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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ME 03. 집의 새로운 청사진, 혹은 또 다른 프로파간다

건축가는 공간이라는 건축의 본질, 시대 정신, 그 시대의 산업 재료로 구축한 진정성으로 집을 지으려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시대를 관통하는 미학과 현대적인 감성, 시대를 뛰어넘는 가치를 이끌어낸 집을 기대한다. 삶을 담을 공간으로서의 좋은 집에 관해 구체적인 해답을 찾아본다.

Q. 건축주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은 좋은 건축가를 만나고 적절한 설계비를 책정하는 것이라는군요. 좋은 설계는 무엇이 다르고, 예산에 맞춘 설계는 가능할까요? 실제 사례를 들어 설명해 주셔도 좋을 것 같네요.

김성우 인연과 운명인 것 같습니다. 좋은 건축가와 안 좋은 건축가가 따로 있는 건 아니고 경험상 그러한 관계는 서로 만들어 가는 것 같습니다. 설계비에 관해서는 우선 설계는 좋게, 설계비는 싸게라는 맞지 않는 공식을 버리고 충분한 상담을 통해서 정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강주형 많은 경험도 중요하겠지만, 건축주와의 성향이 어울리고 호흡도 조화를 이루는 건축가야말로 필요로 하는 좋은 건축가가 아닐까 합니다. 집을 설계하고 짓는 과정은 건축주와 그 가족이 떠나는 여행과도 같기에 그런 여정을 함께 격려하며 즐기는 동반자가 또한 좋은 건축가이겠지요. 대부분의 경우 면적, 기능, 재료 등 건축주가 기대하는 공간 대비 예산이 적절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주택을 설계할 때, 건축주의 예산에 맞춰 설계과정 내내 자제하고 줄이고 제어하는 대신 오히려 건축주의 기대를 최대한 구현할 수 있도록 밀고 나가는 방향을 채택하곤 합니다. 그 과정에서 건축주와는 우선순위를 정리하는 데 미련과 후회보다는 기대와 설렘을 유지하는 게 효과적이라 할 수 있지요.

이재혁 좋은 설계는 자신이 원하는 집의 구상을 건축가를 통해 좀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시공사를 만나 생기는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줄여준다면 더 좋은 설계입니다. 공사하기 위해 집을 짓는 것이 아니고 내가 필요로 하는 집을 만들어야 목표가 완성되는 것이니 가격이 싸다거나 빨리 지어진다고 좋아할 일이 아닙니다. 예산에 맞춘 설계는 건축주가 욕심을 버리는 데서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에 집중해 그것을 충실히 만들고 꼭 필요하지 않은 것을 최대한 덜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기후도 다양하고 전쟁도 겪어서 무엇이든 철저히 준비하는 것에 익숙해진 국민입니다. 그래서 집안에도 쓰지 않는 방이나 물건들이 가득합니다. 갖고 싶은 욕심은 끝이 없는데, 그것이 예산에 맞춰진다면 아마도 날림공사일 가능성이 큽니다. 한번은 예산이 1억뿐이라는 건축주가 찾아왔습니다. 제 경험으로 20평 이상의 집은 어렵다고 하니 그분은 다시 연락이 없었습니다. 아마도 그렇게 말한 저에게 실망했을지도 모릅니다. 나중에 들으니 친구분과 함께 땅콩집을 지으셨다고 합니다. 토지비용도 반으로 나누고 아마도 설계비도 싸게 하셨을 것입니다.

김동희 좋은 설계는 건축주의 성향과 삶의 취향에 가장 잘 부합하는 집이라고 생각합니다. 집은 일반 건축물과 사뭇 다른 부분이 많아서 건축가의 개인작품이라기보다는 건축주의 삶에 맞추는 맞춤복에 가깝습니다. 설계비 예산은 건축가가 건축주의 삶에 대해서 충분히 고민하고 고려해 부담이 없을 만큼의 비용이면 가장 좋겠지요.

