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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과 건축 Dwelling and Architecture
 
  양성필 건축사(건축사사무소 아키제주 대표)

집을 지을 수 없는 땅
설계와 관련된 모든 상담은 계약이 이루어진 후에 구체적으로 진행되게 됩니다. 그런데 설계를 하기 전에 미리 상담을 해야 할 중요한 사항이 있다면, 자기 땅에 자기가 원하는 집을 지을 수 있도록 법과 규제가 되어있는지를 확인하는 일입니다. 특히 제주도처럼 비도시지역이 많고 경관 규제와 문화재 관련 규정이 많은 지역에서는 땅을 매입하기 전에 최소한 집을 지을 수 있는 땅인지 확인하는 절차가 매우 중요합니다.
 
집을 지으려고 땅을 매입했는데 집을 지을 수 없다면 정말 낭패입니다. 그런 일은 없어야 하겠지만 토지를 구입하고 나서 나중에 확인해보니 집을 지을 수 없다는 말을 들으면 하늘이 노래질 수밖에 없습니다. 집을 지을 수 있는 땅을 사야 한다는 것은 아주 당연하고 기본적인 것이지만 이상하게도 그것을 확인하는 것이 간단치가 않습니다. 10년 이상을 건축설계를 업으로 하여온 필자도 가장 곤혹스러워하는 질문이 ‘이 땅에 집을 짓는 것이 가능합니까?’라는 것입니다.
 
어떤 땅이 집을 지을 수 있는 땅인지를 알 수 있는 요령을 알려주는 것이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는 아니지만 집을 지을 때 처음 봉착하는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법적으로 고려해야 할 기초적인 사항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집을 짓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조건이 있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 도로에 접해야 하는 것입니다. 도로에 접하지 않은 땅을 맹지라고 하는데 맹지에는 건축을 할 수 없습니다. 도로에 접해있다고 해도 모든 형태의 건축이 가능한 것이 아니라 도로 폭의 규정에 따라 건축이 가능한 용도와 규모가 있으므로 구입하려는 땅이 몇 미터 폭의 도로에 접해 있는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건축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최소한의 도로 폭은 4미터로 정하고 있습니다. 만약 4미터 폭 이하의 도로에 면해 있다면 그에 따른 건축 한계선을 제한받을 수 있습니다. 다만 막다른 도로는 막다른 도로의 길이에 따라 따로 규정을 정하고 있는데, 이를테면 막다른 도로의 길이가 10미터 이하일 때는 도로 폭이 2미터 이상이 되어야 하며, 35미터 이하일 때는 도로 폭이 3미터 이상이 되어야 합니다. 35미터가 넘는 막다른 도로는 도시지역에서는 폭 4미터 이상의 도로 비도시 지역에서는 폭 6미터 이상의 도로에 접하거나 확보해야 합니다. 그리 복잡한 규정이 아니지만 글로 쓰려고 하니 좀 복잡해 보이네요.
 
이외에도 특별히 많은 차량의 이용이 예상되는 용도에 대해서는 따로 조례로 접해야 하는 도로 폭을 규정하고 있으니 지으려는 건축물 용도에 따라 확인해야 합니다.

기반 시설이 가능한가
도로에 접해야 하는 것 다음으로 확인해야 할 사항은 전기와 상수도의 공급이 가능한 지역인가 하는 점입니다. 물론 도심에서는 큰 문제가 없는 일이지만 제주도처럼 비도시지역이 많은 곳에서는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전기 공급 가능 여부는 한국전력을 통해, 상수도 공급 가능 여부는 관할관청에 파견 근무하는 수자원본부 담당 직원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전기와 상수도 공급은 설사 공급이 가능하다고 하여도 인입공사에 대한 부담을 원인자에게 지우게 되므로 공사비가 어느 정도 들어갈지까지 확인해야 합니다.
 
전기와 상수도 공급이 확인됐다면 오수처리가 가능한 지역인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제주도의 경우 제주시의 동(洞) 지역을 제외하고 하수관이 없는 지역에서는 오수와 하수를 같이 처리해서 땅으로 오하수를 침투시키는 합병정화조의 설치가 가능합니다. 때문에 합병정화조의 처리가 불가능한 제주시의 동(洞)지역의 땅을 매입할 때는 특히 오수처리가 가능한 지역인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번거로운 일이지만, 이 네 가지 도로, 상수, 하수, 전기의 기반 시설에 대하여는 반드시 담당 공무원을 통해 확인해야 합니다. 보통 옆에 주택이 있으니까 당연히 상수도 공급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접근하기도 하지만, 간혹 예외의 상황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돌다리도 두드리고 건너라는 속담은 땅을 구입하려고 할 때 몇 번이고 중얼거리는 것이 좋습니다.
 
