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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재 이야기 III]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집터는 내가 원하던 아늑한 곳은 아니지만 북서쪽에는 백두대간인 덕유산이 버티고 양옆은 산 능선이 있어서 커다란 의미로 보면 좌청룡우백호左靑龍右白虎의 형상이고 무엇보다도 내 집터에서 보는 전경이 퍽도 싱그럽게 보인다. 특히 전망이 시원스러운데 후에 집을 짓고 대청마루에 큰 유리창을 설치했더니 집 구경을 오는 사람마다 집터가 좋다고 이구동성이다. 물론 겉치레인 줄 알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다. 글 황인찬우리가 집터 잡는 데 고려한 점이 몇 가지 있다. 우선 개발가능성이 없는 지역이다. 부동산에 대한 투자가치는 완전히 뒷전이었으니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어리석었다 싶다. 오로지 목적은 우리 식구가 자연의 품속에서 삶을 평안하게 영위할 수 있으면 그만이었으니……. 그래서인지 지금 우리가 사는 동네의 땅값은 5년 전과 거의 비슷하다.또 하나는 유명한 관광지를 피하고 싶었다. 고향집이 수백 년 동안 늘 그대로인 집에서 태어나고 성장해서였을까, 집이란 자주 옮겨 다니는 것이 아니란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돈이 되면 팔고 언제든 떠나야 부자가 되는 것인데……. 그러니 늘 그렁그렁 살고 있나 보다.아들에게 시골 고향을 만들어 주어 어릴 적 추억이 도시라는 황량한 잿빛이 아니라 자연의 풍요로운 초록빛이게끔 하는 데 목적이 있었으니 다른 것은 전부 부차적인 문제에 불과했다.그렇다고 넉넉하게 돈을 들고 다니면서 집터를 찾을 수 없는 형편이니 결국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다닐 수밖에 없었다. 이미 서울 근처는 우리 같은 서민이 들이대기에는 너무 땅값이 올라버렸고 휴양지나 관광지 근처는 너무 복잡하고 상혼에 물들어 있어서 피하고 싶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은 이런 요구조건에 부합하였다. 집터는 국립공원에서 100m 떨어진 논밭 사이에 위치해 있는데, 집 뒤가 바로 산이 아니라는 점이 흠이고 값이 저렴하다 보니 대도시와의 접근성이 좋지 않다는 것이 최대의 단점이다. 그런데 이 단점 때문에 우리 동네 전체는 전국 어디를 내놔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청정성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서 생태적인 삶을 추구한 내 마음에 든다.이제 남의 집 짓는 목수일은 일단 잠시 중단하고 본격적으로 내 집을 짓는 일에 몸과 마음을 다 바치리라!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나는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세간의 말을 그대로 실천한 장본인이 아니었나 생각된다.남의 집을 지을 때 목수일은 나무를 다듬고 집을 세우는 것으로 끝난다. 우리는 거의 이 일만 하고 다음 단계의 지붕공사, 미장, 설비, 조경 등은 모두 다른 업자들이 하기 때문에 잘 모른다. 다음에 다시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꺼내겠지만 상량식을 하고 서까래와 개판을 까는 일은 살림집 공정의 1/3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 때는 미처 몰랐던 것이다.2003년 7월에 부지를 구입하고 9월에 나무를 주문한 나는 입주 일을 2004년 5월로 잡았다. 이론상으로는 1년 안에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에……. 하지만 우리는 입주를 예상치보다 1년 지난 2005년 5월에 간신히 했으니, 그래서 3년 동안 집을 지은 이야기에는 그럴만한 사연이 있었던 것이다. 물론 입주하고 나서도 문도 더 짜야 했고 싱크대 등을 직접 제작했을 뿐 아니라 2006년에는 굴뚝쌓기 등을 했으니 만 3년이 아니라 아직도 마무리를 못하고 그냥저냥 지내고 있는 미완성의 집이다.나무 사는 이야기는 다음 이야기에서 자세히 하기로 하고 이번에는 잠시 농지를 집터(대지)로 바꾸는 과정을 늘어놓겠다.