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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단독주택】 재미가 있는 집 - 스킵플로어의 나눔과 더하기
- 집 지을 계획이 있는 사람이라면 설계를 앞두고 집 구경에 나서기도 한다. 다른 집은 어떻게 지었는지 어떤 자재를 사용하고, 구조는 어떻게 했는지 눈동냥, 귀동냥을 얻기 위해서다. “나에게 맞는 주택은 어떤 주택일까? 건축분야 전문가는 어떻게 집을 지을까?”라는 질문이 머리를 맴도는 시기다. 인테리어 전문가인 김호진(40) 씨가 직접 가족의 보금자리로 지은 주택이 있어 찾아보았다. 글·사진 백홍기 기자 건축 정보 위치 광주광역시 광산구 건축형태 철근 콘크리트 지역지구 제1종 지구단위계획구역 대지면적 348.90㎡(105.72평) 건축면적 133.25㎡(40.37평) 연면적 329.64㎡(99.89평) 1층 130.69㎡(39.60평), 2층 116.64㎡(35.34평) 지하 81.87㎡(24.80평), 지붕재 징크 외장재 노출 콘크리트 내장재 방 : 벤자민 스타코, 계단/아트월 : 이태리 대리석 바닥재 동화자연마루, 이태리 대리석 창호재 공간 시스템 창호 내외단열재 슈퍼 온도리 35T, 타이벡 시공 & 인테리어 AJ Design 010-9898-6077 현관입구 중정 아파트는 짧은 시간 안에 주거 공간을 제공하는 게 목적이다. 그러니 입주민의 라이프 스타일은 고려하지 않고 획일화된 구조로 지어진다. 아파트에 살면서 공간 구조나 공간 효율성에 대해 한 번쯤 아쉬움을 느끼게 되는 이유다. 반면, 단독주택은 가족 중심으로 계획하고 설계하기 때문에 같은 집이 없다. 거실과 주방은 계단으로 경계를 구분했다. “공간 구성은 연출이다.” 김호진 씨가 생각한 주택의 콘셉트는 ‘재미’다. 재미의 매력은 반전에 있다. 예측 가능하다면 재미가 없다. 이 집의 재미는 바로 ‘계단’이다. “약간 경사진 대지를 활용했습니다. 거실과 주방, 각 실은 계단으로 이어집니다. 특히, 어머니가 생활하는 공간은 개인 마당이 딸린 독립적인 공간처럼 계획했어요. 방과 마당 사이엔 필로티 공간을 둬 휴식 공간으로 활용하도록 했습니다.” 채광을 위해 창을 크게 냈다. 실링팬(천장용 선풍기)은 공기를 순환시켜 냉·난방에 큰 도움이 된다. ‘계단도 연출이다.’ 철저한 공간 계획을 바탕으로 계단을 계획해야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한다. 계단 중심으로 계획한 이 집은 스킵플로어 형태로 지었다. 스킵플로어는 층과 층 사이에 반 층이 있는 구조다. 음악으로 치자면 변주(變奏)에 해당한다. 절묘한 변주는 원곡을 뛰어넘듯, 계단이 많은 집임에도 공간이 여유롭다. 철저한 계획을 바탕으로 적절한 배치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2층 부부 침실로 연결된 복도와 다용도실. 다이내믹한 계단실은 넓은 통 창과 조화를 이룬다. 그런데 창은 ‘양날의 칼’과 같다. 조망과 채광, 환기라는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지만, 단열 성능을 떨어트리는 게 문제다. 물론 고성능의 삼중 창호를 사용하면 단열 문제의 상당 부분을 보완한다. 그렇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다. 설계할 때, 편의·기능·비용 어느 한 부분을 내려놓으면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계획하게 된다. 어머니 방. 필로티를 계획해 휴식 공간을 마련했다. 건축주는 조망과 채광에 손을 들었다. 창밖으로 무릉도원의 경치가 펼쳐진 건 아니지만, 계단을 이용하는 데 지루함을 덜고, 밝은 빛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다. 만약, 단열을 생각해 콘크리트로 막았다면 답답했을 것이다. 