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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다양한 분야에서 종사하는 고객들 덕분에 보다 풍성한 삶을 누릴 기회를 얻는 듯하다. 음악에 문외한에 가깝던 필자는 케이블TV 음악방송국 사장의 전원주택을 설계한 계기로 한국 가곡과 베토벤, 모차르트, 바흐 같은 거장들의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생활의 여유도 가지게 되었다. 집을 설계해 준 데 대한 고마움의 뜻으로 '꼭 주고 싶은 것이 있다'는 말과 함께 건네받은 플래티넘(Platinum : 100만 장 이상이 팔린 앨범) 가곡 전집 CD는 지금도 사무실과 차 안에서 필자의 귀를 간질이고 있다.
이 건축주를 처음 만난 것은 2000년 봄이다. 강화도가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언덕 위에서 집을 앉힐 땅을 보고, 그 아래에 있는 횟집에서 건축주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지난날 암 선고를 받았지만 다행히 수술 결과가 좋아서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의 부인은 테니스를 좋아하는 활동적인 분으로 남편에 대한 애정이 각별해 보였다. 보기 좋은 부부였다. 이 부부 사이에는 대학생인 딸과 아들이 있었다.

'언덕 위의 예쁜 집'을 갖고 싶어한 건축주

건축주 부부는 전원주택을 지으려고 오랜 기간 곳곳을 다니면서 외관이 마음에 드는 집들을 수없이 찍었다고 했다. 그 사진들을 필자 앞에 펼쳐 보였다. 매체를 통해 소문난 전원주택에서부터 길 가다가 우연히 마주친 전원주택에 이르기까지… 많은 집을 구경하다 보니 이들 부부의 설계 요구 조건은 분명했다. 그것을 몇 가지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아름다운 서해의 낙조를 감상할 수 있는 바닷가 언덕 위의 예쁜 집.
둘째, 남편의 건강을 위한 볕이 잘 드는 건강 주택.
셋째, 자식들이 자주 들러서 편히 쉬고 즐기다 갈 수 있는 곳.
넷째, 건축주의 집터 바로 뒤편에 이미 집 짓고 사는 친구네와 좋은 이웃으로 지낼 수 있음과 동시에 프라이버시의 확보.

기후적 악조건을 가진 땅

필자가 봤을 때, 이 땅은 바다 조망권을 확보하고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겨울이면 북쪽에서 부는 찬바람과 봄철 중국에서 누런 먼지를 안고 불어닥치는 황사 바람에 정면으로 노출되는 단점도 있었다. 설상가상 그 넓은 언덕 위에 달랑 집 두 채만 외로이 서 있어야 했다. 그렇다고 그 좋은 서향을 버릴 수도 남쪽의 넓고 푸른 정원을 포기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이렇게 정리해 보았다.

첫째, 바다 위에 삼삼오오 떠다니는 조각배를 머릿속에 그려봤다. 멀리서 보면 마치 한 덩어리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여러 척의 조각배. 이처럼 건축주의 대지를 작은 공간들로 구분지어 여러 동의 건물이 되도록 분할하는 형태를 택했다. 이 조각배들이 대오를 정렬하여 북서풍의 강한 바람과 스산함에 대적할 수 있도록 지붕이나 덱(Deck), 가시설 등으로 묶은 다음 그 사이에 작은 마당 공간들을 만들어 계절풍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고도 야외 활동이 가능해야 한다.

둘째, 20대의 젊은 자녀들이 서울에서 부모님을 만나러 강화까지 올 때, 친구 하나쯤 데리고 와서 밤새 기타도 뜯어 보고, 음악도 듣고, 때론 밤에 거실까지 올 필요 없이 라면을 끓여 소주 한 잔 기울일 수 있는 펜션 같은 원룸의 별채를 만든다.

셋째, 부부 침실은 볕이 가장 잘 드는 남측으로 둔다.

넷째, 부부만의 시간이 많을 것이므로 거실과 식당을 한 공간으로 연출하되 내부는 카페 같은 느낌을 살려서 층고를 높이고 외부와 시선을 차단한다. 아름다운 서해의 낙조를 만끽할 수 있는 덱을 넓은 정원과 연결해 만든다.

