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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EDITION | 귀농·귀촌 트렌드 읽기 ③

삶의 패러다임을 바꾼 이들
생태 공동체 기대리 선애빌


전국적으로 수많은 귀농·귀촌 마을이 조성되고 있다. 그러나 잘못된 예측으로, 관리 부실로 입주민을 모으지조차 못 하거나 생긴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떠나 폐허가 된 곳을 심심찮게 보게 된다. 그러나 여기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공동체를 형성해 가는 이들이 있다. 우리나라 4곳, 국외 3곳에서 같은 이름으로 같은 목표를 지향하는 이들, 바로 ‘선애빌’이다. 가장 모범적인 곳이라 꼽히는 충북 보은 기대리 선애빌을 찾아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글 홍정기 기자 사진 최영희 기자 자료 협조 기대리 선애빌 070-7845-3088 www.gidaeri.com

“우리 마을은 지난 2012년 한 해 동안 18억 원을 기부했다.
좀 더 정확히 하자면 1,825,000,000원이다.
우리 마을의 주민이 50명 정도이니, 1인당 3천6백만 원 정도이다.
그런데 이 사실을 모두 모른다.
나도 오늘 계산을 해보고 나서야 정확히 알게 되었다.
 
배경은 이렇다.
생태공동체를 지향하는 우리 마을 기대리 선애빌은 지난 1년 동안 생태화장실을 사용했다.
마을 주민 모두가 생태화장실을 사용하면서 절약한 맑고 맛있는 지하수가 무려 1,825,000리터이다.
요즘 1리터의 맑은 물을 사 먹으려면 얼마인가?
1,000원은 있어야 한다.
그렇게 계산해보면 우리 마을은 18억 원을 절약한 셈이다.”
- 네이버 블로거 ‘봄나비’ 글 중


충북 보은군 마로면 기대리 788-1번지 일대 2만여 평에 놓인 기대리 선애빌은 환경과 에너지 문제, 인간성 회복 방안 등을 고민하고 연구하며 이를 실천하려는 도시에 거주하던 명상 동호회 회원들이 모여 조성한 마을이다. 한의사, 간호사, 약사, 법무사, 교사, 세무공무원, 화가, 작가, 숲 해설가 등 여러 직업을 가진 27세대 50여 명이 산다.
이들은 삶 속에서 친환경 에너지와 생태 순환 시스템을 연구, 적용하는데 도시민을 대상으로 ‘전기 없는 날의 행복’, ‘지구 힐링 콘서트’, ‘생태 명상 스테이’ 등을 열어 자연과 생명의 소중함을 알리고 있다.
선애빌은 마하트마 간디의 말을 빌려 설립 취지를 이렇게 설명한다. “만일 누가 하나의 이상적인 마을을 만들 수 있다면 그는 나라뿐만 아니라 어쩌면 전 세계의 모범을 제공한 것이다.”
기대리 선애빌 양승환 대표는 “자연보존이라는 기존의 환경 개념을 뛰어넘어,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고 교감하는 ‘생태’라는 개념을 발전적으로 해석하고, ‘생태적인 삶의 방식’을 통해 또 다른 문화를 모색하고 창조하는 마을”이라고 덧붙인다.
이를 위해 선애빌은 인간과 자연의 교류를 바탕으로 조화로운 삶을 살고자 생태 공동체 조성 및 농업 회사 법인 설립, 지속 가능한 에너지 실험, 참된 소비와 생산의 선순환을 실천하는 대안적인 삶 제시, 지역 경제와 문화 발전 도모 및 친환경 생태 공동체 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하늘, 자연, 사람을 사랑하는 마을’ 선애빌

선애빌은 명상학교 수선재 회원들이 만들어가는 생태 공동체이자 명상 문화 공동체다. 현대사회의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자연과 하나 돼 식량과 동력을 자급자족하며 영성을 키우는 교육을 실시하고, 보람 있는 삶과 아름다운 마무리를 할 수 있는 선인류적 삶의 모형을 제시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선애仙愛란 ‘선을 사랑한다’는 의미로 선애빌은 ‘하늘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마을’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1. 생태주의 공동체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생태주의 원리에 근거하여 해결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첫째 유기농법으로 작물을 기르고, 둘째 생태 건축(자연 소재, 생태 화장실 등)으로 집을 짓고, 셋째 대체에너지(태양열, 지열 등)와 대체 동력을 사용하고, 넷째 지구 자원(에너지, 물, 전기 등)을 아끼고 재활용(빗물 활용, 오수 재활용)을 실천한다.