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농지는 절대농지와 관리지역(준농지)이 있는데 관리지역이 아니면 집을 지을 수 없다. 현지 농업인들은 어떤 방법으로 하는지 몰라도 절대농지에도 집을 짓던데……. 우리같이 외지인들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집터를 구입할 때는 집을 지을 수 있는 관리지역인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농지를 대지로 바꾸는 농지전용 절차는 생각보다 훨씬 까다롭다. 나 같은 경우는 현장에서 매일 일하는 주된 일꾼이고 나무 치목(다듬기)이 모두 나의 몫이라 복잡한 농지전용 서류 절차를 직접 한다는 것이 번거롭고 행정에 문외한이기에 건축 설계사무소에 대행을 의뢰했다. 거의 한 달 이상 소요되는 이 행정절차를 직접 하게 되면 그만큼 일을 추진해 나갈 수 없으니 울며 겨자 먹기로 돈을 들여 선택한 것이다. 예상보다 많은 비용이 들어갔다. 117.1㎡(35.5평)의 집을 짓는데 관리지역에는 건폐율이 40%라서 최소한 330.0㎡(100평)을 대지로 전환해야 한다. 99.0㎡(30평) 이하로 지을 경우 농어촌주택으로 인정돼 농지전용비가 면제되는데……. 여러 방면으로 알아본 결과 농어촌주택으로 선정 받는 절차도 외지인에게는 하늘의 별 따기이고 혹시라도 도시에 집이 한 채라도 있는 사람에게는 전혀 혜택이 없다.집사람과 심사숙고한 끝에 눈물을 머금고 농어촌주택을 포기하고 더 멋진 집을 짓기 위해서 117.1㎡(35.5평)을 선택하니 363.0㎡(110평)에 대한 취득세 등이 370여 만 원이 들었다. 측량비용도 도로부지를 확보해야 하기에 5필지에 73만원이 들어갔고, 토목설계비용(설계사 대행비용)도 150만 원. 다행히 주택 198.0㎡(60평) 이하는 신고사항이라서 집에 대한 설계도가 없어도 됐다. 만일 설계도가 있어야 한다면 평당 8만 원 그래서 400여 만 원이 더 들어갈 뻔 했는데……. 그런데 요즘은 건축법이 또 바뀌어서 주택설계비를 내야 한다는데 매우 형식적이다. 건축주가 평면도를 그려주면 그것을 설계사가 베껴서 제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행정편의주의이고 전관예우적인 발상이다. 이 부분은 다시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아무튼 600여 만 원이라는 거금이 건축허가에만 들어갔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돈이 들어간다. 시작하자마자 이러니 집 짓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절실하게 체험했다. 내 집을 내 땅에 직접 지으려는데 집터 준비 과정에서 이처럼 목돈이 한꺼번에 들어갈지 전혀 생각지도 못한 비용이었다. 흔히들 평당 건축비가 얼마 들어갔느냐고 물어보신다. 만약 집 자체에 대해서 3.3㎡(1평)당 300 정도였다면 그 준비하는 과정까지 합하면 최소한 추가 50만 원은 더 생각해야 한다. 그러니 전체적으로 건축비는 최초에 예상했던 것보다 50%는 더 들어간다고 봐야 할 것 같다. 대지형질변경이 최종적으로 승인나려면 한 달 이상 소요된다. 그 후에 집터 닦기를 해야지 만일 허가 나기 전에 미리 했다가는 벌금을 낼 뿐 아니라 원상복귀 명령이 떨어진다. 아무리 자기 집을 자기 땅에 짓는다고 해도 건축법을 어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형질변경은 신청은 2004년 1월 3일에 이루어졌고 허가는 한 달 후에 떨어졌다!田<다음 호에 계속>글쓴이 황인찬 님은 네티즌들 사이에서 '하늘재'로 더 유명합니다. 인터넷 블로그 '하늘재' (http://kr.blog.yahoo.com/hanuljae)를 통해 집 짓는 방법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고재 가구 짜는 일도 왕성하게 하며 직접 주문을 받아 다양한 가구를 만들어 제공합니다. 농학과 철학 전공으로 두 차례 대학교를 다니고 철학박사 과정까지 밟으며 학문에만 경지를 넓혀온 그였지만 전혀 다른 세계인 한옥 목수로 전향해 현재의 삶에 대만족하며, 덕유산자락 개량한옥에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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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재 이야기 III]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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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재 이야기 II] 살만한 터 찾기가 이리도 힘들 줄이야
