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메뉴보기
 

S-Log Ep 1. 함평 소안재 편
사랑하는 사람들과 평생을 함께 할 누군가의 보금자리를 계획하는 일은 아마도 가장 뜻깊고 보람된 일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이렇듯 공간을 계획하는 일은 언제나 설레는 작업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집’이라고 표현하는 공간은 매물, 물건, 재산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지만 건축가는 이를 ‘작품’이라고 부른다. 천편일률적으로 우후죽순 생겨나는 공간보다는 다양한 사람들의 긴 시간과 수많은 고민을 담아 땅 위에 정성스럽게 앉히는 작업이 마치 예술가들의 작품 활동과 같기 때문이다.
 
진행 남두진 기자
김선용(레이어드 건축사사무소 소장)
자료 공간기록

그동안 ‘작품’이라고 내세울 만큼 크거나 화려하진 않아도 지나고 보니 땅들에 대해 누구보다 오래 고민하고 밤색 끄적인 그림이 벽과 지붕이 되어 공간을 이뤘다. 또 그 안에서 새로운 시작을 함께하는 건축주와 그 가족들을 보며 내가 계획했던 공간들이 누군가에게도 소중한 ‘작품’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앞으로의 연재를 통해 나만의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계획 중이거나 아직 첫발을 내딛지 못한 예비 건축주들을 위해 지난 10여 년 동안 공간을 계획하며 건축주와 함께 작품을 만들었던 과정들 중 기억에 남았던 프로젝트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함평 소안재는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 의미 있던 작업이다. 어느 날 건축주가 10년간의 직장 생활을 마치고 새로운 일터이자 아내와 함께 할 보금자리를 짓기 위해 찾아왔다. 건축주가 매입한 대지는 나지막한 언덕에 위치해 뒤로는 나무를 등지고 남향으로 전망이 탁 트인 마을에서 가장 좋은 땅이었다. 비록 비정형이었지만 오히려 정형의 건축물을 앉힌 후 앞마당, 뒷마당, 옆마당 등 다양한 용도의 마당을 계획할 수 있는 장점이 비쳤다.

▲널찍한 포치가 함께 계획된 현관
▲거실 창 너머에 한옥 정자의 기와지붕이 보인다.

주변 환경을 디자인 요소로 활용
대지 앞쪽에는 한옥으로 된 마을 정자가 있었다. 사람이 자주 모이는 특성상 자칫 정자에서 현관을 통해 내부가 들여다보일 우려가 있었기 때문에 현관은 정자 반대쪽에 계획했다. 현관 앞에서는 진입 전 눈비를 피하거나 여름철 뜨거운 일사를 막기 위한 완충공간인 포치를 마련했다. 완공 후 사진 촬영을 위해 현장에 방문했을 때 이곳은 이미 반려묘가 차지하고 있었다.

거실이 다용도로 활용되기 바랐던 건축주는 바닥에서 시작되는 통창이 아닌 어느 정도 떨어진 일반적 형태의 창호를 요청했다. 창의 위치와 크기를 세심하게 조정해 남쪽에 소파를 배치하면서도 실내에서 한옥 정자의 지붕 부분이 보일 수 있도록 했다. 동시에 한옥 정자로부터는 실내 프라이버시를 보호할 수 있게 됐다.
 

▲거실-화장실로 이어지는 동선
▲안방-화장실로 이어지는 동선

몇 개를 둘 것인가, 어떻게 둘 것인가
건축주들이 많이 하는 고민 중 하나는 바로 화장실의 개수이다. 거실이나 주방과 같은 공용공간에는 당연히 필요하지만 잠을 자다가도 바로 사용할 수 있는 프라이빗한 욕실이나 화장실이 하나 더 있다면 굉장히 편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안재의 경우 예산과 면적에 현실적인 한계가 있었기에 건식 세면대가 있는 파우더 공간과 무빙월 Moving-Wall을 제안했다.
 
무빙월은 밀고 들어가는 형태의 벽으로 이용자가 공간을 용도에 맞춰 활용할 수 있는 하나의 장치다. 거실 쪽에서 닫힌 무빙월을 밀기만 하면 세면대가 있는 파우더 공간이 나오고 이 파우더 공간은 다시 안방으로 이어지는 통로를 겸하기에 공용공간과 개인 공간의 프라이버시는 확보하면서 동선 효율까지 충족시키는 셈이다. 건축주에 의하면 소안재에 처음 온 사람들 중 간혹 화장실을 두 개로 착각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주방과 거실에 막힘없이 동선이 연계된 서재 전경
▲거실-서재-주방은 순환 동선을 통해 유연한 관계가 형성된다.

