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메뉴보기
 

순수 황토를 사용해 전통적인 공법으로 황토벽돌을 생산하는 곳도 있겠지만, 나는 믿을 수 없었다. 순수한 흙만을 사용하면 갈라지게 마련인데 구운 벽돌처럼 단단하다는 점이 좀 이상했다. 갈라지지 말라고 섞으면 안 되는 여러 가지 비 생태적인 재료들을 사용해 벽돌을 만드는 것 같았다. 게다가 규격, 가격 면에서 맞질 않아 결국 맞벽치기 방식을 택했다. 맞벽치기 작업은 거의 한달 걸렸는데, 흙일은 보름도 안 걸렸지만 벽에 들어가는 각재 만들기와 문틀 짜기, 전기공사 등으로 겨울바람이 불어 닥치기 직전에 흙 공사를 겨우 끝낼 수 있었다.

황인찬 목수





황토, 이름만 들어도 가슴 설레는 말이다. 1990년대 후반 갑자기 불어 닥친 황토 열풍은 웰빙 라이프의 인기를 타고 거세게 확산됐다. 사실 과거의 집들은 황토집 일색이라 새삼스러울 것도 없고 옛것의 회귀일 뿐인데 회색 콘크리트 문화에 젖어 잊고 있다가 과거의 산물에 대한 새로운 호기심으로 바라보게 된 것이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내가 사용한 흙도 따지고 보면 황토가 아니다. 그래서 우리 집도'황토집'이라는 거창한 말을 사용하는 것보다 그냥'흙집'이 맞는 말이다. 황토에 대해 배울 때 선생님을 따라 황토를 찾으러 다녔는데 황토는 진짜 황색黃色을 띠었다. 금빛을 띠는 황토는 우리 국토에서는 아주 희귀하다. 그래서 예부터 임금 방에만 사용했다는 말도 있다. 지금 우리가 황토라 부르는 흙은 적토赤土아니면 자토紫土다. 그만큼 황토의 효능이 우수하기에 생김이 얼추 비슷하면 황토라 여기고 마음에 위안을 삼는다.


건강 자재 - 나무와 황토

흙으로 지은 집은 시멘트로 지은 집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친환경적이기에 나도 황토집을 꿈꾸었고 그것을 이루었다. 나무와 흙의 절묘한 조화는 새삼스레 이야기하지 않아도 될 만큼 생태 주택 자재다. 둘 다 숨 쉬는 천연 재료다. 특히 소나무는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집 진드기의 발생을 억제해주는 물질을 뿜어내, 아토피 환자가 나무집에서 살면 그 증상이 현저히 줄어든다는 의료계의 보고도 있다. 또 흙은 실내 습도를 50% 내외로 유지시켜 가습기가 필요 없을 정도로 우리 건강에 도움을 준다.
나도 아파트에서 살 때는 늘 코가 헐어서 고생했다. 건강할 때는 잘 모르지만 조금이라도 몸이 약해지면 건조한 실내 공기 때문에 고생했는데 황토집에 살면서는 전혀 느끼지 못한다. 몸소 체험했기에 누구에게나 황토를 강력히 추천한다.
나무는 흙과 가장 궁합이 잘 맞는다. 옛날 한옥을 뜯으러 가 보면 흙 속에 묻혀있는 나무는 껍질까지 거의 그대로 남아있다. 지붕 위에 얹은 흙과 외를 엮은 나무는 비가 새지 않는 이상 절대로 썩지 않는다.
여담으로, 나무와 황토로 집을 지으면 벌, 나비, 파리, 노래기, 귀뚜라미 등 벌레들이 자기 집인 줄 알고 집 안으로 자꾸 들어온다는 것이 골칫거리다. 지난해부터 박쥐 두 마리가 우리 집을 아예 자기 집처럼 거주하고 있다. 처음엔 기분 나빴는데 서양에서는 박쥐가 길조라 하기에 공생하고 있다.


