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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한복판에 들어서자 여기저기에서 진땀을 빼고 한숨을 내쉰다. 연일 고공 행진을 펼치는 유가油價에 편승한 물가 때문이다. 요즘 냉방 수요 급증에 따라 중유나 경유 발전소를 전부 가동해야만 하는 한국전력공사가 연료비 부담으로 골머리를 앓는다고 한다. 그럴 것이 여름철 냉방용 기기가 전체 전기 소비량의 10%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이즈음 기름을 잡아먹는 밀폐된 공간 속의 에어컨을 보면서 전통 가옥(한옥)에 스민 선조들의 지혜를 떠올려 본다. 바로 마루인데 특히 몸채의 안방과 건넌방 사이에 드리는 큰 마루인 대청大廳은 자연 바람이 일어 에어컨이나 선풍기 없이도 한여름을 날 정도이다.

글·사진 윤홍로 기자 참고자료 《한옥으로 다시 읽는 집 이야기》 전우문화사, 최성호. 《산수간에 집을 짓고》 돌베게, 안대희. 〈삶을 담는 천연天然 한옥〉 신영훈. 《한국주거학회지》 〈한옥의 재발견〉 박선희. 《브리태니커백과사전》


한옥의 구조적 특징으로 처마 밑에 공존하는 구들을 놓은 폐쇄 공간인 '구들방'과 마루를 깐 개방 공간인 '대청'을 꼽는다. 솔로몬 왕이 레바논에서 수입한 잣나무와 백향목으로 궁전에 마루를 깔고 르 코르뷔제(Le Corbusier)가 필로티(건축의 기초를 받치는 말뚝) 구조를 제창했다지만, 원목 마루와 필로티의 원조는 바로 선사시대 마루를 깐 우리의 고상 가옥이다.
고상 가옥의 구조와 형태는 중국인인 동월이 《조선부朝鮮賦》에 기록한 "백제에는 땅에서 뚝 떨어진 높이에 마루를 설치한 집을 짓고 사다리로 오르내린다"는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바닥은 넓은 판재를 많이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건물이 높아지고 바닥을 땅 위에서 들어올려야 하는 구조다 보니 정교한 구조 기술과 목재 가공 기술이 필요했다.

북방 구들과 남방 마루의 만남

마루는 남방 문화로 경상북도를 중심으로 한 영남내륙에는 대청을 둔 홑집(방을 한 줄로만 넣어 폭이 좁은 집)'이 많이 분포하는데, 이 대청은 각 방을 연결할 뿐만 아니라 가족의 생활과 관혼상제冠婚喪祭 등 의례 공간으로 쓰였다. 남동해안에는 곡식을 보관하는 일종의 곡물 창고인 '안청'이라는 닫힌 마루가 존재한다. 호남해안에는 중앙 부엌형 홑집이 발달하여 큰방 옆에 마래(마루의 호남 방언)라는 공간을 두어 안청과 같이 마루를 깔고 곡물 창고로 사용했다. 마루의 난방은 주로 화로에 의지했으며 고상 주거의 잔형인 제주도 마루에 봉독화로라는 시설이 전해진다.

(사)한옥문화원 신영훈 원장은 〈삶을 담는 천연天然 한옥〉이란 주제 강연에서 고구려시대 북방 문화인 구들과 남방 문화인 마루가 만났다고 한다.

"고구려가 남진 정책을 쓰면서 서라벌 부근에 이르는 지역까지 진출하여 머물게 되자, 그들의 구들도 남방에 정착하고 이윽고 널리 전파되기에 이른다. 반대로 남방의 마루를 깐 고상형 집 구조가 북방으로 파급되고 구들과 마루가 절충하면서 한 집에 공존하게 되었고, 후대에 이 방식이 전국에 파급되어 마침내 한옥의 특성을 발현하게 되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이러한 구조가 보편적인 주거 형식으로 자리잡으면서 이층집이 사라졌다. 구들 자체가 돌과 흙으로 이루어지기에 목구조로 무게를 받치거나 불을 때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집의 중심이자 동선의 중심 대청

초가나 기와집을 막론하고 일정 규모를 갖춘 한옥에는 집의 안팎을 연결하는 매개 공간인 대청이 자리한다. 가난의 상징인 초가삼간 일부에도 방, 부엌, 마루 형식이 적잖게 눈에 띈다.

앞쪽이 시원스레 트이고 뒤쪽에 대개 당판문堂板門을 단 대청은 집의 중심이자 모든 동선의 중심으로 안채나 사랑채 모두 대청 좌우에 안방과 건넌방을 배치하기에 이곳을 거쳐야만 방으로 드나든다. 대청은 안방과 건넌방을 분리하여 가족 간에 사생활을 보호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대청과 방 사이에 달린 분합문을 들어 걸면 큰 공간이 만들어진다. 그렇게 하면 여름철에 대청을 중심으로 안방과 건넌방이 다 트여 통풍이 잘 되고, 관혼상제 때는 공간을 넓게 사용할 수 있다. 전주대학교 건축학과 최성호 겸임교수는 연간 기온 편차가 50도를 넘는 우리나라 기후에서 추위와 더위를 다스리는 장치 가운데 하나가 분합문分閤門이라고 한다.

