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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사람을 만든다 (I)

양동 마을에는 고택이 많다.그 중에서도 향단(보물 제412호)과 손동만 씨 가옥인 서백당(중요민속자료 제23호)이 유명하다. 필자는 두 고택을 답사하고 너무도 대조적인 환경에 놀랐다. 향단은 양동 마을 입구에서 잘 보이는 위치에 있다. 향단의 정면은 독특하다.우리나라 건물에서는 지붕의 합각면을보여주는 경우가 없다. 그러나 향단은 합각면을 정면으로 보여 줄뿐만 아니라 연속해서 보여줌으로써 더욱 강조하고 있다. 그 때문에 멀리서도 쉽게 눈에 띄고 매우 화려해 보인다. 외부의 모습하고 달리 향단의 내부는사랑채에서 바라보는 정경 외에는 집안이 너무 답답하고 보잘 것이 없었다.

필자에게 향단에서 살라고 한다면 한시라 도 그럴 수 없을 것 같았다 안채는 행랑채와 안채의 기단 사이에있는 좁은 통로를 지나 반빗간 형식으로되어 있는 부엌을 거쳐 들어간다. 안채는사방 두 칸 밖에 안 되는 안마당에 면해있다 안마당의 규모가 다른 집보다 작은데다가 처마까지 튀어나와 하늘을 가리고 있어 더 답답하게 느껴진다. 돌아 나오면서 그러한 집에서 사는 사람들의 심성은 편협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향단을 본 뒤에 찾아간 서백당은 전혀다른 느낌이었다 안채의 안마당은 넓으면서 밝았고, 집이 높은 곳에 위치하고있어 마을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시원한조망을 가지고 있었다. 향단과 비교하면마치 천상 세계에 온 기분이었다. 집에들어가자 매우 편해 보이는 인상을 지닌집주인(몇 년 전에 돌아가셨다)이 반색을 하며 우리를 맞았다.

찬찬히 잘 보고 가라는 말과 함께 직접 이곳저곳의 문을 열어주었다. 집과주인의 인상이 닮아 있음을느꼈다. 향단과 서백당의 분위기가 너무도 차이가 나는 것이 인상 깊어 답사를 안내한 분에게 두 집에 대한 느낌을 이야기했더니 ,이곳 마을 주민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향단의 주인은 꼬장꼬장한성격으로 마을 일에 비협조적인 반면, 서백당의 주인은 성격이 원만하고 마을 일에도 협조적'이라는 것이다. 결국 집의분위기대로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의 성격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게 됐다. 영국의 수상을 역임했던 윈스턴 처칠이 "사람은 집을 만들지만 집은 사람을 만든다. "라고 했던 것에 딱 들어 맞는 경험이었다.

틀을 씌우듯 집을 닮는다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환경은 사고와 행동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환경이란 자연환경뿐만 아니라 집과 같은 인공 환경까지 포함한다. 집은 아니지만 도구 하나가 우리의 삶에 변화를 준 사례를 보자이제 핸드폰은 우리에게 없으면 안 되는생활필수품이다. 핸드폰 사용이 일상화되면서 우리네 생활도 많이 변했다.

우선 '기다림' 이라는 단어가 갈수록 생소해진다. 얼마 전까지도 '무소식이 희소식' 이라고 했다. 그 말에는 기다림에 대한체념이 깊게 배어 있다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았던 옛날에는 오가는 데 시간이걸렸다. 따라서 오랜 시간 무조건 기다리는 것은 사감을 지치게 한다. 기다리는 마음을 편하게 하려고 위로하는 말이었다 이제는 그러한 말이 통하지 않는다. 조금만 늦어도 혹시나 하는 걱정이 앞서는것은 연락할수단이 있기 때문이다. 쉽게연락할 수 있는 만큼 말없이 조금만 늦어도 화를 낸다 그만치 만남의 방식도 변했다. 예전 같으면 날짜. 시간, 장소를 결정하고 만났지만, 이제는 당일 만나자는 내용만 정하고 다른 것은 상황을 봐 가며 결정한다. 예전에 우리나라에는 '코리안 타임' 이라는 단어가 있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약속 시간에 자주 늦었기 때문에 생긴 단어다. 우리가 약속 시간을 잘 지키지 못한 것은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았을 때부터 몸에 밴 시간관념 때문이다. 서구에서는 산업사회에 들어서면서 시간 개념을 중요하게 여기고 약속을 잘 지키는 것이 예절로자리 잡았다 따라서 약속 시간을 얼마나잘지키는가에 따라 사람됨을 판단했다.