과감하게 넓은 창으로 계획한 건 ‘재미’라는 큰 줄기를 따라 계획했기 때문이다. 계단실은 넓은 창과 밝은 벽 마감재에 의해 밝고 아늑한 공간으로 연출된다. 스킵플로어 형태는 자연스럽게 각 층의 독립성을 확보하게 한다. 다양한 공간, 다양한 활용 ‘다용도실’ “주택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 하나를 꼽는다면 ‘다용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으로 다용도실은 보조주방을 뜻한다. 그래서 세탁기와 개수대, 냉장고, 수납공간을 들인다. 공간 크기는 한두 사람이 오갈 정도다. 이 집의 다용도실은 이보다 더 다양하게 사용하는 공간이다. 수납공간과 냉장고, 개수대는 기본이고, 빨래를 널거나 김장과 같은 큰일도 여기서 끝낼 만큼 여유롭다. 부부 침실. 천장이나 벽으로 빛을 반사시켜 간접적으로 밝혀주는 것을 '건축화 조명'이라고 한다. 이러한 방법으로 부부 침실의 분위기를 계획했다. “다용도실이 작으면 집 안에 수납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공간을 낭비해야 합니다. 보통 다용도실은 작은 공간이지만 집 안의 소소한 일까지 해결하는 공간으로 계획하는 게 좋습니다.” 최근 오픈 천장으로 공간감과 채광을 확보하는 집이 많아졌다. 이러한 오픈 천장을 선호하는 것에도 김호진 씨는 한마디 한다. “집 구조는 주제를 정하고 따라야 합니다. 트렌드라고 해도 한 번쯤 생각해보고 결정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오픈 천장도 그렇습니다. 오픈 천장의 장점이 있지만, 단점도 있습니다. 바로 냉·난방의 취약함이죠.” 활동이 많은 어린 자녀의 방은 다락을 만들어 부족한 공간을 확보하면서 아이들에게 재미를 선사했다. 욕실, 화장실, 세면실로 따로 분리했다. 이용이 많은 세면대는 밖에 두면서 편의성을 높이고, 독특한 디자인으로 인테리어적인 요소로 보이게 했다. 다락. 음악, 영화, 독서 등 다양한 공간으로 활용하는 지하. 집은 자신의 신체와 생활 동선, 습관에 따라 공간 구성이 이뤄진다. 맞춤형 집을 원하면, 먼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생활 습관은 무엇인지 찾아내야 한다. 김호진 씨가 가족 모두 만족해하는 집을 완성한 건, 건축에 대한 해박함 때문만은 아니다. 가족의 행복과 쾌적한 삶을 담아낼 그릇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내면을 들여다본 노력의 결실이다. 결국 가장 좋은 집이란 내 삶에 가장 편안하게 깃들어 있는 집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머니 방과 연결되는 마당. 전원주택라이프 더 보기 www.countryhome.co.kr잡지구독 신청 www.countryhome.co.kr:454/shop/subscription.asp (스마트폰은 현재 무통장 입금 신청만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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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단독주택】 재미가 있는 집 - 스킵플로어의 나눔과 더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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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수기, 6인이 말하는 귀농 노하우
