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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주와 통한다고 느낄 때 필자의 기분은 한층 고조된다. 순천 '꽃맘'님 부부와는 집 지을 터를 바라보는 안목에서 서로 통한 데다 필자가 설계한 집이 그의 작품과 잘 어우러져 마치 하나의 완성품으로 이뤄진 것 같았다. 꽃맘 님은 필자가 설계한 집이라는 캔버스를 아름답게 채색해 가고 있었다.

최길찬<건축사/시공기술사>

 

 

 

 

 

갯벌 비린내 넘실대는 갈대숲 위로 떼 지어 날아오르는 철새들. 그 뒤로 끝 갈 곳 없이 멀어만 보이던 수평선이 내려앉으면 열기를 다해 생명수 길어 올리던 태양이 팔베개하며 옆으로 돌아눕는다. 순천만의 여유로움을 즐기려는 것이다.
아이들의 재잘거림, 연인들의 속삭임을 갈대숲에 남겨두고 순천만을 출발 상사호저수지를 향해 올라가면 조그만 면 소재지 상사면사무소가 있고 그 맞은편 개울 건너 아담한 마을이 편안하게 밤을 껴안고 있다. 건축주 김종린(57세) 씨와 아내 이현섭(53세) 씨는 답답한 아파트 생활을 벗어나기 위해 쌍계사 계곡을 비롯해 일대의 경치좋고 물 좋은 곳을 찾다 이 곳에 발을 들였다.
순천만의 너른 들판을 지나 풍부한 생명력의 탯줄을 잡고 위로 올라가면 남으로 낙안읍성을 굽어보는 산봉우리들과 마주하여 수리봉, 옥녀봉에서 발원돼 순천만 생명들을 살리는 거대한 순천호가 있다.
순천호 아래로 5㎞ 지점 70여 호가 모여 살도록 만들어진 전원주택단지를 2003년 발견한 부부는 '바로 이곳이야!'하며 그 다음날 매매 계약을 했다 한다. 건축주는 현직 교사로 좀 오래된 카메라 하나를 메고 다니면서 열심히 아내를 찍는다. 아내는 '들꽃화가', ' 꽃맘'이라고 들한다. 얼굴엔 늘 웃음이 있고 예술가들이 가지고 있는 그 흔해빠진 한恨도 그리 많은 것 같지 않다. 그 얘기를 했더니 "한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면서 또 웃는다. 그녀는 마주하고 있으면 기분 좋아지는 것들을 그리고 조각한다. 남편은 그런 아내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고.

 

 





 

 

편안함이 느껴지는 부지
본격적으로 집 짓기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 부부는 밤새 도면을 그리고 지우고 또 그리기를 반복하다 필자를 알게 돼 1999년 봄 우리 사무실을 방문했다. 녹차 향기 가득한 4월 상사호수 위 옥녀봉 기슭 녹차농장에서 설계에 대한 첫 브리핑을 했다. 그날 건축주는 방금 보고 온 집터를 어떻게 보느냐고 물었다.
"그저 편안함이었습니다. 유명한 관광지나 명승지처럼 사람이 북적이지 않고 물길 따라 깔끔하게 포장된 2차선도로 건너편 높지 않은 산봉우리들이 어깨를 나란히 한 모습이 편안함을 주고 상사호에서 내려오는 마르지 않을 생명수가 들녘을 풍요롭게 만들어 모난 사람이 없을 것 같은 동네입니다. 아마 두 분도 그래서 이곳을 선택하지 않으셨습니까?"
부부가 서로 마주보더니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아- 그래요. 바로 그래서 여기 부지를 구입했습니다. 똑같은 느낌으로 땅을 봐주시니 아무래도 좋은 인연으로 좋은 집이 만들어질 것 같습니다."

 

 

설계에 대한 건축주의 요구
주택으로 기능을 갖추되 거실과 별도로 갤러리(전시공간)와 아틀리에(작업실)가 있으면서 예산을 생각해 최소 규모로 하고 비를 피할 수 있는 주차장과 야외 조각품 전시가 가능토록 2층의 야외 덱, 많은 미술품을 보관할 수 있는 창고가 필요하다고 했다. 가족 구성은 부부만 살되 부모님의 건강을 고려해 모시고 살 수 있는 방과 가끔 자녀가 들렀을 때 기거할 공간을 요구했다.

