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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 전원주택】 핸드메이드 집에서 시작하는 자급자족의 삶, 단층 담틀집
- '비정한 도시'라는 제목의 김주필 씨의 그래픽 작품이 현관 벽에 걸려 있다. 이 작품이 벌써 김주필 · 이란희 부부가 왜 전원행을 택했는지 말해준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바쁘지만 무료하게 돌아가는 고달픈 도시의 일상, 무한경쟁 사회에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파 부부는 삶 의 방식을 전환하자는 대단한 결심을 했다. 오래 전 나왔던 얘긴데 이제야 실행에 옮겼다. 농사 한 번 지어보지 않은 부부는 농촌에서 경제활동으로 무얼 할지 막막하기는 해도 일단 넉넉한 자연의 품으로 왔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집 짓는 것은 살고자 하는 방식을 담는 일, 미래를 설계하는 일이다"라고 말하는 부부가 선택한 집 짓기 방식을 들여다보자.글 사진 전원주택라이프 편집부 건축정보위치 경기 가평군 상면건축형태 단층 흙다짐 공법 + 경량 목구조대지면적 651.0㎡(197.3평)건축면적 98.1㎡(29.7평)지붕재 아스팔트 슁글외벽재 흙다짐벽 노출, 시멘트 사이딩, 목재내벽재 흙다짐벽 노출, 한지바닥재 마루, 구들방-콩댐 마감천장재 루버난방형태 장작보일러, 구들난방 겸용 벽난로 (이화종의 산촌벽난로)설계 및 시공 흙건축연구소 살림 063-653-5628 https://www.facebook.com/eartharchi 가평 주택은 담틀집(Rammed Earth House, 담집)이다. 요즘 담틀집은 구경하는 것조차 드물다. 과거에도 우리 선조들은 공정이 복잡한 담틀집이나 흙벽돌집보다 심벽 방식의 흙집을 더 많이 지었다. 그러나 최근 흙집에 대한 부흥이 일면서 흙건축연구소 살림의 김석균, 건축공방 무 이일우 씨 등과 같은 흙집 전문가들이 간간이 담틀집을 꾸준히 퍼트리고 있다. 담틀집 하면 떠오르는 이가 또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말하는 건축가'의 고故정기용 건축가다. 자연과 사람과 소통하는 건축으로 유명한 그는 흙건축으로도 잘 알려졌다.1970년대 파리에서 건축을 공부하던 그는 '초가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는'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국내와 상반되게 석유 파동기를 맞아 서구에서 흙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흙건축 공법이 체계화되는 것을 목격했다. 그리고 흙건축에 매료됐다. 귀국 후에도 흙건축에 대한 그의 관심과 실천은 이어졌는데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한 담틀집 건축 현장에서 그가 직접 거푸집 속의 흙을 다지면서 감탄하던 영화의 장면이 잊히질 않는다. 그의 표정은 이랬다. '기가 막히네!'그 숨은 뜻을 표현하자면, ' 이렇게 생태적이면서 구조 공학적인 방법이 또 있을까.' 온실에서 바로 거실로 연결된다. 주방 위에 다락을 드렸다. 자연미와 모던함이 공존하는 노출 흙벽의 거실 주방 문을 열면 바로 앞마당이다. 주방 가구를 건축주가 짰다. 가평 주택은 담틀 공법과 경량 목구조 공법을 혼합한 형태다. 담틀집의 묘미는 구조벽 강도를 높이기 위해 흙을 압축하면서 자연스럽게 생긴 흙의 단층으로, 이것을 즐기고자 내외부 마감을 하지 않고 그대로 노출시키는 경우가 많다. 보통 40cm 내외의 비교적 두꺼운 두께로 흙벽을 다지기에 흙벽 자체의 단열을 이용한다. 가평 주택 역시 담틀집 고유의 노출 흙벽을 즐기고자 40cm 폭으로 흙다짐을 한 후 그대로 노출시켰다. 그리고 주방과 욕실 등 물 사용 공간은 경량 목구조로 기능성을 보완했다.김주필 · 이란희 부부가 담틀집을 선택한 건 팍팍한 도시에 시달리다 돌아온 자연 속에서 그들의 마음을 달랠 수 있는 건축 유형이 흙집이라 여겼고, 다른 흙건축 방식에 비해 견고하고 단정한 이미지, 수월한 유지관리를 장점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노출 흙다짐벽은 다른 방식에 비해 현대적 이미지를 연출해 젊은 부부에게 어울릴 것으로 기대했다. 부부는 흙집이 주는 특유의 푸근함과 소박함을 원했고 도시이주민 티를 내지 않고 마을 안에 폭 안기는 집을 원했다. 그래서 층을 높이지 않고 단층으로 지었다. 노모를 생각해 구들방을 제일 먼저 고려했다. 이화종 씨가 개발한 구들 난방 겸용 벽난로를 설치했다. 그런데 어머니는 장작 아깝다고 불 때는 걸 말리신다. 디딤판으로도 사용하는 서랍장과 왼쪽으로 약간 보이는 장식 선반도 건축주가 짠 것이다. 외부로 닫힌 듯 열린 집집으로 들어가는 진입로를 제외하고 삼면이 논밭으로 둘러싸인 부지는 마치 외딴 곳, 섬이라는 느낌을 준다. 그래서 건축을 담당한 흙건축연구소 살림에서 '꿈꾸는 섬'이라는 애칭을 붙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가평 주택이 사람들로부터 멀어진 고립된 섬이라는 인상을 주지는 않는다. 남서쪽으로 활짝 열린 유리 온실과 360도 건물을 에두른 마당은 자연과 이웃들을 끌어 담기에 충분하다. 더구나 레오, 재롱이, 산 세 마리 개들의 담 넘기를 방지하는 차원에서 하는 수 없이 참나무 토막으로 빙두른 담장은 대문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 정도다. 나무로 간결하게 세운 대문은 상징적 의미고 사람들은 편하게 담장으로 넘나든다. '무한 경쟁 사회', ' 비정한 도시'대신 자연 속에서 여유롭고 인심 넉넉한 사람들 사이에 깃들어 살기를 원하던 젊은 부부의 바람대로 가평 주택은 사생활은 보호되나 이웃에게 열린 집, 마을 속에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집으로 완성됐다. 건축주가 바닥 콩댐 마감을 도운 구들방, 작은 창밖으로 펼쳐진 논밭이 평화롭다. 서재 겸 손님방으로 사용하는 다락이 꽤 넓다. 진입로 쪽에서 바라보는 집은 외부와 완벽히 차단됨과 동시에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나 바로 좌측으로 돌아서는 순간 외부의 시선은 남서향 유리 온실을 통해 여지없이 실내로 관통된다. 바깥을 향해 소파를 놓아 휴식 공간으로, 훌륭한 채광을 활용해 빨래 건조 공간으로, 상자 텃밭을 놓아 생산의 공간으로, 유리 온실을 여러모로 요긴하게 쓰고 있다. 온실은 내부와 외부를 유기적으로 연계하는 매력적인 공간으로 채 나눔 한 노모방/공용공간과 부부 침실을 연계한다 담틀집의 하이라이트 유리 온실. 개방감이 훌륭하다. 정면은 닫힌 공간이나 왼쪽 모퉁이를 돌면 이처럼 열린 온실을 본다. 삶을 담은 집 애정 솟는 집부부는 집을 올리면서 꽤 많은 일을 했다. 가평 주택은 최대한 자연 재료를 사용하면서 기계에 의존하지 않고 손으로 만든 핸드메이드 집이라 감히 말할 수 있는데 실내를 장식하는 가구도 이에 한 몫한다. 장식장, 선반, 책장, 심지어 규모가 꽤 큰 주방가구까지 거의 모든 가구를 김주필 씨가 직접 짰다. 자급자족을 결심한 마당에 집짓기 전 공방에 다니며 목공 실력을 다졌다. 이곳으로 오면서 약국을 그만둔 이란희 씨는 구들방 콩댐과 노출 흙벽에 느릅나무액 칠하기 등 노동력을 보탰다. "살림 김석균 대표님은 집 짓는 과정에 우리를 참여시켰어요. 특별한 기술을 요하지 않거나 까다롭지 않은 부분에 일을 시키는데 그게 싫지 않았어요. 워낙 건축주와 원활하게 소통하고 장인정신이 대단한 분이라 여겼기에 자연스럽게 합류했지요. 남편은 직장 다닌다는 핑게로 일을 많이 못 거들었는데 김 대표님은 그 때문에 남편한테 호통을 치기도 했어요. 김 대표님을 비롯한 살림 식구들 덕분에 공사 기간 내내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재밌게 지냈어요." 사람들과 둘러앉아 고기 구워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뒤쪽에 부뚜막 아궁이도 만들었다. 좌측 안방과 우측 공용공간, 두 개의 매스로 나뉜다. 흙다짐 벽을 노출해 자연미를 살렸다. 이란희 씨는 완공 후 6개월간 가평 주택에 살면서 김석균 대표가 왜 건축주에게 공사 참여를 유도하는지 느낄 수 있었단다. 무엇이든 새것은 서먹하고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걸리게 마련이다. 집도 마찬가지일 터. 그런데 집 짓는 과정에 힘을 쏟고 나니 새 집인데도 낯설지 않고 자연스럽게 정이 들었다. 마치 몸에 착 감기는 입던 옷처럼. 그리고 집 짓는 과정을 통해 전원생활에 대한 막연한 상상도 구체화할 수 있었다. "아파트에서 6개월간 직업 없이 살았다면 지루하고 답답했을 거예요. 그러나 여기는 계절 변화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자연히 부지런해져 할 일이 많아요.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겠네요." 마음의 여유는 자연으로부터 온 선물이고 주말 고기 구워 먹으러 찾아오는 손님이 밉지 않고 반가운 까닭도 자연으로부터 온 선물이다 건물 정면 좌측 매스 안방 있는 곳 담틀집(흙다짐 공법) 전통 흙건축 방식은 크게 세 가지다. 대나무 등을 심으로 삼고 짚을 썰어 넣어 반죽한 흙덩이를 바르는 심벽, 담틀에 흙을 다져 만드는 흙다짐 공법, 흙벽돌을 쌓아 만드는 방법. 흙다짐 공법 혹은 담틀공법이란 흙벽 자체가 내력벽으로 작용해 하중을 전달하는 구조체를 형성하는 공법으로 세심하게 양을 정한 순수한 흙-점토, 모래, 자갈 등-을 소량의 물과 섞은 뒤 목재나 철재 거푸집 틀에 다져넣은 후 공이 등으로 흙을 다짐해 벽을 구축하는 방법이다. 완성한 다음 틀을 떼어내면 벽은 바위처럼 단단한 하나의 흙덩어리로 되어 충격과 침식에 강한 구조물이 된다. 벽돌보다 강한데다 벽돌을 말리고 운반하고 쌓는 과정이 생략돼 노동 비용 면에서도더 유리하다. 또한 목구조 건축물보다 더 수명이 길다. 흙다짐 공법은 6000년 넘게 세계 거의모든 곳에서 지은 흙건축 방식으로 2000년 역사의 중국 만리장성 일부와 중동과 아프리카의 고대유적들 상당수도 이 방식으로 축조됐다. 프랑스 일부 지역, 특히 론강 유역에는 거의 모든 건물이 흙다짐 공법으로 지어졌다. -《 자연을 닮은 집짓기》 (도서출판따님) 발췌 가평 담틀집 시공 장면. 사진제공 (흙 건축연구소 살림) 담틀집 외관 전원주택라이프 더 보기www.countryho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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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 전원주택】 핸드메이드 집에서 시작하는 자급자족의 삶, 단층 담틀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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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 전원주택】 자연을 정원 삼은 주택
- 건강한 삶은 건강한 공기에서부터 온다는 말이 있다. 건축주 부부가 고향의 공기를 찾아 이곳 유학산을 찾은 것도 바로 건강 때문. 해발 550m, 울창한 나무들 사이에 들어선 단정한 ALC주택에서 건축주 손성익, 김덕분 부부가 말하는 건강한 삶을 들어본다. 글과 사진 전원주택라이프 편집부 HOUSE NOTE위치 경북 칠곡군 가산면건축구조 ALC블록 조적조대지면적 591.00㎡(179.09평)건축면적 148.57㎡(45.02평)건폐율 26.00% 용적률 42.54%연면적 191.23㎡(57.94평) 1층 106.03㎡(32.13평) 2층 42.66㎡(12.92평)설계기간 2개월공사기간 3개월비용 3.3㎡(평)당 450만 원 (조경별도)외장재 지붕 - 금속기와외벽 - 스타코 플렉스내장재 벽, 천장 - 홍송 루바, 황토 미장, 합지 바닥 - 강화마루, 황토석창호 - LG 베스트 245 시스템 창호단열재 지붕 - ALC지붕판 175, 스티로폼 100㎜ 벽 - ALC블럭 300㎜, 스티로폼 100㎜ 난방 - 기름보일러, 구들방주방기구 백조싱크위생기구 대림요업조명기구 LED 조명설계 서우건축사사무소 053-951-0093시공 대림ALC주택 1544-4460 www.alcdl.com 야외 데크까지 연결된 개방감 넘치는 거실 풍경. 사시사철 변하는 유학산의 아름다운 풍경을 일년 내내 거실창을 통해 볼 수 있다. 건축주 손성익, 김덕분 부부는 결혼 후 줄곧 아파트에서 생활했다. 큰 불편은 없었다. 간결한 구조와 버튼 하나로 작동되는 다양한 기능, 수월한 관리 등 아파트 생활은 여러모로 편리했다. 그러나 너무 편리해서일까. 아파트 생활이 오래 될수록 심신이 가라앉고 무겁게만 느껴졌다. 늘 속이 더부룩했으며 수면의 질도 떨어졌다. 건강에 특별히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결코 건강하다고 할 수 없는 삶이었다. 그럴 때마다 흙을 밟고 사는 삶, 몸을 부리며 땀 흘리는 건강한 삶이 그리웠다. 그래서 찾은 곳, 아내 덕분 씨의 고향인 경북 칠곡의 유학산이었다. 아파트의 편리한 구조를 가져와 거실과 주방을 연계하고 내부 동선을 간결하게 조성했다. 거실에서 주방 전체가 보이지 않도록 주방을 동쪽으로 틀고 가운데에 카운터를 놓았다. 부부의 건강을 책임지는 황토 구들방. 숙면을 취하는 공간으로 손수 흙으로 마감하고 전통 구들을 놓아 안팎으로 자연이 호흡하게 했다. 건강과 기능을 생각한다면, ALC주택해발 550m, 탁 트인 산 중턱에 부지를 마련했다. 흔히 500~700m 고지는 인체에 가장 적합한 고도라 불린다. 이곳에선 충분한 혈류 공급으로 생체 리듬이 좋아질 뿐 아니라 피로 회복에도 그만이다. 건강한 터전을 잡았으니 건강한 집 짓는 일만 남았다. 하루 절반을 집에서 생활하는데, 아무리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이라 해도 유해물질 많은 집에서 생활하면 반쪽 건강밖에 되지 못한다. 건축주 부부가 집 콘셉트를 ‘친환경’에 맞춘 것도 바로 이 때문. 발품을 팔며 인체에 가장 건강한 집들을 찾았다. 처음엔 안팎으로 건강하게 호흡하는 천연 황토를 고려했다. 그러나 정보를 수집하고 공부하는 과정에서 ALC로 최종 결정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황토 못지않은 친환경 자재인데다 단열, 차음, 내화성 등 기능면에서 우수했기 때문이다. 특히 콘크리트보다 약 10배 높은 단열성능은 성익 씨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ALC주택에서 생활하는 건축주들의 만족도가 유독 높았습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더라고요. 건강한 자재인데다 기능면에서 뛰어난 점이 많았습니다.” 계단실은 목재와 입체적인 실크벽지로 깔끔하게 연출했다. 좋은 집의 기초는 신뢰시공은 ALC주택 전문 시공업체인 대림ALC주택의 전진국 이사가 맡았다. ALC 시공 20년 경력이 말해주듯 공정은 물 흐르듯 막힘없이 진행됐다. 서두르는 것도, 지체하는 것도 없었다. 처음에 현장을 자주 찾던 성익 씨도 나중에는 마음 편히 공사의 모든 과정을 위임했다. 그만큼 일처리가 깔끔했다. “일처리가 시원시원해요. 팀원들이 마치 한 몸인 듯 일사천리로 움직이는 모습이 믿음직스러웠어요. 하나부터 열까지 설계한 대로 시공하는 모습에서도 신뢰할 수 있었고요. 집은 신뢰로 짓는다는 말이 있잖아요. 먼저 서로에게 믿음을 주고 신뢰했기에 만족스런 집이 지어졌다고 생각해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조성한 자녀들방. 아궁이. / 구들방. / 황토타일 자연을 닮은 집칠곡 주택은 최대한 단정한 형태로 외관을 마무리했다. 행여 주변 자연 경관을 해칠세라 은은한 아이보리색으로 외벽을 바르고 단정한 박공지붕 형태로 금속기와를 올렸다. 