- KeyWord1_ 블루오션 작물을 물색하라주말 농사로 땅과 호흡 맞추며 차근차근 귀농 준비 십수 년 전 노후 대비책으로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에 땅 2800평을 구입했다. 우리 부부는 그 땅을 놀리지 않고 주말이면 텃밭 농사를 지었다. 그러다 어느덧 나이도 들고 그 땅에 애착도 있고 해서 4년 전 귀농했다.막상 귀농하려니 소득원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던 차 우연히 백화점 식료품 코너를 둘러보는 중 블루베리 열매를 보게 됐는데 그 당시로는 처음 보는 과실이었다. 값을 보니 만만치 않았다. 수입품도 아닌데 이런 비싸고 특이한 과실을 생산하는 데는 과연 어딜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고 '내가 찾고 있는 작물이 바로 이거다'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번개처럼 떠올랐다. 그렇게 백화점 식료품 코너에서 그동안 밤잠 설쳐가며 고민하던 농작물이 결정된 것이다.그 날로 동분서주하며 블루베리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을 뒤져 정보를 캐고 농촌진흥청에도 문의하고 블루베리협회나 블루베리 농장을 여러 곳 견학하고 농장주들한테도 많은 귀동냥을 했다.블루베리는 생명의 근원인 흙에서 안전하고 건강한 먹을거리를 생산하고자 하는 나의 농사철학과도 맞는 작물이었다. 다른 작물에 비해 농약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고 '기적의 열매'라 불릴 정도로 친환경 농법으로 비교적 수월하게 재배되는 것이었다. 더더욱 흡족한 것은 경쟁이 심하지 않다는 것. 요사이 말대로 블루오션 작물이었다.지속적으로 블루베리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쌓으면서 한편으로는 토지를 개량하고 석축을 쌓고 블루베리에 적합한 토양을 만들어 갔다. 비닐하우스도 연동으로 해서 160평을 만들었다. 블루베리 나무 1400주를 식재하고 그 이듬해에 첫 수학을 거둔 결과 700kg을 소출했다. 1kg당 5만 원에 내보냈다. 판매방식은 인터넷으로 했다.그 다음해에는 나무를 더 많이 증식했다. 3만주 가량 묘목을 소량판매, 대량 판매 가리지 않고 분양했고 올해는 더 많은 소출을 예상하고 유통망(통신판매)을 더욱 넓혔다. 현재 기존 2800평에 추가로 1000평을 임대해 블루베리 농사와 묘목장, 관리사 등을 두고 있다.이곳 소득이 도시에서만큼 되기에 큰 문제는 없으나 소출이 증대함에 따라 인적 네트워크 형성과 온라인 판매망을 확충하는 데 여전히 어려움을 느낀다.후배 귀농인에게 귀농은 만만치 않으며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니므로 다시 생각해 볼 것을 권하고, 일단 귀농을 결심했다면 철저한 준비로 초기에 시행착오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싶다. 이왕이면 경쟁이 없고 특화된 블루오션 작물을 찾아볼 것을 권한다.글 김정근(58세, 연천블루베리농원) 011-234-5996 www.ycblueberry.comKeyWord2_ 이웃을 섬기라여건 어려워도 원칙 지키는 농사와 상품 생산 나는 서울 성북구 길음동에서 태어나 자라고 성북구 동소문동으로 시집간 서울 토박이다. IMF가 공식 발표되기 전년도에 친척에게 서준 보증과 당시 예식장(사진부)에 투자한 것이 고의적인 부도를 맞으면서 전 재산을 잃어버렸고 이후 남편은 보일러 일을 배워 보일러 가게를 열었다. 남편이 일하러 간 사이 가게를 보면서 부업을 하던 나는 디스크에 걸려 걷는 것도 힘들어지고 심한 당뇨와 고혈압까지 겹쳤다. 2001년경 현재 귀농한 충북 음성군 생극면에 살던 친구가 '한두 달 요양 차 내려와 쉬었다 가라'고 해내려와 두 달을 지내는 사이 건강이 많이 회복되자 '시골에 정착하는 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하며 돌아보던 중 느타리버섯 재배하는 분의 권유로 느타리버섯 재배를 하게 됐다.