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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필자가 운영하는 다음카페 회원 몇 사람과 함께 서해안으로 출사出寫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꽤 오랜만에 만난 빅마마 인골프 부부는 언제나처럼 약간의 호들갑과 인정 넘치는 포옹으로 우리를 맞이했다.

인골프 : It's really long time no see(정말 오랜만이에요).
최길찬 : 네! 그동안 별고 없으셨죠?
인골프 : It's really hard to retire(은퇴하기가 너무 힘들어요)!
최길찬 : 네?!
빅마마 : 자, 우선 우리 배부터 채우고….

장마철 비바람에 체격 좋은 빅마마님과 우산을 나누어 쓰니 머리만 대충 비를 피하는 정도로 하고서 대천항으로 횟감을 고르러 갔다. 싱싱한 자연산으로 고른 다음(주로 이 역할은 빅마마님의 몫임) 또 우기셨다. 이곳은 우리 구역이니 계산을 하겠다고. '아니 이번에는 우리 일행이 있으니 제가 낼게요'라고 우겨서 필자가 계산하고 단골식당인 청기와집으로 향했다.

인골프 부부의 건축 의뢰

이들 부부와는 아마도 2002년쯤 처음 알았을 것이다. 한국에서 생활한 지 거의 20년이 다 되어 가는 독일 출신 인골프와 주로 외국계 기업에서 다양한 경력을 쌓은 커리어 우먼 빅마마 두 사람은 가끔 필자가 설계·시공하는 건축 현장이나 당시 필자가 출연하던 방송프로그램 제작 현장에도 나타나서 같이 식사도 하고 사진도 찍으면서 은퇴 이후의 한국생활을 즐겼다.

그리고 약 3년 정도가 지난 어느 날, 두 사람이 당신들의 남은 인생을 살아갈 집을 짓기 위하여 대천해수욕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땅을 마련했으니 이제 집을 지어달라고 정식으로 의뢰했지만 정중히 거절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분들이고 지금까지 좋은 관계가 집을 지으면서 틀어지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그리고 특히 독일 출신 특유의 섬세함과 정확성이 몸에 밴 인골프님의 요구 조건을 다 들어드릴 자신이 없습니다. 일례로 한국에서는 기초가 1~2cm 정도 틀어지면 아주 잘했다고 하지만 독일인은 아마 절대 용납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 일본 출신 엔지니어의 집과 관련하여 이런 관점의 차이 때문에 아주 고생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인골프는 "아~ 그거 걱정 마세요. 나는 한국에서 산 지 무려 18년이나 됐고 아내도 한국인이고 나 또한 이제는 한국인이에요"라고 말하고, 빅마마 역시 "정말 그래요. 우리 부부는 거의 3년 정도를 당신이 일하는 것을 봐오면서 이미 마음의 결정을 내렸답니다. 그리고 인골프도 독일인 특유의 숫자 개념으로 접근하지 않기로 했어요"라며 나의 사양을 막으려고 했다.

당시 두 사람은 독일, 한국, 캐나다, 필리핀 4개국 어디서나 살 수 있는 권리가 있음을 잘 알고 있던 나는 "그러면 이번 겨울에 캐나다, 필리핀 등지를 여행하면서 굳이 한국에 정착하겠다고 결정 내리신다면 그때 제가 집을 설계해서 지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좋은 친구가 되어 드릴 것입니다" 하는 조건으로 그 자리를 모면했다.

그로부터 약 3개월 후 어눌한 한국 발음이지만 특유의 웃음으로 인정미 넘치는 빅마마로부터 전화가 왔다. 지금부터 설계를 시작하자는 것이었다.

설계를 위한 준비 과정

우선 두 사람이 사는 안산의 아파트(은퇴 전 CEO로 재직하던 회사의 사택)를 방문해서 사는 모습과 취향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들은 오래된 가구를 무척이나 아꼈는데, 특히 침대를 비롯한 가구들은 한국의 표준 사이즈와 차이 나게 꽤 큰 세트 제품들이었다.
은퇴 후에도 사택에서 사는 데다 10년도 넘은 것 같은 승용차가 보여주듯이 검소함이 몸에 밴 사람들인지라 집도 그리 크게 설계하지 않기로 하고 계약서를 작성했다. 그때 다시 한 번 인골프에게 "독일식으로 생각하지 마세요. 이곳은 한국이고 저 또한 작은 치수에 그리 얽매이지 않는 한국인입니다"라며 재차 다짐을 받아 냈다. 인골프는 "아~ 걱정하지 마세요, 이미 나는 당신을 너무 잘 알고 있어요"라며 나를 안심시켰다.

