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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지탱하고 가족을 부양하고자 일한다. 일 속에서 오래도록 지속돼 온 소중한 인연들이 빛을 발할 때도 있지만 예상치 않게 반대의 길(악연)로 들어서는 경우도 많다. '고기리 주택'을 설계·시공하면서 맺어진 인연은 단순히 사업적 맥락에 그치지 않고 필자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했고 앞으로도 인생에 여운을 남기는 케이스이다.


2001년 초봄 고기리 건축주를 만나다

건축주는 당시 용인시 고기리 계곡에서 공인중개사사무소를 운영하며 20필지에 가까운 전원주택지를 개발하는 시행사의 분양을 대행했고, 그 단지 입구에 본인의 집을 지을 계획이었다. 전원주택박람회를 돌면서 수많은 브로슈어와 명함을 수집했는데 그 가운데 한 사람이 필자였고 그것을 통해 우리는 만났다.

늘 그렇듯 처음 만난 자리는 경계와 협상이 팽팽하게 이어지기 마련이다. 건축주는 단지 내의 몇 분(예비 건축주)을 소개해 주었고 그 대가로 설계비를 저렴하게 요구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 요구를 수락했다. 그때만 해도 필자가 운영하는 구멍가게 설계사무소의 열악한 수주 능력과 초보티를 벗지 못한 언변과 영업 능력을 스스로 잘 알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이번 일을 잘 진행하면 앞으로 다른 일이 많이 나올 것 같은 장밋빛 기대감(구력이 쌓이면서 알았지만, 이런 경험을 겪지 않고 발전할 수 없으며, 반면 이 단계를 순조롭게 넘기지 못해 수많은 젊은 건축장이가 좌절과 함께 업계를 떠나기까지 한다) 때문이었을 것이다.

대지 분석

2001년 5월 12일 건축설계계약서를 작성하고 설계를 착수했다.
전원주택단지를 개발하면서 경사도 급한 산을 절개하다 보니 도로와 대지의 레벨 차가 약 4m 이상 7m까지 나는 땅이 될 수밖에 없었고, 이를 이용해 레벨이 낮은 쪽 도로를 향해 필지별로 지하주차장을 만들어 놓았다.

대지분석도에서 보듯이 대지 우측면을 따라 수지 고기동 계곡을 타고 올라가는 8m 도로가 대지보다 약 4m 정도 낮았고 대지 뒤쪽으로 경사가 비교적 급한 6m 단지 진입로가 있으며, 본 필지는 단지 진입로에 바로 붙어서 경사면을 올라오는 차량의 가속 페달 밟는 소리와 프라이버시 침해에 대비해야 했다.

한편 단지 진입 도로가 ㄷ자로 꺾이면서 남동측으로 향하는데 이 도로 반대편을 따라 다른 필지들이 만들어져 있다. 이 필지들은 산의 정상부 능선을 향해 더욱 가팔라지는 경사지를 절개한 부분에 해당돼 본 필지로 향하는 햇볕 드는 시간을 줄여주는 약 7m 이상의 거대한 콘크리트 벽으로 만들어져서 햇볕이 최대한 마당에 들도록 건축물을 배치시키다 보니 건축물은 자연스레 8m 도로와 후면의 6m 도로 쪽으로 밀려나게 됐다.

공간 배치 계획

단독주택에서 1층 배치 계획은 매우 중요하다. 상가주택이나 주상복합건축물의 경우 상부층에 있는 건축물의 배치 계획에 의하여 아래로 내려오면서 벽과 기둥을 맞추고 공간을 분할하는 방식을 취하는 경우가 많지만 단독주택은 이와 반대로 1층 계획이 2층의 공간구획까지 좌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건축물의 북동측 코너를 향해 뭔가 열린 공간이 있어야 할 것 같았는데 이 공간은 도로 레벨보다 높은 위치라서 조망이 좋고 여름철 건축물에 의하여 생기는 그림자로 매우 시원한 공간을 만들어낼 것 같았다.

우선 이곳에 필요한 덱(Deck)을 만들기로 했지만 건축물의 후면인지라 일반적인 덱의 성격보다는 다이닝 테라스를 겸한 가족용 덱의 성격이 적합할 것 같아서 식당과 연계하고 이 식당을 지나 깊은 곳으로 주방을 드릴 계획이었다.

해가 드는 쪽으로 길게 만들어지는 전면 복도를 따라 아치형 창을 반복적으로 넣고 이 복도의 양 끝에 거실과 주인침실을 두었다. 이곳은 도시계획상 용도지역이 자연녹지지역인지라 건폐율이 20%밖에 되지 않아서 보일러실은 계단 밑을 이용하여 구겨 넣듯이 계획했다. 아마도 2층 계단 하부에 화장실과 보일러실의 2가지 기능을 넣은 주택은 그리 흔치 않을 것이다.

건축주의 가족 구성은 4인이다. 당시 40대 후반의 건축주와 부인, 고등학생인 큰딸(지금은 대학생)과 중학생인 작은딸이 강남의 아파트에서 살았다.
2층에는 방 2개를 배치하고 복도에 사다리를 놓아 물건을 수납하도록 지붕 속에 다락을 두었다.

입면 계획

입면 계획은 따뜻한 색상을 좋아했던 필자의 취향을 반영해 계획을 잡도록 건축주가 배려해주었다.

