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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한옥에 사는 사람들이 이렇다 할 의료기관이 없던 시절, 건강하게 산 것은 아궁이와 굴뚝이 하루에도 몇 번씩 살균해 준 덕분이다. 그런가 하면 소나무를 때면, 그 그을음이 가마솥이나 아궁이 · 구들장에 달라붙는다. 그것을 긁어내 만든 먹으로 쓴 글씨 자리는 잘 썩지 않는다. 먹이 지닌 방부성 때문이다. 중국 자금성을 돌아보면 굴뚝을 보기 어렵다. 일본 살림집엔 굴뚝이 아예없다. 화덕 말고 불을 때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한옥은 집집마다 굴뚝이 있다. 조형미가 뛰어난 경복궁 자경전십장생굴뚝과 아미산굴뚝을 보물로 지정했을 정도다. 전 세계에서 굴뚝을 나라의 보배로 지정한 민족은 우리뿐이다.

황인찬



인류 문명을 이끈 불, 그 점에서 우리의 구들 구조는 놀랍다. 더 나아가 연기는 나무를 코팅해 목구조 집의 수명을 연장한다.
옛 한옥을 해체하면 생생한 나무는 아이러니하게도 아궁이 연기에 시커멓게 그을린 정지간(부엌) 목재다. 그래서 나는 불을 땔 때 일부러 연기를 집 안으로 들여보내곤 한다. 아내는 옷에서 영감 냄새난다고 잔소리하지만……. 단 우리는 구들 땔감으로 나무나 종이를 제외하고 절대 화학물질을 태우지 않는다.
나는 이렇게 좋은 구들 난방을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 처음 설계 할 때 방 3개 중 2개만 구들을 놓으려고 했다. 나무를 사들이기도 전에 돌구들장이 눈에 띄면 구했다. 동네 앞길에 새집을 지으려고 뜯어 놓은 구들장이 보이면 돈을 주고 샀다. 요즘 시골 사람들 대부분 구들난방이 귀찮아 새집을 지을 때 다시 설치하지 않는다. 그러니 나 같은 사람이 반사이익을 얻는다.
이렇게 구들장을 알음알이로 구했지만 방 2개(9평)에 놓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고 했던가. 쉽게 생각한 구들장 구하기가 정말 어려웠다. 구들장을 구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하다 결국 포기했다. 방의 4분의 3만 깔고 나머지는 가까운 석재공장에서 화강석 판재를 공짜로 갖다 쓰기로 했다. 이놈들은 불에 직접 닿으면 안 되지만 윗목엔 불길이 잘 닿지 않기에 괜찮다고 주춧돌을 샀던 석재공장 사장(돌 전문가)이 조언했다.


허튼구들과 함실아궁이의 매력 속으로
나는 구들 놓는 방법을 터득하기까지 연구를 많이 했다. 예전 아버지가 구들 놓을 때 도와드린 것과 목수로 일하며 어깨너머로 배운것 밖엔 이론으로 아는 것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직접 하면 물리를 터득하는데, 내겐 구들 놓을 기회가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동네 어른들께 수시로 묻고 기회만 닿으면 구들 놓기를 배우려 노력했다. 심지어 하도 골치가 아파 구들을 잘 놓는다는 기능인에게 맡겨볼까도 생각했다. 그러나 그 값이 만만치 않았다. 인건비가 방 하나에 백만 원 이상은 든다는 말에 포기하고 직접 시공에 들어갔다.
구들 놓기 방식은 줄구들과 허튼구들이 있는데, 나는 허튼구들을 택했다. 방이 골고루 따뜻하고 혼자서 시공하기 쉽기 때문이다. 아궁이는 구들에 직접 불을 때는 함실아궁이를 택했다. 아궁이에 무쇠솥을 걸어 물도 데워 쓰고 두부도 만들어 먹으면 좋겠지만, 어차피 난방이 주목적이니까 열효율을 극대화하고자 함실아궁이를 택한 것이다. 함실아궁이를 덮는 구들장과 이맛돌(아궁이 윗부분 돌)이 고온에 쉽게 부서져 주저앉는 게 문제다.
문제점 많은 함실아궁이 구들장과 이맛돌을 해결할 방법을 누군가가 내게 가르쳐 줬다. 함실아궁이 구들장은 먼저 두께 10㎜ 이상 철판을 깔고, 그 위에 흙과 얇은 돌구들장을 놓고, 이맛돌은 두께 H빔(20㎝ × 20㎝)을 가로로 놓는 것이다. 고래바닥은 평편하게 만들고, 그 위에 마사를 깔고, 고래개자리는 한 자(30㎝) 이상 방 둘레를 팠다. 굴뚝개자리는 연기가 머물다 나가도록 40∼50㎝ 이상 깊게 팠다. 굄돌은 일정한 돌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강한 불로 구워낸 붉은 벽돌을 사용했다. 방바닥에서 고래바닥까지 거의 5∼6장의 벽돌을 황토로 붙여 쌓았는데, 아내가 황토를 가래떡처럼 반죽해 주었다.
구들은 모두 황토를 반죽해 붙이고 메워 나갔다. 구들장을 다 덮고 틈새를 단단히 막고자 황토를 주먹만한 덩어리로 뭉쳐 마구 쳐댔다.
구들 위 흙은 아무리 단단히 다져도 마르기만 하면 쩍쩍 갈라져 연기가 새어 나온다. 이를 막으려면 3번 이상 메워야 한다. 나는 겨울이 오기 전 흙벽 작업을 마쳐야 한다는 조급함 때문에, 이 과정을 소홀히 해서 지금도 집 안으로 연기가 새어든다. 나무만 때니까 나는 냄새가 구수하니 좋은데 아내는 질색이다. 서울에서만 살아서인지 아니면 연기에 알레르기가 있는지 구들을 잘 놓지 못했다고 지금까지 잔소리가 이만저만 아니다.
구들방이 늘어나면서 구들 놓는 기간이 예상보다 훨씬 더 걸렸다.
애초 방 2개만 놓으려 했는데 문제가 생겼다. 우리 집 기초는 모두 흙이다. 돌과 흙이 반반이기에 주춧돌 밑에만 기초 작업을 했다. 주초가 놓인 바닥에서 인방까지 높이는 거의 한 자 반(45㎝)이다. 그러니까 방바닥까지 40㎝ 이상이다. 방 2개는 구들로 이 높이를 해결했지만, 보일러선만 깔려는 안방(5평)은 대신 흙을 채워야 한다. 흙의 양이 덤프트럭 1대가 넘고, 인방때문에 손으로 퍼 넣어야 한다. 그것을 돈으로 계산하니 100여만 원 들게 생겼다. 아내와 고민을 나누다가 결국 구들을 놓기로 했다. 구들을 새로 사야 하는데 수소문해 보니 가까운 남원 골동품상에서 전주 한옥에서 뜯어 놓은 구들을 판다는 것이다.
부리나케 달려가 평당 10만 원씩 주고 구입했다. 우여곡절 끝에 구들을 놓으니 우리 집 하부는 40㎝ 이상 뜬 집이 됐다. 주춧돌에만 의지해 섰으면서도 집의 습기와 냉기 문제를 완벽히 해결했다.
구들 놓기를 끝내니 새벽이면 서리가 내리는 10월 중순이 됐고, 이때부터 본격적인 겨울로 접어들기 전인 11월 20일까지 흙벽 작업에 들어갔다.


