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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롭고 과학적인 우리의 집 ‘한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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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을 짓는 건축 자재는 모두가 천연 자재여서 공해를 발산하지 않는다. 토담집이나 귀틀집이나 초가나 기와집을 막론하고 모두 마찬가지다. 오래 되어 수명이 다한 집을 헐어 내어 자재들을 폐기 한데도 그것들은 다시 흙이 되거나 거름이 되고 혹은 재사용 되거나 화목으로 불을 지필 수 있어 거의 다 재활용된다. 한옥은 방바닥도 담벼락도 다 황토를 발라 만든 집이다. 토담집은 목재를 빼고는 전체가 황토다. 귀틀집만 해도 통나무 사이에 황토가 발라지고 방바닥은 진흙이다. 요즘 유행하는 황토를 얇게 바른 침대가 건강에 좋다면 황토로 지은 집이야 오죽 하겠는가는 자명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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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집을 ‘한옥(韓屋)’이라 부른다. 우리가 즐겨 입는 의복을 ‘한복(韓服)’, 김치나 된장찌개 등을 곁들여 차린 음식을 ‘한식(韓食)’이라 하듯, 한옥은 이 땅에 지어온 우리 들 집이다.
한옥의 넓은 의미(廣義)는 ‘역대 한국 땅에 지어진 모든 건축물’이나 협의의 개념에서는 ‘사람이 살림하고 사는 살림집’을 지칭한다. 지금 우리가 흔히 부르는 주택(住宅)이나 주거(住居)의 개념과 같은 단어가 된다.

더러 ‘여염집’, ‘주가(住家)’, ‘주사(家舍)’, ‘옥사(屋舍)’ ‘민가(民家)’라 부르기도 하는데 일본에서는 주로 ‘주택’이라 하고 중국인들은 ‘민거(民居)’라는 단어를 즐겨 사용한다.

살림집은 어제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현대인들도 누구나 오늘의 살림집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는 미래에도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한옥’하면 ‘고건축’이라는 시각으로 보면서 과거의 건축물로만 취급하려는 경향이 있다.

기단과 처마

고온 다습한 지역이 아니더라도 지표 가깝게 자리를 마련하면 습기가 올라오게 마련이다. 여름철이면 그 정도가 대단해 눅눅하기 짝이 없다. 한옥은 움집을 지표에 노출시킨 이후로 차츰 바닥을 높이면서 지표에서 떨어지는 방도를 취하였다.

기단이라 부르는 댓돌(또는 죽담)을 여러 겹 축조하여 높게 만들고 그 위에 주초를 놓아 집을 짓는 방법을 보편화시켰다. 지습(地濕)을 현저히 줄이는 결과가 되었고 쾌적하게 살 수 있게 되었다.

목조건축인 우리 한옥은 깊은 처마를 갖고 있다. 그런 처마는 직사광선을 막아주며, 처마 밑의 공간은 공기의 대류 현상으로 추위와 더위를 완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등 중요한 기능을 지니고 있다.

여름철 태양이 높이 떴을 때 깊은 처마는 차양이 되어 뙤약볕을 가린다. 그늘진 곳은 뙤약볕을 받는 마당 보다 시원하고, 차고 더우면 대류가 생기고 바람기가 일어난다.

겨울철엔 낮게 뜬 태양 볕이 방안 깊숙이 투사된다. 집안이 따뜻해진다. 따뜻한 공기는 위로 올라간다. 찬바람에 밀려 배출되다가도 깊은 처마에 걸리면 머문다. 경사진 서까래가 앞을 가로막음으로써 더운 공기가 장시간 체류하게 되어 그만큼 따뜻해 지게된다.

아랫목과 윗목

한옥의 대표적 특성으로 눈에 잘 뜨이는 것 중 하나가 굴뚝이다. 고장에 따라 여러 종류의 굴뚝이 만들어져 있어 그것만 분류하여도 상당히 다양하다.

이웃나라에서는 굴뚝을 보기가 어렵고, 있다고 해도 아주 소략한 모양이다. 그에 비하면 우리의 굴뚝은 국가의 보물로 지정된 조선조의 작품이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우리도 새로 짓는 현대 건축에서는 굴뚝을 보기가 어렵게 되어 가고 있다.

고래 켜고 구들장 놓은 온돌방에는 아랫목과 윗목이 있고 그에 따라 장유유서의 예의와 질서가 있었다. 몸이 부실한 사람이 뜨끈한 아랫목에서 작시근하게 지지면 몸이 가벼워진다고 하며, 아이 낳은 산모가 아랫목에서 산후 조리를 하면 거뜬하다고 해서 중히 여겼다.

