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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나만의 길을 찾아 자연으로

아침마다 지옥철을 타고 출근해 모니터 화면만 바라보며 일하다, 달을 보며 퇴근하는 삶. 누구나 그런 삶을 꿈꾸진 않았을 것인데도 우리 대부분은 이렇게 살고 있다. 스스로의 가치관에 반대되는 부조리를 보고도 못본 척하기도 하고 돈을 위해 몸과 마음을 혹사하기도 한다. 자괴감이 들어도 ‘이게 사회에 적응하는 건가 보다’고 생각하면서도 씁쓸함은 어쩔 수 없이 느껴진다.
이런 ‘평범’한 도시 속의 삶에 반기를 든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다른 사람과 함께 공존하면서 내가 원하는 삶을 영위하는 방법을 찾아 농어촌에 터를 잡는 것이다.
실제로 전북 완주군 고산면에 위치한 한 카페 ‘이웃 린(隣)’은 다른 사람(아이들)을 위한 목적으로 지어졌다. 대학에서 건축디자인을 전공한 국태봉 씨는 건설회사 재직 후 프랑스유학을 다녀온 소위 잘나가는 인재였지만 ‘남을 위해 살고 싶다’는 생각에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래서 마련한 카페에서 아이들을 위한 교육공동체를 구성해 인문학 강좌, 청소년 멘토링, 문화체험 등 다양한 강좌를 연다. 만약 도시에서 돈만 벌었다면 꿈꾸기 힘들었을 성과다.
최근 전국 곳곳에 이웃린과 비슷한 모임(공동체) 등이 조성되고 있다. 지리산 인근 ‘카페 빈둥’부터 전북 무주 ‘구름샘마을’ 등이 대표적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공동체적 기반이 무너진 현대 사회가 다시 사람과 이웃의 가치를 찾게 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경제적 어려움과 노동시장의 유연화, 농촌의 위기 등으로 개인이 파편화되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공동체(마을)을 찾게 됐다는 것이다.


INTERVIEW
“함께 살고 싶어 도시를 떠났죠”

“거창한 이유로 서울 생활을 박차고 온 건 아니었어요. 그냥 내가 행복한 교육을 하고, 행복한 생활을 하려면 서울을 떠야겠다는 생각에서였죠.”
한석주 사단법인 농촌공동체연구소 소장에게 도시를 떠난 이유에 대해 묻자 ‘별거 아니다’라고 말하며 소탈하게 웃었다. 하지만 과거, 한 소장은 소위 명문대 출신에 서울 강남의 한 중학교 역사 선생님이었다. 누군가에게는 꿈이자 목표일 수도 있는 그 자리를 쉽게 그만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 포기하고 내려오기까지 어려운 일은 없었냐는 질문에 그는 “내가 행복해지고 싶어서 그만둔 것”이라고 답했다.
“아이들을 입시전쟁에 몰아넣고 있다는 자괴감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과연 만족하며 살고 있는지를 계속해서 되물어봤죠. 시험에 나오는 정답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아닌, 진짜 수업을 하려면 결국 서울을 벗어나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한 소장은 이후 서울 마포 성미산학교와 경기도 성남 이우학교를 거쳐 지난 2005년 충북 제천으로 내려와 간디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이후 농촌 지역민을 위한 공동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누리마을빵카페를 열었다. 동네 주민을 위한 교육이나 문화공연을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였다. 다문화여성 등 지역민들이 빵카페를 공동으로 운영한다. 한 소장은 “카페를 통해 지역민의 경제적 자립을 돕는데 이는 가정 내 바른 교육으로 이어진다”며 “아이들이 엄마를 자랑스러워하고, 다문화엄마들도 소속감과 자신감을 가지게 된다”고 말했다. 이후 한 소장은 늘어나는 귀촌자들을 위한 마을목공소와 작은집 건축학교, 소목 작업장을 개설했다.
그는 현재 자신의 모습이 무척 만족스럽다고 말하며 활짝 웃었다. 인터뷰 때문에 억지로 만들어내는 표정이 아닌, 맑고 정직한 얼굴이었다.
“지금 어려운 일도 많고 아직 더 해야 할 부분도 많지만, 불만이 있거나 후회되지 않아요. 나만 행복하지 않고 더불어 살고 있기 때문이죠. 그게 제 행복이기도 하고요. 제가 서울을 뜰 때 반대하셨던 아버지께서 제천에 10년 만에 올라오셔서 ‘그래, 뭐 괜찮네’라고 말씀하셨어요. 제가 좋다니 됐다는 의미겠죠. 서울에 있었다면 계속 괴롭고 힘들었을거예요. 의지를 가지고 과감히 갈 길을 간 덕분에 진짜 행복을 찾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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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FEATURE 2. 나만의 길을 찾아 자연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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