화사한 봄꽃과 가을 오색 단풍의 조화를 고려한 디자인이랄까.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외관은 사치스럽지도, 궁색하지도 않게 단정하기만 하다. 심플하긴 내부도 마찬가지. 아파트의 편리한 구조를 그대로 가져와 거실과 주방을 연계하고 내부 동선을 간결하게 조성했다. 거실에서 주방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오면 시선이 분산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칠곡 주택은 주방을 동쪽으로 틀고 가운데 카운터바를 놓아 동선은 연계하되 시선은 일부 차단했다. 내부에서 눈에 띄는 것은 단연 황토 구들방인 부부침실이다. 숙면을 취하는 공간만큼은 손수 흙을 바르고 전통 구들을 놓아 안팎으로 자연이 호흡하도록 했다. 잠이 보약이라 했던가. 흙냄새 그윽한 구들방에서 한 숨 자고 일어나면 묵은 피로도 모두 가시는 기분이라고. “아파트에서 생활할 때는 2시간마다 잠에서 깨곤 했어요. 오래 자도 몸이 무겁고 피로가 늘 따라다녔죠. 그런데 여기서는 1~2시간만 자도 아주 개운하고 정신이 맑아진 기분이에요.” 건축주 부부가 칠곡 주택으로 이사 온 후 부부의 일상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다. 먼저 건강이 좋아졌다. 삶에 활력이 넘치고 여유가 생기니 소소한 일상이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사는 곳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했던가. “잘 먹고 잘 자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라는 부부의 마음이 소박한 자연의 모습을 빼닮았다. 부부는 이제 자연의 흐름을 가만히 관조하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충만하다고 말한다. 칠곡 주택은 주변 자연과의 조화를 고려해 은은한 아이보리색으로 외벽을 마감하고 단정한 박공지붕 형태로 금속기와를 올렸다. 수려한 주변 경치를 품은 집의 모습이 아름답다. 멀리서 바라본 장연과 어우러진 주택 인터뷰 : 대림ALC주택 전진국 이사 “기능과 비용을 생각하면 ALC가 최적입니다.”지난 20년간 ALC주택만을 다뤄온 대림ALC주택 전진국 이사를 만나 ALC자재와 시공 방법에 대해 들어봤다. Q. 다양한 주택 구조재 중에서 ALC만을 고집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A. 내진성과 내화성 그리고 단열성을 가장 우선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ALC는 경량이면서 열과 소음 차단에 뛰어나고, 내구력과 그에 따른 안전성도 탁월합니다. 단열은 콘크리트의 약 10배 효과를 자랑하지요. 게다가 100% 천연재료로 이뤄져 있으니, 기능이나 비용, 환경을 생각할 때 ALC만을 고집하게 됩니다. Q. ALC블록도 종류가 여러 가지인가요? A. 일반블록에서 발수블록까지 사용목적에 따라 그 종류가 다양합니다. 규격 및 단위에 따라서도 구분이 되고요. 저희 대림ALC는 목적에 따라 경량, 내화, 단열의 3대 특징을 최적화한 블록만을 사용합니다. 예를 들어, 벽체는 단열과 차음 효과를 높이기 위해 고강도블록을 사용하고, 첫 단의 수평 블록이나 욕실 벽 부분은 수분흡수율이 높은 발수블록을 사용합니다. Q. ALC블록이 공기 구멍이 많아 습기에 약하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이점은 어떻게 보안하시나요? A. 습기나 이로 인한 결로 현상은 사실 자재보다 시공법에 의해 좌우되는 요소입니다. 발수블록은 슬러리(Slurry)에 발수제를 첨가해 생산되는 블록으로 수분흡수율이 상당합니다. 이 발수블록을 시공 시 첫 단의 수평과 욕실 벽, 발코니 부분에 사용하면 습기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건조 기간이 중요합니다. 함수율을 감소시키기 위해 실내 작업 전에 반드시 건조 기간을 충분히 거쳐야 합니다. 이는 ALC 뿐 아니라 목조 및 기타 자재도 마찬가지입니다. Q. 칠곡 주택 설계와 시공 과정에서 주안점을 둔 부분은 어디인가요? A. 산 중턱에 위치한 만큼 단열 부분에 특히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300㎜ 고강도블록으로 벽체를 마감하고 그 위에 단열 스티로폼을 추가해 열손실을 최소화했고, 부부침실은 황토로 전체를 마감하고 구들을 놓아 겨울철에 보다 따뜻하게 지낼 수 있도록 했습니다. 구조 설계는 실용성과 편리함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거실과 주방을 연계하고 이를 중심으로 전체 동선을 간결하게 조성해 공간 활용도를 높였습니다. 전원주택라이프 더 보기www.countryho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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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 전원주택】 자연을 정원 삼은 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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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집] 전통 흙집의 현대적 건축방식 ‘속심 골조’를 적용한 영동 90.7㎡(27.5평) 단층 목구조 황토집
- 건축정보· 위 치 : 충청북도 영동군 영동읍 오탄리· 대지면적 : 330.0㎡(100.0평)· 건축면적 : 90.7㎡(27.5평)· 건축형태 : 단층 목구조 황토집· 지 붕 재 : 전통 토기와· 벽체구조 :'목심황토벽체'(속심골조 방식)· 외벽마감 : 황토 미장 후 방수 도포· 내벽마감 : 황토 미장 후 한지 벽지· 천장마감 : 황토 200㎜ + 루버, 노출서까래(거실 일부)· 바 닥 재 : 강화마루, 한지 장판· 창 호 재 : 이중 창(외부-새시, 내부-세살 목창호)· 난방형태 : 기름보일러· 설계 및 시공 : 오대황토주택 051-628-0027 / www.ohdea.com 곶감으로 유명한 영동에서 만난 이 황토집은 건축주와 시공사가 자연 재료와 좋은 재료로 집을 짓겠다는 의견 일치 덕분에 강원도산産 육송과 전통 토기와, 모르타르를 섞지 않은 순수 황토 재료를 사용한 생태주택으로 완성했다. 공법에 있어서는 전통 흙집 건축 방식을 따르되 현대의 황토집 시공자가 더욱 편리하게 집을 지을 수 있도록 고안한 '목심황토벽체' 방식을 따랐다. 오대 황토주택 오덕수 사장이 고안한 이 방식은 기둥과 기둥 사이에 놓은 가로 부재인 인방을 설치할 필요가 없으며 기둥 간격을 넓게 할 수 있는 등의 장점이 있다. 소백산 줄기 기다란 팔이 쭉쭉 뻗어 나가면서 그 팔 아래로 사람 살 터를 넉넉히 만들어놓은 자연과 사람이 어울린 마을, 충청북도 영동군 오탄리. 지금은 행정구역상 옆 마을 오정리와 합쳐져 오탄리로 불리지만 주민들은 아직 비탄리라는 이전 명칭이 익숙해 그 말을 버리지 못한다. 마을에 들어서면 비탄리라는 푯말이 여전히 길을 안내하기에 오탄리가 맞는지 비탄리가 맞는지 외지인을 혼동케 한다.조금 더 남으로 내려가면 우리나라 전국 감 생산량의 55%를 차지한다는 상주가 위치하는데 10월이면 그곳에 미치기 전 영동에서 벌써 달큰한 감 냄새가 도시인의 발을 붙잡는다. 영동 감은 전국 20% 정도의 생산량을 담당하기에 감 농사 인구가 제법이다.10월에서 11월 중순까지 여기저기서 곶감용인 둥시 껍질을 깎아 하늘에 매다는 곶감 만드는 작업이 한창이다. 그리 넓지도 않은데 영동군 내에만 곶감 생산 농장이 50곳은 훨씬 넘는단다.때문에 이곳 아낙들은 한 달 꼬박 곶감 만드느라 무릎 펼 새가 없고 한 달 내내 손에는 꿀 발라놓은 듯 달콤한 향기가 밴다. "자고 일어나면 몸이 가뿐해요" 김덕호(56세) 씨는 곶감의 고장 영동에서 태어나 자랐음에도 곶감 한번 제대로 걸 줄 모른다며 웃는다. 그의 집 앞마당에 황토집과 어우러지게끔 둥시 몇 알을 대롱대롱 걸어놓았는데 제대로 되지 않았는지 바닥에 몇 알 굴러다닌다. 감포도 배 사과 농사를 짓고 과실 유통업에 종사하는 김 씨는 이 터에서만 35년을 살았다. 대대로 물려받은 터에 32년간 시멘트집에서 거주하다 고령의 어머니와 자신의 건강을 챙기기 위해 시멘트집을 허물고 몸에 좋다는 황토집을 3년 전 새로 지었다."인터넷을 통해 오대황토주택을 알게 되었어요. 통영에 지은 암자를 구경하게 됐는데 집이 아주 마음에 들더라고요. 게다가 오대황토 사장님이 묻지도 않은 부분까지 황토집에 대해 아주 상세하게 설명을 해주셨어요. 그런 모습에 자연히 믿음이 생기고 '이 분한테 맡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3년 정도 황토집에 살아보니 특별히 좋은 점은 잘 모르겠는데 시멘트집에서보다 분명히 좋아진 점이 있다고."다른 건 몰라도 잠을 푹 잘 자고, 아침에 일어나면 개운하고 몸이 가벼워져요. 어머니를 생각해서 결심하고 지었는데 아쉽게도 황토집을 2년밖에 누리지 못하셨지요." 슬하에 딸 넷, 아들 하나 두었는데 자식들은 모두 장성해 출가했고 김 씨는 읍내에 나가 일하는 시간 외에는 밭을 돌보고 취미생활로 산에서 약초 캐는 등 자연을 벗하며 산다. 5~6년 전부터 약초 캐기를 취미로 하고 있다는데 산삼을 무려 50뿌리나 캤다.좋은 것은 필요한 사람에게 주고 못난 것은 술을 담갔다. 산삼 외에도 갖가지 종류의 약초들로 술을 담가놓은 병이 거실에 진열돼 있다. 약술 뿐 아니라 다용도실에는 장독에 포도주를 발효시키고 있다. "목심황토벽체" 방식의 튼튼한 건축물 강원도에서 가져온 육송을 원형 그대로 마름질해 기둥 보 도리 서까래로 삼고 지리산에서 퍼온 순수 황토만을 주 재료로 지은 질그릇 느낌의 목구조 황토집이다. 단층 90.7㎡(27.5평)의 그리 크지 않은 규모에 제법 부피감이 느껴지는 골재를 사용했기에 외형은 투박스럽고 묵직하며 차분한 느낌도 든다. 지붕 역시 천장에 20㎝ 두께로 진흙을 올리고 전통 토기와로 마감한 덕분에 전체적으로 예스런 느낌이 강하다. 지붕 무게가 엄청남에도 지진이 일어나도 안전할 정도로 강도와 내구력 면에서 우수한 건물이라고 한다. 지붕을 떠받치는 기둥과 보, 도리로 하중이 분산되는 데다 오대황토주택에서 적용하는 벽체 시공 방식인 '속심 골조'가 내구력을 더욱 강화시킨다는 오덕수 사장의 설명이다. 속심 골조란 기둥과 기둥 사이에 30㎝ 간격으로 6~10㎝ 두께의 수직 목재가, 6㎝ 간격으로 3㎝ 두께의 수평 목재가 마치 철근 콘크리트 벽체의 철근처럼 엮여 있는 것을 말한다. 속심 골조에 1㎡당 자연 생황토 0.35㎡를 물로 반죽해 채워 넣고 마무리 미장을 한다. 이러한 벽체 구조는 '목심황토벽체'라는 명칭으로 불린다.목심황토벽체는 오대황토주택 오덕수 사장이 고안해 2005년 실용신안등록한 황토집 벽체 시공방법이다. 요즘 보편화된 황토벽돌 이중쌓기 방식에서처럼 기둥과 기둥 사이를 가로지르는 하인방 중인방 상인방을 따로 시공할 필요가 없는데 속심 골조가 기둥과 도리에 결합돼 각 부재들의 결속력이 강한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오덕수 사장은 "전통 심벽 구조와 비교할 때 건축 후 건조하면서 발생되는 틀어짐과 벌어짐 등 변형이 적고 내구력을 보강할 뿐 아니라 시공에도 편리함을 더하는 방식"이라고 목심황토벽체에 대해 소개했다. 오 사장은 과거 일반 건축 분야에서 종사하다 자연 속에 자연을 닮은 집을 짓고 싶다는 동기에서 황토집으로 건축분야를 전환했는데 처음에는 황토와 나무가 서로 잘 붙지 않아 건조되면서 생기는 흔들림 현상 등으로 시행착오가 많았다고. 그러한 문제점을 하나씩 해결하면서 전통 흙집의 현대적 건축 방식을 고안하게 됐다고 한다. 단열을 고려해 오량천장을 루버로 마감 내부 구조는 간결하다. 거실과 주방은 구획이 없는 일자 개방형이고 전면으로 거실을 배치했다. 그리고 좌우측에 방을 나란히 배치했다. 거실/주방 천장 형태가 특이한데 천장의 전·후면으로는 서까래를 노출시키고 중앙부는 원형 나무가 사각 틀을 형성하고 루버로 마감됐다. 원래 오량천장 구조인데 천장고가 너무 높다 보니 단열을 고려해 도리 위로 흙벽을 세우고 루버로 마감해 고를 낮춤으로써 아늑한 느낌을 더했다. * 김덕호 씨는 기적처럼 생명을 되찾은 사연이 있다. 15년 전 갑작스레 당뇨병이 찾아와 혈당 수치가 600~700까지 올라 생사의 갈림길에 놓였다고. 시력은 약해지고 걸을 수도 없고 치아가 흔들리는 증상으로 '이제 곧 죽겠구나'싶었다. 인슐린과 병원 처방으로 혈당수치가 300까지 내렸지만 그것으론 부족했다. 그때 지인이 건네준 약초 엑기스를 먹고 7개월간 앓던 당뇨병이 사라졌다. 그런 사연이 있기에 산으로 다니며 약초를 캐는 취미에 재미를 붙였다.어릴 적 할머니가 약초 캐러 다닐 때면 그 뒤를 밟던 기억에 구찌뽕 구기자 백련초 칡 삼지구엽초 상황버섯… 이런 것들이 모두 약이 된다는 걸 자연스레 알게 됐다. 그리고 요즘 취미가 하나 더 늘었다. 강돌 주워 모으기. 이 돌로 손수 암자를 만들 계획이다. "그 옆에다 황토집을 한 채 더 지어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쉬다 갈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그리고 직접 캐 온 약초로 그들의 아픈 데를 낫게 해줘야지요." - 글 박지혜 기자 사진 서상신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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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택&인테리어
- 전원&단독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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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집] 전통 흙집의 현대적 건축방식 ‘속심 골조’를 적용한 영동 90.7㎡(27.5평) 단층 목구조 황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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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닮은 집] 소형 주말주택의 패러다임(Paradigm) 홍천 72.7㎡(21.9평) 단층 경량 목조주택