굴뚝은 과학이다
굴뚝은 집을 짓고 1년 후에 비로소 완성했다. 처음엔 지름 20㎝ 플라스틱 관을 임시로 설치했다. 홀로 집을 짓다 보면 어설픈 일이 많이 벌어진다.
경복궁을 찾으면 아름다운 굴뚝들을 만난다. 서민은 상상할 수도 없는 한 편의 작품들을……. 십장생을 새기고 전돌이라는 붉은 벽돌로 정성스럽게 쌓은 굴뚝들을 볼 때마다 너무 부러웠다. 나도 언젠가 저런 굴뚝을 쌓아야지 하고 마음만 먹다가 보름 동안 혼자 오르락내리락하며 굴뚝을 쌓았다. 절반은 시멘트 벽돌로, 나머지 절반은 헌 기왓장으로 쌓았다. 맨 꼭대기에 비가 굴뚝 안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항아리를 절반 올려놓았다. 320㎝ 정도 더 높이 쌓고 싶었지만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오랜만에 집사람이 집과 잘 어울린다고 칭찬해 주니 기분이 좋다. 사실 우리 마누라는 칭찬을 잘 하지 않는 성격이라 기분이 상할 때도 있다.


막상 굴뚝을 쌓으니 만만한 일이 아니다. 기술적 부분도 그렇지만 자잿값도 만만치 않다. 그러니 보통 집에 플라스틱 관으로 굴뚝을 만들어 놓는 것이다. 굴뚝을 이렇게 쌓으면 플라스틱 관보다 연기가 훨씬 잘 빠진다. 연도라는 연기 통로와 연결된 굴뚝 밑 부분(개자리)은 연기가 깊은 곳에 잠시 머물다가 올라가게 하려고 더 깊게 판다. 우리 집은 60㎝ 정도 파고, 그 위에 굴뚝을 쌓았다.
방 윗목에 판 굴뚝고래에 머물던 연기는 연도를 통해서 굴뚝으로 나와 다시 한번 머문다. 이때 찬 공기와 만나 불순물은 그곳에 떨어지고 맑은 연기만 굴뚝으로 빠져나간다. 역풍이 불 때도 이 깊은 개자리때문에 바람막이 역할을 한다. 나도 이것을 처음 알았다. 실제로 플라스틱 관을 세워놓으면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고 방 안으로 연기도 많이 새어들지만, 이 굴뚝을 세워놓고 불을 때니까 웬만한 바람에도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처음 불을 땠을 때 연기가 잠시 거꾸로 나오지만 굴뚝을 통과하기 시작하면 굴뚝이 데워져 순풍에 돛단 듯 연기가 굴뚝으로 빠져나간다. 왜 옛 어른들이 매일 불을 때야 불이 잘 든다고 말했는지 이제야 알겠다.

다음 이야기는 황토벽 쌓기다. 이 방법을 잘 알아두면 누구나 황토집을 쉽게 지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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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재 이야기 ⅩⅣ] 우리집 구들 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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