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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다듬는 것을 치목治木이라 한다. 2003년 하반기 내내 집 짓기 준비를 마치고 2004년 새해를 맞이해 치목을 하기로 결정하자 마음이 바빠졌다. 한데 그 많은 재목을 혼자 힘으로 치목하려고 하니 막막했다. 목재의 대부분은 혼자 치목할 수 있는 것들이긴 해도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게 문제다. 비용과 여러 가지 문제를 감안해 우선 혼자 너끈히 할 수 있는 가벼운 것들부터 혼자 치목하고 집 짜기 직전에 목수들을 불러 마무리 짓고 집을 올릴 계획을 세웠다. 이 계획대로라면 벌써 기둥이 세워져야 하건만 홀로 바심질에 몸이 고된 나날의 연속이었다.



총7회에 걸쳐 연재한 '하늘재 이야기'는 지금부터 이야기하려는 나무다듬기(치목)의 전초과정에 불과했다.
법정스님은 수필집에서 '스님이 되지 않았다면 목수가 되었을 것'이라고 말했고, 어느 선승의 글에서는 '목수는 나무를 다스리지만 부처님의 제자는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라고 가르치기도 한다. 또 예수 자신도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 목수였던 아버지 요셉을 따라서 목수일을 하기도 했다.
요즘 목수 하면 막장인생으로 취급받는다. 그러나 내 자신은 목수는 '종합예술가'라는 자부심을 잊지 않으려고 거듭 다짐한다. 누가 뭐라 해도 목수는 인류 역사상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직업이다.
나무 다듬는 것은 나무를 다스리는 일이라고 해서 한자로는 치목治木이다. 2003년 하반기 내내 집 짓기 준비를 마치고 2004년 새해를 맞이해 치목을 하기로 결정하자 마음이 바빠졌다. 한데 거의 1만 8000재(사이)나 되는 많은 재목을 혼자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여기서 아주 복잡한 손익 계산을 수없이 반복하면서 밤잠을 못 자고 고민해야 했다. 여러 가지로 아무리 방안을 짜 보아도 목수들을 불러서 함께 일한다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우리 가족은 함양 전셋집에서 살고 있으면서 집을 짓게 되었는데 거창 방면 덕유산자락까지는 자동차로 한 시간 거리였다. 가족과 함께 살기에 매일 아침저녁으로 출퇴근하면서 일을 해도 피곤한지도 모르겠고 그게 몸과 마음이 가장 편한 길이었다.


목수양반 하며 대접받던 시절이 그립구나

하지만 목수들이 오면 먹고 자는 문제를 해결할 길을 찾을 수가 없었다. 내 집을 짓는 데 최소 비용을 들이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지사! 몇 달을 위해 방을 얻어야 하고 식사를 제공해야 하는데, 그 비용이 생각보다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망설여졌다. 방을 얻고 음식을 사먹으면 약 5개월 안에 집 짓기를 마친다고 해도 목수 5명이 먹고자는 데 최소한 1,500만 원 이상 소요된다. 그렇다고 현장에 임시숙소로 컨테이너를 구입하고 식사를 직접 해 먹을 수도 없고… 참 막막한 일이었다. 흔히 컨테이너를 임시숙소로 사용하는데 내가 컨테이너에 대한 안 좋은 추억이 있어 그건 못할 짓이었다.
경기도 광릉의 봉선사 요사체를 짓는 현장에서였다. 우리 목수들은 컨테이너가 숙소였다. 전기 패널 바닥난방이 있다고 하지만 몸이 파김치가 되도록 일하고 나서 충분히 쉬어야 되는데도 세 명이 자기도 힘든 비좁은 공간에 다섯 명이 자도록 하니 참 죽을 노릇이었다. 게다가 그 좁은 공간에서 담배까지 피워대니 그 냄새조차 맡기 싫은 나는 고문 중의 고문이었고, 마땅히 씻을 곳이 없어서 음식점 화장실에서 대충 닦으며 생활하니 아무리 문화재급 절 공사를 한다지만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목수는 일종의 예술가라는 신념을 갖고 있던 나로서는 큰 충격을 받았다.
왜 우리 목수들이 이런 식으로 대접을 받아야 하는가? 그 이유는 우리 전통 한옥분야에 있어 커다란 숙제이고 한계일 수 있다. 요즘도 내 직업이 목수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데, 그것은 그동안 목수들이 저지른 관행에도 원인이 있다. 정성과 실력을 다해 목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자재에서 이윤을 남길까, 어떻게 하면 일은 대충하면서 일당은 많이 받을까 하는 습성이 만연한 결과인 것이다. 전통적으로 수많은 일꾼 중에 목수에게만은 '목수쟁이'라 부르지 않고 '목수양반'이라며 대접 받았던 과거를 돌이켜보면 더욱 안타깝다.