- 최근 전원주택 건축 경향으로 66.1∼99.2㎡(20∼30평형)대의 소형화 추세를 꼽는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세컨드 하우스인 주말용이나 휴양용 전원주택에서 두드러진다. 이렇듯 집보다 전원생활에 무게 중심이 실리면서 한때 ‘세컨드 하우스 = 별장’이란 일부의 곱지 않은 인식에도 마침표를 찍은 듯하다. 여기에는 경제 성장이란 토대 위에 정부가 추진하는 도시민 농어촌주택 갖기 운동과 비록 한시법(08년 12월 31일까지)이지만 양도소득세 비과세 혜택 그리고 공시지가의 30%선(㎡당 5만 원 상한)인 농지보전부담금 등이 한몫을 했다.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의 아파트에 거주하는 이경선(55세)·백순예(50세) 부부는 이러한 제도를 적절히 활용하여 2006년 5월 강원도의 첫 관문 격인 홍천군 남면 제곡리에 주말주택으로 연면적 72.7㎡(21.9평) 경량 목조주택을 짓고 전원생활을 알차게 즐긴다. 이들 부부의 자연을 닮은 집도, 사회나 문화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연인으로서 살아가는 삶도 자못 흥미롭다. 건축정보 ·위 치 : 강원도 홍천군 남면 제곡리 ·부지면적 : 1041.0㎡(314.9평) ·대지면적 : 462.8㎡(140.0평) ·건축면적 : 72.7㎡(21.9평) ·건축형태 : 경량 목조주택(2″×4″) ·실내구조 : 거실, 방, 주방/다용도실, 화장실 ·외벽마감 : 시더 베벨 사이딩 ·지 붕 재 : 아스팔트 슁글 ·내장마감 : 스프러스 루바(1″×6″) ·바 닥 재 : 강화마루 ·창 호 재 : 시스템창호 ·난방형태 : 기름보일러 ·식수공급 : 지하수 설 계 : 에이치플랜 031-638-4438 www.hplan.co.kr 시 공 : 우드홈 031-631-8929 www.ewoodhome.co.kr 서울에서 경기도 양평을 경유하여 강원도의 관문인 홍천군 남면 양덕원리에 이르러 노일강으로 흘러드는 사행천蛇行川을 따라난 좌측 길로 접어들면 농촌 풍경이 한갓지게 펼쳐진다. 물살이 더딘 개울에서 아낙네들이 삼삼오오 모여 다슬기(일명 올갱이)를 잡는 손길만이 분주할 뿐이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농촌주택이 옹기종기 모인 제곡리에서 저수지 방면으로 접어들자 계곡 옆으로 정성을 들여 가꾼 정원과 텃밭이 펼쳐지고, 그 너머 단풍나무 사이로 아담한 경량 목조주택과 토속적인 원두막이 모습을 드러낸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구미남부 현대자동차 BLUhands 이경선 대표의 72.7㎡(21.9평) 주말주택이다. 목재 대문을 열고 정원에 발을 내딛자 주인보다 먼저 제철을 만난 벌과 나비가 반긴다. 연둣빛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신록이 산자락을 타고 정원에 내려앉으면서 울긋불긋 꽃망울을 터트린다. 텃밭에는 햇살을 머금어 살이 오른 갖가지 푸성귀들이 상에 오르기를 기다린다. 낯선 객이 찾아들어 서성이자 윗집 할머니가 채마밭을 일구다 조심스레 다가와 찾아온 연유를 묻고는 갔다가 되돌아와 쇠었지만 아직은 먹을 만하다며 두릅을 한줌 내민다. 원두막 앞에 놓인 흔들의자에 앉아 계곡물 소리를 들으며 비록 잠시잠깐의 일임에도 건축주와 원주민 사이에 얼마나 훈훈한 정이 오가는지를 짐작해 본다. 이윽고 도착한 건축주 이경선·백순예 부부가 수인사를 나누자마자 우리 집에 온 손님을 대접하고자 장을 보았다며 주방과 원두막 옆 바비큐장으로 향한다. 전원생활, 자연 인간 집의 삼위일체 남편 이경선 씨는 고향인 경북 예천을 청년기 때, 아내 백순예 씨는 고향인 강원도 원주를 유아기 때 떠나서 수도권에서 줄곧 생활했다. 남편은 한 집안을 이루고 어느 정도 경제적 기반을 닦으면서 고향을 그리워하며 전원생활을 꿈꾼 반면 고향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는 아내는 그런 남편을 이해하지 못했다. 슬하에 두 아들을 두었는데 첫째를 출가시키고 둘째를 유학 보내면서 남편의 향수병은 더욱 깊어만 갔고 아내도 더는 남편의 뜻을 꺾지 못했다. 부부는 도시에 기반을 둔 경제 활동으로 완전 귀향은 어렵기에 차선책으로 주말주택을 택했다. 그렇게 해서 몇 가지 집터 마련 원칙을 세우고 2년 가까이 나들이 삼아 발품을 판 끝에 2005년 9월 이곳을 찾아냈다. “도시의 집에서 1시간 30분 이내인 맑고 깨끗한 지역에 위치한 양지 바른 남향에 배산임수형으로 도로와 접한 661.2∼991.7㎡(200.0∼300.0평) 터를 찾아다녔습니다. 원래의 모양을 갖춘 땅만을 고집했기에 인위적인 전원주택단지는 아예 생각지도 않았습니다. 이곳은 거리가 적당하고 계곡에 접한 남향받이 언덕배기이면서 상류에 오염원이 없고 큰길에서 벗어나 차 소리가 안 들리며 이웃한 인가의 전기며 전화, 상하수도 등 기존 시설을 이용할 수 있으니 집터로 나무랄 데 없기에 밭 1041.0㎡(314.9평)을 사들였습니다.” 부지 형태는 동서로 길게 뻗은 다소 불규칙한 형태이고 뒤에는 작은 길을 사이에 두고 농촌주택 두 채가 자리하며 앞에는 경사지로 계곡이 흐른다. 전체 부지 중 좌측 진입로에서 떨어진 우측 상단부 462.8㎡(140.0평)를 대지로 지목변경地目變更하여 2006년 5월 두어 달 만에 72.7㎡(21.9평) 경량 목조주택(2×4인치)을 앉혔다. 언뜻 보아도 지대가 우측의 밭보다 2m 정도 높고 앞쪽 계곡의 석축 경사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남편은 계곡이 좋다 보니 그만한 대가를 치렀다며 토목공사 때의 어려움을 말한다. “집터는 물가를 피해서 잡으라는 얘기를 집 지으면서 깨달았습니다. 지대가 낮아 성토盛土 과정에서 15톤 트럭으로 흙이 140차, 돌이 18차 분량이 들어갔습니다. 계곡 쪽 보강 공사는 땅이 얼어야 중장비 진입이 가능하므로 2007년 1월 꼬박 1주일간 약 천만 원을 들여 진행했습니다.” 집터는 정원/텃밭보다 높이고 기초 콘크리트 부분은 격자형 목재인 래티스(Lattice)로 가렸으며, 외벽은 적삼목 사이딩으로 지붕은 아스팔트 슁글로 마감했다. 대문에서 현관까지는 물 빠짐을 고려하여 자갈을 깐 주차장과 철제문을 낸 돌담을 거쳐 침목과 잔디·나무로 꾸민 정원 길 그리고 보도블록을 깐 계곡 산책로로 진입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주택의 평면 구조는 좌우로 긴 장방형으로 전면에는 덱(Deck)과 현관 방을, 후면에는 전체 규모에 비해 넓은 거실과 주방 다용도실 화장실을 배치했다. 보통 덱은 건축면적에 포함시키지 않으려고 앞으로 뽑아서 지붕을 없애는데 남편은 72.7㎡임에도 여러 가지 이점을 고려하여 지붕을 덮었다고 한다. “집의 안팎을 잇는 덱은 기본적으로 거실과 소통이 자유로워야 하지만 비 오는 날에도 야외식사나 차를 마시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지붕을 덮었습니다. 덱을 쪽마루처럼 앞으로 뽑으면 방을 하나 더 드리겠지만, 그보다는 주변 경관과 쓰임새를 고려할 때 건축면적에 포함되더라도 툇마루가 훨씬 이점이 많다고 본 것입니다. 또한 방은 잠만 자는 공간이므로 거실에 비중을 두다 보니 좁아졌는데 불편한 줄 모르고 지냅니다.” 창호의 경우 전면창과 작은 창을 앞뒤로 배치하여 여름철에는 실내에서도 바람의 흐름을 느끼게 하고 겨울철에는 햇살만 들이치게 했다. 인테리어는 내벽과 천장 모두 스프러스 루바(1×6인치)로 마감하여 목조주택의 느낌을 살렸다. 남편은 전원생활이 주主이고 집은 부차적인 것이기에 욕심을 내지 않았다고 한다. “전원생활은 잘 지은 좋은 집에서 살기보단 작더라도 구조재나 마감재가 친환경적이면 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도시에서도 그만한 비용만 치르면 좋은 집을 짓거나 살 수 있으니까요. 부지 선정 때부터 자연과 인간과 집을 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하나로 엮을까, 이 문제 해결에 역점을 두었습니다.” 자연과 하나되는 즐거움 건축주 부부는 부지를 마련할 때부터 지금까지 원주민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는다. 일부 전원생활자들이 원주민과 융화하지 못한 채 유턴한다는 얘기도 들었지만 남편은 나 자신이 촌놈이기에 쉽게 마음을 열었다고 말한다. “나는 소싯적 선친을 따라 농사짓던 촌놈이라 지금도 논두렁에 걸터앉아 주민과 막걸리를 나누어 마실 수 있습니다. 도시나 농촌이나 사람살이란 마음을 열고 서로를 배려하기 나름입니다. 우리 부부는 이 마을의 경조사 참여는 물론 쌀이며 감자, 콩, 산나물 등 사계절 농산물을 구입해 도시의 친지들과 함께 나눠 먹습니다. 또한 정원에 심은 조경수며 돌담, 잔디 모두 마을 아저씨들의 작품입니다. 우리 부부의 힘만으로도 하겠지만 주민과 일을 함께하면 모두 상부상조하는 것 아닙니까.” 건축주의 아내도 스스로를 촌놈이라 부르는 남편을 닮아서인지, 나이가 들어서인지 전원에서 생활하다 보니 눈에 안 보이던 것들이 예쁘게 들어온다며 좋아한다. “2년째 여기서 된장을 담가 먹을 정도로 마을에 정이 푹 들었습니다. 올해도 욕심을 내서 아주머니들과 함께 콩을 삶고 메주를 빚어 장을 담갔는데 지금 장독대에서 잘 익어갑니다. 주민과 진심으로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언니, 엄마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요즘은 남편하고 꽃을 한 판 사들고 와서 구석구석 가꾸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사계절 나름 특징이 있는데 봄에 새싹이 힘차게 올라올 때 기분이 그렇게 좋습니다. 씨 뿌린 후 머지않아 연약한 새싹이 자갈을 밀고 올라오는 것을 보면서 생명력에 감탄한답니다.” 겨우내 먹다 남은 시래기가 걸린 원두막 옆 정원에는 지게와 새장, 싸리나무울타리 등 갖가지 소품이 빼곡하다. 아내는 목공일이 취미인 남편이 싸리나무를 해서 지게에 짊어지고 오면서 싱글벙글하던 모습을 지울 수 없다고 말한다. “고향집처럼 싸리나무울타리를 만들겠다며 촌부村夫 차림으로 지게를 지고 오는 모습이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했습니다. 여기서는 옷을 아무렇게나 입어도 지게를 지어도 거리낄 게 없고, 명품으로 온몸을 치장해도 알아봐 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얼마 전 이 집에 새 식구가 늘어났다. 주말주택이라 평일에는 벌과 나비들 차지였는데 이를 시샘한 듯 집 뒤에다 딱새가 새끼를 6마리나 친 것이다. 집이 건강하고 집주인의 삶이 건강하니 변화에 민감한 새들이 깃들었음이다. 우리네 조상들은 경치 좋은 곳에 정자亭子를 짓고 풍류風流를 즐겼다. 조선의 유학자 퇴계 이 황은 풍류의 본질을 도의道義를 기뻐하고 심성心性을 기르는 상자연嘗自然에서 찾았다. 그것은 자연과 인간이 하나〔物我一體〕일 때 비로소 가능하다. 전원생활의 참맛을 즐기며 참나를 찾아가는 이들 부부의 삶에서 그 단면을 엿보았다. 글 윤홍로 기자 사진 서상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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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닮은 집] 소형 주말주택의 패러다임(Paradigm) 홍천 72.7㎡(21.9평) 단층 경량 목조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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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행풍수 인테리어] 소문난 명당을 찾아서-구례 운조루, 안동 의성 김씨 종택
- 많은 사람이 살기 좋은 아늑한 집을 소망하면서도 주먹구구식 시행착오를 되풀이하고 있다. 환경·풍토·습관·생활 양식이 전혀 다른 외국 것을 모방하여 이식하기도 하고, 혹은 일시적 유행을 좇고 있다. 심지어 사람이 집의 주인이 아니라, 물량적으로 획일화·규격화되어 가는 집이라는 구조물의 부속품처럼 타율적으로 집에 눌려서 지내는 비극적이랄까 희극적인 양상마저 생기는 실정이다.예전에 한 풍류인(風流人)은 "봄을 찾아서 들로 산으로 진종일 헤매다가 허탕을 치고 기진맥진하여 집에 돌아와 보니, 희한하게도 집 울타리에 핀 매화나무가지 끝에 봄은 이미 무르익었더라"고 했다. 이처럼 아늑하고 포근한 자기 집을 소원하면서 이제라도 집터를 물색하는 사람, 집을 지으려는 사람, 집을 사려는 사람, 집을 소개하려는 사람, 집을 수리하거나 혹은 남의 집을 임대하려는 모든 뜻 있는 사람들에게 울타리에 핀 흰 매화꽃처럼 풍수지리가 기대 이상의 기준과 지침이 되고, 실용적으로 유익한 도움이 됐으면 한다.이번 호에는 이처럼 자연 속에서 편안한 삶을 추구하고, 그 속에서 자연을 닮은 집을 짓고 산 우리네 조상들의 지혜를 살펴보기로 한다. 그 중에서 명당으로 소문난 유명 고택(古宅) 두 군데를 순례해 보자.구례 운조루-금환낙지에 자리한 99칸 집구례군 토지면 오미리에 있는 '운조루(雲鳥樓)'는 조선 중기의 주택으로, 중요민속자료 제8호다. 1776년(영조 52) 삼수부사와 낙안군수를 지낸 유이주가 건립했다고 전한다.이 집터는 풍수설에 따르면 '금환낙지형(金環落地形)'이라 하여, 예로부터 명당으로 불렸다. 산자락이라 사태의 위험이 있고 고인돌마저 널려 있어 이곳 사람들은 개간을 꺼리던 자리였다. 1776년 이곳에 집을 짓기 위해 땅을 파던 중 거북처럼 생긴 돌이 나왔다. 길이 25센티미터, 높이 12센티미터, 머리 3.5센티미터의 이 돌은 집을 짓고 1782년 함을 만들어 가보(家寶)로 전해 왔으나 1989년 도둑이 들어 훔쳐갔다. 이 집은 1776년 9월 16일 상량식을 가졌고, 6년 만인 1782년 유이주가 용천(龍川)부사로 있을 때 완공됐다.운조루의 사랑채는 큰사랑·아래사랑채로 나뉜다. 주인은 큰사랑채에 거처하면서 손님을 맞거나 손님을 재웠다. 큰사랑채 서쪽에는 세 방향이 탁 트인 누마루(운조루)가 있어서 여름 거처로 쓰였다.안채는 사랑채 사이의 중문을 통해 들어간다. 안주인이 거처하며 자식들과 며느리가 산다. 부엌, 찬칸, 곳간, 대청 들이 'ㄷ'자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다. 남쪽 행랑채는 솟을대문을 중심으로 담 대신 18칸이 일직선(줄행랑)을 이루고 있다. 지금은 헛간과 창고, 마구간 등으로 쓰이지만 옛날에는 노복들이 살았다. 솟을대문 동쪽으로 작은 문이 있어서 옛날에는 안주인이 출입했다.유이주는 이곳 집터를 닦을 때 거북처럼 생긴 돌이 나와 금귀몰니(金龜沒泥)가 분명하다고 여겼다. 이 집에서는 금거북이가 부엌자리에 있다고 믿는다. 이 때문에 절대로 부엌바닥을 밖으로 쓸어내지 않으며, 바닥이 울퉁불퉁해도 그대로 두고 몇 년에 걸쳐 한 번씩 흙으로 메워 줄뿐이다. 집을 앉힐 때 부엌자리에 안방을 배치해야 할 구조였다. 하지만 거북자리에 안방을 두어 불을 때면 거북이가 말라죽는다 하여 안방을 오른쪽으로 돌리고 거북자리를 맨 땅 부엌으로 만들어 늘 습기가 있도록 했다.운조루에서 찾아본 풍수 지혜를 살펴보자. 집 뒤의 산에 기대는 집터를 잡는데(배산임수), 산기슭에 바짝 붙여 집을 지었다. 뒤에는 산이 있되 경사가 완만하며 일조와 함께 배수가 양호하고, 또한 산에는 수목이 무성하다. 수목은 물과 흙을 보호·유지하고,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여 쾌적한 미기후를 조성한다.앞이 낮고 뒤가 높은 집터를 풍수에서는 '진토(晉土)'라 하여 길하게 여긴다. 중국 진나라는 황하지역에 도읍을 정했는데 그곳은 북쪽이 높고 남쪽이 낮아 번성했으나, 양쯔강 유역에 도읍을 정한 초나라는 북쪽이 낮고 남쪽이 높아 미개한 나라로 끝났다.운조루는 대문 앞으로 계곡물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른다. 즉, 외당의 섬진강은 서류동출(西流東出)하는데 반해 운조루 앞의 물은 동류서출(東流西出)한다. 물의 흐름이 역행함으로써 지기(地氣)의 응집이 더 강하다. 또한 좌향은 남향으로, 남향집은 햇볕이 많이 들어 집에 양명한 기운을 북돋운다. 한국에서 남향집은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바람이 막혀 아늑한 집이 된다. 뒷산은 활처럼 굽었는데, 운조루는 휜 안쪽 중심부에 위치한다. 따라서 작지만 좌우로 청룡과 백호가 감싸안아 장풍이 용이하다.운조루 대문에는 호랑이뼈(현재는 도둑을 맞아 말머리뼈)를 걸어 두어, 잡귀가 집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았다. 풍수에서 잡귀를 막기 위해 엄나무를 대문 위에 걸치거나, 또는 문패를 밤나무로 하면 도둑이 들지 못한다고 한다.대문 밖에는 200평의 네모진 연못을 파놓고, 그 가운데에 섬을 두었다. 이것은 조산인 관악산이 화산이므로 화기(火氣)를 제압하기 위해 물을 가두어 놓은 풍수적 비보책(裨補策)이다.운조루는 내청룡이 짧아 수구가 허하다고 여겼던지 수구 가까이에 조탑(造塔)을 만들어 비보했다. 돌무더기로 수구막이를 한 것은 한국의 오랜 풍습이다.운조루는 중문 칸에 안채의 통로까지 겸한 큰 부엌을 두었고, 그 북쪽으로 사랑채와 안채를 잇는 쪽문을 따로 두었다. 또한 집의 규모에 비해 장식적 의장이 적어서 길하다. 