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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지으며 고민한 부분은 9평이나 되는 넓은 거실 대청마루였다. 처음부터 이 공간에 보일러가 아닌 나무 마루만 깔기로 했다. 마루는 여름나기 공간이다. 추운 북방에선 구들 문화가, 더운 남방에선 마루 문화가 발달했다. 이렇듯 구들과 마루라는 이질적인 두 문화가 한옥에서 만나 절묘한 조화를 이뤄냈다. 어릴 적 여름날 열 명이 넘는 대식구가 시원한 마루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밥을 먹던 풍경이 그립다. 뜨거운 한낮엔 잠시 낮잠을 자던 공간도 마루였다. 지금 안타깝게도 이 마루가 사라지고 있다.

황인찬




한옥의 특성은'기氣의 순환'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기에 방 천장을 반자(지붕 밑이나 위층 바닥 밑을 편평하게 하여 치장한 방의 천장)로 처리해 낮춘 반면 대청마루엔 천장을 아예 설치하지 않았다. 따스한 방에서 대청마루로 나오면 시원한 공기가 몸과 마음을 상쾌하게 만든다. 온도차가 다르고 기의 순환이 이뤄지며 피부에 와 닿는 느낌도 다르다.
현대 주거의 상징인 아파트는 어떤가. 각 실마다 천장 높이가 일정하고 모든 바닥에 보일러 선을 깔았다. 공기가 항상 훈훈한 건지 어떤 건지는 몰라도 답답해 미칠 지경이다. 나같이 시골 한옥에서만 살던 사람은 아파트에서 하룻밤만 지내면 빨리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그렇기에 편리하다는 이유로 시골집 거실에 아파트 거실 문화를 끌어들일지 말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거실 문화를 되돌아볼 시점이 아닌가도 생각했다.


여름나기 공간 대청마루에 난방을 없애
난방비도 그렇지만 1년에 한두 번 사용할 거실에 보일러를 깔고 시멘트로 마감하면 잠시는 편리하겠지만, 사용하지 않을 땐 그 냉기를 어떻게 견딜 것인가. 자칫 애물단지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현관과 복도를 합치면 11평인 넓은 공간에 기름보일러 난방을 설치했다간 웬만한 재벌이 아니곤 이곳 생활을 조만간 접어야 할 처지로 전락하기 쉬웠다. 그것을 막고자 과감히 난방을 없애고 나무 마루만 설치하기로 했다.
마루 한쪽 구석엔 나무를 때는 무쇠 난로를 놓았다. 한겨울엔 춥기에 거실에서 지낼 순 없지만 냉기를 막기 위해서다. 약 150만 원 하는 무쇠 난로는 전북 익산에 가서 직접 구입해 설치했는데 아주 만족스럽다. 사용하지 않을 때에도 보기 흉하지 않게 모양도 제법 좋은 것으로 선택했더니 5년이 지난 지금도 인테리어 효과가 훌륭하다. 연통이나 부속품들도 난로 값만큼 들었지만, 자주 교체하는 불편함을 방지하고자 반영구적인 스테인리스 재질로 설치했다.


우물마루 대신 하자 적은 장마루 깔기
나무 마루를 깔려면 먼저 판재와 귀틀이 필요하다. 나는 목재 견적낼 때 집 가구架構와 똑같은 홍송으로 주문해 다듬어 놓았다. 한옥에선 일반적으로 우물마루를 까는데, 하자가 많아 나중에 수리해야 한다.
아무리 빈틈 없이 짜 맞춰도 나무가 마르면서 수축해 틈새가 벌어지고 가운데 끼운 판재가 삐걱거리며 흔들린다. 그래서 전통 우물마루 대신 장마루 공법을 사용했다. 옛날 초등학교 교실 바닥 마루가 바로 장마루 공법으로 깐 것이다.
장마루는 긴 판재 양쪽에 암수 홈이 파여, 그것을 끼워 깔면 우물마루보다 하자가 덜 생긴다. 마루 깔기에 필요한 부재가 귀틀이다. 마루를 튼튼하게 깔려면 마루 판재 못지 않게 그것을 밑에서 바치는 귀틀을 잘 짜야 한다. 우리 집 마루엔 길이 270㎝(9자)에 두께 25㎝(8치)짜리 미송 원목을 한쪽 부분만 다듬어 우물 격〔井〕자로 짜 맞췄다. 귀틀 밑엔 짧은 기둥인 동바리를 세우고…….
여름 한 달 나무 판재 홈을 끼우고 숨은 못치기를 하며 마루를 깔았다. 마루 밑이 맨흙이라 혹시 냉기가 올라오거나 벌레가 들어갈까 염려스러워 해인사 대경각에서 팔만대장경을 보관할 때 사용한 공법을 이용했다. 우선 숯을 전체 마루바닥에 골고루 깔고 돌소금을 서너 가마니 뿌렸다. 벌레 침입을 막고자 함이다. 물론 마루바닥과 흙바닥 간격이 50㎝ 이상이니 통풍을 위해 숨구멍을 다섯 군데 설치하고 뱀이나 쥐 같은 동물이 들어가지 못하게 망을 설치했다. 소금을 깔고 냉기가 올라오지 못하게 옛날 기왓장을 얻어다 전부 깔았다. 어떤 이들은 도자기를 깨서 깔기도 한다.


우리 집 피서지, 대청마루
여름이면 늘 그렇지만 대청마루를 깔 땐 정말 더워서 죽을 뻔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 더위에 일을 했을까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우리 집이 해발 550m 고지대고 바로 뒤가 덕유산이라 시원한 곳이지만, 마루 귀틀을 다듬을 땐 더위와 며칠 동안 싸웠다. 겨울에 모두 치목해 놓았으면 쉽게 마칠 일을… 일의 단계상 어쩔 수 없었다. 요즘은 마루에 있으면 전혀 덥지 않은데 그 땐 왜 그렇게 더웠는지…….
장마철 지붕 밑에서 대청마루를 깔고 나니 집을 다 지은 기분이 들었다. 그 후 입주해 살면서 해마다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에도 대청마루에서 지내며 자화자찬을 많이 했다. 4월부터 10월까지 마루에 앉아 있으면 얼마나 시원한지 모른다. 오랜 기간 장마에도 대청마루는 항상 보송보송하고 끈적거리는 법이 없다. 아무리 무더운 날에도 선풍기 없이 시원하게 지낸다.
11월 중순 이후엔 대청마루에 머물려면 나무를 때야 하고 한겨울엔 사용하기 어렵지만, 한여름 공간으로 그 장점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한옥에선 그래야 사람이 활기차게 움직일 수 있다. 우리 집에 난방이 없는 곳은 대청마루와 다용도실이다. 난방이 없는 대청마루는 시원한 기운을 제공한다. 안방에서 잠을 자고 일어나 대청으로 나오면 잠이 절로 깬다. 이것이 한옥의 맛과 멋이 아닐까?
다음에는'꿈속의 공간 다락방'에 대해서 이야기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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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재 이야기 XI ] 대청마루가 있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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