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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은 거뜬, 핀란드 현지 기술자가 지은 건강한 만리포 통나무주택
- 20세기에 들어서 주거문화는 큰 발전을 해왔다. 하지만 콘크리트와 페인트는 두통, 천식, 피부염 등 각종 유해물질을 배출해 이른바 새집증후군을 유발하기도 한다. 편리함은 얻었지만 건강에 해로운 각종 화학물질의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되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편리함을 포기하고 보다 친환경적인 건축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특히, 단독주택을 지을 때 건축주가 목구조, 황토 등 친환경 주택을 선택하는 비율이 높아졌다. 태안 만리포에 위치한 통나무주택은 친환경 주택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에겐 건강한 주택으로 손꼽히는 집이다. 더욱이 눈길을 사로잡는 건 국내에선 유일하게 핀란드 현지인 기술자들이 직접 지은 핀란드 주택이라는 점이다. 글 사진 백홍기※ 기사 하단에 이 주택과 관련된 영상을 링크시켰습니다. 보다 자세한 사항이 알고 싶으시면 영상을 클릭해 주세요. 건축정보위치 충남 태안군 소원면(만리포)건축형태 통나무주택대지면적 859.50㎡(260평)건축면적 건물 115.70㎡(35평) 덱 99.17㎡(30평)지붕재 홍송내·외장재 홍송 통나무 목재난방형태 전기보일러시공 핀란드 현지 시공 업자(문의 helen.choi@fibox.co.kr) 건축가 Vesa Jetsonen 목조주택은 크게 경량목구조, 기둥·보(중량)목구조, 통나무구조, 전통 한옥 목구조로 나뉜다. 이 가운데 통나무주택은 목재의 성질을 최대한 살린 게 가장 큰 장점이다. 일반적으로 목재의 장점을 들라면 내진성이 뛰어난 것과 습도조절, 높은 단열성능을 말한다. 하지만 목조주택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보다도 사람에게 유익하다는 점이다.나무마다 차이를 보이지만 피톤치드를 방출해 인간의 면역력을 높여준다. 심리적으로나 생리적으로 안정적인 주거 환경을 제공하는 것 또한 나무의 큰 장점이라 할 수 있다. 벽체 틈새는 바늘조차 들어갈 틈 없이 밀착이 잘 돼 방수와 단열성능이 뛰어나다. 자연과 어울리는 주택꽃물결이 한차례 지나간 5월 만리포 해안에 위치한 통나무주택을 찾았다. 백사장을 따라 해안 도로를 달리다 보면 왼편으로 낮은 구릉산 중턱에 위치한 집이 보인다. 아래서 바라보니 넓은 덱 너머로 지붕만이 살짝 보인다. 앞뒤로 산과 바다가 집을 둘러싸 외부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가려준다. 집은 나무 계단을 따라 덱 하부를 통과해야 온전히 보인다. 산비탈을 깍지 않고 자연 형태로 놔두고 덱을 마당처럼 넓게 꾸몄다. 덱은 10여 명이 함께 어울려도 넉넉해 보인다. 집은 자연과 함께 어우러져 힐링 캠프를 연상케 한다. 아담한 주방은 식탁과 덱으로 이어진 동선으로 완성해 외부 활동과 식자재를 옮기기에 수월하다. 짙은 갈색의 통나무집은 핀란드 스타일이지만, 국내에 지어진 여타 핀란드 주택과는 다른 느낌이다. 현지인 건축 전문가로 꾸려진 기술자들이 직접 지었기 때문이다. 이 집을 계획한 건축주는 17년 전 사업을 위해 한국으로 건너온 핀란드인이다. 그가 직접 북 핀란드의 ‘라플란드’ 지역의 목재를 들여오고, 현지인 건축가를 초빙한 것이다. 라플란드는 ‘산타클로스 마을’로 유명하다. 이름에 걸맞게 풍부한 침엽수림을 자랑하며, 오로라를 목격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다. 통나무 주택은 내부 마감이 필요 없다는 게 장점이다. 또한, 나무 향이 그득한 방은 휴양림에서 휴식을 즐기는 듯한 느낌을 준다. / 그윽한 나무향은 화장실조차 상쾌한 공간으로 만든다. 핀란드는 캐나다에 이어 두 번째 목재 수출국답게 목재의 질도 높고 가공 기술도 뛰어나다. 그렇게 가공된 목재로 지어진 이 집은 2003년에 준공됐지만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좋다. 족히 100년은 충분히 넘기고도 남을만하다. 핀란드의 향수를 담아 지은 덕에 건축주는 집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그래서 본국으로 귀국을 앞두고 있는 건축주는 가장 기억에 남을 추억의 공간이라고 전한다. 