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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동안 영국 건축업계의 이슈는 '에너지'와 '환경 친화적 개발(Sustainable development)'이다. 지구 온난화의 주원인은 인간의 잘못된 소비 행태와 산업 활동으로 인한 천연자원의 고갈 그리고 온실 효과를 일으키는 이산화탄소 등의 가스 증가다. 이로 인한 환경 오염은 이미 우리 주변의 생태계까지 빠른 속도로 파괴하고 있다. 세계야생생물기금(WWF)은 2년마다 자체 발행하는 《리빙 플래닛 리포트(Living Planet Report)》라는 환경 보고서를 통해 지구의 건강 상태를 측정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업데이트 될 때마다 천연자원의 소비와 오염 수위가 급상승하고 있으며, 지구상 동·식물군의 종류가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또 각국의 천연자원 소비에 대한 비율을 측정해서 생태계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전문가들의 의견은 놀랍게도 영국에서 현재 소비되는 천연자원과 이산화탄소의 방출량 같은 비율로 세계 다른 나라들이 소비한다면 3개의 지구가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거주하는 주택과 지구의 환경 오염이 어떤 관련이 있으며, 왜 영국 정부와 기관 그리고 사기업들은 환경 친화적 개발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일까? 전 세계적으로 소비되는 모든 천연자원의 절반 이상이 건축산업에 사용되고, 에너지 생산의 45퍼센트는 건축물의 난방과 조명 그리고 환기를 위해 사용된다는 사실을 안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영국 주택들이 방출하는 이산화탄소의 양은 영국 전체의 27퍼센트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다. 에너지 효율이 우수한 건물을 일찍부터 개발하고 발전시켜 온 덴마크나 독일과 비교할 때, 영국은 이 부분에 있어 미흡하다. 다행히도 영국의 공공기관과 사기업 그리고 개발 업체들이 이러한 현실을 인식하고 서로 협력하여 환경 친화적 개발 프로젝트를 정책적으로 육성 발전시키고자 노력한다는 것이다.

잉글리쉬 파트너쉽(English Partnership)의 '밀레니엄 커뮤니티(Millennium Communities)' 프로그램은 영국 정부의 환경 친화적 개발 의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다. 그 내용은 영국 전역에 산재한 브라운 필드(Brown Field)-현재는 가동이 중단된 산업·공업지역의 부지- 중 7곳을 선택해 정부와 사기업이 공동 출자 형식으로 자금을 모아 환경 친화적인 주거지로 재개발해서 일반인에게 분양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환경 친화적 개발(Sustainable development)이란 무엇일까? 영어 Sustainable(서스테이너블)은 '지속될 수 있는'이라고 하는 사전적 의미를 갖는다. 건축에서는 주로 환경과 연관을 지어서 '환경을 파괴하지 않고 지속될 수 있는', 또는 '자원을 고갈 없이 이용할 수 있는'이란 뜻으로 알려져 있다.

다음은 올해 초 영국의 한 조사기관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친환경 개발에 관한 설문 조사 결과다. 친환경을 대표하는 단어를 묻는 항목에서 '재활용'이 17퍼센트로 가장 많았고 환경(15%), 안전한 미래 보장(11%), 에너지 효율(7%) 순으로 나타났다. 또 친환경 개발을 향상시키기 위해 관련 업계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묻는 항목에서도 재활용을 늘려야 한다가 20퍼센트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다음으로 쓰레기를 줄여야 한다(17%), 업계 스스로 의무감을 가져야 한다(14%), 친환경에 대한 의식을 향상시켜야 한다(14%) 순으로 답했고, 기타 의견으로 더 많은 교육이 필요하다, 더 낳은 자재를 사용해야 한다고 했다. 설문 결과에서 보듯이 영국인들 상당수는 '재활용'을 통해 환경 친화적인 개발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2000년 런던에서 개발을 시작해 입주를 끝낸 '그리니치 밀레니엄 빌리지(Greenich Millennium Village)'와 '베드제드(BedZED)'는 정부와 사기업 주도로 이루어 낸 환경 친화적 주택단지 개발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힌다. 특히 베드제드의 경우는 성공적인 단지 개발 사례를 벤치마크(Benchmark)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연간 1만 명이 찾아올 정도로 유명하다.

여기에서는 두 단지의 개발 사례를 통해 각각의 건축물이 어떠한 개념을 갖고 기획·디자인·개발됐으며, 어떻게 환경 친화적으로 접근했는지 또한 영국인들이 친환경 개발을 할 때 무엇을 중점적으로 생각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교훈으로 삼아 우리나라 주택단지 개발에도 좋은 자료가 됐으면 한다.

그리니치 밀레니엄 빌리지(Greenich Millennium Village)



그리니치 밀레니엄 빌리지(GMV)는 영국 정부가 계획하고 있는 7곳의 환경 친화적 단지 조성을 위한 '밀레니엄 커뮤니티' 프로그램 중 첫 번째 프로젝트로 스웨덴 건축가 랄프 어스킨(Ralph Erskine)이 마스터플랜을 책임졌다. 새로운 방식의 계획과 디자인으로 건축될 주택은 환경적인 삶의 방식을 추구하도록 기획됐다. 2004년 '주택빌더연합'의 올해의 'Sustainable New Homes Award' 수상을 시작으로 30개 이상의 주택, 에너지, 환경 관련 상을 수상함으로써 더욱 유명해졌다.

