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보기
-
-
고택을 찾아서, 知 · 仁 · 勇을 품은 달성 삼가헌
-
-
대구 달성군 하빈면 묘리에 위치한 삼가헌三可軒(중요민속문화재 제104호/대구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 800)은 박팽년의 11대손인 성수聖洙가 1769년 이곳에 초가를 짓고 자기의 호를 따라 삼가헌이라 한 것에서 유래한다. 그 뒤 그의 둘째아들 광석光錫이 벼슬에 물러난 후 1826년 초가를 허물고 현재와 같은 정침과 사랑채를 지었다. 누마루와 연못이 일품인 별당 하엽정은 광석의 손자인 규현奎鉉(호:荷亭)이 파산서당으로 사용하던 건물로 1874년 건축했다.글 최성호 사진 홍정기
하빈면 묘리에는 사육신 중 한 명인 충정공 박팽년(1417∼1456) 후손이 모여 사는 순천 박씨 집성촌이 형성돼 있으며, 1769년 박팽년의 11대손인 성수聖洙가 지은 삼가헌은 박씨 집성촌과는 낮은 산을 경계로 하고 있다.삼가헌三可軒이라는 이름은 중용에서 나왔다. 중용 제9장에는 '子曰天下國家可均也, 爵祿可辭也, 白刃可蹈也, 中庸不可能也(자왈 천하국가가균야, 작록가사야, 백도가답야, 중요불가능야)'라는 문구가 있다. '천하와 국가는 다스릴 수 있고, 관직과 녹봉도 사양할 수 있고, 시퍼런 칼날을 밟을 수도 있지만 중용은 불가능하다'라는 뜻이다. 천하를 다스림은 지知이고, 작록을 거부하는 것은 인仁이며, 칼날을 밟는 것은 용勇에 해당하는데 삼가三可는세가지를 말한다. 즉 선비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을 모두 지녔다는 뜻이다.
현관 역할을 하는 문간채 너머 사랑채가 보인다. 사랑채 몸채는 전면 다섯 칸 측면 네 칸이다.
사랑채 옆으로 놓인 것이 방앗간이다.
빼어난 경관을 지닌 '연꽃잎 정자'하엽정삼가헌은 별서를 가진 구조다. 별서를 구성하는 방식은 집 안에 있느냐 조금 떨어져 있느냐로 구분하며, 연못이 있는가, 없는가로 나뉜다. 이곳은 본채와 같이 붙어 있으면서 연못을 앞에 두고 있다. 별서의 이름은 하엽정荷葉亭으로 하荷는 연꽃을 의미한다. 즉 하엽정은 '연꽃잎 정자'라는 뜻으로 경관이 훌륭해 주손은 "사진가들이 연꽃을 찍기 위해 많이 찾는다"고한다. '종손宗孫'이란 명칭 대신 '주손이라 쓴 것은 집주인의 의견을 반영한 것이다. 집주인은 '종손'은 장자長子로 계속 이어 왔거나, 불천위 등과 같은 분을 모시어 파를 새롭게 만들어 내려오는 경우에만 붙일 수 있다고 하면서 요사이 제대로 호칭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자신 가문은 종손 집안이 아니므로 '주손'이라고 불려야 한다고 했다. 하엽정은 원래 일자형 네 칸 건물이었는데 앞에 누마루를 한 칸을 늘여 붙였다고 한다. 연못은 앞쪽으로 길게 뻗은 직사각형이고 가운데 원형 섬이 있으나 지금은 연엽이 우거져 가운데 섬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원래 서당으로 쓰던 곳이어서 앞에는 '하엽정'이라는 당호와 함께 '파산서당巴山書堂'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하엽정은 집안에 혼사가 있을 때는 다른 목적으로도 사용한다고 한다. 주손의 말에 의하면 처음 이 집에 온 며느리는 바로 안채로 들어가지 않고 시댁의 분위기를 익히기 위해 이곳에서 얼마간 머물렀다고 한다.
본채와 붙어 있으면서 연못을 지닌 별서, 하엽정. 연꽃 피는 모습이 매우 아름다워 사진 애호가들이 자주 찾는다.
사랑채 대청. 오량집이나 삼량집에서 쓰는 서까리를 걸다보니 지붕이 낮아 졌다.
