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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주상량과 수장 “평당 얼마 들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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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울에 관심을 보이는 많은 이들이 묻는다. “집 짓는데 얼마나 들었소” “ 평당 얼마요” 그때마다 나는 곤혹스러워진다. 그래서 대충 얼버무리며 넘어간다. 평당단가로 집을 평가하려는 사람들, 얼마 들었느냐에 따라 집의 등급을 매기고, 심지어 그 집주인의 인격까지도 재단하려는 사람들, ‘물질만능주의가 판을 치는 이 사회 풍토에서는 무리가 아니겠지’ 생각을 하면서도 씁쓸한 마음은 금할 길이 없다. 지난번 민들레울의 규모설정에서 기둥이 세워지기까지에서 우리네 살림집 ‘한옥’에 담긴 조영사상을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입주상량에서 수장에 이르는 과정을 통해 조상들의 집에 대한 철학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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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재순서
1 조상의 삶이 담긴 우리네 살림집 ‘한옥’
2 규모설정에서 기둥 세우기까지 ‘작은집이 길하다’
3 입주상량과 수장 “평당 얼마 들었소”
4 흙일과 담벼락 ‘자취를 감춘 흙일’
5 다린초당과 공동체 문화의 열린 공간 ‘마당’





입주상량(立柱上樑)

기둥이 주춧돌 위에 정확하게 세워지고 나면 기둥머리에 도리와 보가 결구 된다. 정교하게 치목된 부재들이 한몸뚱아리로 합해지게 되는 것이다. ‘상량’이란 마룻대를 얹는 작업을 일컫는데, 결구 된 구조틀의 최상부에 ‘종도리’를 얹는 작업을 가리킨다.

상량 이후에도 많은 작업이 남아있지만, 이로써 집의 형태가 완전히 잡히게 돼 집이 집으로써의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량식’은 대단히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건물이 비로소 하나의 인격체로 성화되는 순간이다.

‘상량제’ 또는 ‘상량고사’라고 부르는 의례는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집에 대한 예와 부귀공명을 누리게 해 달라는 축원의 의미는 동일하다. 마룻대가 제자리에 얹혀짐으로써 인격체가 생명을 얻어 탄생하는데, 이 종도리가 의례를 통하여 성화됨으로써 신격화되는 것이다. 즉 성주신이 탄생되는 순간이다.

민들레울의 상량제는 일천구백구십오년에 거행되었다. ‘민들레 꽃씨 통일의 새싹을 틔우는 마음으로 단기 4328년 10월 10일 오후 세시에 입주상량’이라는 상량문을 얻었다.

이 집은 한반도를 가로질러 북녘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 우리 민족이 영 갈라져 하나가 될 수 없다면 몰라도 통일이라는 명제가 모든 백성에게 지워진 큰 숙제라면 각자 이에 대한 견해가 있을 터이다.

상량문에 터무니없는 민들레 꽃씨와 통일을 언급한 것은 이러한 전통에 대한 공감대가 용이해지리라는 심정에서다. 어머니인 땅에 민들레 같은 질긴 생명력의 꽃씨가 심어져 얼쑤! 어깨를 들썩거릴 통일의 마당에 모든 한국인의 심성이 담겨져 있는 한옥이 큰 역할을 하리라는 소망을 품어본다.

수장

입주상량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집의 내부 공사가 진행된다. 벽선과 하방, 상인방 등이 들어 앉게 되는데, 기둥과 기둥사이를 건너질러 꾸미는 나무를 ‘수장재’라 일컫는다. 수장을 설치하는 데에는 성격상 벽체와 문얼굴, 마루 등 세 부분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민들레울에서는 특히 문얼굴에 신경을 썼다. 출입구에는 두짝의 크기가 3자가 넘는 규모이며 꽃살문으로 장식을 하고 양면의 꽃살을 사이에 두고 유리를 설치하였다. 또한 출입구가 있는 홀의 정면에도 본래는 문과 벽이 설치되어야 하나 바깥 풍광을 안에서도 감상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차원에서 벽선만을 세우고 문과 벽이 들어갈 자리는 붙박이 유리로 치장하였다.

