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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지붕이 관건이었다. 절에서 사용하는 토기와로 지붕을 하자니 지붕에만 거의 4,000만~5,000만 원이라는 거금을 들여야 한다는 계산이 나오자 눈물을 머금고 포기하였다. 아무리 좋고 멋져 보여도 내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집 한채 값을 지붕에 모두 쏟아 부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생태주택을 짓는다고 하면서 시멘트기와를 쓸 수도 없고……. 생태적이란 것은 이다음에 이 집이 수명을 다하고 나면 모두 자연으로 돌아가서 없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초가집은 가장 좋지만 매년 이엉을 엮어 얹어야 하고 지금은 그런 일을 하는 사람도 쉽게 만날 수 없다.
고심하던 차에 건축박람회를 찾게 되었는데 눈에 확 띄는 제품이 있었다. 고령기와에서 새로 개발한 '평판기와'였다. 토기와와 똑같은 재료와 공정으로 만들어졌지만 시공하기도 간편하고 값도 시멘트기와 거의 비슷했다. 다만 평판기와는 전통 한옥의 멋진 모습을 기대하기는 어렵고 서양식 목조주택의 지붕 형태에만 가능했다.
골조와 벽은 전통한옥 건축법을, 그리고 지붕의 모습은 서양식 지붕의 건축법을 따른 개량식 전통한옥으로 설계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퓨전 한옥이라고 하면 알맞을 것 같다. 아무리 한옥이라고 해도 어차피 내부 구조는 현대식 혹은 서양식으로 꾸밀 생각이었으므로 결국 동양과 서양의 만남이 이루어진 집이라고 볼 수 있다.
30세에 새로 1학년으로 입학한 대학에서 공부할 때 동양철학을 가르치던 교수님의 말씀이 아직도 기억난다. 앞으로 인류의 위대한 문화는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만날 때에 이루어지진다고 역설하시던.

 

10여 년 전 유럽 여행 중에 스페인 남부 지방인 안달루치아와 바로셀로나 등지에서 문화적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가톨릭 국가인 스페인의 남부지방은 10세기경부터 500여 년간 이슬람 국가에 의해 지배되었다. 그 때 아랍계 사람과 스페인 사람과 자연스럽게 혼인이 이루어졌을 테고 그 후손들이 살고 있는 지방의 여인들은 정말 매력적이었다. 키가 작은 나로서는 키 큰 북유럽 여인들보다 우리나라 여인들처럼 아담하면서도 완벽한 몸매와 외모를 갖춘 안달루치아 여인들이 너무 예뻐 보였다.
요즘도 나는 이민가고 싶은 곳이 어느 나라냐고 하면 서슴없이 안달루치아라고 대답하곤 한다. 안달루치아에는 너무도 유명한 알람브라함 궁전이 있다. 그라나다 시市산 중턱에 자리 잡은 궁전은 비잔틴 문화가 잔뜩 들어있는 곳이다. 스페인 남부는 호텔 화장실 타일에도 비잔틴 양식이 새겨져 있다. 가톨릭 국가지만 500년동안 지배했던 이슬람국가의 비잔틴 문화를 수용하여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낸 태양과 정열의 나라 안달루치아 사람들은 이미 동서양의 만남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여실히 증명하고도 남는다. 우리가 잘 아는 바로셀로나의 걸출한 건축물 사그라다 파밀리아(Sagrada Familia, 성가족) 성당은 안토니오 가우디의 불멸의 작품이다.
스페인 사람들이 미켈란젤로하고도 바꾸지 않는다는 가우디 작품들은 모두 동서양의 완벽한 만남의 결실이라고 생각된다.

 

