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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삶을 담는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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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누구나 나이를 먹고 노인이 된다. 노인이 되면 서글퍼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자식들 모두 부모의 품을 떠나 제 갈길 바쁘고, 바쁜 도시의 한가운데 버려진 듯 방치된 자신을 보며 쓸쓸한 것이다. 늙어지면 그리운 것이 고향이다. 고향은 어머니 품과도 같은 존재다. 비록 배를 곪더라도 각박하지 않은 정이 있기 때문이다. 고향과도 같은 시골에서 내 몸 하나 움직여 풀을 뽑고 열매를 거두며 인생의 여정을 정리하고픈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노년의 삶을 준비한다는 것, 그것은 인생의 여정에 있어 노후보험과 다름없다. 이 번호에서는 노년을 멋지게 준비한 박국웅씨댁의 건축과정을 중심으로 이야기 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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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삶, 어디에 담을까?

1999년 10월 솟대전원마을 2개동이 신축 완공될 즈음 일가족이 현장을 찾아 오셨다. 가족분들 중 한 분은 대기업 건설사 출신으로 지금은 퇴직하신 박선생님이셨고, 또 한 분은 미국에서 직접 건축업에 종사하시는 김선생님이셨다. 박선생님과 김선생님은 처남 매부간이었다.

박선생님은 이미 몇 년 전 퇴직당시 용인시 동백리에 집터와 농터를 마련하고 전원생활을 하고 계셨다. 집은 샌드위치 패널로 지었으나 단열과 집 모양을 잘 꾸며 놓았고 농사도 익숙해 질만한 때였다.

그런데 시골 생활이 익숙해 질만 하니까 용인시 동백리가 신도시 택지개발 지구로 수용되어 이주가 불가피한 상황이 되었다. 이주를 위한 준비를 미리 한다고 옛 동기 3명과 어울려 용인시 남사면 지역에 집터를 확보해 둔 터였다.

또 이 시기는 장모님의 노환으로 병간호를 해 줄 사람이 필요한 터라 미국 생활을 하고 있는 김선생님과 의논하여 장모님을 함께 모실 수 있는 그런 집을 지으려던 시점이었다. 작은 플래카드 하나를 보고 찾아 들어 온 솟대전원마을에서 이미 마음의 작정이 되셨던 모양이다.

김선생님에겐 고향에 대한 향수를 불러 일으켰고, 박선생님댁 사모님은 평소 흙집에 대한 애정이 크셨기 때문인지 결정이 쉬웠다. 박선생님은 이제 육십 나이를 바라보신다. 손자 손녀들에게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신 시골집의 추억을 만들어 주길 소망하는 바램은 흙집을 삶의 그릇으로 선택케 했다.

함께 마련한 땅 ...... 제일 먼저 집터를 만들다.

전체 부지는 약 9백여평으로서 박선생님과 친구분 3명이 함께 어울려 집을 짓고 살기 위하여 마련해 놓은 농지였다. 박선생님의 지분은 약 3백30여평으로서 부지의 하단부에 속해 있었다. 전체 부지로 보자면 진입도로와 세대별 도로를 확보하는 전체적인 공사 계획 수립이 필요했다. 특히 부지의 앞면과 중간으로 농수로가 흐르기 때문에 부지의 효율적 이용에 장애가 되었다.

겨우내 네 가족분이 머리를 맞대고 의논을 하였으나 공동 토목공사의 범위와 비용문제로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각 개인이 처한 조건과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네 분의 합의는 쉽지 않았다.

시골의 농지는 경계가 불명확해 경계측량을 해 보기 전까지는 누구도 상황 파악을 정확히 할 수 없다. 특히 지적도상 농수로나 구거(도랑,하천) 등이 없는 경우는 더욱 심하다. 농지 전용을 위한 도로조건 또한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특히 공동으로 토지를 구입하였을 경우 서로의 합의 하에 각자의 택지를 선정하겠지만 부지의 조건에 따라 토목공사비가 현격히 차이가 날 수 있다. 박선생님의 경우가 그랬다. 하지만 시작한 일을 멈출 수는 없었다.

우선 박선생님댁 전용 농지를 중심으로 토목 공사에 착수했다. 농수로에 흄관을 묻고 맨홀을 설치했다. 하단 경계면으로 옹벽을 세우고 평탄한 택지를 위하여 구분 경계에 또 옹벽을 세웠다.

이 공사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었다. 이 과정에서 결국 나머지 세분의 택지도 부지조성작업에 들어갔고, 도로 옹벽 공사는 공동부담으로 진행되었다. 아무리 절친한 사이라도 공동으로 무엇을 진행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특히 그 중간 역할을 맡아야 하는 개발·시공 업체는 그래서 더욱 신중해야 한다. 공사문제로 인해 그분들의 신의와 관계가 금이 가선 안되기 때문이다.