황토벽돌 포기하고 맞벽치기로 결정

서론은 그만하고 이제 황토벽 시공과정을 이야기하겠다. 처음 집을 설계할 때 기둥을 7치(21㎝) 각재로 한 이유는 황토벽돌을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벽 공사 전까지 황토벽돌에 대해서 수많은 정보를 입수했다. 건축박람회나 인터넷 등을 통해서 알아본 바에 의하면 국내 황토벽돌을 생산하는 업체는 줄잡아 300곳이 넘었다. 순수 황토(그냥 흙이어도 상관없음)를 사용해 전통적인 공법으로 생산하는 곳도 있겠지만, 나는 믿을 수 없었다. 순수한 흙만을 사용하면 갈라지게 마련인데 구운 벽돌처럼 단단하다는 점이 좀 이상했다. 갈라지지 말라고 섞으면 안 되는 여러 가지 비 생태적인 재료들을 사용해서 벽돌을 만드는 것 같았다. 공사현장 가까운 곳에서 짚을 넣어 전통적인 방법으로 만드는 황토벽돌 생산 업체도 있었지만 우리 집에 적용하기에 규격이 맞지 않았다.
전통한옥의 단점은 역시 추운 것이다. 한겨울 윗목에 놓아둔 요강에 살얼음이 얼었던 어릴 적 추억이 그리 달콤하지만은 않다. 나는 기둥을 두 푼(6㎜) 정도만 노출시키고 벽 두께를 20㎝ 이상으로 하고 싶었는데 우리 집 근처에서 생산하는 황토벽돌은 가로 30㎝×세로 15㎝×두께 15㎝로 사용할 수 없었다.
황토벽돌을 선뜻 사용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는 가격이 문제였다. 내가 찾던 20×20×30㎝ 규격의 황토벽돌은 운송비 포함해 개당 2,000원이었다. 35평의 집에 3,500장이 들어간다면 거의 700만 원이 벽돌 값으로 나가는 셈이다. 게다가 직접 벽돌을 쌓는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낮은 곳은 어려움이 없지만 높은 곳을 쌓을 때는 일도 엄청나게 더딜 뿐더러 힘에 부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덜컥 겁이 났다. 목수여서인지 나무를 가지고 하는 일은 아무리 해도 어려움을 모르겠는데 처음 해보는 일은 겁부터 나기 일쑤였다.
결국 황토벽돌을 포기했다. 비용도 적게 들고 주위에서 퍼 오기 때문에 믿음직한 순수 황토를 사용하는 흙벽 시공으로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아내에게 또 한 번 핀잔을 들었다. 돈이 들더라도 쉽게 빨리 집 지을 생각은 않고 자기만 고생시킨다는 것이다. 사실 벽체 시공을 하면서 아내와 나는 집 짓기 과정 중 가장 힘든 과정을 견뎌내야 했다.

 

 



