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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가의 꿈을 실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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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태어나 결혼을 하고 일가를 형성하면 자기 혈육에 대한 애착은 더욱 커진다. 조상을 모시고 대대손손 자손들이 번성하여 장손의 집에 모여드는 종가집에 대한 소망...... 그것은 우리 어르신들에게는 인생의 마지막 소망일지 모른다.
모든 주문주택이 그러하듯 건축주의 요구와 비용까지를 타산하여 설계 시공되는 것이 기본이다. 그리고 계약에 따른 시공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여주 가남면 L씨댁을 짓는데는 다른 어떤 집보다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 어려움을 뚫고 7개월여에 걸쳐 하나의 집을 완공했다. 한 어르신이 만들고자 했던 종가집(?)에 대한 열망에서 우리 선조들의 풍수사상과 삶의 방식을 엿보고자 한다. 그리고 현대 흙건축이 풀어야 할 해법도 함께 찾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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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재순서
1. 사람과 집, 그리고 흙건축
2. 흙집의 현대화 실험
3. 노년의 삶을 담는 그릇
4. 종가의 꿈을 실현한다
5. 전통과 현대의 통일을 이룬다
6. 흙집의 현대화와 대중화 실현을 위한 제안


까다로운 선택과 주문

용인시 남사면 박선생님댁 지붕공사가 한참 진행중일 때 까다로운 주문의 흙집 신축 희망자를 만났다. 이미 산림형질변경 허가를 득했고, 건축설계 또한 확정된 상태였다.

개인적으론 고향 친구가 되는 그의 아버님이 큰아들에게 만들어 주는 주택이었다. 남은 여생을 두 어르신이 살다가 큰아들이 물려받고, 또 손자가 대물림하여 모름지기 종가집을 형성한다는 큰 꿈이 담긴 집이었다.

설계안은 철근 콘크리크조 방식이었으나 만남을 거듭하며 목구조 흙벽돌집으로 구조 변경이 이루어졌다. 건축주는 원래 전통 한옥 방식의 흙집을 생각하였으나 시공사를 찾기가 여의치 않았고, 전통 한옥 시공은 평당 건축비가 팔백만원∼천만원 하는 터라 엄두를 못 냈다고 한다.

결국 철근 콘크리트 구조의 설계를 확정하고 시공사를 찾던 중에 인연이 닿았던 것이다. 솟대전원마을과 박선생님댁 시공 과정을 보며, 흙집 신축을 결정하였다.

하지만 주문 내용은 까다로웠다. 첫째, 혈(穴)을 보호하는 기초방식을 찾아줄 것, 둘째, 목자재가(기둥,보)가 트고 휘는 것을 방지해 줄 것, 셋째, 거실 천장은 대들보 방식의 경사천장으로 할 것 등 ‘현대 주택 설계에 기초한 반듯한 흙집’을 만들라는 것이었다.

시공사로서는 많은 부담을 안고 출발하였지만 풍수를 신봉하는 선대 어르신들의 문화를 수용하여 그 바램을 현실적으로 가능케 만들고, 나아가 현대적 흙건축물로서의 품격을 한층 높이는 기회로 삼고자 했다.

혈(穴)을 보호하라 !

여주 가남면에 소재 한 집터는 건축주 어르신이 지관을 통해 구입한 임야였다. 산자락 아래로 길게 혈(穴)이 뻗어 있었으며, 그 혈은 집터의 약 50여m 앞쪽 이장한 묘자리까지 이어졌다.

풍수상에서 혈 자리는 종종 만물을 수태하고 길러내는 지모(地母)의 자궁이라고 생각되어왔다. 제 자리에 수태되어야 건강한 생명이 탄생할 수 있듯이 성주(건물의 신)가 태어날 자리로 중요하게 인식되어 왔던 것이다.

집터 안에서 건물의 위치와 방향을 정하는 일을 좌향이라 하는데 좌향이란 국혈을 중심으로 각 방위의 길흉을 살피는 방법이다. 즉, 좌향의 기준이 되는 주 건물의 자리는 집터라는 국면에서 혈의 자리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일반인들은 선뜻 선택키 어려운 북향인 집터에 좌향의 기준점을 혈에 두고 방위를 정한 뒤 혈 중앙에 건축주 어르신이 기거할 안방을 배치했다. 건축주 어르신의 최대 관심은 처음부터 끝까지 혈에 있었다.