주방은 조리기구, 싱크대, 수납공간, 세탁기의 높이를 맞춰 조리 공간을 확보하고, 불필요한 공간을 최소화한 디자인이 돋보인다. / 빛을 분산하고 따뜻한 색감을 반사해 식당이 아늑해 보인다. 거실 창을 통해 만리포 해안이 보인다. 계단실. 디딤판과 난간 모두 홍송 원목을 사용했다. / 은은한 소나무 향이 가득한 사우나실, 입구에 넓은 샤워부스를 두 개 두었다 자연과 건강을 담아지붕재부터 벽체, 덱까지 소나무를 사용한 집은 무게감 있어 보인다. 반면 집 안은 실내를 감도는 나무 향과 목재 특유의 질감과 색감으로 편안하고 아늑하다. 현관에서 시작된 동선은 침실과 화장실, 사우나, 거실, 주방으로 이어진다. 덱에서의 활동성을 고려해 주방과 연결된 창은 가벼운 여닫이창으로 계획했다. 정면에서 보면 입구가 두 개인 것처럼 보인다. 2층 가족실과 수면실. / 2층에 마련한 사무공간(방). 방은 1층에 2개가 있고, 2층은 사무실로 쓰이는 방 1개와 가족실, 수면실이 있다. 2층은 천장 마룻대를 기준으로 한쪽에 가리개를 설치해 임시 창고로 이용한다. 집은 외형뿐만 아니라 창호, 손잡이, 주방, 화장실 등 핀란드 건축 양식으로 완성해 그 나라의 주택 문화를 고스란히 담아냈다. 국립공원인 만리포 해안이 한눈에 들어온다. 창은 밀폐성이 뛰어나 가벼우면서도 단열성능이 좋다. 한국과 핀란드 주거문화에서 가장 큰 차이점을 들라면 사우나 시설이다. 이 집의 화룡정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핀란드에서 시작된 사우나는 약 2000년을 이어온 핀란드의 전통문화다. 핀란드의 사우나 방식은 몸을 데운 후 실외 호수나 바다 등 차가운 물에 몸을 담근 뒤에 다시 따뜻한 실내로 들어와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그렇게 자연을 벗 삼아 즐거운 밤을 보낸다. 사우나는 단순히 땀을 흘리며 피로를 푸는 공간만이 아니다. 사랑방이 한겨울 담소를 나누던 공간으로 이용된 우리의 옛 모습처럼, 사우나는 친근함을 나누는 중요한 사교 공간의 역할도 한다. 한겨울 땀 흘리며 차가운 맥주를 나눠 마시며 소소한 일상을 주고받는 자리라면 누구라도 거절하기 힘들 것이다. 이러한 즐거움이 이 집에 녹아있다.또한, 단열이 뛰어난 덕에 사우나 실의 더운 열기뿐만 아니라 한여름 뜨거운 기운과 겨울철 냉기마저 차단해 늘 쾌적한 실내를 유지한다. 외부와 연결되는 통로는 덱을 통과해야 하는 특이한 구조다. 주변에 주택이 없어 별장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며, 대지가 높아 자연적으로 사생활까지 보호된다. 화려한 생활을 바라고 전원생활을 계획하는 사람은 없다. 자연을 벗 삼고, 소박함에서 멋을 찾으며, 일상에서 건강을 지키려는 생활이 대다수 사람들이 추구하는 전원의 삶이다. 부드러우면서도 강하고, 무르면서도 단단하며, 정적이면서도 동적인 나무는 그 존재만으로도 인간에게 위안을 준다. 굳이 건강이라는 목적을 두지 않아도 나무로부터 받는 너그러운 위안만으로도 그 가치는 소중하다. 자연 속에서, 흙 위에 단단히 올라선 나무, 그리고 그 안에 거주하는 삶은 콘크리트와 플라스틱으로 방어벽을 친 도시의 삶보다는 더 넉넉하고 평온하진 않을는지. 추가 [목조, 통나무주택] 100년은 거뜬, 핀란드 현지 기술자가 지은 건강한 주택 전원주택라이프 더 보기www.countryho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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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은 거뜬, 핀란드 현지 기술자가 지은 건강한 만리포 통나무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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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전원주택] 외국인을 안아준 전원주택
- 몇 년 전, 업무 차 충남 태안에 간 일이 있다. 초행길, 서산까지는 도로 표시판이 안내하는 길을 따라 갈 수가 있었지만 문제는 서산을 벗어나면서 부터였다. 차를 세우고 도로 지도 책자를 통해 목적지를 확인하고 책을 덮는 순간 뇌리에 남아 있던 기억의 한 장소가 되살아 났다. ‘가로림만.’ 천리포, 만리포를 따라 해안을 이룬 선이 가는 반도로 변해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육지와 함께 만을 이룬 곳. 마치 외국 지형 이름처럼 들리는 이곳은 예전부터 조력 발전소나 대규모 산업항 후보지로 여러 번 언론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만灣이다. 