풍수에서 집을 화려하게 꾸미면 마치 촛불이 마지막에 더 밝은 빛을 뿜어내는 것처럼 곧 쇠락할 징조로 여긴다.운조루의 대문 앞과 집 안에는 큰 나무가 없어 길하다. 나무는 흙에 함유된 물기를 빨아들여 집 안의 흙이 건조해지고 윤기를 없어지게 만든다. 또 사람이 가사(假死)상태로 잠을 자는 밤 동안 산소를 빨아들이고 이산화탄소를 내 보내 집 안에 산소의 부족을 초래한다. 집 안에 큰 나무가 있으면 '곤궁할 곤(困)'으로 가난해지고, 대문 앞에 큰 나무가 있으면 '막을 한(閑)'이 되어 집 안으로 좋은 기가 들어가는 것을 방해한다.대문과 중문, 중문과 안방의 문이 서로 일직선상에 놓이지 않아서 길하다. 문들을 일직선상에 두면 대문을 통해 들어온 바람이 곧장 방으로 들이닥친다. 따라서 기온 차에 의해 방 안의 사람에게 해를 끼치고, 또 직접 바라보이면 사생활이 침해되어 방 안에서도 불안을 느낀다.지기는 흙에 따라 흐르고 흙에 머물므로 집을 지을 때에는 흙을 파내고 땅을 평평하게 고르는 것을 꺼린다. 땅의 생긴 경사도에 맞추되, 경사면에는 돌계단이나 대를 높여서 자연스럽게 집을 층차감 있게 사랑채와 안채를 짓는다. 운조루는 자연적 지형을 그대로 살려 건물을 층차감 있게 지었다.안동 의성 김씨 종택-육부자가 과거에 급제한 명당경북 안동의 천전(川前) 마을에는 자손이 크게 번창하고 6부자가 나란히 과거에 급제했다는 명가(名家)가 있다. 바로 의성 김씨(義城 金氏)의 종가댁(宗家宅)이다. 김진(金璡, 1500∼1580)이 처음으로 집을 지어 살았는데, 터의 기운이 영험하여 아들 다섯 명이 모두 대과나 소과에 급제했고, 자기도 사후에 이조판서에 추증(追贈)됐다. 그래서 '육부자등과지처(六父子登科之處)'로 소문이 났다.이 종가댁은 조선 중기의 주택으로 총 55칸의 단층 기와집이다. 하지만 마당에 서서 보면 배산임수의 부지 축대 위에 자리해 마치 이층집처럼 높아 보인다.이 집에서 흥미를 끄는 것은 생기(生氣)가 응집된 방이 따로 있어 그곳에서만 아이를 출산한다는 점이다. '태실(胎室)' 혹은 '산방(産房)'이라 부르며, 대소과에 급제한 다섯 아들이 모두 그 방에서 태어났다. 그런데 김진의 11대 후손인 김방렬(金邦烈)이 그 방을 헐어 버리고 마루를 깔아 대청으로 만들었다. 영천의 영일(迎日) 정씨네로 시집 간 딸이 첫째와 둘째아들을 이 방에서 낳자, 집의 정기가 쇠약해진다고 여긴 탓이다. 그 딸은 할 수 없이 셋째아들은 다른 방에서 낳았는데, 예상대로 첫째와 둘째는 대과에 급제했으나 셋째아들만큼은 그렇지 못했다고 한다.현재의 주인되는 김시우(金時雨, 김진의 15대 손)도 태실의 발복을 믿고 있다. 맏며느리가 대구의 친정에서 딸을 낳은 뒤로는 후사가 없었다. 그러자 없앴던 태실을 다시 온돌방으로 꾸미고, 해외에 근무하는 아들이 휴가를 얻어 돌아오면 그 방에서 아들 내외를 지내게 했다. 그 결과 손자를 얻어 대를 잇게 됐다고 한다.안동 의성 김씨 종택이 입지한 천전 마을은 대현산을 등진 채, 앞에는 강물이 흘러 인접한 농토가 넓은 남향의 땅이다. 풍수적으로 완사명월형(浣紗明月形)이라 불리며 경주의 양동, 안동의 하회, 봉화의 유곡과 더불어 삼남(三南 ;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의 4대 길지의 하나로 꼽힌다. 비단은 고귀한 사람이 입는 옷이며, 그것을 밝은 달빛 아래에 깔아 놓았으니 세상에 이름을 날릴 인물이 나온다는 설명이다.김진은 여기에서 '갓 꼭지가 보이면 이사하라'고 했는데, 그 말은 집을 처음에 지을 때는 행인의 갓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지대가 낮았고, 따라서 앞쪽의 강물도 보이진 않았음을 내포한 말이다. 그렇지만 '갓 꼭지가 보인다'라는 말은 사람의 왕래가 많아진다는 뜻이 아니고, 앞쪽의 지대가 자연적 혹은 인위적으로 낮아져 대청에서 강물이 넘겨다 보이는 경우를 경계한 말이다. 강물이 풍수 상으로 보아 흉수(胸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도 대청 마루에서 강물이 바라다 보이지 않는다.의성 김씨 종가댁은 구례 운조루와 마찬가지로 가상적인 공통점이 있다. 대문 앞과 집 안에 거목이 없어 길하고, 부지가 방정하고 전저후고(前低後高)의 택지라 길하다. 또 수로나 냇물의 유입이 없으며 집 안에 우물이 없는 것도 길하고, 솟을대문과 중문 그리고 중문과 안방이 일직선상에 있지 않은 점도 풍수적으로 길하다. 정원수가 적고 가운데뜰에 연못이나 우물이 없으니 가상적으로 흉함을 발견하지 못했다.의성 김씨 종가댁은 생기 왕성한 용맥에 자리잡고, 천전 마을 중에서 양기 흐름이 가장 양호한 곳에 해당되어 학자와 고관대작이 배출될 터다. 또 사랑방과 안방은 풍수적으로 매우 길한 방위적 배치를 보인다. 이처럼 길한 기운이 많아 복지로 손색이 없다.현대를 사는 우리도, 자연 속에서 풍류를 즐기며 산 조상들의 지혜를 낡았다고 치부해 버리지 말고, 잠깐씩 빌려쓰는 여유를 가져보자.田글 고제희 <대동풍수지리학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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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행풍수 인테리어] 소문난 명당을 찾아서-구례 운조루, 안동 의성 김씨 종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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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CIAL EDITION] 건축 구조 바르게 알기 ②_한옥
- 한옥, 전통의 멋과 맛에 현대의 기능성을 접목하다 대중화 관건은 가격 경쟁력 확보 소득 수준의 향상으로 웰빙, 로하스, 힐링 등 보다 나은 삶을 바라는 욕구가 강하다. 그러한 욕구는 인간 생활의 3요소인 의식주衣食住 가운데 주거에서 한옥으로 나타나고 있다. 친환경성, 건강성, 전통적인 아름다움, 자연과의 조화, 심리적 안정감 등 장점이 많지만, 현대인이 생활하기에는 각 실이 좁고 겨울에 춥고 관리하기 어렵고 건축비가 많이 든다는 등의 이유로 외면해 오던 한옥을 재조명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 전통 한옥의 장점과 현대주택의 기능을 접목한 한옥이 신한옥이란 이름으로 속속 등장하고 있다. 전통 한옥의 멋과 맛을 살리면서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기능성을 더한 신한옥을 살펴보자. 글 윤홍로 기자 살림집 한옥이 국가 정책에다 서울시 한옥 건축물 보존 정책, 전남도의 한옥 보급 정책 등 지자체 노력에 힘입어 건축 붐을 이루고 있다. 한옥 풍의 호텔, 동사무소, 치과, 어린이집이 등장하더니, 이제는 국외 한류 열풍을 타고 한옥을 수출까지 한다. 중국 동북부 헤이룽장 성 닝안 시 밍싱 촌에 2011년부터 한옥형 호텔을 비롯해 한옥 1500여 채가 들어서는 한옥 신도시를 조성하는 것이다. 정부가 추진해 온 한韓-브랜드화 전략 중 하나인 한옥이 그 빛을 발하는 것일까. 문제는 한옥을 일반인에게 널리 보급 확산하기 위한 한옥의 가격 경쟁력 확보이다. 한옥국가센터는 “전통 한옥의 맛과 멋을 유지하면서 21세기 주거 환경을 반영한 모듈을 개발, 성능을 개선한 저비용 친환경 한옥을 개발해 보급한다면, 전통문화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국민의 주거 문화 및 삶의 질을 높이며, 또한 국토 경관의 품격을 향상하고 한-브랜드 개발을 통해 한옥의 세계화 및 관광·문화 자원화에 기여할 것이다”면서, “전통의 멋과 현대의 기능을 확보한 새로운 한옥을 만들기 위해서는 생산 기술, 설계 기술, 성능 기술 및 DB 구축 기술을 융합한 한옥 기술 개발 필요하다”고 한다. 한편, 한옥이 각광을 받으면서 한옥을 바라보는 시선이 한옥의 진정성을 강조하면서 한옥의 개량·절충주의를 비판하는 보수파와 한옥의 현대화를 추구하면서 한옥을 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실험들이 인정받길 바라는 개혁파로 나뉘고 있다. 김홍식 명지대학교 교수는 한옥의 활성화 방향에 대해 “전통 한옥을 바탕으로 이를 지키면서 발전시키는 길, 전통 한옥의 맛을 지니면서도 새로운 기술과 기능을 담아내는 길, 구조만 한옥이고 내부는 현대적인 전혀 다른 방향을 모색하는 길. 이 가운데 어떤 길로 나가야 할지는 앞으로 연구자의 몫이다”고 한다. 한옥이 편리한 도시의 아파트 생활이 몸에 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최참판댁 마을의 초가들. 서구식 건축물이 유입되기 전 한옥이란 말은 없었으며, 기와와 초가로 구분했고, 민가의 대분은 초가였다. 전통 한옥의 아름다움에 현대적 기능을 가미한 강화 125.4㎡(38.0평) 현대 한옥. “한옥, 듣던 대로 아주 좋아요. 집 안 공기가 맑고 쾌적해서 그런지 파김치 상태로 잠들어도 일어나면 몸이 가볍고 상쾌해요.” -가평 155.4㎡(47.1평) 한옥, 유흥렬 씨. “몇 년 전 스트레스로 간이 나빠져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시골에서 휴양할 요량으로 정년의 7할만 채우고 주말부부를 감수하면서 이곳에 한옥을 지었어요. 산촌 한옥에서 지내다 보니 간 기능이 많이 좋아졌어요. 광양에 있는 한 초등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로 근무할 정도예요.” -하동 84.2㎡(25.5평) 한옥, 서정덕 씨. “열이 고루 퍼지도록 고래를 설치해 방바닥 전체가 뜨끈뜨끈하고 단열이 잘돼 온기가 은은하게 머물러요. 몸이 조금이라도 안 좋다 싶으면 구들에서 한두 시간 잠을 청해요. 자면서 땀을 쭉 빼고 나면 금세 몸이 개운해지거든요.” -충주 148.8㎡(45.0평) 한옥, 송일국 씨. 이렇듯 전원에 한옥을 짓고 사는 사람들 대부분은 ‘집이 쾌적해서 그런지 건강해졌다’고 말한다. 한옥이 나무, 황토, 종이를 위주로 한 자연 재료로 지은 환경친화적인 집이기 때문이다. <건축법 시행령> 제2조 16항에서도 “한옥이란 기둥 및 보가 목구조 방식이고 한식 지붕틀로 된 구조로 한식 기와, 볏짚, 목재, 흙 등 자연 재료로 마감된 우리나라 전통 양식이 반영된 건축물 및 그 부속 건축물을 말한다”고 정의한다. 한옥을 구성하는 구조재, 지붕재, 내·외벽재에 있어 자연 재료를 강조한 것이다. 살림집으로 한옥 건축은 대개 기단 쌓기, 주추[礎石] 놓기, 기둥 세우기, 보와 도리와 마룻대 짜 맞추기, 서까래 걸기, 산자 엮기, 알매[仰土] 깔기, 지붕 덮기, 벽 쌓기, 구들 깔기, 마루 깔기, 창호 달기, 담 쌓기 과정을 거친다. 기단과 초석과 구들은 돌이고, 뼈대는 나무이고, 벽은 황토이고, 지붕은 기와 또는 볏짚이고, 창호는 나무와 종이이다. 이처럼 다양한 자연 재료가 어우러져야 비로소 한옥이 모습을 드러낸다. 한옥을 보면 자연을 닮아 편안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최성호 산솔도시건축연구소 소장(전주대 겸임교수)은 “한옥이 우리가 늘 볼 수 있는 재료로 만들어져 자연과 합일하는 모습을 느끼기 때문이다”면서, “자연을 닮은 집이 지어지는 것은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는 인간의 능력 안에서 집을 지었기 때문이며,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자연과 상생相生한다는 정신으로 인간의 능력을 과도하지 않게 사용하지 않고 지은 집은 자연의 일부이기에 어떻게 집을 짓든 환경친화적인 집이 된다”고 한다. 건축 문화유산_한옥 사개맞춤 한옥 하면 자재 면에서 소나무와 황토를 떠올린다. 현대 한옥은 꼭 나무로 뼈대를 짜 맞춰야 하나. 이동일(행인흙건축) 대표는 “규모가 작은 건축물이나 부속사 등은 뼈대 없이 황토벽돌이나 흙벽만으로도 가능하지만, 공간 구성이 다양해지고 건축물의 규모가 커진 현대에는 안심할 수 없다”고 한다. 또한, “한옥은 황토가 지닌 물성 때문에 구조체를 먼저 세우고 지붕까지 마감한 상태에서 황토벽 작업을 하는데, 그것이 벽체 자체가 구조체인 일반 주택과 다른 점이다”면서, “황토와 가장 잘 어울리는 구조재는 역시 나무이다”고 한다. 이 대표가 말하듯이 사방의 보나 도리가 기둥 위에서 맞춰지도록 이들과 기둥머리를 따내서 엇갈리게 끼우는 한옥의 사개맞춤은 수백 년을 이어온 건축 유산이기도 하다. 한옥용 목재로는 어떤 수종의 나무가 쓰일까. 뼈대를 형성하는 것이 바로 나무 중 으뜸으로 꼽는 소나무이다. 소나무 송松의 좌변은 나무 목木이고 우변은 제후 공公이니 ‘나무의 제후’라는 뜻이다. 또한, 소나무는 장수長壽를 상징하는 십장생 중 하나로, 소나무를 두고 ‘살아 5백 년, 죽어 5백 년’이라고 한다. 소나무가 사는 기간이 5백 년이고, 다시 건축재로 수명이 5백 년 간다는 뜻이다. 현존하는 최고 목조 건축물인 12세기 봉정사 극락전과 13세기 부석사 무량수전(13세기)이 이를 방증한다. 취재차 근래에 지은 현대 한옥을 답사할 때면 느끼는 것이 심신을 맑고 상쾌하게 만드는 집 안에 그윽한 소나무 냄새이다. 나무가 각종 병균과 해충, 곰팡이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끊임없이 뿜어내는 물질인 피톤치드Phytoncide인데, 식물이라는 뜻의 파이톤Phyton과 죽임이라는 뜻의 사이드Cide를 합친 말로 식물이 분비하는 살균 물질이다. 피톤치드를 뿜어내는 나무 주위 1m 내에는 세균이 거의 없다고 한다. 반면, 사람이 신선한 공기와 함께 이 피톤치드를 흡입하면 심리적인 안정감으로 정신이 맑아진다. 윤원태 한국전통초가연구소 소장(문학박사, 경성대 겸임교수)은 “피톤치드의 농도가 짙으면 거담 및 강장, 통변 효과가 크며, 공기 중의 작은 먼지를 피톤치드 성분과 함께 호흡하면 먼지의 80%가 정화되는 등 심폐 기능 강화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면서, “피톤치드를 이용하면 일상생활 속에서 집 먼지가 유발하는 질병 요인인 아토피나 알레르기, 비염, 기관지 천식, 폐결핵 등을 가장 친환경적인 방식으로 예방할 수 있다”고 한다. 한옥용 소나무 목재에는 어떤 종류가 있을까. 윤원태 소장은 “국산 소나무 가운데 목재용으로 많이 쓰는 것이 육송陸松, 해송海松, 솔송率宋이다”고 한다. 울진 금강송. 소나무 송松의 좌변은 나무 목木이고 우변은 제후 공公이니 ‘나무의 제후’라는 뜻이다(사진 제공: 경상북도청). 사방의 보나 도리가 기둥 위에서 맞춰지도록 이들과 기둥머리를 따내서 엇갈리게 끼우는 한옥의 사개맞춤은 수백 년을 이어온 건축 유산이기도 하다. 육송| 우리나라 전역에 자생하는 수종이다. 나무의 색상을 보면, 변재邊材는 황백색이나 심재心材는 적갈색이 많아 ‘적송赤松’이라 부르기도 한다. 나무 겉은 거칠고 가벼우며 연하고 솔 향이 매우 강하다. 내구성, 접착성, 도장성은 보통이나 깎아서 가공하기 쉬우며, 수분이나 습기에 대한 저항력이 크고 건조 속도가 빠르다. 해송| 주로 남서부 해안 지방에 많이 분포하며, 변재는 약간 노란빛을 띤 백색이고 심재는 적갈황색이다. 나무 겉은 거칠고 내구성, 접착성, 도장성은 보통이나, 가공성이 양호하며 건조 속도가 빠르다. 솔송 | 울릉도에서만 자생하는데, 조선 시대 궁궐 건축용 목재이다. 변재는 담황갈색이고 심재는 황자백색이다. 나무 겉은 거칠고 치밀하며 단단하다. 내구 보존성은 보통이고 절삭 가공, 건조, 도장성이 좋다. 변재_통나무의 겉 부분을 말하며, 빛은 희고 몸은 무르며 질이 거칠어 건축재로 적당하지 않다. 심재_나무줄기의 중심부에 있는 빛깔이 짙고 단단한 부분. 또는 그것으로 된 재목. 보통 붉은색, 누런색, 흑갈색이다. 한옥 건축용 또는 문화재용으로 주로 지름 50㎝ 이상 소나무, 또는 지금 30㎝ 이상 곧은 목재가 쓰인다. 소나무 중에서 가장 뛰어난 목재가 아마도 춘양목일 것이다. 경북 봉화군 춘양면을 중심으로 강원도와 경북 북부 등 태백산 일대에서 나는 소나무를 춘양목으로 볼 수 있는데, 원목을 춘양역을 통해 반출한 데서 유래한다. 춘양목은 보통 소나무보다 생장이 3배 이상 느리고 곧게 자라며 심재가 붉다. 외피는 거북등처럼 갈라져 있고 색깔은 암회색을 띤다. 