때문에 한옥에는 어울리지 않는 번쩍거림이 민들레울의 큰 흠으로 남았다. 하지만 대중이 드나드는 영업집이라는 한계에서 어쩔 수 없는 형태라 스스로 안위를 삼고, 또 이는 한옥의 현대화에서 고려해야 할 하나의 부분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대청에서 앞마당으로 향해 설치된 창호에는 방과 대청사이에 달리는 붙박이창을 약간 응용한 팔각무늬문을 설치하였다. 이는 옛 방식에는 조금은 어긋나는 태도이지만, 시각의 변화와 다양성을 위해 무릅썼다. 그리고 본래의 대청규모에서 두배 이상 넓어진 것도 고려하여 정하게 된 것이다.

대청을 제외한 방의 앞면 문얼굴에는 모두 ‘머름’을 설치하였다. ‘머름’은 한옥에서 장식적인 역할과 함께 기능성을 동시에 발휘하는 그런 요소이다. 방풍(防風)을 위한 수단이면서 마당에서 바라보는 눈높이 관계 및 방안에서의 아늑함을 동시에 추구한다.

이러한 머름이 있는 부위는 대체로 양명을 받는 창에 속한다. 그러므로 머름이 설치된 곳은 출입할 수 없다. 민들레울의 가운데에 있는 누각과 같이 도출된 방에는 사방으로 머름이 설치되었는데 자른 머름이 전면에 있고 양옆으로는 통머름이 있다.

온돌과 마루

한옥의 가장 큰 특징을 들라면 역시 온돌과 마루를 꼽을 수 있다. 구들과 마루는 판이하게 다른 구조이다. 구들은 북방에서 추위에 견디기 위해 시작된 것이고, 마루는 덮고 습한 북방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한옥은 이러한 이질적인 성격의 구들과 마루를 동시에 담아내고 있다. 전혀 다른 성격의 두 요소가 한반도에 와서 서로 조화를 이루며 정착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구들과 마루가 공존하는 한옥은 다른 나라 건축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독특한 모습으로 우리조상의 지혜를 다시금 생각게 한다.

민들레울 본채는 본래 온돌과 마루가 함께 있었으나, 후에 구들 위에 보일러를 설치했다. 집을 옮기는 과정에서 이곳의 필요에 의해 대청과 방을 모두 보일러로 교체한 것이다. 다만 그래도 한옥을 표방하는 민들레울에 구들이 없다는 것이 아쉬워 사랑채를 따로 독립시키고 이곳에 구들을 들였다. 그런데 이곳의 구들은 고래구들이 아니라 통구들의 형식이다.

민들레울의 전신인 ‘천연동 한옥’은 1920년대 이후에 성행한 집장사의 집이다. 때문에 전형적인 한옥으로 구분하기에는 미진한 감이 없지는 않지만 아무튼 민들레울에 구들과 마루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점이 두고두고 아쉽다.

하지만 이 또한 한옥에 현대화라는 차원에서 다시금 고려해 보아야할 문제이다. 장작 위주의 원초적 난방형식에서 전기, 보일러, 가스 등으로 바뀐 현대의 난방구조를 오늘날 우리의 한옥에는 어떻게 접합시켜야 하는가는 ‘오늘날의 한옥’을 정착시키는 과정에서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점이다.

집장사의 집, 건축가의 집 그리고 한옥

집장사가 지은 집은 대개 가격이 낮다. 정작 들어와 살 사람은 전혀 고려치 않고 단순히 값 싼 재료와 겉만 번지르르하게 치장하는 데 힘쓰기 때문이다. 소위 평당가를 낮추는데 주안점을 둔 건축물이다.

반면, 건축가가 지은 집은 대개 비싸다. 아마 우리의 건축문화가 일반적으로 재력 있는 자를 위주로 하여 생긴 까닭이다. 그들은 대개 기능 위주보다는 폼 내는데 심혈을 기울여 하나의 작품으로 치중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집주인의 의견과 삶의 철학이 깃 든 집을 찾기란 쉽지 않다. 조금은 불편해도 정이 흐르고 이웃과 더불어 살 수 있는 구조, 자연에 대하여 열려 있는 집이 그립다.

요즘 한옥을 짓고자 하면 여러 가지 제약이 따른다. 건축가를 만나는 일, 주인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 줄 시공자를 만나는 문제, 재료에 대한 수급 등 어느 한 가지 만만한 게 없다. 그러나 집짓기에 대한 방향은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서 나오므로 우리는 관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이런 문제는 극복 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우선 집 설계는 스스로 하는 자세가 필요하겠지 나를 위한 집, 우리를 위한 집이란 남이 그려 논 집, 남이 모두 지어 준 집이 아니라 자신의 의도를 밑그림부터 충분히 반영하는 데서 출발한다.田


글·정순오 (민들레울 대표 031-544-0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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