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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한 도시'라는 제목의 김주필 씨의 그래픽 작품이 현관 벽에 걸려 있다. 이 작품이 벌써 김주필 · 이란희 부부가 왜 전원행을 택했는지 말해준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바쁘지만 무료하게 돌아가는 고달픈 도시의 일상, 무한경쟁 사회에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파 부부는 삶 의 방식을 전환하자는 대단한 결심을 했다.

오래 전 나왔던 얘긴데 이제야 실행에 옮겼다. 농사 한 번 지어보지 않은 부부는 농촌에서 경제활동으로 무얼 할지 막막하기는 해도 일단 넉넉한 자연의 품으로 왔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집 짓는 것은 살고자 하는 방식을 담는 일, 미래를 설계하는 일이다"라고 말하는 부부가 선택한 집 짓기 방식을 들여다보자.

글 사진  전원주택라이프 편집부

건축정보
위치  경기 가평군 상면
건축형태   단층 흙다짐 공법 + 경량 목구조
대지면적  651.0㎡(197.3평)
건축면적  98.1㎡(29.7평)
지붕재   아스팔트 슁글
외벽재  흙다짐벽 노출, 시멘트 사이딩, 목재
내벽재  흙다짐벽 노출, 한지
바닥재  마루, 구들방-콩댐 마감
천장재 루버
난방형태  장작보일러, 구들난방 겸용 벽난로 (이화종의 산촌벽난로)
설계 및 시공 
흙건축연구소 살림  063-653-5628  https://www.facebook.com/eartharchi

가평 주택은 담틀집(Rammed Earth House, 담집)이다. 요즘 담틀집은 구경하는 것조차 드물다. 과거에도 우리 선조들은 공정이 복잡한 담틀집이나 흙벽돌집보다 심벽 방식의 흙집을 더 많이 지었다. 그러나 최근 흙집에 대한 부흥이 일면서 흙건축연구소 살림의 김석균, 건축공방 무 이일우 씨 등과 같은 흙집 전문가들이 간간이 담틀집을 꾸준히 퍼트리고 있다. 담틀집 하면 떠오르는 이가 또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말하는 건축가'의 고故정기용 건축가다. 자연과 사람과 소통하는 건축으로 유명한 그는 흙건축으로도 잘 알려졌다.

1970년대 파리에서 건축을 공부하던 그는 '초가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는'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국내와 상반되게 석유 파동기를 맞아 서구에서 흙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흙건축 공법이 체계화되는 것을 목격했다. 그리고 흙건축에 매료됐다. 귀국 후에도 흙건축에 대한 그의 관심과 실천은 이어졌는데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한 담틀집 건축 현장에서 그가 직접 거푸집 속의 흙을 다지면서 감탄하던 영화의 장면이 잊히질 않는다. 그의 표정은 이랬다. '기가 막히네!'그 숨은 뜻을 표현하자면, ' 이렇게 생태적이면서 구조 공학적인 방법이 또 있을까.'

온실에서 바로 거실로 연결된다. 주방 위에 다락을 드렸다.
자연미와 모던함이 공존하는 노출 흙벽의 거실
주방 문을 열면 바로 앞마당이다. 주방 가구를 건축주가 짰다.

가평 주택은 담틀 공법과 경량 목구조 공법을 혼합한 형태다. 담틀집의 묘미는 구조벽 강도를 높이기 위해 흙을 압축하면서 자연스럽게 생긴 흙의 단층으로, 이것을 즐기고자 내외부 마감을 하지 않고 그대로 노출시키는 경우가 많다. 보통 40cm 내외의 비교적 두꺼운 두께로 흙벽을 다지기에 흙벽 자체의 단열을 이용한다. 가평 주택 역시 담틀집 고유의 노출 흙벽을 즐기고자 40cm 폭으로 흙다짐을 한 후 그대로 노출시켰다. 그리고 주방과 욕실 등 물 사용 공간은 경량 목구조로 기능성을 보완했다.

