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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행풍수 인테리어 - 자연주의적 삶의 보고, 풍수
- 집터나 묏자리와 달리 마을이나 도읍이 들어설 터가 생기 부족하거나 결함이 있다면 쉽게 떠날 수 없다. 따라서 우리 조상들은 비보(裨補)의 지혜를 기울여 살기 좋은 명당으로 바꾸어 살고자 했다. 새롭게 길지(吉地)를 구하지 않은 채 마을의 지리적 결함을 치유하고, 지기(地氣)를 바꾸어 지력(地力)을 회복시켰다. 비보 풍수(裨補 風水)란, 병든 땅이 있으면 풍수적 지혜를 기울여 다시 살기 좋은 터로 바꾸는 행위나 그 산물을 말한다. '동수 비보'는 마을로 불어오는 바람을 숲을 조성해 막거나 송림을 가꾸어 홍수와 방풍에 이용하고, '화기 비보'는 앞산이 불꽃 모양의 화산인 경우 화재를 염승하는 연못이나 해태상을 설치하고, '산천 비보'는 국가 왕업의 중흥을 위해 절·불상·탑을 세우고, '지명 비보'는 지명을 조화롭게 이름 지어 좋은 기운을 붙잡아 두려고 했다. '수구 비보'는 마을의 지기가 흘러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마을 입구에 풍수 시설물을 설치했다. 글 고제희 <대동풍수지리학회 이사장> 풍수적으로 조성된 전통마을. 경주 닭실 마을. 동수 비보마을이 강과 바닷가에 자리 잡아 세찬 바람이 불어오거나, 마을을 에워싼 지세 중 북서방이 낮고 허하여 겨울철에 찬바람이 불어오면 입구 쪽에 바람을 막는 방풍림을 조성했다. 이것을 마을 숲[洞藪]이라고 한다. 조선 초기에 맹사성이 안동 부사로 부임했더니, 그곳에는 젊은 남자들이 요절해 과부들이 많았다. 풍수지리에 뛰어난 맹사성은 낙동강의 물기운이 발해서 불행한 일이 생겼다고 보고, 곳곳에 나무숲을 조성해 장수의 발복을 일으켰다. 해안에 조성한 숲은 해일을 막을 뿐만 아니라, 그늘이 생겨 고기들이 모여드는 기능도 한다. 마을과 도읍의 중심에 천(川)이 통과해 여름에 홍수로 범람할 위험이 있다면, 흙둑을 쌓고 비탈면에 나무를 심어 사태를 막았다. 둑을 따라 조성한 나무숲이 자연스럽게 동수가 된 경우다. 마을의 수호신으로 모셔 제를 지내는 당산나무. 화기 비보산에 암반이 드러나 험준한 모양이거나, 마치 불꽃이 피어오르는 듯한 형상이면 화산(火山)이라 부른다. 이런 산은 문장가를 배출하는 효험이 있다. 또한 화산은 산이 불의 기운을 품고 있어 마을과 도읍에 그런 모양의 산이 보인다면 화재의 위험이 크다. 풍수에서는 "보이는 살(殺)은 해롭고, 보이지 않는 살은 해롭지 않다."라고 했다. 한눈에 조망하는 국세라면 아무리 멀다 해도 화기가 미친다고 보았다. 따라서 방어를 해야만 한다. 그렇지만 화산의 규모가 크면, 그 산을 차단하고 은폐시킬 대규모 설비를 구축하기 어렵다. 그래서 화산의 영향을 극복할 방법을 다각도로 강구했다. 마을 앞쪽에 연못을 조성해 화기를 수기(水氣)로 제압하거나, 물의 신인 거북과 해태를 화산을 향해 배치함으로써 살기를 소멸시키거나, 또는 나무숲을 조성해 살기를 차폐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대원군이 경북궁을 재건할 때 화기를 염승하기 위해 신인 해태를 설치. 산천 비보풍수지리는 땅을 살아 있는 생명체로, 땅도 사람과 같이 생로병사로 기운이 순환한다고 본다. 그러므로 살아 있는 땅에 문제가 생긴다면, 마치 병자를 치료해 건강한 사람이 되듯이 고쳐 쓸 수 있다. 풍수의 생기는 산을 따라 흐르다 물을 만나면 전진을 멈추고 기를 응집하는데, 혈에 간직된 기는 바람을 맞으면 흩어져 버린다. 따라서 인간의 길흉화복에 영향을 미치는 생기와 감응을 키우거나, 장풍이 되지 못해 생기가 누수되거나, 쇠약한 상황이라면 풍수적 지혜를 기울여 지덕을 발동시켰다. 마을의 입지가 행주형(行舟形)에 해당된다면, 먼 항해를 위해 돛대를 상징하는 당간을 세웠다. 또 배의 전복을 막기 위해 우물을 파지 않았다. 또한 생기는 흙을 따라 흐르고 흙에 머문다. 고갯마루는 양쪽에서 바람이 불어오고 사람의 왕래가 잦은 곳이라 흙이 유실될 가능성이 많다. 따라서 흙의 유실을 막기 위해 고갯마루에 돌을 쌓아 놓은 뒤 '돌을 훼손하면 재앙을 입는다'는 소문을 퍼트렸다. 마을의 성황당은 풍수적 비보물이 민간적 신앙물로 자리 잡아 보호를 받는다. 마을 입구를 비보하기 위해 조성한 마을 숲. 지명 비보지명 비보는 비보의 효과를 얻고자 하는 심리적이고 상징적인 비보 형태다. 대개 실제적인 비보의 형태를 시행한 후, 그 효과를 증대시키기 위해 부가하는 경우가 많다. 독자적인 기능을 할 때는 지세를 진압(鎭壓) 하거나, 형국 보완의 기능을 하는 예가 많다. 특히 고을 비보 지명의 경우에는 봉항 형국과 관련한 비보명이 영천, 선산, 진주 등지에 유사한 구조로 나타난다. 또 비봉형(飛鳳形), 무학형(舞鶴形)은 모두 신비스러운 새이므로 성인군자가 나오고, 매우 축하할 때가 아니면 춤추지 않는다. 이런 모양의 마을이 있다면, 그 모양에 상응하는 훌륭한 인물이 나올 운명이라고 본다. 그러나 새는 날아가기 쉽게 때문에 어떻게 해서라도 영구히 날아가지 못하도록 서식지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이 땅이 사람에게 미치는 힘은 유형이 갖는 영력(靈力)과 동일시된다. 행복을 가져올 운명을 영구히 누리려면, 그것이 힘을 발휘하도록 염승을 해야 한다. 경북 영천에는 비봉산이 있고, 봉황을 붙들어 두기 위해 봉이 좋아하는 대나무의 이름을 따 조산을 '죽방산(竹防山)'이라 부른다. 태안의 안흥량(安興粱)은 본래 난행량(難行梁)이라 불리었는데, 전라도에서 생산된 곡식을 한양으로 운반하는 조운선이 이곳에서 자주 파손되어 손실이 컸다. 그래서 이름을 '안흥량'으로 고쳐 불렀더니 뱃길이 편안해졌다. 충주시의 계명산(鷄鳴山)은 진산으로 이 산에 지네가 많이 살아 주민의 피해가 컸다. 그러자 어떤 도사가 지네와 닭은 앙숙이니 산의 이름을 '계족산(鷄足山)'으로 바꾸라고 했다. 그대로 따랐더니 지네는 없어졌으나 충주에서 큰 부자나 큰 인물이 태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종전의 이름인 계명산으로 불렀다고 한다. 마을 입구에 인위적으로 조성한 연못. 수구 비보이중환의 《택리지》에서, "어찌하여 지리를 논하는가? 먼저 수구(水口)를 보고 다음은 들의 형세를 본다. 다음에는 산의 모양을, 다음은 흙의 빛깔을, 다음은 조산(朝山)과 조수(潮水)를 본다. 무릇 수구가 엉성하고 널따랗기만 한 곳은 비록 좋은 밭이 만 이랑이고, 천 칸의 집일지라도 다음 세대까지 내려가지 못하고 패가한다. 집터를 잡으려면 반드시 수구가 꼭 닫힌 듯하고, 그 안에 들이 펼쳐진 곳을 눈여겨보아서 구할 것이다."라고 했다. 전통적으로 마을의 입지를 정할 때는 마을로 들어서는 입구가 배가 지나다닐 수 있을 정도로 좁은 수구라면 지리적으로 우수한 곳이다. 따라서 마을 입구 넓은 곳은 지기의 누수를 막기 위해 여러 비보책을 강구했다. 조산 숲은 마을을 에워싼 청룡과 백호의 기세가 약하면 인위적으로 흙 동산을 쌓고 나무숲을 조성했다. 마을 진입로의 경사가 급해 기가 누수되는 것을 막기 위해 수구 부에 돌탑을 조성하기도 했다. 또한 마을 입구에 느티나무와 은행나무 같은 정자나무를 심거나 경제력이 약한 마을은 풍수지리와 민간 신앙을 결합한 형태로 조산과 돌무더기 대신에 솟대, 선돌, 장승 등을 세웠다. 지금까지 열두 번에 걸쳐 풍수에 대해 알아보았다. 동양의 전통 학문은 서구의 과학 중심의 학문에 가려져,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면이 있었다. 최근 들어서야 산업 문명이 낳은 인구 폭발, 환경 오염, 자원 고갈이란 심각한 환경 문제에 직면하자, 그 대안으로 오히려 서구에서 주목을 받게 되었다. 즉, 동양의 정신문화가 서구 기술 문명의 문제점을 치유하고, 나아가 인류의 번영된 미래를 위한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다. 그 선두 중에 하나가 풍수다. 그것은 풍수가 가진 자연 친화적인 측면 때문이다. 풍수는 자연이 가진 내재 가치와 고유한 질서를 존중하며, 자연과 인간이 서로 어울려 가며 함께 사는 것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즉, 인간은 자연 생태계 전체와 유기적 조화를 이룰 때 풍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 천진대의 샹 쿠오(Shang Kuo) 교수도 "풍수는 역사적인 진리를 가득 담고 있으며, 현대의 조경학과 생태 건축학의 기본 방향 및 원칙과 부합되는 내용이 풍부하여 21세기 인류에게 공헌할 바가 많다."라고 했다. 물질적 풍수만이 사회적 성공의 판단 기준이 된 오늘, 우리들에게 풍수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제는 다시 자연친화적인 삶을 찾아 몸과 마음의 건강을 되찾고, 부모를 공경하고 자식을 양육하며, 땅의 가치를 재인식하며, 국토 개발에 앞서 자연 생태계와의 조화를 먼저 고려해야 한다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한 번쯤 되새겨볼 가치관이 아닐까 감히 생각해 보며 글을 맺는다. 글쓴이 고제희 님은고려대학교 생명환경대학원에서 조경학과 생태환경공학부 박사과정을 마치고, 2003년 대통령정책실 신행정수도건설추진기획단에서 풍수지리 자문 위원을 역임했습니다. 매일경제 및 한국경제 TV, SBS, EBS 등의 방송사를 통해 생활 속의 풍수이야기를 들려주었으며, 풍수전문포털사이트 www.21fengshui.com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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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행풍수 인테리어 - 자연주의적 삶의 보고, 풍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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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행풍수 인테리어 - 마을과 도읍의 풍수지리
- 생기 왕성한 곳에다 묘지를 잡는 방법과 과정을 산, 물, 방향, 사람 등에 맞추어 논리적으로 체계화시킨 것이 '음택(陰宅) 풍수론'이다. 그리고 주택의 구성 요소 중 사람의 성장과 발달에 영향을 미치는 대문, 안방, 부엌의 방위별 배치를 조합해 주택 내에 생기가 극대화되도록 이론화시킨 것이 '양택(陽宅) 풍수론'이다. 그리고 마을과 도시의 부지를 선택하는 '양기(陽基) 풍수론'은 주로 배산임수(背山臨水)의 터를 찾되, 가급적이면 외부와 차단되면서 내부 공간이 넓은 곳을 선호했다. 주택 역시 땅에 기반을 두고 짓는데, 터와 주위 환경이 사람 살기에 조화로워야 집 안에 신령한 기운이 깃들어 건강하고 행복하다고 보았다. 특히 안방과 대문 그리고 부엌의 위치가 방위적으로 서로 상생(相生)의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보았다. 풍수지리학은 사람이 생활 경험에서 터득한 지리적 지혜를 바탕으로 좋은 거주 환경(주택, 묘지)을 선택하자는 실용 학문이지, 결코 발복(發福 : 운이 틔어서 복이 닥침)만을 기대하는 사상이 전부는 아니다. 글 고제희 <대동풍수지리학회 이사장> 전통적인 마을 입지를 보여 주는 경주 양동민속마을. 우리 조상들은 사는 터의 기가 허하거나 결함이 있으면 풍수적 비보(裨補 : 도와서 모자라는 것을 채움)를 기울여 살기 좋은 터로 만들었다. 동수비보(洞藪裨補) : 송림을 가꾸어 홍수와 바람을 막음.화기비보(火氣裨補) : 앞산의 강한 화기를 누르기 위해 연못이나 해태상을 설치함.산천비보(山川裨補) : 국가 왕업의 중흥을 위해 절, 불상, 탑을 세움.지명비보(地名裨補) : 지명을 조화롭게 이름 지어 좋은 기운을 붙잡아 둠. 그 예로 예천에는 금당 숲을 조성하고, 관악산의 화기를 제압하기 위해 광화문에 해태상을 세우고, 화순 운주사에 천불천탑을 세우고, 영천의 비봉산은 봉황을 붙들어 두기 위해 봉황이 좋아하는 대나무의 이름을 따서 조산을 조방산(竹防山)이라고 불렀다. 또한 길을 내고, 문을 만들고, 때론 길을 막기 위하여 소나무를 심었다. 그 외에도 궁성 내에 연못을 파고, 심지어 담을 쌓을 때도 풍수학에 따라 좋음을 따랐다. 이렇듯 풍수학은 역사적으로 실생활에 광범위하게 응용되고, 또한 생활 규범으로 자리 잡았으니, 우리 조상들이 오늘의 과학만큼이나 믿고 따른 사상임이 분명하다. 우리 조상들은 마을이 들어서려면 마을을 수호하고, 지덕(地德)을 발동시키는 산이 있어야 하며, 그 산의 정기가 흐려드는 곳에 마을이 위치해야 동네가 편안하고 사람도 행복하다고 믿었다. 살기 편한 마을 선택의 기준우리 조상들은 마을을 선택할 때도 다음과 같은 기준을 가졌다. 먼저 일반적인 조건으로 그 첫째가 입향시조(入鄕始祖)다. 마을은 부락민이 함께 생활하는 공간으로, 가족을 포함한 친족이나 이웃사람이 지연(地緣)을 함께 하는 생활 공동체다. 그 마을에 처음 들어와 터를 잡고 산 사람이나 동성 집단을 일컬어 '입향조(入鄕祖)'라고 부른다. 마을을 선택할 때는, 먼저 가까이 있는 산을 살펴서 대를 이어 사람이 살기에 편안한 제반 조건을 두루 갖췄는지를 생각했다. 집이 있어 조상의 묘를 두고 돌보기가 수월하되, 풍수적으로 명당을 선호했다. 둘째로 농사짓고 살기에 편리한 곳을 찾았다. 산이 병풍을 두르듯 마을을 감싸고, 문전옥답(門前沃畓)이 넓게 펼쳐져 있고, 농사철에는 두레와 품앗이로 일손을 구하기 쉽고, 또한 자식을 낳아 기르고 가르치기에 용이한 곳을 선택했다. 셋째로 사람이 훌륭하려면 태어나 자란 산천의 기운이 순조로워야 한다는 '인걸지령(人傑地靈)'이란 사상도 따랐다. 풍수 경전인 《설심부》에는 "인걸은 산천의 기운을 받아 태어나는데, 산천이 생기롭고 모양이 좋으면 훌륭한 인재가 배출된다. 산이 수려하면 귀인이 나고, 물이 좋으면 부자가 난다."라고 기록돼 있다. 이처럼 우리 조상들은 마을을 선택하여 사는 데에 신중을 기했다. 다음으로는 배산임수의 기준을 가졌다. 마을이 입지할 터는 산과 평지 사이의 수계가 있는 완만한 경사지, 즉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지형을 선호했다. 배산은 북쪽에서 내려오는 찬바람을 막아 주면서 땔감을 구하기 편리하다. 조양(朝陽)은 전망과 일조량을 좋게 하고, 완만한 경사도는 홍수 피해를 막을 수 있으며, 숲은 물과 흙을 보호하여 미기후를 조절해 준다. 임수(臨水)는 여름에 남쪽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이하고, 근수(近水)는 수운 교통과 생활의 편리를 가져다주며, 관개용수뿐만 아니라 수중 양식도 얻을 수 있다. 