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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운동으로서 펜션

지금부터 15년 전인가, 스코트랜드의 북쪽 지역인 하이랜드 아래쪽을 여여행한 적이 있다. 글래스고우에서 열차를 타고 한때 괴물의 출현설로 세계적인 화제에 올랐던 네스호의 북쪽 끝 도시인 인버네스를 거쳐 서북쪽의 벤(Ben)이라고 불리는 민둥산들을 둘러서 돌아오는 2박3일의 여행이었다. 여기저기 무너진 낡은 성채(城砦)들, 크고 작은 로크(Loch), 즉 호수들이 있고 암석투성이의 메마른 산들, 끝없어 보이는 황무지 지역들이 스코틀랜드의 전형적인 풍광(風光)을 보여주었다.

여행을 하면 늘 관심거리는 잠자는 곳과 음식이 문제다. 혼자서 하는 여행이므로 이 문제는 더욱 중요했다. 그래서 그래스고우를 출발하기 전에 숙박지를 미리 예약했다. 영국의 전형적인 숙박 형태는 이른바 ‘비엔비(B & B ; Bed and Breakfast )’였다. 즉, 침실과 아침식사를 제공하는 민박집인데, 비교적 저렴하고 깨끗한 곳이라 많은 관광객들이 즐겨 찾았다. 그래서 필자 역시 비엔비의 한 곳을 선택했다.

첫날 숙박한 곳은 인버네스에서 뚝 떨어진 곳으로 네스호가 내려다보이는 전원에 자리잡고 있었다. 자그마한 시골집인데, 돌담에 둘러싸여 마치 작은 고성(古城)을 떠올리게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전형적인 펜션이었다. 단층집으로 객실은 많지 않았다. 침실은 아주 소박했고 가구들은 낡고 오래되었지만 나름의 기풍이 느껴졌다. 운영하는 50대 아주머니는 “이 집은 아주 오래된, 아마도 1세기 가까운 농가” 라고 말했다. 집을 나서면 네스호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 좋은 곳으로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이 네스호의 펜션이 지금껏 나의 뇌리에 남아 있는 것은, 이곳에서 스코트랜드의 특유한 분위기, 그 문화를 느꼈기 때문이다. 특히 영국식의 전형적인 아침식사를 통해서도 그러했다. 식탁과 그릇, 거실의 장식들, 주인의 복장과 말씨 … 등 이 모든 것이 이방인이 그곳 문화를 체험하게 하는 데 충분했다.


문화운동으로서 펜션
펜션은 이처럼 삶의 문화를 체험하는 곳이다. 스코트랜드 아주머니는 여행객에게 무엇인가를 억지로 보여주려 하지 않으면서도, 자기 삶의 한 부분을 솔직하게 드러냈다. 그 소박한 마음과 분위기는 오히려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안겨주었다. 이것이 바로 문화라는 이름으로 펜션이 전해주는 중요한 역할이다. 그러므로 펜션은 우리 삶의 소중한 한 부분으로 정립해야 한다는 엄연한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삶을 생생하게 전해주는 ‘문화의 전령사’라는 작은 사명이 여기에 부여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 일기 시작한 펜션 바람을, 우리만의 삶의 문화를 서로에게 전해주고 공감하는 사회·문화 운동의 일환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한민족이라는 공동체 속에서도 마치 야생초처럼 자라온 다양한 문화의 싹들이 펜션이라는 형태를 통해서 저마다 꽃 피우기를 기대한다. 뿐만 아니라 교류의 영역을 넓히며 이웃나라를 위한 지역문화 공동체의 현장으로서도 그 잠재된 가능성을 주목해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펜션이 세련되고 깊이 있으며 품격까지 갖춘 ‘고급 문화운동’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그리고 펜션 주인은 바로 이 문화운동의 주역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당당히 나서야 한다. 그저 돈벌이 수단 정도로 전락하는 맹목적인 펜션이어서는 안 된다. 펜션은 이제 우리 생활의 새로운 문화적 표현의 주체라는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 삶의 품격과 여유를 표현하는 문화의 전형으로 발전할 때, 펜션은 사업으로서의 가치 또한 높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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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범의 실전 펜션강좌-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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