나무를 잘랐을 때는 심재와 변재 부분이 확실히 구분되고 나이테가 좁고 치밀하다. 제재하거나 재목으로 사용했을 때 뒤틀림이 거의 없다. 가격은 일반 소나무 목재의 10배 이상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국토의 65% 정도가 산지임에도 한옥 건축용으로 춘양목은커녕 국산 목재조차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웰빙이니 로하스니 힐링이니 해서 한옥을 비롯한 여러 유형의 목구조 주택 수요가 매년 증가하는 추세이지만, 국산 목재 자급률은 15% 정도에 불과하기에 대부분 목재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산림청의 산림 자원 육성 정책에 따르면 2020년 목표 목재 자급률은 20%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민간을 중심으로 한 한옥 건축은 신토불이身土不二가 아닌 러시아(레드파인), 미국과 캐나다(더글라스퍼, 햄덕) 등의 수입산 목재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윤원태 소장은 수입산 소나무는 “구소련 등지의 소송蘇松(북양재)과 미국의 미송美松(북미재)를 많이 쓰며, 동남아시아 남양재나 뉴질랜드의 뉴송은 생장 속도가 빠르기에 강도가 약하고 송진 함유량이 적어 건축재로는 권장할 만한 목재가 아니다”고 한다. 황토_건강하고 쾌적한 주거 공간 조성 1960년대 이전에 지은 한옥 심벽. 힘살대를 박고 욋가지를 하나씩 엮는 모습. 한옥은 기둥, 보, 도리, 동자주, 중도리, 대공, 마루도리, 지붕틀, 추녀, 서까래, 인방, 문골, 마루귀틀, 마룻널, 천장귀틀 순으로 뼈대를 짜 맞추고 지붕을 이으면 기둥과 인방을 벽면보다 두드러지게 황토로 심벽을 치거나 황토벽돌을 쌓는다. 심벽치기는 상인방과 중인방, 하인방 사이에 힘살대를 30∼40㎝ 간격으로 박고, 반으로 쪼갠 대나무나 싸릿대, 수숫대 등의 욋가지를 힘살대 앞뒤로 촘촘히 엮는다. 그 후 짚을 썰어 차지게 반죽한 황토를 이중으로 엮은 욋가지 사이에 가득 채워 3∼5일 건조하고 안벽과 바깥벽에 맞벽치기를 하고, 벽이 굳어지면 다시 보드라운 황토를 체에 쳐서 모래나 황운모 등을 7:3 정도로 섞은 다음 물 또는 느릅나무나 해초 삶은 물로 반죽해 벽면을 매끈하게 덧붙여 마감한다. 그러나 심벽치기는 전통 한옥 공법이지만 벽체 두께가 10㎝ 안팎에 불과하므로 외풍이 심하고 단열 효과가 떨어지기에 현대 주거에는 적합하지 않다.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해 현대 주거에 맞는 현대 한옥으로 계승한 주인공이 한국전통초가연구소 윤원태 소장이다. 윤 소장은 겹벽을 만들어 벽체 두께를 조절함으로써 단열 효과를 높였다고 한다. “황토는 단열보다 축열 효과가 높다. 축열 효과란 쉽게 말해 외부 온도가 변해도 내부 온도는 쉽게 오르내리지 않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축열 효과를 높이려면 황토벽의 두께가 최소 14㎝ 이상이어야 한다. 이처럼 벽체 두께를 넓히는 것은 재래식 홑벽으로 만들면 불가능하지만, 겹벽을 만들면 원하는 두께를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이때 꼭 알아야 할 기술이 벽체 두께와 함께 나무와 황토가 접촉하는 부분에 틈새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한편, 몇 년 전부터 심벽치기 전용 기능성 욋대가 한옥에 쓰이고 있다. 수직, 수평, 좌굴 하중에 대응하는 보강재(대나무, 나무 등)를 사용해 틀을 짜고, 내부에 왕겨숯을 채운 후 양쪽에 대나무 외를 부착한 것이다. 세종신도시에 한옥마을 조성 중인 안성완 아름자리개발 관리과장은 “욋대는 숯, 대나무, 나무, 황토 등 천연 자재로 만든 친환경 황토벽으로 단열성, 축열성, 흡취성, 방음성, 내구성 등이 뛰어나며, 한옥 벽체에 적용하기 쉽게 두께가 다양하며, 인방이 드러나 미관을 잘 살릴 수 있다”고 한다. 단열성은 방재시험연구원에서 두께 17㎝ 욋대를 시험한 결과 열관류율이 0.36W/㎡K로 나타났다. 이 수치는 콘크리트 20㎝ + 발포 폴리스티렌 10㎝(비드법 1호)로 이뤄진 벽체의 열관류율 0.33W/㎡K와 맞먹는다. 욋대 안팎에 황토로 초벌, 중벌, 새벌 마감한 후 내측은 한지 벽지로, 외측은 회로 마감(회벽)하거나 황토와 모래를 섞어 마감(사벽砂壁)하면 전체 두께는 18∼20㎝에 이른다. 신한옥의 주류를 이루는 벽체 방식이 구조적 안정성을 갖춘 목구조에다 단열성과 축열성을 더한 황토벽돌 쌓기이다. 일반적으로 나무 기둥의 두께가 보통 24㎝이므로 폭이 20㎝인 황토벽돌(규격: 길이 30㎝ × 높이 15㎝ × 폭 20㎝)을 쌓는다. 문제는 목재가 수축하면서 기둥과 황토벽 사이, 창호와 황토벽 사이에 틈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기둥과 홈을 따 황토벽돌을 결합해 해결할 수 있지만, 그 또한 공정이 까다롭고 공임이 많이 든다. 이러한 문제를 보완한 방식이 이동일 행인흙건축 대표가 고안한 황토벽돌 이중 쌓기이다. 이동일 대표는 “황토벽돌 이중 쌓기란 24㎝ 기둥 안쪽에 폭 20㎝ 황토벽돌(30㎝ × 20㎝ × 15㎝)을 쌓고, 그 안쪽으로 작은 황토벽돌(19.5㎝ × 9㎝ × 5.5㎝)을 한 장 더 쌓는 것을 말한다”면서, 이때 작은 항토벽돌은 기둥 안쪽으로 쌓여 기둥과 외벽 황토벽돌의 틈 발생을 안쪽에서 막아주는 역할을 하고, 외진기둥과 도리의 결합 부분에서도 도리 위까지 놓여 쌓음으로써 단열을 보강하게 된다”고 한다. 행인흙건축에서 시공한 한옥의 시공 도면을 보면 단열성을 높이기 위해 벽체 외에도 창호는 우드 새시 이중 창호(외부)에 세살 목창(내부)을 더해 삼중 창호로 하고, 천장은 열 반사 단열재로 보강했음을 알 수 있다. 단열성이 우수한 한옥 심벽용 욋대. 황토벽돌 제조 과정. 황토벽돌 이중쌓기. * 현대 한옥이 건강하고 쾌적하다는 것은 예비 건축주에게 어느 정도 알려졌으나, 문제는 건축비가 비싸기에 쉽사리 건축을 결정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현대 한옥의 건축비가 고가인 이유는 무엇일까. 산림전문가인 이전제 서울대 교수는 “한옥에 사용하는 부재가 목재임에도 재료에 관한 연구가 미비하고, 특히 아직 협소한 한옥 시장의 실정 탓에 시공과 관련해 한옥의 구조, 건축비용, 설계 및 시공 인력의 전문성 등 한옥 시공에 관련한 체계적인 인프라가 갖춰지지 못한 상황이며, 또한 국내 65%가 산지임에도 국산재 사용이 매우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고 한다. 이동일 대표는 “현대 한옥은 전통 한옥에 비해 규모가 늘었고, 한옥의 전통미를 살리되 기능은 현대 주택으로 바뀌었고, 도배·장판·마루·전등·주방 가구 등 마감 사양이 고급화됐고, 구들방·누마루·돌담·대문 등 멋과 기능을 살린 부대공사가 많아졌고, 공정이 복잡하며 공사 기간이 길어졌고, 품앗이 건축에서 인건비가 비싼 전문가 건축으로 바뀌었고, 창호·황토 건자재·지붕재가 큰 비용을 차지하기 때문이다”면서, “한옥 목구조 사개맞춤 방식의 견고한 뼈대에 우리 살림집만이 가진 처마 지붕의 멋을 살린 한옥, 현대적 공간 구성과 마감으로 살기 편한 한옥, 구들방과 어울리는 한옥이 되려면, 돈을 더 주고 유기 농산물을 사듯 그만한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고 한다. 한옥과 관련한 학계나 시공업계 모두 현대 한옥의 보급 확산을 위한 가격 경쟁력 문제는 풀기 어려운 숙제임에는 분명하다. 더욱이 한옥을 바라보는 시선이 한옥의 진정성을 강조하면서 한옥의 개량·절충주의를 비판하는 보수파와 한옥의 현대화를 추구하면서 한옥을 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실험들이 인정받길 바라는 개혁파로 나뉜 시점에서는…….田 현대 한옥에 살 때 좋은 점 10가지 1 새집을 짓고 입주할 때 신축 건물에서 나타나는 화학 냄새 등이 전혀 없다| 일반적으로 신축 아파트의 경우 집 안에서 나는 냄새는 6개월에서 1년간 지속된다. 콘크리트, 페인트, 벽지, 접착제 등에서 발생하는 냄새이다. 하지만 현대 한옥(목구조 황토집 등)은 벽 자체가 자연 재료이고 화학제품을 거의 쓰지 않을 뿐만 아니라 냄새가 나더라도 이를 황토가 탈취한다. 그렇기에 현대 한옥은 새집이라 해도 오래 살던 집과 같은 쾌적함을 느낄 수 있다. 2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해 생체리듬을 안정화시킨다| 실외 일교차는 여름철에는 2℃에서 21℃까지 변화하는데 일반적으로 현대 한옥은 여름철에는 3℃ 이하, 겨울철에는 5℃ 이하로 기온 차가 작다. 외기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고 일일 기온 차가 작아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는 항온 효과가 있다. 또한, 거주자의 몸 상태를 일정하게 유지해줌으로써 생체 리듬을 안정화한다. 3 환기와 정화가 뛰어나 쾌적한 환경을 유지해 준다| 집 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없겠지만, 창문을 닫은 상태로 담배를 피우면 일반 주택에서는 연기가 자욱한데 현대 한옥은 황토벽이 연기를 흡착해 흩어버린다. 황토벽의 탈취, 정화 기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또한, 벽체를 단열재로 밀폐시키지 않기에 황토벽 미립자 사이로 공기가 순환함으로써 쾌적한 환경을 유지한다. 4 여름에 에어컨이 필요 없다| 현대 한옥에 입주한 대부분 사람은 도시의 아파트에서 가져온 에어컨을 처분한다. 여름에 현대 한옥을 신축할 때 황토벽을 쌓은 내부로 들어서면 서늘할 정도로 외부의 더위를 차단하는 효과를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이는 처마와 황토벽의 조화가 만들어 낸 한옥의 우수성 때문이다. 더위가 맹위를 떨치는 무더운 날에도 선풍기 하나면 여름을 날 수 있다. 5 겨울에 구들방 찜질 효과를 느낄 수 있다| 일반적인 한옥은 춥다. 목구조 황토벽돌로 짓는 현대 한옥은 목재 기둥과 황토벽돌 사이 틈이나 창틀 주변의 찬 공기를 느낄 수 있는데, 이 점을 보완(이중 황토벽돌 쌓기 등)하고 천장의 단열을 보강해 주면 겨울에도 따뜻한 집이 된다. 또한, 황토로 마감한 바닥은 난방할 때 예열 시간이 조금 길다 뿐이지 한번 데워진 방은 오래가고 쩔쩔 끓어 예전 구들방에서 느끼던 찜질 효과를 본다. 6 습도 조절 기능이 뛰어나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 일반 주택에서는 여름 장마철 집 안이 눅눅하고 곰팡이가 핀다. 겨울철에는 건조해 감기에 걸리기 쉽다. 하지만 한옥은 습기가 많으면 흡수하고, 건조하면 내뿜는 성질이 있기에 여름철에도 쾌적하고 겨울철에 감기에 잘 걸리지 않는다. 한옥만큼 습도 조절 기능이 탁월한 집은 없다. 7 소음을 막아주고, 소리가 변조되지 않아 원음 그대로를 즐길 수 있다| 살림집은 주변에 피해를 주지 않고 자유롭게 소리를 발산할 수 있어야 하고, 듣고 싶은 음악이나 소리를 잘 들을 수 있어야 하며, 듣고 싶지 않은 외부의 소리를 차단해 주어야 한다. 한옥은 소리의 변조나 굴절이 없어 원래 소리 그대로를 느낄 수 있어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특히 좋다. 노래를 부르거나 악기를 연주할 때도 황토벽은 투과 손실률이 높아 주변에 피해를 주지 않는다. 방과 방 사이 방음은 벽체 이음매와 천장 단열, 문에 대해서만 주의하면 칸막이벽의 방음 효과도 뛰어나다. 8 숙면, 숙취 해소를 피부로 느낄 수 있다| 한옥에 사는 사람들이 공통으로 얘기하는 게 바로 숙면이다. 한 번 잠들면 깨지 않고 아침까지 잠들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선물인가. 또한, 전날 술을 많이 마시고 잠들 때에도 다음날 일어나면 머리가 맑고 가볍다. 숙취를 없애는 기능까지 갖춘 것이다. 잠을 잘 자고 일어나니 얼굴색도 좋아지고, 피부도 고와질 수밖에 없다. 9 마음이 여유로워진다| 일반 주택은 실증을 금방 느낀다. 그래서 이렇게 고쳤다, 저렇게 고쳤다 집을 가만히 놓아두지 않는다. 하지만 현대 한옥은 세월과 함께 나이를 먹는 집이다. 사람들의 인식도 그러하다. 그 때문에 조급하게 실증을 느끼기보다 마음이 여유로워진다. 한발 물러서 삶을 바라볼 수 있는 지혜도 생긴다. 그래서 집은 인간의 삶을 담게 되는 것이다. 10 건축 폐자재를 줄일 수 있다| 한옥은 수명을 다해 허물면 현대 건축 자재(천장 단열재, 지붕재, 화장실 타일 등) 이외의 목재나 황토벽돌(황토), 한지는 자연으로 다시 돌아간다. 건축 폐자재를 줄이는 친환경 건축이다. 콘크리트와 화학물질 덩어리들이 대부분인 현대 건축에 한옥은 자연을 보전하고 환원하는 이치를 깨우친다. 우리의 후손에게 대대손손 물려줄 환경을 보존하고 지키는 생태 건축이다. 글 이동일<행인흙건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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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CIAL EDITION] 건축 구조 바르게 알기 ②_한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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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집 짓기, 생태건축] 무엇으로 어떻게 지을까 _ 창조력 발휘하는 생태건축