2. 사랑 공동체다
자신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고, 하늘을 사랑하고, 우주를 사랑하며, 오직 사랑을 근본 가치로 살고자 한다. 이를 위해 생활 속에서 11가지 건강 지침과 18가지 행동 지침을 실천한다.

3. 영성 공동체다
인간과 우주의 창조 목적인 진화에 동참하는 삶(우주가 가고자 하는 방향에 일치하는 삶)을 살고자 한다. 사람은 자신이 왜 태어났는지, 경험을 통하여 무엇을 배우고 가야 하는지,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알아야 한다. 이를 위해 우주의 기운으로 하는 깊은 호흡을 생활화한다.

4. 지식 공동체다
인간 본성에 닿은 문화, 마음을 위로하고 힘을 주는 파장이 들어있는 예술문화 구현을 위한 선문화 콘텐츠 공동체다. 또한 대안교육과 대안의학 공동체다. 선애빌은 특별한 사람이 모여 사는 곳이 아니라 일반적인 누구나가 취할 수 있는 삶의 형태로 하나의 모델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5. 선애빌은 학교다.
늘 자신의 마음을 관찰하고 비워내는 것이 생활의 기본이다. 하루 4시간 명상하고, 4시간 자연 속에서 일하며, 4시간은 자신의 삶을 문화적으로 가꾸기 위한 다양한 취미활동을 한다. 마을에서의 삶 자체가 바로 가장 이상적인 마을이라는 학교의 재학생이 되는 것을 지향하는 것이다.  

삶의 패러다임 전환…생태 공동체 조성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양승환 대표는 학교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풀 요량으로 명상학교를 찾았다. 그곳에서 깊은 명상을 통해 인간을 비롯한 자연과 지구의 상태를 바라보고 교감하는 이들과 친분을 쌓게 된 그는 자연재해 실태와 환경 파괴 현장 조사를 하면서 황량해진 자연환경만큼이나 인간성마저 황폐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결국 자연성 회복이야말로 현대사회의 근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책임을 알게 돼 연구와 실험을 진행했다.
이러한 의식에 공감하는 이들을 모아 연구 모임을 만들었고, 해결책을 찾고자 우리나라 마을 성패 사례를 분석하고 영국, 호주, 인도, 미국, 독일 등지로 답사를 떠났다. 5년여의 모임과 연구 끝에 내린 결론은 삶의 패러다임 전환이었다. 양승환 대표는 “소비와 경쟁, 소유와 집착의 삶에서 공존, 나눔, 비움의 삶으로의 전환이 필요함을 깨달았다”고 밝혔다.
모임 구성원 30여 명의 첫 번째 해답은 생태 공동체와 대안학교 조성이었다. 말이 아닌 실천으로 옮겨보자며 의기투합했고 그 결과 충남 보은군 기대리에 생태 공동체 ‘선애빌’이 탄생했다. 선애빌 안착에 가장 큰 걸림돌은 원주민과의 화합이었다. 지역민의 마음을 얻고 이들과 더불어 함께 산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았다. 그래서 모임은 마을 완성 전부터 꾸준히 원주민과 접촉해 설득하고 이해를 구했다.
“도시에서 번듯한 직장도 있다면서 왜 내려오느냐?”, “혹시 종교 단체에서 기도원 같은 거 만드는 거 아니냐?”는 등 곱지 않은 시선을 무릅쓰고 접촉을 조금씩 늘려갔다. 각자 재능을 발휘해 마을의 모자란 부분을 채우고, 문화 공연을 개최해 어우러지는 마당을 마련하는 등의 노력이 이어지자 원주민들도 마음을 열기 시작했고 지금은 마을뿐만 아니라 가정 대소사까지 챙기는 막역한 사이가 됐다.
“마을잔치에 초대하고 품앗이도 하는 등 지금은 나아졌지만 처음에는 에너지를 많이 쏟았어요. 선애빌 취지를 설명하고 ‘우리만 잘살려고 온 게 아니다’, ‘지역사회에 도움이 되고 싶다’고 이장님을 비롯해 동네 어르신들께 말씀드렸지요. 지금은 지역사회에 뿌리를 내리는 시기이고 안정화되면 지역민과 함께하는 확장된 형태의 공동체를 꿈꾸고 있어요.”