또한 토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넓은 사적 공간을 보장받는 외부 공간의 창출 그리고 남향 배치에 의한 일조와 통풍을 합리적으로 모색하도록 배려했다. 과수와 경제림은 소득과 연료림(練料林 : 땔감을 산출하는 숲)을 제공해 요컨대 좋은 마을 부지는 농업, 임업, 목축업, 어업 등의 산업에 있어서 양호한 생태 순환과 자연을 취할 수 있는 곳이었다. 마지막으로 마을의 입지로 중요하게 생각한 기준은 진산(鎭山)의 유무이다. 우리 조상들은 마을이 들어서려면 마을을 수호하고, 지덕(地德)을 발동시키는 산이 있어야 하며, 그 산의 정기가 흘러드는 곳에 마을이 위치해야 동네가 편안하고 사람도 행복하다고 믿었다. 이 산을 '양기(陽氣)를 보호하는 산'이란 뜻에서 진산이라 부른다. 진산이 없는 평야나, 진산이 멀리 떨어진 마을이라면 큰 나무를 당산목으로 삼아 하늘의 보호를 받고자 했다. 따라서 진산은 마을 사람들과 집에 지기를 공급하는 '생기 탱크'와 같은 역할을 담당하는데, 권위와 위엄을 갖춘 채 마을 뒤쪽에 제대로 자리를 잡아야 길하다. 그리고 진산은 혼자가 아니라 좌청룡·우백호 등 사신사(四神砂)에 의해 보호받는 형세를 갖추어야 그 위상이 정립되고 품위도 갖추게 된다. 그 결과 진산은 마을의 입지 선택에서 핵심적으로 고려했고, 또한 마을 설계에서 중심 축 역할을 담당했다. 백가천가(百家天家) 모여 살 마을로 삼으려면, 수구가 꼭 닫힌 듯하고 안으로 들어가면 들판이 넓게 펼쳐진 곳을 구해야 한다. 사진은 봉화 닭실 마을 전경. 거주할 곳의 선택 기준마을 부지는 묘가 들어서는 산골짜기의 소규모 땅이 아니라, 토지가 상당히 넓어야 하며 생활에 필요한 여러 용품을 공급받기에 편리한 곳이어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넓은 형세라도 풍수의 원칙인 장풍득수(藏風得水)와 양래음수(陽來陰受) 같은 생기가 충만하지 못하다면, 그곳은 풍수적으로 결함을 지닌 곳이다. 예로부터 마을과 도읍의 입지를 선택할 때, 《택리지》에 나타난 복거지(卜居地)의 선정 기준을 가장 권위 있게 보았다. 《택리지》는, "거주할 곳을 선택할 때에는 우선 지리(地理)를 살피고, 그다음에는 생리(生利), 인심(人心), 산수(山水)를 관찰했는데, 네 가지 중 하나라도 모자라면 낙토가 될 수 없다."라고 하였다. 지리가 아무리 좋아도 생리가 모자라면 오래 살 곳이 못되고, 생리가 비록 좋아도 지리가 나쁘면 또한 오래 살 곳이 못되며, 지리와 생리가 함께 좋아도 만약 인심이 착하지 않으면 반드시 후회할 일이 생긴다. 따라서 인심이 나쁘면 살 곳으로 꺼리고, 또한 가까운 곳에 마음의 번잡함을 씻어낼 산수 좋은 곳이 있어야 살 만한 곳이라고 보았다. 대구 남평 문씨 세거지. 마을 입구(수구)에 숲을 조성해 비보했다. ●《택리지》의 네 가지 복거 조건먼저 수구(水口)를 꼽았다. 마을로 들어서는 입구인 수구가 거칠게 이지러지고 넓게 비어 있으면, 아무리 좋은 논이 많고 큰 집이라도 다음 세대까지 전하지 못하며 패가(敗家) 한다. 그러므로 백가천가(百家千家) 모여 살 마을로 삼으려면, 반드시 수구가 꼭 닫힌 듯하고 안으로 들어가면 들판이 넓게 펼쳐진 곳을 구해야 한다. 산속은 수구가 관쇄(關鎖) 된 부지를 얻기 쉬우나, 넓은 들판이라면 수구가 관쇄 된 입지를 선점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이 경우에는 거꾸로 흐르는 역수(逆水)를 귀하게 보고, 수구 지점에 물을 가두어 놓으면 생기도 함께 머물러서 길하다고 본 것이다. 다음으로 야세(野勢)를 보았다. 사람은 양기를 받아야 살고, 양명한 빛은 하늘에서 비추니 만약 하늘이 잘 보이지 않으면 살 곳이 못 된다. 들은 넓어야 터가 좋고, 햇빛과 달빛 그리고 비바람을 잘 받는 곳이라야 훌륭한 인물이 나오며 질병이 적다. 특히 산이 사방에 높이 솟아 해 뜨는 것을 보기 어렵고, 해가 늦게 뜬 후 일찍 지며, 밤에도 북두칠성을 보기 어려운 곳은 사람에게 병이 많다. 그러므로 사신사의 국세는 갖추되 부지가 협착하지 말아야 한다. 토색(土色)도 중요한 마을의 입지 기준으로 보았다. 땅의 색깔이 길하지 않으면 인재가 나오지 않는다. 산이나 물가를 가리지 않고 땅 색이 좋으며 샘이 깨끗하면 살만한 곳이다. 만약 흙이 누렇고 질면 사토(死土)로 물도 깨끗하지 못하다. 이러한 곳은 살 곳이 못된다. 마지막으로 거론한 것은 조산조수(朝山朝水)이다. 마을이 입지하려면 물이 있어야 식수로 이용할 수 있다. 풍수학에서 물은 재물을 뜻하고, 물가에는 부자가 많고, 산속이라도 물이 있으면 살 수 있다. 조산에 석봉(石峯)이 있고 떨어지는 형태나 엿보는 모습이며 장곡충사(長谷沖砂)가 보이면 살 곳이 못 된다. 조산이 멀리 보이면 맑고 가까이 보이며 밝은 산이면 길하다. 조수(潮水)는 물 밖의 물이니, 작은 시내나 강은 역조(逆潮) 하면 좋고, 큰 강에 이르러서는 역수(逆水) 하지 말아야 한다. 또 물은 용맥을 만나 음양이 합해야 하고, 구불구불 다가오면 좋으나 일직선으로 쏘는 듯 다가오면 흉하다. 대구 남평 문씨 세거지. 마을 입구(수구)에 돌탑을 조성해 비보했다. ●《산림경제》의 살 만한 곳먼저 이웃이 좋은 곳에 살아야 한다고 했다. 사람이 거주지를 정할 때는 먼저 이웃을 잘 골라야 한다. 무슨 사고가 당장 일어나지는 않아도, 그런 곳을 멀리해 후환을 대비하는 것이 현명하다. 이웃을 보아 살 곳이 못 되는 경우는 다음과 같다고 예를 들었다. ·사찰이나 사당, 신당, 불당이 있는 근처·고관대작이나 큰 부자가 사는 근처·앞뒤로 큰 강이 가까운 곳·초가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곳·불량한 무리들의 소굴이 되어 있는 곳·광대들이 섞여 사는 사이·젊은 과부나 건달들이 사는 근처 미풍양속이 깃들인 마을을 찾아 살면 이웃이 덕이 있다. 이런 곳은 어질고 후한 인심을 지닌 마을이라는 말을 듣는 것 이외에 자신도 안락한 복을 누릴 수 있다고 하였다. 다음으로 꼽은 것은 집의 구조와 꾸밈이 길해야 한다고 했다. 집을 지을 때는 곳곳마다 밝고 환하게 할 것이고, 너무 깊숙하거나 그늘지게 해서는 안 된다. 정원에는 나무가 너무 넓은 지역을 차지하거나 빼곡히 심어서도 안 된다. 그리고 뒷문은 절대로 열지 말고, 다만 앞쪽의 문 하나를 열어둠으로써 사람들이 드나들 때 반드시 외청(外廳) 앞을 거쳐가도록 해야 간사한 무리들이 함부로 드나들지 못하며 환란도 미연에 방지한다고 하였다. 살다가 담이 무너진 곳이 있으면 반드시 고쳐 쌓아야 하고, 도둑 등을 경계하기 위해 담 가까이에 나무를 심어 사람들이 담을 넘나들 때에 사다리 역할이 되게 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위와 같이 우리 조상들의 삶의 지혜 속에서도 현대를 살아가는 생활 속의 지침을 얻을 수 있다. 글쓴이 고제희 님은고려대학교 생명환경대학원에서 조경학과 생태환경공학부 박사과정을 마치고, 2003년 대통령정책실 신행정수도건설추진기획단에서 풍수지리 자문 위원을 역임했습니다. 매일경제 및 한국경제 TV, SBS, EBS 등의 방송사를 통해 생활 속의 풍수이야기를 들려주었으며, 풍수전문포털사이트 www.21fengshui.com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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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행풍수 인테리어 - 소문난 명당을 찾아서
- 많은 사람이 살기 좋은 아늑한 집을 소망하면서도 주먹구구식 시행착오를 되풀이하고 있다. 환경·풍토·습관·생활 양식이 전혀 다른 외국 것을 모방하여 이식하기도 하고, 혹은 일시적 유행을 좇고 있다. 심지어 사람이 집의 주인이 아니라, 물량적으로 획일화·규격화되어 가는 집이라는 구조물의 부속품처럼 타율적으로 집에 눌려서 지내는 비극적이랄까 희극적인 양상마저 생기는 실정이다. 예전에 한 풍류인(風流人)은 "봄을 찾아서 들로 산으로 진종일 헤매다가 허탕을 치고 기진맥진하여 집에 돌아와 보니, 희한하게도 집 울타리에 핀 매화나무가지 끝에 봄은 이미 무르익었더라"고 했다. 이처럼 아늑하고 포근한 자기 집을 소원하면서 이제라도 집터를 물색하는 사람, 집을 지으려는 사람, 집을 사려는 사람, 집을 소개하려는 사람, 집을 수리하거나 혹은 남의 집을 임대하려는 모든 뜻 있는 사람들에게 울타리에 핀 흰 매화꽃처럼 풍수지리가 기대 이상의 기준과 지침이 되고, 실용적으로 유익한 도움이 됐으면 한다. 이처럼 자연 속에서 편안한 삶을 추구하고, 그 속에서 자연을 닮은 집을 짓고 산 우리네 조상들의 지혜를 살펴보기로 한다. 그 중에서 명당으로 소문난 유명 고택(古宅) 두 군데를 순례해 보자. 구례 운조루-금환낙지에 자리한 99칸 집구례군 토지면 오미리에 있는 '운조루(雲鳥樓)'는 조선 중기의 주택으로, 중요민속자료 제8호다. 1776년(영조 52) 삼수부사와 낙안군수를 지낸 유이주가 건립했다고 전한다. 이 집터는 풍수설에 따르면 '금환낙지형(金環落地形)'이라 하여, 예로부터 명당으로 불렸다. 산자락이라 사태의 위험이 있고 고인돌마저 널려 있어 이곳 사람들은 개간을 꺼리던 자리였다. 1776년 이곳에 집을 짓기 위해 땅을 파던 중 거북처럼 생긴 돌이 나왔다. 길이 25센티미터, 높이 12센티미터, 머리 3.5센티미터의 이 돌은 집을 짓고 1782년 함을 만들어 가보(家寶)로 전해 왔으나 1989년 도둑이 들어 훔쳐갔다. 이 집은 1776년 9월 16일 상량식을 가졌고, 6년 만인 1782년 유이주가 용천(龍川)부사로 있을 때 완공됐다. 운조루의 사랑채는 큰사랑·아래사랑채로 나뉜다. 주인은 큰사랑채에 거처하면서 손님을 맞거나 손님을 재웠다. 큰사랑채 서쪽에는 세 방향이 탁 트인 누마루(운조루)가 있어서 여름 거처로 쓰였다. 안채는 사랑채 사이의 중문을 통해 들어간다. 안주인이 거처하며 자식들과 며느리가 산다. 부엌, 찬칸, 곳간, 대청 들이 'ㄷ'자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다. 남쪽 행랑채는 솟을대문을 중심으로 담 대신 18칸이 일직선(줄행랑)을 이루고 있다. 지금은 헛간과 창고, 마구간 등으로 쓰이지만 옛날에는 노복들이 살았다. 솟을대문 동쪽으로 작은 문이 있어서 옛날에는 안주인이 출입했다. 유이주는 이곳 집터를 닦을 때 거북처럼 생긴 돌이 나와 금귀몰니(金龜沒泥)가 분명하다고 여겼다. 이 집에서는 금거북이가 부엌자리에 있다고 믿는다. 이 때문에 절대로 부엌바닥을 밖으로 쓸어내지 않으며, 바닥이 울퉁불퉁해도 그대로 두고 몇 년에 걸쳐 한 번씩 흙으로 메워 줄뿐이다. 집을 앉힐 때 부엌자리에 안방을 배치해야 할 구조였다. 하지만 거북자리에 안방을 두어 불을 때면 거북이가 말라죽는다 하여 안방을 오른쪽으로 돌리고 거북자리를 맨 땅 부엌으로 만들어 늘 습기가 있도록 했다. 운조루 사랑채 전경. 이 집에서는 금거북이가 부엌자리에 있다고 믿는다. 이 때문에 절대로 부엌바닥을 밖으로 쓸어내지 않으며 바닥이 울퉁불퉁해도 그대로 두고 몇 년 걸쳐 한번씩 흙으로 메워 줄뿐이다. 운조루에서 찾아본 풍수 지혜를 살펴보자. 집 뒤의 산에 기대는 집터를 잡는데(배산임수), 산기슭에 바짝 붙여 집을 지었다. 뒤에는 산이 있되 경사가 완만하며 일조와 함께 배수가 양호하고, 또한 산에는 수목이 무성하다. 수목은 물과 흙을 보호·유지하고,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여 쾌적한 미기후를 조성한다. 앞이 낮고 뒤가 높은 집터를 풍수에서는 '진토(晉土)'라 하여 길하게 여긴다. 중국 진나라는 황하지역에 도읍을 정했는데 그곳은 북쪽이 높고 남쪽이 낮아 번성했으나, 양쯔강 유역에 도읍을 정한 초나라는 북쪽이 낮고 남쪽이 높아 미개한 나라로 끝났다. 운조루는 대문에 호랑이뼈(현재는 도둑을 맞아 말머리뼈)를 걸어두어, 잡귀가 집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았다. 운조루는 대문 앞으로 계곡물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른다. 즉, 외당의 섬진강은 서류동출(西流東出)하는데 반해 운조루 앞의 물은 동류서출(東流西出)한다. 물의 흐름이 역행함으로써 지기(地氣)의 응집이 더 강하다. 또한 좌향은 남향으로, 남향집은 햇볕이 많이 들어 집에 양명한 기운을 북돋운다. 한국에서 남향집은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바람이 막혀 아늑한 집이 된다. 뒷산은 활처럼 굽었는데, 운조루는 휜 안쪽 중심부에 위치한다. 따라서 작지만 좌우로 청룡과 백호가 감싸안아 장풍이 용이하다. 운조루 대문에는 호랑이뼈(현재는 도둑을 맞아 말머리뼈)를 걸어 두어, 잡귀가 집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았다. 풍수에서 잡귀를 막기 위해 엄나무를 대문 위에 걸치거나, 또는 문패를 밤나무로 하면 도둑이 들지 못한다고 한다. 조산이 화산임으로 화기(火氣)를 제압하기 위해 물을 가둬 놓은 풍수적 비보책이다. 대문 밖에는 200평의 네모진 연못을 파놓고, 그 가운데에 섬을 두었다. 이것은 조산인 관악산이 화산이므로 화기(火氣)를 제압하기 위해 물을 가두어 놓은 풍수적 비보책(裨補策)이다.운조루는 내청룡이 짧아 수구가 허하다고 여겼던지 수구 가까이에 조탑(造塔)을 만들어 비보했다. 돌무더기로 수구막이를 한 것은 한국의 오랜 풍습이다. 운조루는 중문 칸에 안채의 통로까지 겸한 큰 부엌을 두었고, 그 북쪽으로 사랑채와 안채를 잇는 쪽문을 따로 두었다. 또한 집의 규모에 비해 장식적 의장이 적어서 길하다. 풍수에서 집을 화려하게 꾸미면 마치 촛불이 마지막에 더 밝은 빛을 뿜어내는 것처럼 곧 쇠락할 징조로 여긴다. 운조루의 대문 앞과 집 안에는 큰 나무가 없어 길하다. 나무는 흙에 함유된 물기를 빨아들여 집 안의 흙이 건조해지고 윤기를 없어지게 만든다. 또 사람이 가사(假死)상태로 잠을 자는 밤 동안 산소를 빨아들이고 이산화탄소를 내 보내 집 안에 산소의 부족을 초래한다. 집 안에 큰 나무가 있으면 '곤궁할 곤(困)'으로 가난해지고, 대문 앞에 큰 나무가 있으면 '막을 한(閑)'이 되어 집 안으로 좋은 기가 들어가는 것을 방해한다. 대문과 중문, 중문과 안방의 문이 서로 일직선상에 놓이지 않아서 길하다. 문들을 일직선상에 두면 대문을 통해 들어온 바람이 곧장 방으로 들이닥친다. 따라서 기온 차에 의해 방 안의 사람에게 해를 끼치고, 또 직접 바라보이면 사생활이 침해되어 방 안에서도 불안을 느낀다. 지기는 흙에 따라 흐르고 흙에 머물므로 집을 지을 때에는 흙을 파내고 땅을 평평하게 고르는 것을 꺼린다. 땅의 생긴 경사도에 맞추되, 경사면에는 돌계단이나 대를 높여서 자연스럽게 집을 층차감 있게 사랑채와 안채를 짓는다. 운조루는 자연적 지형을 그대로 살려 건물을 층차감 있게 지었다. 운조루는 내청룡이 짧아 수구가 허하다고 여겼던지 수구 가까이에 조탑(造塔)을 만들어 비보(裨補)했다. 