김주필 · 이란희 부부가 담틀집을 선택한 건 팍팍한 도시에 시달리다 돌아온 자연 속에서 그들의 마음을 달랠 수 있는 건축 유형이 흙집이라 여겼고, 다른 흙건축 방식에 비해 견고하고 단정한 이미지, 수월한 유지관리를 장점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노출 흙다짐벽은 다른 방식에 비해 현대적 이미지를 연출해 젊은 부부에게 어울릴 것으로 기대했다. 부부는 흙집이 주는 특유의 푸근함과 소박함을 원했고 도시이주민 티를 내지 않고 마을 안에 폭 안기는 집을 원했다. 그래서 층을 높이지 않고 단층으로 지었다.

노모를 생각해 구들방을 제일 먼저 고려했다. 이화종 씨가 개발한 구들 난방 겸용 벽난로를 설치했다. 그런데 어머니는 장작 아깝다고 불 때는 걸 말리신다.
디딤판으로도 사용하는 서랍장과 왼쪽으로 약간 보이는 장식 선반도 건축주가 짠 것이다.

외부로 닫힌 듯 열린 집
집으로 들어가는 진입로를 제외하고 삼면이 논밭으로 둘러싸인 부지는 마치 외딴 곳, 섬이라는 느낌을 준다. 그래서 건축을 담당한 흙건축연구소 살림에서 '꿈꾸는 섬'이라는 애칭을 붙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가평 주택이 사람들로부터 멀어진 고립된 섬이라는 인상을 주지는 않는다. 남서쪽으로 활짝 열린 유리 온실과 360도 건물을 에두른 마당은 자연과 이웃들을 끌어 담기에 충분하다. 더구나 레오, 재롱이, 산 세 마리 개들의 담 넘기를 방지하는 차원에서 하는 수 없이 참나무 토막으로 빙두른 담장은 대문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 정도다. 나무로 간결하게 세운 대문은 상징적 의미고 사람들은 편하게 담장으로 넘나든다.
    
'무한 경쟁 사회', ' 비정한 도시'대신 자연 속에서 여유롭고 인심 넉넉한 사람들 사이에 깃들어 살기를 원하던 젊은 부부의 바람대로 가평 주택은 사생활은 보호되나 이웃에게 열린 집, 마을 속에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집으로 완성됐다.

건축주가 바닥 콩댐 마감을 도운 구들방, 작은 창밖으로 펼쳐진 논밭이 평화롭다. 서재 겸 손님방으로 사용하는 다락이 꽤 넓다.

진입로 쪽에서 바라보는 집은 외부와 완벽히 차단됨과 동시에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나 바로 좌측으로 돌아서는 순간 외부의 시선은 남서향 유리 온실을 통해 여지없이 실내로 관통된다. 바깥을 향해 소파를 놓아 휴식 공간으로, 훌륭한 채광을 활용해 빨래 건조 공간으로, 상자 텃밭을 놓아 생산의 공간으로, 유리 온실을 여러모로 요긴하게 쓰고 있다.
    
온실은 내부와 외부를 유기적으로 연계하는 매력적인 공간으로 채 나눔 한 노모방/공용공간과 부부 침실을 연계한다

담틀집의 하이라이트 유리 온실. 개방감이 훌륭하다.
정면은 닫힌 공간이나 왼쪽 모퉁이를 돌면 이처럼 열린 온실을 본다.

삶을 담은 집 애정 솟는 집
부부는 집을 올리면서 꽤 많은 일을 했다. 가평 주택은 최대한 자연 재료를 사용하면서 기계에 의존하지 않고 손으로 만든 핸드메이드 집이라 감히 말할 수 있는데 실내를 장식하는 가구도 이에 한 몫한다. 장식장, 선반, 책장, 심지어 규모가 꽤 큰 주방가구까지 거의 모든 가구를 김주필 씨가 직접 짰다. 자급자족을 결심한 마당에 집짓기 전 공방에 다니며 목공 실력을 다졌다. 이곳으로 오면서 약국을 그만둔 이란희 씨는 구들방 콩댐과 노출 흙벽에 느릅나무액 칠하기 등 노동력을 보탰다.
    
