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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한옥에서 나무를 구입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좋은 재목을 값싸게 구입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일 터. 집을 짓기 위한 준비로 작업장을 먼저 지으면서 전국의 목재소를 통해서 견적을 문의했다. 물론 설계도에 의해서 정확한 나무의 수량이 뽑아지고 난 다음에 진행했다. 혹자는 한옥은 설계도가 필요 없다고 말하지만 종이로 된 설계도가 없을 뿐이지 대목수(혹은 도편수라고 부름)의 머릿속에는 이미 다 그려져 있다.
목재소에서는 견적서를 '귀가래'라고 부른다. 견적서를 팩스로 강릉, 인천, 군산, 부산 그리고 원근 각처의 유명한 목재소에 문의했다.




육송으로 구입하면 좋지만 웬만한 부자가 아니고서는 엄두도 못 낼 일이다. 사이(재)당 2,000원이면 아주 싸게 구입하고 게다가 운임비, 제재비까지 합하면 내가 뽑은 재목 값은 3,000만 원이 넘어간다. 바로 여기서 전통 한옥의 고민이 있는 것이다. 국산으로 써야 진정한 생태주택이지만 30평 한옥의 재목 값만 이렇다면 갑부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돼버리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수입목들이 값싸게 들어오고 있어 요새 웬만한 절이나 제각祭閣 그리고 민가들은 그것을 이용한다.
수입 목재는 북미, 남미, 뉴질랜드, 러시아, 중국 등지에서 들어오는데, 나무의 종류가 하도 많아 나도 잘 모른다. 다만 현장에서 사용하는 대표적인 수종은 스프러스(Spruce, 전나무), 햄록(Hemlock, 북미산 미송), 더글라스-퍼(Douglas-Fir, 북미산 홍송) 등이 있다. 여기서 가장 고급재인 더글라스-퍼를 구입하게 되었는데 사이당 1,700원(제재비, 운반비 포함)으로 최종 결정됐다. 2003년 10월 가격이었으니 지금은 아마도 3,000원 정도 할 것이다. 그리고 마루를 까는데 사용되는 귀틀은 미송(햄록)으로 사이당 650원에 결정됐다. 국내 육송으로 하면 3,000만 원이 넘는데 수입목으로 해서 거의 그 절반 가격에 재목을 구입하게 된 것이다. 생태주택을 표방한다고 하면서 수입목을 사용했다고 비난 받을 수도 있지만 이것이 현재 우리나라의 전통 한옥 짓기의 현실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어 이렇게 감히 밝힌다.


1만 8000재의 홍송이 도착하다

2003년 10월 7일 주문한 나무가 다음날 아침 8시에 도착했다. 25톤 트레일러로 덕유산자락의 현장에 도착한 목재는 정말 어마어마했다. 붉은 색 기운이 감도는 홍송이 넓은 밭 여기저기에 쌓였다. 읍내에서 이곳까지 80리(약 32㎞) 거리라서 지게차 1시간 임대료가 15만 원이었다. 가까우면 5만 원이면 가능한 것을…….
산 속에다 집을 지으면 이래저래 부대비용이 많이 들어간다는 것을 처음으로 느끼게 된 계기였다. 사람은 도저히 하역할 수 없는 거대한 목재들이기에 장비를 부르지 않으면 불가능했다. 나무는 뙤약볕에서 건조시키면 갈라지거나 틀어지기 때문에 하역하자마자 건조를 위해서 차광막을 덮어 놓았다. 물론 비가 올 때를 대비해 넓은 천막도 준비해 놓았다. 목재를 내리는 데 불과 한 시간도 안 걸렸다. 무려 1만 8000재(사이)나 되는 양을.
목재상에서 선적할 때는 부산에 직접 내려가서 하나하나 확인한 것은 물론이다. 그날 밤 잠을 설쳤다. 내 집을 지을 나무가 내일이면 도착한다는 것이 그렇게 설레는 일인지도 처음 느꼈다. 미리 지게차를 맞추어 놓았으니 이제 본격적인 집 짓기가 시작된 것이다.