원기둥에 익공으로 지은 당당한 모습의 사랑채. 편안한 느낌이 드는 기품있는 건물이다.
영의정을 지낸 허목이 쓴 현판. / 벽체를 돌과 흙으로 쌓은 곳간. 삼면이 막혔고 전면에 출입을 위한 판장문을 뒀다.
밖에서 보기와 달리 위압감이 상당한 사랑채평대문인 문간채를 지나면 사랑채가 바로 눈앞에 맞닥뜨린다. 사랑채는 여태까지 보아온 다른 사랑채와는 다른 느낌을 주는 건물이다. 사랑채 몸채는 전면 다섯 칸 측면 네 칸이고 뒤쪽으로 두 칸 날개채가 있는 ㄴ자형으로, 원기둥에 익공으로 지은 당당하면서도 품위가 있는 건물이지만 대문칸에서 보면 지붕이 높지 않아 편안한 인상이다.그러나 대청에 앉아 보는 모습은 밖에서 보는 모습과는 달리 위압감이 대단했다. 부재도 튼실하고 다루는 솜씨도 일품이다. 이유는 서까래 결구에 있었다. 사랑채는 오량집으로 오량집은 중도리를 중심으로 주심도리 쪽 즉, 바깥쪽으로는 장연長椽이라고 불리는 긴 서까래를 걸고 종도리 쪽으로는 단연短椽이라는 짧은 서까래를 건다. 일반적으로 장연은 경사가 완만하고 단연은 경사가 급해 지붕이 높아지지만 이 집은 삼량집과 같이 하나의 서까래로 지붕을 만들었다. 집은 오량집이지만 서까래는 삼량집이다 보니 지붕이 같은 오량집에 비해서 낮아진 것이다. 지붕 구조도 좌우가 다른데 대청 쪽은 팔작지붕이고 중문 쪽은 맞배지붕에 맨 끝 한 칸은 부섭지붕(한쪽으로 경사가 진 지붕)이다. 이는 옆 마을 태고정과 같은 구조로 이를 참고해 지은 것으로 보인다. 사랑채 뒤쪽으로 돌출된 두 칸 중 한 칸은 마루, 한 칸은 작은 사랑이다. 마루 한 칸은 벽감을 만들어 위패를 모시는 공간으로 쓰는데 사당이 없을 경우 안채 대청에 벽감을 만들어 신주를 모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렇게 신주를 모시는 경우는 이곳에서 처음 봤다. 주손에 의하면 장례가 있을 때는 시신을 모시는 제청으로 쓰였다고 한다. 작은 사랑으로 들어가는 문 위쪽에는 禮義廉恥孝悌忠信라고 쓴 현판이 있는데 영의정을 지낸 남인의 영수 허목(1595~1682)의 글이라 한다. 사랑채는 측면이 두 칸인 겹집으로 네 칸 대청이 널찍하다. 큰 사랑채는 전면 두 칸인데 앞쪽에 반 칸의 퇴칸이 있어 방 깊이는 한 칸 반으로 다른 집 사랑채 방보다 크다. 사랑채 뒤쪽으로는 처마 밑으로 반의반 칸 규모의 반침을 들였는데 지금은 막혀 있지만 예전에는 이쪽에 문이 설치돼 있어 안채와 왕래할 수 있게 했다고 한다. 전면 중문 쪽 한 칸은 앞쪽에 시봉하는 동자가 머무르던 상방이고 뒤쪽에는 부엌이 있는데 부엌에도 쪽문을 달아 사랑방과 직접 이어지게 했다.
배치도
단열을 위해 두꺼운 흙으로 마감한 부엌 뒷면. / 안채와 사랑채 사잇길로 곳간에 들어가는 길이 있다. / 방갓간에서 안채로 향하는 통로.
사랑채 뒤에 놓인 안채. 화재로 소실돼 2009년 다시 지었다.
