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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부터 귀농을 준비한 농촌 여성 3인방을 만났다. 마치 더 살기 좋은 농촌을 만들기 위해 파견된 특수요원들처럼 이들은 농사하랴 살림하랴 아이 키우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도 지역사회를 위해 기꺼이 몸을 던진다. 9월 9일 전국 개봉한 영화 '땅의 여자'세 주인공이기도 하다.

박지혜 기자 사진 홍정기 기자 영화사진 시네마달 02-337-2135 www.cinemadal.com

 

 

 

 

 

 

 

10월 14일 진주시 용봉면 지수리에 소재한 소희주(39세) 씨의 집 마당 우사 앞.
"거름 좀 가져가자."
"그래, 가 갈 수 있으면 가 가라."
"우린 돈 주고 사다 쓰는데 여는 남아도네."
"우린 필요 없다."
"근데 이걸 우찌 가지 가꼬. 1톤 트럭뿐인데… 푸고 담을 길도 없네. 안 되겠다."
창녕에서 차를 몰고 놀러 온 변은주(39세) 씨가 우사 바닥을 흥건하게 메운 소똥에 눈독들이며 소 씨와 나눈 대화다. 벼농사와 마늘농사를 짓는 변 씨는 그걸 거름으로 쓰고 싶어 이리저리 궁리하다 결국 마음을 접었다. 도시사람에겐 그저 냄새 지독한 오물에 불과한데 농촌사람에겐 황금알 낳는 우리가 따로 없다. 여기에 합천에서 달려온 강선희(41세) 씨가 거든다.
"우린 만나면 하는 얘기가 이렇습니더."
대학 동문이고 비슷한 시기에 경남지역으로 귀농한 이들은 차로 30분 거리 멀지 않은 곳에 살아도 서로 농사일이 바빠 만나기가 좀체 쉽지 않았단다. 그러다 최근 3년간 다큐멘터리영화 촬영과 홍보활동으로 얼굴 대하는 일이 잦아졌다.
다큐멘터리 '땅의 여자(감독 권우정)'는 농촌에서 가정을 이루고 농사지으며 살아가는 당찬 30대 여성의 일상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그 중심에 강선희 변은주 소희주 3인방이 있다. 3년여 전 어디선가 나타난 도시여자 권우정 감독이 '언니 언니'하며 장장 1년 반 동안 카메라를 들고 쫓아다니며 이것저것 캐묻더니 그 결과가 90분짜리 영화가 됐단다.
"영화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으예."
그들은 그저 인심 좋은 농사꾼을 자처하며 '이 사람한테 뭔가 필요한 일인가보다'생각하고 묻는 말에 답하고 평소대로 생활했을 뿐이란다. 스크린에는 남에게 차마 보이기 민망한 사사로운 장면도 드러나는데 "그나마 찍어간 것 중 가장 수위가 낮은 것"이라며 무덤덤하다.

 

 

농촌을 사랑하게 된 대학 농활 시절
부산에서 나고 자란 도시 여성들의 귀농 계획은 대학시절 시작됐다. 강선희, 변은주씨는 동아대 농과대학 재학 중 풍물동아리 활동과 과 특성상 농활(대학생들이 단체로 농촌 지역에 부족한 일손을 거들면서 노동의 의미와 농촌 실정을 이해하는 활동)을 꾸준히 하면서 농촌과 가까워졌고 졸업 후 귀농과 농민운동으로 이어졌다. 이들과 달리 소희주 씨는 독문과 재학 중 졸업 1년을 남겨두고 풍물동아리에 참여하면서 농촌에 발을 담갔다.
당시 농활은 계절마다 한 차례 그리고 대보름날 등 1년 6회 꾸준히 있었고 이들은 방학 때면 절반은 농촌에 살다시피 했다.
소씨는 "농활 가면 마을 어르신들이 '일 참 잘하네'하는 소릴 곧잘 했으예. 난 그 소릴 듣고 진짜 심각하게 '농촌 체질인갑다, 농촌에 살아야 하나 보다'고 생각했는데 지나서 생각해보니 누구한테나 다 하는 수고하라는 소리였으예"한다.

