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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터를 닦으며 예상치 못할 정도로 많은 비용을 쏟아 부으니 아내와 나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 이런게 바로 집 짓는 것인가. 내손으로 직접 지으면 많은 비용을 절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구나! 부지형질변경 신청 후 본격적으로 목재 다듬기(치목)에 들어갔다. 한겨울이어서 폭설과 한파로 중단 되기도 했지만 오히려 겨울에 일하는게 더 실속 있는 것 같았다.

비가 오지도 않고 눈이 오면 쓸어내면 그만이니 치목은 집 짜기 전에 맞추도록 계획을 잘 세워야 한다. 미리 끄태면 나무가 틀어져 버리기 때문이다.



황인찬





하루는 낮에 군청 직원과 면 직원들이 동시에 집 지을 현장을 방문했다. '1월 3일 토목설계사를 통해 신청한 농지전용(대지로 지목 변경)'에 대한 현장 확인을 위해서였다.

설계사를 통해 신청한 서류가 완벽한지 공무원들은 눈으로 확인만 하고 돌아갔다. 직원들이 가지고 온 서류를 보니 2㎝ 두께는 족히 돼 보였다. 그 많은 서류를 보면서 내가 다 준비한다면 한 달은 쫓아 다녀야 했을 것이다. 그것도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비록 돈은 많이 들었지만 행정기관과 골치 아픈 트러블이 없었다는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2월 14일에 허가공문이 왔으니 거의 한 달 보름 이상 걸린 농지전용절차다. 나와 같은 과정을 거칠 분들은 참고하기 바란다.

공문이 도착하고 나서 땅이 녹기 시작하니 터를 50㎝ 높이고 마사토와 주춧돌을 준비하고, 포크레인을 불러서 기단을 쌓았다. 자기가 직접 짓는다고 해도 허가공문이 오기 전에 마음대로 터를 닦다가 걸리면 원상복구 명령과 함께 수백 만 원의 벌금을 물어야 하니 반드시 유의해야 한다.

목수 서너 명을 확보해(함께 일하던 동료) 겨우내 치목해 놓은 부재들에 장부(홈과 촉)를 파고 치수에 맞게 잘라서 2월 말에 집 짜기를 하고 3월 10일경에 기와를 올릴 예정으로 하룻밤에도 수없이 머릿속에서 그리고 또 그렸지만, 이 계획은 무참하게 무너지고 6개월 정도 예정했던 집 짓기는 3년간 이어졌다.

우리 집을 찾아오는 분들은 대개 내가 거쳤던 과정을 그대로 밟는 분들이다. 이런 분들에게는 내 삶이 꿈같아 보이지만.....



한옥 목수들이 돈을 벌려면 절이나 제각 같은 신전을 지어야 한다. 우선 규모가 웅장하기 때문에 품값을 많이 받을 수 있고 대목 대접도 받는다.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일이 단순하다는 것에 있다. 일정한 양식만 갖추면 되는 건축 과정에서 건축주(스님, 종중)의 참견이나 설계 변경 같은 일이 없다.

그런데 살림집에는 건축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설계변경이라는 의식(?)을 치러야 한다. 198㎡(60평) 이상의 집을 지을 때는 비용을 지불한 건축사 설계도면이 있지만, 그 이하의 집이 대부분인 민가에서는 건축주의 의도에 따라서 설계도가 작성된다.

문제는 이 설계도가 완성된 것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집을 짓기 위해 건축주가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하고 준비를 해도 집을 짓기 시작하는 단계에 모든 것이 100% 만족될 수 없다. 이 점은 집을 다 짓고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상황은 건축 과정에서 설계변경을 낳게 되는데 대개의 경우 건축주들은 설계변경에 따른 비용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하지만 건축업자 입장에서는 설계변경이 가져오는 여러가지 사항이 생겨 추가 비용을 요구하게 된다.

이런 문제는 집을 짓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일어날 수 있다. 집의 마무리 단계에 이르면 화장실용품, 창호, 장판과 벽지 그리고 부엌가구 등에서 어떤자재를 선택하는가에 따라 값이 천양지 차이기때문에 상당히 심각한 문제로 대두 될 수 있고 건축주와 업자는 심각한 갈등으로 치닫게 된다.



건축자재 이야기가 나왔으니 짚고 넘어가야겠다. 사람들은 대개 집의 골조만 완성되면 다 될 것처럼 생각하지만 건축 비용의 절반 이상은 마무리(인테리어)에서 결정된다고 보면 맞다. 요새 최고급 아파트들의 차별화도 골조는 여느 아파트와 별반 차이가 없지만 고급 인테리어 자재를 사용한 것에서 나타난다.

설계변경 문제가 우리집에도 일어났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99㎡(30평) 이하의 농가주택으로 지으면 농지보전분담금과와 취득세가 감면되기에 우리 식구도 세 식구 밖에 안 되기도 해서 나무를 이에 맞추어 구입해 건조를 시작했다.

그런데 세무서에 자세히 알아보니까 우리 같은 경우는 도시에 집이 있기 때문에 감면이 안된다고 한다. 그러자 집사람은 이왕이면 넓게 지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나중에 부모님을 모실 수도 있고, 몇 백 년 이상 우리 자손들이 살아가면서 어떠한 상황이 될지 모르니 평수를 넓히자는 것이다. 건축주 입장인 마누라와 건축업자 처지가 된 나로서는 이 때부터 집짓는 모든 문제에 대해 시시콜콜 갈등을 일으키게 되었다.

이미99㎡이하의설계도면에따라나무를구입해서건조를시작했는데..... 이제와서!



여성상위 시대 아닌가! 그래야 가정이 편안하다면 그까짓 것 집사람 뜻을 따라주지 못할 일이 어디 있으랴.

안방을 넓히고 다용도실과 안방에 화장실을 하나 더 들이는 것으로 설계변경이 끝나자 117.15㎡(35.5평)이 되었다. 목재를 다시 계산해보니 중보가 두 개 남고 기둥 세 개와 대보가 한 개 모자라고 다락이 넓어짐으로 인해서 판재와 귀틀이 좀더 필요했다. 같은 나무가 부산 목재상에 있으므로 돈만 있으면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 돈이 있어도 이미 구입한 나무와 같은 목재가 없다면 난감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목재상 사장 어르신은 수십 년의 노하우로 목수가 나무를 더 구입할 때를 대비해 같은 나무를 항상 예비로 확보해 두고 있었다.

이렇게해서 설계변경이라는 의식을 나무를 치목하기전에 치를 수 있었으니 이 또한 집주인이 손수 집을 지을 수 있는 커다란 장점이 아닐 수 없다. 만일 업자에게 맡기고 이런 일이 벌어지면 그 비용은 처음보다 엄청나게 더 들어갔을 것이다. 그런데도 집을 다 짓고 나니 아쉬운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어서 집짓는 일 특히 살림집을 짓는 일은 정말 쉽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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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재 이야기 IV] 설계변경이라는 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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