당시만 해도 전원주택 설계나 시공에 초보티를 완전히 벗지 못한지라 여러 부분에서 욕심만 앞서다 보니 외벽 재료로는 호주산 수입벽돌, 창문은 미국식 시스템창호(비교적 저렴함)를 기본으로 하되 다이닝테라스와 연결되는 식당의 분합문과 거실의 분합문은 AL-WOOD 유럽식 창호(가장 고급스런 형태)로 결정했다. 다만 건축물이 8m 도로에서 바라볼 때 언덕 위에 쭉 솟아 있는 부담스러움과 공사비 절감을 위하여 1층 부분과 2층이 만나는 수평선을 기준으로 하부는 호주산 벽돌을 상부는 외단열공법(드라이비트 공법)을 채택했는데, 공법은 건축주와 친분이 있는 업체에 공사를 의뢰할 요량으로 철근콘크리트 구조를 요구했다.

건축 공사, 철근콘크리트와 경량목구조의 혼합

그해 늦가을 건축공사가 시작됐다. 그러면서 건축주는 단지 내 다른 땅을 가진 예비건축주(은퇴한 바이올린 전공 교수)를 소개했고 설계안을 제출했지만 필자의 경륜 부족 때문인지 채택되지 않았다.

2002년 6월 온 나라가 월드컵 개최 열기로 가득할 때 건축주에게 연락이 와서 현장을 방문했는데, 건축주의 집은 철근콘크리트 골조공사를 2층 벽체까지 올린 상태이고, 그 옆 교수 댁은 철근콘크리트조로 지붕까지 뼈대를 완성한 상태로 공사가 중단돼 있었으며, 건축주는 이 2개의 건축물을 모두 완성해 달라는 주문을 하는 것이었다.

교수 댁 건축공사를 먼저 시작해 놓은 다음 이 집을 바라보니 콘크리트 공사를 제대로 진행하지 않아서인지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가 많을 것 같아서 일단 다이아몬드톱으로 건물 1층만 남기고 2층 부분의 벽체를 잘라내 버렸다.

그런 후에 2층 부분을 미국식 목구조로 만들어 올리고 공사를 마무리했다. 일이 잘 되려고 그랬는지 안 되려고 그랬는지 건축이 완료되고 벽돌과 수평으로 만나는 외단열 마감 부분과 2층 거실 위의 지붕에서 물이 새기 시작했다. 지붕공사 업체에 의뢰해 보고 실리콘으로 떡칠을 해도 그때뿐이었다.

비오는 날 건축주의 전화만 와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힘겨운 세월이 계속됐다. 다행히 벽돌부와 만나는 곳은 직원과 함께 2액형 방수 실란트로 꼼꼼히 메워서 해결은 했는데 지붕 부분의 방수는 꽤 오래도록 필자를 괴롭히더니 그 후로 5년이 지난 올해 여름 장마에 또 문제를 일으켰다.

이번에는 아예 지붕 전체에 슁글을 씌워 버렸다. 이 주택은 필자가 관여한 집들 중에 가장 오랜 기간 같은 문제를 가지고 괴롭힌 주택이 됐지만 필자가 설계한 전원주택들 중 고객들에게 가장 사랑을 받는 전원주택이 됐는데, 잡지를 통하여 현장 방문을 통하여 또 무엇보다도 건축주가 이런 불만족스런 점을 가슴에 삼키면서 고객들에게 필자를 추천해 주었기 때문이다.

7년간의 인연을 되돌아보니

이 주택을 통해 소개를 받거나 전화 문의를 받게 된 건축 설계 및 시공 관련 일들을 보면 단연 1위이다. 멀리는 경주주택과 홍천 펜션을 비롯해 죽전 상가주택, 죽전 ○○플라자 신축설계 등 아마도 10건은 족히 되는 것 같다.

서툴기 그지없고 욕심만 앞서던 시절에 만들어진 이 집이 이제는 조경도 자리잡았고, 강아지로 이곳에 온 맬러뮤트도, 진돗개인 워리 녀석도 이젠 힘세고 기운찬 성견이 되어 집을 지키고 건축주와의 인연은 만 7년이 되어 가고 있다.

일거리를 찾아 하이에나처럼 헤매기도 하고, 만들어진 일을 기간 내에 처리하려고 얼마나 많은 밤을 낮 삼아 살아가고 있는가.
일을 많이 하면 할수록 사람을 많이 만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더 많은 사람을 기억에서 지워나가거나 관계를 조금이나마 멀리 해야 새로운 일들을 처리할 시간적 여유가 생기는 것이지만, 이 고기리 주택은 잊어버릴 만하면 전화가 온다.

"저∼ 말이죠, 고기리 주택 보고 전화했는데요. 그 집하고 똑같이 지으면 공사비는 얼마나 되나요?"

그러다 또 전화가 오면 고기리 건축주이다.

"아∼ 지붕에 또 물이 새는데, 아∼ 참, 전화하기도 미안하고… 언제 시간 나면 한번 와줄 수 있나요?"

하자 보수 기간은 벌써 끝났지만 건축주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평생 하자 보수를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도 건축주가 부르면 달려가는 것은, 이 주택으로 인해 필자가 받은 혜택이 너무나도 크기 때문이다.

물질적인 것뿐만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면서 많은 부분을 생각하게 하는, 서툴기만 하던 시절의 열정으로 쌓아올린 집이다.田


최길찬<건축사·시공기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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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길찬의 전원주택 설계 노트 9] 살며 생각하며... 고기리 주택이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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