기둥이 있는 특이한 곳간안채로 들어가는 세 칸 중문은 초가로 세 칸 중 중문 반대쪽 칸은 방앗간으로 쓰였는데 이렇게 초가로 된 중문이 그리 흔한 것은 아니다. 주손의 증언에 의하면 예전부터 초가였다고 하는데 아마도 선비의 검소함을 보여주기 위해 그런 것이 아닌가 한다.안채는 ㄷ자 형태인데 안방에 면한 부엌 쪽이 두 칸 짧다. 안채는 전면 여섯 칸 전퇴집으로 삼평주 삼량집인데 안채는 2009년 4월 화재로 소실돼 다시 지었다. 다행히 건넌방 날개채 쪽으로는 불이 옮지 않아 과거의 모습을 남기고 있다. 안채의 특징은 부엌 쪽 벽체다. 측면과 후면 방화장 벽체가 일반 집과는 달리 매우 두꺼운데 이유는 부엌을 외부 열기로부터 차단하기 위한 것이라 추정되지만 다른 두 면이 일반 집과 같아 얼마나 효과가 있었을지 의문이다.이 집에서 가장 특색 있는 부분은 곳간이다. 곳간 벽체는 돌과 흙으로 쌓았는데 아래쪽이 위쪽보다 두껍게 돼 있어 안정감을 준다. 이 곳간은 삼면이 막혔고 전면에만 출입을 위한 판장문이 있으며 위쪽 좌우 한 곳씩 그리고 가운데 두 곳에 조그마한 봉창을 뚫어 놓았다. 벽체는 단열을 위해 2자인 60㎝ 정도로 두껍게 했다. 이런 구조는 달성과 인접한 성주 한개마을의 곳간과 비슷해 이 지역의 특징으로 보인다.그러나 한개마을 하회댁 곳간과 다른 점은 기둥이 있다는 것이다. 하회댁 곳간은 안과 밖이 모두 같은 재료로 별도 기둥을 세우지 않았으나 이곳은 벽 안쪽에 기둥을 세웠으며 가운데 들보에도 이를 받치는 두 개의 기둥이 있다. 전면 세 칸 측면 두 칸 규모지만 벽에 있는 기둥이 그리 크지 않고 서까래도 기와집으로서는 적당한 크기가 아닌 것으로 보아 처음에는 초가로 지었던 것을 나중에 기와를 얹고 단열을 위해 후에 벽체를 덧붙인 것으로 추측한다.
마을에서 본 삼가헌. 낮은 뒷산과 안겨 포근한 모습이다.
삼가헌 전경.
진입로에서 본 모습으로 길게 이어진 낮은 담이 한옥 운치를 더한다.
문간채에는 종도리를 받치는 장혀에 개국開國4244년에 상량했다는 명문이 있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단기檀紀연호로 서기西紀1911년에 해당한다. 즉 문간채가 지어진 때는 한일늑약이 이뤄진 다음 해였다.이렇게 상량문을 단기로 기록했다는 것은 일제에 대한 무언의 거부로 삼가헌의 정신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1961년 5·16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정권은 국가재건최고회의를 통해 그해 12월 단기 연호를 폐지했다. 근대화라는 기치 아래 사라져 버린 단기 연호, 그와 함께 우리 문화에 대한 자긍심도 사라진 것이 아닌지 씁쓸하다.
글쓴이 최성호1955년 8월에 나서, 연세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했습니다. 1982년에서 1998년까지 ㈜정림건축에 근무했으며, 1998년부터 산솔도시건축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현재 전주대학교 건축학과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한옥으로 다시 읽는 집 이야기》가 있습니다.
전원주택라이프 더 보기www.countryhome.co.kr
-
2018-12-02
-
-
내 손으로 구들 놓기 ④ 구들 시공에도 설계는 필수, 규모와 고래 형태 결정 후 자재 산출
-
-
구들 시공에 있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역시 설계다. 설계도 없이 한옥 기와집을 짓는 도편수들도 있지만 21세기를 살아가는 세상에 3D 입체 도면까지는 아니더라도 기본 설계는 당연한 준비다. 그리고 구들설계에서 핵심은 고래형태다. 역사 속의 고래에서 우리는 힌트를 얻는다. 글 오홍식 <(사)한구전통구들협회 구들문화원 원장> 010-3044-8396 http://blog.daum.net/guwdle
난방용으로만 사용할 아궁이라면 부뚜막 아궁이보다 함실 아궁이 난방 효율이 낫다.
