를 완성하고 있다. 특히 이 집을 더욱 멋스럽게 만드는 것은 집 자체보다는 곳곳에 포진한 그의 작품과 수집품들이다. 어느 한 장소를 잡아 떡하니 전시를 하는 것이 아니라 계단참이며, 창틀이며, 시선가는 곳곳에 자연스럽게 놓아두었다. 이들은 집안 구석구석에 스며 있는 그와 아내의 애착이고, 삶이다. “흙이 좋아 흙냄새 나는 시골을 택했다. 어차피 흙으로 돌아가는 길목에 선 우리가 아닌가. 그래서인지 이곳 생활이 싫지 않다. 아침 일찍 일어나 창문을 열면 어느새 일어났는지 산새들이 나를 반기듯 지저귀며 울어댄다. 그야말로 상쾌한 아침이다. 저 들판에는 아침안개가 보기 좋게 끼어 있어 더욱 상쾌하다.” 고양리에서 살았을 적에는 그야말로 흙이, 자연이 너무 좋고 신기해서 부지런히 움직였다. 잔디를 손질하고, 닭도 먹이고, 산책도 나가면서. 이들 부부는 그 때를 가장 행복했던 시기라 회고한다. 그러나 몸이 세월의 녹을 먹게 되면서 매일 나가던 산책도 줄이고, 닭을 먹이는 것도 그만 두었다. 그래도 변하지 않는 것은 그의 그림 작업과 아내의 배려. “조용하면 잘 되는 거고, 잘 안되면 막 찢어지는 소리가 나고 그래요.” 아내는 청력이 약한데도 불구하고 화실 쪽에서 나는 소리에는 민감하다. 이동표 화백이 그림 작업을 할 때는 일절 간섭을 하지 않지만, 무언가 조짐이 이상하면 소주 한 병 슬그머니 밀어 넣어준다. 이런 아내 덕에 이동표 화백은 그 외로운 길을 걸어올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이제 외톨박이가 아니다. 평생을 몸부림치며 함께해 온 그림이 있고, 늘 곁에서 지켜보고, 성원하는 아내가 있다. 또 지금은 장성해서 해외로 도시로 분가한 자식들이 때가 되면 찾아오고, 제자나 후배들이 찾아오기도 한다. 게다가 그의 세계를 인정해주는 사람도 여럿 생기고, 근방의 지인들이 마실 와 함께 소주잔을 기울이기도 하니 이제는 남부러울 것이 없다. 70여 년을 치열하게 살아온 그에게 한풀이 굿의 끝판으로 다가온 어울림의 자리. 그의 바람대로 이곳 복포리에서 즐겁게 노닐다가 마지막 에너지를 불태우고 스러진다면 서쪽 하늘 물들이는 황혼처럼 모자람 없이 아름다우리라. 田 ■ 글· 사진 이민선 기자 ■ 프로필 이동표. 1933년 황해도 해주 벽성 출생. 해주미술학교 회화과에서 수학하다 1·4후퇴 때 피난민과 함께 혈혈단신으로 남하했다. 그 때 나이 열아홉. 살아남아야 한다는 의지 하나로 출판 일러스트레이션, 신문 삽화, 소설 컷, 포스터 등 생활에 보탬이 되는 일이면 가리지 않고 다 했다. 나이 40이 넘어 도불, 파리국립미술학교에서 수학하고, 1982년 신세계미술관에서의 개인전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활발한 활동을 해왔다. 주요 작품으로는 탈의 원초적인 색채와 탈춤의 활동적인 춤사위가 어우러져 신명을 자아내는 ‘탈춤’시리즈, 축복과 행복의 설렘이 피어오르는 ‘사랑’시리즈, ‘어머니 초혼전 그 이후(모자상)’ 등이 있다. 주요 전시회로는 ‘한국현대미술 100인 초대전(전경련개관특설, 1986)’, ‘어머니 초혼 고양리전(임진강변에서 고양리까지, 1994)’, ‘대한민국 원로작가 초대전(서울시립미술관, 1997)’, ‘한국미술 '99, 인간·자연·사물(국립현대미술관. 1999)’, ‘우리시대 삶과 해학전(세종문회회관, 2003)’ 등이 있다. 이 중 ‘어머니 초혼 고양리전’은 80년대 이후부터 ‘어머니’라는 주제로 일관된 작업을 해오던 그의 예술세계가 정점을 이룬 것으로 평가된다. 이런 점이 인정되어 2001년 경기도지사 문화예술상과 2003년 제8회 가톨릭미술상 회화부문 본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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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하는 청춘, 아름다운 황혼을 맞다 -이동표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