- 최근 발행된 생태건축 관련 서적《자연을 닮은 집짓기》에서는 '자연 재료를 사용하지만 효과적이고 값싼 현대 인공 재료, 예를 들어 금속 지붕널이나 방수포 따위도 거부하지는 않는다. 다만 현대건축에 비해, 자본보다는 인간의 노동력에, 전문화된 기술보다는 인간의 창조력에 의지한다'고 생태건축에 대해 설명한다.정리 박지혜 기자 자료협조 민들레건축사사무소㈜ 02-2055-2993 www.baekhwa.co.kr 제이콥 019-440-7696 www.j-cob.com 흙부대건축네트워크 061-864-9457 cafe.naver.com/earthbaghouse 참고자료《스트로베일하우스》시골생활,《 자연을닮은집짓기》도서출판따님 건축 전문인이 아닌 일반인도 쉽게 짓다 보니 생태건축은 과연 튼튼할까, 몇 년이나 버틸까 하는 의심을 많이들 한다. 그러나 연구와 실증 사례를 보면 결코 안전성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역사가 오래된 램드어스 건축(담틀집)의 경우 6천 년 넘게 세계 거의 모든 곳에서 지어졌는데 2천 년 역사를 자랑하는 중국 만리장성 일부와 주요 고대유적들 상당수가 이 축조 방식으로 지어졌고 지금도 여전하다.스트로베일하우스는 짚이 내부에 들어가므로 강도나 화재에 취약할 거라는 오해를 받는다. 건축 재료로 쓰이는 80×49×35㎝ 규격의 압축 볏짚단은 평균 무게 20㎏이다. 미국 콜로라도대학의 하중 시험 결과(1999년-ASTM E72 인증 자료집) 10평의 스트로베일 벽(로드베어링 방식)이 견딜 수 있는 무게는 무려 25톤이나 됐다.게다가 스트로베일하우스는 볏짚단을 쌓아 올리며 철근 등을 볏짚에 박아 서로 연결시키고 내외 벽에 5~7㎝ 흙 미장을 하므로 구조적으로 취약하지 않다는 결과다.또한 미국과 캐나다의 소방안전 테스트(1993년-ASTM E119 인증 자료집) 결과 스트로베일 벽을 섭씨 1012도의 고열로 2시간 넘도록 가열했는데 전혀 불이 붙지않았고, 반대편 벽의 온도 상승은 5도 이하였다. 베일 더미 안에는 산소가 들어갈 공간이 없어 잘 타지 않을뿐더러 불이 짚단에 도달하기 전 흙벽을 통과해야 하기에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화재 발생은 어려운 일이다.지은 지 5년 된 스트로베일하우스 정선 '동강사랑(아래 사진)'은 몇 년 전 평창 지진으로 집이 크게 흔들렸어도 전혀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장마를 네번이나 겪었음에도 아직 아무런 보수 작업을 하지 않아도 문제 없다고 한다.스트로베일하우스보다 역사가 짧은 어스백하우스도 ICBO(International Conference of Building Officials) 감독하에 칼어스흙집학교(Cal Earth School for Earthen) 테스트 결과 국제 건축기준보다 200% 이상 안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 사진_제이콥 국내 생태건축의 새 지평을 연 한국스트로베일건축연구회 이웅희국내 생태건축의 새로운 지평을 연 이웅희 씨를 전북 진안군 동향면 학선리에서 만났다. 한국스트로베일건축연구회(cafe.naver.com/strawbalehouse, 이하 연구회)를 이끌고 있는 그는 귀촌을 계획하며 자신의 집을 스트로베일하우스로 지을 결심을 하고 2005년 호주 스트로베일하우스연맹이 개최한 워크숍에 참여했다. 수료하자마자 국내 들어와 사단법인 한국내셔널트러스트 동강지기 홍순천 씨를 위해 함께 강원도 정선 제장마을에 국내 1호 스트로베일하우스를 지었다. 그것이 시발이 돼 현재까지 자신의 집은 짓지 못하고 남의 집 총 28채 시공에 참여했고, 연구회에 알려진 바로 현재까지 총 50채의 스트로베일하우스가 전국 곳곳에 지어졌다고 한다. 귀촌인들이 알음알음 짓는 경우도 더러 있어 더 많을지 모른다고.이처럼 스트로베일하우스는 여느 공법에 비해 빠른 번식력을 지닌 듯하다. 그 이유는 뭘까. 우선 짚이 가지는 재료 자체의 생태적인면 그리고 단열 성능과 더불어 정서적으로 얻는 포근함이 매력이다. 이 공법이 농부에 의해 개발됐으므로 일반인도 접근하기 쉬운 방식이어서 스스로 참여해 짓는다면 시공비를 절감할 수 있다.연구회에는 시공 문의가 잦다. 연구회에서 현재 하는 일은 스트로베일 건축에 대한 정보 제공부터 워크숍 진행, 설계와 시공비 견적산출 그리고 현장 인력이 필요한 경우 20여 명이 3~4팀으로 짜인 연구회 시공팀이 힘을 보탠다.이웅희 씨는 스트로베일하우스를 보다 편리하게 빨리 지을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영리법인 설립을 구상 중이다. 예를 들어 베일을 쌓은 후 벽체 보완 및 마감을 위해 흙 재료를 만드는 인력과 시간이 꽤 많이 들어가 초심자들을 당황케 하는데, 영리법인체에서 스트로베일 건축 전용 미장 흙을 만들어 일괄적으로 공급하면 일이 한결 수월해진다. 이웅희 씨는 스트로베일 건축이 인기몰이를 하는 틈새로 최근 또 다른 방식의 생태건축을 연구 중이라 한다. 이 연구에서 실마리가 풀리면 그제야 바라던 자신의 집을 짓게 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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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집 짓기, 생태건축] 무엇으로 어떻게 지을까 _ 창조력 발휘하는 생태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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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 이야기] 기술발전과 집
- ‘자연 재료로 집을 지으면 절반은 이미 환경친화적인 집’이라는 말이 있다. 한옥이 자연을 닮았다는 말을 자주 한다. 한옥은 우리가 늘 볼 수 있는 재료로 만들어져 자연과 합일하는 모습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느낌은 우리나라의 집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나라를 둘러보아도 전통 가옥이 있는 전원의 풍경은 그 지역하고 잘 어울리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 지역에서 구할 수 있는 신토불이 재료를 사용해 지역 환경에 맞는 건물을 세웠기 때문일 것이다. 공업화 이전에 세운 대부분의 집은 이렇게 환경친화적 모습과 인간의 척도에 가까운 집으로 지어졌다. 결국 자연을 닮은 집이 지어지는 것은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는 인간의 능력 안에서 집을 지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자연과 상생(相生)한다는 정신으로 인간의 능력을 과도하게 사용하지 않고 지은 집은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에, 어떻게 집을 짓든 환경친화적인 집이 되는 것이다. ■ 글 싣는 순서 1. 집, 문화로서 과거 이해하기 -과연 전통은 존재하는가 2. 집은 문화 유기체다 3. 자연환경과 집 4. 기술 발전과 집 5. 사회환경과 집 6. 생활과 집 7. 사고변화와 집 8. 사람과 집 -사람이 집을 만들고 집은 사람을 만든다 요즘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건물에 색을 칠할 수 있다. 같은 재료라도 어떠한 색으로 칠하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이런 특성은 건축가들에게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지평(地平)을 열어 주었다. 현대 건축에서는 색상이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는 중요한 요소로 부각됐다. 지금의 건축 환경은 과거하고 전혀 다르다. 옛날의 집은 주변에서 얻을 수 있는 재료를 사용할 수밖에 없기에 색상에서도 지역성이 강하게 나타났다. 그러나 이제는 색상으로 지역성을 찾는 것은 의미가 없어졌다. 그보다는 건축가 각자의 개성을 표현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자연 재료로 집을 지으면 절반은 이미 환경친화적인 집’이라는 말이 있다. 한옥이 자연을 닮았다는 말을 자주 한다. 한옥은 우리가 늘 볼 수 있는 재료로 만들어져 자연과 합일하는 모습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느낌은 우리나라의 집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나라를 둘러보아도 전통 가옥이 있는 전원(田園)의 풍경은 그 지역하고 잘 어울리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 지역에서 구할 수 있는 신토불이(身土不二) 재료를 사용해 지역 환경에 맞는 건물을 세웠기 때문일 것이다. 공업화 이전에 세운 대부분의 집은 이렇게 환경친화적 모습과 인간의 척도(尺度)에 가까운 집으로 지어졌다. 결국 자연을 닮은 집이 지어지는 것은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는 인간의 능력 안에서 집을 지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자연과 상생(相生)한다는 정신으로 인간의 능력을 과도하게 사용하지 않고 지은 집은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에, 어떻게 집을 짓든 환경친화적인 집이 되는 것이다. 건축에서 기술의 발전이란 새로운 가능성의 창출을 뜻한다. 현대건축의 다양함은 기술의 발전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것이다. 기술의 발전으로 우리는 역사 이래로 가장 많은 사람이 다양함을 만끽하게 됐고, 집에도 숱한 변화가 있었다. 기술의 발전 때문에 새로이 나타난 현상은 대량생산에 의한 대단위 주거 단지의 개발, 집 형태의 다양화, 보온재 및 냉난방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실내 환경의 변화 등 건축에 관련된 모든 분야에서 보이고 있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이 건축에 미친 영향을 분야 별로 나누어 분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단순히 한 방향으로만 진행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떠한 재료를 만들려면 먼저 관련된 분야의 과학과 기술의 발전 없이는 불가능하므로 새로운 재료가 개발됐다는 것은 주변의 상황이 이미 성숙했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건축에서 어떠한 현상이 부각됐을 때는 그에 연관된 분야가 서로 깊은 관계를 가지고 영향을 주고받은 결과다. 하지만 그 같은 유기적 관계를 모두 언급하는 것은 현상을 이해하는 데 오히려 장애가 된다. 이러한 점을 감안해 상황을 단순화시켜 재료와 구조 역학(構造力學), 공법 및 도구, 설비 기술, 기술과 의식 변화 등의 분야로 나누어 그 변화가 집의 구조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변화했는지 살펴보자. 집은 재료와 구조에 따라 변한다 기술의 발전 중에서 집에 가장 중대한 영향을 미친 것은 새로운 재료의 개발과 구조(역학)의 발전이다. 현대 건축에서 중요한 발명을 세 가지 꼽으라고 한다면 철근콘크리트와 철골구조, 엘리베이터다. 이 세 가지 발명은 현대 건축의 흐름을 완전하게 바꾸어 놓았다. 건축의 3대 발명품 철근콘크리트와 철골 구조가 발명되기 전까지는 고층건물이나 기둥 간격이 넓은 건물을 짓는 것이 쉽지 않았다. 또한 1880년 독일의 지멘스사가 발명한 전동식 엘리베이터가 없었다면 현재의 고층 빌딩은 존재할 수 없었다. 결국 우리나라 주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아파트는 철근콘크리트와 철골 구조, 엘리베이터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주거 양식이다. 철근콘크리트의 발명은 집의 내부 구조도 변화시켰다. 집에서 방의 크기는 기둥 사이의 거리에 따라 결정되고, 그 거리에 따라 기둥, 보 등의 크기가 달라진다. 기둥 간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보의 크기는 거리의 제곱에 비례해 커지기 때문에, 기둥 사이의 거리를 넓히는 데는 한계가 있다. 특히 목재는 철근콘크리트보다 힘에 견디는 능력이 약하므로 기둥 사이의 거리가 조금만 멀어도 매우 굵은 목재가 필요하다. 이러한 문제를 철근콘크리트 구조가 한꺼번에 해소해 주었다. 목재보다 하중에 견디는 힘이 강하므로 보의 크기가 작아도 기둥 사이를 넓힐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전 같으면 궁궐이나 절 같은 특별한 건물에서나 가능했던 넓은 집을 일반인들도 쉽게 지을 수 있게 됐다. 이것은 단순히 재료의 개발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재료와 함께 재료의 특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구조역학이라는 학문의 발전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철근콘크리트의 발명은 구조역학이 발전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콘크리트(압축력에 강함)와 철(인장력에 강함)의 장점(콘크리트와 철근의 열팽창계수는 거의 같음)을 살려서 철근콘크리트라는 재료를 발명했다. 철근콘크리트가 개발된 뒤에는 구조역학의 도움을 받아 가능성을 더욱 확장시켰다. 30년 전만 해도 철근콘크리트의 기둥 사이 거리는 6미터를 넘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 최근에는 콘크리트 및 철근의 강도를 늘려서 기둥 사이 거리를 12미터 이상으로 늘렸고, 특수 공법을 활용하면 그 이상의 거리도 가능하다. 이처럼 기술의 발전은 사람의 사고를 확장시켜 새로운 건축물을 지을 수 있게 한다. 이러한 가능성을 바탕으로 하여 대규모의 건물이 속속 들어서게 됐다. 콘크리트가 만들어 낸 회색 도시 철근콘크리트라는 재료의 발전은 기술적인 것에만 그치지 않았다. 콘크리트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면서 예전하고 전혀 다른 새로운 미감도 만들어 냈다. 우리는 ‘회색 도시’라는 단어를 심심찮게 듣는다. 이러한 신조어(新造語)가 나온 것은 콘크리트를 그대로 노출시켜 집을 지음으로써 도시 전체가 회색빛을 띠게 됐기 때문이다. ‘회색 도시’는 콘크리트의 발명이 없었다면 나올 수 없는 단어다. 콘크리트라는 새로운 재료에 대한 경이감은 그 색상에도 사로잡히게 만들었다. 근대 건축가들은 구조재로 개발한 콘크리트의 구조적 특성뿐만 아니라 감각적 특성까지 표현하려고 노력했고, 이러한 노력으로 인해 콘크리트가 외부로 노출되도록 설계한 건물이 많이 나타났다. 건축가들의 실험적인 시도로 도시의 색깔이 변해 회색빛 이미지로 다가왔다. 이러한 회색 이미지는 도시가 안고 있는 모순과 중첩돼 ‘회색 도시’라는 신조어로 정착됐다. 부정적으로 비치는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콘크리트의 매력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형태를 자유롭게 만들 수 있다는 가소성(可塑性)과 특유의 냉랭하고 우울한(Melancholy) 분위기 때문에 지금도 콘크리트에 매료된 건축가들이 새로운 가능성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창의 개념을 바꾼 유리 기술의 변화는 새로운 형태의 집을 가능하게 한다. 특히 유리 제조 기술의 발전은 우리에게서 창의 개념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그 전에는 창이 일정 크기 이상을 넘을 수 없다고 생각했으나, 유리 제조 기술이 발전하면서 창의 크기를 무한으로 확장시켜 놓았다. 나아가 유리만으로 집을 지을 수 있을 만큼의 기술력을 확보했다. 유리의 발전은 채광 문제에서 과거하고 전혀 다른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예전의 집은 채광 면적의 한계 때문에 어두웠다. 그러나 유리 제조기술이 발달하면서 이제는 어두운 집을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과거에 창을 크게 내지 못한 것은 단지 유리 제조 기술상의 한계 때문만은 아니다. 유리는 열전도율(熱傳導率)이 매우 높은 반면 창문의 기밀성이 낮아, 창의 면적을 넓게 할수록 추위에 견디기 힘들다. 이러한 문제도 단열 성능이 높은 복층유리의 개발과 창틀의 단열성과 기밀성을 높여서 대부분 해결했다. 이렇게 발전한 유리는 실내를 밝게 하고 조망권 확보를 위해 창문을 점점 크게 하는 방향으로 집을 변화시켰다. 창의 크기가 달라지는 것은 외관(外觀)의 변화를 뜻하며, 결국은 집 전체의 이미지를 바꾼다. 현재 개념의 창으로는 과거 한옥에서 느낄 수 있는 비례를 찾기 힘들다. 이처럼 달라지는 재료는 집의 개념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색상의 혁명 구조적인 재료의 개발과 성격을 달리하지만 도료(途料)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도료의 발달은 색상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제공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집에 갖가지 색을 입혔다. 그러나 조선조에 들어서면서 절, 관아 등 공적인 건물과 사가(私家)의 사당에서만 단청(丹靑)이 가능하도록 제한했다. 