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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 설정에서 기둥을 세우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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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에 와서 삶을 평가하는 기준이 질적인 면보다 양적인 면에 치우치는 것 같다. 사람들은 모두 큰집 갖기를 소망하고, 20평도 안 되는 아파트에서 30평, 40평, 50평이 넘는 집으로 옮기는 것을 사회적인 성공으로 여긴다. 마치 넓은 아파트에 사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되어 버린 인상이다.
큰문, 큰 침대, 큰 유리창, 큰 차 등 큰 것만을 추구하는 사회, 이웃과는 단절되어 벽만 높아지는 사회, 큰 것에 대한 맹목적 추구에서 우리 사회는 너그러움과 배려하는 마음이 사라졌다. 작지만 이웃과 함께 사는 마당 넓은 훈훈한 집, 인간의 정겨운 삶을 담을 수 있는 집이 우리 사회의 이상성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번에는 민들레울의 규모설정에서 기둥이 세워지기까지의 과정 속에서 조상의 슬기와 한옥의 조영사상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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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재순서
1 조상의 삶이 담긴 우리네 살림집 ‘한옥’
2 규모설정에서 기둥 세우기까지 ‘작은집이 길하다’
3 입주상량과 수장 “평당 얼마 들었소”
4 흙일과 담벼락 ‘자취를 감춘 흙일’
5 다린초당과 공동체 문화의 열린 공간 ‘마당’

작은집이 길하다.

집을 가리키는 말에 옥(屋)과 사(舍)가 있다. 큰집을 뜻하는 옥(屋)자를 살펴보면 주검 시(尸)와 이를 지(至)가 합해져 ‘죽음에 이른다’는 의미가 되고, 작은 집의 사(舍)자는 사람 인(人)에 길할 길(吉)자로 ‘사람에 길하다’는 뜻이 된다.

큰집에서 사는 사람은 모두 화를 당하고 작은 집에 사는 이는 모두 복을 받는 뜻은 아니겠지만, 큰집에 비해 작은 집에서 따뜻한 정감과 인간미가 넘쳐날 것은 두 말 할 필요가 없다.

집의 규모 설정

살림집은 크지 않아야 한다. 아니 어쩌면 적당해야 된다는 표현이 옳다. 고려해야 할 점은 그 집의 구성원이 몇이냐 하는 것이다. 거주하면서 생활할 사람에 비해 규모가 지나치게 크면 기가 쇠하고, 집은 작은데 거할 이들이 많으면 불편하다. 살림집의 크기는 이러한데 주목하여 지어야 한다.

오늘날 핵가족 시대에는 20여평이면 적당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개개인의 능력과 생업에 따라 다양한 형태와 크기가 결정되겠지만 집은 되도록 작아야 한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민들레울은 살림집으로 짓지 않았다. 개인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대중을 위해 마련된 공간이다. 드나드는 이들이 많으므로 거기에 맞게 조성되었다. 옮겨 지은 집이므로 규모는 이미 정해져 있는 셈이다.

약간의 구조변화와 실내공간의 배치, 그리고 좌향 외에는 옮기기 전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민들레울이 조성된 형태를 전체적으로 보면 그림과 같다. 각 건물은 저마다 목적을 가지고 용도에 맞게 지어졌다. 그리고 본채에서 볼 때 오른편에 회랑이 들어 설 예정이다.

침목으로 깔린 오솔길을 뚜벅뚜벅 올라오면 민들레울 앞마당에 다다른다. 계단을 올라서면 확 트인 시원함과 함께 민들레 울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바로 이 지점에 지어지는 셈이다.

회랑은 대개 궁궐이나 사찰에서 볼 수 있는 건물로 통로로 사용되어진다. 이곳도 대중이 많이 드나드는 곳이므로 회랑으로 드나들며 산자수려한 풍광을 음미할 수 있도록 마련할 요량이다. 또한 인위적으로 깍인 남쪽의 산자락을 막아주는 의미도 있다.

기둥의 크기와 집의 높이

일반적으로 집의 규모는 지붕의 높이와 기둥의 크기가 결정된 후 그의 무게에 비례하여 결정되어진다. 또한 기둥과 기둥 사이를 하나의 단위로 삼았는데 이를 간(間)이라 부른다. 기둥이 몇 개 섰느냐와 칸 수(간살이)에 따라 집의 규모가 결정되어지는 것이다.

기초

모든 일에 있어서 기초는 상당히 큰 의미를 부여받는다. 건축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한옥에서의 기초는 땅의 영기를 다스린다는 의미까지 더해져 그 중요성을 더욱 강조된다.

요즘은 거의 대부분의 건축의 기초가 콘크리트로 이루어지지만 한옥은 예외의 부분이다. 근래는 한옥의 기초도 콘크리트 추세로 가고 있으나 주요한 건물과 사찰 및 문화재급 건축은 역시 옛방식을 따르고 있다.

