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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곳에선

통나무 주택 시공현장 '뚝딱뚝딱' 망치소리 쌓인 눈을 녹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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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들이는 그리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어느 산 깊은 골에 숨바꼭질이나 하듯 꼬옥꼬옥 숨어버린 집을 찾아 헤매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건만, 눈이라도 내려 길이 가리워지면 술래가 되어 망연자실하게 된다. 하지만 고진감래(苦盡甘來)라 했던가! 고생 끝에 얻은 열매가 더 달듯 설경과 어우러지는 멋들어진 집을 담아낸다면 그 만족감이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구학산 중턱에 자리한 이 집들이 그러하다. 승용차로는 엄두도 못 낼 눈 덮인 산길을 겨우 오르고서야 만날 수 있었던 이 집들은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현장에서 조달한 낙엽송을 특이한 방식으로 쌓고 황토로 사이를 매운 이 집들은 아직은 미완성의 작품이지만 설경과 어우러져 한 폭의 수채화를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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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이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겨울의 서슬은 여전하다. 끈이지 않는 눈발은 이제 새하얀 정겨움이 아닌 시퍼런 매서움으로 다가오고 눈 쌓인 미끄러운 길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농사꾼이 독특한 방식으로 직접 집을 짓고 있다기에 위태위태한 빙판 길을 마다 않고 달렸다. 그렇게 약속장소에 당도했건만, 여정은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란다.

이제는 포장도 안된 눈 덮인 산길을 5리나 더 가야한다니! 정말로 고행이 따로 없다. 그래 내친걸음에 굽이굽이 산길을 산이 몇 번이고 중첩될 때까지 오르는데, 집은 그제야 저 멀리 능선위로 지붕의 윤곽을 드러낸다.

그런데 다가갈수록 또렷해지는 집의 윤곽은 뼈대만 앙상한 것이 상상했던 것과는 너무도 다르다. 건축주가 입주한 상태에서 두 해가 넘도록 공사를 했다기에 그래도 거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으려니 생각했었다.

하지만 집들은 이제 겨우 형태가 잡혀가는 중이었고, 단지 차고로 쓰여질 창고만이 완공된 상태였다. 그리고 건축주는 그곳에 임시 거처를 마련하고 생활하며 공사를 진행시키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초짜의 솜씨인데다 3채를 동시에 짓는 것이라지 만, 그렇다해도 이건 2년이 넘는 공사기간에 비해 진척이 너무도 더디다. 그러나 "농사꾼이 본업은 제쳐두고 딴 일에만 메달일 수 있느냐!"는 건축주의 말에 그제야 고개가 끄덕여진다.

농사꾼다운 말이다. 그는 이곳에서 옥수수며 취나물, 더덕 등을 재배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봄에는 씨를 뿌리고 여름이면 가꾸고 가을에는 이를 수확한다. 그러니 남는 시간은 겨울뿐. 눈오는 날 무슨 날 이래저래 제하고 나면 실제로 공사한 기간은 그리 많지가 않았을 것이다.

그가 이곳에 터를 잡은 것은 97년 7월의 일이다. 원주 부용면에서 사슴목장을 운영하던 그는 더 조용하고 경치 좋은 곳에 잔병치레가 많은 아내를 위한 휴식공간을 마련해 주고자 7개월 동안을 헤맸다.

그러다 결국 이곳 구학마을까지 오게 되었고 마을 가장 안쪽에 위치해 오염되지 않고 사람의 발길이 뜸한 이곳에 아내를 위한 공간을 꾸미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팔지 않겠다던 땅주인을 몇 개월간 조른 끝에 이곳 부지 4천6백평을 구입하게 된 것이다.

이곳은 사람이 살기에 가장 적합하다는 해발 6백50mm의 구학산자락이다. 동북쪽으로는 치악산이 자리해 있고, 서쪽으로 백운산이, 동쪽으로 매봉산, 배덕산, 남쪽으로는 천둥산이 두르고 있어 경치가 그만이다.

또한 사유지로는 마지막 땅으로 인간의 때가 전혀 묻지 않은 천혜 요새다. 그리고 땅을 볼 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탐을 낼만한 명당자리이기도 하다. 동네 어르신의 말에 따르면 구학이라는 마을이름은 이곳에서 9명의 대학자가 날 것이라는 예언에 따른 것이라 한다.

집은 모두 세 채가 지어질 예정이다. 가장 먼저 공사를 시작한 아내를 위한 보금자리는 이제 목공일은 모두 끝나고 봄에 있을 흙일만을 남겨둔 상태이며, 바로 윗터의 집은 현재 지붕공사가 한창 진행중이다. 그리고 골 건너 최근에 의뢰를 받은 후배의 집은 지금 막 나무깍는 일에 들어갔다.

계획과는 많이 달라진 것이다. 처음 그는 이곳에 자신과 가족들을 위한 공간만을 마련해 조용히 농사나 지으며 살아갈 계획이었다. 그러나 어떻게 알았는지 소문을 듣고 구경 삼아 찾았다는 선후배들이 이곳의 경관에 반해 부지를 팔라고 조르는 바람에 이리됐다. 설상가상으로 집이 지어지는 과정을 보고는 집공사까지 의뢰해 어떨 결에 건축가까지 되어버렸다.