설계 착수

2006년 봄 설계를 시작했다. 첫 번째 미팅에서 설계안에 대해 두 사람은 상당히 만족했다. 두 번째 미팅에서 인골프의 몸에 밴 치수 철학이 나오기 시작했고 세 번째 미팅에서 드디어 집 안의 가구와 주방의 위치, 다용도실의 크기 치수에 대하여 적극적인 개입이 시작됐다. 그 후 네 번째 미팅에서 인골프의 적극적인 개입이 좀더 진행되자 빅마마가 약간 짜증내며 만류해 그 정도에서 그칠 수 있었다(언제나 우리편 빅마마님!). "저분은 누가 뭐라고 해도 자신이 주장을 관철시키는 사람이랍니다. 그러나 개인감정이 섞인 건 아니고 생활습관이니 이해하세요"라는 빅마마의 설명.
그렇게 대여섯 번 정도 미팅이 진행되면서 시간은 두어 달 훌쩍 흘려보내고 평면계획안이 확정됐다.

정확성이 몸에 밴 독일인 인골프

공사를 진행하는 동안에도 이야깃거리가 많이 터져 나왔다. 가장 생각 많이 나는 세 가지가 에피소드가 있다.

Episode1

어느날 인골프는 "스틸하우스는 내부에 단열하고 타이벡을 시공한 후 사이딩으로 마감하면 되는데, 왜 신영에서는 그 타이벡 바깥쪽에 다시 단열재를 시공해 타이벡의 습기 방출 능력을 저하시키는가" 하고 질문했다. 그때도 역시 독일인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 이유는 투습 방수지인 타이벡 바깥쪽에 스티로폼을 시공해 한번 더 단열 성능을 높이려고 원가를 더 들여서 시공했지만 투습 방수지의 공학적 성능 저하를 초래할 수 있다는 말이었는데, 정말 정확한 지적이었다.

"물론 그 말씀이 맞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한번 더 단열 시공하여 더 시원한 집, 더 따뜻한 집을 만들어 드리고자 하는 것이며 실제 스티로폼 층과 타이벡 사이는 공기 순환이 미세하지만 가능하여 그리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래도 고개만 갸웃 갸웃 하던 모습이 생각난다(지금도 필자는 이런 부분에 대한 장단점을 정확히 설명할 수 없다).

Episode2

두 사람과 함께 논현동으로 타일, 조명, 위생기구 등을 선택(쇼핑)하러 가는 날, 그날따라 억수 같은 장대비는 내리고 인골프의 고집스런 자재 선택으로 의견 일치가 안 되자 화가 많이 난 빅마마는 인골프에게 아주 강한 어조로 "Stop! Ingolf, Stop! $#%@#$%" 그러면서 우산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도 다정하던 사람들이 그렇게 화를 내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 새가슴이 된 나는 얼른 우산을 받쳐 들고 빅마마를 따라 밖으로 나와 담배 한 대를 빼물고 눈치를 살피면서 "아이 왜 그러세요? 좀 참으시지 그러세요" 했더니 "저 사람한테는 가끔 이렇게 해야 돼요. 걱정하지 말아요, 저런다고 자기 고집 버릴 사람도 아니고 의기소침해 하지도 않아요. 자 들어갑시다" 하면서 도리어 나를 격려했다.

많은 사람 앞에서 부인한테 좋지 않은 언성을 들었는데도 아직도 매장 안에서 이것저것 고르고 있었고 아내에게 "Jacky(빅마마의 영어 이름)! How about this!"라며 외쳤다. 우리는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빅마마도 굳어진 표정을 풀고 "그래 당신이 원하면 그렇게 해" 했다. 참으로 인내심 강하고 화를 낼 줄 모르는, 그러나 자신의 의지 관철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인골프였다.