부뚜막 아궁이를 운용하는 구들일 경우 용도에 맞는 크기의 무쇠솥이나 양은 솥을 준비한다. 메주를 쑤어 장 담그는 집이거나 두부를 끓여 만드는 곳 등에서는 솥을 거는 부뚜막 아궁이 구들방을 시공한다. 그러나 난방 위주로 한다면 함실 아궁이를 만드니 솥을 걸어야 할 이유가 없다.난방용 함실 아궁이로 만들면서 어딘가 솥단지를 얹어 쓰고 싶다면 눈에 잘 띄지 않는 곳 한 편에 한뎃부엌(방고래와 상관없는 한데에 따로 솥을 걸고 쓰는 부엌)을 만들면 쓸모가 많다.까맣게 길들어져 있는 솥이 아닌 회색의 생 솥이라면 처음부터 길들여 써야 한다. 왕겨 속에 묻고 겉에서부터 은근히 타들어가도록 하면서 그 열기와 연기에서 나온 왕겨 기름이 쇠솥에 배게 해 쓰기도 했는데, 이 방법이 번거로워 간편하게 다루는 방법을 적어본다.먼저 쇠 수세미나 거친 볏짚으로 불이 닿는 솥 아랫부분만 빼고 박박 문질러 쇠 때를 벗겨 내고 물로 씻는 것이 제일이다. 충분히 연마됐다 싶으면 불 위에 올려 은근히 데워가면서 들기름을 듬뿍 적신 헝겊을 문질러 기름이 솥에 스며들게 한다. 솥뚜껑도 마찬가지로 한다. 자꾸 문질러주면 기름이 스며드는 것을 알 수 있다.어느 정도 지나 더 이상 기름이 스며들지 않으면 뜨겁게 한 번 달궈 겉에 남아 있는 기름을 태운다. 그러고 나서 솔잎을 가득 넣고 물을 조금 부어 센 불로 끓이고 나면 검은색의 솥이 되면서 쇠 비린내도 사라져 제 역할을 하는 무쇠솥이 태어난다. 쓸수록 낡아지는 스테인리스, 알루미늄 등의 솥과 달리 이 무쇠솥은 쓸수록 빛이 나고 좋아진다. 그냥 놔두면 어느 날 뻘겋게 녹이 슨 흉물로 변하니 꾸준히 대해줘야 한다. 가정용으로 쓰기에는 400㎜ 정도가 적당하겠다. 식구가 적다면 300㎜도 작은 솥이 아니다.굴뚝은 안 세울 수도 있고, 지금 시세로 천만 원 이상 하는 굴뚝을 만들 수도 있다. 구들과는 별개의 설비로 보고 형태와 자재 등을 맞춰야 한다.
건강을 생각해 만드는 구들인 만큼 열을 가했을 때도 몸에 해롭지 않은 재료를 골라 구들을 시공한다.
시멘트보다 몸에 좋은 황토를 써야지난 호에 언급한 구들 공사 자재들 중 황토에 대한 상식의 깊이를 더해 볼 분명한 이유가 있다. 특히 시멘트와의 비교를 통해 어느 면에서 황토가 좋은지 확실히 안다면 건강 백세를 추구하는 현대 주거문화에서의 자재 선택에 좋은 기준이 된다.첫째, 고임돌이나 두둑을 만들 때, 시멘트 벽돌은 황토보다 훨씬 열손실이 크다. 시멘트 열전도율은 황토의 수십 배이고 길이 변화는 50배이며, 수축 균열과 열 균열이 황토에 훨씬 못 미친다. 다시 말해 축열성능이 황토에 비해 1/40 정도로, 쉽게 뜨거워지고 쉽게 열을 빼앗긴다.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는 우리나라 기후 특성상 수명이 짧고 직접 불에 접촉됐을 때 쉽게 부서지는 등 구들 재료로는 적합지 않다.뜨거운 여름에도 시멘트의 빠른 열전도율은 실내 온도를 쉽게 높여주는 단점이 있다. 화재가 날 경우 황토로 만든 구조물은 흙이 점점 더 단단해질 뿐 타거나 부서질 일이 없다. 그을음만 뺀다면 화재 후에도 문제 될 게 없지만 시멘트는 결코 만만치 않다. 철근 콘크리트라면 더 문제가 간단치 않다. 그 구조물의 재료들, 즉 철근과 시멘트, 자갈, 모래, 첨가제 등 각각의 단위팽창계수가 달라 불기운을 받으면 속부터 균열이 생기면서 갈라지고 약해지기 때문에 '불만 났다 하면 맥을 못쓴다'.둘째, 시멘트는 수분 흡수를 억제해 습도가 높을 경우 조절 능력이 거의 없지만 황토의 흡습률은 35%이고 건조할 때의 방습률은 65%로 습도 조절 능력이 뛰어나다. 반면 시멘트는 항상 건조한 상태를 유지하려는 성질이 있어 특히 호흡기 계통의 질환을 유발시키는 것으로 알려진다. 