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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목수 집 부엌칼은 잘 안 든다는 말이 있다. 끌과 대팻날은 면도를 할 정도로 잘 갈아 놓으면서 안사람이 쓰는 부엌칼은 잘 갈아주지 않는다. 관심이 없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늘 시간에 쫓기며 살아야 하는 직업이다 보니 그런 말이 나온 것 같다. 또 목수는 부자가 될 수 없다고 한다. 나무를 자르고 깎아내는 직업이다 보니 이에 빗대어 재물

이 모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사실 목수는 일 년 내내 일을 할 수 없다. 한옥의 경우 일의 특성상 여름 장마나 비오는 날은 쉬어야 하고 한겨울에도 춥다고 일이 없고 결국 목수 일로 돈을 벌기란 그리 쉬운 게 아니다. 그래서 목수는 남의 집은 쉽게 지으면서 자신의 집은 짓기 어렵다.

나도 그렇게 바라던 내 집 짓기를 시작하고도 돈을 벌러 가야 했다. 집 짓기에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가니 한 푼이라도 보태야 하기 때문이고 같이 일하던 동료들이 부탁하면 거절할 수 없다. 나도 일할 때 동료의 '여자마음에드는' 한옥 살림집을 짓자 도움을 받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름 이상 전북의 어느 암자에 가서 토굴을 짓기도 했다.



집에 돌아와 보니 환절기를 맞아 기관지염으로 고생하던 어린 아들이 누구보다도 반가워하며 아빠를 보자 기운이 나서인지 아픈 것도 서서히 나아가던 기억이 난다. 목수 일을 하자면 전국을 떠돌아다녀야 하고 그러자니 가족과 많은 시간 떨어져 지내야 하는 생이별의 고통이 가장 어려운 점이다.

집에 돌아와서 본격적으로 치목을 시작하는 도중에 아내가 이미 설계해 놓은 집이 작은 것 같으니 집을 더 크게 짓자는 것이다. 앞서 잠깐 이야기했듯이 사실 우리도 처음에는 여러 가지 면에서 집 짓기 비용이 훨씬 절감되는 농가주택으로 설계했는데 나중에 부모님을 모실 생각을 해서 넓히자는 아내의 의견이었다.

이미 설계대로 나무를 구입해서 건조시켜 놓았는데, 난감했다. 하지만 이것이 집 짓는 목수의 어려움이란 걸 집사람이 어찌 알 수 있겠는가? 건축주의 의견이 70%이고 목수의 의견은 30%로 결정돼야 집은 잘 지어진다고 한다. 주인이 마음 들어하지 않으면 아무리 멋있게 지어도 그 집은 잘 못 지어진 것이다. 우리 경우엔 집사람은 건축주고 나는 시공업자의 입장인 셈이다. 집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설계하기를 요구했고 그 요구를 들어줘야 하지만 그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리 집을 직접설계하면서 느낀 점을 몇 가지 이야기하고 싶다.

첫째, 집 짓는 일은 여유를 갖고 추진해야 한다. 대개 주위에서 보면 언제까지 입주하기로 약속해놓고 집을 짓는다. 물론 남의 손에 전적으로 의지해서 짓는 경우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건축비의 60% 이상이 인건비이기에 정해놓은 일정 안에 끝내야 시공업자는 그만큼 수익을 올릴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집을 직접 지으려는 이들은 여유를 갖고 시작했으면 싶다. 그만큼 집 짓기에는 준비과정도 많이 필요하고 실수할 가능성도 많기 때문이다.

우리는 겨울에 집 지을 준비를 하니 여유가 있어 좋았다. 봄부터 시작하는 집은 장마가 오기 전에 마치려고 서두르기에 결국 하자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둘째, 집에선 주로 여자가 살림을 하게 된다. 남자는 집의 형태에 관심을 많이 갖지만 여자는 실내 구조와 인테리어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다. 어떻게 하면 살림하기에 편리한 집을 지을까 하는 여자의 의견이 중요하다. 그래서 모 아파트 광고에서 '여자 마음에 드는 집'이라는 문구도 볼 수 있는 것이다. 나도 내 집을 직접 지으면서 처음 이것을 깨달았다. 전통 한옥에서 살았던 우리의 어머니들이 너무 불편한 집이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것은 남자 위주로 집을 지었기 때문이다.