황소바람 꽁꽁 막는 황토벽 맞벽치기

2004년 10월 중순이었다. 우리가 벽체 시공할 때 아랫마을 사람들은 가을걷이에 한창인 무렵이라 더욱 기억에 남는다. 미처 가을걷이를 다 못했다는 동네 할머니 서너 분께 간곡히 부탁드리고, 바로 아래에 살고 있는 80세 할아버지, 그리고 우리 부부, 이렇게 5∼6명이 거의 한 달 동안 흙일을 했다.
흙을 반죽하는 일은 할아버지가, 나는 나르는 일을 맡았다. 할머니 두 분은 한 팀이 되어 안과 밖에서 맞벽을 쳤다. 아내는 간식과 점심을 정성스럽게 챙겼고.
처음에 나는 흙 반죽에 서툴렀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괭이 하나 들고 아주 쉽게 그 많은 양의 흙을 이겨주셨다. 작두로 짚을 썰어 넣고 흙을 이겨 놓으면 나는 외바퀴 손수레에 싣고 여기저기로 날랐다.
흙을 반죽해 놓으면 이놈들이 엄청 무거워졌다. 묵직하게 뭉쳐진 흙덩이를 수없이 주워 담고 나르다 보면 어느새 땀이 범벅이 됐다. 늦가을이 되자 아침저녁으로는 살얼음이 얼어 손이 시릴 정도여서 옷을 두껍게 입고 일하다 보면 나중에 다 벗어 던져야 했다.
해가 뜨기도 전 아침 7시에 할머니들을 태우고 와 종일 흙과 씨름하다 오후 6시에 끝마치기를 거의 한 달. 마침내 황토벽이 세워졌다. 35평 집의 실제 벽체 시공한 날 수를 세면 보름이 채 안 된다. 그럼 왜 한 달 동안 흙일을 해야 했을까? 그것이 바로 손수 자기 집을 짓는 이들의 고뇌일 것이다.
예전 우리 한옥의 벽 두께는 세 치(9㎝) 정도였다. 기둥과 기둥을 연결하는 인방의 두께가 세 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추웠다. 요즘도 내가 한옥에서 살고 있다고 하면 춥지 않느냐는 반문부터 받는다. 기둥과 기둥, 인방과 인방 사이에 나무를 대고 수수깡이나 대나무를 대고 안팎에서 맞벽을 쳤던 기존의 한옥은 정말 추웠다. 이런 단점을 해결한 방법 중 하나가 우리 집 벽체 시공 방법이다.
먼저 벽을 만들고 싶은 부분에 한치 오푼(4.5㎝) 두께의 각재를 세로로 세워서 못으로 박는다. 이 때 벽의 두께를 얼마나 두껍게 할 것인지 미리 계산해 각재의 개수를 정한다. 그리고 이 각재에 다시 가로로 한 치 각재를 댄다. 결국 양쪽 기둥이 연결되는 셈이다. 이렇게 안과 밖에 각재를 대면 그 사이에 공간이 생긴다. 우리 집의 경우는 벽 두께를 20㎝ 정도로 했기에 세로로 각재 세 개를 벽에 고정시켰으니 결국 5치(15㎝) 두께로 흙벽을 쳤다.
여기다 나중에 3㎝ 이상 황토미장(이 부분은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겠음)을 했으니 결국 20㎝ 정도의 흙벽이 된 것이다. 이 나무 작업은 웬만한 이들은 손수 할 수 있을 것 같다. 길이만 정확하게 자르고 못만 튼튼하게 박으면 되는 일이기에 굳이 돈을 들여 목수에게 맡기지 않아도 된다.
우리 집에 사용된 9자(2m 70㎝) 한 치 각재는 모두 800개 정도였다. 값으로 치면 60만 원이 넘는다. 흙은 2.5톤으로 8대 정도 들었다. 가까운 곳에서 흙을 파올 수도 있지만 장비대를 들여야 하고 번거로워 근처의 건재상에서 모두 구입했다. 한 차당 9만 원이 들었으니 70만 원 소요됐다.
흙일이 더뎌진 이유는 바로 이 각재 작업 때문이었다. 목수 일을 미처 다 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흙일을 벌여놓았던 나는 3일 정도 흙일을 하다 또 3일은 각재 일을 했기에 벽 시공을 연속해서 못한 것이다.
게다가 벽 속 전기배선도 직접 작업했기 때문에 일의 진행이 더욱 더뎌졌다. 전기업자에게 맡기면 되지만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하는 상황이라 주름관을 묻고 매입콘센트가 들어갈 박스도 손수 달았다. 전기 작업도 해본 경험이 없어 상당히 애를 먹었다. TV선, 전화선 그리고 전열선 세 가닥을 집 곳곳에 연결해야 하는 작업은 보기보다 까다로웠다. 잘못 연결하면 나중에 다시 벽을 허물어야 하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신중했다.