Episode3

자기 자랑 같아 조금 쑥스럽지만 기분 좋은 경험이어서 한번 더 곱씹어보고 싶다. 전화가 왔다. "하하하 대천 빅마마입니다. 잘 지내셨죠? 집 설계도 너무 마음에 들고 잘 지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근데 사람들이 왜 집을 지으면서 머리가 쉰다고, 10년은 늙는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어요. 우리는 진짜 신경 쓴 것도 별로 없었고 집 짓는 과정 자체가 너무 행복했는데 말이죠."

"아이구 무슨 말씀을요. 모두가 두 분께서 우리를 믿고 함께해 주신 덕분이고 또 저희가 열심히 일하도록 인간적인 배려를 해 주셨으니 좋은 집에 사실 자격이 있습니다. 오히려 두 분 덕택에 좋은 집 지을 수 있었습니다."

전화를 끊고 정말 행복했다.

인골프 부부의 초청

그간에도 이렇게 저렇게 만나기도 했지만 바쁜 일정으로 자주 찾아보지 못했는데 지난 6월에 전화가 왔다.

"이제 정원도 잘 가꾸어져 있고 하니 놀러 한번 오세요."

"네 가야죠, 다음주는 어때요?"

"음~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5일간 학교에 가야 하고, 금요일 오후엔 수업이 없으니 그래 그때 만나기로 해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서울에서 금요일 한 시쯤 출발하겠습니다. 아참! 저기 캐빈 좀 사용할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언제나 대환영입니다."
"저 근데 말이죠. 저 말고 카페 회원 몇 분 사진도 찍을 겸 같이 가도 되나요?"

"그것도 물론입니다."

"네 감사합니다. 그럼 금요일 내려가면서 전화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급조 출사 모임이 만들어져 2007년 6월 셋째주 금요일 카메라를 들고 대천으로 내려갔다.

첫째 날 인골프에게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물어 보았더니 "It's really hard to retire!(은퇴하기가 너무 힘들어요!)" 하면서 피곤한 표정의 너스레를 떨면서 웃었다. 외국어인지라 도대체 알아듣기 어려운데 인골프는 그간의 경위를 쭉 설명했다.

통역자 빅마마로부터 들은 내용을 정리하면 대충 이렇다. 은퇴를 위하여 이곳에 내려왔는데, 지역의 모 초등학교에서 방과 후 학교 식으로 영어를 가르쳐 달라는 요청을 받으신 두 사람은 가볍게 그렇게 하겠다고 응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 사람이 함께 학교에 가서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그 소문이 순식간에 이 지역에 퍼져서 이 학교 저 학교 계속 요청이 들어온 것이다. 인정 많은 두 사람은 거절을 쉬 할 수 없어 이젠 아예 주 5일을 학교에 나간다고 했다. 그리고 시청이나 지역에서 번역일도 하고 요즘 진행중인 대천해수욕장 머드축제에서 해마다 통역 자원봉사까지도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인골프의 말대로 퇴직 전보다 더 바쁜 일정을 보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 빅마마의 말은, "지역에 내려와 보니 좁긴 좁아요. 인구가 얼마 되지 않으니 이곳 저곳 금세 소문나서 그 짧은 시간에 지역유지가 되어버렸답니다. 하하하."

정말로 은퇴하기 어려운 행복한 은퇴자인 두 사람! 7월 첫째 주부터는 EBS-TV 다큐여자의 3부작 주인공으로 발탁되어 방송 녹화하느라(8월 8일~10일, 저녁 9:10~9:50 방영 예정), 머드축제에서 통역 봉사활동하느라 더더욱 바쁘다고 한다.
출사 여행 이틀째 우리는 단체로 몰려다니며 빅마마의 집을 찍어댔다. 멋들어진 연탄재를 이용한 조경물, 바다에서 주워온 유리부레, 정성들여 가꿔온 행복한 정원에 보이지 않는 웃음까지도 샅샅이 찍어댔다.田


최길찬<건축사·시공기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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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길찬의 전원주택 설계노트 7] 은퇴하기가 너무 힘들어요! It's really hard to ret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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