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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그럴듯하게 갖춰진 모습이지만 산자락 아래의 불모지 땅을 새벽녘부터 해질녘까지 해가 떠 있는 시간만큼은 일하자는 생각으로 열심히 가꾸었더니 이제야 겨우 형태를 갖춘 것 같습니다." 충남도농업기술원 귀농가족 사례 공모작 김진예 씨의 <시골에 둥지를 튼 오리가족>의 일부다. 충남도농업기술원은 김진예 씨에게 영예의 최우수상을 수여했는데 왜 그녀의 작품에 꽂혔을까. 그 이야기를 들으러 징검다리 농장을찾았다.



글 박지혜 기자 사진 서상신 기자 취재협조 징검다리 농장 011-468-5000





"꽥꽥꽥꽥~"

송영수(49세)₩김진예(41세) 부부가 경영하는 천안시 동면 화덕리에 소재한'징검다리 농장'에 도착했을 때 오리 떼 소리가 시끌벅적할 거란 예상은 오리 사육에 무지한 기자의 착오였다. 오리 농장은 배추 농장과 다를 바 없이 고요했다.

"소리가 나는 건 뭔가 불편한 일이 생겼다는 증거예요. 오리는 웬만해선 잘 안 울어요. 평소에는 저렇게 사육장 안에서 편하게 먹고 놀고 쉬는 게 쟤네들 일과인 걸요."

2640㎡(800평) 부지에 사육장 7동과 새끼장, 창고가 조성돼 있고 여기에 1만 6000마리의 오리 가족이 지낸다. 그 아래 19800㎡(6000평) 부지에는 각종 곡물과 채소를 가꿔놓은 논밭이 있다. 채소밭 위로는 한 칸짜리 방과 욕실, 주방이 딸린 농막이 있고 그 맞은편에 원두막이 있다. 농장 한가득 생명이 넘쳐난다. 오리 농사를 주업으로 논밭 농사는 부업으로 꾸려 나간다.

부부가 오리와 함께 아침을 연 것은 불과 두 해 남짓. 그런데 오리 사육 준비기간만 3년이라는 꽤 긴 시간이 걸렸단다. 오리 농장 부부의 귀농 일지에는 여느 귀농자가 그러하듯 좌충우돌 실수와 실패, 도전의 스토리가 깨알같이 적혀있다.





"아버지, 농부가 되겠습니다"

징검다리 농장을 차린 바로 이곳에서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난 송영수 씨는 어릴 적 아버지 어머니가 농사짓던 정경을 품에 안은 채 아버지의 바람대로 도시에 나가 공부하고 도시민으로 살아가던 평범한 가장이었다. 아버지는 자식들만큼은 힘든 농사 대신 도시에서 교육 받고 어엿한 직장을 가진 도시민으로 살아가길 원했다. 엄한 아버지의 뜻에 따랐던 송 씨는 학교 졸업 후 여러 가지 사업을 벌이다가 지난 15년간 전자전기 대리점을 경영했다. 사업은 순탄하게 흘러갔으나 그의 마음은 그렇지 못했다. 가슴 한켠 농사에 대한 동경이 늘 그를 붙잡고 있었다.

"언제나 농부가 되고 싶었어요."

그는 때를 기다렸다고 한다. 농부가 될 수 있는 때.

2001년 송 씨 내외가 두 자식과 함께 농사를 짓겠다며 시골 아버지 집으로 들어왔을 때 현재 여든을 넘기신 아버지는 떨떠름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송 씨 가족의 시골살이를 내내 못마땅해 했는데 6년 남짓 눈칫밥을 먹어야 했다고. 최근 들어 오리 농사가 어느 정도 자리 잡자 열심히 노력하는 아들 내외를 인정하기 시작한 눈치다.

아버지의 완강한 태도에 송 씨는 평생 농사만 짓고 살아온 농사 선배를 바로 목전에 두고도 부모에게 감히 농사법을 가르쳐 달라고 말 한 번 꺼내보지 못했단다. 어디 아버지뿐인가. 여긴 분명 송 씨의 고향임에도 마을 사람들은 외지인 대하듯 쌀쌀맞았다.

"처음 이곳으로 왔을 땐 이웃사촌이란 말도 다 옛말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도시만 그런 줄 알았는데 시골도 이웃이 남남처럼 된 것 같아 섭섭하더라고요. 우리가 먼저 인사를 건네고 또 정착해 산다는 걸 알고서야 조금씩 마음을 여는 것 같았어요. 잠깐 있다 떠나는 외지인일까 봐 냉담했던 거지요."