단청을 입히지 못하게 규제한 것은 근검 생활을 장려하려는 의도도 있지만, 재료를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아 경제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점을 고려했을 것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청화백자에서 청색을 내는 데 사용하는 코발트(Cobalt)는 수입해 썼는데 가격이 금보다 비쌌다고 한다. 그리고 단청에 들어가는 재료 중에도 구하기 어려운 것이 있어 일반인들이 쉽게 사용하지 못했다. 어쨌든 예전에는 집에 색을 칠하는 것이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쉬운 문제는 아니었다. 이 가운데 경제적인 문제는 기술 개발로 쉽게 해결됐다. 요즘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건물에 색을 칠할 수 있다. 같은 재료라도 어떠한 색으로 칠하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이런 특성은 건축가들에게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지평(地平)을 열어 주었다. 현대 건축에서는 색상이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는 중요한 요소로 부각됐다. 지금의 건축 환경은 과거하고 전혀 다르다. 옛날의 집은 주변에서 얻을 수 있는 재료를 사용할 수밖에 없기에 색상에서도 지역성이 강하게 나타났다. 그러나 이제는 색상으로 지역성을 찾는 것은 의미가 없어졌다. 그보다는 건축가 각자의 개성을 표현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조망권을 가져다 준 펌프와 엘리베이터 설비 기술의 발전이 집에 미친 영향 가운데서 한 가지만 살펴보자. 19세기까지만 해도 유럽의 아파트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보면, 주인은 대부분 2층에 거주하고 돈이 없는 사람일수록 높은 곳에서 살았다. 아마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급수 설비와 계단을 오르내리는 불편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당시에는 펌프(Pump) 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아래층에서 물을 날라다 썼다. 목욕을 할 때도 물을 욕조에 부어 사용하고, 끝난 뒤에는 일일이 날라다 버렸다. 따라서 오르내리기 힘든 높은 곳에 산다는 것은 불편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이유로 도로하고 바로 접하지 않으면서도 생활의 불편이 덜한 2층에서 거주하는 것이 가장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펌프와 엘리베이터가 발명됨으로써 그때까지의 불편은 사라졌고, 전망 확보와 프라이버시(Privacy) 보호를 중요한 것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이제 부자들은 보다 높은 곳에 살게 된 것이다. 요즈음 서울에 많이 지어지는 고층의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가 그러한 예이다. 田 ■ 글·최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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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 이야기] 기술발전과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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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이야기] 기술발전과 집
- ‘자연 재료로 집을 지으면 절반은 이미 환경친화적인 집’이라는 말이 있다. 한옥이 자연을 닮았다는 말을 자주 한다. 한옥은 우리가 늘 볼 수 있는 재료로 만들어져 자연과 합일하는 모습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느낌은 우리나라의 집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나라를 둘러보아도 전통 가옥이 있는 전원의 풍경은 그 지역하고 잘 어울리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 지역에서 구할 수 있는 신토불이 재료를 사용해 지역 환경에 맞는 건물을 세웠기 때문일 것이다. 공업화 이전에 세운 대부분의 집은 이렇게 환경친화적 모습과 인간의 척도에 가까운 집으로 지어졌다. 결국 자연을 닮은 집이 지어지는 것은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는 인간의 능력 안에서 집을 지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자연과 상생(相生)한다는 정신으로 인간의 능력을 과도하게 사용하지 않고 지은 집은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에, 어떻게 집을 짓든 환경친화적인 집이 되는 것이다. ■ 글 싣는 순서 1. 집, 문화로서 과거 이해하기 -과연 전통은 존재하는가 2. 집은 문화 유기체다 3. 자연환경과 집 4. 기술 발전과 집 5. 사회환경과 집 6. 생활과 집 7. 사고변화와 집 8. 사람과 집 -사람이 집을 만들고 집은 사람을 만든다 요즘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건물에 색을 칠할 수 있다. 같은 재료라도 어떠한 색으로 칠하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이런 특성은 건축가들에게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지평(地平)을 열어 주었다. 현대 건축에서는 색상이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는 중요한 요소로 부각됐다. 지금의 건축 환경은 과거하고 전혀 다르다. 옛날의 집은 주변에서 얻을 수 있는 재료를 사용할 수밖에 없기에 색상에서도 지역성이 강하게 나타났다. 그러나 이제는 색상으로 지역성을 찾는 것은 의미가 없어졌다. 그보다는 건축가 각자의 개성을 표현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자연 재료로 집을 지으면 절반은 이미 환경친화적인 집’이라는 말이 있다. 한옥이 자연을 닮았다는 말을 자주 한다. 한옥은 우리가 늘 볼 수 있는 재료로 만들어져 자연과 합일하는 모습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느낌은 우리나라의 집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나라를 둘러보아도 전통 가옥이 있는 전원(田園)의 풍경은 그 지역하고 잘 어울리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 지역에서 구할 수 있는 신토불이(身土不二) 재료를 사용해 지역 환경에 맞는 건물을 세웠기 때문일 것이다. 공업화 이전에 세운 대부분의 집은 이렇게 환경친화적 모습과 인간의 척도(尺度)에 가까운 집으로 지어졌다. 결국 자연을 닮은 집이 지어지는 것은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는 인간의 능력 안에서 집을 지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자연과 상생(相生)한다는 정신으로 인간의 능력을 과도하게 사용하지 않고 지은 집은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에, 어떻게 집을 짓든 환경친화적인 집이 되는 것이다. 건축에서 기술의 발전이란 새로운 가능성의 창출을 뜻한다. 현대건축의 다양함은 기술의 발전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것이다. 기술의 발전으로 우리는 역사 이래로 가장 많은 사람이 다양함을 만끽하게 됐고, 집에도 숱한 변화가 있었다. 기술의 발전 때문에 새로이 나타난 현상은 대량생산에 의한 대단위 주거 단지의 개발, 집 형태의 다양화, 보온재 및 냉난방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실내 환경의 변화 등 건축에 관련된 모든 분야에서 보이고 있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이 건축에 미친 영향을 분야 별로 나누어 분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단순히 한 방향으로만 진행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떠한 재료를 만들려면 먼저 관련된 분야의 과학과 기술의 발전 없이는 불가능하므로 새로운 재료가 개발됐다는 것은 주변의 상황이 이미 성숙했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건축에서 어떠한 현상이 부각됐을 때는 그에 연관된 분야가 서로 깊은 관계를 가지고 영향을 주고받은 결과다. 하지만 그 같은 유기적 관계를 모두 언급하는 것은 현상을 이해하는 데 오히려 장애가 된다. 이러한 점을 감안해 상황을 단순화시켜 재료와 구조 역학(構造力學), 공법 및 도구, 설비 기술, 기술과 의식 변화 등의 분야로 나누어 그 변화가 집의 구조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변화했는지 살펴보자. 집은 재료와 구조에 따라 변한다 기술의 발전 중에서 집에 가장 중대한 영향을 미친 것은 새로운 재료의 개발과 구조(역학)의 발전이다. 현대 건축에서 중요한 발명을 세 가지 꼽으라고 한다면 철근콘크리트와 철골구조, 엘리베이터다. 이 세 가지 발명은 현대 건축의 흐름을 완전하게 바꾸어 놓았다. 건축의 3대 발명품 철근콘크리트와 철골 구조가 발명되기 전까지는 고층건물이나 기둥 간격이 넓은 건물을 짓는 것이 쉽지 않았다. 또한 1880년 독일의 지멘스사가 발명한 전동식 엘리베이터가 없었다면 현재의 고층 빌딩은 존재할 수 없었다. 결국 우리나라 주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아파트는 철근콘크리트와 철골 구조, 엘리베이터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주거 양식이다. 철근콘크리트의 발명은 집의 내부 구조도 변화시켰다. 집에서 방의 크기는 기둥 사이의 거리에 따라 결정되고, 그 거리에 따라 기둥, 보 등의 크기가 달라진다. 기둥 간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보의 크기는 거리의 제곱에 비례해 커지기 때문에, 기둥 사이의 거리를 넓히는 데는 한계가 있다. 특히 목재는 철근콘크리트보다 힘에 견디는 능력이 약하므로 기둥 사이의 거리가 조금만 멀어도 매우 굵은 목재가 필요하다. 이러한 문제를 철근콘크리트 구조가 한꺼번에 해소해 주었다. 목재보다 하중에 견디는 힘이 강하므로 보의 크기가 작아도 기둥 사이를 넓힐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전 같으면 궁궐이나 절 같은 특별한 건물에서나 가능했던 넓은 집을 일반인들도 쉽게 지을 수 있게 됐다. 이것은 단순히 재료의 개발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재료와 함께 재료의 특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구조역학이라는 학문의 발전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철근콘크리트의 발명은 구조역학이 발전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콘크리트(압축력에 강함)와 철(인장력에 강함)의 장점(콘크리트와 철근의 열팽창계수는 거의 같음)을 살려서 철근콘크리트라는 재료를 발명했다. 철근콘크리트가 개발된 뒤에는 구조역학의 도움을 받아 가능성을 더욱 확장시켰다. 30년 전만 해도 철근콘크리트의 기둥 사이 거리는 6미터를 넘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 최근에는 콘크리트 및 철근의 강도를 늘려서 기둥 사이 거리를 12미터 이상으로 늘렸고, 특수 공법을 활용하면 그 이상의 거리도 가능하다. 이처럼 기술의 발전은 사람의 사고를 확장시켜 새로운 건축물을 지을 수 있게 한다. 이러한 가능성을 바탕으로 하여 대규모의 건물이 속속 들어서게 됐다. 콘크리트가 만들어 낸 회색 도시 철근콘크리트라는 재료의 발전은 기술적인 것에만 그치지 않았다. 콘크리트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면서 예전하고 전혀 다른 새로운 미감도 만들어 냈다. 우리는 ‘회색 도시’라는 단어를 심심찮게 듣는다. 이러한 신조어(新造語)가 나온 것은 콘크리트를 그대로 노출시켜 집을 지음으로써 도시 전체가 회색빛을 띠게 됐기 때문이다. ‘회색 도시’는 콘크리트의 발명이 없었다면 나올 수 없는 단어다. 콘크리트라는 새로운 재료에 대한 경이감은 그 색상에도 사로잡히게 만들었다. 근대 건축가들은 구조재로 개발한 콘크리트의 구조적 특성뿐만 아니라 감각적 특성까지 표현하려고 노력했고, 이러한 노력으로 인해 콘크리트가 외부로 노출되도록 설계한 건물이 많이 나타났다. 건축가들의 실험적인 시도로 도시의 색깔이 변해 회색빛 이미지로 다가왔다. 이러한 회색 이미지는 도시가 안고 있는 모순과 중첩돼 ‘회색 도시’라는 신조어로 정착됐다. 부정적으로 비치는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콘크리트의 매력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형태를 자유롭게 만들 수 있다는 가소성(可塑性)과 특유의 냉랭하고 우울한(Melancholy) 분위기 때문에 지금도 콘크리트에 매료된 건축가들이 새로운 가능성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창의 개념을 바꾼 유리 기술의 변화는 새로운 형태의 집을 가능하게 한다. 특히 유리 제조 기술의 발전은 우리에게서 창의 개념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그 전에는 창이 일정 크기 이상을 넘을 수 없다고 생각했으나, 유리 제조 기술이 발전하면서 창의 크기를 무한으로 확장시켜 놓았다. 나아가 유리만으로 집을 지을 수 있을 만큼의 기술력을 확보했다. 유리의 발전은 채광 문제에서 과거하고 전혀 다른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예전의 집은 채광 면적의 한계 때문에 어두웠다. 그러나 유리 제조기술이 발달하면서 이제는 어두운 집을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과거에 창을 크게 내지 못한 것은 단지 유리 제조 기술상의 한계 때문만은 아니다. 유리는 열전도율(熱傳導率)이 매우 높은 반면 창문의 기밀성이 낮아, 창의 면적을 넓게 할수록 추위에 견디기 힘들다. 이러한 문제도 단열 성능이 높은 복층유리의 개발과 창틀의 단열성과 기밀성을 높여서 대부분 해결했다. 이렇게 발전한 유리는 실내를 밝게 하고 조망권 확보를 위해 창문을 점점 크게 하는 방향으로 집을 변화시켰다. 창의 크기가 달라지는 것은 외관(外觀)의 변화를 뜻하며, 결국은 집 전체의 이미지를 바꾼다. 현재 개념의 창으로는 과거 한옥에서 느낄 수 있는 비례를 찾기 힘들다. 이처럼 달라지는 재료는 집의 개념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색상의 혁명 구조적인 재료의 개발과 성격을 달리하지만 도료(途料)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도료의 발달은 색상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제공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집에 갖가지 색을 입혔다. 