안동 의성 김씨 종택-육부자가 과거에 급제한 명당경북 안동의 천전(川前) 마을에는 자손이 크게 번창하고 6부자가 나란히 과거에 급제했다는 명가(名家)가 있다. 바로 의성 김씨(義城 金氏)의 종가댁(宗家宅)이다. 김진(金璡, 1500∼1580)이 처음으로 집을 지어 살았는데, 터의 기운이 영험하여 아들 다섯 명이 모두 대과나 소과에 급제했고, 자기도 사후에 이조판서에 추증(追贈)됐다. 그래서 '육부자등과지처(六父子登科之處)'로 소문이 났다. 이 종가댁은 조선 중기의 주택으로 총 55칸의 단층 기와집이다. 하지만 마당에 서서 보면 배산임수의 부지 축대 위에 자리해 마치 이층집처럼 높아 보인다. 이 집에서 흥미를 끄는 것은 생기(生氣)가 응집된 방이 따로 있어 그곳에서만 아이를 출산한다는 점이다. '태실(胎室)' 혹은 '산방(産房)'이라 부르며, 대소과에 급제한 다섯 아들이 모두 그 방에서 태어났다. 그런데 김진의 11대 후손인 김방렬(金邦烈)이 그 방을 헐어 버리고 마루를 깔아 대청으로 만들었다. 영천의 영일(迎日) 정씨네로 시집 간 딸이 첫째와 둘째아들을 이 방에서 낳자, 집의 정기가 쇠약해진다고 여긴 탓이다. 그 딸은 할 수 없이 셋째아들은 다른 방에서 낳았는데, 예상대로 첫째와 둘째는 대과에 급제했으나 셋째아들만큼은 그렇지 못했다고 한다. 현재의 주인되는 김시우(金時雨, 김진의 15대 손)도 태실의 발복을 믿고 있다. 맏며느리가 대구의 친정에서 딸을 낳은 뒤로는 후사가 없었다. 그러자 없앴던 태실을 다시 온돌방으로 꾸미고, 해외에 근무하는 아들이 휴가를 얻어 돌아오면 그 방에서 아들 내외를 지내게 했다. 그 결과 손자를 얻어 대를 잇게 됐다고 한다. 조선 중기의 주택으로 마당에 서서 보면 배산임수의 부지 축대 위에 자리해 마치 이층집처럼 높아 보인다. 안동 의성 김씨 종택이 입지한 천전 마을은 대현산을 등진 채, 앞에는 강물이 흘러 인접한 농토가 넓은 남향의 땅이다. 풍수적으로 완사명월형(浣紗明月形)이라 불리며 경주의 양동, 안동의 하회, 봉화의 유곡과 더불어 삼남(三南 ;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의 4대 길지의 하나로 꼽힌다. 비단은 고귀한 사람이 입는 옷이며, 그것을 밝은 달빛 아래에 깔아 놓았으니 세상에 이름을 날릴 인물이 나온다는 설명이다. 김진은 여기에서 '갓 꼭지가 보이면 이사하라'고 했는데, 그 말은 집을 처음에 지을 때는 행인의 갓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지대가 낮았고, 따라서 앞쪽의 강물도 보이진 않았음을 내포한 말이다. 그렇지만 '갓 꼭지가 보인다'라는 말은 사람의 왕래가 많아진다는 뜻이 아니고, 앞쪽의 지대가 자연적 혹은 인위적으로 낮아져 대청에서 강물이 넘겨다 보이는 경우를 경계한 말이다. 강물이 풍수 상으로 보아 흉수(胸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도 대청 마루에서 강물이 바라다 보이지 않는다. 의성 김씨 종가댁은 구례 운조루와 마찬가지로 가상적인 공통점이 있다. 대문 앞과 집 안에 거목이 없어 길하고, 부지가 방정하고 전저후고(前低後高)의 택지라 길하다. 또 수로나 냇물의 유입이 없으며 집 안에 우물이 없는 것도 길하고, 솟을대문과 중문 그리고 중문과 안방이 일직선상에 있지 않은 점도 풍수적으로 길하다. 정원수가 적고 가운데뜰에 연못이나 우물이 없으니 가상적으로 흉함을 발견하지 못했다. 의성 김씨 종가댁은 생기 왕성한 용맥에 자리잡고, 천전 마을 중에서 양기 흐름이 가장 양호한 곳에 해당되어 학자와 고관대작이 배출될 터다. 또 사랑방과 안방은 풍수적으로 매우 길한 방위적 배치를 보인다. 이처럼 길한 기운이 많아 복지로 손색이 없다. 대문 앞과 집 안에 거목이 없어 길하고, 부지가 방정하고 전저후고(前低後高)의 택지라 길하다. 현대를 사는 우리도, 자연 속에서 풍류를 즐기며 산 조상들의 지혜를 낡았다고 치부해 버리지 말고, 잠깐씩 빌려쓰는 여유를 가져보자. 글쓴이 고제희 님은고려대학교 생명환경대학원에서 조경학과 생태환경공학부 박사과정을 마치고, 2003년 대통령정책실 신행정수도건설추진기획단에서 풍수지리 자문 위원을 역임했습니다. 매일경제 및 한국경제 TV, SBS, EBS 등의 방송사를 통해 생활 속의 풍수이야기를 들려주었으며, 풍수전문포털사이트 www.21fengshui.com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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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행풍수 인테리어 - 소문난 명당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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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행풍수 인테리어-건강한 우리 집 꾸미기2-2
- 동양인의 남아선호(男兒選好) 사상은 오래된 가족 제도의 잘못된 고정 관념이다. 딸보다 아들에게 더 큰 가치를 부여한 것은 가계 계승이란 목적 때문이었다. 아들이 없다는 것은 가계의 단절 즉, 절손(絶孫)을 의미하여 전통 사회에서는 여성에게 칠거지악(七去之惡)을 적용한 이혼 사유가 됐다. 그러므로 여성들은 이혼 자체보다는 가계를 이을 수 없다는 불안감과 조상에 대한 죄책감으로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아들 낳기를 기원했다. 지금은 핵가족화와 도시화의 진행으로 이러한 남아선호 사상에 대한 인식이 변하고 있다. 건강한 우리 집 꾸미기 두 번째 편에서는 풍수적으로 좋은 자녀 방을 비롯하여 각 실의 방위에 대해 알아보자. 아들은 대개 성격이 도전적·호전적이며, 외향성과 능동성을 지닌다. 따라서 집 내부에서 남자다운 기를 받는 곳에 아들의 방을 두어야 그 아들이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자라난다. 아들을 음기가 강한 방에 기거시키면 기를 펴지 못하고 소심해진다. 풍수적으로 아들 방은 현관의 위치에 따라 다음의 위치가 길하며, 이때 아들 방의 중심이 아니라 방문의 방위로 판단한다. ●현관의 방위가 동쪽일 때는 아들 방의 방문이 동남쪽 또는 남쪽에 있는 것이 좋다.●현관의 방위가 동남쪽일 때는 아들 방의 방문은 동쪽, 북쪽이 좋다.●현관의 방위가 남쪽일 때는 아들 방 방문의 위치가 동남쪽, 동쪽, 북쪽이 좋다. 재미있는 속설로, 예전에 아들 낳기를 기원한 민간의 풍습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 속설은 석불의 코를 베어 가루로 만들어 먹었다는 것이다. 코는 남성의 성기를 의미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또 비석의 글자 중 자(子), 남(男), 문(文), 무(武), 인(仁), 의(義), 지(智), 용(勇), 검(劍), 필(筆)의 한자를 파내어 가루로 빻아 먹었다고 한다. 다른 속설은 아들이 태어난 집의 금줄을 떼어다 방에 걸어두거나, 밥을 지어먹거나, 금줄에 부착된 고추를 떼어다 간장을 담가 먹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아들을 낳은 산모의 월경대나 속옷을 얻어 아랫배에 감고 다니거나, 아들 낳은 집의 부엌칼을 훔쳐 허리 끈에 매고 다니거나, 아들 낳은 집의 수저를 훔쳐 베개 밑에 감추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이야기들이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로 비추어질 만큼 의식구조가 바뀌었다. 다음은 풍수적으로 좋은 딸의 방을 알아보자. 딸은 결혼하기 전까지는 부모의 슬하에서 자라는데, 대개 가정적·평화적이며, 내향성과 수동성을 떠올리게 된다. 따라서 집 내부에 여자다운 기를 받는 곳에 딸방을 두어야 그 딸이 신체적 내지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자라난다. 전통적으로 딸은 출가외인을 전제로 하여 가사나 예절, 복종을 가르쳤고, 온순함과 인내심을 기대하였다. 남녀가 평등한 현대에는 맞지 않지만 여자다운 신체적 특징과 인성을 고려할 때 딸 방은 현관과 더불어 다음의 방위에 두면 길하다. 이 역시 딸방의 중심이 아니라 방문의 방위로 판단한다. ●현관의 방위가 동쪽이면 남쪽 또는 북쪽이 좋다.●현관의 방위가 남쪽이면 동쪽, 동남쪽이 좋다.●현관의 방위가 서쪽이면 북동쪽이 좋다. 풍수상으로 여자에 대한 배려는 출가를 전제로 했기 때문에 면밀하게 연구하지 않아 길한 방이 없는 경우도 있다. 다만, 노인이 거주했던 곳은 장수를 누릴 길한 방이므로 그 방 역시 딸방으로 좋은 곳이다. 학생들의 방은 먼저 집중력을 높여 주는 일이 중요하다. 방 안은 커튼을 이용해 약간 어둡게 하고, 창문은 작아야 좋다. 창문이 크면 밖을 바라보거나, 집을 떠나 여행을 가고픈 생각이 들어 집중력이 떨어진다. 또 성장하는 시기이므로 방 안의 기운이 활기차고 기가 충만하여 성장에 알맞은 기의 공급이 충분해야 한다. 요즘에는 컴퓨터가 책상의 한쪽을 차지하면서 전자파가 나오므로 전자파의 피해를 줄여 주는 것도 아이들의 건강에 중요하다. 노인방은 동남쪽과 남쪽이 좋은데, 햇볕은 노인에게 보양과 같기 때문이다. 따라서 볕이 잘 드는 남향이 좋고, 남동쪽은 아침 햇살이 들어 일찍이 기침하는 노인방으로 제격이다. 또 노인방은 가족의 방과 너무 멀어서는 안 되며, 2층보다는 아래층이 좋다. 2층의 경우는 계단의 경사를 완만하게 하고 난간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화장실과의 거리는 짧게 하고, 가능하면 방 옆에 딸린 전용 화장실을 두는 것이 편리하다. 난방은 안정성을 고려하고, 뜰이 보여 간단히 나설 수 있으면 더욱 좋다. 역시 노인 방도 방문과 현관의 방위를 판단하여 길한 방을 정한다. 부엌은 음식을 만들고 먹는 공간으로 식록(食祿)과 관계되는 공간이다. 사람의 건강과 병은 음식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므로 부엌은 가족의 건강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양택삼요》에서도 부엌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대문은 기가 출입하는 곳이고, 부엌은 식록이니 부엌과 대문이 모두 귀중하다. 사람들이 이 이치를 가벼이 보나, 무수한 집이 대문과 방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 부귀를 누린다. 다만 이상한 질병에 시달리는 것은 모두 부엌이 흉하기 때문이다." 만병(萬病)은 대개 음식에 따라 생기므로 부엌이 길하면 자손이 번성하고, 부엌이 흉하면 자손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부엌을 양택의 한 요소로 삼은 것이다. 또 부엌 아궁이(가스레인지)의 향은 동쪽과 동남향이 좋은데, 이것은 木은 동쪽이면서, 오행상으로 火를 낳기 때문이다(木生火). 부엌은 물을 많이 사용하는 곳으로 부정한 설거지를 하므로 남서방에 두면 흉한데, 남서쪽은 이귀문(裏鬼門)에 해당하여 부정한 것을 꺼린다. 남서방의 부엌은 남풍이나 남동풍이 부는 여름에 열기, 음식 냄새가 집 안으로 퍼지고 또한 화재의 위험도 높다. 부엌 다음으로 살펴볼 곳은 욕실이다. 현대 주택은 욕실 내에 화장실을 두어서 현관문과 욕실의 문이 일직선상에 놓인 경우가 있는데, 풍수상으로 흉하다고 본다. 화장실이 현관의 정면에 버티고 있으면 남의 눈에 띄는 것이 손님이든 집안 식구이든 기분이 불쾌해진다. 또 북동은 귀문, 남서방은 이귀문에 해당하기 때문에 물이나 부정한 것을 멀리하므로 더러움을 씻는 욕실을 그 방위에 두면 흉하다. 북동방은 겨울에 찬바람이 들고, 또 햇볕이 안 들어 습기가 찬다. 불결하고 부정한 욕실을 집 한가운데에 두면 집주인의 몸이 약해진다. 집의 중앙은 소중한 곳이므로 거실이나 가장의 방 등 중요한 방을 배치해야 길하다. 위층이 주로 개인 방이나 침실이어서 프라이버시를 중히 여긴다면 현관 안쪽이나 식당·부엌 근처에서 올라갈 수 있게 계단을 설치한다. 욕실이나 화장실을 침실 가까이 만든 경우도 이 위치가 편리하다. 이층에 손님방이 있다거나 프라이버시가 그다지 문제 되지 않는다면 현관에서 직접 올라가게 하는 것이 편리하고 공간의 이용에서도 효율적이다. 계단은 집의 중앙에 설치하지 않는 것이 원칙인데, 가운데에 두면 집을 둘로 갈라놓아 단일성이 깨지며 가족의 행복에 금이 간다고 한다. 양택 풍수에서 흉가는 화해택(禍害宅), 절명택(絶命宅), 오귀택(五鬼宅), 육살택(六殺宅)으로 구분 짓는다. 따라서 전원주택 내에 흉한 방위의 방이 있다고 해서 이사를 갈 수는 없다. 이럴 경우 풍수 비보에 지혜를 기울여 그 방의 흉함을 덜어주어야 한다. 좋은 기는 혈액 흐름을 촉진, 산소 운반 능력을 향상시켜 건강을 지켜 주고, 또 환자에게는 병을 치료해 준다. 흉한 방을 복(福) 방으로 바꾸는 방법으로 방문의 위치를 변경하거나 또는 소품을 이용하는 경우가 있다. ●기는 방문을 통해 침실로 들어가므로 현관과 방문의 방위적 조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따라서 방문이 흉하게 배치됐다면 위치를 변경하여 길한 방위로 바꾼다.●방문의 위치를 변경하기 어려울 경우는 방 안에서 침대와 책상의 위치를 방문의 방위와 조화시켜 길한 방위로 바꾼다.●거울이나 관엽식물 또는 그림·탁자 등을 이용해 기의 흐름을 바꿔 준다.●살기(殺氣)를 방지하기 위해 민속 신앙에서 전래하는 방법들을 차용한다.●조명과 벽지를 이용하여 생기를 북돋아준다. 글쓴이 고제희 님은고려대학교 생명환경대학원에서 조경학과 생태환경공학부 박사과정을 마치고, 2003년 대통령정책실 신행정수도건설추진기획단에서 풍수지리 자문 위원을 역임했습니다. 매일경제 및 한국경제 TV, SBS, EBS 등의 방송사를 통해 생활 속의 풍수 이야기를 들려주었으며, 풍수 전문 포털사이트 www.21fengshui.com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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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행풍수 인테리어 - 주거공간의 대안 생활풍수
