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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택을 찾아서, 원림(園林)의 백미 우암 송시열 선생의 남간정사
- 남간정사(南澗精舍 : 대전시 유형문화재 4호)는 우암 송시열(1607-1689년) 선생이 말년(숙종 9년 : 1683년)에 학문을 닦고 연구할 목적으로 세운 별당이다. 정사는 원래 불자의 수행지를 뜻했는데, 조선시대에는 유학자들이 공부하면서 제자를 가르치는 곳으로 바뀌었다. 우암 송시열 선생은 ‘동국 18 현-조선시대에 유학의 대가로 문묘(文廟)에 배향(配享) 된 18분-의 한 분으로 조선 주자학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노론의 영수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1689년 기사환국-숙종 15년(1689)에 소의 장 씨 소생의 아들을 원자로 정하는 문제로 정권이 서인에서 남인으로 바뀐 일-때 세자 책봉 문제로 제주도로 유배를 간 후, 그해 유월 다시 서울로 압송되는 과정에서 정읍에서 사약을 받고 사망했다. 남간정사는 원래 송시열 선생의 개인 정사로 지어졌지만, 후대에 그를 배향하기 위해 남간정사를 세우면서 일종의 서원 성격을 띠었다. 생활하고자 지은 한옥도 아닌 남간정사를 소개하는 까닭은,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원림(園林)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주변이 우암사적공원으로 조성되고 집이 많이 들어섰기에 한적한 원림의 분위기는 나지 않는다. 일제강점기 도청 소재지가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한적하고 수려한 공간을 자랑했다. 주변 환경이 제대로 보전됐더라면, 담양의 소쇄원 못지않은 원림으로 각광받을 만한 곳이다. 남간정사는 연못을 조원(造園)의 중심으로 하여 만들어졌다. 이러한 곳은 많이 있지만, 남간정사만큼 여러 요소가 어우러진 곳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과 돌과 그리고 폭포와 수목까지 잘 어우러진 곳은 찾기 힘들다. 원림 전체가 잘 어우러진 곳이 소쇄원이라면, 연못이라는 주제로 잘 어우러진 곳이 남간정사이다. 연못으로는 두 줄기의 물이 들어온다. 하나는 계곡에서 물길의 일부를 틀어 끌어들이고, 하나는 남간정사 뒤에 있는 샘물에서 누마루 하부를 통해 들어온다. 이렇듯 집이 물을 가로질러 세워진 남간정사는 우리나라에서 하나밖에 없는 특이한 구조이다. 원래 수맥이 있는 곳에는 집을 짓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데, 이곳에서는 그것을 완전히 무시했다. 그 이유는 기골이 장대한 송시열 선생이 수맥을 이길 만한 힘을 가지고 태어났기에 이러한 발상이 가능했다고 한다. 어쨌든 상식을 벗어난 배치로 집을 보는 흥취를 돋운다. 남간정사는 앞면 4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계곡에 있는 샘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건물의 대청 밑을 지나서 연못으로 흘러가게 했는데, 이는 한국 정원 조경사에 새로운 조경 방법이다. 남간정사 2칸 대청마루에서 바라보면 기국정 옆에 있는 바위들과 폭포 그리고 방장산이 한 눈에 들어온다. 3 계곡 밑과 측면에서 두 줄기의 물이 연못으로 흘러든다. 집은 주인의 입장에서 감상해야남간정사에서 바라보는 집은 중요한 요소는 아니다. 전면 4칸, 측면 2칸의 가운데 2칸은 대청인 집의 수준은 높지 않다. 남간정사의 가치는 외부에서 바라보는 것이나 집의 수준에 있지 않다. 남간정사의 풍광을 제대로 즐기려면 집 안에서 바라다보아야 한다. 이러한 개념이 잘 살아 있는 건물의 대표적인 예가 안동의 병산서원이다. 그곳 만대루에서 바라보는 낙동강과 병산의 경관은 자연을 정원으로 삼는 호연지기를 깊이 느끼게 한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주인의 입장에서 집을 짓는다. 집에서 바라보는 모든 경관은 주인이 즐기기 위한 것이다. 우리의 집은 주인의 관점에서 집을 짓기에, 남에게 보여 주기 위한 개념에서 설계되는 서양의 집과는 다르다. 정원도 마찬가지다. 