위의 네 가지의 기반 시설을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집을 지으려고 하면 종종 생각지 못한 복병이 나타나서 원하는 집을 짓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토지를 매입할 때 소유권을 확인할 수 있는 등기 서류를 체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건축 가능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토지이용계획확인원’을 확인해야 합니다. 토지이용계획확인원에 적혀있는 하나하나의 내용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물건을 고를 때, 자본주의 사회가 가르쳐주는 단순한 원리에 감탄하고는 합니다. 싸고 좋은 것은 없다는 것이죠. 때문에 물건을 잘못 샀다고 하면 싸고 좋지 않은 땅을 산 경우가 아니라 비싼데 좋지 않은 땅을 산 경우이지요. 토지이용계획확인원에 적혀있는 많은 정보들은 그 땅의 투자가치를 결정하는 중요한 정보들입니다.
 
토지이용계획확인원에는 땅에 대한 성격을 규정해놓은 정보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정부에서 토지와 관련한 정책을 알려주는 서류입니다. 먼저 우리나라 국토의 도시지역은 상업지역, 주거지역, 준주거지역, 공업지역, 녹지지역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그렇게 구분하지 못한 비도시지역을 관리지역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국토를 지역으로 세분화한 다음에 지역별로 건축이 가능한 용도를 지정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주거지역에는 위락시설을 지을 수 없다는 등의 규제이지요. 대개 1가구의 단독주택을 지을 수 없도록 규정한 지역은 거의 없지만, 2가구 이상인 다가구주택의 경우에는 지을 수 없는 지역이 있을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합니다. 자신이 지으려고 하는 건축물의 용도가 해당 지역에 가능한지의 여부는 도시계획조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건축 가능 규모를 규정하고 있는 건폐율과 용적률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지역에는 건축 가능한 규모를 땅의 크기에 비례하여 제한하고 있습니다. 건폐율은 공중에서 바라보았을 때 전체 토지에서 건물이 땅을 차지할 수 있는 정도의 비율을 정의한 것입니다. 건물로 인해서 대지의 공지 부분이 사라지지 않도록 규제하는 것입니다. 용적률은 땅의 크기에 비례해서 지상에 지을 수 있는 건물의 총면적을 제한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자연녹지의 건폐율은 20%, 용적률은 80%로 규정되어 있습니다.그 의미는 자연녹지에 있는 100평의 땅을 구입했다고 한다면 지상에 지을 수 있는 건물의 바닥면적 다 합쳐서 80평 이상을 지을 수 없으며 또한 가장 넓은 층의 면적은 20평을 넘을 수 없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입니다. 이 경우에는 20평씩 4층을 지으면 총면적이 80평이 되니까 최대한의 규모로 지은 것입니다.

불친절한 설명이지만 건폐율과 용적률에 관해서 세세히 설명하기는 지면이 아쉽습니다. 그리고 모든 지역의 규정을 이해할 필요는 없을 테니 이 이상의 구체적인 사항들은 건축사의 도움을 받거나 건축직 공무원을 통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그 외에도 토지이용계획확인원을 보면, 문화재 관련 규제나 생태와 경관등급 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한 지적경계와 현황 경계가 일치하지 않아서 이웃 간의 분쟁이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적도에 없는 묘가 있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어쩌면 대지 주변인들에게 들어보아야 알 수 있는 사항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 많은 변수들을 정확하게 다 확인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건축사도 쉽게 답변할 수 없는 부분이 이러한 변수들이 종종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집을 지을 수 있는 땅이라는 것을 판단하고 매입을 결정해야 하는 것은 본인 부담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마치며.....
제가 처음 이 글을 쓰려고 마음먹은 목적을 잘 달성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애초의 이 글은 처음 집을 지으려는 분들에게 건축설계와 건축사의 업무에 대한 이해를 구하고, 건축사에게 알려줘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글을 쓰다 보니 건축사라는 직업에 대한 변명과 건축설계 방법에 대한 개인적 주장이 주(主)가 되었습니다.
 
여전히 부족한 설명이 많습니다. 생각을 글로 남긴다는 것은 진땀이 나는 일입니다. 아는 게 부족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사려 깊지 못한 의견이 남에게 상처를 주거나 오해를 일으킬 수도 있는 것이 글이기에 마음의 부담을 떨치기는 어려웠습니다. 아직은 부족함이 많은 상태에서 쓰인 글이라는 점으로 용서를 구하려 합니다.
 
제 의도는 좋은 집을 짓기 위해서 의뢰인과 건축사가 같이 설계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는 것이었습니다. 결론은 단순합니다. 좋은 집을 설계하기 위해서는 의뢰인과 건축사 간의 진지한 대화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대화 속에서 좋은 집에 대한 합의를 끌어내는 것이 중요한 설계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집을 지으려고 결심했을 때 이 글이 건축사와 함께하는 건축설계의 과정을 예상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건축사의 집 이야기 '계획설계와 설계비(1)' 보기

  본 기사는 연재물로 '전원주택 짓기' 시리즈에서 차례대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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