자신의 집을 지어보지 않은 사람과는 인생을 이야기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만큼 집 짓는 일이 어렵고 고통스럽다는 뜻일 게다.
나도 직장에 있으면서 10억 원 이상 들이는 건물을 건축주 입장에서 지으면서 없던 병도 앓게 될 정도로 많은 어려움을 겪어보았다. 집을 지으면서 건축업자와의 갈등이 필연적으로 일어나기 마련인데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돈이다. 건축주는 적은 비용으로 좋은 집을 지으려 하고, 건축업자는 많은 이윤을 남기기 위해 보다 저렴한 자재를 쓰는 것은 물론 공정을 보다 간단하게 처리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집을 손수 지을 수 있다면 이런 갈등은 일어나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집을 마음껏 지을 수 있다는 것은 어찌 보면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니다. 예전에 우리 조상들은 비록 초가삼간이라도 손수 지었기 때문에 누구나 대목수였다. 아주 기술적인 것만 동네에 함께 살고 있는 목수의 손을 빌리면 되었기에 각각의 집은 십인십색十人十色이었다.
그래서 나는 누구나 생태적인 집을 지으려고 한다면 어떤 건축업자에게 맡기거나 매달리지 말고 스스로 지으려고 노력하면 가능하다고 강조하고 싶다. 직장과 돈때문에 또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집을 손수 지을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스스로의 잠재된 능력을 포기하는 것과 같고 여건이 허락할 때까지 기다리며 준비하라고 권하고 싶다. 내가 집을 다 지었기 때문에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집을 짓고자 하는 꿈을 키우기 시작할 때부터 갖고 있던 나의 소신이다.

 

'전통한옥 설계는 예로부터 목수 머릿속에 있다고 한다. 때문에 전통한옥을 지을 때 도편수가 직접 도면을 그리지 않는다면 그 밑에 있는 목수들은 집의 뼈대가 다 완성될 때까지 어떤 모양의 집이 될지 잘 모른다.
그런데 전통한옥으로 집을 짓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엄청난 건축비가 들어간다.
지난 2년간 구입한 건축 자재비만 해도 거의 9,000만 원 정도가 되니까 115.5㎡(35평)에 3.3㎡(평)당 250만 원 이상이 들어갔다. 거기에다 중장비 대금과 대지대금까지 합치면 거의 1억 원이 소요됐다. 만일 건축업자에게 모두 떠맡겼다면 2억원이 훌쩍 넘어갔을 것이다. 스스로 짓는 집이기에 처음에는 자재비만 7,000만 원 선으로 예산을 잡았는데 … ….
이런 결과는 충분히 예측 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에 처음에 설계에 들어갈 때 참으로 망설였다. 이렇게 많은 비용이 들어갈 것이 뻔했기에 아내에게 나는 전통한옥을 포기하고 귀틀집이나 아주 간단한 목구조 집을 짓자고 제의했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비용도 많이 들면서도 편리한 주택으로 짓기 어려운 것이 전통한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내는 욕심이 많은 여자다. 결국 아내의 전통한옥에 대한 애착에 밀려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설계에 들어갔다.
나와 아내가 어렸을 때 살았던 한옥은 우선, 불편했다는 경험과 겨울이 추웠다는 경험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그동안 안동 하회마을을 비롯해 전국 곳곳에 숨어있는 전통한옥들을 구경하면서 아내와 나는 '겉으로 보기에는 멋지지만 우리 현대인들이 직접 살 수 있는 주택은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런 토대 위에 나는 목수로서 기술적인 면들을, 아내는 살림주인으로 수많은 의견을 개진했다. 그 과정에서 참으로 많은 말다툼도 있었으니 행복해지자고 하면서 집 짓는 과정이 결코 행복한 시간이 아니었다는 것은 참 씁쓸한 추억이다.

 

한옥으로 살림집을 설계했을 때 문제점은 우선 마음대로 방을 넓힐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거대한 대들보를 사용해서 기둥을 세우지 않아야 한다.
우리 집 안방이 그래서 거대한 대들보로 다섯 평의 방이 되었다. 왜냐하면 나무는 9자(2700㎝) 이상 되면 지붕 무게 때문에 부재가 휘게 된다.
또 아파트처럼 공간을 꾸미기 위해서 기둥과 기둥 사이에 벽을 만들지 않으면 한옥의 멋을 연출하지 못하게 된다. 화장실을 좁게 만들려고 계획한다면 그곳에 또 하나의 기둥을 세워야 비로소 제대로 지을 집이 될 것이다. 그러니 한옥으로 설계하려고 할 때 편리함 위주로 설계를 한다며 나중에 아주 이상한 집이 탄생된다는 것을 염두에 두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집사람과 같은 주부들은 한옥의 특성을 무시한 채 무작정 편리함 위주로 설계를 하려고 하니 애로사항이 꽃피는 것이다.

 

 

 

 

- 황인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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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재 이야기Ⅵ] 현대식 한옥 살림집 짓기의 어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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