그는 건축에는 일말의 지식도 경험도 없는 우직한 농사꾼이다. 그런 그가 이지경(?)까지 이른 것은 종잡을 수 없는 업체의 건축비 산정 때문이다. 처음 그는 자신이 직접 집을 짓게 되리라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저 집짓는 일은 건축가의 몫일 뿐, 자기와는 무관한 일로만 여겼다.

가족이 살아갈 집이 필요했기에 집을 지어야 했고 그래 건축을 의뢰하려 이곳저곳을 헤맸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그는 업체가 제시하는 터무니없는 공사비에 아연실색했고, 그래서 다른 방법을 모색하다가 결국 직접 건축에 나서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수개월에 걸쳐 집짓는 방법을 연구했는데, 자재는 어떤 것으로 할 것이며 공사는 어떠한 방식으로 할 것이냐? 등 여러 가지 문제를 고루 살폈다.

이 집에 사용된 목재는 현지에서 벌목한 낙엽송이다. 보통 낙엽송은 마르는 과정에서 트임과 뒤틀림이 심하다는 이유로 건축에 있어서 골재로는 잘 쓰여지지 않지만 그는 과감히 이러한 틀을 깼다. 연구를 통해 이를 극복할 나름대로의 방법을 알아낸 것이다.


우선 목재를 쌓는 방식이다. 이 집은 일반 서구형 통나무 주택처럼 나무를 나란히 쌓고 생기는 틈을 나무를 켜서 없애는 방법을 쓰지 않았다. 그렇다고 귀틀집처럼 '우물정(井)'자 형태로 목재를 쌓고 그사이를 흙으로 메우는 형식도 아니다.
목재는 최대한 자연 상태를 유지해 켬없이 나란히 쌓아올렸고 그 사이는 황토로 메웠다. 또 마르는 과정에서 생기는 트임공간을 계속해서 황토로 되메김한다. 서양 통나무집과 귀틀집의 두가지 방식을 교묘히 접목시킨 것이다.

그리고 문틀이나 입구의 맞닿는 부분의 뒤틀림은 원형의 홈을 파고 그 사이를 너트로 조이는 방법으로 방지했다. 공사는 조금 더 길어질 것으로 보여진다. 어쩌면 지금까지 해온 시간 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릴 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는 동네 사람들까지 나서서 공사를 의뢰한다. 겨울 햇살에 검붉게 그을린 건축주의 얼굴에 조금은 지친 기색도 없지 않다. 하지만 분명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하다. 무언가 자신이 해내고 있다는 만족감에서 오는 희열로...

어느덧 내리던 눈이 잠시 주춤한다. 허벅지까지 빠지는 눈을 헤치며 들이대는 카메라에 빙긋이 웃는 인부들과 건축주의 얼굴에는 삶의 진솔함이 베어있다.田

■ 글·사진 김성용

■ 건축정보


위치: 강원도 원주 신림면 구학리
부지면적: 준농림 전 총 4천6백평 (분할 윗터-2백16평, 골 건너 터-2백6평)
부지구입년도: 1997년 7월
부지구입금액: 평당 10만원
건축면적: 이인규씨 댁 40평(별채 20평 별도) 윗터 34평(창고 12평 별도), 골 건너 터 34평
실내구조: 방 3, 거실, 주방, 화장실 2, 다용도실, 보일러실
골조: 낙엽송, 황토
내벽마감: 황토미장 후 한지마감
지붕마감: 아스팔트싱글
바닥재: 온돌마루
난방형태: 심야전기
식수공급: 지하수
건축비: 평당 1백만원(토목 및 도로공사비 제외)
인터뷰/ 건축주 이인규·전영숙씨
"이 집은 아내를 위한 제 작은 정성입니다."

농사만을 천직으로 여기며 살아온 제가 겁도 없이 감히(?) 건축을 시도했습니다. 처음에는 건축비 조금 아껴보려고 시작했는데 이제는 3채나 되는 집을 짓는 건축가가 되어 버린 듯 합니다.

조금씩 완성되어 가는 집을 볼 때면 저도 모르게 희열을 느끼게 됩니다. 그렇다고 농사를 접고 건축가로 나설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저에게는 농사가 제일 맞습니다.

사실 이곳에 오게 된 것은 잔병치레가 많은 아내에게 휴식공간을 마련해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어쩌다보니 오히려 아내를 더 고생시키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때문에 언제나 아내에게는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그리고 한마디 불평도 없이 묵묵히 따라주는 아내가 고맙기도 하고요.

또 이렇게 추운 날씨에도 부족한 저를 도와 열심히 일해주시는 인부 여러분에게도 감사한 마음입니다. 공사는 앞으로도 조금 더 시간이 흘러야 마무리 될 것 같습니다.

어쩌면 지금까지 해온 시간보다 더 걸릴 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래도 이렇게 시작한 일 끝까지 그저 최선을 다해보려고 합니다. 결과는 중요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설령 결과가 썩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이해해 주시리라 생각합니다. 전문가가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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