"살림 김석균 대표님은 집 짓는 과정에 우리를 참여시켰어요. 특별한 기술을 요하지 않거나 까다롭지 않은 부분에 일을 시키는데 그게 싫지 않았어요. 워낙 건축주와 원활하게 소통하고 장인정신이 대단한 분이라 여겼기에 자연스럽게 합류했지요. 남편은 직장 다닌다는 핑게로 일을 많이 못 거들었는데 김 대표님은 그 때문에 남편한테 호통을 치기도 했어요. 김 대표님을 비롯한 살림 식구들 덕분에 공사 기간 내내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재밌게 지냈어요."

사람들과 둘러앉아 고기 구워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뒤쪽에 부뚜막 아궁이도 만들었다.
좌측 안방과 우측 공용공간, 두 개의 매스로 나뉜다. 흙다짐 벽을 노출해 자연미를 살렸다.

이란희 씨는 완공 후 6개월간 가평 주택에 살면서 김석균 대표가 왜 건축주에게 공사 참여를 유도하는지 느낄 수 있었단다. 무엇이든 새것은 서먹하고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걸리게 마련이다. 집도 마찬가지일 터. 그런데 집 짓는 과정에 힘을 쏟고 나니 새 집인데도 낯설지 않고 자연스럽게 정이 들었다. 마치 몸에 착 감기는 입던 옷처럼. 그리고 집 짓는 과정을 통해 전원생활에 대한 막연한 상상도 구체화할 수 있었다.
    
"아파트에서 6개월간 직업 없이 살았다면 지루하고 답답했을 거예요. 그러나 여기는 계절 변화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자연히 부지런해져 할 일이 많아요.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겠네요."
    
마음의 여유는 자연으로부터 온 선물이고 주말 고기 구워 먹으러 찾아오는 손님이 밉지 않고 반가운 까닭도 자연으로부터 온 선물이다

건물 정면 좌측 매스 안방 있는 곳
담틀집(흙다짐 공법)

전통 흙건축 방식은 크게 세 가지다.
대나무 등을 심으로 삼고 짚을 썰어 넣어 반죽한 흙덩이를 바르는 심벽, 담틀에 흙을 다져 만드는 흙다짐 공법, 흙벽돌을 쌓아 만드는 방법.

흙다짐 공법 혹은 담틀공법이란 흙벽 자체가 내력벽으로 작용해 하중을 전달하는 구조체를 형성하는 공법으로 세심하게 양을 정한 순수한 흙-점토, 모래, 자갈 등-을 소량의 물과 섞은 뒤 목재나 철재 거푸집 틀에 다져넣은 후 공이 등으로 흙을 다짐해 벽을 구축하는 방법이다. 완성한 다음 틀을 떼어내면 벽은 바위처럼 단단한 하나의 흙덩어리로 되어 충격과 침식에 강한 구조물이 된다. 벽돌보다 강한데다 벽돌을 말리고 운반하고 쌓는 과정이 생략돼 노동 비용 면에서도더 유리하다.

또한 목구조 건축물보다 더 수명이 길다. 흙다짐 공법은 6000년 넘게 세계 거의모든 곳에서 지은 흙건축 방식으로 2000년 역사의 중국 만리장성 일부와 중동과 아프리카의 고대유적들 상당수도 이 방식으로 축조됐다. 프랑스 일부 지역, 특히 론강 유역에는 거의 모든 건물이 흙다짐 공법으로 지어졌다.
-자연을 닮은 집짓기(도서출판따님) 발췌

가평 담틀집 시공 장면. 사진제공 (흙 건축연구소 살림)
담틀집 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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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 전원주택】 핸드메이드 집에서 시작하는 자급자족의 삶, 단층 담틀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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