 

생태관광·체험마을 인증으로 경제적 자립
지역사회의 안착과 더불어 경제적 자립 또한 선애빌의 고민거리다. “지금까지 모아둔 재산을 곶감 빼먹듯”하고 있지만 구성원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다면 상황 유지도 힘겨울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몇 명이 짐을 싸 도시로 유턴하기도 했다. 그러나 양승환 대표는 올해만 넘기면 내년부터는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일단 구성원 모두가 ‘마음은 넉넉하게, 물질은 소박하게’라는 모토를 잘 이해하고 있어요. 이곳에 오는 순간 도시에서처럼 물질 소비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경제적으로 큰 것을 바라지는 않지요. 우리는 행복을 추구하는 대신 물질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삽니다. 그렇다고 경제적인 문제에 전혀 관심이 없는 건 아니에요.”
이를 위해 선애빌은 세 가지 공동체 수익 사업을 벌인다. 친환경 농산물 가공·판매, 천연 비누·세재 등 친환경 제품 생산·판매, 체험 프로그램 운영이 그것인데, 특히 ‘전기 없는 날의 행복’이라는 체험 프로그램이 도시민에게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생태관광 인증을 받았다. 그리고 문광부는 선애빌을 녹색농촌체험마을로 지정했다.
“지금은 수익이 발생하는 단계이고요, 생태관광과 녹색농촌체험마을 인증을 받으면서 내년부터는 경제적 자립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반드시 발전된 모습을 보일 겁니다.”
다른 귀농·귀촌 마을이 그렇듯, 선애빌의 다른 고민은 교육에 있었다. 젊은 연령대를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교육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특히 중요했다.
이를 위해 선애빌은 대안학교인 ‘선애학교’를 지었다. 15명의 학생들이 있고, 안내자로 불리는 교사는 자신의 전공을 살린 마을 주민이다. 선애학교 아이들은 모두 마을 아이들이기에 주민 모두가 부모의 마음으로 아이들을 대하고 아이들 또한 어른을 부모처럼 따른다. 학생이 곧 자식이고, 부모가 곧 안내자(교사)인 것이다.

선애빌 최고령 김병시(76세) 씨

“우리에게 선애빌은 기적이다”
마을 조성 시작부터 함께한 선애빌 최고령 김병시 씨는 번듯하게 마을이 자리 잡은 게 기적과 같다고 했다. 뜻있는 돈 많은 몇 명이 지원해 조성한 것이 아니라, 넉넉지 않은 사람들이 십시일반 거둬 이렇게 성장한 것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란다.
“우리에게는 대단한 모험이었어요. 돈 많은 몇 사람이 지은 게 아니라 없는 가운데 서로 조금씩 모아 만들어 낸 과정은 굉장히 자랑스럽고 뿌듯해요. 우리에게는 기적과 같은 일이지요.”
강원도에서 태어난 김병시 씨는 선애빌에서 혼자 지낸다. 도시에 거주하는 장성한 자녀들과 의논해 입주를 결정했다. “나이 먹으면 정리할 시간과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요. 강원도에서 태어났지만 도시에서만 생활하다 보니 시골이 그리워지더라고요. 출세를 위해 도시로 나온 후 이렇게 말년이 되니 고향이, 시골이 그리워지더라고요.” 그러면서 그는 “이게 인간의 본성이 아닌가 싶어요”라고 말했다.
4년째에 접어든 선애빌 생활, 김병시 씨 일과는 새벽에 일어나 명상을 하고 아침을 먹은 후, 주변을 정리하는 것이 전부다. 나이가 있으니 다른 사람과 같이 힘든 일은 할 수 없다. 대신 그는 마을의 큰 어른으로서 늘 중심을 잡아준다.
“저한테는 여기 주민이 가족이에요. 아들 같고 딸 같지요. 그리고 명상을 통해 한마음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이 행복하고 즐거워요. 이기적인, 편의적인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 이렇게 조금씩 양보하면 행복한 삶이 찾아와요.”