혈을 끊지 않고 건축물의 기초를 세우는 것, 그에 기초한 평면배치는 좌로는 거실과 방, 우로는 주방과 화장실 등 물을 쓰는 공간으로 엄격히 구분시켰다.

산등성이에서 아래로 뻗은 혈이 경사를 이루고 있는데 봉곳한 혈을 건드리지 않고 건축물의 기초를 세운다는 것은 시공사로서는 어이가 없는 일이기도 했다. 건축물의 안정성은 기초에서 만들어지는 바, 자유스러운 터파기가 불가능한 상황은 난감했다.

옛집은 구들과 대청마루로 이루어 졌기 때문에 터다지기와 주추를 놓으면 기초 공사가 완료되었으나 현대식 난방일 경우 콘크리트 기초가 불가피하다. 주추대신 콘크리트 기둥을 세우고 공간을 띄워 바닥 매트를 할 수도 있으나 열효율 문제와 기초의 안정성 면에서는 불안했다.

결국 혈을 가운데 두고 그 높이만큼을 온통 콘크리트 기초로 하기로 확정했다. 하지만 착공 후 혈의 최종 상태를 확인한 건축주는 시공중에 확대 기초로 변경해줄 것을 요구했다. 확대기초로 변경하자니 혈 경사면 앞과 옆을 채워주어야 하는데 일반 흙을 성토하고 기초를 할 수는 없었다.

결국 소운반이라는 열악한 현장 상황에서 100㎥가 넘는 잡석 다짐과 물끊기 바닥 콘크리트 시공 후 옹벽+매트 콘크리트로 기초를 완성했다. 예상 견적의 2배에 달하는 물량투입, 3번에 걸친 공정변경 등으로 인해 시공사는 엄청난 타격을 받았다. 공사내역 변경으로 인한 추가 공사비 합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멈출 순 없었다. 흙집의 현대화를 표방한 우리의 실험은 풍수에 기초한 선대들의 소망 또한 끌어안아 승화시켜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입주(立柱)에서 상량(上樑)까지

하지만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기 시공된 건묵물의 목기둥과 보가 갈라지고 트는 현상을 지켜본 건축주는 이를 방지해 달라는 요구를 하였다. 하지만 서구 목조주택의 2×4, 2×6같이 방부 건조목이 아닌 이상, 더구나 비용문제까지를 고려한다면 무리한 요구일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찾은 대안은 기사용하고 있는 뉴송(뉴질랜드 소나무)을 강제건조(찜목)시켜 심하게 갈라지고 트는 것을 방지해 보자는 결론을 얻었다.

건조장에서 약 20여일 건조되어 70∼80%의 수분이 제거된 목자재가 현장에 도착했다. 강제로 수분을 제거한 상태인지라 목재가 수축하면서 일부는 휘었고 일부는 틈이 발생하였다. 이를 우려해 여유있게 자재를 주문한 바, 자재를 고르고 또 일부는 대패로 면을 잡아 교정하면 되는 문제였다.

하지만 건축주는 목자재 전체를 교체해 줄 것을 요구했다. 일차 가공된 자재는 현장에서 다시 다듬고 세워져 모양이 갖추어 지는 것이다. 기초공사 과정에서도 그랬고, 목자재에 대한 판단의 문제에 있어서도 건축주 어르신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것은 ‘다른 집보다 돈을 더 내어 짓는 집이니 요구할 수 있다’는 태도였다.

그것은 또한 어르신의 인생 역정에서 몇 차례 집을 지어본 경험의 잣대로 건축회사에 갖고 있는 이른바 ‘업자’에 대한 불신이 밑바탕에 깔려 있었다. 그것은 나아가 기성금을 지급하지 않는 형태로 나타났다.

시공사는 이 공사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장마는 다가오고 반입된 목자재는 천막을 쳐 놓아 비를 피했지만 곰팡이가 퍼져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결론을 지어야 했다.

자재를 반출하고 공사를 중단하려는 마지막 상황에 극적인 합의에 이르렀다. 일부 자제는 교체하고 기둥과 보의 목재각을 잡아준다는 조건으로 공사를 재개했다. 그렇게 20여일이 지나가 버린 것이다.