다섯째, 친구네인 뒷집과 접한 도로 측에 건축물 일부를 바짝 붙여 담 기능을 하는 건물을 만들고, 이 건물과 본 건물 사이에 자연스레 만들어지는 중정中庭을 두어 집의 대문에서 현관까지 부드러운 시선과 보행이 이어지도록 한다. 대문에서 현관은 '1'자로 연결하고 대문에서 현관을 거쳐 거실 앞의 덱까지 단숨에 연결한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선 우측에 거실을 두고 좌측으로 별동別棟 같이 연결된 부부 침실을 두며 곧바로 다시 문을 열고 나서면 서해가 보이는 덱으로 연결시킨다.

'가르기'와 '묶기'로 기후조건에 대처

건축설계 과정들은 때론 지루하기도 하고 때론 흥분되기도 하지만 대체로 비슷하게 이뤄진다. 대지 분석을 끝내고 건축주와 몇 번 만나면서 의견을 교환한 내용이 접점을 찾고 단순화되면 공간에 대한 콘셉트를 확정하고 다이어그램을 그린다.

이 다이어그램은 앞으로 그려질 도면의 기본이 되기에 처음에는 연필로 그려 놓고 그 위에 플러스펜으로, 다음에는 더 진한 유성펜으로 거의 낙서에 가깝도록 그리고 또 그려본다. 그러면서 확신이 서면 다시 트레이싱 페이퍼(도면 작업용 투명 기름종이)를 그 위에 겹쳐 놓고 마지막 다이어그램을 완성한다.

위 그림에서 보면 60평밖에 안 되는 공간을 분할해 4동으로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것들을 연결하는 방법으로 주방/식당동 건물과 안방은 하나의 건물로 다시 묶되 현관 부분을 시선이 투과하도록 하여 시각적으로 재분리했고, 손님방과 안방 그리고 현관을 덱으로 연결했다. 마지막으로 차고/창고는 손님방과 떼어놓고 보니 그 사이에 생긴 통로가 자연스럽게 집으로 들어가기 위한 출입구로 만들어졌다.

구체적으로 각 실을 계획하고 치수를 부여하면서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식당의 위치였다. 거실에서 식당으로 곧바로 들어가되 필요시 공간 분리가 가능하도록 했으며 거실 앞 덱과 식당 앞 덱은 너무 넓어 휑할 것 같은 느낌마저 들어서 거실 앞 덱의 한 귀퉁이에 필자의 전매 특허인 소나무 한 그루를 꽂아 두고 그 주위에 벤치를 두면서 식당 앞 덱을 두 계단만 들어 올렸다. 이로써 서해를 바라보기 좀더 쉬워졌고 현관에서 바라보이는 덱의 볼륨감도 살아나는 느낌이 들었다.

차고의 콘셉트는 기본적으로 지붕만 있는 구조를 하고 도로 쪽에서 봤을 때 본채가 너무 가리지 않도록 했다. 주차 후 다시 돌아나가서 대문을 통해 들어오지 않도록 하되 부분적으로 키 낮은 벽체를 세워 개방감과 동시에 영역성을 두기로 했다.

2층의 기능은 자녀방만 두 개를 두기로 했으며 자녀의 성별을 고려해 각 방들이 떨어져 있도록 했다. 이를 연결하는 것은 복도가 아닌 다리(Bridge) 개념을 도입하고 그 브리지에서 볼 수 있는 것은 거실을 통하여 거실 앞 덱 그리고 계단 쪽 창을 통하여 상징적으로 솟아오른 차고동의 높은 지붕, 그 위를 지나 도로가 보이도록 했다.

입면 계획은 너무 요란하지 않도록 하되 지붕의 볼륨감을 주어서 각 실의 기능을 외부에서 짐작이 가능하도록 했으며 마당에서 바라보는 정면 그림은 별채인 손님방이 확연히 구분되도록 분리했다.

공사 완료 후 입주해서 살던 건축주 내외가 "언제든 서해 쪽으로 놀러올 일 있으면 가족들 데리고 오세요! 독립된 손님 공간뿐만 아니라 아예 집 전체를 빌려 드릴게요"라면서 아이들이 자기네들 방은 잘 이용하지 않고 아예 두 남매가 서로 손님용 별채를 먼저 점령하려고 한다고 했다.
"손님방 덕분에 아이들이 더 자주 들리는 것 같아요. 친구들과 함께 와서도 지내고, 혼자 와서도 아예 그 방에서만 지낸답니다, 모두가 최 건축사님 덕분이에요."

고객에게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였다. 그리고 이처럼 진실어린 고마움의 말은 다음 설계의 에너지가 된다.田


최길찬<건축사·시공기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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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길찬의 전원주택 설계 노트1] 강화도 앞 바다가 보이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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