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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그 집 주인을 닮을 뿐 아니라 집에서 사는 사람은 그 집을 닮아간다. 특히 직접 집을 짓는 경우엔 두 말할 것도 없다. 집 지을 당시의 경제적 상황이나 집 주인의 식견에 따라서 집 모양이 천양지차로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지은 집은 나를 닮았음에 틀림없다. 팔작지붕의 멋들어진 지붕선이 없다는 건 내 신분이 평범한 사람이라는 징표일 것이다. 그저 단아하고 소박한 우리 집 지붕의 모양은 사람을 편안하게 해 준다. 집이 사람을 살려야지 사람이 집의 위세에 눌리면 안 된다.                                                                                                                                 글 황인찬


 

 

 

 

 

 

 

 

 

지붕의 역할은 비 가림과 난방이다. 그런데 전통 한옥에서 추구하는 하늘을 나는 듯한 지붕선은 이런 기능보다는 외형적인 멋에 치중한 느낌으로 엄청난 건축비가 지붕공사에 들어간다. 흙을 얹고 한식 기와를 사용해서 만든 팔작지붕 형태는 공사비가 3.3㎡(평)당 60만 원 이상 소요된다. 우리 집 건축면적이 117.3㎡(35.5평)으로 지붕 면적이 211.6㎡(64.0평)니까 기와를 잇는 공사비만 4,000만 원이상 들여야 집을 지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 비용을 1,000만 원 이하로 줄이되 똑같은 오지기와(흙을 구워 만든 기와)를 사용하고 싶었다. 우연한 기회에 건축박람회에 갔더니'고령기와'에서 출시한 평판기와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이거다! 뒤도돌아보지 않고 평판기와를 사용해 지붕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값은 4분의 1 정도지만 전통 한식 기와에비해서 완벽한 방수를 자랑하고 지붕의 무게도 엄청나게 줄일 수 있다는 장점에 매력을 느꼈다.

 

 

 

 

 

그림의 떡 팔작지붕

 


상량식을 끝으로 집 짓기의 고비가 넘어가자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집 짜기까지 마음을 졸이면서 차질 없이 일을 진행해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해방된 것이다. 이제부터는 이미 준비된 서까래를 걸어 나가기만 하면 된다고 쉽게 생각했다. 한데 상량식은 집 짓기의 내리막길이 아니라 오르막길이라는 것을 미처 몰랐다고 고백하고 싶다. 그야말로 남은 과정은'산 넘어 산'이라는 말이 어울릴까!
서까래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14자(4m 20㎝) × 4치(12㎝) × 2치 5푼(7.5㎝) 각재를 사용했다. 서양식 지붕 형태를 지향한 퓨전 한옥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인데 멋은 좀 없을지 몰라도 각재 서까래는 보통 둥근 서까래 치목 과정보다 100분의 1로 줄일 수 있고 비용도 20분의 1로 줄일 수 있다. 더 나아가 살림집으로서의 편리하고 단아
한 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우리 집에 구경 오는 사람들은 각재 서까래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곤 하는데 나는 지금도 각재 서까래를 사용한 것에 확고한 신념이 있다. 언젠가 우리 한옥도 서민들에게 각광받으려면 기존의 틀을 깨지 않으면 안 되기에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리라 본다.

지붕 형태는 맞배지붕이다. 그러면 왜 전통 한옥의 백미라는 팔작으로 하지 않고 맞배 형태로 지었는가? 그 이유에 대해서도 나는 확고한 신념이 있다. 흔히 전통 한옥은 지붕에서 그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다고 말한다. 기둥과 도리 그리고 보로 연결된 사각구조가 '땅'을 표현한다면 멋지게 휘어진 지붕 선은'하늘'즉 우주宇宙를 나타낸다.
처마선이 안으로 휘어진 것을 안허리곡이라 하고 끝이 위로 올라가고 가운데가 밑으로 휘어진 것을 앙곡이라 부르는데 용마루 부분까지 이렇게 절묘하게 휘어지면서 지붕은 그 웅장한 자태를 드러낸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런 팔작지붕 형태만이 진정한 전통 한옥을 대변한다고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팔작지붕 모양을 한 한옥은 예전에도 보통 일반 서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는 사실을 아는가. 그 이유는 단 하나, 지붕 공사에 엄청난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가는 한옥이라 해도 이런 곡선을 볼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무시하고 전통 한옥 하면 절이나 재실 혹은 궁궐이나 종갓집에서나 볼 수 있는 팔작지붕만 고집하고 그게 아니면 한옥이 아닌 것처럼 무시하는 작금의 세태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물론 팔작지붕은 멋있다.