유럽에서 가장 규모가 큰 가스시설 단지였던 이 부지는 런던 외곽에 위치한다. 전체 크기는 32에이커(약 130,000㎡)이며, 단지는 4구역으로 나눠서 단계별로 공사가 이루어지도록 계획됐다. 총 2520세대가 들어서는 이 프로젝트는 2000년에 공사를 시작해서 2006년 현재 4개의 구역 중 3구역의 공사를 완료한 상태다.



단지의 특징



다양한 형태와 크기·높이가 다른 건물군은 경쾌한 리듬감을 주며, 강한 원색(빨강·파랑·녹색 등)을 사용해서 전체적으로 강한 이미지를 주고 있다. 또한 넓고 사방이 트인 녹지대, 야생 동·식물을 위한 생태지역 그리고 레크리에이션 시설이 단지 내에 자리잡고 있다.

GMV가 환경적인 측면에서 야심을 갖고 기획했던 몇 가지 중 하나는 단지 내에서 자동차 사용을 최대한 줄이고자 노력한 것이다. 1, 2구역의 주차장은 방문객을 포함해 가구당 1.25대만 주차하도록 공간에 제한을 두었는데, 이를 통해 향후 10년 안에 자동차 사용률을 최대 25퍼센트까지 줄이겠다는 것이다. 주차장은 지하에 숨겨져 있으며 지상은 보행자를 위한 거리로 조성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주택과 주차장이 별도로 판매된다는 점인데 주차장을 소유하려면 약 3000만 원을 지불해야 한다. 따라서 주차장을 원하지 않는 구매자는 더 싼값으로 주택을 구입할 수 있다. 이렇게 한 이유는 차량을 최소화해 단지 내 대기 오염을 줄이고자 한 것인데, 단지와 시내를 잇는 우수한 대중 교통시설이 갖춰져 있고 상점이나 커뮤니티 시설도 인접해 있기에 가능하다.

열과 힘의 공존 방법(Combined Heat and Power : CHP)을 이용한 발전 시스템은 이 단지에서 가장 혁신적인 부분 중 하나다. 기존의 전기와 열을 공급하는 방식에 비하여 운용 비용을 줄일 뿐만 아니라 환경적인 면에서 효용성을 높일 수 있다. 즉, 열로부터 얻은 '폐기' 에너지를 사용하여 추가적인 연료 소모 없이 발전 가능하도록 했다. GMV는 이러한 발전 시스템을 도입하고, 향상된 단열재를 건물에 적용함으로써 주요 에너지 소비율을 65퍼센트까지 감축시켰다.



베드제드(Beddington Zero Energy Development)



런던 남부에 위치한 '베딩톤 제로 에너지 디벨롭먼트(Beddington Zero Energy Development)' 주택단지는 석탄, 석유 등의 화석에너지 사용을 배제하고, 목재와 태양전지 같은 친환경 재료를 사용함으로써 단지 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최대한 감축하도록 계획됐다. '화석에너지 제로(Zero) 타운'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베드제드(BedZED)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이 단지는 혁신적인 기술과 건축의 새로운 접근 방법으로 실용적이고 친환경적인 도시 생활을 즐기도록 하면서 에너지 효율이 우수한 주거 공간(82세대의 플랏과 타운하우스)과 재택 근무자를 위한 사무 공간(2500㎡)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유치원과 유기농 카페, 상점 그리고 운동시설도 잘 갖춰져 있다. 전체 면적 16,500제곱미터의 단지 부지는 가동이 중단된 오수처리시설이 있던 곳(브라운 필드)인데, 이것을 2000년에 개발하기 시작해서 2002년에 공사를 마쳤다.

모든 세대를 남향으로 배치해 햇빛을 최대한 이용하도록 배려했다. 고밀도 주거를 가능하게 하면서도 녹지와 오픈 공간을 최대한 갖추도록 계획했고 지상에 위치한 세대와 2, 3층 세대까지도 옥상정원 또는 옥외 발코니를 통해 외부와 접하도록 했다.



친환경 개념도



엔지니어 설계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보유한 영국 회사 'ARUP'가 계획한 친환경 개념도는 베드제드의 환기시설, 태양열 전지판, 자가 발전소를 통한 에너지 전략과 함께 빗물, 오·하수가 어떻게 재활용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친환경 개념도에서 보듯이 베드제드는 빗물과 오·하수에서 정화된 물을 화장실과 옥상정원의 관수용으로 재활용하고, 화장실에 물 절약 변기(Low flush)와 수도꼭지를 설치해서 물 소비를 크게 줄이는 효과를 보고 있다. 또한 태양열 전지판, 특수 제작된 환기 굴뚝 그리고 목재 찌꺼기를 연료로 하는 자가 발전소를 설치, 운영해 불필요한 에너지 소비와 환경 오염의 주범인 가스 배출량을 줄이도록 계획했다.