 

 



전기공사도 내손으로

전기 공사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가고 싶다. 신축 주택의 전기공사는 한전에서 허가받은 업자만 할 수 있도록 법령으로 정해져 있다. 나 같은 사람이 아무리 전기공사를 잘 해 놓는다 해도 전기업자의 도장이 있는 서류가 한전에 접수되지 않으면 계량기를 달 수 없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내 집이니 내가 하고 싶기도 하고 싸게 할 수 없을까 하여 여러 업자들과 협의해 보았다. 한옥의 전기공사비가 평당 7만 원이라 하는데 4~5만 원 정도로 낮추어 줄 수 없느냐는 내 제의에 한 마디로 "No"였다. 그래도 문을 두드리면 열린다고 했던가. 이웃집에 공사하러 왔던 마음씨 좋은 업자가 평당 5만 5,000원에 해 주었다. 돈 절약하는 이유도 있었지만 내 집의 일을 남에게 떠맡기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고, 일생에 한 번 뿐인 전기공사인데 어떻게 포기할 수 있겠는가. 덕분에(?) 흙일을 하는 그 바쁜 와중에도 녹슬어가는 머리를 굴리느라 고생깨나 했다.
아내와 상의해 전등은 어디에 달고, 스위치와 콘센트는 어디에 달아야 하는지 하나하나 물어가며, 또 각재 일을 해가며 벽에 주름관 묻는 공사를 간신히 끝낼 수 있었다. 끝내 놓고도 과연 나중에 업자가 전기선을 연결하러 왔을 때 벽을 허무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안심할 수 없었다. 다행히도 이듬해(2005년 초봄) 업자가 전기공사 마무리를 하러 왔는데 우려했던 일은 생기지 않았다.

 

 



기둥 - 인방 - 문틀을 하나로 결합

겨울이 오기 전에 흙일을 끝내려고 그렇게 애를 태웠던 이유는 바로 추위 때문이다. 10월 중순에 시작해 11월 20일 경에 끝났으니 본격적인 동파가 시작되기 전에 흙벽 일이 끝났다. 시멘트나 흙일은 얼어버리면 일을 하지 않는 것보다 못하다. 얼었다가 녹으면 부슬부슬 떨어져 버린다.
여름은 우기雨期이기에 흙일을 하면 안 되고 겨울은 얼기 때문에 안 되고. 결국 봄이나 가을에 해야 한다. 인력만 충분하면 열흘도 안 걸려 끝날 일을 각재 일과 전기공사 때문에 한 달 이상 흙벽 일을 했다. 그러니 애간장이 녹았다. 추위가 본격적으로 닥치기 전에 흙일을 끝내고 나니 먼저 한 흙벽은 갈라질 정도로 잘 건조되고 있었고, 맨 나중에 했던 벽들도 탈 없이 잘 마른 상태였다. 겨우내 흙벽은 더욱 바싹 말라 황토미장을 하는 봄에는 돌덩이처럼 단단하게 굳어 있었다.
흙벽 일이 더뎌진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었다. 흙일 중간에 문틀을 제작했다. 전통한옥에서는 인방으로 문틀을 제작하는데 우리 집 문틀을 인방으로 하려면 20㎝ 이상 되는 각재를 사용해야 했다. 그러려면 그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대체 방법으로 흙벽에 인방재를 연귀 맞춤해서 문틀로 제작했다. 문틀과 문이 무거워 나중에 흙이 마르면 처질까 염려돼 문틀 밑에 세 군데에 각재로 받쳐놓았다. 이런 방법으로 우리 집의 흙벽은 기둥과 인방 그리고 문틀이 완전히 하나로 결합됐다. 나무와 흙 사이가 전혀 벌어지지 않는 적극 추천할 만한 흙벽 시공 방법이라 말하고 싶다.
흙벽 일을 끝내고 나니 목이 쉬고 며칠 동안 말을 못했을 정도로 흙벽 공사는 기력이 소진되는 대공사였다고 회상한다.


다음 이야기는 한옥에서 빼놓을 수 없는 창호 달기다. 문도 5개월 동안 직접 제작했다. 150여 짝의 문짝을 짜면서 세월을 다 보냈다. 집이 언제 완성될지 나조차 모를 정도였으니…. 때문에 집 짓는 기간이 3년이나 걸렸다. 그런데 입주하고 5년이 지난 아직도 문짝을 다 못 만들었다!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하늘재 이야기 15] 황소바람 꽁꽁 막는 황토벽 맞벽치기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