우리 현대 살림집에도 온돌방이 있지만 아랫목이 없어졌고 그로 인해 장유유서의 위계 질서가 무너졌고 가구들이 피해를 입는다는 소리가 높다.

회복하는 방도가 있다. 비록 온수파이프로 하는 시설이긴 하지만 파이프를 아랫목엔 촘촘히, 윗목엔 드물게 깔면 온도 차이로 아랫목과 윗목의 개념이 되살아난다.

인체는 필요에 따라 덥기도 하고, 때론 찬 맛을 보아야 혈액순환에 이롭다고 한다. 무조건 같은 온도는 인체에 유리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가구도 더운 것보다는 차고 시원해야 그 수명이 오래간다.

아궁이와 구들

한옥의 아궁이는 태울 수 있는 식물성 폐기물 대부분을 소각시킬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쓰레기로 반출되는 대단한 양을 자체 처리할 수 있다. 낙엽도 태우지 말라고 한다. 역시 공해 물질이 발산될 가능성이 있다는 견해다.

그래서 거두어 소각로에서 태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옥의 아궁이는 그런 염려가 없다.

아궁이에서 지핀 불길이 방고래를 핥으며 가다가 고래 끝에 파 놓은 개자리에 이르러서는 당분간 맴돈다. 고래 높이가 30cm가량이라면 개자리는 고래 바닥으로부터 60cm 이상 파내려 간다. 고래에 비하여 개자리는 상대적으로 온도가 낮다.

온도가 낮으니 연기가 잠시 머물면서 냉각된다. 그때 연기가 지닌 그을음이 다 개자리로 떨어진다. 그리고 나서야 맴돌던 연기가 연도를 통해 굴뚝으로 다시 향한다.

굴뚝 밑에도 개자리를 판다. 미진 한 것들이 여기에서 다시 떨어지면 가벼워진 연기가 굴뚝을 통하여 배출한다. 맑은 연기가 운무가 되어 마을에 떠돌 때면 소나무 땐 아궁이의 향긋한 내음이 집 주변에 가득해 진다.

소각로로는 한옥의 구들이 최상급이다. 아궁이에서 굴뚝에 이르는 시설에 과연 그런 기능이 있는지를 한 번도 과학적으로 조사를 한 적이 없다고 한다.

서구의 것에 대하여는 탐구가 그렇게 열성인 과학도들이 우리 것에는 전혀 관심 두지 않는 이유가 궁금하다. 이런 실험의 결과들이 우리 기층 문화 속에 스며있는 원리를 과학적으로 뒷받침하여 활용의 범위를 넓힐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한옥식 소각로의 개발은 공해 감소와 쓰레기 처리 경비절약 뿐 아니라 국가가 어떻게 자기의 것을 지혜롭게 활용하느냐의 차원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도심에서 어찌 아궁이를 만들어 나무를 지피느냐는 핀잔이다. 몇 해전만 해도 연탄 때는 아궁이가 집집마다에 있었다. 그런 아궁이를 활용하면 된다. 땔 만한 것만 아궁이에 지펴도 효과는 크다.

더구나 노인정이나 후생 복지시설에 수용된 노인들에게 뜨끈한 아랫목의 온기를 다시 제공한다는 일은 건강에도 큰 도움이 된다.

세종 때 간행된<구황촬요(救荒撮要)>라는 의료 요법을 적은 책에서도 ‘뜨끈한 구들은 병을 치료하는데 아주 요긴한 시설이라고 그 설치를 장려했다.

서울에서도 연세 든 부인들은 한증이나 ‘찜질방’에 가서 지져야 몸이 풀린다고 한다. 그런 원리를 아궁이에 이용하여 우리 주변에 다시 부활시키면 일석이조의 성과를 얻을 수 있다.

방의 넓이

얼마로 잡아야 방 넓이가 가장 쾌적할까? 아무도 대답하기 쉽지 않다. 옛 사람들은 어떻게 하고 살았을까 새삼 궁금해진다. 고향에 갔던 길에 안방을 측정해 보았다.

고향의 안채 안방은 아래, 위칸의 두 칸 방이다. 늘 좁아만 보이는 방이니까 크게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넓이라도 한번 알아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랫목 벽에서 윗방과의 샛장지까지 길이가 대략 2.48m이다. 아래 윗방을 합하면 약 4.96m 이니까 5m에 가깝다. 서울에 와서 살고 있는 방을 측정해 보고 깜짝 놀랐다. 5m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길이를 가졌다. 다시 수첩을 꺼내어 봤다.

뒷벽에서 방 앞까지 간격을 잰 치수를 보니 방의 너비가 3.3m 가량이다. 방 앞쪽으로 툇마루가 있다. 그 너비를 합산해야 할지 어떨지 잘 모르겠으나 대청 너비가 방과 퇴를 합친 것과 같으므로 측정해 보니 4.5m 가 조금 넘는다. ‘열 두자 짜리 장롱’이 들어가고도 남는 폭이다.

