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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온통 아파트로 난리다. 하룻밤 자고 나면 아파트 한 채 가격이 수천만 원 뛰는 세상이다. 모 지역 아파트는 한 달에 1억이 올랐다고 한다. 서민들은 허탈하다. 집 장만하기도 어렵고 평생 저축해도 모을 수 없는 엄청난 금액이 한 달 만에 오르는 기형적 사회 분위기에 일할 맛이 싹 사라진다. 출근 길 두 무릎에 힘이 빠진다. 아파트 평당 가격이 수천만 원을 웃돌아도 서로 분양 받으려고 밤을 새우며 줄을 서는 기나긴 대열을 쉽지 않게 볼 수 있다. 곳곳에 산을 깎고 세워지는 것도 아파트요, 시골의 논밭을 짓뭉개고 들어서는 것도 아파트 단지다. 한마디로 이 시대는 아파트 만연 시대요, 아파트 중독 시대요, 아파트 투기 시대요, 아파트 추종 시대요, 아파트 찬미 시대다.



이처럼 광적인 아파트 예찬 시대의 한 복판에서 흙집을 예찬한다는 것은 어쩌면 그들에게 어느 한 정신병자의 미친 소리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정신병자로 취급받더라도 부르짖어야겠다. 이대로 계속 되다가는 얼마 안 가서 아파트로 인한 자연적 재앙이 도래하며 개인적 질병이 창궐하고 그 비싼 아파트 문서가 휴지 조각이 되어 버리는 엄청난 사회적 경제적 혼란이 일어날 것이 너무도 자명하기 때문이다.


아파트 개발로 인한 자연적 재앙은 그 피해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아파트를 지으려면 시멘트가 필요하고 시멘트를 만들려면 석회석을 구해야 한다. 결국 산을 파헤치는 일을 계속해야 한다. 점점 산을 보기 힘든 세상에서 살게 될 것이다. 또 아파트 단지를 조성하기 위해 논과 밭을 죽이고 있다. 수천 년 수만 년 자연의 역사를 흔적도 없이 말살하고 있다.

 

한마디로 아파트 개발은 자연에 대한 공격이요, 착취다. 자연의 수많은 생명체를 죽이는 살생 행위다. '자연이 행복 해야 인간의 삶도 행복하다'는 너무도 당연한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미개하고 천박한 인간 문화의 현주소다. 이러한 인간의 폭력이 중단되지 않는 한, 이제 자연은 더 이상 행복할 수 없다. 자연이 불행하면 인간도 불행해진다. 자연과 인간은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에게 그 불행을 뼈 속 깊이 체험할 날들만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을 뿐이다.


아파트 살림집이 아닌 죽임집



심각한 문제는 아파트는 지은 지 삼사십 년 후에는 수명이 다해 폐기처분된다는 사실이다. 전국 수많은 아파트의 어마어마한 건축 폐기물들은 도대체 어디로 간단 말인가. 자연을 파괴하고 환경을 오염시키는 정도가 엄청나리라는 것을 쉽게 짐작하고 남음이 있다. 결국 그 대가는 고스란히 우리에게 자연적 재앙으로 돌아오는 법이다. 먹는 물이 오염되고 공기가 탁해지고 삶의 환경이 매우 열악한 상황으로 내 몰릴 것이 너무나 분명하다.

더구나 세계적 식량 부족 현상이 머지않아 도래할 터인데, 수많은 논과 밭이 야금야금 아파트단지로 탈바꿈된다면 곧 다가올 식량 대란 시대에 과연 아파트를 뜯어먹고 살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 때에는 돈이 있어도 식량을 마음대로 수입할 수도 없다는 것을 여러 가지 과학적 데이터로 예측할 수 있다. 참으로 미래가 암울하다.



더구나 아파트 생활로 인한 질병의 창궐은 이미 시작되고 있다. 주변을 돌아보면 늘어나는 것은 환자요, 병원이요, 약국이다. 아토피성피부염을 비롯한 각종 질병은 그 원인이 여러 가지일 수 있지만, 그 중에서 잘못된 주거 생활이 큰 원인이라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하루 8시간 이상 쉬거나 생활하고 잠자는 공간이 사방에서 독가스를 뿜어내는 집이라면 병이 생기지 않는 것이 오히려 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가족의 건강은 생기를 잃고 서서히 시들어 가고 있다.

우리는 가족의 살림집을 한 채 장만하기 위해 오랜 세월 얼마나 노력하는가. 먹을 것 입을 것 아껴서 결국 마련한 집이 사방에서 콘크리트 독과 각종 화학가스를 뿜어내는 아파트라면 이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힘들게 번 돈으로 생명을 시들게 하는 일종의 가스실을 사서 그 속에서 거주한다는 것이야말로 원통한 일이 아니겠는가. 일본 학자가 여러 가지 과학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쓴 《콘크리트 집에서 살면 9년 일찍 죽는다》라는 책의 제목이 말해 주듯이 아파트는 생명을 살리는 주거 공간이라기보다는 생명을 서서히 죽이는 집이다.