문제는 한판 시끄러운 가운데 일의 절반을 담당하고 있는 목수들이 지친 것이다. 또한 건축주의 요구대로 공사를 진행하려면 목수 인건비를 바닥평수 기준 평당 40만원 이상을 주어야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마음이 떠나가고 있다는 점이었다. 안타까웠다. 인건비가 문제가 아니라 인부들의 마음이 떠나면 훌륭한 주택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건축의 상식이다.

그 파란을 겪으며 시공사는 그래도 나아갔다. 콘크리트 기초 위에 간이 주춧돌 시공이 이루어졌다. 옛 건축은 기둥이 주추 위에 세워지는 것으로서 주추와의 긴밀한 결합이 구조적 안정성의 요체였다. 콘크리트 기초가 기반이지만 옛 맛과 기둥을 보호하기 위하여 간이 주추 방식으로 시공토록 했다. 그리고 기둥이 세워졌다.

옛 집에선 기둥세우는 작업을 입주(立柱)라 했다. 입주는 단순히 기둥을 세우는 작업만이 아니라 기둥의 머리에서 도리와 보를 결합시켜 건물의 뼈대를 형성하는 작업이다. 본 건물의 사각기둥과 도리 보가 걸리고 건물의 앞쪽 툇마루 전면엔 원형 기둥을 세워 본채와 일체형을 이루도록 했다.

깔끔한 마감을 원하는 건축주의 요구를 반영하여 서까래와 부연으로 된 이중 처마에 루바 사이딩으로 마감했다. 지붕의 경사도는 45도를 유지했고, 팔작지붕으로 구성했다. 지붕 전체는 트러스 공법으로 처리했으나 거실 부분은 가천장을 만들어 대들보와 마룻대(종도리)를 얹어 루바마감의 경사천장을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도 건축주 어르신은 마음을 놓지 않고 목수들의 옆에서 하루 일과를 마쳤다. 세우는 나무는 가지 쪽이 위로 향하도록 하고, 누이는 나무는 가지 쪽이 안으로 향하도록 했다.

이는 선조의 위로의 지향성과 안으로의 지향성을 담아냈던 문화였다. 이렇게 골조 공사의 지난한 2개월이 지난 후 마룻대가 올라가는 상량일을 맞았다. 어르신은 이 날에야 조급한 마음을 풀어놓았다.

이 과정에 오기까지 또 하나의 사건이 있었는데 안 어르신이 쓰러지신 것이었다. 하루종일 추적거리는 비가 내리는 날 이장한 묘터의 혼을 달래는 굿판이 벌어졌다. 그 혼백의 달램 때문이었던가...... 자손대대의 번성을 원하는 건축주 어르신의 열망이 간절해서인가...... 집의 틀은 그 골격을 갖추어 갔다.

지붕 처마의 네 귀를 들어 올려 한옥의 수려함을 살려내고 양반집 가옥에서나 있을 법한 널찍한 툇마루의 원형기둥이 집 전체의 안정성과 조화를 높여냈다. 기와공사가 마무리되고 별채까지 모습을 드러내자 건축주 어르신의 얼굴은 더욱 밝아졌다.

아들을 앞장세워 다그치던 어르신은 “네 말을 들어 이렇게 지은 것이 잘했다고 생각한다”는 말씀을 남겼다. 모든 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진대 대대손손 물려줄 인생의 마지막 집이라는 데서 나타나는 조급함이 우리를 너무도 힘들게 하고 허탈하게 했던 것이다.

아마 여느 시공업체 같았다면 더 이상의 공사 진행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업적으로 본다면 명확히 거절했어야 했던 시공 과정이었다. 하지만 장인은 결과로서 말한다. 난관이 있다고 도중에 중단하는 일은 우리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진실은 통할 것이다.

현대 흙집의 창호는 어떤 것일까?

나머지 시공 과정은 다른 주문주택과 별다른 차이점이 없기 때문에 과정은 생략하고자 한다. 핵심적으로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현대 흙집의 실현 과정에서 나타나는 창호 시공 문제이다.

옛집은 샛기둥과 상방을 이용하여 문을 내고 중방 위에 창문을 작게 만들었다. 창호지 하나로 겨울 바람을 이겨내야 했던 이유였다. 하지만 전망을 중시하는 현대인의 생활과 집의 규모가 커짐으로서 발생하는 부조화를 극복하기 위해선 현대주택의 시원스런 창이 필수이다. 보다 현대주택의 맛을 내기 위하여 일반 주택의 창문을 내듯 동일한 규격의 창을 흙벽에 냈다.