전성은 좋은 설계란 주어진 조건과 예산, 그리고 그 설계에 담겨 있는 잠재성이 있을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의뢰인의 생각을 읽어 건축가의 어휘로 발현시키는 일이 건축설계인데, 좋은 설계라고 평이 내려지는 프로젝트들을 보면 건축주와 건축가의 생각이 일치했을 때입니다. 그래서 이 설계는 나쁘고 저 설계는 좋다는 이원화된 평가는 힘들겠죠. 집을 짓는 것은 마치 건축주와 건축가의 결혼과 같거든요. 그러니 설계하는 기간은 결혼하기 위해 상대방과 서로 연애하는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정말 그렇게 즐거웠으면 하는 바람이 많죠.

김시원 좋은 설계라, 참 어려운 문제인데요. 제 생각에는 첫째, 건축주의 생각이 건축사의 의도로 잘 구현된 설계가 좋은 설계이고요. 또 하나는 이 좋은 의도가 잘 나타나는 충분한 디테일과 도면 등이 있는 설계가 좋은 설계가 아닌가 싶습니다. 예산에 맞춘 설계는 가능하지만, 건축사가 설계 중 건축주의 생각을 많이 고려해 줄 때 가능하죠. 무조건 예~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고 발주방식이나 자재 수급 등에서도 충분히 공사비를 조정할 수 있습니다. 물론 CM계약처럼 건축주로부터 권한을 부여받을 때 가능합니다.

문영아 건축주가 원하는 라이프스타일을 담을 수 있는 공간을 잘 만들어 냄과 동시에 건축가의 철학이 함께 깃들어 있어야 좋은 설계라고 생각해요. 예산에 맞춘 설계는 쉽지는 않은 부분입니다만, 제 경우는 날씬한 사람이 옷맵시가 더 나는 이치와 마찬가지로 가용 면적의 여유치를 5~10%만 줘도 예산 대비 좋은 집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해 드립니다. 예산에 맞춘 설계나 시공을 원하시는 경우 품질이 낮은 집이 될 가능성이 크므로 잘 설득하는 수밖에 없지요. 실제로 구리 갈매지구의 건축주처럼 흔쾌히 승낙해 주시는 분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Q. 미래의 집에서 재료는 상당히 중요합니다. 좋은 집의 유일한 가치는 아니지만, 에너지 효율성을 따지는 기술적 발전을 기대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좋은 집, 나쁜 집, 이상한(혹은 독특한) 집에 관한 건축가로서의 기준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이재혁 재료, 공법 등 다양한 방법으로 집짓기를 시도하는 건축주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건축사도 그런 요구에 부응하려면 공부를 좀 많이 해야 할 것입니다. 저도 우연한 기회에 목조건축을 공부하게 되었는데, 이제는 건축주에게 목조건축의 장점을 설명하고 추천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재료나 공법은 의욕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실증의 산물이어야 합니다. 주택이 실험실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 번은 스트로베일하우스를 하고 싶다는 분이 계셔서 말렸습니다. 지어진 사례도 거의 없는 마당에 남들 말만 믿고 집을 지을 수는 없지 않느냐고 설득하려 했는데, 역시 다른 곳으로 가셨습니다.

김성우 재료는 건축가도 상당히 고민하는 부분입니다. 질문과 같이 에너지 성능을 포함한 기술적인 부분과 더불어 예산문제 등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또 단순히 성능적인 측면만이 아니라 심미적인 측면과 취향, 주변 상황 등도 재료 선택에 중요한 부분입니다.

홍재승 건축가의 기준이 존재할 수 있겠지만, 건축주의 입장이 더욱 중요합니다. 좋은 집은 아파트같이 최적화된 집이겠지만, 이상하고 독특하게 커스텀 메이드로 만들어진 집이라면 주택으로서 좋은 집이라고 생각해요. 각자 살아가는 방식과 기호가 수천만 가지인데, 우리는 왜 이토록 똑같이 살아가고 있는지 신기하다고 느낀 적이 많거든요. 개개인의 개성보다는 집단의 관계성을 중시하는 동양적 철학과 윤리 때문인지... 저는 거실 공간에 TV를 설치하지 말고 이동식 의자를 두라고 권해요. 아니면 가장 빛이 잘 드는 곳에 주방과 다이닝룸을 두라고 건축주를 설득하기도 하고요. 한옥 대청마루를 다양하게 활용하던 것을 비교해 생각하면, 지금의 거실은 특정 기능실 혹은 시청실 수준이 아닌 다기능실이 되도록 비어 있는 경우가 많죠. 이런 면에서 맨션에서 주택으로 바뀌면서 일본 건축가들이 시도한 다양한 평면 개발과 공간 활용성에 대해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김동희 집은 재료 이전에 공간이 더 중요하겠지요. 건축주에게 맞는 공간과 느낌을 살린 집을 좋은 집으로 추천합니다.