그런데 지도 속에 펼쳐진, 가로림만이 위치한 태안반도 주변의 지형이 왠지 낯설지가 않다. 그래, 어디선가 분명 본 기억이 있다. 내 기억 어딘가에서도 기다란 태안반도 끝자락에 ‘석포’라는 어촌이 있음을 반복해 외치고 있었다. 석포라…. 아른 거리는 기억의 끈을 붙잡기 시작했다. 어느 해인가, 해외 업무 부서에서 근무했던 나는 사장의 지시로 미국 출장길에 올랐다. 업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미국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친구를 만날 요량으로 LA로 향했다. 학기말 고사라 눈코 뜰 새 없었던 친구를 대신해 준 것은 대학도서관. 지역이 지역인지라 그곳에는 한국 간행물도 적지 않아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이것저것 뒤적이다 우리나라 관련 영문도서에까지 손이 가기 시작했다. 하버드대 사회학과 브란트 교수가 쓴 ‘Korean Village[한국의 마을]’라는 책이 눈길을 끈다. 1960년대 우리나라 서해안 한 어촌에 2년간 기거하면서 촌락 사회의 여러 부문을 조사하고 검토해 만든 일종의 리포트로, 나는 내용의 자세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촌민들의 연령이나 직업, 풍습, 생산품, 수입 등의 자세한 해설은 물론이고 마을에서 일어나는 여러 재미있는 사소한 일상사까지도 자세히 기술해 놓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걸핏하면 부부싸움질로 동네를 시끄럽게 하는 집안을 주위 사람들이 ‘Ssaum Gongjang(싸움공장)’이라고 부른다는 대목은 아직도 내 머리에 명료하게 남아 있다. 능숙하지 못한 영어로 그 책을 더듬더듬 읽어 나갔다. 한국의 옹색한 시골구석에 미국 최고 명문대학의 교수가 찾아와 가난에 시달리는 촌민들과 같이 지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이 책은 나에게 매우 흥미로웠다. 우리나라에 돌아가면 꼭 한번 그곳을 찾아가보리라 다짐하곤 어촌의 위치를 밝힌 지도를 머리에 새겨 놓고 책을 닫았다. 당시 브란트 교수가 머물렀던, 옹색하기 그지없던 어촌이 바로 ‘석포’였다. 한국에 돌아온 나는 집에 있는 지도책을 뒤지기 시작했다. 당시 책에 언급된 비슷한 지역은 찾았지만 아무리 훑어도 ‘석포’라는 지명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석포가 있어야 할 자리에 ‘의항’이라는 이름이 버젓이 올라와 있었다. 확인해 보니 석포는 가명이었다. 오래된 그 시절 부족했던 내 영어실력을 탓할 수밖에. 하여간 이후 나는 몇 번이고 석포, 아니 의항에 가보리라 단단히 벼르고 별렀지만 먹고 사는 문제에 쫓겨 끝끝내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세월이 흐르고 굳게 벼르던 마음도 점점 약해졌다. 하버드대 교수가 지냈다던 태안반도의 한 마을은 내 기억 속에서 그렇게 잊혀져만 갔다. 그랬던 것이 태안 출장을 계기로 나의 감각 안에서 불쑥 다시 튀어 올라온 것이다. 관심과 흥미가 불끈 솟구친다. 이번에도 놓치면 이런 기회가 다시 없을 듯 싶어 서둘러 일을 끝내고 기억속의 어촌을 찾아 나섰다. 바다가 양쪽에 보이는 반도의 좁은 도로를 타고 끝까지 차를 모니 정말 의항이라는 동네가 나왔다. 책의 빛바랜 사진들에 있었던 40년 전의 가난하고 초라했던 마을은 오간데 없고, 여러 현대식 건물과 널찍하게 포장된 도로가 마을을 점령한 상태였다. 오로지 마을 앞 ‘가로림만’의 넘실대는 파도만이 변하지 않은 옛 모습을 보여주고 있을 따름이다. 마을 중앙 나무 그늘 아래서 더위를 버티고 있는 노인을 발견하곤, 짐작만 하고 있는 이곳이 과연 브란트 교수가 살던 마을이 맞는지 확인해 보기로 했다. 차를 세우고 그에게 브란트 교수라는 미국인이 이 마을에 살다가 갔는지를 물었다. 그는 심심하던 차에 대화상대가 생겼다는 듯이 청산유수로 대답을 엮어 나갔다. “여기 살았었죠. 부부하고 아기가 동네에 들어와서 집까지 짓고 한 이년 살다 갔어요.” 아기를 포함한 전 가족이 살다 갔다니.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이다. 다시 물었다. “그가 무엇을 조사했어요?” “별별 것을 다 물어봅디다. 얼마나 버냐? 어디다 쓰냐? 저축은 하냐? 우리도 외국인이 이런 시골까지 들어와 같이 살아주는 것이 고마워서 성의껏 협조해 주었지요.” 그는 말을 이었다. “그가 여기에 있으면서 좋은 일도 많이 했어요. 마을에 배도 한척 기부했었고 아픈 사람들 병원비도 내줬고…. 