각재 서까래를 걸고 있는 모습.

 

경제적이고 실용적인 맞배지붕으로

 


비교적 간단한 맞배지붕 형태를 택한 이유는 실용적인 면 때문이다. 어렸을 때 살았던 시골 한옥집의 천장은 모두 벽지로 발라져 있었다. 밤만 되면 그곳은 쥐들이 대운동회를 열곤 해서 빗자루나 베개를 천장에 던져 잠잠하게 해야 잠을 잘 수 있었다. 다락방이 있는 곳은 곶감이나 꿀단지를 넣어두는 수납공간으로 혹은 여름에 공부하거나 낮잠 자는 훌륭한 공간이었는데 그에 비해 천장으로 도배를 해버린 곳은 쥐들의 아지트가 되기 십상이다. 그 때문에 우리 집의 모든 천장을 다락으로 만들 생각이었다. 그러자면 맞배지붕으로 해야 모든 방에 다락 공간이 확보될 수 있다. 팔작지붕은 구조상 다락을 넣는 곳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다락은 조금만 잘 꾸미면 더할 나위 없는 수납공간이자 생활공간이 되고도 남는다. 다락은 완충역할을 한다. 지붕과 방 사이에서 열기를 차단하면서 여름에는 방을 시원하게 하고 겨울에는 따뜻하게 해 준다.

 

 

           맞배지붕 시공 중인 모습과 완공 후의 모습.

 

 

맞배지붕은 경제적이다. 팔작지붕에 들어가는 비용보다 거의 30%는 절약할 수 있다. 또 집 짓기 전 설계 시에 염두에 두었던 기와를 사용하려면 맞배지붕 형태에만 가능했다. '고령기와'에서 출시한 평판 기와를 설치할 계획이었는데 비용은 보통 한식 기와의 5분의 1밖에 안 되면서 내구성이나 편리함에서 우수하다.
사찰 등지에서 사용하는 한식기와는 3.3㎡(평)당 50만 원이 넘어간다. 그러면 우리 집 지붕 면적이 211.6㎡(64.0평)이니까 지붕에 너무 많은 돈이 들어갈 수 있다. 또 생태주택을 지향하면서 시멘트기와를 사용하기는 싫었다.
 

 

흙 얹는 대신 서양식 목조주택 시공법으로

  

  • ㅣ개판걸기ㅣ서까래 걸기가 끝나고 나면 바로 개판작업이 이어진다. 이 개판 작업을 위해 그 해 겨울 한달 이상 정성들여 준비했다. 견적을 뽑을 때 두께 7푼(21㎜) × 폭 5치(15㎝) × 길이 9자(270㎝) 판재를 주문했다. 이 판재 중에 집 안에서 보일 한 면만 곱게 대패질 했다. 그리고 홈대패로 쪽마루의 이음처럼 암수홈을 팠다. 나중에 지붕에 개판을 덮을 때 틈이 벌어지지 않도록.
    사실 이 작업은 목공기계로 해야 하지만 값비싼 기계를 살 수 없으니 그냥 전동대패와 홈대패 그리고 손 대패로 하나하나 먹을 쳐서 맞추어 놓았던 것이다. 기존의 전통 한옥에서 개판은 서까래를 따라서 덮는다.
    서까래가 휘어져 있기 때문에 서까래 간격에 맞는 넓은 판재를 사용했던 것이다. 이것도 최근에 제재기술이 발달한 다음에 생긴 것이고 그 이전에는 산자를 엮어서 위에는 흙을 얹고 아래에도 흙을 발랐던 공법이었다. 옛날 분들은 나중에 밑에 발랐던 흙이 세월이 흐르면서 떨어지면 그것을 보수하느라 많은 돈을 들여야 했던 기억도 날 것이다. 준비한 개판은 서까래와 직각으로 만나 덮게 돼 있었다. 각재 서까래를 사용했으니 평고대를 먼저 걸고 난 후 처마 끝부터 시작해서 홈에 맞추어 덮어 나가니 밑에서 보았을 때 자연스럽게 인테리어 효과를 낼 수 있고 기능 면에서도 최상의 공법이라고 자부한다. 서까래를 전부 하나로 엮어주니 지붕이 얼마나 튼튼하겠는가. 예전에 초등학교 교실 바닥 마루판을 기억하면 된다. 그 마루판이 지붕 위로 올라간 것이다.
    개판을 덮을 때 목수의 손에는 물집이 잡힐 정도로 못질을 많이 한다. 요새는 타정총이 보급됐기에 훨씬 수고를 덜 수 있다. 못도 녹슬지 않는 알루미늄 재질로 돼 있어 이미 서양식 목조주택에서는 많이 사용하고 있으니 우리 한옥에서도 더 이상 녹스는 기존의 철 못을 사용해서는 안 될 것 같다. 물론 못 값이 비싸기는 하지만 타정 총을 사용하니 인건비를 훨씬 줄일 수 있어 경제적이다.