주인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이 계획의 중요한 요점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한옥이나 정원을 찾아갈 때는, 먼저 주인의 입장에서 돌아보아야만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풍수지리상으로 집터를 잡을 때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가 좌향이다. 집이 앉혀져서 어떠한 안대를 바라볼 것인가를 찾는 것이다. 곧 집주인이 바라보아야 할 방향을 정하는 과정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집에 사는 주인이 좋은 기(氣)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경관도 마찬가지다. 좋은 경관을 볼 수 있는 자리에 집을 짓고, 주인의 위치에서 가장 좋은 경관을 보도록 만드는 것이 조경의 원칙이다. 그러한 원칙은 이곳에서도 찾을 수 있다. 대청에서 바라보면 기국정(杞菊亭) 옆에 있는 바위들과 폭포 그리고 방장산(方丈山)이 한눈에 들어온다. 조경의 핵심 요소들을 한곳에서 모두 살피도록 계획한 것이다. 남간정사 대청에 앉아서 바라보는 경관은 편안하면서도 잔잔한 흥취를 돋운다. 대청에 앉아 좋은 술을 한 잔 걸치고 나면 절로 시 한 수를 읊조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연못과 연못 안에 있는 방장산, 그곳에 심어진 오래된 버드나무와 기암괴석 그리고 은은하게 들려오는 자그마한 폭포의 낙수 소리… 이러한 모든 정원의 요소들이 어울려 남간정사를 만들고 있다. 남간정사 좌측에는 누마루가 놓여 있다. 더 높은 곳에서 경관을 감상하라는 배려이다. 지금은 아쉽게도 기국정과 새로 지은 집들에 가려 제맛을 느낄 수 없게 됐다. 기국정은 예전 소재동 고택 옆에 방죽을 쌓고 세웠던 별당이다. 일제강점기 때 도시계획으로 헐리게 되자, 이곳에다 옮겨 온 것이다. 송 씨 집안에서는 이 건물을 옮길 것을 주장하고 있다. 누마루에서 보는 경관을 가로막고 있는 기국정이 사라지면 원래의 맛을 조금이라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오른편 뒤 1칸 방에서 바라본 누마루. 왼편에는 앞뒤 통칸의 온돌방을 들였다 오른 편에는 1칸 방과 마루보다 높은 누를 만들어 아래에 아궁이를 설치했다. 개발과 고택 보존의 의미는…남간정사가 가장 아름다울 때는 벚꽃이 피는 봄이라고 한다. 하얀 벚꽃과 꽃그늘이 진 연못 그리고 신록이 가득한 나무들이 어우러지는 남간정사의 풍광은 마치 선경에 온 듯할 것이다. 초여름에 찾은 남간정사도 아름다웠다. 푸르름이 깊어진 나무에 가려 보일 듯 말 듯 한 남간정사의 모습은 수줍은 처녀를 보는 듯했다. 이처럼 남간정사는 사시사철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는 곳이다. 남간정사를 찾을 때마다 역사의 보전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현재의 남간정사 주변을 우암공원이라고 만들어 놓았지만, 사실 오히려 더 어수선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지금 남간정사 담 밖에 인공으로 조성한 하천도 예전에는 자연스럽게 흘렀던 하천이고, 연못 바로 앞쪽에는 폭포가 있었다고 한다. 송 씨 집안에서는 현재 외삼문 앞에 복개한 부분을 제거해 달라고 요청 중이라고 한다. 현재 남간정사를 둘러싸고 있는 담도 원래는 없었을 것이다. 그나마 담도 최근 다시 높게 쌓아서 남간정사에서 내다보는 시야를 가리고 있다. 또한 주변 개발로 높은 집들이 들어서 남간정사의 경관을 막고 있다. 이러한 집들이 없다면 앞은 시원하게 트여 멀리 계룡산까지 바라보여 마음까지도 맑게 했을 것이다. 최근 무분별한 개발이 남간정사를 만든 송시열 선생이 의도했던 경관들을 다 가리고 있다. 주변 경관이 자연스럽게 살아 있던 옛 모습을 떠올리면서 보전한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하는 곳이 바로 남간정사이다. 산자락을 타고 남간사(南澗祠), 남간정사, 기국정, 솟을 삼문의 지붕 선이 이어져 흐른다. 가운데 문이 높고 양쪽의 문이 낮은 ‘솟을 삼문’. 가운데 문을 정문, 양쪽 문을 동협문· 서협문이라 부른다. 일제강점기 초, 소제동에서 옮겨온 기국정. 물과 돌과 그리고 폭포와 수목까지 잘 어우러진 남간정사. 글쓴이 최성호 1955년 8월에 나서, 연세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했습니다. 1982년에서 1998년까지 ㈜정림건축에 근무했으며, 1998년부터 산솔도시건축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현재 전주대학교 건축학과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한옥으로 다시 읽는 집 이야기》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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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택을 찾아서, 원림(園林)의 백미 우암 송시열 선생의 남간정사