개판 · 서까래 · 마루판재 · 귀틀… 홀로 치목하기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목수들을 데려다 컨테이너에 재우면서 몇 번 먹으면 질리고 마는 매식을 할 수도 없었다. 내가 받았던 푸대접을 되풀이할 수도 없고 예상보다 많은 비용을 들여서 숙비를 해결 할 능력도 없었다. 결국 치목을 혼자 할 수 있는 것들을 먼저 시작하고 집 짜기 전 며칠 동안만 목수들을 부를 계획을 세웠다. 고민하고 고민하는 날들이 집 짓기에서 수없이 반복됐다. 이렇듯 손수 집 짓기는 몸은 고달프지만 마음만은 편하다는 게 커다란 장점이다.
사실 시간이 많이 걸려서 그렇지 목재의 대부분은 혼자 치목할 수 있는 것들이다. 특히 지붕 '개판'이나 '서까래', ' 마루판재', ' 귀틀(마루판재 밑에 받치는 부재)'등 가벼운 것들은 물론 기둥도 우마(치목하는데 사용하는 받침대)에 올려놓기만 하면 혼자 치목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심지어 우리 집 대들보는 1자 4치에 9치 굵기에 22자 길이였는데도 데꼬라는 긴 쇠꼬챙이 하나 가지고 혼자 모두 치목할 수 있었다(1치=약 3㎝, 1자=약 30㎝).
그럼 요새말로 '그까이 꺼! 미리 1년 전부터 혼자서 다 치목해 놓으면 되지 않느냐'고 말 잘하는 사람은 한마디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목재는 치목해 놓으면 그 때부터 급속하게 건조되면서 비틀려 버린다. 그러면 나중에 그 목재는 써먹지 못하게 된다.
이 때문에 나도 1월 말까지 혼자서 서까래까지 치목을 끝내고 2월 중순 경부터 알고 지내던 목수들을 부를 수밖에 없었다. 우리 집에는 대청마루와 복도 그리고 세 개의 다락에 사용될 판재들과 귀틀을 치목하는데 거의 1월 한 달이 걸렸다. 워낙 개수가 많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 다음에는 노출식으로 계획한 집의 내부구조 때문에 개판의 한쪽 면을 매끄럽게 대패질하고 나서 서까래 치목에 들어갔다. 서까래 다듬기는 대개 전체 작업 중 가장 먼저 하게 되는 치목 과정인데 내가 혼자 일해 놓은 것들은 충분히 건조시키면 시킬수록 좋은 부재들이었다. 4월 중순에 집 짜기가 된다면 그 때까지 6개월 이상 아주 잘 건조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요즘 대청마루나 다락마루를 잘 살펴보면 건조가 덜 되어서 시공할 때 그토록 정성스럽게 머리카락 하나 들어가지 않도록 했는데도 1㎜ 정도 사이가 벌어진 것이 보인다. 나무는 50년 동안 건조된다고도 한다. 특히 겨울 건기에는 더 벌어지고 여름 우기에는 벌어진 틈이 다 메워지는 것이 원목의 특성이다.



다섯 목수를 돌려보낸 사연

2월 중순 다섯 명의 목수가 오자 큰 목재들의 치목이 시작됐다. 우선 대들보와 기둥, 창방 등 큰 부재들을 치목하도록 지시했다. 여러 사람이 오자 마음이 분주해졌다.
점심은 20리 이상 떨어진 면소재지 식당에서 시켜 먹고 아침저녁은 어린 아들을 데리고 함양읍 내에 있는 장터에서 직접 장을 봐다가 아내가 정성스럽게 마련한 식사를 대접했다. 자기 집에서 편안하게 잠자리를 제공해주고 빨래해주고 가정주부가 직접 식사제공을 하고… 내가 봐도 이런 공사현장은 거의 볼 수 없었다. 현장과 숙소의 거리 때문에 아침 8시 30분 되어서 일을 시작하고 겨울이니 저녁 5시면 일을 마쳤다.
보통 한옥 짓는 현장은 아침 7시에 시작해서 저녁 6시에 끝난다. 그러나 내 집을 짓는데 조금 손해 본들 어떠랴 하는 편안한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함께 일하던 목수들의 마음은 그렇지 않았던 것인가? 함께 치목한 지 5일 만에 모두 돌려 보내는 사건이 생긴 것이다.
현장감독이자 건축주로 치목시간에는 술을 먹지 못하도록 했고 지시대로 치목할 것을 몇 번이고 주문했다. 하지만 동료의 지시를 가볍게 여겼는지 술을 먹는 것은 물론 일을 깔끔하게 마무리하지 않는 것이었다.
전동공구를 사용하는 현장에서는 자칫 크게 다칠 수 있기에 절대로 술을 먹어서도 안 되고 게다가 먹선을 살리고 죽이는 것을 생명처럼 여겨야 하는 목수 일에는 마음이 흐트러지면 안 된다. 다른 현장에서는 그러지 않던 행동을 친한 동료 목수의 집을 짓는 현장이라고 대충하려는 태도를 도저히 묵과할 수 없었다.
이런 상태에서는 더 이상 함께 치목을 진행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집을 빨리 짓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생에 단 한 번뿐인 집에 들어갈 부재들이 잘못된 채로 지어진다면 늦춰지더라도 차라리 혼자 지어야겠다고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남의 집을 지으러 다닐 때는 참 쉬워 보였는데 내 집을 지으려니 집 짓는 일이 참 어렵다는 것을 다시 한번 절실히 깨달았다.
결국 3월 중순에 본격적으로 시작하려던 집 짜기 계획을 포기하고 2월 중순부터 혼자 모든 부재들을 치목하기로 오지게 마음먹었다. 목수들을 돌려보낸 다음 약 한달 보름 이상 혼자서 많은 부재들을 이리저리 옮기면서 치목하는 과정은 노동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구도의 길'이었다.
매일 두 시간씩 오고가는 먼 길이었던 함양의 셋집이 만기가 되면 새로 지은 우리집에서 살 수 있다는 희망도 물거품이 되자 또 다시 현장 바로 아래 동네에 월세 집을 얻어서 이사도 하였다. 5월 말이면 새 집에서 살게 해주겠다고 약속한 가족에게는 정말 미안한 일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 많은 부재들을 언제나 치목할 수 있을지 까마득하던 것이 4월 중순이 되자 마무리돼 가고 있었다. 그 때까지 고맙게도 날씨가 연일 화창해서 쉬지 않고 일했다. 예정된 집 세우기 일정보다 거의 한 달 이상 늦춰지자 마음이 초조했다. ' 여름 장마가 시작되기 전 그러니까 6월이 되기 전에 지붕까지 씌워야 하는데'하면서.