- 바람과 물의 순환 이치〔天〕 그리고 땅의 형성 과정과 지질적 여건〔地〕을 연구하는 것이 바로 '풍수학'이다. 사람〔人〕이 자연 속에서 좀 더 건강하고 안락하게 살 터를 구하는 경험 과학적 학문인 풍수를 생활 속에 응용해 보자. 지질, 일조, 기후, 풍향, 물길, 경관 등의 자연 요소를 음양오행론(陰陽五行論)에 맞춰 관찰하고, 이들이 사람에게 미치는 다양한 영향을 파악하여 좋은 것만 생활에 이용하는 생활풍수가 현대 주거공간의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생활풍수 전문가인 대동풍수지리학회 고제희 이사장이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생활풍수의 다양한 사례를 들려준다. 우리 생활 속에서 조화조상의 묘지를 자연의 생명력이 왕성한 곳을 택하여 영혼과 유골의 편안함을 구하거나, 주택을 길지(吉地)에 지어서 지력(地力)에 의해 건강과 행복을 꾀하거나, 마을과 도시가 들어설 부지를 선택하거나, 혹 부지와 건물 내부에 생기(生氣)가 부족하거나 결함이 있다면 지혜를 기울여 살기 좋은 터로 바꾸는 것 등은 풍수지리학을 일상에 활용하는 방법들이다. 그러나 근대화 이후, 우리의 주거문화는 크게 변모하였다. 이는 일상적인 생활문화가 달라졌으며, 도시가 주된 생활 근거지로 자리 잡았음을 반영하는 현상이다. 당연히 생활문화의 변화와 함께 가족 구조도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바뀌었다. 그 결과 우리는 이웃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높은 담과 든든한 빗장으로 외부 세계와 분리된 삶을 살고 있다. 수천 년 동안 자연 속에서 이웃과 벗 삼아 살던 우리네 삶의 형태가 달라진 것이다. 더욱이 근래에 와서는 아파트라는 주거 양식을 선호하면서 편리함과 기능성만을 극대화한 메마른 주거공간으로 치닫고 있다. 다행히 요즘 들어 이러한 공간문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그 대안으로 풍수를 제시하고 있다. 근대화 과정과 굴곡의 역사를 지나면서 사라졌던, 풍수지리가 21세기 우리 생활 속에서 어떻게 이러한 기능 위주 공간의 단점을 치유하면서, 동시에 그 공간문화와 적절한 조화를 이루면서 펼쳐질지 기대하는 바가 크다. 주거문화와 깊은 연관을 가졌던 풍수설은 양택풍수로, 그 이론에 따르면 배산임수의 택지를 가장 좋은 집터로 제시하고 있다. 풍수지리는 궁궐, 개인주택, 서원, 사찰, 능 등에 광범위하게 적용되었다. 옛 주거문화와 깊은 연관풍수지리설은 신라시대 이후, 우리의 삶 깊은 곳에 영향을 끼쳐 왔다. 우리나라 전통사회에서 환경문화에 영향을 준 풍수는 대부분 도읍이나 주거지의 입지를 정할 때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주거문화와 깊은 연관을 가졌던 풍수설은 양택풍수(陽宅風水)로, 그 이론에 따르면 배산임수(背山臨水)의 택지를 가장 좋은 집터로 제시하고 있다. 배산임수의 택지에 주택을 짓고 정원을 조성함으로써, 자연적으로 정원은 전정(前庭), 내정(內庭), 후원(後園), 별정(別庭)의 형태로 나타났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만 독특하게 나타난 후원 양식도 풍수지리사상의 영향으로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전통 건축 배치 형태도 풍수지리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뿐만 아니라 조경 수목을 심는 데도 수목의 상징성과 풍수지리사상을 결부시켜 수목이 심어질 위치나 방향에 따라 여러 가지 제약을 받아 왔다. 이처럼 풍수지리는 궁궐, 개인주택〔私宅〕, 서원, 사찰, 능 등에 광범위하게 적용되었다. 고려 시대에는 왕궁의 터를 결정하는데 '지리도참사상'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역사적 기록에 나타나며, 왕도 건설에 있어서는 《주례고공기》에 나오는 좌조우사면조후시(左祖右社面朝後市)의 원리를 적용하면서 풍수지리에 맞는 배산임수의 터를 잡았다. 조선시대 왕도를 한양으로 정한 데에도 풍수지리가 크게 영향을 끼쳤으며, 정궁인 경복궁을 중심으로 《주례고공기》의 왕도 배치 계획을 적용하였다. 주택, 마을, 도시가 자리 잡는 터뿐만 아니라 집 내부의 건물 배치, 마당, 울타리, 나무 심기, 우물파기 등에도 적용하였다. 또한 사찰 조성 시에도 적용했으며, 서원을 지을 때도 매우 비중 있게 적용하였다. 풍수학의 본질은 자연이 지닌 왕성한 생명력에 감응함으로써 인생의 건강과 행복을 꾀하는 데 있다. 이 생명력을 생기라 부르는데 물, 온도, 바람, 햇빛, 양분과 같은 요소가 복합된 개념으로 음기와 양기로 나뉜다. 자연의 생명력을 기본으로풍수학의 본질은 자연이 지닌 왕성한 생명력에 감응 받음으로써 인생의 건강과 행복을 꾀하는 데 있다. 이 생명력을 생기라 부르는데 물, 온도, 바람, 햇빛, 양분과 같은 요소가 복합된 개념으로 음기(陰氣)와 양기(陽氣)로 나뉜다. 음기는 땅속에서 취하는 생기(물·온도·양분)로 만물의 탄생을 주관하고, 양기는 땅 위로 흘러 다니는 생기(공기·햇빛·온도)로 만물의 성장과 결실을 주관한다. 바람과 물의 순환 궤도와 양〔陽氣〕은 사람의 생명 유지와 활동에 영향을 미치고, 땅의 생명력〔陰氣〕 역시 왕성하고 쇠약한 정도에 차이가 있다. 음기는 만물을 탄생시키는 물, 온도, 양분과 같은 기운이 복합된 개념으로 자연적인 상태라면 바위, 돌, 자갈, 모래, 흙 중에서 적당량의 물을 품을 수 있는 물질은 흙뿐이다. 풍수경전인 《장경》도 다음과 같이 말한다. 夫土者氣之體 무릇 흙은 생기의 몸체로써,有土斯有氣 흙이 있으면 생기가 있는 것이다.氣者水之母 또 생기는 물의 어머니로서有氣斯有水 생기가 있으면 물이 있는 것이다. 물이 생기의 한 요소로써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과다한 것도 풍수에서는 꺼린다. 조선시대에 묘에 물이 찬 일로 겪은 불행한 일이 세종의 영릉(英陵)과 연관 지어 전해진다. 세종은 살아생전에 자신의 수릉(壽陵) 터를 헌릉(獻陵) 옆에 정하였다. 강남의 대모산에 소재한 헌릉은 태종과 원경왕후(元敬王后)를 모신 쌍릉으로 세종의 부모 능이다. 소헌왕후가 승하하자 지관들이 길지가 아니라며 재고를 요청했으나, 세종은 다음과 같이 말하며 그대로 시행하였다. "다른 곳에 복지를 얻는 것이 선영 곁에 장사하는 것만 하겠는가. 화복의 설은 근심할 것이 아니다. 나도 나중에 마땅히 같이 장사하되 무덤은 같이하고 실(室)은 다르게 만드는 것이 좋겠다." 하지만 예종 때에 세종의 능을 여주로 이장하려고 땅을 팠더니 사체는 물속에 잠겨 있고, 장사 지낸 뒤 19년이 흘렀으나 육탈(肉脫)은 전혀 진행되지 않은 채 수의까지도 썩지 않았다고 한다. 여기서 세종 승하 후 영릉이 이장되기까지 조선 왕실은 비극이 끊이질 않았다.문종은 재위 2년 만에 건강이 악화되어 39세에 승하하고, 단종은 계유정난으로 폐위된 뒤 17세에 사사(賜死) 되고, 세조는 52세에 승하했고, 뒤를 이은 예종은 몸이 쇠약해 20세로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영릉을 여주로 옮기자, 이장한 능지가 풍수적 명당이라, 그 덕택으로 조선의 국운이 백 년이나 더 이어졌다는 '영릉가백년(英陵加百年)'이란 이야기가 나왔다.21C 땅보다 향 명당이 중요이처럼 음기를 받아 태어난 생물은 땅 밖의 양기에 의해 성장하고 결실을 맺는다. 여기서 양기는 공기, 햇빛, 온도와 같은 기운이 복합된 개념이다. 이 중에서 공기(바람)가 가장 중요하다. 거센 바람이 한 방향에서 계속 불어온다면 사람은 반대쪽으로 얼굴을 돌린다. 너무 세게 바람이 불어오면 숨을 쉬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밀폐된 공간에 오래 있으면 공기가 희박해 질식한다. 따라서 적당량의 공기만이 생기 역할을 담당하고, 너무 세거나 적다면 생물은 오히려 질식해 죽는다. 음기와 양기 설명도 여기서 어느 장소에 서 있다면, 바람이 사방에서 마구잡이로 불어오는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바람은 주변의 산천 형세를 따라 일정한 순환 궤도를 그리면서 움직인다. 현재의 산천은 46억 년 전, 지구가 처음 생겼을 당시의 모습은 분명히 아니다. 산천은 융기와 침강 그리고 침식과 퇴적 작용을 반복하며 변해 왔다. 또 바람과 물의 기계적·화학적 풍화작용에 의해 지형과 지질은 변해왔다. 현재의 산천은 주로 바람과 물의 풍화작용에 의해 생겨난 것들이고, 바람과 물은 산천의 모양에 따라 움직이며 산천을 변화시킨다. 따라서 혈장 주변을 순환하는 바람의 세기 중에서 그곳의 생물이 건강하게 성장하여 큰 결실을 맺기에 알맞은 양의 공기를 취할 수 있는 선택된 방위가 있다. 풍수학은 이 방위를 좌향(坐向)이라 부른다. 좌(坐)는 사물의 뒷면을 말하고, 향(向)은 사물의 앞면을 일컫는다. 사람이라면 배꼽을 중심으로 머리 쪽의 방위를 '좌'라 하고, 다리 쪽의 방위를 '향'이라 부른다. 그리고 어느 장소에서 어떤 좌향을 선택할 것인가는 청나라 조정동(趙廷棟)에 의해 '88향법'으로 법칙화되어 전해지고, 88향법에 맞게 놓아진 묘나 주택을 풍수학은 '향 명당'이라 부른다. 그리고 어떤 터라도 그 터에 영향을 주는 양기의 순환 궤도와 양을 살펴 가장 알맞은 세기의 양기를 취하는 향 명당은 추가적인 비용이나 희생 없이 선택이 가능하다. 현대는 경제 내지 법적인 제약 때문에 마음에 흡족한 길지를 구해 묘나 주택을 설치하기 어렵다. 그 결과 21세기의 풍수학은 '땅 명당'보다는 '향 명당'을 선택하는 것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현대는 경제 내지 법적인 제약 때문에 길지를 구해 묘나 주택을 설치하기 어렵다. 21세기의 풍수학은 '땅 명당' 보다는 '향 명당'을 선택하는 것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자연과 함께 하는 건강한 삶사람은 태어나 자란 지역 환경(풍토·기후·산천 등)에 적응하도록 체질이 유전적으로 변화했다. 주택은 사람의 안전과 건강 그리고 인성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건물의 주요 구조부가 방위별로 서로 조화롭지 못하다면, 질병과 재산의 손실 그리고 인명의 피해 등 여러 불행한 일이 생긴다고 본다. 이러한 풍수 이론은 건축의 방위론, 즉 공간에 대한 동양의 철학적 해석이란 의미를 지닐뿐만 아니라 과거 사람들이 자연 속에서 집을 짓고 살면서 생활 속에서 터득한 경험을 법칙화한 것이다. 최근에는 동양뿐만 아니라 서양에서도 풍수지리가 유행하고 있다. 특히 LA의 미국인들은 주택을 거래하기 앞서 풍수 전문가와 상의하는 사람이 급격히 늘어났다. 풍수 때문에 거래가 깨지는 경우, 심지어는 풍수 전문가로부터 보증서를 받은 다음에야 집을 내놓는 이들까지 생겼다고 한다. LA 지역의 노스트롬 백화점은 풍수학적으로 보아 백화점에 들르는 것만으로도 기와 복을 얻을 수 있다고 선전하고 있다. 앞으로 미국에서 부동산 매매에서 풍수의 영향력은 계속 증대될 추세이며, 풍수 전문가들이 발행한 '풍수 보증서'가 유행할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있다. 과거 미신이라는 오명을 벗어버리고, 21세기 풍수학은 주거 공간을 건강 공간으로 꾸미기 위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처럼 풍수학을 서구식 주거 공간에 접목시키면 생활환경이 좀 더 자연친화적으로 변모되며, 한국인의 유전적 체질과 인성에 맞게 되어 건강한 삶을 약속받을 수 있다. 글쓴이 고제희 님은고려대학교 생명환경대학원에서 조경학과 생태환경공학부 박사과정을 마치고, 2003년 대통령정책실 신행정수도건설추진기획단에서 풍수지리 자문 위원을 역임했습니다. 매일경제 및 한국경제 TV, SBS, EBS 등의 방송사를 통해 생활 속의 풍수이야기를 들려주었으며, 풍수전문포털사이트 www.21fengshui.com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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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행풍수 인테리어 - 주거공간의 대안 생활풍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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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행풍수 인테리어] 자연주의적 삶의 보고, 풍수
- 집터나 묏자리와 달리 마을이나 도읍이 들어설 터가 생기 부족하거나 결함이 있다면 쉽게 떠날 수 없다. 따라서 우리 조상들은 비보(裨補)의 지혜를 기울여 살기 좋은 명당으로 바꾸어 살고자 했다. 새롭게 길지(吉地)를 구하지 않은 채 마을의 지리적 결함을 치유하고, 지기(地氣)를 바꾸어 지력(地力)을 회복시켰다. 비보 풍수(裨補 風水)란, 병든 땅이 있으면 풍수적 지혜를 기울여 다시 살기 좋은 터로 바꾸는 행위나 그 산물을 말한다. '동수 비보'는 마을로 불어오는 바람을 숲을 조성해 막거나 송림을 가꾸어 홍수와 방풍에 이용하고, '화기 비보'는 앞산이 불꽃 모양의 화산인 경우 화재를 염승하는 연못이나 해태상을 설치하고, '산천 비보'는 국가 왕업의 중흥을 위해 절·불상·탑을 세우고, '지명 비보'는 지명을 조화롭게 이름지어 좋은 기운을 붙잡아 두려고 했다. '수구 비보'는 마을의 지기가 흘러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마을 입구에 풍수 시설물을 설치했다.동수 비보마을이 강과 바닷가에 자리잡아 세찬 바람이 불어오거나, 마을을 에워싼 지세 중 북서방이 낮고 허하여 겨울철에 찬바람이 불어오면 입구 쪽에 바람을 막는 방풍림을 조성했다. 이것을 마을 숲[洞藪]이라고 한다.조선 초기에 맹사성이 안동 부사로 부임했더니, 그곳에는 젊은 남자들이 요절해 과부들이 많았다. 풍수지리에 뛰어난 맹사성은 낙동강의 물 기운이 발해서 불행한 일이 생겼다고 보고, 곳곳에 나무숲을 조성해 장수의 발복을 일으켰다.해안에 조성한 숲은 해일을 막을 뿐만 아니라, 그늘이 생겨 고기들이 모여드는 기능도 한다. 마을과 도읍의 중심에 천(川)이 통과해 여름에 홍수로 범람할 위험이 있다면, 흙둑을 쌓고 비탈면에 나무를 심어 사태를 막았다. 둑을 따라 조성한 나무숲이 자연스럽게 동수가 된 경우다.화기 비보산에 암반이 드러나 험준한 모양이거나, 마치 불꽃이 피어오르는 듯한 형상이면 화산(火山)이라 부른다. 이런 산은 문장가를 배출하는 효험이 있다. 또한 화산은 산이 불의 기운을 품고 있어 마을과 도읍에 그런 모양의 산이 보인다면 화재의 위험이 크다.풍수에서는 "보이는 살(殺)은 해롭고, 보이지 않는 살은 해롭지 않다." 라고 했다. 한눈에 조망하는 국세라면 아무리 멀다 해도 화기가 미친다고 보았다. 따라서 방어를 해야만 한다. 그렇지만 화산의 규모가 크면, 그 산을 차단하고 은폐시킬 대규모 설비를 구축하기 어렵다. 