전성은 건축은 그 시대의 재료와 기술 수준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건축만큼 시대정신과 시대발전 상황이 발현돼 나오는 결과물도 없을 겁니다. 제 경우에는 건축설계를 하던 초기에는 좋은 집과 나쁜 집, 이상한 집에 대한 기준이 명확했던 것 같아요. 그러나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은 오히려 다양성을 존중합니다. 이유는 간단해요. 나쁜 집이면 헐릴 것이요, 좋은 집이면 오래 남아 있잖아요. 그런데 그 나쁘고 좋다는 기준은 주택의 경우 매우 자의적이어서 보는 사람의 주관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많아서 이 집이 좋다거나 나쁘다고 함부로 말할 수는 없어요. 주택이라면 그 집에서 사는 집주인과 얼마나 잘 어울리느냐에 따라 호불호가 가려지겠죠. 이상한 집? 이상한이란 어휘는 이상하다라는 것 자체로 지니는 의미가 있어요. 제 개인적으로는 이상한건축물을 설계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이상한 집에 대해선 재미있다고 평가하고 싶네요.

김시원 제가 생각하는 좋은 집은 말 그대로 좋은 설계 의도대로 잘 반영해 지은 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반대로 하자가 많거나 건축주와 무관하게 건축사의 의도만으로 지은 집은 아무리 훌륭하다 생각해도 좋을 집이 될 수는 없을 겁니다.
Q. 건축가는 공간이라는 건축의 본질, 시대정신, 그 시대의 산업 재료로 구축한 진정성으로 집을 지으려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시대를 관통하는 미학과 현대적인 감성, 시대를 뛰어넘는 가치를 이끌어낸 집을 기대하는지도 모릅니다. 앞으로도 문화를 드러내는 척도로서 집은 주목을 받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집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요? 각자 그리고 있는 집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김성우 질문의 내용처럼 삶이 녹아있는 진정성 있는 집이 많이 나와서 서로에게 자극을 주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다면 건축문화 환경이 바람직하게 자리 잡아 갈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주택을 설계하면서 추구하는 것은 영혼의 안식처가 될 수 있는 집을 짓고 싶다는 생각입니다.

강주형 전체의 가치를 우선하는 시대를 거쳐오면서 우리네 집들도 몰개성을 넘어 몰개인의 공간으로 구성하게 됐습니다. 물론 유교적 가치만이 절대 선은 아니겠지만, 남녀의 영역을 존중하던 전통 건축이 새삼 그리운 현대사회입니다. 가족 간에도 부부간에도 개인을 존중하고 서로의 거리를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집이 필요합니다. 아빠와 엄마, 자녀의 공간으로만 규정되던 집도 아빠, 남편, 남자, 엄마, 부인, 여자를 위한 공간으로 풍부해져야 합니다. 가장 근본적인 공간인 집이 그렇게 된다면, 우리 사회 전체적으로도 다양한 개인의 개성과 권리를 존중하는 가치가 향상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김동희 과거, 현재, 미래를 통틀어도 정답이라고 이야기하기 힘든 것이 집짓기일 것입니다. 삶의 유형이 그대로 형태로 드러나는 집이 최고의 집이라고 봅니다. 재료는 시대의 반영일 뿐입니다. 아직도 깨어 있지 못한 많은 사람이 재료 운운하는 것이겠죠.