한옥 치목의 기본… 먹 그은 중심에서 출발

한옥의 치목 기술에 있어 기본적인 사항을 언급해 보겠다. 한옥의 치목 작업은 중심선에서 출발한다. 서양식 목조주택이나 소목일은 부재의 끝선에서 출발하지만 한옥은 십방 먹을 그은 중심에서 출발한다. 이것만 터득하면 한옥을 스스로 지을 수 있다. 그래서 한옥에서는 나무가 휘어졌든 굵기가 다르든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물론 소소한 신경을 쓰는 부분이 있지만 손수 집을 지으려면 이 원리를 연구하고 숙달되면 누구나 가능하다.
그럼 한옥을 직접 짓고 싶은 사람들은 어떻게 먹놓는 법과 연장 사용법을 배울 수 있을까? 한옥 현장에 가서 일하면서 배울 수 있을까? 그건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어떤 집이건 먹놓는 일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초보자에게 그 일을 맡길 수 없는 노릇이다. 나무는 한 번 자르면 그만이다. 9자 길이 기둥을 잘못해서 7자로 잘라 놓으면 이미 쏟아진 물이 된 것이다.
아니면 유명한 목수를 스승으로 삼고 따라다니면 가능할까? 그것도 시간이 많이 걸린다. 도제제도처럼 제자에게 중요한 것을 가르치려면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나 가능하고 현장에서 스승도 돈벌이를 해야 하는 입장이기에 상세하게 설명할 겨를조차 없으니 기대해서도 안 된다.
그런데 다행인 것은 요즘 한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한옥을 가르치는 학교가 많이 생겼다. 우선 서울 중심부에 한옥 문화원이 있고, 경기도 의정부엔가 어디에도 유료로 가르쳐 주는 학교가 있다. 경북 청도에도 한옥 학교가 있고, 화천에는 군에서 지원받아 거의 무료로 가르쳐주는 한옥 학교가 성황리에 운영되고 있다 한다. 울산에도 새로 생겼고 전남 영암에도 생겼다고 한다. 이 밖에도 노동부 지원으로 실업구제금을 받는 몇몇 한옥학교도 있다. 그러나 학생이 수십 명이 넘으면 교육적인 효과가 많이 떨어지기도 한다.
최근에 강원도 한옥 학교에서 지도교수를 해보았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한옥을 열심히 배우겠다던 초심이 많이 흐려지는 것을 보았다. 연령층이 다양한 데다 인원이 많아 일대 일 교육이 안 된 탓도 있는 듯한데 소수정예로 한옥 교실을 운영한다면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런 한옥학교에서는 끌과 대패를 가는 기초부터 시작해서 먹을 놓고 직접 집을 짓는 최고급 과정까지 모두 배울 수 있는데 정말 열심히 배우는 사람들은 보통 현장에서 10년 이상 배운 사람들보다 훨씬 빨리 집을 지을 수 있는 대목수로 태어난다. 그러니 혼자집을 짓는 과정 중에 가장 중요한 치목 기술은 누구나 배우면 가능한 셈이다.


<다음 호에 계속>









황인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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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재 이야기 Ⅷ] 부재 다듬기 治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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