전원생활 검색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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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iet Time: DMZ Forbidden Garden 비무장지대의 재해석, DMZ 정원
- 가든 디자이너 황지해 작가는 독특한 아이디어와 밀도 높은 구성력으로 작년에 이어 올해 첼시 플라워 쇼에서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화장실과 전쟁 등 정원과 쉽게 매치되지 않는 창의적인 소재의 활용은 세계 원예인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가든 구성의 한계를 넓힌 그녀의 정원을 살펴본다.글·사진 서상신 영국통신원 seobbio@naver.com사진 및 자료제공 ㈜뮴 062-527-4114 www.muum.kr자료참고 영국왕실원예협회 Royal Horticultural Society www.rhs.org.uk 일차원적으로 생각했을 때 전쟁과 정원은 어울리지 않는다. 전쟁 속에 핀 꽃은 상징적으로 사용될 만큼 희소가치를 갖기 때문이다. 가든 디자이너 황지해 작가는 세계적인 원예 박람회인 첼시 플라워쇼를 통해 DMZ를 새롭게 재현해 한국 정원의 우수성을 알림과 동시에 가든 디자이너로서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했다. 비무장지대를 뜻하는 DMZ(Demilitarized Zone)는 국제조약이나 협약에 의해 무장이 금지된 지역 또는 지대를 의미한다. 1953년 한국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이 체결됨에 따라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남북 각 2㎞씩 너비 4㎞의 지역이 비무장지대로 설정됐다.이러한 이유로 DMZ는 한국의 특수한 분단 상황을 표현할 수 있는 소재이며 이곳은 약 40년간 외부 출입이 통제됐기에 자연 상태가 잘 보존돼 생태학적인 가치가 높다. 황 작가는 이를 소재로 한국의 특수 상황을 보여줌과 동시에 전쟁이라는 소재를 정원의 아이디어로 끌어들였다는 점에서 창의성 및 구성 능력을 인정받아 2012 첼시 플라워 쇼 금상과 회장 특별상을 받았다. 비무장지대의 축소판 DMZ 정원DMZ 정원의 첫 느낌은 정원답지 않다는 점이다. 박람회에 선보인 대부분의 정원 모습이'가든'이라는 개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면 DMZ 정원은 형태와 구성 모두 궁금증을 자아내게 했다. 잘 구획된 정원이기보다 하나의 정글을 연상시키는 외관에 일반적인 정원에서 흔히 볼 수 없는 가시철사와 목재탑은 단연 구별됐다.관람객들의 표정이 이를 대변했다. 다른 모델 정원을 감상할 때와 달리 호기심 가득한 그들의 반응은 사뭇 인상적이었다.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야생 그대로의 모습은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을 뿐만 아니라 비무장지대가 갖는 의미에 대해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어냈다.BBC 프리젠터이자 가든디자이너인 제임스 웡James Wong은"이전 첼시 가든들과다른, 내가본최고의정원중하나"라고평가했다. 특히"식재 하나하나를 모발이식 하듯 한 땀 한 땀 심은 것이 놀랍다"며"디자이너에게는 자기 가든만의 독창적인 분위기(atmosphere)를 창조하는 것 자체가 엄청나게 힘든 일인데, DMZ 가든의 분위기는 60년이라는 시간을 완벽하게 담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참전용사들 역시"잊혀진 전쟁이 돼 버린 한국전쟁을 다시 기억하게 해줘 감사하다"는 뜻을 전했다. 