그러면 우리의 조상들은 어떠한 방법으로 기초를 다졌을까. 옛 선조들의 기초 다지는 모습을 살펴보면 공동체 문화의 한 전형을 볼 수 있다. 한옥이 완성되어 지기까지 많은 부분을 마을 사람들이 함께 거들어 주지만 기초 다지는 일은 더욱 많은 이웃들이 참여하여 신명나게 달고질을 해댄다.

좌향이 정해지고 기초 놓을 자리가 정해지면 도목수는 주ㆍ부축선을 설치한다. 이어 주추 놓을 자리를 반길 정도 깊이로 수직이 되도록 파 내려간다.

이렇게 판 구덩이에 왕모래를 7~8치 정도 넣은 다음 물을 붓고 여러 사람이 나무나 돌로 만든 달고로 단단히 다지게 한다. 이어 반자 가량의 사토(沙土)를 다시 넣어 물을 붓고 앞에서와 같이 축토한다. 이렇게 하기를 대여섯번 하면 견고하다.

이와 같은 일을 지경닫기라고 하며 옛부터 근대까지 보편적으로 행해진다. 일반적인 건축용어로 입사기법(入砂基法) 이라고 한다.

민들레울의 기초도 예의기법을 따랐다. 다만 지경닫기는 달고꾼을 둘 수 없어 중장비를 동원하여 했다. 포크레인이 구덩이를 넓게 파고 거기에 왕모래를 넣은 후 물을 붓고 다졌다.

다진 구덩이마다 물이 넘쳐 나도록 부은 후 이튿날 확인해보니 역시 단단하였다. 원래의 지반 자체가 돌자갈이 많은 지형이어서 이렇게 하여도 충분하다고 판단되었다.

주춧돌

입사로 기초한 자리에 주춧돌을 놓기 시작한다. 주추는 나무 주추와 돌주추로 나눠지는데 오늘날은 대부분 돌주추를 사용한다. 민들레울 본관의 기둥은 52개이며 주춧돌 역시 같은 숫자이다. 주추는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이 없어야만 제구실을 한다 할 수 있다.

이 집은 연립주초가 아닌 돌립주초 방식으로 했다. 따라서 지반의 침하에 더욱 신경을 써서 주추를 놓았다. 주춧돌의 형태는 18세기 이후에 널리 사용된 사다리꼴이다. 윗쪽이 약간 좁고 밑둥이 약간 넓은 모양을 지닌 이 주추는 운두가 보통 1자 정도된다.

기둥

주춧돌 위에 세우는 나무를 기둥이라 일컫는다. 우리는 흔히 일의 중심이나 중요한 사람을 가리켜 기둥감이라고 한다. 그만큼 기둥은 한옥의 공간구성에 있어서 기본이 된다.

일반적으로 기둥의 형태는 생김새에 따라 둥글게 다듬은 둥구리 기둥(圓柱)과 네모진 모기둥(角柱)으로 나뉘어 진다. 또 기둥은 집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구성물이어서 집을 지을 때 입주상량하면 집이 이미 이룩된 것이나 마찬가지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민들레울을 떠 받치고 있는 52개의 기둥은 모기둥으로 5치가 조금 넘는 두께이다. 집을 옮겨다 세웠으므로 기둥 밑둥이 약간 썩은 부분도 있고 이곳저곳 필요에 따라 파 놓은 끌구멍 자국도 나 있어 빈약해 보이지만 기둥 자체는 요즘 수입하는 미송류의 나무보다 훨씬 단단하다.

민들레울에 쓰여진 목재는 흔히 춘향목이라고 일컫는 금강송이다. 춘향목은 여타 지역의 소나무보다 재질이 단단하고 곧게 뻗었는데 옹이가 적고 가지가 위를 향해 뻗는 특징이 있어 우리나라에서 나는 한옥의 목재중 으뜸으로 치고 있다.

기둥을 주춧돌 위에 세우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다듬은 기둥을 주추위에 반듯하게 세우고 수직선을 축정한다. 이를 ‘다림본다’고 한다. 수직을 보아 기둥이 짓립하였으면 기둥뿌리 밑둥과 주춧돌이 밀착하도록 그랭이 한다.

그랭이는 매우 정밀한 작업이어서 도목수가 맡아서 한다. 그랭이라는 기법은 요즘 유행하는 서구식 통나무집을 지을 때 사용하는 스크라이빙이라는 방법과 유사하다. 그랭이질한 기둥 절단이 정확하면 기둥과 주추가 정교하게 밀착되어 습기도 스며들지 못하고 벌레 역시 들어갈 틈이 없을 정도다.田

글·정순오 (민들레울 대표 031-544-0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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