그러나 조선조에 들어서면서 절, 관아 등 공적인 건물과 사가(私家)의 사당에서만 단청(丹靑)이 가능하도록 제한했다. 단청을 입히지 못하게 규제한 것은 근검 생활을 장려하려는 의도도 있지만, 재료를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아 경제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점을 고려했을 것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청화백자에서 청색을 내는 데 사용하는 코발트(Cobalt)는 수입해 썼는데 가격이 금보다 비쌌다고 한다. 그리고 단청에 들어가는 재료 중에도 구하기 어려운 것이 있어 일반인들이 쉽게 사용하지 못했다. 어쨌든 예전에는 집에 색을 칠하는 것이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쉬운 문제는 아니었다. 이 가운데 경제적인 문제는 기술 개발로 쉽게 해결됐다. 요즘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건물에 색을 칠할 수 있다. 같은 재료라도 어떠한 색으로 칠하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이런 특성은 건축가들에게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지평(地平)을 열어 주었다. 현대 건축에서는 색상이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는 중요한 요소로 부각됐다. 지금의 건축 환경은 과거하고 전혀 다르다. 옛날의 집은 주변에서 얻을 수 있는 재료를 사용할 수밖에 없기에 색상에서도 지역성이 강하게 나타났다. 그러나 이제는 색상으로 지역성을 찾는 것은 의미가 없어졌다. 그보다는 건축가 각자의 개성을 표현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조망권을 가져다 준 펌프와 엘리베이터 설비 기술의 발전이 집에 미친 영향 가운데서 한 가지만 살펴보자. 19세기까지만 해도 유럽의 아파트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보면, 주인은 대부분 2층에 거주하고 돈이 없는 사람일수록 높은 곳에서 살았다. 아마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급수 설비와 계단을 오르내리는 불편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당시에는 펌프(Pump) 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아래층에서 물을 날라다 썼다. 목욕을 할 때도 물을 욕조에 부어 사용하고, 끝난 뒤에는 일일이 날라다 버렸다. 따라서 오르내리기 힘든 높은 곳에 산다는 것은 불편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이유로 도로하고 바로 접하지 않으면서도 생활의 불편이 덜한 2층에서 거주하는 것이 가장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펌프와 엘리베이터가 발명됨으로써 그때까지의 불편은 사라졌고, 전망 확보와 프라이버시(Privacy) 보호를 중요한 것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이제 부자들은 보다 높은 곳에 살게 된 것이다. 요즈음 서울에 많이 지어지는 고층의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가 그러한 예이다. 田 ■ 글·최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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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이야기] 기술발전과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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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에서 만난 사람] 흙집 짓는 철학박사 흙처럼 아쉬람 여토如土 고제순
- 고제순 님은 1959년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고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귀국해서 대학에 출강하던 어느 날 자신의 삶에 강한 회의를 느끼고, 원주 회촌마을에서 생태적 삶을 지향하는 재야 생명 철학자로서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생태적 삶은, 삶의 근본 토대라 할 수 있는 식食·주住·의醫의 생태적 자립으로부터 가능한 것으로 보고 오래 전부터 자연 농업, 자연 건축, 자연 의학에 대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일주일 만에 흙집 짓기》가 있습니다. 여토如土 고제순(47세) 박사를 만나고자 박경리 선생의 ‘토지박물관’으로 유명한 원주시 흥업면 회촌마을로 접어드는 길섶이 간밤에 내린 눈으로 뽀얗다. 좌우로 굽은 농로를 따라 900여 미터 들어섰을까. 높푸른 하늘을 머리에 인 산이 눈앞에 펼쳐지고, 그 중턱에 여러 채의 흙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재야 생명 철학자인 그가 거처하는 ‘흙처럼 아쉬람’이다. 그는 이 산골에서 7년째 ‘종이 한 장이 입증하는 박사는 진정한 의미에서 박사가 아니다’라는 자성自省으로 살고 있다. 오디차를 사이에 두고 삶의 방향을 전환한 그에게 넌지시 ‘지금 행복하십니까?’라는 우문愚問을 건넸다. 순탄했을 대학 강단을 떠나 이 산골에 들어온 것을 후회하지 않느냐는 뜻으로… 돌아온 답은 간단명료했다. “행복하지요.”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행복을 꿈꾸며 살아간다. 다시 우문을 던져 본다. ‘그 행복의 실체實體는 무엇입니까?’ “사람마다 다르지만, 나는 행복을 몸이 편안하고 마음이 평화롭고 영혼이 기뻐하는 상태라고 생각하지요. 과거 정신 노동만 할 때는 무미건조하고 앎과 행위가 따로 노는 기형적인 삶을 살았지요. 이곳에서는 하루에 잠자는 6시간, 세끼 식사하는 3시간을 빼면 15시간 남는데, 이것을 5시간씩 셋으로 쪼개서 흙집을 짓는 육체 노동과 글을 읽거나 쓰는 정신 노동 그리고 경전을 읽거나 기도하는 영성 활동으로 보내지요. 이렇듯 몸과 마음과 영혼이 조화로운 삶을 살고자 노력하면서요.” 그는 정신 노동에만 치우치다 보니 부실해진 삶의 기초를 바로 세우기 위해 산골을 찾았단다. 하지만 경험이 전혀 없는 더욱이 미래가 보장되지 않은 길이기에 그 결단을 내리기가 쉽지만은 않았을 법하다. 또한 가족의 반대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그 점에 있어 늘 부인에게 고마워한다고. “수십 년을 제도권 교육에서 공부하고 박사 학위를 손에 쥐고도 삶의 근본 토대인 식食·주住·의醫, 이 세 가지 분야에서 홀로 서기를 할 능력이 없다는 사실은 큰 충격이었지요. 그래서 이 세 가지 분야에서 자립적인 삶을 살고자 자연을 찾기로 했지요. 물론 양가 부모의 걱정과 만류 그리고 형제들의 따가운 충고를 많이 들었지요. 다행히 처음에는 당혹스러워하던 집사람이 나를 이해하고 믿어주었지요. 그 신뢰가 새로운 길을 걷는데 용기와 격려와 힘이 됐지요.” 생명 에너지 가득한 흙집 짓기 고제순 박사는 무릇 살림집은 어머니 품처럼 편안하고 안온한 느낌이 들어야 한단다. 그가 우리 전통 가옥인 흙집, 즉 자연을 닮은 집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다. “기와집, 초가집, 너와집 등은 모두 흙집이라는 사실이지요. 흙과 돌과 나무로 지은 집은 수명이 다해도 환경 오염 없이 자연으로 돌아가지요. 또한 흙은 수많은 생명체를 먹여 살리고 양육하는 생명의 어머니이지요. 그래서 흙으로 지은 집에는 좋은 생명의 에너지가 가득하겠다 싶어 흙집 공부를 시작했지요.” 그는 자신이 살 집은 가능한 손수 지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다른 사람이 지어 놓은 집에 사는 것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표현처럼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는 찌르레기나 뻐꾸기처럼 사는 거와 같다’고. “나는 건축가 없는 건축, 즉 민중 건축을 지향하지요. 우리 조상들이 집을 품앗이로 지었듯이… 나처럼 못도 제대로 박지 못하던 사람이 이렇게 살림집을 짓지 않았습니까? 집은 몸만으로 짓는 것이 아니지요. 가족을 위해 어떤 형태로, 어떤 철학을 담아 지을까 끊임없이 생각해야지요. 그런 생각을 따라 손발이 움직여서 집을 짓는데, 그 과정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기에 하나의 예술 활동이지요. 가족이 살 보금자리를 나의 땀과 정성 그리고 철학을 담아 짓고 나니 정말 굉장히 뿌듯하고 대견스러웠지요.” 그는 생태 건축의 첫째 조건으로 긴 수명을 꼽는다. 자연 생명체의 집인 새의 둥지도 인간의 눈에는 허술해 보이지만 여러 가지 자연 조건을 고려해 견고하게 지은 집이라고. 사람이 건드려 파괴하지 않는 한… 바로 이 집에 담긴 생명 철학이다. “나는 우리 집을 지을 때, 돌과 나무와 흙으로 500년 이상 가게끔 짓자고 했지요. 비록 앞으로 50년도 못살 인생이지만 그러나 누가 들어와서 살든 수명이 길어야 한다는 생각으로요. 생태 건축의 조건은 여러 가지지만, 그 가운데 제일은 수명이니까요. 아무리 좋은 자연 재료를 쓰고 에너지 절약형 집을 지어도 수명이 짧다면, 나는 그것을 생태 건축으로 보지 않아요. 그 집을 부수고 다시 짓기 위해 자연에서 나무를 베고 황토며 돌을 캐야 하므로 생태 건축하고는 거리가 멀지요.” 이 흙집은 38평으로 2000년 5월 짓기 시작해서 그해 11월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손수 집을 지을 때 빗소리에 놀라 새벽잠에서 깨어 혼자 차를 몰고 와서 골조를 덮었던 일, 작은 유압기를 장만해 흙벽돌을 찍던 일, 지붕에 너와를 이느라 못을 3박스 박고 밥을 못 먹을 정도로 팔이 아파 고생했던 일들을 떠올렸다. 그럼 이 생태적 보금자리의 특징은 무엇일까? “여러 구성에 생태적 마인드가 담겼는데, 우선 철근콘크리트 기초가 아닌 전통 줄기초 방식이지요. 자갈과 모래를 넣어 물다짐 후 자연석 주추를 놓고 기둥을 세웠지요. 거실과 서재, 아이들 방에는 중앙에 1미터 깊이의 웅덩이를 파서 숯을 채우고, 그 위에 황토와 숯, 맥반석, 자갈, 황토 미장을 했지요. 거실은 좋은 기운이 모인다는 피라미드 원두막 구조지요. 가장 특이한 점은 거실에 놓인 벽난로의 열기가 안방 구들 침대 밑으로 빠져나가는 것이지요. 연통으로 열기가 빠져나가는 게 너무 아까워서 착안한 일종의 구들 침대라고 할까요.” 살아 숨쉬는 건강한 집 집은 물질 공간으로써 미관성과 편리성, 기능성을 갖춰야 한다. 이것이 현시대 주거 문화의 요체다. 고제순 박사는 그러한 주거관은 사람의 생명을 시들게 할 뿐이라고. 즉 집을 물질 공간 이상의 생명체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생명체로써 집은 무엇일까? “우주적 관점에서 생명이란 진리는 간단해야 하지요. 오히려 복잡하고 이론화되고 난해할수록 진리로부터 멀어지니까요. 《주역》 〈계사상전〉에도 ‘알기 쉽고 간단한 것이 천하의 이치(易簡而天下之理)’라고 했잖아요. 내 몸은 60조∼100조 개의 세포로 구성됐는데, 그 세포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나라는 한 생명을 이루지요. 그런데 사실은 한 생명은 아니지요. 수많은 생명체가 네트워킹으로 나라는 한 생명체를 이루니까요. 집도 마찬가지로 지구를 구성하는 수많은 세포 중 하나라고 보아야지요. 이렇게 내 몸을 구성하는 세포가 건강해야 내가 건강해지는 것처럼 지구를 구성하는 흙과 나무, 돌 그리고 집 등이 각각 건강해야지요. 그런데 오늘날의 집들은 독을 내뿜으며 지구를 병들게 하지요. 그 안에 거주하는 가족의 생명을 시들게 하고 밖으로는 미생물과 동식물을 죽게 만들면서… 집은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지요. 문제는 좋은 에너지를 발산하는 생명체냐, 나쁜 에너지를 발산하는 생명체냐는 것이지요. 이 차이를 논하고 분별하는 것이 보다 중요한 생명 담론이 아닐까요?” 요즘 신도시나 뉴타운에 분양하는 아파트의 평당 가격이 1700만 원을 호가하고 있다. 고제순 박사는 그렇게 비싼 돈을 주고 그 속에 들어가서 살면 생명을 단축하는 것밖에 더 되겠냐며 반문한다. “일본 시마네 대학의 나카오 교수도 〈콘크리트 집에 살면 9년 일찍 죽는다〉라는 충격적인 논문을 발표한 바 있지요. 시멘트 보도 블록만 보아도 그 판에서는 생명체가 살지 못하지만 그 틈에서는 풀이 자라지요. 이 단순한 사실만 깨달아도 집을 함부로 지을 수 없지요. 집 짓기는 생명체를 잉태하는 것하고 같으니까요. 여성이 한 아이를 임신했을 때 건강한 아이를 낳기 위해 얼마나 많은 정성을 들입니까? 마찬가지로 집이라는 한 생명체를 탄생시킬 때도 함부로 지으면 안 되지요. 좋은 기운을 내뿜는 자재를 사용해 좋은 기운이 모이는 공간 구조로 만들어야지요.” 철학박사에서 흙집 학교 교장으로 고제순 박사는 아파트에서 살 때는 늘 몸이 찌뿌드드했는데 2000년부터 흙집을 짓고 살면서 달라졌다고. 잠을 아무리 적게 자도 아침에 일어나면 우선 정신이 맑고 몸이 개운하다는 것. 그런 경험을 살려 2004년 여름 생명을 살리는 생태주택을 보급하고자 흙집 학교를 시작했다. 콘크리트 일색인 우리의 건축 문화를 보면서……. “우리의 주거문화는 생명을 살리기보다는 생명을 시들게 하고 병들게 하지요. 그러니 늘어나는 것이 환자요, 병원이요, 약국 아닙니까? ‘과연 이대로 가야 할 것인가’ 생각하다가 ‘안 되겠다. 비록 건축을 전공하지 않았고 건축 경험도 많지 않지만 흙집 학교를 열어야겠다.’ 그렇게 맘먹었지요. 잘못된 주거 문화를 바로잡는, 그래서 생명을 살리는 생태 건축으로 방향을 전환한 것이죠. 일종의 대안 건축 운동이라고 할까요.” 전원하면 많은 사람이 막연하게 좋은 공기와 물 그리고 경치를 떠올린다. 실제 그런 생각으로 전원생활을 시작했다가 한두 해 지나 견디기 힘들 정도의 무료함을 느낀 나머지 도시로 되돌아오는 사람도 있다. 그는 그 원인으로 자연에 대한 이해, 생명에 대한 이해 부족을 꼽았다. “전원행을 택하기에 앞서 도시의 자본주의적 사고 방식은 버려야지요. 생각과 습성은 도시의 물질 문명과 자본주의적 사고 방식에 푹 젖은 채 몸뚱이만 전원에 들여놓아서야 되겠습니까? 또한 생명 세계와 자연 세계에 대해 공부해야지요. 자연과 친해지려면 그것을 이해하려는 안목과 심성을 길러야 하니까요. 자연을 닮은 사람이라야 전원생활을 더 행복하게 누릴 수 있지요.” 흙집 짓기는 오랫동안 정신 노동에만 치우쳐 살아온 자신에게는 일종의 자기 수행의 도장道場이라는 고제순 박사. 그의 말처럼 이 세상에는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무척이나 다양한 거 같다. 몸이 움직이고 마음이 움직이고 영혼이 조화롭게 움직이기에 흙집을 지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그처럼… … .田 흙처럼 아쉬람 흙집 학교 033-766-7755. www.mudashram.com 글 ·사진 윤홍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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