이제 전통 한옥도 과거 이런 관행에서 벗어나 새로운 살림집 구조로 태어난다면 분명 서양식 위주로 지어지는 전원주택 시장 판도에서 그 중요한 가치를 인정받을 것이라고 외치고 싶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 집은 전통 한옥으로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구태의연한 과거를 탈피한 새로운 한옥 살림집으로 지어졌다고 자부하고 싶다.

그럼에도 아내는 아직까지 나에게 가끔 불평을 늘어놓는다. 대청마루 안에 신발을 놓을 수 있는 현관을 만들지 않았다고 불만이 많다. 현관 문 밖에 신발을 놓아두니 비바람이 몰아치거나 눈이 오면 신발이 젖으니 그럴 수밖에.



우리가 전통 한옥을 굳이 고집한 이유는 생태적인 주택이라는 데 있다. 예부터 나무와 흙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한옥은 기와집과 초가 다 포함된다. 대궐 같은 기와집보다 오히려 초가가 더 생태적인지도 모른다.

박경리 소설《토지》의 배경이 된 경남 하동의 평사리 최참판 댁을 방문하였을 때한 가지 이상한 것을 보았다. 많은 기와집이 여기 저기 배치된 아름다운 참판 댁의 뒤꼍에 두 칸짜리 초가가 있었다.

초가는 여름철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기와집은 장마가 오래되면 습기를 머금고 있다가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면 집 안으로 그 습기를 내뿜는다. 그래서 남정네들이 여름철에 공부하는 장소로 주로 초가를 이용했다. 바짝 마른 짚으로 엮은 이엉을 올린 지붕과 두꺼운 흙벽으로 지어진 초가는 무더위를 피하는 데 안성맞춤이었다.

전통 한옥의 멋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좁다면 좁은 우리나라 방방곡곡을 다녀보아도 매력적인 건축물들을 그리 많이 만날 수 없다는 점이 참으로 아쉽다. 국적 불명의 주택들이 지어져 있는 것을 보면서 왜 우리의 주택문화가 이렇게 되었을까 하고 상념에 젖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나라 전통이 깃들어 있는 한옥에 더 애착이 가는지도 모른다.

혹자는 세계화가 되었는데 무슨 소리냐고 반문할지도 모르지만'지극히 한국적인 것이 바로 세계적인 것'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싶다. 그렇다 해도 절이나 재실(사당)처럼 전형적인 전통 한옥은 사람이 살 주택이 아니라 신전神殿이다. 사람은 그런 곳에서 살 수 없다. 웅장한 대들보와 기둥이 사람을 짓누르기 때문이다. 어느 유명한 건축가는 이런 말을 했다. '가장 좋은 주택은 그 곳에 사는 사람을 돋보이게 하는 집이다'라고.

우리 부부는 전통 한옥으로 짓되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편안하게 거주할 수 있는 집을 설계하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 그렇게 공을 들여 설계를 했는데도 요즈음 직접 살아 보니 아쉬운 점들이 많아서'이 문은 여기도 하나 더 냈으면 좋았을 텐데, 부엌을 좀 더 넓게 했으면 좋았을 텐데……'하고 아쉬움을 토로한다.



우선 골조는 전통 한옥 양식으로 세우기로 했다. 대목 일을 하는 나로서는 그게 가장 손쉬운 방법이기도 했고 몇 백 년 이상 지속되는 자랑스러운 우리 조상들의 슬기가 깃든 건축법이기 때문이었다. 벽체는 황토벽돌로 시공하기로 설계했다. 그래서 기둥은 각기둥으로 제재를 해 왔다.

원형 기둥으로 집을 지으면 골조만 세웠을 때는 웅장하지만 벽체를 두껍게 시공해야 하는 살림집에서는 돌출 부분이 상대적으로 작아지기에 외형상 멋이 떨어지고 문틀을 다는 시공 과정에서 어려움을 각오해야 한다. 물론 건축비도 많이 들어간다.

막상 시공할 때는 황토벽돌이 시공상 하자가 많다고 판단돼 흙벽치기로 변경했다. 후자가 훨씬 단단하고 누구나가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되고 비용도 더 저렴하다. 황토벽돌로 하면 1,000만 원 이상 들어갈 방법이 흙벽치기로 하니까 절반으로 줄어 들었다.



글 황인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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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재 이야기 Ⅴ] ‘여자마음에드는’ 한옥 살림집을 짓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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