시멘트로 지은 집에서 겨울철 난방을 위해 실내 온도를 높이면 공기 중 습도가 낮아져 건조해지기에 가습기를 틀게 된다. 이와 달리 흙 구들에 콩댐한 한지 장판이 깔린 방에서는 별로 건조함을 느끼지 못한다. 바로 습도 조절력 문제다.셋째, 시멘트는 황토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탈취율을 가지고 있으며 시멘트 강도가 높을 경우에는 사실상 탈취 기능을 기대하기 어렵다.넷째, 통기성 또한 거의 비교되지 못할 정도로 황토가 우수하다.다섯째, 깨끗한 황토는 ph 5~9로 중성에 가까우나 시멘트는 ph 12의 강한 알카리성으로 피부에 쉽게 손상을 입히고 다량의 라돈가스를 방출해 인체에 해롭다. 반면 황토는 체내의 과산화지질을 중화시키는 해독작용을 한다. 여섯째, 황토의 원적외선 방사 효과는 인체 내의 분자활동을 촉진해 신진대사를 돕고 온열효과로 혈액순환이 좋아진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그러나 시멘트의 특징인 방수 효과와 성형의 용이성 그리고 경제성 등이 현대 건축물을 발전시켜 왔다는 장점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단, 구들에서 시멘트재료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시멘트 바닥이든 흙 바닥이든 따뜻한 맛이야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한다면 천연 양모나 비단옷을 폴리에스터 직물이나 인조견과 구분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농약에 찌든 식품과 유기농 식품의 생산 과정 상의 차이를 확인하지 못해도 그 가치의 차이를 무시할 수 없듯이, 독성 물질이 가득한 시멘트 바닥과 흙 바닥의 차이를 인지할 때 제대로 된 구들방을 만들 수 있다.구들방에 드는 자재는 아끼지 말고 최고를 써야 옳다. 돈이 부족하다면 방 크기를 줄이는 것이 더 현명하다. 자재를 준비할 때 미리 꼼꼼하게 계산해, 큰 차량을 이용해 한꺼번에 운반하는 것도 여러 번 나눠 하는 것보다 비용을 절약하는 방법이다.
칠불사 아자방 발굴 사진. 가운데 어미 아궁이가 보이고 왼쪽에 구들돌이 보인다.
아자빙 발굴 후 작성한 구들 도면과 구들돌 배치도. 고래를 붉은색으로 표시했으며 구들돌은 크기와 형태가 모두 기록돼 있다.
복원된 아자방 건물.
시공 준비… 구들 설계하기구들 시공은 특성상, 지붕과 벽체 공사가 거의 다 된 후에 하는 것이 순서다. 구들이 만들어지면 도배, 장판만이 남아 있는 작업이 될 정도로 마지막 단계의 공사로 보고 진행한다. 구들을 먼저 만들어 놓으면, 다른 공사를 진행하면서 충격을 줘 균열이 생기고 나중에 연기가 샐 위험이 있다.나는 구들을 놓을 때, 다른 작업과 부딪치게 되면 손을 놓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구들은 집에서 기능을 가진 부분 중 가장 까다로운 구조물이기에 일하는 도중에 정신이 분산되거나 다른 작업과 겹쳐 불편하게 되면 철저한 점검이 소홀해지기 때문이다.요즘 '내 손으로 놓는 구들방'과 같은 정보자료나 교육 안내문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이 손수 구들 만드는 데에 준비가 소홀하다면 예상치 못한 문제로 어려움을 겪기 쉽고 대충 넘어가게 되어 부실시공으로 이어진다. 구들은 만들고 나면 모두 덥혀져 볼 수가 없다. 벽체든 지붕이든 다시 뜯어고치는 게 어렵지 않으나, 구들을 들어내야 할 경우엔 방 안의 세간을 내야 하는 등 번거로움이 이만저만이 아니므로 '한 번 구들은 영원한 구들'식으로 만드는 게 좋다.