휴지조각으로 변할 고가 고층 아파트



흔히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한다. 내가 보기에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인간 중심적 생명관을 가진 인간의 교만한 자기 규정 이외 다른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인간이 다른 생명체들보다 똑똑하고 우등한 존재라고 여기나 사실은 그 반대다. 인간이 아주 우매하고 바보스런 선택을 하며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그 하나가 바로 현대인의 주거 문화다.

길을 걷다 보면 시멘트 보도블록을 만난다. 자세히 살펴보면 시멘트 보도블록 위에는 어떠한 생명체도 살지 않는다. 그런데 보도블록과 보도블록 사이의 불과 이삼 밀리미터 비좁은 틈바구니에 이름 모를 씨앗이 떨어져 풀이 자라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뿌리가 흙에 닿아 있기 때문이다.



이 단순한 사실만 제대로 깨달아도 우리가 어떤 집에서 살아야할지 답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아파트를 사지 못해 그렇게 온통 난리법석을 치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우주의 생명체 중에서 시멘트집에 사는 생명체는 인간이 유일한 종일 것이다. 그 어떤 생명체도 시멘트 공간을 보금자리로 선택하지 않는다. 살림의 공간이 아니라 죽임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마천루 고층 아파트가 전국 곳곳 시골지역까지 우후죽순 침투하는 기이한 현상을 보면서 정말로 걱정되는 것은 곧 다가올 사회적 경제적 대혼란이다. 지금은 평당 수천만 원 가는 아파트지만 그 고가의 아파트 문서가 하루아침에 휴지조각이 되는 날이 곧 다가 오기 때문이다. 아파트 수명은 평균 삼사십 년, 길어야 오육십 년이다. 결국 재건축하지 않을 수 없다.



이삼십 년 전에 지은 아파트들은 대부분 사오 층 아파트들이다. 그러기에 입주자들과 개발업자들의 이해가 서로 맞아 아파트 재건축이 가능한 것이다. 양자 모두 수익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고층으로 지은 아파트들은 재건축이 쉽지 않기에 개발 업자가 달려들지 않는다.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층 아파트 입주자들은 아파트 수명이 다하는 삼사십 년 후에 재건축을 하려면 본인이 전액 건축비를 지불해야만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말 것이다. 결국 아파트는 수명이 다함으로써 그 가치는 휴지조각으로 변하고 마는 것이다.

오래 전에 지은 강남 지역의 모 고층 아파트에서 이미 이러한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것은 전국적으로 엄청난 사회적 경제적 대파장을 야기할 것이다. 재건축을 못한 수많은 고층 아파트들이 슬럼화되어 전국 곳곳에 사회적 공해덩어리, 골칫덩어리로 난무하게 될 것이다. 재건축 비용을 마련하지 못한 아파트 입주자들은 하루아침에 거리로 내몰릴 수도 있다. 참으로 큰일이다. 시급히 국가적으로 대안을 모색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자연과 인간이 공생하는 생태 건축



앞으로 짓는 건축물은 앞에서 언급한 자연적 재앙과 질병의 창궐과 사회적 경제적 대혼란을 막으려면 적어도 다음의 세 가지 생태적 지침에 따라야 한다.

첫째, 수명이 오래 가는 건축물로 지어야 한다.



몇십 년이 아니라 몇백 년 이상 건재하는 집을 지어야 한다. 집의 수명이 짧으면 건축 폐기물로 인한 자연 오염을 야기한다. 재건축으로 수많은 자연이 훼손되고 착취될 수밖에 없다.

경제적으로도 큰 손실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생태 건축의 제일 조건은 수명이다. 아무리 자연 소재로 건축했다고 하더라도 수명이 짧으면 생태 건축이 아니다.

재건축이란 미명 아래 수많은 자연 생태계를 파괴 착취하기 때문이다. 수명이 오래 가는 집을 지으려면 공법도 중요하지만 기본적으로 그에 맞는 자재를 사용해야 한다.

수명이 기껏해야 오육십 년인 콘크리트를 사용해서는 답이 안 나온다. 그래서 흙, 돌, 나무를 사용해야 한다. 이들 자연 소재는 물과 습기만 차단하면 수백 년 이상 건재하다.