전쟁의 폐허 속에 탄생한 총천연색 야생 정원'Quiet Time: DMZ Forbidden Garden'이라는 타이틀을 내건 정원은 각양각색의 야생 식물들로 이뤄져 있다. 식물은 마치 수백 년 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듯 자연스럽다.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야생 그대로의 모습을 재현하기 위해 식물의 60%는 한국에서, 나머지 40%는 유럽에서 가져온 것들이지만 모두 비무장지대에서 발견한 식물과 유사한 종류로 선택했다. 비무장지대 식물 연구를 통해 황 작가는 몇몇 독특한 것들을 발견했다.먼저 군인과 피난민들의 대체 식량과 약재로 활용됐던 쑥은 전시에 군인들의 피를 지혈하는 데 사용됐고 질경이 즙은 배가 아플 때 짜 마셨다고 한다. 머루와 다래 냉이, 산나물은 대체식량으로 사용됐다. 그 중 개느삼Gaeneusam이라는 식물은 북한의 차가운 기후와 남한의 따뜻한 기후가 만나는 지역에서만 살아남는다.비무장지대를 그대로 재현한 듯한 느낌이 드는 또 한 가지 이유는 다양한 소품의 활용 덕분이다. 그 중 단연 돋보이는 아이템은 정원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목재탑이다. 감시탑을 연상시키는 이 탑은 공동경비구역의 돌아오지 않는 다리'Bridge of No Return'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이 다리는 대한민국과 북한 사이를 가로지르는 다리로 서쪽에 흐르는 사천에 위치한다. 이 외에도 전쟁의 흔적을 살펴볼 수 있는 아이템은 가든 곳곳에서 발견된다. 참전용사들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낡은 군화, 도시락 그리고 단추 등은 전쟁에 대한 기억을 불러일으킨다.이처럼 전쟁의 폐허를 딛고 아름다운 원시림으로 소생한 DMZ 정원은 자연의 재생력과 치유라는 정원의 본질적인 가치를 표현하고 있다. 마음과 몸을 비우는 철학의 공간, 해우소 가는 길황지해 작가가 가든 디자이너로서 이름을 알린 것은 올해가 처음이 아니다. 황 작가는 2011 첼시 플라워 쇼에 '해우소 가는 길(Empting One's Mind)'이라는 주제로 정원을 출품해 Best Artisan Garden상을 받았다.해우소는 '마음을 비우는 곳'이라는 의미로 한국 사찰의 화장실을 뜻한다. 황 작가는 전통적으로 화장실을 가는 과정이 비움과 성찰을 얻을 수 있는 장소라고 생각해 화장실과 주변을 독특한 정원으로 디자인했다. 가든의 주요소는 쉽게 예상할 수 있듯 화장실과 화장실로 연결되는 작은 산책길이다. 화장실 설계에서 인상적인 점은 입구는 일층이나 반대편은 반지하로 설계해 인분을 퇴비로 활용할 수 있도록 계획한 것이다. 또한 생각의 비움에 이르는 길 주변으로 오죽과 백목련 등 관상가치가 높고 흰색 꽃을 피우는 식물을 심어 아름다움과 평화로움을 느끼도록 구성했다.RHS 소형 가든 부분 담당자 Robert Hillier는 해우소 정원에 대해"한국 정원은 놀랍다"며"주제가 매우 독특하고 아름답게 완성됐다"고 전했다. Quiet Time: DMZ Forbidden Garden 황지해 작가를 만나다"자연과 사람에 대한 배려가 느껴지는 정원이 좋다" Q. 먼저 당신의 정원 철학이 궁금합니다.A. 정원 철학이라고 표현하기 전에 나에게 정원은 자연의 무한한 창조력과 대화하고 소통하는 곳입니다. 정원은 창조의 욕구를 실현해 주면서 동시에 어느 소설가의 이야기처럼, 균열과 상처 난 곳에 영혼을 만들어주고 안식처를 제공하고 소생의 힘을 줍니다. 자연의 본질이 끊임없는 생명의 순환과 재생, 치유력에 있어서 일 겁니다. 모든 창조적 행위의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 영혼을 맑게 하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작년에 이어 올해도 첼시 플라워 쇼에 출품을 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A. 첼시 플라워 쇼는 작은 소리도 크게 들어주는 아주 특별한 소통 공간입니다. 스폰서와 함께 해야 한다는 것만없다면 나만의 이야기를 통해 꾸준한 문화 교류를 하고 싶습니다. Q. 이번에 출품한 작품이 금상 및 회장상을 받았는데 수상 소감이 남다를 것 같습니다.A. DMZ 가든이 보여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는 확신을 갖게 됐어요. DMZ의 존재가치를 증명받았다는 것이 수상의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Q. 