집 중심에서 다양한 역할 겸하는 서재
처음 대지를 답사하며 건축주와 공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책 읽는 공간의 요구가 있었다. 이에 단순히 독서 기능만이 아닌 좀 더 확장해 때로는 업무 기능, 응대 기능과 같이 다양한 기능을 겸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마련했다. 어쩌면 이곳은 건축주가 새로운 출발과 도전을 하는데 가장 필요한 공간이었을지 모른다. 또한 서재라고 해서 사방이 벽으로 막힌 하나의 ‘방’이라기보다는 주방과 거실로 자유롭게 이어질 수 있도록 기둥을 활용해 유연한 동선을 돕는 구조로 계획했다. 이 중심 기둥을 기준으로 각 공간의 층고를 조절해 다른 공간감을 가지면서 좀 더 서재에 집중시켰다.
 
서재 남향 창 또한 통창이 아닌 거실창과 높이를 맞춘 크기로 통일해 한옥 정자의 지붕 부분이 보이도록 계획했다. 주방과 인접한 쪽 벽면은 기존에 사용하던 책상 사이즈에 맞춰 서재 치수를 결정했고 주방과도 바로 이어져 식당으로써 기능할 수 있도록 했다. 기둥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형성된 순환동선 덕분에 각 공간들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줄 수 있었다. 이는 부부가 서로 다른 공간에 있어도 유대를 지키는데 한몫했다.

▲상부장을 과감하게 제외하고 계획한 주방 통창
▲계단실 벽 하부에는 반려묘를 위한 공간도 마련했다.

독특한 장치로 느끼는 우리의 보금자리
거실과 서재의 창이 채광창에 가깝다면 소안재의 조망창은 싱크대 위에 있다. 상부장을 과감히 포기한 건축주의 용기로 얻은 북쪽 조망창은 소안재를 대나무 숲 조망권으로 만들었다. 보통 우리는 남향 조망에 익숙하지만 남향창을 통해 바라보는 풍경은 항상 그림자가 진 뒷모습이 대부분이다. 반면 북향창을 통한다면 햇빛을 정면으로 받은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다. 직사광선이 들지 않으면서도 해가 떠 있는 동안은 조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때문이다. 해를 등진 덕분에 눈의 피로 또한 덜할 수 있다.
 
소안재는 온 가족을 위한 공간이다. 건축주가 좋아하는 색으로 도배된 안방과 아내가 좋아하는 계단 밑 커피바, 여기에 더해 집안에서 생활하는 두 반려묘를 위한 공간들도 마련돼 있다. 계단 밑 죽은 공간은 반려묘가 화장실로 이동할 수 있는, 안방 문이 닫혀있을 때에도 이동권을 보장받는 통로다.

‘집 짓는데 10년 늙는다’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집짓기 과정이 녹록하지 않다는 웃픈 의미다. 어쩌면 일생의 가장 큰 지출인 집 짓기에서 과연 비용을 투자하면서까지 늙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집 짓기에 도전하거나 그 이상의 가치를 찾아 이를 실행하는 사람들을 계속 존재할 것이다. 함평 소안재는 작지만 꽉 차고, 단출하지만 담백한 건축주와 건축가의 고민과 정성이 담긴 작품이다. 지난 10년의 직장 생활을 마치고 이곳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려는 부부에게 그런 집 짓기는 아마 10년 젊어지는 일이었을 것이다.

김선용_레이어드 건축사사무소 소장
홍익대학교 건축도시대학원에서 건축디자인 석사를 졸업했다. 졸업 작품으로 건축가협회장상을 수상한 이력이 있다. 공간기록에서 약 300여 채의 건축물을 설계하고 100채 이상을 완공했으며 현재 레이어드 건축사사무소를 개소해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땅과 사람의 이야기로 디자인된 다양한 공간이 중첩되어 이용자에게 경험을 선사하는 건축을 지향하며 주요 작품으로는 회회아, 풍경채, 적재, 미미각, 소안재, CCCC 등이 있다.
02-553-1554
www.ggglog.com

태그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김선용 건축가가 들려주는 공간기록 S-Log Ep 1.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