굴뚝개자리에 고이는 목초액 꺼내는 일 외에는 최소한 삼사십 년 손 안 보도록 해야 한다. 당연히 구들도 설계를 해야 옳다. 설계도 없이도 한옥 기와집을 짓는 도편수들이 있지만 21세기를 살아가는 세상에 3D 입체 도면까지는 아니더라도 기본 설계는 당연한 준비다.어떤 고래 구조로 할지 결정해야 구체적인 설계가 가능하다. 설계를 위한 선결 과제로 이론학습과 실습은 필수. 기술자가 놓는 구들을 같이 거들면서 배운다든지 취향에 맞는 구들 교육장을 찾아 1박 2일짜리라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도 인터넷을 뒤져보면 수두룩하다. '명품'부터 '짝퉁'까지. 다만, 이론이 뒷받침되지 않는 기술이나 기능은 배워도 제 자리 걸음이기 쉽다. 응용할 수 있는 지혜는커녕 적절한 지식도 갖기 어려우므로 반드시 이론적 보강이 필요하다.내 기술, 내 이론만이 정통이라고 고집하는 도그마 역시조심해야 할 사항이다. 구들 자체가 홍익이념에 맞는 문화 과학이듯이, 배우고 가르치는 데도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서방장지에서 발굴된 외골 고래 구들. 가운데 어미 아궁이, 오른족 새끼 아궁이 자리가 보인다.
어떤 고래로 할까문헌에서 수십 종의 고래를 볼 수 있으나 전국에 산재해 있는 유적을 중심으로 볼 때 가장 많이 나타나는 구조는 줄고래 구들이다. 곧은 줄 고래이건 굽은 줄고래이건 궁궐이나 사찰, 사대부 집의 구들을 보면 거의 줄고래 양식이다. 잘살던 사람들이 쓰던 구들이 제일 좋았던 구조라고 봐도 무리가 없다면 줄고래 양식이 여러 가지 면에서 대세라고 봐야겠다.그래도 굳이 나누어 본다면, 줄고래 외에 쇠고래, 범고래, 중방 고래, 들경 고래, 맞선 고래, 부채 고래, 십자 고래, 되돈 고래, 숯불을 연료로 사용한 궁궐의 탕방 고래까지 건물 구조와 상황에 따라 거기에 맞는 고래 구조가 있다.서기 119년 가야국 태조왕 때, 담공선사曇空禪師가 만들었다는 지리산 칠불사 '아자방亞字房'구들도 6.25 전쟁 후 발굴했을 때 줄고래였음이 밝혀졌다. 한 번 불을 때서 100일간 난방이 됐다는 이야기는 아자방 구들 구조에 더욱 관심을 갖게 한다.가장 많은 고래 종류를 볼 수 있는 곳으로는 단연 경기도 양주에 있는 회암사 터를 따라 갈 곳이 없다. 수십 개 이상의 구들 유적이 발굴됐는데, 100평짜리 서승당지 구들은 그 규모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한다. 여기서도 거의 다 줄고래로 나타나 있다.재미있는 것으로, 2천여 년 전의 칠불사 아자방 구들 구조와 유사한 고래가 이곳 서방장지에서 보게 된다. 이름 하여 외골 고래 구들! 추울 때 본격적으로 불을 때는 어미 아궁이와 여름에도 가끔 냉기와 습기를 없애기 위해 불을 때는 새끼 아궁이가 있어 일반인이 보기에는 구분하기가 쉽지 않은 고성능 고래 구조다.궁궐, 사찰 등 큰 건물들 외에 농어촌에서 쓰던 구들은 상당수 막고래 구들, 일명 허튼 고래 구들이 많이 보이며, 실제 이러한 구들을 전통적인 구들의 대표적 구조로 알고 있는 이가 많다.수도 없이 많은 것 같은 고래 종류에 혼란스러워 하지 말고 내 손으로 만드는 구들방에는 함실 아궁이 줄고래 구들을 추천한다. 구들방 크기는 대여섯 평으로. 굳이 고성능의 좋은 구들방을 만들어야 직성이 풀린다면 구들 문화 발전에 기여한다는 셈 치고 고급 기능인에게 의뢰하는 게 좋겠다.
전원주택라이프 더 보기www.countryhome.co.kr
-
2018-1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