그래서 화산의 영향을 극복할 방법을 다각도로 강구했다. 마을 앞쪽에 연못을 조성해 화기를 수기(水氣)로 제압하거나, 물의 신인 거북과 해태를 화산을 향해 배치함으로써 살기를 소멸시키거나, 또는 나무숲을 조성해 살기를 차폐하는 방법을 사용했다.산천 비보풍수지리는 땅을 살아 있는 생명체로, 땅도 사람과 같이 생로병사로 기운이 순환한다고 본다. 그러므로 살아 있는 땅에 문제가 생긴다면, 마치 병자를 치료해 건강한 사람이 되듯이 고쳐 쓸 수 있다.풍수의 생기는 산을 따라 흐르다 물을 만나면 전진을 멈추고 기를 응집하는데, 혈에 간직된 기는 바람을 맞으면 흩어져 버린다. 따라서 인간의 길흉화복에 영향을 미치는 생기와 감응을 키우거나, 장풍이 되지 못해 생기가 누수되거나, 쇠약한 상황이라면 풍수적 지혜를 기울여 지덕을 발동시켰다. 마을의 입지가 행주형(行舟形)에 해당된다면, 먼 항해를 위해 돛대를 상징하는 당간을 세웠다. 또 배의 전복을 막기 위해 우물을 파지 않았다.또한 생기는 흙을 따라 흐르고 흙에 머문다. 고개 마루는 양쪽에서 바람이 불어오고 사람의 왕래가 잦은 곳이라 흙이 유실될 가능성이 많다. 따라서 흙의 유실을 막기 위해 고개 마루에 돌을 쌓아 놓은 뒤 '돌을 훼손하면 재앙을 입는다'는 소문을 퍼트렸다. 마을의 성황당은 풍수적 비보물이 민간적 신앙물로 자리잡아 보호를 받는다.지명 비보지명 비보는 비보의 효과를 얻고자 하는 심리적이고 상징적인 비보 형태다. 대개 실제적인 비보의 형태를 시행한 후, 그 효과를 증대시키기 위해 부가하는 경우가 많다. 독자적인 기능을 할 때는 지세를 진압(鎭壓)하거나, 형국 보완의 기능을 하는 예가 많다.특히 고을 비보 지명의 경우에는 봉항 형국과 관련한 비보명이 영천, 선산, 진주 등지에 유사한 구조로 나타난다. 또 비봉형(飛鳳形), 무학형(舞鶴形)은 모두 신비스러운 새이므로 성인군자가 나오고, 매우 축하할 때가 아니면 춤추지 않는다. 이런 모양의 마을이 있다면, 그 모양에 상응하는 훌륭한 인물이 나올 운명이라고 본다. 그러나 새는 날아가기 쉽게 때문에 어떻게 해서라도 영구히 날아가지 못하도록 서식지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이와 같이 땅이 사람에게 미치는 힘은 유형이 갖는 영력(靈力)과 동일시된다. 행복을 가져올 운명을 영구히 누리려면, 그것이 힘을 발휘하도록 염승을 해야 한다.경북 영천에는 비봉산이 있고, 봉황을 붙들어 두기 위해 봉이 좋아하는 대나무의 이름을 따 조산을 '죽방산(竹防山)'이라 부른다. 태안의 안흥량(安興粱)은 본래 난행량(難行梁)이라 불리었는데, 전라도에서 생산된 곡식을 한양으로 운반하는 조운선이 이곳에서 자주 파손되어 손실이 컸다. 그래서 이름을 '안흥량'으로 고쳐 불렀더니 뱃길이 편안해졌다. 충주시의 계명산(鷄鳴山)은 진산으로 이 산에 지네가 많이 살아 주민의 피해가 컸다. 그러자 어떤 도사가 지네와 닭은 앙숙이니 산의 이름을 '계족산(鷄足山)'으로 바꾸라고 했다. 그대로 따랐더니 지네는 없어졌으나 충주에서 큰 부자나 큰 인물이 태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종전의 이름인 계명산으로 불렀다고 한다.수구 비보이중환의 《택리지》에서, "어찌하여 지리를 논하는가? 먼저 수구(水口)를 보고 다음은 들의 형세를 본다. 다음에는 산의 모양을, 다음은 흙의 빛깔을, 다음은 조산(朝山)과 조수(潮水)를 본다. 무릇 수구가 엉성하고 널따랗기만 한 곳은 비록 좋은 밭이 만 이랑이고, 천 칸의 집일지라도 다음 세대까지 내려가지 못하고 패가한다. 집터를 잡으려면 반드시 수구가 꼭 닫힌 듯하고, 그 안에 들이 펼쳐진 곳을 눈여겨보아서 구할 것이다." 라고 했다.전통적으로 마을의 입지를 정할 때는 마을로 들어서는 입구가 배가 지나다닐 수 있을 정도로 좁은 수구라면 지리적으로 우수한 곳이다. 따라서 마을 입구 넓은 곳은 지기의 누수를 막기 위해 여러 비보책을 강구했다. 조산 숲은 마을을 에워싼 청룡과 백호의 기세가 약하면 인위적으로 흙 동산을 쌓고 나무숲을 조성했다. 마을 진입로의 경사가 급해 기가 누수되는 것을 막기 위해 수구 부에 돌탑을 조성하기도 했다. 또한 마을 입구에 느티나무와 은행나무 같은 정자나무를 심거나 경제력이 약한 마을은 풍수지리와 민간 신앙을 결합한 형태로 조산과 돌무더기 대신에 솟대, 선돌, 장승 등을 세웠다.지금까지 열두 번에 걸쳐 풍수에 대해 알아보았다. 동양의 전통 학문은 서구의 과학 중심의 학문에 가려져,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면이 있었다. 최근 들어서야 산업 문명이 낳은 인구 폭발, 환경 오염, 자원 고갈이란 심각한 환경 문제에 직면하자, 그 대안으로 오히려 서구에서 주목을 받게 되었다. 즉, 동양의 정신 문화가 서구 기술 문명의 문제점을 치유하고, 나아가 인류의 번영된 미래를 위한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다. 그 선두 중에 하나가 풍수다. 그것은 풍수가 가진 자연 친화적인 측면 때문이다.풍수는 자연이 가진 내재 가치와 고유한 질서를 존중하며, 자연과 인간이 서로 어울려 가며 함께 사는 것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즉, 인간은 자연 생태계 전체와 유기적 조화를 이룰 때 풍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기 때문이다.중국 천진대의 샹 쿠오(Shang Kuo)교수도 "풍수는 역사적인 진리를 가득 담고 있으며, 현대의 조경학과 생태 건축학의 기본 방향 및 원칙과 부합되는 내용이 풍부하여 21세기 인류에게 공헌할 바가 많다." 라고 했다.물질적 풍수만이 사회적 성공의 판단 기준이 된 오늘, 우리들에게 풍수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제는 다시 자연친화적인 삶을 찾아 몸과 마음의 건강을 되찾고, 부모를 공경하고 자식을 양육하며, 땅의 가치를 재인식하며, 국토 개발에 앞서 자연 생태계와의 조화를 먼저 고려해야 한다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한번쯤 되새겨볼 가치관이 아닐까 감히 생각해 보며 글을 맺는다.田글 고제희 <대동풍수지리학회 이사장>고제희 님의 오행 풍수 인테리어는 이 달로 연재를 마침니다. 일 년간 귀한 글을 연재해 주신 고제희 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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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행풍수 인테리어] 자연주의적 삶의 보고, 풍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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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행풍수 인테리어] 마을과 도읍의 풍수지리
- 생기 왕성한 곳에다 묘지를 잡는 방법과 과정을 산, 물, 방향, 사람 등에 맞추어 논리적으로 체계화시킨 것이 '음택(陰宅) 풍수론'이다. 그리고 주택의 구성 요소 중 사람의 성장과 발달에 영향을 미치는 대문, 안방, 부엌의 방위별 배치를 조합해 주택 내에 생기가 극대화되도록 이론화시킨 것이 '양택(陽宅) 풍수론'이다. 그리고 마을과 도시의 부지를 선택하는 '양기(陽基) 풍수론'은 주로 배산임수(背山臨水)의 터를 찾되, 가급적이면 외부와 차단되면서 내부 공간이 넓은 곳을 선호했다.주택 역시 땅에 기반을 두고 짓는데, 터와 주위 환경이 사람 살기에 조화로워야 집 안에 신령한 기운이 깃들어 건강하고 행복하다고 보았다. 특히 안방과 대문 그리고 부엌의 위치가 방위적으로 서로 상생(相生)의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보았다.풍수지리학은 사람이 생활 경험에서 터득한 지리적 지혜를 바탕으로 좋은 거주 환경(주택, 묘지)을 선택하자는 실용 학문이지, 결코 발복(發福 : 운이 틔어서 복이 닥침)만을 기대하는 사상이 전부는 아니다.우리 조상들은 사는 터의 기가 허하거나 결함이 있으면 풍수적 비보(裨補 : 도와서 모자라는 것을 채움)를 기울여 살기 좋은 터로 만들었다.동수비보(洞藪裨補) : 송림을 가꾸어 홍수와 바람을 막음.화기비보(火氣裨補) : 앞산의 강한 화기를 누르기 위해 연못이나 해태상을 설치함.산천비보(山川裨補) : 국가 왕업의 중흥을 위해 절, 불상, 탑을 세움.지명비보(地名裨補) : 지명을 조화롭게 이름지어 좋은 기운을 붙잡아 둠.그 예로 예천에는 금당 숲을 조성하고, 관악산의 화기를 제압하기 위해 광화문에 해태상을 세우고, 화순 운주사에 천불천탑을 세우고, 영천의 비봉산은 봉황을 붙들어 두기 위해 봉황이 좋아하는 대나무의 이름을 따서 조산을 조방산(竹防山)이라고 불렀다. 또한 길을 내고, 문을 만들고, 때론 길을 막기 위하여 소나무를 심었다. 그 외에도 궁성 내에 연못을 파고, 심지어 담을 쌓을 때도 풍수학에 따라 좋음을 따랐다.이렇듯 풍수학은 역사적으로 실생활에 광범위하게 응용되고, 또한 생활 규범으로 자리잡았으니, 우리 조상들이 오늘의 과학만큼이나 믿고 따른 사상임이 분명하다.살기 편한 마을 선택의 기준우리 조상들은 마을을 선택할 때도 다음과 같은 기준을 가졌다.먼저 일반적인 조건으로 그 첫째가 입향시조(入鄕始祖)다. 마을은 부락민이 함께 생활하는 공간으로, 가족을 포함한 친족이나 이웃사람이 지연(地緣)을 함께 하는 생활 공동체다. 그 마을에 처음 들어와 터를 잡고 산 사람이나 동성 집단을 일컬어 '입향조(入鄕祖)'라고 부른다.마을을 선택할 때는, 먼저 가까이 있는 산을 살펴서 대를 이어 사람이 살기에 편안한 제반 조건을 두루 갖췄는지를 생각했다. 집이 있어 조상의 묘를 두고 돌보기가 수월하되, 풍수적으로 명당을 선호했다.둘째로 농사짓고 살기에 편리한 곳을 찾았다. 산이 병풍을 두르듯 마을을 감싸고, 문전옥답(門前沃畓)이 넓게 펼쳐져 있고, 농사철에는 두레와 품앗이로 일손을 구하기 쉽고, 또한 자식을 낳아 기르고 가르치기에 용이한 곳을 선택했다.셋째로 사람이 훌륭하려면 태어나 자란 산천의 기운이 순조로워야 한다는 '인걸지령(人傑地靈)'이란 사상도 따랐다. 풍수 경전인 《설심부》에는 "인걸은 산천의 기운을 받아 태어나는데, 산천이 생기롭고 모양이 좋으면 훌륭한 인재가 배출된다. 산이 수려하면 귀인이 나고, 물이 좋으면 부자가 난다." 라고 기록돼 있다. 이처럼 우리 조상들은 마을을 선택하여 사는 데에 신중을 기했다.다음으로는 배산임수의 기준을 가졌다. 마을이 입지할 터는 산과 평지 사이의 수계가 있는 완만한 경사지, 즉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지형을 선호했다.배산은 북쪽에서 내려오는 찬바람을 막아 주면서 땔감을 구하기 편리하다. 조양(朝陽)은 전망과 일조량을 좋게 하고, 완만한 경사도는 홍수 피해를 막을 수 있으며, 숲은 물과 흙을 보호하여 미기후를 조절해 준다.임수(臨水)는 여름에 남쪽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이하고, 근수(近水)는 수운 교통과 생활의 편리를 가져다 주며, 관개 용수뿐만 아니라 수중 양식도 얻을 수 있다. 또한 토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넓은 사적 공간을 보장받는 외부 공간의 창출 그리고 남향 배치에 의한 일조와 통풍을 합리적으로 모색하도록 배려했다. 과수와 경제림은 소득과 연료림(練料林 : 땔감을 산출하는 숲)을 제공해 요컨대 좋은 마을 부지는 농업, 임업, 목축업, 어업 등의 산업에 있어서 양호한 생태 순환과 자연을 취할 수 있는 곳이었다.마지막으로 마을의 입지로 중요하게 생각한 기준은 진산(鎭山)의 유무이다.우리 조상들은 마을이 들어서려면 마을을 수호하고, 지덕(地德)을 발동시키는 산이 있어야 하며, 그 산의 정기가 흘러드는 곳에 마을이 위치해야 동네가 편안하고 사람도 행복하다고 믿었다. 이 산을 '양기(陽氣)를 보호하는 산'이란 뜻에서 진산이라 부른다.진산이 없는 평야나, 진산이 멀리 떨어진 마을이라면 큰 나무를 당산목으로 삼아 하늘의 보호를 받고자 했다. 따라서 진산은 마을 사람들과 집에 지기를 공급하는 '생기 탱크'와 같은 역할을 담당하는데, 권위와 위엄을 갖춘 채 마을 뒤쪽에 제대로 자리를 잡아야 길하다. 그리고 진산은 혼자가 아니라 좌청룡·우백호 등 사신사(四神砂)에 의해 보호받는 형세를 갖추어야 그 위상이 정립되고 품위도 갖추게 된다.그 결과 진산은 마을의 입지 선택에서 핵심적으로 고려했고, 또한 마을 설계에서 중심 축 역할을 담당했다.거주할 곳의 선택 기준마을 부지는 묘가 들어서는 산골짜기의 소규모 땅이 아니라, 토지가 상당히 넓어야 하며 생활에 필요한 여러 용품을 공급받기에 편리한 곳이어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넓은 형세라도 풍수의 원칙인 장풍득수(藏風得水)와 양래음수(陽來陰受) 같은 생기가 충만하지 못하다면, 그곳은 풍수적으로 결함을 지닌 곳이다.예로부터 마을과 도읍의 입지를 선택할 때, 《택리지》에 나타난 복거지(卜居地)의 선정 기준을 가장 권위 있게 보았다. 《택리지》는, "거주할 곳을 선택할 때에는 우선 지리(地理)를 살피고, 그 다음에는 생리(生利), 인심(人心), 산수(山水)를 관찰했는데, 네 가지 중 하나라도 모자라면 낙토가 될 수 없다." 라고 하였다. 지리가 아무리 좋아도 생리가 모자라면 오래 살 곳이 못되고, 생리가 비록 좋아도 지리가 나쁘면 또한 오래 살 곳이 못되며, 지리와 생리가 함께 좋아도 만약 인심이 착하지 않으면 반드시 후회할 일이 생긴다. 따라서 인심이 나쁘면 살 곳으로 꺼리고, 또한 가까운 곳에 마음의 번잡함을 씻어낼 산수 좋은 곳이 있어야 살 만한 곳이라고 보았다.●《택리지》의 네 가지 복거 조건먼저 수구(水口)를 꼽았다. 마을로 들어서는 입구인 수구가 거칠게 이지러지고 넓게 비어 있으면, 아무리 좋은 논이 많고 큰 집이라도 다음 세대까지 전하지 못하며 패가(敗家)한다. 그러므로 백가천가(百家千家) 모여 살 마을로 삼으려면, 반드시 수구가 꼭 닫힌 듯하고 안으로 들어가면 들판이 넓게 펼쳐진 곳을 구해야 한다. 산 속은 수구가 관쇄(關鎖)된 부지를 얻기 쉬우나, 넓은 들판이라면 수구가 관쇄된 입지를 선점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이 경우에는 거꾸로 흐르는 역수(逆水)를 귀하게 보고, 수구 지점에 물을 가두어 놓으면 생기도 함께 머물러서 길하다고 본 것이다.다음으로 야세(野勢)를 보았다. 사람은 양기를 받아야 살고, 양명한 빛은 하늘에서 비추니 만약 하늘이 잘 보이지 않으면 살 곳이 못 된다. 들은 넓어야 터가 좋고, 햇빛과 달빛 그리고 비바람을 잘 받는 곳이라야 훌륭한 인물이 나오며 질병이 적다. 