비무장지대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 등 DMZ 정원 기획의도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A. 동생이 군대 생활을 특수부대에서 꽤 길게 했는데 떨어져 있는 동안 동생의 외로움과 답답함을 다 알 수 없었어요. DMZ는 동생이 왜 군대에 가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했을 때부터 의문의 대상이기도 했습니다. DMZ의 식생 조사는 내 저변에 깔려 있는 본질적인 부분들을 알아가는 것처럼 흥미로운 일이었던 것 같아요. 특히 용늪에서의 시간은 내가 어릴 적 봤던 초지와는 다르게 무언가 내재된 흥분과 갈증이 있었습니다. DMZ 안을 넘나드는 산꾼들이 모아놓은 군사물품, 약품, 지뢰와 같은 살상무기 등이 당시 환경과 생활상을 파노라마처럼 체감할 수 있게 해줬고 다듬어지지 않은 맹아림의 거친 표정을 직접 볼 수 있어 경이로웠어요. 더불어 우점종·열성종으로 인해 자연이 그려놓은 드로잉이 흥미롭기까지 했지요.새와 들짐승들의 은신처를 좀 더 명확하게 들여다볼 수 있기도 했고요. 때 묻지 않은 원시적 감성이 내가 왜 이 자리에 서 있는지에 대한 분명한 사명감과 의지를 줬던 것 같습니다. Q. 당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정원이란 무엇인가요?DMZ라는 작품으로 짐작해보면, 원시림이라는 것이 가장 아름답고 이상적이라고 답하지 않을까도 생각되는데요.A. DMZ는 60년의 세월 동안 DMZ만이 가지고 있는 자연의 재생력, 즉 정원의 본질적인 부분을 가장 잘 엿볼 수 있는 자료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정원은 자연과 사람에 대한 배려가 느껴지는 정원입니다. 또한 정원의 성격이 다양하겠지만 일반적인 정원을 기준으로 볼 때 만든 사람의 성격과 성향이 잘 드러난, 사람이 느껴지는 정원을 추구하기도 합니다, Q. 지난해 출품한'해우소 가는 길'과 차이점이나 발전된 점이 있다면 무엇입니까.A. 일단 규모 면에서 DMZ가든은 10배 이상 큰 작품입니다. 여왕 가든 바로 옆 사이트를 배정받았는데 지난해 해우소 이후 한국 정원에 대한 관심도가 치솟았음을 느낄 수 있었어요. 행사 중에도 국제사회와 언론이 한국 정원에 관심을 많이 갖게 되었다는 점을 피부로 느꼈어요. 특히 삼각형 모양의 부지인 트라이앵글 사이트는 디자인이 까다로워 모든 디자이너와 시공사가 가장 기피하는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고난이도의 자리를 한국 정원에 배치했다는 것은 그 가치를 인정하고 예우를 해준 것이라 생각합니다. Q. 작업에서 한국적인 주제를 이어오고 있는데, 이유와 그런 주제로 구현된 정원의 특별한 매력이 있는가요?A. 한국적인 것만을 부각하기 위해 일부러 애쓰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창조적 행위는 작가 자신을 말해주기 때문에 김치를 먹고 사는 저에게 한국적인 느낌은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우리 정원의 정신적·미학적 가치를 찾고 발견하는 것은 나 자신을 발견해 내는 것처럼 흥분되는 일입니다. 드러내지 않고 과시하지 않으며 억지스럽거나 지나친 것을 멀리하고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운 것이 우리 문화의 전반적인 특성이라 하는데, 정원에서 역시 드러납니다. 던져놓은 듯한 투박한 원시적 감성을 존중하고 의도하지 않은 우연의 효과를 추구하는 편입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해 주세요.A. DMZ 가든은 현재 일시적으로 London Pleasure Gardens로 옮겨져서 재조성되고 있습니다. 9월 이후 엘리자베스 여왕 올림픽 공원에 옮기기 위한 협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임페리얼 워 뮤지엄, 내셔널트러스트, 런던야생환경트러스트(London Wildlife Trust), 자연사박물관, 에드워드 왕자 개인 정원 등과 DMZ 가든 영구 보존에 대한 협의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오는 9월에는 일본 가드닝월드컵(GWC)에 한국 대표로 참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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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iet Time: DMZ Forbidden Garden 비무장지대의 재해석, DMZ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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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Garden②] 자연을 끌어들여 심성을 다듬는, 바위정원 이야기