환기와 단열



베드제드의 심볼과 같은 닭벼슬 모양의 굴뚝을 통해 모든 건물은 자연 환기되도록 계획됐다. 특수 제작된 환기 굴뚝은 건물 내부 온도 조절의 핵심 역할을 한다. 모터나 전기 장치 없이 작동되며 미세한 바람까지 감지하여 외부의 신선한 공기를 실내로 공급하면서 공해가 발생하지 않는 그린 에어컨의 역할을 한다.

건물의 단열은 에너지 소비로 인해 발생하는 온실가스의 배출량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외벽과 지붕 구조벽에 적용된 베드제드의 '슈퍼단열(Super-Insulation)' 전략은 건물 자체의 에너지 소비를 감소시키는 효과를 내고 있다. 두께가 300밀리미터인 단열재를 외기에 접한 모든 부분에 사용해서 열 손실을 줄이고, 햇볕이 잘 드는 남향에 전면창을 설치해서 건물 안으로 최대한 빛이 들어오도록 했다.



에너지원



베드제드는 화석에너지 제로 타운이라는 이름에 맞게 자체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다. 모든 건물 위에 설치한 태양열 전지판은 낮 시간대에 최고 309kwp의 청정 전기를 생산해 내며, 이로 인해 매년 200톤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효과를 낸다.

또한 단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발전소(Combined Heat and Power)에서는 목재 찌꺼기와 같은 나무를 때서 발전시키며 이를 통해 더운물과 전력을 주택에 공급하고 있다.

그린루프(Green Roof)



베드제드의 건물을 포함한 거의 모든 수평면은 야생 생물이 서식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도록 계획됐다. 야생 생물은 먹이, 물, 쉼터와 숨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베드제드의 '그린루프' 시스템은 지붕 표면에 특수 식물을 심어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공간에서 새와 곤충 등의 야생 생물이 도심 속에서도 인간과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독일 전역에서는 이미 많은 건축물이 '그린루프' 시스템을 적용하고 있으며, 이 방법은 일반 건축물에 비해 환경에 보다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교통수단



도심지의 환경 오염과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감축하는 방법 중의 하나는 가솔린을 연료로 하는 차량의 사용과 의존도를 줄이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베드제드는 거주와 사무공간을 단지 내에 공유시킴으로써 출·퇴근에 필요한 자가 차량의 운행을 최소화하고, 대중 교통 이용을 극대화하도록 했다. 특히 개인적으로 차량이 필요할 경우 사전 예약을 통해서 렌터카 개념의 공동 차량(Car club)을 이용할 수 있다. 30분을 이용하던 하루를 이용하던 이용한 만큼의 비용만 지불하면 되기 때문에 불필요한 차량 유지비를 상당 부분 줄일 수 있다. 거주자는 가솔린과 LPG 또는 LPG와 전기 겸용 자동차를 선택해 사용하면 된다. 단지 주차장은 세대당 1대 꼴인 총 84대만 수용하도록 계획됐다. 따라서 모든 도로는 보행자와 자전거 통행자들에게 우선권이 주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두 단지의 실제 사례를 통해 우리의 거주 공간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를 조금이나마 인식하는 기회가 됐으면 하는 바람에서 글을 준비했다. 이미 알고 있듯이 인간의 잘못된 소비 행태에서 야기된 환경 오염으로 지구는 몸살을 앓고 있다. 시기가 조금 늦은 듯하지만 이런 지구를 살리려는 범세계적인 인간의 노력을 볼 때 미래가 그리 절망적이지만은 않음을 느낀다. 영국은 환경 친화적 개발을 정부 중심으로 개인에서부터 기업에 이르기까지 적극 장려하고 홍보하면서 그것을 통해 현재보다 더 나은 삶의 질을 누릴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앞에서 소개한 두 사례가 환경 친화적 주택단지 개발의 완벽한 모델이라고는 감히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정부와 민간이 '친환경 개발'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세우고 상호 협력과 노력을 통해 좋은 결과를 내는 영국인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다음 호에서는 영국의 목조건축에 관한 전반적인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경량 목조 건축 분야에서 15년이라는 길지 않은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와 달리 영국의 목조건축은 100년이 넘는 기간 기술을 개발, 발전 시켜오면서 자리를 굳건히 하고 있다. 최근 들어 환경에 대한 전 세계적인 관심과 우려는 영국의 건축업계에까지 영향을 미쳐 친환경 소재인 목재를 건물의 주요 골조로 사용하는 목조 건축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목조건축 공법과 자재 수입 그리고 기술 교육 등 대부분을 미국과 캐나다에 의존하는데, 이러한 시점에서 영국의 목조건축에 관한 전반적인 내용을 다루어봄으로써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방식과 비교해 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본다.田




글 · 사진 최재철<목조건축가, 인테리어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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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환경 친화적 주택단지 개발 전략과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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