고정창이 아니라 2짝, 4짝 미닫이 창, 분합창을 과감히 시도하였다. 하지만 기 시공된 건축물을 보며 보완 장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처짐과 왜소함이 완벽하게 극복되지 못했다.

그러한 이유로 이 집을 지으며 단열의 우수성과 견고함 때문에 서구 목조주택에서 널리 이용하는 시스템 창호도 검토하였다. 하지만 서구식 창호방식과 한옥식 창호 방식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또한 색상에 있어서도 대중적인 시스템 창호가 흰색밖에 없기 때문에 흙벽과 부조화를 이루었다.

결국 외창은 우드샷시, 내창은 창살목창이라는 이중창 형태의 틀을 유지하고 보완책으로서 2치×6치의 가창틀을 세웠다. 선조들의 창호방식을 응용하여 상방 역할을 하는 보에 가창틀을 찍어 달아 두께감과 처짐 방지를 동시에 해결코자 했던 것이다.

이 작업은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창호의 수직·수평이 정확해야 했고, 흙벽돌의 줄눈 선까지 고려되어야 했다. 발생하는 문제는 가창틀과 우드샷시·목창의 결합부위가 가창틀의 수축으로 인한 틈의 발생이 우려된다는 점이었다.

하나를 해결코자 하면 또 하나의 문제가 발생하는 실험의 연속이다. 분명 진보한 창호 방식을 만들어 냈으나 이를 보완할 또 다른 숙제로 돌아왔다.

흙벽의 단열은 그 어떤 소재보다 우수한데 겨울의 찬바람이 창문의 틈을 타고 황소바람으로 들어오는 현상....... 우리는 이것을 인정한다.

흙벽과 완벽한 창호의 결합, 이는 현대 흙건축이 풀어야 할 과제이며 우리는 여기에 대한 해답을 찾을 것이다. 단열의 문제, 기능성과 멋을 동시에 해결하는 독창적인 방식의 시공 기술력은 현대 흙건축의 기술을 한단계 끌어올리리라 확신한다.

종가는 자손들이 채워 넣는 빈 그릇이어야 한다.

집은 건축주와 시공사가 함께 만든다. 건축회사가 지어서 일반 분양하는 주택 역시 소비자의 선택을 받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다른 의미의 건축주(피분양자)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인 우리 사회에 있어 건축주와 시공사가 만드는 잣대-기준은 바로 돈이다.

평당 얼마짜리냐로 결론나는 우리의 건축문화에 있어 기본적인 대립구도가 형성된다. 건축주는 작은 돈으로 더 좋은 것을 원하고, 시공사는 더 많은 이윤을 목표로 일한다. 이것은 법칙이다.

하지만 하나의 집이란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만이 아니다. 장사꾼의 집과 장인의 손때묻은 집은 무엇이 달라도 다르다. 우리 사회에 팽배하고 있는 건축주와 시공사의 불신과 반목을 극복하고, 건축주와 시공사 모두가 함께 웃는 신명나는 집짓기란 불가능한 것일까?

일생 집을 세 번이나 직영으로 지어 보셨다는 어르신은 건축업자에 대한 불신과 경계가 팽배했다. 때문에 자신의 경험상 잣대로 모든 것을 판단하려 했다.

더욱이 기성금을 담보로 건축 업체를 좌지우지하려는 건축주들의 일반적인 경향까지 가세했다. 결국 “현대 흙건축의 발전”이란 자존심 하나를 걸고 7개월의 장정길을 마친 시공사에겐 상처뿐인 영광만이 남았다.

그 과정에서 수없이 되물음 해본다. ‘집을 지어주고 이윤을 남긴다는 사업적 측면’과 ‘삶의 그릇을 만들어 가는 장인으로서의 측면’이 대립할 때 과연 어찌해야 하는 것일까? 집도, 인간도 빈 그릇으로 남아 채우고 또 채우는 삶의 경륜을 쌓아가야 하지 않을까? 자손들이 채워 넣는 빈 그릇으로서의 종가집을 꿈꾼다.田

글 이동일(행인흙건축 대표 031-335-8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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