- 앞에서는 자연 그대로의 바위를 정원에 적절히 배치하고 관리하는 방법을 살펴보았다. 여기에서는 왜 바위나 돌을 정원으로 들여오게 됐는지에 대해 알아보자. 예로부터 한국의 정원은 자연을 존중하며, 인위적인 기교를 많이 쓰지 않는 자연 그대로의 자연미를 나타내는 것이 특징이다. 자연을 집 안으로 들여오는 것 자체가 인위적이긴 하지만 그 이상의 가공은 하지 않는 한국 정원의 특성을 살펴본다. 둔덕 중심부에는 소나무들이 있고, 그 주변에는 불로초들이 자라며 사슴들이 한가롭게 노닐고 있다. 둔덕 너머에는 여러 산봉우리들이 짙은 오색구름 사이로 드러나 있다. 구름 사이에는 붉은 해가 빛나고 있으며, 그 구름 사이로 학들이 날아다니고 있다. 오른편에는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물과 주변의 기암괴석들 사이에 복숭아나무가 보이고, 왼편에는 거북이를 비롯한 수중생물들이 보인다. 이 풍경의 전체적인 느낌은 화려한 색채와 소재들로 신비한 분위기가 가득하다. 이상은 십장생도(十長生圖)에 대한 설명이다.십장생도는 상상의 선계(仙界)를 형상화한 것으로, 생명이 장구하다는 해·산·물·돌·구름·소나무·불로초·거북·학·사슴 등 열 가지의 장생물(長生物)을 소재로 한 그림이다. 주로 상류계층의 세화(歲畵)와 오래 살기를 기원하는 축수용(祝壽用) 그림으로 제작됐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림만으로 이러한 것들을 기원하는데 부족함을 느끼고, 직접 자연을 집안으로 들여놓기 시작했다.※ 자연 그대로를 옮겨와 그림 속의 장생물이 모두 소중한 뜻을 담고 있다고는 해도, 그 모든 것을 집안으로 들이지는 못했다. 해, 달, 구름, 학 등은 그 누구도 손을 써 옮길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소나무, 돌, 물 등을 들여오기 시작했고, 지금의 현대식 정원에서도 그 모양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햇볕이 잘 드는 곳에는 수목을 심어 그늘을 만들고, 돌과 함께 다양한 식물을 조화시켰으며 앞개울의 물을 끌어와 연못을 만들고, 뒷산의 새소리 등을 벗삼아 자연을 가까이 즐겼다. 하지만 이를 즐기는 데에도 기본 원칙이 있었다. 자연 그대로의 형상을 헤치지 않고, 최대한 인공적인 것을 포함하지 않은 그대로의 자연을 감상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기본 원칙들이 한국 정원의 특성으로 자리잡게 됐다.※ 바위의 굳은 의지를 닮고자 다양한 장생물 중에 특히 바위(돌)는 물과 함께 수석(壽石)으로 일컬어지면서 자연 풍치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 변함 없이 흐르는 물도 그렇겠지만, 사람들은 그 중에 바위의 굳은 견고함과 불변의 의지를 닮고 싶어했다. 우리나라의 고궁이나 전통 가옥의 정원에서도 산석이나 수석, 괴석 등을 쉽게 볼 수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자연 속에 놓여진 바위를 그대로 마당이나 정원에 들여와 매일 바라보며 굳은 절개를 배우고자 한 것은 현대에까지 이어져 '바위처럼'이란 노래에서도 바위의 변함 없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바위처럼 살아가 보자 모진 비바람이 몰아친대도어떤 유혹의 손길에도 흔들림 없는 바위처럼 살자꾸나…" -바위처럼 노랫말 중※ 정원석에 잘 어울리는 식물굳은 의지의 바위를 들여놓고 그 뜻을 새기는 것도 좋지만, 바위 하나로 정원을 가득 채울 수는 없는 일이다. 바위의 자연스러운 모양을 살리고, 초록의 잎이 조화를 잘 이룬다면 굳이 먼 산을 찾지 않아도 숲속의 자연을 더욱 가까이서 느낄 수 있을 텐데… 바위의 웅장함을 가리지 않고, 낮은 키로 잘 조화를 이루는 식물에는 크게 다육식물과 고산식물이 있다. 