여러 가지로 고마운 일을 많이 해서 우리는 그가 떠날 때 송덕비까지 세워줬어요. 마을 사람 중에 그를 따라서 미국으로 이주한 사람까지 있었으니까요.” 브란트 교수와 그 가족은 이런 벽촌에서 어떻게 살았을까. 나는 그가 이런 벽촌에 집을 짓고 살았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 집이 아직 남아 있나요? 어디에 있어요?” “저 언덕 위를 보세요. 저기 꽃으로 싸인 집이 그들이 직접 지은 집이요. 거기서 일하는 아주머니 한 분과 같이 가족들이 살았어요. 떠날 때 동네주민에게 그 집을 그냥 기증했는데 새 주인이 나중에 다시 개축했다고 합디다.” 나는 노인에게 작별을 고하고 그 곳으로 향했다. 언덕위로 난 길을 오르면서 브란트 교수의 선택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햇살을 듬뿍 받는 언덕의 남쪽 사면에 집이 위치한다. 뒤로 솟은 언덕이 북쪽의 외해에서 불어오는 거센 해풍을 막아 주고, 앞으로는 가로림만이 다소곳하게 자리 잡아 집의 경관 가치를 한층 높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집은 개축하면서 원래의 특성이 많이 없어졌는지 집 자체만으로는 별다른 특성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저 여느 평범한 농가의 한 형태를 가지고 있을 뿐. 나는 집둘레에 심어진 꽃들이 뿜는 향기를 취하게 맡으면서 옛날 여기에 살던 브란트 씨를 떠올렸다. 하고많은 세계의 국가 중 우리나라를 택한 것도, 그리고 이곳 서해안의 외진 어촌을 찾아온 것도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닐 것이다. 의항의 아래 있는 천리포 수목원 설립자 미국인 칼 밀러 씨와 인연이 있지 않았을까. 해방 후 우리나라에서 군복무를 하다 한국은행에 취직해 오랫동안 그곳에서 근무했던 밀러 씨는 민병갈이라는 한국이름과 한국 국적까지 취득한 사람이었다. 밀러 씨는 1950년대 휴가차 천리포에 한번 와보고 경치에 반해 인근 땅을 사들였다고 한다. 그리고는 세계 각국의 식물을 들여다 수목원을 만들었다. 그는 타계했지만 그가 남긴 수목원은 현재까지 운영되고 사람들의 발길은 여전히 끊이지 않는다. 모르긴 몰라도 브란트 교수와 밀러 씨는 무슨 인연이 있어서 이곳을 소개 받은 듯하다. 그랬다 해도 60년대 빈곤이 찌든 이 어촌에서 가족들을 데리고 와서 어떻게 2년 넘게 살 수 있었을까? 사실 그 것은 그 무렵 미국의 도시민에게 한국의 시골은 지금의 콩고나 뉴기니아 같은 미지의 불안한 빈민국과 비교해 나을 바 없어 그런 곳에 가족을 데리고 가서 긴 세월을 사는 것과 같은 것은 이해하기 힘든 노릇이었다. 선교를 나온 성직자가 아니라면 말이다. 나의 추리는 여기서 그의 심정을 헤아려보는 수준까지 뻗어 나갔다. 우선 동네의 인심이 그를 안심하고 가족까지 데리고 와서 살만한 편안함을 주었을 것이고 치안이 극도로 불안한 후진국 같지 않게 그 무렵 한국의 안정된 치안도 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이런 곳에서 이국의 삶을 즐길만한 이유가 있었음을 판단함에 전원인의 시각을 배제할 수가 없을 듯하다. 그는 교수라는 직업의 지식 노동자였다. 오는 날 상당수의 전원 생활자 또는 전원생활 동경자 가운데 현대 도시생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의사 변호사 또는 교수같이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지식 노동자가 많음을 필자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 역시 상아탑의 황량한 정신노동 세계에 지칠 대로 지친 전원생활 동경자로서 연구를 핑계 삼아 각박한 미국의 도시에서 탈출, 먼 이국의 시골 어촌으로 잠시 피해 나와 일종의 정신적 피난 생활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버릴 수가 없었다. 아무리 연구가 목적이라지만 이런 이국의 벽촌에 와서 긴 세월을 보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어쩌면 브란트 교수에게 있어 이국의 이 풍광명미風光明媚한 어촌이 그에게는 최고의 휴가지였는지도 모른다. 모르긴 몰라도 귀국 후 그는 자주 대학 연구실에서 지친 머리를 쉬면서 한국에 두고 온 가로림만의 그림 같은 바다경치를 떠올리며 스트레스를 해소했을 것이다. 