 

  • ㅣ인슐레이션ㅣ지붕에 흙을 얹지 않기로 했다. 손수 일할 수 없을 뿐더러 비실용적이라고 판단됐기 때문이다. 한옥 지붕에 흙을 얹는 이유는 예전에 특별한 단열재를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실제로 흙을 두껍게 올리면 집이 시원한 것은 물론이다.또 흙과 기와를 올려야 집이 잠을 잔다고 한다. 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짜 맞춘 부재들이 지붕 무게 때문에 모두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게 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여름철 집중호우(게릴라성)를 겪으면서 비가 새는 한옥을 흔히 만난다. 시간당 300㎜가 오는 상황에서 기와가 샐 경우 흙을 얹게 되면 참으로 난감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각재 서까래 위에 개판을 가로로 대고(한옥의 개판은 서까래와 평행으로 설치) 그 위에 서양식 목조주택에서 사용하는 인슐레이션(보온재)을 올렸다. 이보온재를 선택하는 데 당시 상당히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스티로폼을 사용하자니 환경 호르몬이 발생된다고 해서 서양식 목조주택에서 검증받은 그라스울(유리섬유) 인슐레이션을 사용하기로 했다. 물론 인슐레이션 사이에는 각재를 걸쳐 놓아 다음에 이어질 합판에 못을 박을 수 있게 했다.
    이런 공법은 동료 목수의 집에서 서양식 목조주택을 지으면서 배운 것이다. 비용도 저렴하지만 매우 합리적인 공법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흙을 덮는 공법에 비하면 훨씬 간편하고 저렴하다. 문제는 생태적인 주택을 지향한다면서 왜 이런 공법을 사용했느냐 질문을 받을 때다. 나는 되묻고 싶다. 그럼 반드시 지붕에는 무거운 흙을 두껍게 올려야만 하는가? 이 부분은 손수 집을 지을 분들이 알아서 판단할 일이라 생각된다.

 

  • ㅣO.S.B.합판ㅣ보온재를 덮은 다음 이어지는 공사는 합판을 덮는 일이다. 방수시트를 깔기 위해서 필수적이다. 합판 역시 서양식 주택에서 사용되는 O.S.B.합판을 구입했다. 두께 11㎜인 이 합판은 기존의 합판보다 값은 저렴하지만 기능은 훌륭해서 애용된다. 기존의 합판 4×8 사이즈가 2만 원인데 비해서 절반 값이면 구할 수 있다. O.S.B.합판을 덮는 것은 개판 위에 미리 대어둔 각재에 모서리가 절반씩 올 수 있도록 해야 튼튼하기 때문이다. 이 때도 타정 총을 사용하면 훨씬 편리하다. 대개는 15㎝ 간격에 못을 하나씩 박아야 한다.