한 지붕 2세대, 독립·동거형 주택

주택 설계에 관련해선 건축주의 특별한 주문이 있었다. 전체 평수는 46평 정도로 하고 한 지붕 아래 각 23평씩 2세대가 독립·동거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환으로 휠체어 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장모님이 기거할 수 있는 세대와 간호를 하면서도 독립된 생활을 할 수 있는 박선생님 입주 세대가 한 지붕 아래 설계되어야 했던 것이다.

집안에 환자가 있거나 노환에 계신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경우 대부분은 환자나 부모님 중심으로 생활이 바뀌게 된다. 손님들도 찾아오는 것이 불편하고 독립된 생활이 보장되기도 어렵다. 이 설계는 장년의 자손이 독립된 생활을 보장받으면서도 부모님을 간호 할 수 있는 2세대 동거형 주택모델이 됐다.

2세대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하여 출입문이 각각 있는 현관을 중심으로 각 세대를 좌우 배치하였다. 세대의 구분과 연계는 미닫이문으로 설치했다.

각 세대는 방 2개, 거실과 화장실, 주방과 다용도실로 구성되었다. 집 전체의 외관을 고려하여 독수리 날개 모양의 사선을 주어 단조로움을 피했다. 세대가 중첩되는 뒤쪽으로는 창고(광)를 두었다.

환자가 기거할 세대에는 휠체어가 통행하기 용이하도록 문을 크게 배치했고 문턱을 낮추었다. 현관 계단 옆으로 별도의 램프시설을 두어 휠체어가 이동할 수 있도록 했으며 거실에서 툇마루로 나가는 문턱도 낮추었다.

환자 방과 자손이 기거할 세대를 연결하는 벨을 설치하고 화장실은 안전대를 설치하도록 하였다. 노환의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자식들에겐 참고가 될만한 설계이다. 삶은 준비하는 것이며 만드는 것이다.

두루마기엔 갓이 제격...... 지붕재를 기와로 올리다

처음 건축계획 수립 당시에는 솟대전원마을의 사양에 준하는 것이었으나 지붕 소재에 있어 논란이 있었다. “다 좋은데 왠지 두루마기 입고 스포츠 머리 깍은 격”이라는 비판은 나이 드신 어르신들의 평가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시공사 역시 흙집의 현대화 실험이라는 화두에 맞춘 아스팔트싱글 지붕이 기와로 바뀔 경우 어떤 맛으로 표현되어질까 기대되는 문제이기도 했다. 일단 건축주와 시공사의 의견이 일치하여 지붕 소재를 기와로 바꾸게 되었다.

하지만 지붕소재 하나가 바뀌는 것만이 아닌 시공상의 여러 문제가 동반했다. 흙을 얹는 전통 기와방식은 아니라 하더라도 기와의 하중을 견딜 수 있는 트러스 보강(트러스 간격-약90㎝)이 이루어졌고, 기와지붕의 처마선을 살리기 위한 이중처마 방식(서까래+부연)이 채택되었다.

처마의 마감재로는 옛 방식의 흙미장 또는 현대주택의 맛을 살리는 루바마감, 핸디코트 등이 검토되었으나 최종 대나무로 결정하였다. 비용과 시공상의 문제, 어울림의 문제 등이 종합 고려되긴 했으나 무엇보다도 환기기능을 고려한 옛맛 살리기 측면이 강했다.

역시 우리 선조들의 건축 미학은 생동감이 있었다. 서까래와 부연으로 이루어진 처마선은 집의 웅장함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났다. 아쉬움이 있다면 고압스럽지 않은 소박한 집을 짓는다는 기본 의도로 인해 지붕의 경사도를 30도로 잡은 점이다.

서구형 목조주택의 느낌을 지우려고 시도한 이 노력은 한옥 기와지붕의 경사도 역시 40도 정도가 되어야 용마루와 처마의 맛을 살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 한 지붕 처마의 네 귀를 들어줌으로써 갖는 한옥의 맛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한 점이 끝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지만 이 과정을 통해 솟대전원마을과 또 다른 우리 살림집의 ‘맛’과 ‘멋’을 담아내는 성과를 이루었다고 우리는 자부한다. 기와지붕이 현대 흙집과 어울려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깨닫게 해 준 소중한 경험이었다. 두루마기엔 갓이 제격이던가.....

세심한 배려가 집의 완성도를 높인다

환자가 사용할 화장실

휠체어 출입이 용이하도록 2짝 미닫이문을 설치하고 문턱을 거실 마루면과 일치시켜 이동이 자유롭도록 하였다. 문턱을 낮추어서 발생할 수 있는 하수문제는 문턱쪽에 트렌치를 설치하여 물끊기를 하였다. 건축주의 특별 주문으로 양변기에는 보조장치를 설치 해 환자가 짚고 일어설 수 있도록 배려했다.