- 집 짓기의 첫발은 역시 집터를 구하는 일이다. 금수강산을 돌아다니다 보면 절로 눈길 발길을 머물게 하는 아름다운 고장이 어찌 그리도 많은지……. 목수일을 하러 다니거나 여행을 하면서 나도 언젠가 우리 식구들이 깃들어 살 수 있는 아늑한 터를 구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슴 깊이 간직할 수 있었다. 그런데 막상 집터를 찾기 시작하자 쉽게 생각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글 황인찬현장에서 일을 하며 경험이 쌓이자 전통 한옥을 스스로 지을 수 있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전통 한옥을 지을 수 있다는 것은 스스로 먹을 놓을 수 있는 대목장(목수 우두머리)이 되었다는 것이다.스스로 설계하고 먹을 놓고 또 그 먹금대로 나무를 치목해서 집을 짤 수 있게 되자 마음이 급해졌다. 나이는 사십대 중반이 되어가고 아이도 점점 인식능력이 풍부해지는데 내 집을 짓겠다는 목표는 늦춰지고만 있었다.몇 년 동안 식구들을 이끌고 서울의 아파트는 비워두고 목수일 때문에 이 지역 저 지역으로 이사 다니며 남의집살이 하며 시간만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혼해서 5년 동안 일곱 번이나 이사를 다녔으니 식구들에게 미안하고 정말 못할 짓이었다.약국을 한 곳에서 10년 이상 운영했던 아내는 바람돌이처럼 방황하면서 살아가는 나를 만나자 순식간에 운명이 바뀐 것이다. 그래서 어서 빨리 우리 식구들이 깃들어 살 수 있는 집을 짓고 싶은 조급함에 마음먹고 기회만 있으면 부동산 중개소를 통해서 알아보기도 하고 여기 저기 지인들을 통해서 집터를 찾아보았지만 막상 꿈에 그리던 집터를 찾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결론적으로 말하면 지금 지은 집터만한 곳을 찾기 위해서 전국을 삼만 리를 더 다닌 것 같다. 아이를 키우는데 적당한 지역에 집터를 찾고싶었다. 대도시와 접근성이 좋은 경기도 양평, 가평지역이나 강원도 홍천, 인제 같은 지역에 자리 잡고 싶었지만 땅값도 비쌀 뿐 아니라 인연이 아니었던지 마땅한 집터를 만나지 못했다.집터를 찾아다니면서 참으로 많은 우여곡절도 겪었다. 한겨울 만 두 살 된 아들과 강릉 왕산의 깊은 산골로 들어갔을 때의 일이다. 눈이 많이 와서 점심을 먹기 위해 음식점을 찾아 도시로 나가려면 점심때를 놓칠 것 같았다. 우리 부부야 참을 수 있다지만 멋모르고 따라나선 어린 아들은…….우리는 길가의 아무 집이나 들어가서 혼자 사시는 할머니께 밥을 청해 먹었다. 그 때 기꺼이 우리에게 따뜻한 방을 빌려주며 밥까지 주신 그 할머니의 인자하신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집터를 구하려고 가족이 함께 특히 어린 아이를 데리고 다니면 아무리 낮선 곳에 가더라도 우리를 의심하지 않고 현지인들이 반겨주던 기억이 난다. 아마 나 혼자 다녔으면 어림없는 일이었으리라! 요즘 하도 흉악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 세상이니 낮선 곳에 특히 시골에 집터를 구하러 다닐 때는 혼자 다니지 말고 가족이 함께 다닐 것을 권하고 싶다. 마음에 드는 집터와 인연이 닿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일화를 소개하겠다. 강원도 홍천 내면의 깊은 골짜기로 들어가서 어느 밭을 소개받았는데 앞에는 청정 1급수가 흐르고 뒤에는 야산이어서 마음에 들었다. 마침 그 밭에는 민가도 한 채 있어서 당장 기거하며 여유를 갖고 내 집을 지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솔직히 말하면 그 집을 그냥 수리해서 살면 되지 새로 집을 지을 필요가 있겠느냐 싶었다.그런데 그 집에는 웬 스님이 살고 있었다. 정식 스님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빌려서 살고 있는 듯했다. 몇 번 다시 가서 전후사정을 알아보니 우리가 땅을 사도 쉽게 집을 비워줄 것 같지 않았다. 