살 집은 동네 빈 집을 소개 시켜주었는데 남편이 손재주가 좋아 집을 대충 수리했다. 자재는 동네를 한 바퀴 돌면서 이것저것 재료를 구할 수 있었고 벽지와 못, 본드, 시멘트 소량 사는 것이 전부였다.버섯재배사(비닐하우스)를 짓고 버섯을 재배해 판 돈으로 하우스 1동을 짓고, 또 1동을 짓고 그렇게 6동까지 늘렸다. 1년이 지나니 도매시장에서도 인정을 받게 되어 경매에서 좋은 가격을 받을 수 있었다. 버섯이 잘된다고 소문이 나니 버섯 키우는 이웃들이 생기게 되었고, 먼 곳에서까지 견학을 오게 되었는데 문제가 발생했다. 견학 온 분들을 통해 신종곰팡이가 옮기면서 버섯농사가 안 되기 시작한 것-대부분 실패해서 견학 오는 분들인지라 아무리 깨끗이 한다 해도 곰팡이 균이 묻어옴. 이젠 다른 것을 해야 하는데 머릿속이 캄캄해 있다가 다행히 평소 시어머님이 담가 주신 된장 맛이 생각나 된장사업을 하기로 정하고 항아리를 모으기 시작했다.2007년 된장 공장을 착공해 2008년에 완공했다.버섯 재배 이상으로 된장이 잘됐는데 성공 비결은, 원재료인 콩을 음성 콩만 고집하되 종교가 기독교인지라 교우들을 통해 직접 농사지은 것들만 수매하고, 6년 이상 보관된 소금을 사용했으며, 3년 이상 자연 숙성시킨 된장을 판매했다. 오랫동안 발효된 것일수록 우리 몸에 이로운 균들이 많고 깊은 맛도 나기 때문이다.지인들을 통해 알음알음 소문이 나면서 한 말, 반 말씩 된장을 담가 달라는 분들이 늘어갔다. 일단 재료를 믿을 수 있고 된장을 주문하면 자연 간장을 서비스로 제공하고 가격도 저렴하기 때문이다.귀농 하면 고향이라 해도 사람들과의 관계성 때문에 정착이 힘들다고들 하는데 우리는 종교가 있어 수월했다. 정착을 결심한 후 바로 교회에 등록하고 궁금한 점이나 어려운 일이 있으면 교우들에게 물어보면 친절히 알려주고 도움을 주었다. 귀농 당시, 물질적인 여유가 없어서 힘들었는데 정보 부족으로 여러 가지 지원이나 혜택을 받을 수 있음을 미처 몰랐다는 점이 아쉽다.글 권명희(53세, 동뜰배기) 043-882-5258KeyWord3_ 작물에 애착 갖고 주변환경을 활용하라구절초에 대한 애정이 섬 전체를 관광상품으로 15년 전 계획에도없던 광주에서 섬으로의 귀향. 전남 완도군 노화읍 동천리. 남편은 가난이 대물림되는 농사가 싫다며 남들한테 돈 다 벌어 준 끝물인 광어 양식을 시작한다.시어머님 따라 게메미 밭으로 가는 길, 구절초를 만났다. 시간이 흘러도 자꾸 마음을 간질이는 구절초 생각에 급기야 큰맘 먹고 시어머님께"게메미 웃밭 쬐끔만 주시오"했다. 그렇게 구절초를 심기 시작하고 남편은 종당 광어 양식장 일을 접고 만다. 남들 접으려는 광어를 시작했으니 어종 선택 착오였다. 광어와의 5년간 씨름 끝에 남은 빚더미에다 더 보태서 남편은 전복 양식을 시작했다.남편과 상관없이 나는 구절초 밭 가꾸는 일에 매달렸다. 생활고와 무식으로 인한 목마름 그리고 남들이 하지않는 일을 하는 외로움과의 쌈질에 지쳐있을 때 인생의 길라잡이를 만났다. 한국벤처농업대학.자신 없던 내가 대중 앞에서 말하기 시작하고 내 물건이 초라해 보여도 피하지 않고 상품콘테스트에 참여하면서 내 물건의 단점도 체크하는 계기가 됐다. 2007년 8월 서울 인사동 '미술관에서 보는 꿈의 대화-팜 앤 파머스토리'전시회에 참여한 것은 행운이었다.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들이 내일을 신기해 하는 것을 보고 자신감이 생겼다.소극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회사를 만들기로 했다. 영농조합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농민 5명. 수차례 거절당하면서 어렵사리 4명의 동의를 얻어 들꽃마루영농조합을 만들고 구절초 재배단지 조성을 위한 사업계획서를 제출해 군청의 지원을 받게 됐다.고정관념을 버리고 지역 특산물인 전복에 구절초를 이용한 전복가공을 생각했다. 