"여닫으면서 들어 열 수 있는 특별한 문이다. 들어 올려 열거나, 여닫는 창은 다른 나라에서도 모두 사용하는 개폐 방법이다. 그러나 여닫으면서도 들어 열 수 있는 장치가 된 문은 없는 것 같다. 들어 열도록 되어 있는 장치는 보통 대청과 방 또는 대청과 밖을 구분하는 곳에 설치했다. 분합문은 보통 두 짝 단위로 된 것이 보통이다. 평소에는 한 짝만을 여닫이로 쓰다가, 필요할 때 열린 상태로 들어올려 상부에 설치된 걸이('등자'라고 한다)에 얹어 놓는다."

대청은 습기를 피하고 통풍이 잘 되기에 여름철 주거 공간뿐만 아니라 빈 상태로 존재하는 접객 공간인 사랑대청과 달리 안대청은 여러 가지 살림살이를 보관하는 창고 역할도 했다. 조선 후기 문신이자 학자인 서유구는 《금화경독기金華耕讀記》에서 마루 아래 공간은 높고 널찍하며 시원하게 뚫린 것이 가장 좋다고 했다. 우리나라 대청은 습기를 피하고자 지면에서 한두 자 떨어뜨려 마루널을 깔기에 앉거나 눕기 편하다. 반면 중국은 대청에 마루널이 아닌 벽돌을 깔므로 습기를 끌어들여 앉거나 누울 때 의자나 평상을 사용해야 한다.

여름철 여가와 풍류 장소, 누마루

한옥에서 여름나기 공간은 대청뿐만 아니라 누마루도 있다. 고려시대 문신이자 문인인 이규보는 《사륜정기四輪亭記》에서 집 위에 집을 지은 것, 중층 건물에서 상층에 마루로 바닥이 된 것을 루樓라고 했다. 즉 지면에서 높이 띄워 땅의 습기를 피하고 통풍이 잘 되도록 한 누각 형식의 마루이다.

사대부가에서는 보통 사랑채 한쪽에 마루를 놓는다. 원래는 원두막처럼 누각 건물을 따로 만들었으나, 조선 후기에 이르러 살림집의 사랑채에 붙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누마루는 조선시대 남녀유별男女有別 사상이 정착함에 따라 안채와 격리된 가장의 일상적 거처의 필요와 더불어 제사와 접객, 학문 등의 다양한 기능을 수용하고자 사랑채의 확대와 기능 분화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사랑채의 변화는 규모의 확대뿐만 아니라 가장의 거처로 권위를 표현하는 상징적 성격을 띠면서 다른 건물과 차별화되는 형태적 장식적 모습도 갖추기 시작한다.

전북대학교 아동주거학과 박선희 교수는 《한국주거학회지》에 게재한 〈한옥의 재발견〉이란 글에서 사대부가의 격조 높은 여름철 휴식 공간으로 누마루를 꼽았다.

"누정이 보통 선비들이 모여 풍류風流를 즐기던 장소라고 얘기하는 점으로 본다면 누마루도 사대부가의 집에서 선비들이 모여 특히 여름철 여가와 풍류 및 휴식을 취하는 장소로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공간의 조형적 관점에서 본다면 이 누마루 구조는 세계 어디에도 볼 수 없는 주거 내 경관 감상을 위한 고상 공간이다. 서구에서는 베란다나 발코니 정도였을 뿐이다."

전통 가옥의 특징인 구들과 마루, 이것은 다른 나라의 집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냉난방 장치다. 특히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이즈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기만 하는 유가를 보면서 마루를 통해 선조들의 지혜를 새삼 느낀다.田


대청은 자연의 선풍기

한여름 대청에 누워본 사람들은 그 시원함에 감탄하게 된다. 대청에서는 바람 한 점 없는 날에도 살랑살랑 바람이 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바람과 깊게 드리운 그늘의 효과로 대청에서 여름을 시원하게 보낼 수 있는 것이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 옛날부터 더운 여름날에는 사람들이 다리 아래로 모여든다. 물과 그늘이 있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다리 아래는 항상 바람이 일기 때문이다. 바람은 대청에도 있다.
우리는 베르누이의 정리를 알고 있다. 그 이론에 따르면 유체의 운동 에너지는 일정하므로 유체가 넓은 면적에서 좁은 면적으로 흐를 때는 속도가 빨라진다는 것이다.
베르누이의 정리는 대청에서도 적용된다. 대청의 앞은 넓고 뒤쪽의 개구부開口部는 작을 뿐만 아니라, 집 전체의 입면立面을 봤을 때 대청의 면적은 지붕면과 방의 벽면까지 포함하며 상대적으로 작다. 이 때문에 아주 미세한 공기의 움직임에도 대청에서 꽤 시원한 바람이 불게 된다. 그리고 한여름 백토白土(석비레)를 깔아 놓은 마당이 뜨거워지면서 상승기류上昇氣流를 만들기 때문에 뒤뜰에서 안으로 바람이 들어올 수밖에 없다.
이처럼 대청에는 과학의 원리가 숨겨져 있다. 그 사실을 알면 과학이란 먼 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활 주변에서도 언제든지 찾을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최성호 저 《한옥으로 다시 읽는 집 이야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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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네 선조들의 여름나기 공간 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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