 

 

 

 

도시에서만 살아본 이들은 푸른 들판이 시원스러운 농촌 풍경을 보면 그저 마음이 설레였다. 전혀 해보지 않아 신선하기만 한 농사일 자체가 좋아 농촌에 푹 빠지게 됐고 주민들이 칭찬까지 해주니 마치 농사꾼이 천직이나 되는 것처럼 여겨졌다.
그렇게 농촌 생활을 꿈꾸다 같은 동아리에서 만난 지금의 남편과 거의 결혼과 동시에 귀농을 이뤘다. 강 씨와 소 씨는 95년, 변 씨는 96년에 귀농했다. 곱게 키워 대학 졸업장까지 받은 딸이 농촌으로 시집간다 했을 때 달가워하는 부모는 없었다. 결국 허락하게 됐지만.
'장가 못 간 농촌 총각 실의에 빠져 자살'이라는 내용의 뉴스를 보고 고등학생 때부터 입버릇처럼 농촌 총각한테 시집간다고 했던 변 씨는 말이 씨가 됐단다. 변 씨가 졸업 후 결혼과 함께 남편 고향 마을로 들어왔을 때 마을 사람들은 "대학 졸업장 있는 사람이 여는 와 오노"하며 남편 보고 놀라고 "대학 졸업장 딴 사람이 둘이나 되나"하고 집안을 보고 두 번 놀라더란다.

 

 

농사 · 가사 · 육아… 농촌 여성은 '슈퍼우먼'
씩씩하게 농촌에 입성한 이들은 뜻을 이뤄 일단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농활 때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농촌의 얼굴과 부딪혔다. 신나서 하던 일은 업이 되니 힘들고 도시와 달리 정체돼 있는 농촌 사회는 가부장제, 남존여비 사상이 지배했다. 농사와 가사노동, 육아를 동시에 책임지기에 농촌은 여성에게 더욱 혹독한 곳이었다.

 

 



 

 

'동네 시집살이'한다는 말이 있다. 농촌사회 특유의 공동체 의식이 남아있고 인구이동이 드물어 마을 전체가 한집안과 같아 나온 말이다. 농촌에는 집성촌이 유지되는 지역이 많은데 그런 경우 실제로 마을이 집안이다. 해서 마을 사람들 간섭이 많다. 남편 고향으로 시집간 강 씨와 변 씨와 달리 소 씨는 연고 없는 곳에 사니 오히려 마을 사람들 간섭이 덜하다고 한다. 그러나 소 씨는 귀농 · 귀촌인이 20년 30년 아니, 평생을 살아도 영원히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으로 여겨진다는 것은 아이러니라 말한다. 피가 섞이지 않은 입양아는 노력한다고 입양아라는 사실이 달라지지 않는 것처럼. 귀농 · 귀촌한 사람들이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도시로 유턴하는 이유 중 하나도 이러한 농촌사회 색깔 때문이라고 이들은 말한다.

 

 

 

 

"농사만 지으란 법 있습니꺼"
귀농 10년을 훌쩍 넘긴 이들은 농사 베테랑일 법한데 여전히 어려움도 느낀다. 특히 농사에 소질이 없다는 강 씨는 청소년복지 사업에 더 힘을 쏟고 있다. 그가 귀농한 이래 지역에는 공부방이 세 곳 생겼단다. 청소년복지 사각지대인 농촌사회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교육이었고 앞으로 '합천 하자센터(대안학교)'를 만들겠다는 포부도 가지고 있다.
"귀촌해서 농사만 지으란 법은 없지예. 자기가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하면 됩니더. 나도 농사보다는 아이들 가르치는 일이 적성에 맞아 공부방 일을 하게 됐고 청소년복지 문제까지 관심 갖게 된 거지예."
농촌사회는 도시에 비하면 여러모로 사각지대에 놓였다. 지역사회 활동을 하는 이 여성들이 뼈저리게 느끼는 바다. 농촌 경제 안정 확보를 위해 겁 없이 아스팔트 도로 위에 드러눕는 사람, 엄마 품에 안기고 싶어 칭얼대는 어린 아이를 떼어놓고 일터를 향해 새벽 공기를 가르며 가슴 쓸어내리는 사람, 백발성성한 어르신들에게 노래 가르치고 마사지해주며 행복을 주는 사람, 부부갈등 · 고부갈등에도 가족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 그럼에도 하늘이 지어주는 농사 앞에서 손을 놓을 줄도 아는 사람. 이들은 그런 사람이다. 농촌생활이 아무리 힘들어도 귀농을 후회해본 적 없다고 한목소리로 말하는 강선희 변은주 소희주 씨는 '사람이 희망'이란 말을 실감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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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 후 위풍당당 살아가는 ‘땅의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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