전복간장을 끓일 때 감초와 구절초 효소 첨가로 차별화하고 전복의 비린내를 없애기 위해 말린 구절초를 깔고 익힌다. '구절초전복장조림'과 '구절초건전복'특허를 받고 구절초를 이용한 음식점을 시작하면서 '구절초시인과 전복신랑'상표 등록을 했다. 구절초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 홍보, 판매를 위해 서울에 주식회사 들꽃마루를 설립하고, 영농조합에서 제품에 대한 아이디어를 주면 서울 회사에서 개발 보완해 완제품을 만들고 브랜드네이밍, 디자인, 마케팅, 판매까지 진행한다.제일 먼저 만들어진 제품, 구절초와 전복껍데기에서 추출한 석결명을 이용한 미용비누 '섬'은 백화점을 시작으로 인터넷 쇼핑몰 스토리샵에서도 판매중이다.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도움만 기다리는 내가 아닌 뭐든지 만들어 놓고 해 달라 보채는 사람이 된 덕에 우리는 정부의 도움을 받아 '그 여자가 사는 구절초 피는 섬'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구절초에 마음 붙이고 산 시간들이 있어 희망을 가졌고 구절초와 전복을 만나게 한 덕에 이룰 수 있게 된 내 꿈. 불가능할 것이라는 지레짐작으로 시작도 안 해보는 것은 바보짓임을 다시 깨닫는다.글 박향숙(42세, 들꽃마루) 061-555-2080 www.wandoflower.netKeyWord4_ 사업 변경이 실패를 뜻하지 않는다절반의 성공, 목표를 더 명확히 했더라면… 귀농한 지도벌써 16년이 되었다. 40대 중반에 20년간 잘 다니던 회사(삼성생명 교육부장)를 그만두고 이곳 포천시 일동면 유동리로 온 지가 엊그제 같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묻힌 이곳을 싱가포르의 그림 같은 마을로, 자연이 살아 있으면서 소득도 높은 마을로 발전시키겠다는 포부를 안고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귀농했다.우리 옛 농촌을 온전히 체험할 수 있는 관광농원을 구상하고 3년여 동안 전문가 자문을 구하고 강의나 세미나에 참석하면서 자료를 모았다. 포천에서는 처음으로 관광농원 허가를 받아 주말 농장과 민박, 식당을 운영했다. 10년간 황토방과 구들이 있는 흙집을 다섯 채 지었고 주말농장을 위한 텃밭을 가꾸었다.조기 퇴직, 황토집 등이 사회적 흐름과 일치하다 보니 신문, 방송 등 언론에 많이 소개돼 유명한 장소가 됐고 흙집 짓기 공개강좌를 열었다. 그러나 알려진 것에 비해 수익이 시원치 않았다. 고심 끝에 숙박과 음식 위주 관광농원을 입장료를 받는 볼거리 중심의 테마식물원으로 리모델링하기로 했다. 20~30대 여성을 겨냥한 작은 테마식물원을 목표로 했다. 평창 허브나라, 용인 한택식물원, 청양 고운식물원 등 국내 유명 식물원을 틈나는 대로 다녔다. 새벽 5시쯤 일어나 하루 10시간씩 땀 흘리며 잡초를 뽑았다. 꽃 상태가 좋지 않아 1년을 연기한 끝에 2004년 개장했다.마침 큰아들이 2002년 군에서 제대해 큰 도움이 되었다. 또한 국내 대표적인 숙근초 회사인 우리꽃 박공영 사장님의 꽃에 대한 전문적인 도움을 잊을 수가 없다. 금기시 했던 양귀비를 넓은 공간에 심어 국내 처음으로 양귀비 축제를 2005년에 시작하여 올해 5회 축제를 열고 있다.지난 16년을 돌이켜보면 보람도 있었지만 아쉬운 부분 또한 한둘이 아니다. 절반의 성공이라고 얘기해야 하나. 무슨 장사가 되었건 입지가 중요한데, 사업에 맞는 입지를 무시하고 의욕만 앞세우지 않았나 하고 후회해 본다. 명확한 목표를 세우지 못한 잘못도 컸다.또한 전원생활에 필요한 육체적 노동, 농기계 운전 등 여러 가지를 스스로 할 수 있어야 하며 전원에서 사업을 해야 한다면 장사에 소질이 있는지도 확인해 보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가족 모두가 즐길 수 있어야 한다.그 누가 인생은 60부터라고 했던가. 