집 짓기, 겨울에 시작하라

목재를 그늘에 재어 놓고 가을의 건조한 바람에 말리기 시작했으니 언제부터 치목할까 그 시점을 놓고 고민했다. 집을 짜기(치목해 놓은 부재들을 맞추어 집을 세우는 작업) 위해서는 치목 작업부터 약 두 달을 잡아야 한다.
왜 하필이면 집을 추운 겨울부터 짓기 시작하려고 했는지 설명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여름에는 우기, 겨울에는 건기에 속한다. 따스한 봄에 집 짓기를 시작하면 처음에는 좋을지 모르지만 집을 세우는 과정에서 장마라는 복병을 만난다. 벽돌 조적이나 콘크리트 건물은 큰 문제가 없지만 나무 집은 치명적인 장애를 입는다. 나무에 시퍼렇게 곰팡이(청태)가 피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썩는 것이다. 한 번 끼기 시작한 청태는 집이 다 지어진 후에도 깨끗하게 벗겨낼 수 없어서 난감한 일이 일어난다. 단 한 번 내 집을 짓는데 이런 장애를 만나면 두고두고 후회될 것은 뻔하다.
또 가을에 나무를 구입해서 건조하기 시작하면 곧 추운 겨울을 만나지만 건기에 작업할 수 있어 나무를 깨끗하게 치목할 수 있다. 물론 대형 작업장 건물이 있으면 문제 되지 않지만 자신의 집을 짓는 사람들에게는 집 짓는 계절을 잘 선택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일이다.
추운 겨울에 일하는 것이 생리적으로 무척 힘들 수 있지만 두꺼운 옷을 입고 열심히 일을 하다 보면 추위는 어느새 멀리 달아난다. 하루해가 짧기 때문에 일하는 시간이 짧은 것 같지만 여름에 비해서 노동력은 오히려 효율적이다. 여름에는 더위 때문에 자주 쉬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을 스스로 지으려는 이들은 나무를 미리 구입해서 잘 건조해 놓았다가 겨울에 시작해 봄에 집을 세우고 장마가 오기전에 지붕을 덮으라고 권하고 싶다. 우리 집의 경우는 12월에 치목을 시작해서 다음해 4월에 상량을 하고 5월에 기와를 이었더니 바로 비가 오기 시작하는 6월이 되었다.


거듭 강조해도 입 아프지 않은, 목재 건조

나무 건조 장소가 야외라면 건조기를 택해서 태양을 가릴 수 있는 그늘을 만들어야 한다. 내 경우는 나무를 전부 각재로 제재해 왔기에 태양에 노출된다면 그대로 틀어진다. 나무가 틀어지면 치수대로 켜온 나무를 못 쓰게 되고 쓸 수 있다 해도 틀어진 부분을 바로 잡아야 하기 때문에 부재를 작게 쓸 수밖에 없다.
또 비를 맞지 않게 해야 한다. 비닐로 덮어 두면 너무 얇아서 바람에 자주 날아가고 찢어지니 시중에서 파는 파란 덮개비닐을 이용하면 좋다. 가격은 사방 10m 규격에 7만 원 정도 드는데 집을 짓다 보면 이렇게 꼭 필요한 자재들 값이 만만치 않게 들어간다. 그렇다고 이런 비용을 아끼려다 보면 집이 제대로 지어지지 않는 것을 어떻게 하랴!
밑에 쌓인 목재를 다시 위로 순환시켜 골고루 마르게 도와주기 위해서 세 번 정도 나무를 전부 다시 쌓는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됐다. 나무 사이사이에 작은 각목을 집어넣는 것도 나무가 썩지 않고 통풍에 의해 잘 건조되도록 하는 방법이다.
건조 장소로 시골의 큰 창고를 빌릴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지만 집 짓는 이들은 대개 현장에서 목재를 보관하고 건조하기 원하기 때문에 쉽지 않을 것 같다.
주변에 한옥을 짓는 경우를 보면 이 건조 과정을 무시한 결과 두고두고 후회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옛날 사람들은 자기 집을 짓기 전 최소한 3년 전부터 목재를 준비해서 건조시켰다고 한다. 돈도 돈이지만 미리 건조된 재목으로 집을 짓겠다는 철저한 준비 과정인 것이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건축주는 한옥을 짓겠다는 열망 속에서 건조 과정을 등한시한다. 건축업자는 건축주가 제시한 기한 내에 지어야 하기 때문에 건조과정은 생각지도 못하고, 그 밑에서 일하는 우리 같은 목수도 주어진 목재를 치목해서 집을 세워주면 할 일이 끝난다.
우리 집 목재는 6개월 정도의 건조기를 거쳤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 잘 했던 것 같다. 5월에 기와를 이고 나니까 바로 장마가 시작되자 잠시 청태가 생기더니 가을이 되니 이내 멈추었기 때문이다. 만일 건조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 집도 페인트로 도색해야 했을 것이다. 흔히 간과하기 쉬운 목재 건조의 중요성은 거듭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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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약 50년 이상 건조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그래서 한옥을 제대로 지으려는 이들은 고재(해체된 한옥의 목재)를 구입해서 짓는 경우도 있다.《 아름지기의 한옥 이야기》라는 책에서 소개한 서울 안국동의 아름지기사옥도 그런 예인데 한옥으로 집 짓기를 원하는 이는 한 번 찾아가서 눈으로 보거나 아니면 책이라도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저자는 한옥에 대해서 넓은 식견과 예리한 감각으로 집을 지었다.
다음부터는 본격적인 나무를 다듬는 이야기에 들어가겠다.

<다음 호에 계속.>

 

 




- 황인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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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재 이야기 Ⅶ] 집 짓기의 첫 단추 잘 끼우기 목재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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