 

 

설계조건에 대한 분석 및 대안 제시
건축 연면적 약 60평 규모에 이 많은 것을 넣을 수 없음을 설명하고 각 기능들 중 유사한 것을 통합하기로 했다. 그 첫 번째로 손님을 맞이하고 작품을 전시하는 거실과 갤러리를 통합해 하나의 실로 구획하되 그 안에서 가구나 작품 등으로 자연스럽게 분할한 갤러리형 거실을 만드는 것이었다. 1층에 손님을 응접할 때는 2층 작업실이 다른 가족을 위한 거실이 되도록 하는 대안을 채택하기로 했다.

 

 

 

 

동선 및 대지 배치 계획
대지 북측으로 키 5m 정도의 벚나무 가로수길(12m도로, 인도 포함)에 면하고 서측으로는 단지 내 6m 도로에 면한다. 남측과 동측에 인접한 대지와 건축물이 들어서 있으므로서 측도로(낮은위계) 쪽으로 차량과 사람의 주 출입구를 정했다. 서측 뜨거운 햇살을 피하기 위해 서측 도로 쪽에 주차장을 반필로 티형으로 계획하고 그 상부를 2층에서 사용할 수 있는 조망용 덱으로 계획했다. 별동인 주차장과 본동 사이 통로를 이용해 보행자의 출입통로를 만들고 이를 통해 마을사람들의 시선차단을 위한 완충역할도 가능해졌다.

 

 

건축주와 통했을 때의 즐거움이란
지난해 겨울 공사를 진행했고 꽃맘 님은 지난해 명예퇴직(미술교사, 교감) 하고 올 초 새집으로 이사했다. 4월쯤 필자가 입주 후 처음으로 방문한 날 비가 엄청 내렸다. 야외 덱, 외벽, 북측 가로수길, 마당… 온 천지에 널려 있는 꽃맘 님의 작품들과 눈인사를 하면서 빗속을 헤집고 해부하듯이 사진을 열심히 찍었다. 갤러리형 거실, 복도, 계단, 창틀… 실내도 꽃맘 님의 작품들이 손님을 반갑게 맞았다. 필자가 왔다는 부인의 전갈을 받고 서둘러 귀가한 건축주가 사 온 막걸리와 꽃맘 님이 직접 디자인한 싱크대에서 구워낸 파전을 먹으면서 그간의 이야기를 맛있게 나누었다.
집을 설계하고 짓는 일이 내 일이지만 그 집의 아름다움을 가꾸는 것은 집주인의 안목과 정성이다. 쉬고 싶어 명퇴를 했지만 정작 이 집에 와서는 꽃을 심고 집을 가꾸느라 진종일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늘 웃음을 잃지 않은 그 모습을 보면서 노동은 심신을 치유하고 사물에 대한 무한한 관심과 삶의 애정을 고무하는 에너지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가 선택해 붙여 놓은 거실과 복도 벽의 타일(빨간색, 초록색, 노란색, 남색의 화려한 세로 문양)이 꽃맘 님이 디자인한 싱크대의 색상 및 패턴과 아주 유사하고, 오래전 작업했다는 꽃무늬 도자기 타일은 계단챌판(Riser, 계단의 단 세로 부분) 높이와 딱 맞고 색상이 잘 어울려 보기좋은 인테리어가 돼 있었다. 여기서 필자는 '인연이 있다는 것은 통通한다는 것'이라는 구절이 새삼 떠 올랐다.

 

 

 

 

 

최길찬은 건축사이자 시공기술사로 종합 건축 회사 ㈜신영종합건설, 전원주택 시공 전문 ㈜하이랜드건설, 설계 전문 신영건축사사무소의 대표를 맡고 있다. 2004년 7월부터 2006년 8월까지 KBS-1TV 6시내고향 <백년가약> 프로젝트의 건축사 및 시공사로 제작에 참여한 바 있다. 주요 수상 내용으로는 강구조 작품상 주택부문설계 은상, 건설기술교육원장 표창, 보건복지부장관 감사패 등이 있으며 사단법인 한국패시브건축협회 회원사로 패시브 건축 보급에 앞장서고 있다.
031-712-0494 cafe.daum.net/greenhousing www.syhila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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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길찬의 집 이야기 7] 순천만 풍요로움을 닮은 꽃맘’s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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