미래에 대한 꿈 없이 사는 하루하루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금년부터 새롭게 시작한 경기도 문화 관광 해설사 활동을 열심히 하여 다시 오고 싶은 포천시가 되도록 노력할 작정이다.글 이철학(60세, 포천 뷰식물원) 1688-5088 www.viewgarden.co.krKeyWor5_ 새로운 일에 도전하라군의 시범사업 지원으로 농장에 활기 얻어 시어머니가돌아가시자 서울 생활을 접고 시골에서 시아버님을 돕기 시작하고 농사일도 배웠다. 시아버님은 선조 어르신이 1500년 전 경상북도 예천군 풍양면에 터를 잡으신 땅에서 5대째 농사를 짓고 계셨다. 남편은 귀농 후 감, 땅콩, 홍시 등을 생산, 판매하다 풍양농협에 기능직으로 들어가 시험을 통과해 정식직원이 되었다.농사는 아버님과 나의 몫이 됐다. 1400평 과수원도 둘이서 일을 했고 벼농사 지을 때도 아버님을 도와서 벼 씨앗 넣기부터 해서 논매기, 비료하기… 모든 것을 함께하고 살았다. 그러다 시아버님도 2007년에 돌아가셨다.어른이 안 계시고부터 사회봉사활동을 많이 하면서 지은농산 임희순 씨를 만나 사이버 농업인회를 알게 돼 독수리 타자로 컴퓨터를 배웠다. 2008년 경북농업정보대학에 입학하게 됐고 동시에 농업기술센터에서 운영하는 농촌체험 관광대학 과정도 이수했다.2008년 9월 농업기술센터에서 개설해 준 홈페이지를 통해 고객을 만나게 되었고 국내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고추 주문이 들어와 '정말 좋은 시대구나'하고 실감했다.군에서 우리 농장을 체험농장으로 지정한 계기로, 그동안의 복합농업을 정비하고 식용 국화 재배를 새롭게 시작했다. 3년 전부터 취미로 국화를 공부하다가 식용 국화로 고소득을 올렸다는 한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어 의욕이 생겼다. 농업기술센터 소득작물계 성백경 선생님 도움을 받아 시범사업으로 국화공장 건축 지원을 받았고 국화 건조공장이 완공됐다.지난 한 해는 너무나 행복했다. 국화를 심고 식용국화를 따서 차만들기 체험이며 국화 베개 만들기, 꽃 따기, 국화 음식 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해 고객을 우리 농장으로 부르게 됐다.600평의 국화밭은 2년 동안 무농약 재배하고 국화차 판매는 인터넷을 통한다. 올해부터 우체국쇼핑몰로도 유통될 예정이다. 국화는 가을철 한 달 집중해서 일하기에 크게 어려움이 없을 뿐 아니라 농가소득에 많은 도움이 된다. 쌀. 고추, 지취(약초), 양파, 콩, 감자, 국화차 등 복합영농을 하는 우리 농원은 내년에는 다류판매에 더욱 집중할 계획이다. 그리고 생산이력제, 무농약인증 획득을 준비중이고 경상북도 우수농산물인증 획득이 앞으로의 과제다.우리 예천군에서도 빈집 수리, 귀농 교육, 귀농 자금 등 다방면으로 귀농인을 돕고 있다. 시골에서 안 살았다면 과연 우리 아이들이 이처럼 훌륭하게 자랐을까, 정서적으로나 인성이 바로 되었을까,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느낀다. 도시에서는 건강을 위협하는 음식이 많아 먹을 것이 없다고 하는데 시골에서는 거의 모든 게 자급자족이니 그런 걱정에선 해방이다.글 원남출(53세, 서동농원) 010-9155-8627 www.sedongfarm.comKeyWord6_ 내가 가진 전문성과 결합시키라아들의 아토피가 약초 탐구의 길로 이어줘 1995년 7월,아이 둘을 데리고 서울을 떠나 무작정 남원으로 왔다. 둘째 아들의 아토피와 천식이 너무 심해 도저히 감당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백방으로 약을 써 봤지만 소용이 없어 딱 1년만 공기 좋은 시골에서 살기로 했다. 처음엔 위 지역 자동차 번호판만 보고도 멍하니 서서 울기를 반복할 정도로 시골생활에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가려움증으로 온 몸을 피가 나도록 긁어대며 잠 한숨 제대로 자본 적 없고 천식으로 숨도 제대로 못 쉬는 5살짜리 아들 녀석을 보면서 나 좋자고 이곳을 떠날 수가 없었다.