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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유년기를 보낸 필자에게는 항상 기억되는 집의 환영이 있었다. 그것은 내가 줄곧살아온 프랑스 양옥집 문간에 걸려 있던 달력 사진 속의 목조주택이었다. 푸른 잔디 위에 세워진 삼각형 지붕의 박공집과그 뒤에 펼쳐진 울창한 숲의 풍경, 아마도 그 시기를 보낸 이들에게 목조주택이란 그런 이미지를 바탕으로 자신의 주관적감성이덧입혀진어떠한환상적인형체일것이다.
그러한 전원 속 목조주택에 대한 환상은 대량화와 산업화의시대적 소명 속에 설 자리를 잃어버린 우리의 전통적 목조주택에 대한 그리움과 아파트 문화가 가져온 감성의 소멸에 대한 반감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렇듯 꾸준한 목조주택에 대한열망은현실의건조한 일상과는다른 이상적유토피아를찾고자 하는 이들의 감성이 반영된 우리의 결여된 현실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캐나다 목조건축의 답사, 그것은단지 목조로 된 건축을 답사하는 시간이 아닌 나의 유년의 기억속의유토피아를찾아떠난여행이었다.

 

 

목재, 토속성에서 현대 건축공간으로의 확장
지난 백 년 동안 우리는 모더니즘이라는 광풍 속에 맹목적인종교처럼 콘크리트를 맹신해왔다. 그것은 콘크리트라는 재료가 대량생산 해야만 하는 시대적 소명과 맞물려 짧은 시간에생성해 낼 수 있는 역사상 유일무이의 재료이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구축의 신속성과 초월적 내구성은 차가운 재료의 물성만큼 역사 속에서 지나칠 수 없는 후유증을낳았다. 그것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강한 건축인 만큼 생성과 소멸의과정이엄중히 제한된다는점에서심각한 문제점을야기하는 것이다. 한국의 아파트가 그렇듯 살기 위한 기계로제작된 콘크리트 덩어리 속 공간들은 그 차가운 물성만큼 우리의 감성 또한 획일적으로 만들어버렸다. 그 누구도 콘크리트의 미덕을 의심하지 않지만 그 공간 속의 잔인한 감성의 소멸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러한 감성에 대한 거세는 모든 건축을 재료적 감성이 아닌 공간의 면적, 즉 재화의투자적 가치 속에서 건축을 생각하게 만들어버렸다. 이러한
콘크리트의 소멸 불가능성은 자본을 무한히 팽창시키는 속성과 함께 20세기 문명의 진화를 이루어 왔다. 하지만 달력 속전원주택을그리워하듯본질적으로인간은균형 잡힌 삶을 지탱하게끔 설계되어 있는 듯하다. 척박한 기후와 환경 속에서도 자신의 보호지, 즉 셸터Shelter를 구축해 가며 그 지역에최적화된 건축양식을 만들어내는 건축공간들은 그 인간이 지닌균형으로서의본성의속성들을증명한다.
이렇듯 캐나다의 목조건축은 그러한 토속적 Vernacular 건축의 특성, 즉 셸터로서의 기능과 주변 자연 대지의 풍광 속에서 이해해야
만 그 본질적인 면을 들여다볼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은 공간의 확장성이아닌 구축성, 공간의 불특정한 익명성 대신 지역적 특수성이 그 형태적의미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들의 박공지붕 형태가 단순한이상향에 대한 환상에 의한 것이 아닌 기후적인 요건을 극복하기 위한기능으로부터 시작되었음을 드러내고 있다. 척박한 기후조건을 극복해내는 과정으로 건축이란 자신들의 의지를 드러내는 형상물이자 미학적감성을 외부로 드러낼 수 있는 좋은 매개체인 것이다. 이렇듯 그들에게목재는 그들의 대지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건축 재료이자어쩌면 그들이 유일하게 내세울 수 있는 문화적 정체성을 담고 있는 물질인것이다.
또한 목재란 단순한 건축 자재의 의미를 넘어서 문화적 상징체로서 그들의감수성을대변한다. 끝없이펼쳐지는스프루스숲은로키산맥의그험준한깊이만큼깊고도넓다. 어쩌면이러한대지조건에순응하는양식으로서의 건축이야말로 시대를 초월하는 영원한 속성을 가지게 되는 것이아닐까? 또한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전원주택의 환영은 그들에게는 살기위한실체그자체였던것은아닐까? 그것은모더니즘과포스트모더니즘의 광풍 속에서 수많은 전통적인 가치를 버리고 부정해야만 했던 우리의건축 역사와 확연히 대비된다. 우리의 지난 50년 건축 역사가 서구적 가
치에 대한 맹신과 전통적 재료의 부정 속에서 이뤄졌다면 그들은 그들이지켜온 가치에 대한 확신과 이에 대한 재료의 기술적 구축을 이뤄왔다.
즉단순히전통의가치에대한존중차원에서의목재사용이아닌현대적공간으로서 수많은 공간 양식에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박제된전통이아닌현재살아서숨쉬고있는생명력있는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구조적으로 개량된 목재의 적극적인 사용으로 인한 현대적인 공간으로의 확장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특히 구조용 집성재, 글루램Glulam은 우리의 철골보(Girder)만큼이나 도시 곳곳에 실질적으로사용되고 있었다. 그것은 철골 구조가 지탱해야 하는 구조적인 기능들을충실히 해결하면서 목재 그 자체가 지니고 있는 따뜻한 감수성을 내·외부 공간에 적나라하게 드러내준다. 이러한 목구조의 현대적 진화로 말미암아 공간은 재료 자체가 가지는 소재의 특수성들과 결합하여 새로운 감수성의 미학을 이끌어낸다. 즉 철골과 목재, 유리와 목재의 결합 등 다양한 형태의 구조적, 재료적 결합에 의해 콘크리트와 철골만으로 지탱해오는 우리의 공간적 감수성과는 차별화된 그들의 독특한 내적 감수성을대변하는 공간을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공학적 목재의
사용이 아닌 현대 건축공간의 진화와 결부되어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그것은 공간의 기능만큼이나 중요하게 우리 삶의 감수성과결부되어있는것이기때문이다.
끊임없이 적용되는 현대 공간 속의 목재는 단순히 목재의 실용화를 넘어서 그들의 감성이 또 다른 차원에서 진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왜냐하면 감성이란 재료와 사람이 만나는 표피에서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재료란 그곳의 사람들이 그들의 감성으로 해석해낸 실체이며 그 재료와 감성이 만나는 지점에서 우리는 문화적인 정체성을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달력 이미지 속에서 우리 저편의 환영을 좇아왔던 것인지 모른다. 서구화라는 명목을 핑계 삼아 우리의 가치에 대해 폄하하면서도 애써 지금까지 그 감수성의 실체를 외면
한 것이 사실 아닐까? 문화란 환영이 아닌 현재이며 실체다. 그 실체는타인의 것에 대한 동경이 아닌 자신의 주변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그 속에서 생겨난 소박한 것이다. 그것은 살아 있기에 쓰일 수 있는 것이며쓰이는 것이기에 살아 숨 쉬는 것이다.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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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의 시선 ② 환영과 실재 속을 여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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