우여곡절 끝에 오리 부모가 된 사연

"처음에는 한우 사육을 생각하고 한 1년간 준비했어요. 용접 기술도 배워서 자재를 사다가 직접 100평짜리 우사를 만들었어요. 우사 만드는 데 들인 비용이 2,000만 원 정도였나? 그런데 거의 다 완료 됐을 무렵 사료 값 폭등과 FTA(자유무역협정) 파동이 염려돼 앞으로 힘들어지겠다 예상하고 한우 사육을 과감히 포기했어요."

주변의 냉대에도 용기를 내어 1년간 준비하던 일이 수포로 돌아가자 부부는 다시 처음부터 고민하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종목을 두고 궁리하던 중 아래 동네에 사는 선배가 오리 사육을 권했다. 눈을 크게 뜨고 주변을 살펴보니 마침 이 지역은 오리 농가가 많이 몰려 있는데 인근 진천군에 유명 오리 가공식품 회사의 본사가 있고 본사를 중심으로 이 회사에 납품하는 오리 농장들이 포진해 있던 것이다. 그 선배를 쫓아다니며 오리 사육에 대한 지식을 얻고 오리 사육장을 짓기 시작했다. 그 준비기간만 2년이다.

예상치 못한 복병이 또 있었는데 축사 신축을 위한 인허가 과정이 무려 2년이 걸렸단다. 김진예 씨는 축사 짓는 데 그처럼 복잡한 과정이 필요한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인허가 과정처럼 고되고 힘겨운 시간도 없었다고 했다. 특히 환경부담금같은 예상치도 못한 비용이 발생할 때는 무척 속상했다고.


오리를 들여와 본격적으로 시작하려는 무렵 또 일이 터졌다.

AI(조류인플루엔자) 발병으로 오리 수요가 뚝 떨어진 것. 적당한 시기를 살피며 휴지기를 갖자고 한 게 6개월이 지나고 1년을 흘려보낸 후에야 5000수의 오리로 농장을 본격 가동할 수 있었다.

다행히도 오리와 인연이 잘 닿았는지 지인을 통해 오리 가공식품회사와 공급 계약을 맺어 유통에 대한 걱정은 덜 수 있었다. 유통 문이 열리니 사육 규모를 금세 늘릴 수 있었다.

부화된 새끼오리가 가공공장으로 출하되기까지 43일간 농장에서 지내는데 그 과정에 송영수 씨 부부는 오리가 아무 탈 없이 건강하게 자라도록 자식 돌보듯 정성을 다한다. 오리 사육 관련 전문 기술이 아직 부족하다는 김진예 씨는 "뽀송뽀송한 자리를 만들어주고 사료 챙겨주고 온도 조절해 주고 또 새끼들이 15일 동안 있는 새끼장에는 신나는 음악을 틀어주는 등 크게 노동을 필요로 하진 않지만 온종일 옆에서 지켜봐 줘야 해요. 자식 돌보듯이요" 라고 말한다.



강을 건너게 하는 징검다리처럼…

징검다리 농장의 논밭 작물은 건강한 오리 덕분에 호강한다. 오리 사육장에서 나오는 배설물과 풀을 섞어 만든 퇴비로 영양분을 공급하고 시중에 파는 농약이나 비료는 일절 사용하지 않는단다. 배춧잎 한 장이 어른 머리보다 더 크게 자랐고 때론 벌레 먹은 자리도 보이지만 싱싱한 천연의 맛이 일품.

올여름에는 도시민을 위한 농촌체험행사의 일환으로 옥수수 수확 체험행사를 치렀는데 참여자들의 호응도가 높았다고. 천안시 농업기술센터 홈페이지를 통해 유익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는 후기, 앞으로 참여하고 싶다는 내용 등의 글을 보면서 송 씨 부부는 큰 힘을 얻는다. 그럴 때면 그간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농장을 일궈온 시간들에 대한 보람도 느낀다.

부부는 이렇게 계획을 세워본다. 힘이 닿는 데까지 오리 사육 기술을 더 공부해 기능성 오리에 도전해 보고, 도시민이 농촌 체험을 통해 자연의 싱싱함과 풍성함을 마음껏 가져갈 수 있는 농장으로 가꾸기!

"긴 강을 건널 수 있게 하는 징검다리처럼, 도시와 시골을 연결해 주는 곳,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 행복감을 느끼는 곳으로 쑥쑥 커가고 싶어요."

애초 한 단계씩 차근차근 발전해나가겠다는 희망으로 지은 농장의 이름 징검다리가 어느덧 부쩍 성장해 농촌과 도시를 이어주는 도농 교류의 세계를 아우르며 울타리를 넓혀가고 있는 것이다. 부부의 얼굴에서'농부라서 행복해요'라는 뜻을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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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에서 만난 사람] 농부의 꿈을 이룬 ‘징검다리농장’송영수 · 김진예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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