브란트 교수의 송덕비 앞에서 양식 어구를 손질하는 아주머니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하자, “그가 12년 전 방문한 적이 있다”면서 “아직 그분 생존해 계시냐”며 반문하는 것을 보면, 교수직에서 은퇴한 브란트 교수가 가로림만과 의항을 잊지 못해 그 어느 날 다시 찾은 게 분명했다. 田 글 김창원 글쓴이 김창원 님은 공인중개사로서 서울시 용산구 이촌동에서 강, 바다, 호수 경관 전문 부동산 ‘물빛뜨락’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문의 : 02)749-0396. www.waterview.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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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전원주택] 외국인을 안아준 전원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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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주택라이프] 100년은 거뜬, 핀란드 현지 기술자가 지은 만리포 115.70㎡(35.00평) 복층 통나무주택
- 20세기에 들어서 주거문화는 큰 발전을 해왔다. 하지만 콘크리트와 페인트는 두통, 천식, 피부염 등 각종 유해물질을 배출해 이른바 새집증후군을 유발하기도 한다. 편리함은 얻었지만 건강에 해로운 각종 화학물질의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되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편리함을 포기하고 보다 친환경적인 건축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특히, 단독주택을 지을 때 건축주가 목구조 또는 황토 등 친환경 주택을 선택하는 비율이 높아졌다. 태안 만리포에 위치한 통나무주택은 친환경 주택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에겐 건강을 위한, 건강한 주택으로 손꼽히는 집이다. 더욱이 눈길을 사로잡는 건 국내에서 유일하게 핀란드 현지인 기술자들이 직접 지은 핀란드 주택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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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주택라이프] 100년은 거뜬, 핀란드 현지 기술자가 지은 만리포 115.70㎡(35.00평) 복층 통나무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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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은 거뜬, 핀란드 현지 기술자가 지은 만리포 115.70㎡(35평) 복층 통나무주택
- 20세기에 들어서 주거문화는 큰 발전을 해왔다. 하지만 콘크리트와 페인트는 두통, 천식, 피부염 등 각종 유해물질을 배출해 이른바 새집증후군을 유발하기도 한다. 편리함은 얻었지만 건강에 해로운 각종 화학물질의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되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편리함을 포기하고 보다 친환경적인 건축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특히, 단독주택을 지을 때 건축주가 목구조 또는 황토 등 친환경 주택을 선택하는 비율이 높아졌다. 태안 만리포에 위치한 통나무주택은 친환경 주택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에겐 건강을 위한, 건강한 주택으로 손꼽히는 집이다. 더욱이 눈길을 사로잡는 건 국내에선 유일하게 핀란드 현지인 기술자들이 직접 지은 핀란드 주택이라는 점이다. 글 사진 백홍기 디자인 이정미 기사 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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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은 거뜬, 핀란드 현지 기술자가 지은 만리포 115.70㎡(35평) 복층 통나무주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