둘째, 자연 소재로 집을 지어야 한다



흙, 돌, 나무 등의 자연 소재로 집을 지으면 좋은 생명 에너지가 충만하므로 각종 질병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 오히려 건강을 회복하는 살림집이 된다. 아파트도 H-빔으로 골조를 세우고 벽체를 흙벽돌로 조적하되 빗물에도 손상되지 않는 공법을 연구해 보자. 흙집 아파트를 짓는다면 수명도 오래 가고, 그 수명이 다해도 건축 폐기물을 양산하지 않고 자연의 품으로 돌아갈 것이다. 물론 흙집 아파트를 지으려면 흙과 나무 등 수많은 자연 생명체들의 희생이 따른다. 그러나 수명이 오래고 그 수명이 다해도 재활용이 가능하기에 피해는 콘크리트 아파트하고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미약하다. 그리고 건축 소재로 사용된 나무의 경우, 사용한 양의 두 배 정도 나무를 의무적으로 심도록 하는 생태 순환적인 법적 조치가 필요하다. 우리의 건축 문화가 대량 생산, 대량 소비, 대량 폐기의 악순환에서 벗어나려면 대안적 노력과 법적 조치가 병행돼야 한다.

셋째, 대안 에너지를 사용해야 한다.



이제 십 년도 채 못 가서 석유 정점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석유 생산 감소로 전 세계적으로 에너지 대란을 경험할 것이다. 감당할 수 없이 치솟는 난방비와 공급되지 않는 석유와 가스로 아파트, 단독주택, 사무실, 공장, 운송 등 삶의 거의 모든 분야가 마비 상태에 이를 것이다. 에너지 전문가들의 연구 자료에 의하면 앞으로 인류가 사용할 수 있는 석유는 사십팔 년, 석탄과 천연가스는 오육십 년으로 추정하고 있다. 결국 태양열이나 지열 등 대안 에너지를 개발 사용하지 않으면 인류는 에너지 문제로 상상을 초월하는 시스템 마비와 혼란을 겪는다. 그러므로 새로 짓는 건축물은 에너지 위기에 대비해 태양열, 태양광, 지열 등의 대안 에너지를 사용하는 설비를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대안 에너지 시설 연구 개발과 보급에 과감한 투자와 지원을 해야 한다.

흙집에서 미래의 희망을 찾다



흙집은 생명체다. 흙집은 주로 흙을 소재로 지은 집이다. 바닥, 벽체, 천장 등 사방이 흙으로 둘러싸인 공간이다. 물론 부분적으로 나무와 돌을 사용한다. 흙집은 단순한 물질 공간이 아니라 일종의 생명체다. 흙집의 주 재료인 흙은 수많은 생명을 양육하는 생명의 어머니요, 아버지다. 즉 생명의 원천이다. 흙 자체가 생명의 좋은 에너지를 담은 생명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흙은 바람과 햇빛과 물과 수많은 미생물과 더불어 끊임없이 움직인다. 그 '움직임'은 생명의 존재 방식이다. 움직이기에 살아 있으며 살아 있기에 생명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살아 움직이는 흙으로 지은 흙집은 단순한 물질이 아닌 생명체다.

흙집은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이기에 숨을 쉰다. 인간처럼 폐로 호흡하지는 않지만 끊임없이 숨을 쉰다. 즉 생명의 에너지가 고립 단절된 것이 아니라 소통한다. 타 생명체와 상호 소통하고 에너지 교환이 이루어진다. 집 안팎이 소통하고 집 안에 거주하는 사람과도 끊임없이 에너지 소통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흙집은 살아 숨쉬는 집이요,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과 대화하는 집이다.



흙집은 어머니 품속처럼 편안하다. 흙집에는 좋은 생명 에너지가 충만하기 때문이다. 어떤 공간에 들어가면 섬뜩한 느낌이 들고, 또 어떤 공간에 들어가면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이 든다. 그 공간에 흐르는 에너지의 내용 차이 때문이다. 시멘트 콘크리트와 각종 화학약품 처리된 자재로 지은 공간에서의 느낌과 흙집에서의 느낌이 전혀 다른 것은 이 때문이다.

흙집에 살면 치유의 역사가 일어난다. 생명 에너지가 충만한 집이요, 숨쉬는 집이요, 어머니 품처럼 편안한 집이기 때문이다. 흙집에 사는 것만으로도 아토피성피부염을 비롯한 각종 질병이 치유되거나 호전된다. 한 예로 우리 흙집학교 수료생 중에 아토피성피부염 환자가 있었다. 서울의 아파트에 살 때, 매일 몸이 가려워 잠을 못 잤다고 한다. 그런데 일주일간 흙집학교 강좌에 참여해 흙집에서 자는 동안 가려움증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그는 몸소 흙집의 효능을 체험하고 나서 지금은 흙집을 짓고 건강하게 잘 살고 있다. 이 밖에도 치유의 사례는 많다. 이처럼 흙집을 짓고 산다는 것은 훌륭한 자연의 의사를 모시고 사는 것과 같다.



흙집의 수명은 몇백 년 이상 간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흙집은 물과 습기만 차단하면 수명이 몇백 년 이상 간다. 길어야 오육십 년 밖에 지속하지 못하는 콘크리트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수명이 다해도 자연과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순환의 집이다. 따라서 흙집은 개인적 국가적으로 매우 경제적이며, 지구적 우주적으로도 매우 바람직한 생태적 건축이다.田

고제순<흙집학교 흙처럼아쉬람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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