홍재승 먼저 집은 재산적 가치 창출을 위한 수단에서 독립돼야 합니다. 유럽처럼 부동산이 안정되면 오랫동안 집을 소유하도록 만듭니다. 그 집에 켜켜이 쌓아올린 삶의 흔적을 저는 좋아해요. 반면, 아파트의 최적화된 공간이 기준이 되고 삶의 기억으로 남아 있는 세대에게 불편함의 미학이 통할지는 모르겠어요. 불편함이란 편리함의 반어가 아니라 서로 다르게 존재하는 것이고 합리적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인데... 그래서 집의 미래는 다양성이 인정돼야 하며 어느 정도 갈등도 공존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개개인의 삶에 대한 창의성에 기반을 두고 지어졌으면 합니다. 집보다는 사람이고 'How' 어떻게 짓느냐 하는 것보다는 'why' 어떻게 사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죠. 자칫 삶의 방식을 성찰하지 않는 집짓기의 욕망과 건축가는 단순 조력자는 아니었는지, 반성을 통해 미래를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이재혁 주택이라는 건축의 분야는 매우 개인적인 영역입니다. 주택을 지으려는 사람들은 개성이 강하고 독특한 자기만의 것에 대한 갈망이 큽니다. 독특한 취향을 가진 건축주가 그것을 이해하고 실현할 수 있는 건축가와 만나면 정말 좋은 집이 지어질 것입니다. 저는 다양한 건축주의 집에 대한 요구사항들을 공간의 구성으로 풀어가는 편입니다. 특별한 재료나 기술을 사용하기보다는 공간을 구성하는 방법을 여러 가지로 변화시켜 독특한 집을 만드는 방법에 관심이 많습니다.

전성은 현대사회에서 선택해 짓는 집들은 순수한 관점에서 보는 주택이라는 범주는 이미 벗어났다고 봅니다. 그곳에는 관념이 들어가고, 심리적 가치가 우위를 차지하기도 하며, 경제성에 의해 형태가 바뀌고, 사회적 합의와 사회적 기능을 수용하는 집들이 출현하고 있어요. 이 다양한 의미와 가치에 의해서 발현되는 새로운 주거형식과 주택들이 앞으로 주택시장을 이끌어 갈 것입니다. 또한 예전에는 주택이라 하면 영원히 사는 곳이란 생각이 바탕이었다면, 지금은 주택도 아파트와 마찬가지로 어느 일정 기간 가족 구성원의 특별한 삶을 담기 위한 주거형식의 하나일 뿐입니다. , 유목민이 그 시기에 필요한 집의 형태와 구성을 찾듯이 다양한 집들이 지금보다 더 많이 공급된다면, 지금의 단순 환금성에 의해 쫓아다니던 주택이 시기적 가치와 삶의 가치에 의해서 선택되고 다시 새롭게 지어질 것입니다.

서경화 아마도 선택의 폭이 넓어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여유 있는 분들은 전통적인 단독주택을 짓고, 나만의 집을 갖되 경제적으로 부담인 분들은 함께 모여 짓기도 하고요. 거주자가 직접 건물에서 경제활동이나 문화를 누릴 수 있는 집을 선택하고, 혹은 소유의 집보다는 다양한 집에 살고자 골라 사는 집을 선호하는 유목의 집도 늘어날 것으로 생각합니다. 기술이 발전하듯 사람들은 더 영리해지고 있습니다. 경제능력이 없어 집짓기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영리한 방법으로 그들만의 집을 선택하는 것이죠.

김시원 미래의 집은 좀 더 컴팩트해지고 자동화되지 않을까요? 저는 바닷가 혹은 전망 좋은 곳에 지하화된 집을 짓고 싶습니다. 지상은 작은 구릉처럼 외부에 열리고, 빛은 충분히 들어오면서도 지하의 아늑함이 자연으로 열린 집. 언젠가는 지을 수 있겠죠?


집을, 하다라는 테마로, 여러분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오늘 이 자리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여러분들과의 지속적인 만남을 통해 집의 현재와 미래를 다시 한번 생각하면서 좋은 집을 짓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바쁘신 중에도 좌담회에 참석해 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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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FEATURE] 집을, 論하다! - THEME 03. 집의 새로운 청사진, 혹은 또 다른 프로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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