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자주 들르던 가게가 있다.
다양한 생활용품과 소품들을 파는 멀티숍으로 이름은 'Merci(메르시)'. ' Merci'는 프랑스어로 '감사합니다'라는 뜻이다. 물건을 사지 않더라도 이곳에 오는 모든 손님과 이곳을 지나치는 사람 그리고 이곳에 자유와 여유를 더해주는 자연에게 'Merci'하고 건물은 말하는 듯하다.
이곳이 친근한 이유는, 큰 도로에서 건물 입구 통로를 지나자마자 마주하는 안뜰 때문이었다. ㄷ자형 건물에 둘러싸인 작은 마당은 따스한 햇살로 풍부하며 번화한 도심 속에서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가게 주인의 진정성이 그곳에 놓인 사물들을 통해 내 마음에 잘 전달되었다.
마당 한쪽에는, 힘겹게 언덕을 올라오느라 뜨거워진 엔진을 식히기라도 하듯 커다란 파라솔 아래 태양을 피하고 있는 빨간색 작은 자동차 한 대와, 때를 놓쳐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서둘러 준비했어도 제법 그럴싸한 작은 식탁과 조촐한 식기들, 오직 사랑하는 연인에게만 허락된 듯한 오붓한 의자 두 개가 놓여 있다. 그리고 여기선 보이지 않지만 저 언덕 위까지 둘러싸고 있을 것 같은 올리브 나무와, 프로방스에서 방금 올라온 듯 달콤한 향기로 코를 자극하는 자스민이 이 작은 공간에 마치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마당을 향해 있는 접이식 도어를 젖히고 빈티지하다 못해 낡고 오래된 가죽의자에 몸을 맡긴 채 자스민 향을 곁들여 진한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있노라면, 그동안 머릿속을 복잡하게 하던 수많은 상념과 걱정들이 마치 물이 기화되어 하늘로 사라지듯 그렇게 사라져간다.
건축을 전공해서가 아니라, 누구나 이런 공간을 사랑할 것이다. 따듯하고 포근한 공간이 주는 이런 기분이 삶을 더욱 여유롭게 만든다. 자연에 한 걸음 다가서게 만든다.
파리에서 만난'메르시'의 마당은 지금 나에게 이런 말을 시킨다. 그런 마당을 가지고 싶다…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다… 그리고, 그곳에서 살고 싶다, 오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