 끊임없는 의사소통으로 조율하고 합의
다른 귀농·귀촌 마을의 애로점 중 하나가 입주민 간의 소통이다. 생면부지 남이 이웃이 돼 살아가야 하기에 사소한 것에서부터 마찰이 발생하는데 이를 제때 치유하지 못하면 이웃 간의 문제가 마을 전체의 문제로 불거지기도 한다. 어느 순간 담이 쳐지면서 적막함 마저 감도는 마을을 적잖이 봐왔다.
선애빌이 내놓은 해답은 끊임없는 의사소통이다. 일단 일주일에 한 번씩 마을 총회를 연다. 이 자리에서 주민은 서로의 묵었던 감정이라든지 어려운 점을 토론하면서 문제를 해결한다. 토론 방식도 다양하다. 동그란 테이블에 둘러앉아 허심탄회하게 논의하는 원탁회의, 만장일치제로 운영하는 화백회의 등이 대표적이다.
더불어 모든 회의에는 어린 학생들도 참가해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낸다. 이를 통해 모두가 마을의 주인이라는 의식을 심어주고, 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양승환 대표는 “회의는 빼놓을 수 없는 소통의 기재이자 마을을 유지시키는 근간이에요. 이러한 회의를 통해 주민은 공동체 속에서 서로 친구가 되고, 스승이자 학생이 되며, 주인공이자 관객이 되는 거지요. 그렇게 마을이 발전하고 진화하고 있어요”라고 전했다.
*
선애빌은 다른 귀농·귀촌 마을에 비해 비교적 까다로운 입주 조건을 가지고 있다. 기본적으로 명상 수련에 관심이 있어야 하고, 생태적인 삶의 방식을 인정하고 이를 추구하며 동참해야 한다. 일종의 폐쇄적인 공동체가 아니냐는 의문을 가질 수 있지만 선애빌 주민은 그래야 지금의 공동체가 오래 지속될 것이라 믿는다. 이들의 주장이 옳다고 믿는 근거는 선애빌의 확산 정도다. 보은 기대리뿐만 아니라 충북 충주, 전남 고흥, 전남 영암에 이어 국외 중국 청도,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 미국 뉴저지에도 선애빌이 들어섰다. 
그리고 선애빌은 또 다른 도전을 준비 중이다. 바로 개방적 형태의 선애빌로, 명상에 관심이 없더라도 생태적인 삶을 꿈꾸는 사람을 위한 지금보다 느슨한 형태의 공동체 마을 형성에 발 벗고 나섰다. 이들의 귀추가 주목된다.田

 


 

 

선애빌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아이들이 자연과 좀 더 친숙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운영 중인 나무 솟대 만들기 체험


모든 음식을 자급자족하는 선애빌. 이곳을 방문한 이들도 예외가 아니어서 자신들의 먹을거리는 직접 해결해야 한다.

 
전기 없는 날의 행복프로그램에 참가한 이들을 대상으로지구 힐링 콘서트가 열리고 있다


전기 없는 날, 참가자들이 직접 불을 지펴 밥 해먹고 있다

2010
년 조성된 선애빌에는 지금 27세대 50여 명이 산다


선애빌에 들어선 모든 시설 대부분은 주민이 힘을 모아 건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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