 

  • ㅣ방수시트ㅣ합판 공사가 끝나고 바로 방수시트를 깔아 나갔다. 방수시트는 그 자체로 완벽한 방수를 자랑한다. 기와가 샐 경우 흙은 전혀 방수 기능을 못하는 대신 방수시트는 2차적으로 완벽한 방수를 해준다. 여름을 지나면서 억수 같은 장대비가 올 때 나는 다시 한 번 우리 집 지붕 공정에 대해서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아내와 자화자찬을 하곤 한다.
    방수시트는 한 롤당 2만 원 정도 한다. 방수시트는 기존의 루핑이라는 제품을 보완 개량한 것인데 그 기능이 아주 좋아서 완벽한 방수를 자랑하고 햇볕에 노출되지만 않으면 반영구적인 것이 큰 장점이다. 날씨가 좋은 날 처마 끝부터 겹쳐서 용마루 쪽으로 깔아 올라가야 하는데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하면서 밑에 부착된 비닐만 벗겨내면 자연스럽게 합판에 달라붙는다.

 

  • ㅣ평판형오지기와ㅣ합판 공사가 끝나자 기와 이을 준비에 들어갔다. '고령기와'에 평판기와를 주문할 때 지붕의 모양과 면적(평수)만 알려주면 알아서 견적을 내 준다. 15톤 트레일러로 주문을 하니 기와 값만 550만 원 정도였고 운임비와 지붕 공사할 때 쓴 인부들의 인건비까지 합해서 750만 원 정도 소요됐다. 이것도 좀 많이 들어간것인데 용마루 부속 기와는 우리 집에 안 어울려 용마루 부분에만 한식 기와를 다섯단 올리고 망와를 설치해서 100만 원 정도 더 소요됐다. 평판기와를 시공업체에게 맡길 경우 13만 원 정도 소요된다.
    평판기와는 그 강도가 매우 단단하고 시공하기에 아주 편리하다. 기와 간격에 맞추어 미리 한 치(3㎝) 각재를 깔아놓은 다음 기와를 처마부터 얹어 나가면 되는데 이 기와에는 홈이 하나하나 파여 있어 자연스럽게 맞게 된다. 귀기와 용마루기와 등을 이을 때는 실리콘으로 접착시킨다.

 

 

이렇게 맞배지붕 형태를 통해서 실용적이고 비용 면에서 대대적인 절약을 할 수 있었는데도 지금 우리 집처럼 누가 지어 달라고 하면 3.3㎡(평)당 600만 원 정도 받아야 된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그만큼 우리 한옥을 짓는 비용은 너무 많이 든다. 결국 이 비용 때문에 전국의 전원주택이 모두 서양식 일색으로 지어지는 것이다.
한옥 하면 불편하면서도 비싸다는 선입관을 대다수 사람들의 뇌리에 자리 잡고 있는 이상 한옥이 부흥하려면 새로운 패러다임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나는 한옥학교에서 가르칠 때도 끊임없이 역설한다. 전통 한옥 공법은 철저히 배우되 한옥 살림집으로 다시 인기를 끌지 못하면 먹고살기 힘들 거라고…….

 


*

 


우리 집 지붕 모양은 맞배지붕이지만 서양식 지붕처럼 보이기도 한다. 한때 지붕이 너무 단조로워서 명색이 전통 한옥 공법으로 짜 맞추어진 집에 안 어울리는 것 같아 후회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오지 황토기와의 밝은 톤으로 이어진 우리 집 지붕은 비가 오는 우중충한 날에도 한여름 녹색이 우거진 계절에도 그 색조가 자연과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는 것을 보고 점점 마음에 들었다. 눈 덮인 황토 한옥에 황토색 오지기와의 모습은 차라리 하나의 수채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글을 쓰는 오늘도 지나다니던 길손들이 차를 멈추고"집이 하도 예뻐서 구경 왔다"고 해서 한옥학교 교육을 잠시 멈추고 집 구경을 시켜주었다는, 자랑 아닌 자랑을 늘어놓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을 어찌하랴!田                                                       <다음 호에 계속>

 

 

 

 

  

 

글쓴이 황인찬 님은 네티즌에게'하늘재'로 더 유명합니다.

인터넷 블로그 '하늘재 (http://kr.blog.yahoo.com/hanuljae)'를 통해

집 짓는 방법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대학에서 농학과 철학을 전공하고

철학박사과정까지 밟으며

학문에 경지를 넓혀온 그는

어느 순간 한옥 목수가 되기로 결심했고

한국전통직업학교 교수로 강원도에서

후배 양성에도 힘쓰고 있습니다.

 현재 그가 거주하는 덕유산자락 개량 한옥은

3년간 공들여 손수 지은 집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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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재 이야기 X _ 지붕공사, 한옥도 변해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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