서구보다 나중에 산업사회로 진입한 우리나라에서 '시간'이라는 개념이 확립되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핸드폰이없던 시절에는 약속 시간을 지키는 것이중요한 매너 였다. 핸드폰이 생필품으로 자리 잡으면서 상황은 뒤집혔다 이제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약속 시간에 늦을 때 핸드폰으로 사정을 말하면 웬만큼 용서하는 사회로 바뀌었다. 핸드폰이 없었다면 결코 있을 수없는 변화다. 이처럼 도구 하나가 우리의 생활을 바꾸는데 하물며 집은 어떠할까. 집도 사람의 생활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그 유형이 어떠하든지 간에 변화는 행동뿐만 아니라 정서와 사고에도 영향을 끼친다.

햇볕이 들지 않는 집에서 오랫동안 살았다든지 장마가 계속될 때 마음이우울해지는 증상을 느긴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한 현상은 일조량이 적은 겨울에 우울증 환자가 증가한다는 의학의 통계하고도 일치한다. 등산을 해 본 사람이라면 계곡을 지날 때는 답답하다가도 능선에 올라가면 마음이 탁 트이는 기분을느꼈을 것이다. 그와 같은 감정이 누적된다면 끝내는 우리의 정서로 뿌리내릴 것이다.

아랫목과 윗목의 질서 의식

맹자의 어머니가 아들을 위해 집을 세 번 옮겼다는 맹모삼천(孟母三遷)의 고사 (古事)는 집과 주변의 환경이 성격 형성 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교훈을 보여 준다. 그만큼 집이라는 존재는 우리의 생 활과 정서를 형성하는 데 큰 비중을 차지 했다. 그러면 집이 한국인의 정서에 어느 정도 영향력을 미쳤는지 알아보자.

먼저 한국 사회에서 나타나는 수직적 질서 의식에 집이 어떻게 작용했는지 이야기해 보겠다 수직 질서를 강조하는 원인이 유교의 질서 의식에서 나오는 것이긴 하지만, 수직적 관계를 강화하는 데는집의 구조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재래의 온돌은 지금의 온돌하고 구조가 다르다. 현재의 온돌은 바닥에 깔려 있는파이프를 통해 더운물을 순환시켜 방을덥힌다. 바닥에는 파이프가 일정한 간격으로 깔려 있고, 펌프로 더운물을 강제로순환시키므로 방바닥이 골고루 따뜻하다. 과거의 온돌은 불길이 직접 닿는 아궁이 쪽(아랫목)과 연기가 빠지는 굴뚝 쪽(윗목)의 온도차가 컸다 구들을 잘 들인(시공한) 집에서는 비교적 고른 온도를보였다.

그러나 구들을 제대로 들이지 못 한 집은 같은 방 안에서도 온도의 차이가 심해, 윗목은 앉기조차 힘들 정도로 차가 웠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 방 안에서도 바 닥의 온도에 따라 자연스럽게 상 • 하석으로 자리가 나뉜다.

파이프로 바닥 난방을 하는 집에서는 방바닥의 온도 차이가 발생하지 않는다. 요즘의 집에서 방석을 사용하지 않는 것 은 난방 방식이 과거하고 다르기 때문이 다. 예전처럼 온돌의 난방이 일정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방바닥이 뜨겁거나 차갑기일쑤였는데, 그것을 방석으로 적절히 조절했다 지금의 온돌은 너무 뜨겁지도 차지도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굳이 방석을깔고 앉을 필요가 없다 따라서 방바닥이 균일한 온도를 유지하는 현재의 집에서는 아랫목과 윗목의 차이를 느낄 수 없어 상석과 하석의 구분이 모호(模糊)하다. 그래도 설날에 세배(歲拜)할 때 보면, 방에서 상석의 위치를 어느 정도는 알 수 있다.

세배를 받는 사람이 앉은 자리가 그 집의 상석이다. 대개는 문과 멀리 떨어져 있고 장을 배경으로 앉는 위치가 많다. 그러나 안방에 침대를 들여놓은 집에서는 상 • 하석을 굳이 찾을 필요가 없다. 침대가 있는 방에 사람이 모이는 경우가 없기 때문이다. 거실도 마찬가지다. 이곳에서 상 •하석을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굳이 찾으라고 한다면 텔레비전이 잘보이는 곳이 상석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 외에는 특별히 상하를 구분할 방법이 없다.

막내가 유치원을 다닐 때 유치원에서는 온돌에 관련된 노래를 가르쳤다. "윗목에 앉아라, 아이 차가워 아랫목에 앉아라, 아이 뜨거워"라는 가사인데 전통 방식으로 만든 온돌을 체험하지 못한 우리아이는 노랫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노랫말에 생활을 담지 못하다 보니 아이가 모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글 최성호(산솔도시건축 대표)

글쓴이 최성호는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전주대학교 건축학과 겸임교수로서 '산솔도시 건축'을 운영 중입니다. 주요 건축작품으로는이화여자대학교 유치원 박물관 • 인문관 약학관, 데이콤중앙연구소,삼보컴퓨터사옥, 홍길동민속공원 마스터플랜,SK인천교환사 등이 있습니다.

산솔도시건축 02-515-9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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