특히 산이 사방에 높이 솟아 해뜨는 것을 보기 어렵고, 해가 늦게 뜬 후 일찍 지며, 밤에도 북두칠성을 보기 어려운 곳은 사람에게 병이 많다. 그러므로 사신사의 국세는 갖추되 부지가 협착하지 말아야 한다.토색(土色)도 중요한 마을의 입지 기준으로 보았다. 땅의 색깔이 길하지 않으면 인재가 나오지 않는다. 산이나 물가를 가리지 않고 땅 색이 좋으며 샘이 깨끗하면 살만한 곳이다. 만약 흙이 누렇고 질면 사토(死土)로 물도 깨끗하지 못하다. 이러한 곳은 살 곳이 못된다.마지막으로 거론한 것은 조산조수(朝山朝水)이다. 마을이 입지하려면 물이 있어야 식수로 이용할 수 있다. 풍수학에서 물은 재물을 뜻하고, 물가에는 부자가 많고, 산 속이라도 물이 있으면 살 수 있다. 조산에 석봉(石峯)이 있고 떨어지는 형태나 엿보는 모습이며 장곡충사(長谷沖砂)가 보이면 살 곳이 못 된다. 조산이 멀리 보이면 맑고 가까이 보이며 밝은 산이면 길하다. 조수(潮水)는 물 밖의 물이니, 작은 시내나 강은 역조(逆潮)하면 좋고, 큰 강에 이르러서는 역수(逆水)하지 말아야 한다. 또 물은 용맥을 만나 음양이 합해야 하고, 구불구불 다가오면 좋으나 일직선으로 쏘는 듯 다가오면 흉하다.●《산림경제》의 살 만한 곳먼저 이웃이 좋은 곳에 살아야 한다고 했다. 사람이 거주지를 정할 때는 먼저 이웃을 잘 골라야 한다. 무슨 사고가 당장 일어나지는 않아도, 그런 곳을 멀리해 후환을 대비하는 것이 현명하다. 이웃을 보아 살 곳이 못 되는 경우는 다음과 같다고 예를 들었다.·사찰이나 사당, 신당, 불당이 있는 근처·고관대작이나 큰 부자가 사는 근처·앞뒤로 큰 강이 가까운 곳·초가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곳·불량한 무리들의 소굴이 되어 있는 곳·광대들이 섞여 사는 사이·젊은 과부나 건달들이 사는 근처미풍양속이 깃들인 마을을 찾아 살면 이웃이 덕이 있다. 이런 곳은 어질고 후한 인심을 지닌 마을이라는 말을 듣는 것 이외에 자신도 안락한 복을 누릴 수 있다고 하였다.다음으로 꼽은 것은 집의 구조와 꾸밈이 길해야 한다고 했다. 집을 지을 때는 곳곳마다 밝고 환하게 할 것이고, 너무 깊숙하거나 그늘지게 해서는 안 된다. 정원에는 나무가 너무 넓은 지역을 차지하거나 빼곡이 심어서도 안 된다. 그리고 뒷문은 절대로 열지 말고, 다만 앞쪽의 문 하나를 열어둠으로써 사람들이 드나들 때 반드시 외청(外廳) 앞을 거쳐가도록 해야 간사한 무리들이 함부로 드나들지 못하며 환란도 미연에 방지한다고 하였다. 살다가 담이 무너진 곳이 있으면 반드시 고쳐 쌓아야 하고, 도둑 등을 경계하기 위해 담 가까이에 나무를 심어 사람들이 담을 넘나들 때에 사다리 역할이 되게 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위와 같이 우리 조상들의 삶의 지혜 속에서도 현대를 살아가는 생활 속의 지침을 얻을 수 있다.田글 고제희 <대동풍수지리학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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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행풍수 인테리어] 마을과 도읍의 풍수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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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행풍수 인테리어] 소문난 명당을 찾아서-구례 운조루, 안동 의성 김씨 종택
- 많은 사람이 살기 좋은 아늑한 집을 소망하면서도 주먹구구식 시행착오를 되풀이하고 있다. 환경·풍토·습관·생활 양식이 전혀 다른 외국 것을 모방하여 이식하기도 하고, 혹은 일시적 유행을 좇고 있다. 심지어 사람이 집의 주인이 아니라, 물량적으로 획일화·규격화되어 가는 집이라는 구조물의 부속품처럼 타율적으로 집에 눌려서 지내는 비극적이랄까 희극적인 양상마저 생기는 실정이다.예전에 한 풍류인(風流人)은 "봄을 찾아서 들로 산으로 진종일 헤매다가 허탕을 치고 기진맥진하여 집에 돌아와 보니, 희한하게도 집 울타리에 핀 매화나무가지 끝에 봄은 이미 무르익었더라"고 했다. 이처럼 아늑하고 포근한 자기 집을 소원하면서 이제라도 집터를 물색하는 사람, 집을 지으려는 사람, 집을 사려는 사람, 집을 소개하려는 사람, 집을 수리하거나 혹은 남의 집을 임대하려는 모든 뜻 있는 사람들에게 울타리에 핀 흰 매화꽃처럼 풍수지리가 기대 이상의 기준과 지침이 되고, 실용적으로 유익한 도움이 됐으면 한다.이번 호에는 이처럼 자연 속에서 편안한 삶을 추구하고, 그 속에서 자연을 닮은 집을 짓고 산 우리네 조상들의 지혜를 살펴보기로 한다. 그 중에서 명당으로 소문난 유명 고택(古宅) 두 군데를 순례해 보자.구례 운조루-금환낙지에 자리한 99칸 집구례군 토지면 오미리에 있는 '운조루(雲鳥樓)'는 조선 중기의 주택으로, 중요민속자료 제8호다. 1776년(영조 52) 삼수부사와 낙안군수를 지낸 유이주가 건립했다고 전한다.이 집터는 풍수설에 따르면 '금환낙지형(金環落地形)'이라 하여, 예로부터 명당으로 불렸다. 산자락이라 사태의 위험이 있고 고인돌마저 널려 있어 이곳 사람들은 개간을 꺼리던 자리였다. 1776년 이곳에 집을 짓기 위해 땅을 파던 중 거북처럼 생긴 돌이 나왔다. 길이 25센티미터, 높이 12센티미터, 머리 3.5센티미터의 이 돌은 집을 짓고 1782년 함을 만들어 가보(家寶)로 전해 왔으나 1989년 도둑이 들어 훔쳐갔다. 이 집은 1776년 9월 16일 상량식을 가졌고, 6년 만인 1782년 유이주가 용천(龍川)부사로 있을 때 완공됐다.운조루의 사랑채는 큰사랑·아래사랑채로 나뉜다. 주인은 큰사랑채에 거처하면서 손님을 맞거나 손님을 재웠다. 큰사랑채 서쪽에는 세 방향이 탁 트인 누마루(운조루)가 있어서 여름 거처로 쓰였다.안채는 사랑채 사이의 중문을 통해 들어간다. 안주인이 거처하며 자식들과 며느리가 산다. 부엌, 찬칸, 곳간, 대청 들이 'ㄷ'자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다. 남쪽 행랑채는 솟을대문을 중심으로 담 대신 18칸이 일직선(줄행랑)을 이루고 있다. 지금은 헛간과 창고, 마구간 등으로 쓰이지만 옛날에는 노복들이 살았다. 솟을대문 동쪽으로 작은 문이 있어서 옛날에는 안주인이 출입했다.유이주는 이곳 집터를 닦을 때 거북처럼 생긴 돌이 나와 금귀몰니(金龜沒泥)가 분명하다고 여겼다. 이 집에서는 금거북이가 부엌자리에 있다고 믿는다. 이 때문에 절대로 부엌바닥을 밖으로 쓸어내지 않으며, 바닥이 울퉁불퉁해도 그대로 두고 몇 년에 걸쳐 한 번씩 흙으로 메워 줄뿐이다. 집을 앉힐 때 부엌자리에 안방을 배치해야 할 구조였다. 하지만 거북자리에 안방을 두어 불을 때면 거북이가 말라죽는다 하여 안방을 오른쪽으로 돌리고 거북자리를 맨 땅 부엌으로 만들어 늘 습기가 있도록 했다.운조루에서 찾아본 풍수 지혜를 살펴보자. 집 뒤의 산에 기대는 집터를 잡는데(배산임수), 산기슭에 바짝 붙여 집을 지었다. 뒤에는 산이 있되 경사가 완만하며 일조와 함께 배수가 양호하고, 또한 산에는 수목이 무성하다. 수목은 물과 흙을 보호·유지하고,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여 쾌적한 미기후를 조성한다.앞이 낮고 뒤가 높은 집터를 풍수에서는 '진토(晉土)'라 하여 길하게 여긴다. 중국 진나라는 황하지역에 도읍을 정했는데 그곳은 북쪽이 높고 남쪽이 낮아 번성했으나, 양쯔강 유역에 도읍을 정한 초나라는 북쪽이 낮고 남쪽이 높아 미개한 나라로 끝났다.운조루는 대문 앞으로 계곡물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른다. 즉, 외당의 섬진강은 서류동출(西流東出)하는데 반해 운조루 앞의 물은 동류서출(東流西出)한다. 물의 흐름이 역행함으로써 지기(地氣)의 응집이 더 강하다. 또한 좌향은 남향으로, 남향집은 햇볕이 많이 들어 집에 양명한 기운을 북돋운다. 한국에서 남향집은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바람이 막혀 아늑한 집이 된다. 뒷산은 활처럼 굽었는데, 운조루는 휜 안쪽 중심부에 위치한다. 따라서 작지만 좌우로 청룡과 백호가 감싸안아 장풍이 용이하다.운조루 대문에는 호랑이뼈(현재는 도둑을 맞아 말머리뼈)를 걸어 두어, 잡귀가 집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았다. 풍수에서 잡귀를 막기 위해 엄나무를 대문 위에 걸치거나, 또는 문패를 밤나무로 하면 도둑이 들지 못한다고 한다.대문 밖에는 200평의 네모진 연못을 파놓고, 그 가운데에 섬을 두었다. 이것은 조산인 관악산이 화산이므로 화기(火氣)를 제압하기 위해 물을 가두어 놓은 풍수적 비보책(裨補策)이다.운조루는 내청룡이 짧아 수구가 허하다고 여겼던지 수구 가까이에 조탑(造塔)을 만들어 비보했다. 돌무더기로 수구막이를 한 것은 한국의 오랜 풍습이다.운조루는 중문 칸에 안채의 통로까지 겸한 큰 부엌을 두었고, 그 북쪽으로 사랑채와 안채를 잇는 쪽문을 따로 두었다. 또한 집의 규모에 비해 장식적 의장이 적어서 길하다. 풍수에서 집을 화려하게 꾸미면 마치 촛불이 마지막에 더 밝은 빛을 뿜어내는 것처럼 곧 쇠락할 징조로 여긴다.운조루의 대문 앞과 집 안에는 큰 나무가 없어 길하다. 나무는 흙에 함유된 물기를 빨아들여 집 안의 흙이 건조해지고 윤기를 없어지게 만든다. 또 사람이 가사(假死)상태로 잠을 자는 밤 동안 산소를 빨아들이고 이산화탄소를 내 보내 집 안에 산소의 부족을 초래한다. 집 안에 큰 나무가 있으면 '곤궁할 곤(困)'으로 가난해지고, 대문 앞에 큰 나무가 있으면 '막을 한(閑)'이 되어 집 안으로 좋은 기가 들어가는 것을 방해한다.대문과 중문, 중문과 안방의 문이 서로 일직선상에 놓이지 않아서 길하다. 문들을 일직선상에 두면 대문을 통해 들어온 바람이 곧장 방으로 들이닥친다. 따라서 기온 차에 의해 방 안의 사람에게 해를 끼치고, 또 직접 바라보이면 사생활이 침해되어 방 안에서도 불안을 느낀다.지기는 흙에 따라 흐르고 흙에 머물므로 집을 지을 때에는 흙을 파내고 땅을 평평하게 고르는 것을 꺼린다. 땅의 생긴 경사도에 맞추되, 경사면에는 돌계단이나 대를 높여서 자연스럽게 집을 층차감 있게 사랑채와 안채를 짓는다. 운조루는 자연적 지형을 그대로 살려 건물을 층차감 있게 지었다.안동 의성 김씨 종택-육부자가 과거에 급제한 명당경북 안동의 천전(川前) 마을에는 자손이 크게 번창하고 6부자가 나란히 과거에 급제했다는 명가(名家)가 있다. 바로 의성 김씨(義城 金氏)의 종가댁(宗家宅)이다. 김진(金璡, 1500∼1580)이 처음으로 집을 지어 살았는데, 터의 기운이 영험하여 아들 다섯 명이 모두 대과나 소과에 급제했고, 자기도 사후에 이조판서에 추증(追贈)됐다. 그래서 '육부자등과지처(六父子登科之處)'로 소문이 났다.이 종가댁은 조선 중기의 주택으로 총 55칸의 단층 기와집이다. 하지만 마당에 서서 보면 배산임수의 부지 축대 위에 자리해 마치 이층집처럼 높아 보인다.이 집에서 흥미를 끄는 것은 생기(生氣)가 응집된 방이 따로 있어 그곳에서만 아이를 출산한다는 점이다. '태실(胎室)' 혹은 '산방(産房)'이라 부르며, 대소과에 급제한 다섯 아들이 모두 그 방에서 태어났다. 그런데 김진의 11대 후손인 김방렬(金邦烈)이 그 방을 헐어 버리고 마루를 깔아 대청으로 만들었다. 영천의 영일(迎日) 정씨네로 시집 간 딸이 첫째와 둘째아들을 이 방에서 낳자, 집의 정기가 쇠약해진다고 여긴 탓이다. 그 딸은 할 수 없이 셋째아들은 다른 방에서 낳았는데, 예상대로 첫째와 둘째는 대과에 급제했으나 셋째아들만큼은 그렇지 못했다고 한다.현재의 주인되는 김시우(金時雨, 김진의 15대 손)도 태실의 발복을 믿고 있다. 맏며느리가 대구의 친정에서 딸을 낳은 뒤로는 후사가 없었다. 그러자 없앴던 태실을 다시 온돌방으로 꾸미고, 해외에 근무하는 아들이 휴가를 얻어 돌아오면 그 방에서 아들 내외를 지내게 했다. 그 결과 손자를 얻어 대를 잇게 됐다고 한다.안동 의성 김씨 종택이 입지한 천전 마을은 대현산을 등진 채, 앞에는 강물이 흘러 인접한 농토가 넓은 남향의 땅이다. 풍수적으로 완사명월형(浣紗明月形)이라 불리며 경주의 양동, 안동의 하회, 봉화의 유곡과 더불어 삼남(三南 ;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의 4대 길지의 하나로 꼽힌다. 비단은 고귀한 사람이 입는 옷이며, 그것을 밝은 달빛 아래에 깔아 놓았으니 세상에 이름을 날릴 인물이 나온다는 설명이다.김진은 여기에서 '갓 꼭지가 보이면 이사하라'고 했는데, 그 말은 집을 처음에 지을 때는 행인의 갓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지대가 낮았고, 따라서 앞쪽의 강물도 보이진 않았음을 내포한 말이다. 그렇지만 '갓 꼭지가 보인다'라는 말은 사람의 왕래가 많아진다는 뜻이 아니고, 앞쪽의 지대가 자연적 혹은 인위적으로 낮아져 대청에서 강물이 넘겨다 보이는 경우를 경계한 말이다. 강물이 풍수 상으로 보아 흉수(胸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도 대청 마루에서 강물이 바라다 보이지 않는다.의성 김씨 종가댁은 구례 운조루와 마찬가지로 가상적인 공통점이 있다. 대문 앞과 집 안에 거목이 없어 길하고, 부지가 방정하고 전저후고(前低後高)의 택지라 길하다. 또 수로나 냇물의 유입이 없으며 집 안에 우물이 없는 것도 길하고, 솟을대문과 중문 그리고 중문과 안방이 일직선상에 있지 않은 점도 풍수적으로 길하다. 정원수가 적고 가운데뜰에 연못이나 우물이 없으니 가상적으로 흉함을 발견하지 못했다.의성 김씨 종가댁은 생기 왕성한 용맥에 자리잡고, 천전 마을 중에서 양기 흐름이 가장 양호한 곳에 해당되어 학자와 고관대작이 배출될 터다. 또 사랑방과 안방은 풍수적으로 매우 길한 방위적 배치를 보인다. 이처럼 길한 기운이 많아 복지로 손색이 없다.현대를 사는 우리도, 자연 속에서 풍류를 즐기며 산 조상들의 지혜를 낡았다고 치부해 버리지 말고, 잠깐씩 빌려쓰는 여유를 가져보자.田글 고제희 <대동풍수지리학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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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행풍수 인테리어] 소문난 명당을 찾아서-구례 운조루, 안동 의성 김씨 종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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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행풍수 인테리어] 행운을 부르는 풍수 실내인테리어