이미 마음먹고 절을 차린 상황인지라 아무리 법을 동원해도 나중에 골치만 아플 것 같아서 포기하고 말았다. 이런 경험은 강원도 평창의 봉평에서도 했으니 마음에 드는 집터는 벌써 대부분 임자가 있다는 것을 서서히 깨닫고 난 다음부터 집터 구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하게 되었다. 내가 바라는 집터를 너무 이상적으로 생각했는지 모르지만.우리나라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여행을 많이 하는 사람이라더니 과연 그런가 보다. 지금은 집을 짓고 가꾸느라 오히려 여행을 거의 못하고 살고 있어서 답답하기도 하지만 집터를 구하러 다니던 수년 동안 삼만 리 넘게 돌아다녔던 시절이 새삼 그리워진다.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 더 행복할 수도 있다. 나보고 3년 동안 집을 직접 짓는 과정을 되풀이하라면 못할 테지만 행복했던 시간들이었다고 고백하고 싶다. 그 시간은 존재하는 삶이었기 때문이다. '존재하는 삶(Sein)'은 그 자체가 자유롭고 희망이 가득 찬 축복이다. 하지만 집을 다 짓고 나면 이제부터는 '소유하는 삶(Haben)'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그러면 더 행복할 것 같지만 사실 집이라는 것에 자유를 빼앗기고 얽매인다. 그럼에도 인간이기에 집을 짓고 그 안에서 편안하게 살아가려는 기본 욕구를 충족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으니…….우리가 이곳 덕유산까지 올 수 있게 했던 사건이 생겼다. 집터를 구하지 못해서 마음이 초조하던 차에 문제가 생겼다. 우리가 살던 아파트의 아래층 사람이 우리 애가 뛴다고 시비를 걸어오기 시작했다. 층간소음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예민하기 이를 데 없는 아래층 사람들은 세 살 된 아들(몸무게 15kg 정도)의 '콩 콩 콩' 뛰어다니는 발소리와 장난감 던지는 소리를 못 참겠던 모양이다. 심지어 청소기 소리도 시끄럽다고 하니…….싸움을 해도 끝이 나지 않는 공동주택의 층간소음 문제는 결국 살인까지 일어난다고 하지 않는가? 싸워도 헛수고임을 알고 나자 더 이상 망설일 수 없었다. 아내와 상의한 끝에 이번에는 지리산 근처를 찾아보기로 했다. 그 곳에서 목수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 이사를 갔다. 함양읍 근처에서 일 년 동안 월세집(일 년에 150만 원을 일시에 지불하는 셋집이었다)을 얻어서 시골생활을 시작했다. 그 때가 2003년 5월 초였다. 전국 어디가나 한옥 짓는 일은 있어서 이사한 다음날부터 목수일을 하면서 비오는 날이나 쉬는 날은 지리산자락에 집터를 구하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장마철이 되자 목수일을 쉬게 되어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집터를 찾아 집을 나섰다. 7월 어느 날 이번에는 집터를 찾을 때까지 집으로 돌아오지 않겠다고 아내에게 비장한 각오를 밝히고 떠났다. 산청, 하동, 함양 등에서 마땅한 터를 찾지 못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이곳 덕유산 자락에서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田<다음 호에 계속>글쓴이 황인찬 님은 네티즌들 사이에서 '하늘재'로 더 유명합니다. 인터넷 블로그 '하늘재' (http://kr.blog.yahoo.com/hanuljae)를 통해 집 짓는 방법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고재 가구 짜는 일도 왕성하게 하며 직접 주문을 받아 다양한 가구를 만들어 제공합니다. 농학과 철학 전공으로 두 차례 대학교를 다니고 철학박사 과정까지 밟으며 학문에만 경지를 넓혀온 그였지만 전혀 다른 세계인 한옥 목수로 전향해 현재의 삶에 대만족하며, 덕유산자락 개량한옥에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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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재 이야기 II] 살만한 터 찾기가 이리도 힘들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