처음에는 눈 내리는 새벽에도 비 쏟아지는 밤에도 119 구급차를 타고 남원의료원을 제집 드나들듯 하던 녀석이 약초요법을 병행한지 8개월째 되면서 잠도 잘 자고 숨쉬는 것도 좋아지면서 키도 훌쩍 자라고 제법 씩씩해졌다. 현재 딸아이는 대학에서 한약자원학을 공부하며, 아들은 발레를 전공하고 있다. 나는 토종 약초의 신비한 효능을 알았기에 장안산과 지리산에 아예 자리를 잡았다.남원시가 허브산업특구로 지정되면서 지리산에 본격적인 약초재배를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항암 약초인 단삼과 백화사설초(백운풀), 반지련, 판람근, 강황 등을 지리산 자락인 전북 남원시 주천면 배덕리 일대에 심기 시작했다. 특히 중국이 100대 약초로 지정한 백화사설초는 3년간 재배실험을 마치고 인근 농가와도 계약재배, 생산량을 늘려왔다.숲과 약초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커지면서 교사라는 서울에서의 직업보다 약초 농사꾼이 더 자연스러워졌다. 언젠가 시장이 개방될 때 우리 국민에게 꼭 필요한 약재의 생산기반을 마련해 놓아야 한다는 사명감을 남모르게 가지며 실험재배 약초의 수를 늘려왔다.약초는 세척-저온 건조시켜 한의원과 제약회사에 한약재 원료로 직접 납품하고, 홈페이지를 통해 2만 5000여 명의 회원들에게 모두 판매된다. 계피 · 대청 등으로 염색한 천에 약초를 담은 향기주머니 · 베개 등은 일본으로 수출, 좋은 반응을 얻고 있기도 하다.저렴한 가격은 아니지만 재고는 없다. 우리 약초가 효과 있다는 입소문과 단골 고객이 꾸준하기 때문이다. 또 약초원을 개방해 체험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도 한몫 한다.귀농하여 나는 더 바빠졌다. 우리 선조가 먹었던 자생약초를 더 많이 개발하기 위해 애쓰며 현재, 농업회사법인(유) 헤스와 지리산약초학교, 지리산약초의 대표로 있다. 또 사람들에게 약초의 진가를 알리는 교육으로 남원시 평생교육원 약초학교, 인월초등학교 약초학교 강사를 맡고 있고, 특성화 고등학교 청소년 CEO 만들기 프로젝트사업에서 강사 활동도 한다. 비싼 옷 입고 골프 클럽 들고 다니며 화려한 집에 살 때 알던 서울 친구들은 나더러 '왜 그러고 사니?'한다. 나는 그냥 미소 지을 뿐이다.글 허은선(50세, 지리산약초) 011-658-4656 www.jirisanher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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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킵플로어의 나눔과 더하기 광주 329.64㎡(99.89평) 복층 철근 콘크리트 주택
- 집 지을 계획이 있는 사람이라면 설계를 앞두고 집 구경에 나서기도 한다. 다른 집은 어떻게 지었는지 어떤 자재를 사용하고, 구조는 어떻게 했는지 눈동냥, 귀동냥을 얻기 위해서다. “나에게 맞는 주택은 어떤 주택일까? 건축분야 전문가는 어떻게 집을 지을까?”라는 질문이 머리를 맴도는 시기다. 인테리어 전문가인 김호진(40) 씨가 직접 가족의 보금자리를 지은 주택이 있어 찾아보았다. 글·사진 백홍기 기자 디자인 이정미 기사 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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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킵플로어의 나눔과 더하기 광주 329.64㎡(99.89평) 복층 철근 콘크리트 주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