그렇다면 절대로 적은 방은 아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좁아 보이지? 퇴를 내었기 때문일 터인데 퇴는 필요한 용도에 따라 생긴 것이므로 이런 너비 설정에 어떤 까닭이 분명히 있을 것 같다.

정방형과 장방형의 비례가 지니고 있는 사용 면적의 효율성이나, 거기서 얻어지는 인격 함양의 어떤 원리를 감안한 것이 아닌지 하는 기미가 자꾸 느껴진다. 전에 미쳐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흙과 나무의 조화

한옥을 짓는 건축 자재는 모두가 천연 자재여서 공해를 발산하지 않는다. 토담집이나 귀틀집이나 초가나 기와집을 막론하고 모두 마찬가지다.

오래 되어 수명이 다한 집을 헐어 내어 자재들을 폐기 한데도 그것들은 다시 흙이 되거나 거름이 되고 혹은 재사용 되거나 화목으로 불을 지필 수 있어 거의 다 재활용된다.

현대 건축에서 당연히 사용되는 건축자재는 철근 콘크리트이다. 시멘트에는 독성이 있어 인체에 해롭다고 말한다. 그 예가 있다. 문화재관리국에서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여 해인사에 팔만대장경판을 보전할 ‘신경판고(新經板庫)’를 신축하였다.

몇 해 동안 빈 건물로 내버려두었다. ‘시멘트 독성’이 제거된 뒤에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끝내 사용하지 못하였고 지금은 용도 변경되어 스님들 승방으로 이용되고 있다.

1910년대 일인들은 서구에서 수입한 시멘트를 대단히 신용하였다. 기적 같은 그 자재로 그동안 할 수 없었던 건축을 수없이 이루어 내었고 철로 건설에도 적극 활용하였다. 터널 만드는 일에는 그저 그만이었다.

철로 토목기사가 조선총독부 명령을 받고 토함산의 석굴암을 수리한다. 신라인들이 쌓은 석실 석벽 뒤편 적심석을 잘게 깨트려 자갈을 만들어서 터널처럼 만들고 말았다. 그 통에 석실(石室)은 숨이 막혔고 시멘트가 독성을 발산하였다.

황토는 시멘트와는 근본부터 다르다. 요즘엔 황토를 이용한 별별 제품이 다 나와 있고, 황토를 이용하여 만든 침대가 몸에 좋다고 크게 선전하고 있다. 시멘트의 독성 속에서 황토의 효능을 빌어 건강해 지자는 의도가 그 선전에 함축되어 있다.

한옥은 방바닥도 담벼락도 다 황토를 발라 만든 집이다. 토담집은 목재를 빼고는 전체가 황토다. 귀틀집만 해도 통나무 사이에 황토가 발라지고 방바닥은 진흙이다. 황토를 얇게 바른 침대가 건강에 좋다면 황토로 지은 집이야 오죽 하겠는가는 자명한 일이다.田


■ 글 신영훈/사진 류재청

■ 글쓴이 목수(木壽) 신영훈(申榮勳)은 현재 한옥문화원 원장, 해라시아 문화연구소 소장, 법련사 불일문화원 원장이고, 문화재 전문위원(1962년∼1999년)으로도 활동했다.
1962년 서울 남대문(숭례문) 중수 공사 감독관을 시작으로 화엄사 각황전, 금산사 미륵전, 안동별궁 이전공사, 불국사 중건공사, 송광사 국사전 등 무수히 많은 국내 주요 문화재의 중수 공사 및 복원, 설계에 참여했다.
지난해엔 영국 British Museum에 한옥 사랑방을 신축하기도 했다. 원장으로 있는 한옥문화원(02-562-0303)은 현재 서울 강남에 위치해 있으며 한옥의 연구와 보급, 발전을 위해 힘쓰며 많은 관련 강좌도 열고 있다.

■ 이 글에 실린 사진들은 모두 서울 남산 ‘한옥마을’에서 촬영된 사진입니다. 남산 한옥마을은 총 2만4천평(정원 포함) 규모로 조선 순종비 윤비가 어릴 적 살던 집, 조선 말 철종의 사위인 박영효의 고택 등 서울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던 전통 한옥 5채를 그대로 옮겨와 이곳에 복원한 것입니다.
요즘 같은 하절기엔 아침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개방되며, 휴관일은 매주 화요일입니다. 입장은 무료이며 별도의 주차장이 없기 때문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지하철 4호선 충무로역에서 하차해 3번 출구로 나와 중대부속병원과 매일경제신문사 사잇길로 가면 되는데 도보로 2~3분 거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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