이들 식물의 큰 특징은 장기간 수분이 적은 지역에서 자생하면서, 오랜 건조에 강하고 줄기나 잎에 다량의 수분을 함유하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다육식물에는 선인장과, 초롱꽃과, 석류풀과, 돌나물과 등이 있으며, 우리들이 쉽게 볼 수 있는 선인장도 대부분 이들 식물에 속한다.고산식물은 해발 2500미터 이상 되는 곳에서 자라는 식물이다. 이 같은 고지대는 1년에 절반 이상이 빙설과 매서운 추위가 계속된다. 짧은 여름철에는 자외선이 강해 이들 식물 내에 있는 수분의 증발이 빨리 되는 편이어서 대부분의 식물은 그 크기가 왜소하며, 생장이 느린 것이 특징이다. 고산식물의 종류로는 바람꽃, 돌매화나무, 월귤나무, 애기금매화 등이 있으며 생장이 느려 바위의 멋진 자태를 방해하지 않고 조화를 잘 이루게 된다.田■ 글 조영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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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Garden②] 자연을 끌어들여 심성을 다듬는, 바위정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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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가든 디자이너 + 환경 미술가 황지해
- 버림받은 시간들을 어루만지다! 모퉁이에 비추인 태양: 소녀들을 기억하는 숲 황지해 작가는 위안부 할머니가 열두 살 앳된 소녀였을 때 바라봤을 고향 정원의 풍경을 담았다. 그는 자신을 이 정원의 설계자라기보다는 할머니들의 애틋한 마음을 전하는 전달자라고 했다. 가끔 미술이 힘을 갖지 못하는 건 역사에 대한 무관심 때문이다. 습관적으로 그림을 그린다면 솜씨 좋은 배관공과 다를 게 뭐가 있을까. 상암동 월드컵공원의 화사한 가을 정원. 담벼락 같은 시멘트 벽 속엔 퇴색한 사진 같은 타일들이 정교하게 이식돼 있었다. 추운 날 햇볕 가득한 담장 같기도 하고, 주랑 옆에 핀 들꽃을 보는 것 같기도 한....등신대 크기의 아트월 담벼락과 정원의 혼합, 키치적 오브제들과 너무 무관한 소묘의 원시성, 12살 소녀의 눈으로 바라봐야 할 온기와 향수까지. 가든 디자이너 황지해의 팔레트는 아주 서사적이고 탐구적이었다. 디자인 콘셉트 할머니들이 손수 그린 그림이 걸어 나와서 정원이 될 것입니다 Key Plant 나비가 좋아하는 초종 접시꽃 Althaea rosea 물망초 Myosotis sylvatica 찔레 Myosotis sylvatica 쑥부쟁이 Aster yomena 도라지 Platycodon grandiflorum 한국 자생종 꼬리풀 Veronica linariaefolia 개정향풀 Apocynum lancifolium 범부채 Belamcanda chinensis 등골나물 Eupatorium japonicum Thunb 글 이종수 사진 백홍기 “위안부 소녀를 위한 정원이지만, 위안부가 아니라 위안부로 끌려가기 전 소녀의 모습을 봤으면 했어요. 12살 그때의 앳된 소녀의 예전 모습으로 되돌려주고 싶었어요. 이 정원의 중요한 담벼락은 소쇄원(瀟灑園)의 애양단(愛陽檀) 담장을 본떠서 편집했어요. 저 애양단을 통해서 할머니들의 메시지를 전달해 주고 싶었어요.” 역사는, 적자 생존된 커다란 얘기들이다. 미술사 역시 수없이 많은 작품들이 명멸하는 가운데 살아남은 것들. 검증된 것들만이 계보를 만든다. 한국 정원 속에서 최근 황지해가 남긴 바퀴 자국은 노면에 부딪힐 만큼이다. 황지해는 지난 10월, 올해 첫 회로 열린 서울정원박람회에서 초대작가전으로 '모퉁이에 비추인 태양'을 선보였다. 책과 미디어로만 보았던, 첼시 정원의 미술사적으로 검증된 컬렉션들을 제치고 최고의 찬사를 받았던 그는 대한민국에 사는 한 여성으로서 누구나 빚진 마음을 쓸어안으며 꽃으로 헌정하고 기억할 수 있는 장소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정원에 담아냈다. 담장 앞에는 툇마루가 놓여 있고 바로 앞에는 할머니의 주름지고 작은 발을 음각한 동판이 설치돼 있다. 주변 바닥에는 위안부의 삶을 한탄하고 일제를 원망하는 할머니들의 어록이 새겨진 가느다란 금속판 여러 개가 배치됐다. 정원에 방치된 역사를 아로새기다 “애양단의 메시지가 '태양을 사랑하는 담장'이에요. 모두가 똑같이 햇볕을 받을 수 있는 담장이라는 말에 감동했거든요. 모두 똑같이 햇볕을 받고 모두 정의로운 생각을 하고 밝은 세상을 기대한다는 의미죠. 할머니들이 받았던 치욕의 세월을 볕 잘 드는 날에 애양단 담에 기대어 그동안의 모든 시름이 녹아버리길 바라는 마음이기도 해요. 지금까지 음지에서 평등하지 못하게 사셨잖아요. 