- 주택 내의 인테리어는 풍수 경전이나 풍습으로 거의 전하지 않는다. 실내 꾸미기는 현대에 이르러 새로 생겨났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경제 조건들로 인해 비록 자신이 거주하는 공간에 풍수상 흉한 곳이 있더라도 다른 곳으로 쉽게 옮기지 못한다. 자신이 거주하는 공간이 길하지 않다면 풍수 인테리어를 이용하여 좀 더 살기 좋은 공간으로 꾸미고 사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번에는 이와 관련한 몇 가지 방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침대는 침실에서 생기가 왕성하고 길한 방위에 두어야 한다. 왜냐하면 침실은 사람이 7∼8시간 동안 가사(假死) 상태로 잠을 자는 공간이므로, 주택에서 기가 왕성한 곳에 배치해야 피로를 풀고 활력을 되찾기 때문이다. 침대의 위치뿐만 아니라 침실의 조명과 이불, 커튼 색 등을 음양오행설에 입각해 밝기와 색을 달리해야 좋다. 또한 불안, 소음, 공해 등 수면에 방해되는 요소는 비보(裨補 : 도와서 모자라는 것을 채움)하여 불면증, 신경쇠약, 두통을 치유하고, 건강한 삶을 유지하도록 한다. 식탁과 책상은 흉한 방위를 피해 건강과 집중력을 높이고, 장식장이나 그림, 거울, 어항 등을 풍수상 길한 방위에 배치하여 실내의 기를 북돋는다. 예부터 집에 장식이 많으며 화려하고 사치스러우면 촛불의 마지막 빛처럼 흉하고, 정방형의 방은 심리적으로 불안하고, 실용적인 면에서도 쓸모가 적으니 피하라고 하였다. 그 외에 집 안에 거울을 지나치게 많이 두면 초조, 두통, 불면, 신경쇠약에 시달리니, 그 위치와 크기에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주택 내의 인테리어는 풍수 경전이나 풍습으로 전해지는 것이 거의 없다. 실내 꾸미기가 현대에 이르러 새롭게 생긴 것으로 과거에는 침실에 되도록 옷장, 농, 궤 등을 두지 않아야 길하다고 여겼다. 침실의 넓이와 개방감을 해치기 때문이고, 앞에서 언급했듯이 장식이 많은 집은 흉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또한 겨울에 창, 천장, 벽 등에서 나오는 외풍을 막아야 괴이한 꿈에 시달리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 역시 현대 주택은 단열재가 좋아서 외풍이 불지 않으니 염려할 필요는 없다. 양택 풍수에서 흉가는 화해택(禍害宅), 절명택(絶命宅), 오귀택(五鬼宅), 육살택(六殺宅)으로 구분 짓는다. 따라서 집 안의 흉한 방위에 방이 있다면 풍수적 비보의 지혜를 기울여 그 방의 흉함을 덜어 주어야 한다. 좋은 기는 혈액 흐름을 촉진, 산소 운반 능력을 향상시켜 건강을 지켜 준다. 또한 환자가 있다면 그 병을 치료해 준다. 흉한 방을 복(福)방으로 바꾸는 방법은 방문의 위치를 변경하거나 소품을 이용하는 경우가 있다. ●기는 방문을 통해 침실로 들어감으로써 현관과 방문의 방위적 조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따라서 방문이 흉하게 배치됐다면 위치를 변경하여 길한 방위로 바꾼다.●방문의 위치를 변경하기 어렵다면, 방 안에서 침대와 책상의 위치를 방문의 방위와 조화시켜 길한 방위로 바꾼다.●거울이나 관엽식물 또는 그림과 탁자 등을 이용해 기의 흐름을 바꾼다.●살기(殺氣)를 방지하기 위해 민속 신앙에서 전해 내려오는 방법들을 차용한다.●조명과 벽지를 이용하여 생기를 북돋는다. 사람은 누구나 부귀를 누리며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한다. 즉 부, 건강, 명예, 애정, 장수를 꿈꾼다. 여기에 자식들까지 건강하고, 공부 잘하고, 심성 착하고, 효도하고, 국가의 동량(棟樑)이 된다면 금상첨화이다. 하지만 하늘은 공평하여 한 사람에게 그 모두를 일생에 걸쳐 주지 않는다. 그 결과 '부자가 3대를 넘기기 어렵다'라는 말이 나왔다. 따라서 사람들은 누구나 때에 따라 바라는 희망이 있고, 또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하지만 운이 따라 주지 않는다면 목표를 향한 노력이 더욱 힘들뿐만 아니라 그 성과도 미흡하다. 그렇다면 운이란 어디에서 언제 오는가? 명리학(命理學)은 사람의 태어난 연월일시의 간지(干支)를 기둥 세워 그 사람의 평생 운을 예측하고, 나아가 대운에 따라 좋은 운이 닥칠 시기를 점친다. 하지만 이 역시 곧이곧대로 맞아떨어지는 법은 없다. 풍수학은 사람의 운명이 생기에 감응 받는 정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고 보았다. 그리고 생기의 감응은 조상의 유골을 통해 받는 것과 주택을 지어 생활하면서 받는 것으로 구분했다. 그렇다면 주택 내에서 생기에 감응을 받아 하늘이 내린 운명조차 바꾸며 성공한 인생을 사는 방법은 무엇인가? 풍수학은 극도로 발달한 '주위환경론'이자 '방위학'이기에 현관과 방의 위치를 선택함으로써, 그 운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본다. 이 논리를 설명한 사람은 청나라의 조정동(趙廷棟)이다. 그는 《양택삼요》를 지어 양택 중에서 길한 5택(연년, 생기, 천을, 복위, 천의택)마다 어떤 길한 운을 받는지를 설명했고, 백 번을 시험해도 한 치의 오차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 이론은 현재 동·서양을 막론하고 풍수를 차용하여 누구나 따르는 이론이다. 아직 과학적으로 원인과 결과를 명쾌하게 규명한 것은 아니지만, 그 효험을 보았다는 이야기가 많이 전해 온다. 물론 이러한 풍수적 제안이 IT 강국인 우리에게 비과학적 내지 미신으로 비칠 수 있다. 그렇다고 풍수가 좋은 집에 살아야 복을 받는다는 심리적 효과까지 무시되지는 않는다. 풍수는 흙을 사랑하는 학문이고, 흙의 기운인 지기(地氣)가 사람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수용하거나 그렇지 않는 것은 개개인에게 달렸지만, 풍수를 실천했다고 해서 과연 손해 볼 것은 무엇인가? 기껏해야 가구를 이리저리 옮겨 놓는 정도의 수고뿐이다. 하지만 풍수가 맞는다면 그 뒤에 따라오는 행운은 당신의 것이지 다른 사람의 것은 아니다. 풍수는 어느 장소에서 한눈에 조망되는 풍광을 국세(局勢)라 부르며, 풍수적으로 좋은 국세는 일망무애(一望無涯)로 시야가 넓게 트인 장소보다는 사신사(四神砂)에 의해 사방이 잘 여며진 산천 형세를 말한다. 즉 마을과 주택의 입지를 살필 때, 후면에는 주산이 있어 주거지로 불어오는 뒷바람을 막아 주고, 좌우에는 청룡과 백호가 담을 치듯이 포근히 에워싸고, 앞쪽에는 안산과 조산이 있어 앞바람을 막아 주는 곳이다. 이것은 바람의 영향을 적게 받는 장풍(藏風)이 잘된 곳을 말하며, 《택리지》도 입구가 좁고 안쪽에 넓은 들판이 펼쳐진 터가 지리적으로 우수한 곳이라 하였다. 우리 조상은 전망이 좋은 곳에 살림집과는 별도로 정자를 짓고는 마음을 푸는 쉼터로 삼았다. 즉 자연적인 상태에서 전망이 좋고 높은 곳은 바람이 세차게 불기에 안온과 편안을 요구하는 살림집으로는 적절치 못하고, 낮 동안에 잠시 쉬었다 돌아오는 장소로 판단했다. 한옥에서 안채로 들어가는 중문에 내·외담을 설치한 것은 기가 쏘아 들지 못하도록 비보한 것이지만, 안채 여자들이 머물던 안채를 사랑마당이란 바깥 공간에 노출되지 않도록 배려한 측면도 있다. 이처럼 우리는 오랜 세월 타인으로부터 사생활을 보호하고 작고 숨겨진 공간에서 살도록 인성과 체질을 유전적으로 이어 받았다. 그런데 전망만을 고려한 시야가 넓게 트인 현대 주거 공간은 비록 프라이버시는 보호 받지만 넓게 트인 시야로 인해 마음 속에는 원초적으로 세상에 자신이 노출돼 있다거나, 또는 황량한 넓은 들판에 홀로 서 있다는 고독감에 사로 잡혀 사람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든다. 일례로 한강변에 사는 고층 아파트 주민 중 우울증 환자가 많다는 것은 넓은 전망이 사람에게 어떤 무력감 내지 외로움을 준다는 것을 반증한다. 우리 조상들은 전통 마을로 들어서는 입구가 휑하니 넓어 마을의 기가 누수 될 염려가 있다면, 마을 입구에 숲이나 수구막이를 조성해 비보하였다. 이것은 사방이 산으로 가려진 마을도 입구만큼은 트였기 때문인데, 어떤 마을은 느티나무나 은행나무 같은 정자나무를 동구에 심어 수관과 입으로 마을 입구의 트인 부분을 가리고 막았다. 그리고 이 나무에 동제(洞祭)를 지내며 보호한 것은 나무가 죽어 동구가 넓게 트여 쉽게 보이면 그 마을에서 큰 부자도 큰 인물도 태어나지 못한다는 풍수적 믿음 때문이다. 현대의 주거 공간 중 거실에서 보았을 때 시야가 넓게 트인 것은 전통 마을의 입지에서 수구가 지나치게 넓은 것과 마찬가지다. 그 결과 집 안에 머무는 건강과 화목, 부자의 기운은 베란다의 넓게 트인 공간을 통해 도망갈 위험이 크다. 따라서 베란다나 거실의 창가 쪽으로 잎이 많은 관엽식물을 화분에 심어 배치하면 마을 숲을 조성해 마을의 기를 비보 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으며, 나아가 넓은 시야가 차폐(遮蔽)됨으로써 마음의 안정까지 얻을 수 있다. 풍수에서 관엽식물은 사람의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키는 효과도 있다고 본다. 따라서 베란다나 거실의 창가 쪽으로 관엽식물을 키우는 일은 넓은 국세로 인한 거주자의 불안한 마음도 진정되고, 다른 건물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도 차폐되어 생활 속에서 풍수가 좋은 집을 꾸미는 효과 만점의 방법이 된다. 나무를 키우고 보살피면서 얻는 보람과 기쁨은 또 다른 발복(發福)이다.田 글 고제희 <대동풍수지리학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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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행풍수 인테리어] 행운을 부르는 풍수 실내인테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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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행풍수 인테리어] 건강한 삶의 공간, 전원주택-건강한 우리 집 꾸미기 II
- 동양인의 남아선호(男兒選好) 사상은 오래된 가족 제도의 잘못된 고정 관념이다. 딸보다 아들에게 더 큰 가치를 부여한 것은 가계 계승이란 목적 때문이었다. 아들이 없다는 것은 가계의 단절 즉, 절손(絶孫)을 의미하여 전통 사회에서는 여성에게 칠거지악(七去之惡)을 적용한 이혼 사유가 됐다. 그러므로 여성들은 이혼 자체보다는 가계를 이을 수 없다는 불안감과 조상에 대한 죄책감으로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아들 낳기를 기원했다. 지금은 핵가족화와 도시화의 진행으로 이러한 남아선호 사상에 대한 인식이 변하고 있다. 건강한 우리 집 꾸미기 두 번째 편에서는 풍수적으로 좋은 자녀방을 비롯하여 각 실의 방위에 대해 알아보자.아들은 대개 성격이 도전적·호전적이며, 외향성과 능동성을 지닌다. 따라서 집 내부에서 남자다운 기를 받는 곳에 아들의 방을 두어야 그 아들이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자라난다. 아들을 음기가 강한 방에 기거시키면 기를 펴지 못하고 소심해진다.풍수적으로 아들방은 현관의 위치에 따라 다음의 위치가 길하며, 이때 아들방의 중심이 아니라 방문의 방위로 판단한다.●현관의 방위가 동쪽일 때는 아들방의 방문이 동남쪽 또는 남쪽에 있는 것이 좋다.●현관의 방위가 동남쪽일 때는 아들방의 방문은 동쪽, 북쪽이 좋다.●현관의 방위가 남쪽일 때는 아들방 방문의 위치가 동남쪽, 동쪽, 북쪽이 좋다.재미있는 속설로, 예전에 아들 낳기를 기원한 민간의 풍습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었다고 한다.그 속설은 석불의 코를 베어 가루로 만들어 먹었다는 것이다. 코는 남성의 성기를 의미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또 비석의 글자 중 자(子), 남(男), 문(文), 무(武), 인(仁), 의(義), 지(智), 용(勇), 검(劍), 필(筆)의 한자를 파내어 가루로 빻아 먹었다고 한다. 다른 속설은 아들이 태어난 집의 금줄을 떼어다 방에 걸어두거나, 밥을 지어먹거나, 금줄에 부착된 고추를 떼어다 간장을 담가 먹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아들을 낳은 산모의 월경대나 속옷을 얻어 아랫배에 감고 다니거나, 아들 낳은 집의 부엌칼을 훔쳐 허리끈에 매고 다니거나, 아들 낳은 집의 수저를 훔쳐 베개 밑에 감추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이야기들이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로 비추어질 만큼 의식구조가 바뀌었다.다음은 풍수적으로 좋은 딸의 방을 알아보자. 딸은 결혼하기 전까지는 부모의 슬하에서 자라는데, 대개 가정적·평화적이며, 내향성과 수동성을 떠올리게 된다. 따라서 집 내부에 여자다운 기를 받는 곳에 딸방을 두어야 그 딸이 신체적 내지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자라난다.전통적으로 딸은 출가외인을 전제로 하여 가사나 예절, 복종을 가르쳤고, 온순함과 인내심을 기대하였다. 남녀가 평등한 현대에는 맞지 않지만 여자다운 신체적 특징과 인성을 고려할 때 딸방은 현관과 더불어 다음의 방위에 두면 길하다. 이 역시 딸방의 중심이 아니라 방문의 방위로 판단한다.●현관의 방위가 동쪽이면 남쪽 또는 북쪽이 좋다.●현관의 방위가 남쪽이면 동쪽, 동남쪽이 좋다.●현관의 방위가 서쪽이면 북동쪽이 좋다.풍수상으로 여자에 대한 배려는 출가를 전제로 했기 때문에 면밀하게 연구하지 않아 길한 방이 없는 경우도 있다. 다만, 노인이 거주했던 곳은 장수를 누릴 길한 방이므로 그 방 역시 딸방으로 좋은 곳이다.학생들의 방은 먼저 집중력을 높여 주는 일이 중요하다. 방 안은 커튼을 이용해 약간 어둡게 하고, 창문은 작아야 좋다. 창문이 크면 밖을 바라보거나, 집을 떠나 여행을 가고픈 생각이 들어 집중력이 떨어진다. 또 성장하는 시기이므로 방 안의 기운이 활기차고 기가 충만하여 성장에 알맞은 기의 공급이 충분해야 한다. 요즘에는 컴퓨터가 책상의 한쪽을 차지하면서 전자파가 나오므로 전자파의 피해를 줄여 주는 것도 아이들의 건강에 중요하다.