환자가 이용할 램프시설, 툇마루

현관 진입로의 램프 시설은 처음 설계시 부터 고려되었다. 하지만 한쪽 세대의 거실 전면을 램프 시설이 경유하는 관계로 현관 앞쪽으로 램프 위치를 조정하였다. 그 결과 농지전용부지내에 진입 램프 시설이 설치되어야 함으로 경사가 급해졌다. 보완조치로 난간대를 설치하고 미끄럼 방지턱을 설치하였으나 환자 혼자서는 이용이 불가능해졌다.

좀더 세심한 배려가 있었어야 할 대목이다. 환자가 기거하는 거실에 맞닿은 툇마루는 마루면과 턱을 맞추어 시공함으로써 휠체어의 이동이 용이하도록 하였다. 입주후 환자분이 툇마루 의자에 앉아 계시는 광경을 지켜볼 때면 가슴 뿌듯하다.

별채(구들방)·정자·외부 화장실·가마솥 아궁이

손님을 많이 치르는 박선생님을 위해 본채와 별도로 출입대문 쪽으로 별채를 두었다. 3평 크기의 구들방과 방과 연결된 3평의 정자를 두었다. 그리고 아궁이 옆으로 1평 남짓의 외부 화장실을 두었다.

텃밭을 가꾸는 농사일 중에 외부에서 용변과 세면을 할 수 있도록 한 배려였다. 사모님의 특별 주문으로 별도의 가마솥 아궁이를 2개 설치했다. 메주를 쑤거나 많은 손님을 치를 때 쓰일 가마솥이었다.

입주하신 후 박선생님은 이런 아쉬움을 표한다. “여름은 관계없는데, 겨울이 문제야. 생활은 본채에서 하고 가끔 별채를 이용하는데 매일같이 불을 때지 않으니 한번 방을 뜨겁게 하려면 땔나무가 너무 많이 들어가.

방도 쉬이 덮여지지 않고. 평상시에는 가스보일러 등 별도의 난방 시설을 하여 일상적으로도 방을 쓸 수 있게 해야 겠어. 불때는 아궁이에 가마솥을 설치해서 메주도 쑤면서 말이야, 방도 덮일 수 있도록 했으면 금상첨화인데......” 이러한 체험이 흙집의 현대화에 많은 참고가 되었다.

한지 아크릴 창호

솟대전원마을의 목창은 조선살에 바깥쪽은 불투명유리, 안쪽은 투명유리로 시공하였다. 옛 창호의 맛을 내면서도 시공과 관리의 용이함을 고려한 때문이었다.

바같쪽의 불투명 유리 대신에 한지 아크릴을 시공함으로써 옛 창호지의 맛을 살리고자 했다. 분명 분위기가 달라 보였다. 한지에 은은히 감도는 햇살도 햇살이지만 밤에 비추는 창의 느낌은 현대식 창호가 따라올 수 없는 풍류가 있다.

천연 감물 도장

현대주택에 익숙한 많은 사람들이 반질반질한 페인트 도장에 익숙해 있다. 노년의 삶을 담는 흙집에 있어 페인트 마감 자재도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목문틀과 목창틀에 기계 사포로 면을 다듬고 감물을 먹였다. 나무에 베어 들어간 엷은 밤색 느낌이 조금은 투박해 보였다.

면이 반질거리지 않으니 뭔가 마감이 덜 된 것 같은 생각까지 들었다. 스스로 조차 천연 소재가 아닌 인공 소재에 너무도 익숙해져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찾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의 살림집, 흙집에 어울리는 우리 방식의 색깔을 자연에서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창고(광) 중앙의 현관문을 가운데 두고 나누어진 세대 배치는 사선으로 이어지는 뒤편에 3평 정도의 창고 공간을 얻을 수 있었다. 건축면적에서 제외된 이 공간은 처음에는 노출 형태였으나 기능성과 전체의 어울림을 고려해 벽체를 세우고 광과 같은 2짝 옛날문을 달아 건물 뒤쪽의 단조로움에 포인트를 주었다.

한쪽엔 심야전기 보일러와 온수기를 두고, 본체 거실에서 나오는 쪽마루와 수납장으로 공간을 분리시켰다. 훗날 뒤뜰 정원이 가꾸어진다면 이 공간은 후정과 본채를 연결하는 징검다리가 될 것이다.

꽃보다 아름다운 삶을 예비한다. 연로한 부모님을 모셔야 하는 사람들, 그리고 자신이 곧 그 나이가 될 것을 자각하는 사람들에게 이 집은 많은 생각을 안겨 주리라 믿는다. 어떠한 삶을 준비하고 만들어서 가꾸어 가고 있는가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집은 인간의 삶을 담는 그릇이다’라고 했다. 노년의 삶을 담는 그릇을 준비하는 것, 그것은 꽃보다 아름다운 삶을 예비하는 것이다.田

■ 글 이동일(행인흙건축 대표 031-335-8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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