노인방은 동남쪽과 남쪽이 좋은데, 햇볕은 노인에게 보양과 같기 때문이다. 따라서 볕이 잘 드는 남향이 좋고, 남동쪽은 아침 햇살이 들어 일찍이 기침하는 노인방으로 제격이다. 또 노인방은 가족의 방과 너무 멀어서는 안 되며, 2층보다는 아래층이 좋다. 2층의 경우는 계단의 경사를 완만하게 하고 난간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화장실과의 거리는 짧게 하고, 가능하면 방 옆에 딸린 전용 화장실을 두는 것이 편리하다. 난방은 안정성을 고려하고, 뜰이 보여 간단히 나설 수 있으면 더욱 좋다. 역시 노인방도 방문과 현관의 방위를 판단하여 길한 방을 정한다.부엌은 음식을 만들고 먹는 공간으로 식록(食祿)과 관계되는 공간이다. 사람의 건강과 병은 음식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므로 부엌은 가족의 건강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양택삼요》에서도 부엌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대문은 기가 출입하는 곳이고, 부엌은 식록이니 부엌과 대문이 모두 귀중하다. 사람들이 이 이치를 가벼이 보나, 무수한 집이 대문과 방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 부귀를 누린다. 다만 이상한 질병에 시달리는 것은 모두 부엌이 흉하기 때문이다."만병(萬病)은 대개 음식에 따라 생기므로 부엌이 길하면 자손이 번성하고, 부엌이 흉하면 자손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부엌을 양택의 한 요소로 삼은 것이다. 또 부엌 아궁이(가스레인지)의 향은 동쪽과 동남향이 좋은데, 이것은 木은 동쪽이면서, 오행상으로 火를 낳기 때문이다(木生火). 부엌은 물을 많이 사용하는 곳으로 부정한 설거지를 하므로 남서방에 두면 흉한데, 남서쪽은 이귀문(裏鬼門)에 해당하여 부정한 것을 꺼린다. 남서방의 부엌은 남풍이나 남동풍이 부는 여름에 열기, 음식 냄새가 집 안으로 퍼지고 또한 화재의 위험도 높다. 부엌 다음으로 살펴볼 곳은 욕실이다. 현대 주택은 욕실 내에 화장실을 두어서 현관문과 욕실의 문이 일직선상에 놓인 경우가 있는데, 풍수상으로 흉하다고 본다. 화장실이 현관의 정면에 버티고 있으면 남의 눈에 띄는 것이 손님이든 집안 식구이든 기분이 불쾌해진다. 또 북동은 귀문, 남서방은 이귀문에 해당하기 때문에 물이나 부정한 것을 멀리하므로 더러움을 씻는 욕실을 그 방위에 두면 흉하다. 북동방은 겨울에 찬바람이 들고, 또 햇볕이 안 들어 습기가 찬다. 불결하고 부정한 욕실을 집 한가운데에 두면 집주인의 몸이 약해진다. 집의 중앙은 소중한 곳이므로 거실이나 가장의 방 등 중요한 방을 배치해야 길하다. 위층이 주로 개인 방이나 침실이어서 프라이버시를 중히 여긴다면 현관 안쪽이나 식당·부엌 근처에서 올라갈 수 있게 계단을 설치한다. 욕실이나 화장실을 침실 가까이 만든 경우도 이 위치가 편리하다. 이층에 손님방이 있다거나 프라이버시가 그다지 문제되지 않는다면 현관에서 직접 올라가게 하는 것이 편리하고 공간의 이용에서도 효율적이다. 계단은 집의 중앙에 설치하지 않는 것이 원칙인데, 가운데에 두면 집을 둘로 갈라놓아 단일성이 깨지며 가족의 행복에 금이 간다고 한다.양택 풍수에서 흉가는 화해택(禍害宅), 절명택(絶命宅), 오귀택(五鬼宅), 육살택(六殺宅)으로 구분 짓는다. 따라서 전원주택 내에 흉한 방위의 방이 있다고 해서 이사를 갈 수는 없다. 이럴 경우 풍수 비보에 지혜를 기울여 그 방의 흉함을 덜어주어야 한다. 좋은 기는 혈액 흐름을 촉진, 산소 운반 능력을 향상시켜 건강을 지켜 주고, 또 환자에게는 병을 치료해 준다. 흉한 방을 복(福)방으로 바꾸는 방법으로 방문의 위치를 변경하거나 또는 소품을 이용하는 경우가 있다. ●기는 방문을 통해 침실로 들어가므로 현관과 방문의 방위적 조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따라서 방문이 흉하게 배치됐다면 위치를 변경하여 길한 방위로 바꾼다. ●방문의 위치를 변경하기 어려울 경우는 방 안에서 침대와 책상의 위치를 방문의 방위와 조화시켜 길한 방위로 바꾼다. ●거울이나 관엽식물 또는 그림·탁자 등을 이용해 기의 흐름을 바꿔 준다. ●살기(殺氣)를 방지하기 위해 민속 신앙에서 전래하는 방법들을 차용한다. ●조명과 벽지를 이용하여 생기를 북돋아준다.田글 고제희 <대동풍수지리학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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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행풍수 인테리어] 건강한 삶의 공간, 전원주택-건강한 우리 집 꾸미기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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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행풍수 인테리어] 행운을 부르는 정원 꾸미기
- 주택 조경은 지기를 극대화시켜 건강을 도모하게끔 설계하는 것이 원칙이다. 땅의 기운과 오행상 상생인 수종을 식재하여 지기를 북돋고, 한국인의 체질과 인성에 맞는 생태적 동산이나 휴식공간을 꾸며준다. 전원주택단지라면 주변 역사·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테마공원을 조성하고, 단지 내에 기가 원활하게 통하도록 도로와 조형물을 설치하는 것이 좋다. 우선, 조경과 관련해서 우리 조상들의 가상에 대한 지혜 몇 가지를 소개한다.가상(家相)에서는 대문 앞에 큰 나무가 서 있으면 '한(閑)'자가 되어 화를 부른다고 한다. 문 앞에 큰 나무가 있으면 양기(陽氣)가 집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방해하고, 음기(陰氣)가 집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는다. 따라서 '대문 앞에는 버드나무를 심지 않는다'라는 풍습이 전해진다. 나무는 사람의 출입을 방해하고, 벼락이 칠 위험이 있고, 벌레가 집 안에 들어오고, 낙엽이 떨어져 불편하기 때문이다.또한 집 가까운 나무에는 귀신이 산다고 하며, 특히 대문 앞쪽의 큰 나무는 그늘이 넓어 피하고, 두 갈래로 뻗은 나무도 피한다. 그렇지만 대나무는 길상으로, 중국·일본 사람들은 집 둘레나 대문 가에 키가 크지 않은 대나무를 심었다.다음으로 집의 북서방(乾方)에 큰 나무가 있으면, 집을 지키고 행복을 주관한다고 보았다. 이것을 베면 큰 화를 당하고 후손이 끊어진다고 한다. 노거수(老巨樹)는 신령이 깃들어 있기 때문에 함부로 베거나 상하게 해서는 안 된다. 북서방의 노거수는 여름에는 뜨거운 저녁 햇살을 막아주고, 봄에는 황진(흙먼지)을, 겨울에는 차가운 북서풍을 막아 주는 효과가 크다.정원에 큰 나무는 재앙의 근원정원에는 큰 나무를 심으면 '곤(困)'자가 되어 재앙의 근원이 된다고 보았다. 뜰 안에 큰 나무를 심으면 '곤궁할 困'자가 되어 집안이 쇠락한다. 특히 귀문·이귀문에 해당하는 북동쪽과 남서쪽의 방위에 나무가 있으면 더욱 흉하다. 채광이나 통풍을 가로막고 낙엽이 떨어지는 등 피해가 크다.또한 나무를 심으면 크게 자라니, 정원이 협소해져 활동 범위가 줄어든다. 따라서 옛날에는 정원을 후원에 주로 두었다. 그런데 현대는 앞에 정원을 가꾸어 식사, 놀이 등에 활용하는 뜰로 변모하였다. 정원에 나무가 많으면 유지·관리도 힘들고, 마당의 습기를 빨아들여 땅이 가물어진다.뒷마당(후원)은 식품을 저장하는 장독대와 우물이 설치되어 안마당에 비해 한적하고 외부와 접촉이 거의 없음으로 꽃과 나무를 심어 정서적인 생활을 하였다. 후원은 한국의 전통 정원에만 나타나는 독특한 특징이다. 후원은 뒷산에서 집으로 뻗어온 지맥을 온전히 보존하면서 그 지기를 받아 훌륭한 인물이 태어날 것을 기대하는 풍수적 목적이 담겨 있다. 따라서 후원에는 대(臺)를 설치한 다음 수목과 석물을 이용해 수직 공간을 장식해 계절의 변화를 느끼게 설계된다. 후원의 낮은 단에는 계절마다 꽃이 피는 초화류를 심되 기화진수와 같은 요란한 것은 피하고 우리의 자생 꽃나무를 주로 심었다. 안채의 마루에서 바라볼 때, 정면에 초화가 보이도록 심으며, 더러는 다원(菜園)이 조성되기도 한다.땅을 습하게 하지 말아야우리 조상들은 가운데뜰에 나무를 심거나 못을 파면 크게 흉하다고 보았다. 한 집에서 건물과 건물 사이에 있는 마당이 가운데뜰(중정 中庭)이다. 이곳에 나무를 심거나, 못을 파거나, 그밖에 땅을 습하게 하는 따위는 뜰의 기능을 막아 흉하다. 《산림경제》에는 "석류를 뜰 앞에 심으면 현자(賢者)가 태어나고, 또 후손이 번창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못이 집 안에 있으면 찬바람이 돌아 풍병(風病)을 앓게 한다고 보았다.뜰의 연못은 항상 깨끗이 유지해야 모기나 벌레들이 살지 못한다. 따라서 배수구를 하수구와 연결시켜 배수가 완전히 되도록 배려한다. 또한 정원에 돌을 많이 깔면 음기(陰氣)를 불러 쇠한다. 정원에 돌을 많이 깔면 땅이 가진 힘, 양기·기쁨 등 '흙의 생기'를 억누르고 막는 결과가 되어 흉하다. 땅이 가진 생명력을 잃는다. 그 외에도 돌이 열을 부르고 집 전체의 밝은 분위기를 상하게 한다. 여름에 햇볕을 받은 돌은 섭씨 90도까지 뜨겁고, 돌을 빽빽이 깐 정원은 50도 가까이 온도가 올라간다. 또 돌은 열의 용량이 커서 낮 동안은 끌어 모은 열을 좀처럼 놓지 않고 간직했다가 저녁이 되어서야 방출한다. 그 결과 여름이 무덥다. 또 겨울에는 밤 동안에 꽁꽁 언 돌이 한 낮이 되어서야 풀리며, 주위의 열을 흡수해 더 춥다. 장마철이나 비가 내릴 때면 물기의 증발을 방해하고, 침침하고 우중충하며 습한 정원을 만든다.마지막으로 수로나 냇물을 집 안으로 끌어들이면 크게 흉하다. 택지 안에 물을 끌어들이거나, 냇가에 집을 짓는 것은 흉하다. 냇물이 흐르면 그 언저리의 지대는 낮아 항시 물 피해가 염려된다. 개울가에 집을 지을 때는 성토하여 높이고, 건물 바닥도 되도록 땅에서 띄운다. 또 물가의 땅은 지반이 약하다.앞에서 소개된 것 이외에도 대문에서 현관에 이르는 진입로와 정원에서 풍수적으로 고려할 사항이 있다. 주로 고택의 경우에 해당되는 내용이나 현대에도 활용 가능한 것들도 많아 소개한다.▲진입로는 일직선보다는 약간 구불구불하게 놓는다. 구곡수(九曲水)에 해당되어 부귀가 치렁치렁 열리는 길상이다. ▲진입로 주변에 나무를 많이 심거나 못을 파면 흉하다. 음기를 불러 이상한 질병에 시달린다.땅의 성격에 맞는 음양오행의 꽃꽃나무는 땅의 기운과 꽃의 색깔이 음양오행(陰陽五行)으로 서로 상생(相生)인가 혹은 상극(相剋)인가를 비교하여 결정한다. 상극은 피하고 상생의 꽃나무를 선택한다. 먼저, 땅의 기운을 판단할 때는 수(水)가 최종적으로 빠져 더 이상 그 땅의 지형과 지질적 변화에 영향을 주지 않는 지점의 방위를 판단하여 그 땅의 성격을 파악한다.풍수적인 땅의 성격이 파악되면, 그 땅의 성격에 맞는 꽃 색깔이 정해진다. 음양오행상 목의 기운(木氣)이 강한 땅은 청색, 화의 기운(火氣)이 강한 땅은 적색, 금의 기운(金氣)이 강한 땅은 백색, 수의 기운(水氣)이 강한 곳은 흑색이다. 여기서 오행의 상생이란 수→목→화→토→금→수→목의 관계이고, 상극은 수→화→금→목→토→수의 관계이다. 따라서 땅의 기운이 수인 경우는 꽃의 색이 푸르고, 검고(석물), 흰 것은 상생의 관계이나 붉거나, 누런 것은 상극이라 흉하다.목의 경우 검거나, 푸르거나, 붉은 것은 상생이고, 누렇거나 흰색은 상극이라 흉하다. 화의 경우 푸르거나 붉거나 누런색은 상생이나 검거나 흰색은 상극이라 흉하고, 금의 경우 누렇거나 희거나 검은 것은 상생이나 푸르거나 붉은 것은 흉하다.땅의 기운이 쇠약하거나, 살기가 침입하는 경우 그리고 주변에 흉한 시설물이 있는 경우는 지기를 보충하거나 방살(放殺)의 지혜를 기울여 살기 좋은 집으로 바꾼다. 지기가 쇠약한 경우는 성토한 낮은 조산을 만들어 집 안에 생기를 키워준다.또 살기가 강한 경우는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키 낮은 나무를 심어 바람을 차단시키고, 주변의 흉한 시설물은 민간 신앙에서 쓰는 방법을 이용해 비보한다. 거북은 십장생의 하나로 장수와 건물의 안전을 기원하며, 또 풍수적으로 큰돌을 집의 네 귀퉁이에 두면 이상한 재앙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였다.또 느릅나무를 미방(未方)에 심으면 잡귀가 넘보지 못하고, 느티나무를 신방(申方)에 심으면 도적이 들지 못한다. 또 석류나무를 뜰 앞에 심으면 현자가 태어나고, 자손이 번창하여 대길하다고 한다.기가 잘 순환되도록 하는 방위단독 전원주택뿐만 아니라 전원주택단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진입로는 단지 내로 기가 출입하는 주 공간으로 풍수적으론 매우 중요하다. 단지 내에 기가 가장 잘 순환되도록 하는 방위로 주 진입로를 두어야 한다. 물론 기존 도로를 활용할 수 있어야 하지만 아래와 같은 사항도 충분히 고려되어야 한다.부지 전체를 사람의 몸으로 본 다음, 입과 코의 부위에 해당되는 지점을 주 진입로를 하고, 항문에 해당되는 지점을 부 진입로로 한다. 주 진입로는 주된 도로에서 차가 우회전으로 진입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좌회전으로 진입한다면 신호대기에 걸리거나 사고의 위험이 크다.진입 대문은 그 단지의 얼굴이다. 따라서 주인이 자기 집에 들어간다는 느낌이 들도록 마중의 정이 담긴 문설주와 조명, 조형물이 필요하다. 부지의 성격에 따라 상생의 조형물은 다음과 같이 설치한다.▲화기(火氣)가 강하면 해태상을 세워 진압한다.▲수기(水氣)가 강하면 조산(造山)을 쌓아 토기(土氣)를 높혀 준다.▲목기(木氣)가 강하면 철 대문으로 목기를 제압한다.▲금기(金氣)가 강하면 붉은 조명등으로 화기(火氣)를 높혀 준다.단지가 들어선 고장마다 역사적 사건이 있고, 전설이 전해진다. 따라서 옛 것을 배우는 테마 공원을 조성하거나 현대식 생활에서 시골의 고향 정취를 맛볼 수 있도록 느티나무나 은행나무 정자 같은 조경을 설계한다.또 수목도 부지의 기운을 북돋우는 상생의 꽃나무를 식재 배우고 즐기는 조경으로, 수세미·애호박·야생화 등 덩굴식물의 재배시설을 갖추면, 그늘과 열매를 감상하는 넉넉한 행복감에 젖어 심신의 건강과 주민의 화합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田글 고제희 <대동풍수지리학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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