그래서 애양단이라는 매개를 통해서 어필하고 싶었어요.” 그는 20미터 길이의 시멘트 캔버스에 할머니들이 손수 그린 그림들이 걸어 나와 정원이 되도록 디자인하고, 위안부로 끌려가기 전 12살 소녀의 눈으로 본 그림을 새겨 넣으면서 구체적 인물들의 대비 속에서 19세기의 역사를 21세기에 불러들였다. 등신대 높이의 돌담에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소장품과 나비 그림 등 손수 그린 그림을 걸어놓고 곳곳에는 나비가 좋아하는 접시꽃, 물망초, 찔레, 쑥부쟁이 등 한국 자생종 꽃을 심어놓았다. 바닥에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말과 사연이 적힌 동판을 깔았다. 길원옥 할머니의 족적에는 그의 발바닥 주름까지 표현돼 있다. “위안부의 정원이 아니라 소녀가 바라본 정겨운 뜨락으로 기억하길 원했어요. 할머니들 작품과 소장품들을 가지고 아트월을 만들었어요. 야외 갤러리인 셈이죠. 저기 복숭아나무 있죠. 저 복숭아나무는 담벼락 그림이 걸어 나와서 정원이 되는 거예요. 나비가 좋아하는 초화도 많이 심었어요. 12살 그때의 소녀가 그린 나비처럼 세상의 모든 나비들이 많이 날아와 준다면 작품이 비로소 완성되는 거죠.” 생물의 기본 원리를 잘 아는 학생처럼, 식물도감을 펼치듯 그가 말했다. 모든 세대는 다음 세대에 영향을 미칠 기회를 가진다. 그는 의무, 전통, 소심함의 표어가 걸린 지난 세대의 일원인 채 과거의 사실을 꼼꼼히 확보해 두었다. 회고는 그의 수단이 되었고, 황지해는 그렇게 정원 디자인과 환경 미술의 어법으로 방치된 역사적 공간을 채운다. “ 1999년부터 환경 미술을 했어요. 환경 미술을 하다 보니까 공간에 대한 고민을 같이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조그만 쌈지공원부터 시작했어요. 그게 업이었죠. 공부를 꼭 학교에서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실전에서 쌓은 경험도 공부라고 생각해요. 저는 지금도 하면 할수록 어렵고 배워야 할 것도 너무 많거든요. 생태와 정원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어요.” 그럼에도 2011년 <해우소: 근심을 털어버리는 곳> 작품을 시작으로 그는 유럽 정원의 전통 위에 자신의 의자를 찾았다. 이윽고 2012년 첼시플라워쇼에서 두 번째 그랑프리를 거머쥐게 한 <고요한 시간: DMZ 금지된 정원> 이후 그는 꾸준한 작업을 통해 한국의 정원을 유럽에 선사했다. “시간이 갈수록 시간이 덧대어져 완성도가 더해가는 정원들이 있어요. 정원 디자이너는 시간을 설계하는 사람이고 빛과 계절을 땅에 도면화 하는 사람들이에요. 시간 앞에 표정을 잡을 수만 있다면, 가장 이상적인 정원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래서 정원은 어느 시인의 시구처럼 다음 세대를 위한 준비이자 자연이 하는 일에 동참하는 것이라 믿습니다. 자연에 대한 태도와 경외심을 정원으로 이야기하고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를 둬야겠다고 정원을 만들 때마다 생각해요.” 황지해는 경이로운 침묵 속에서 바라보아야 할 천재는 아니다. 하지만 다른 시간 의식을 지녔다. 그건 한 시대를 두고 이름을 얻은 작가의 힘이다. 이윽고, 유용한 듯한 쓰레기, 양식 없는 구조물, 농담뿐인 허장성세 속에서 그는 영속적 의미를 지닌 길을 찾았다. 느티나무를 사이에 두고 왼쪽에는 콘크리트 아트월(Art Wall)이 있다. 이곳에는 ‘끌려가는 날’ (고 김순덕·1995) ‘빼앗긴 순정’ (고 강덕경·1995) 등 위안부 할머니들이 그린 그림이 타일로 제작돼 걸려 있다.황지해 작가는 우리 선조들이 만든 전남 담양의 소쇄원에 있는 애양단(愛陽壇·태양을 사랑하는 단)을 본떠서 편집했다. 모두가 햇빛을 받을 수 있고 옳고 정의로운 그런 세상을 원하는 할머니들의 마음을 담장에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텃밭은 예술적 영감의 원천 “저는 어려서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텃밭에서 상추랑 도라지꽃이랑 자랐어요. 아주 감성적인 분이셨죠. 성장배경이 그러다 보니 풀밭이나 숲이 편해요. 예전에 몰랐던 무생물 살아있는 것들 이면에 세계를 보고 관찰하는 게 자신을 발견해 내는 것처럼 가슴 설레는 일이에요. 많은 작가들이 그렇듯 제 주변의 모든 것이 재료가 되고 아이디어가 되는데, 특별히 마음 상태가 가난하고 외롭고 고요할 때 깊이 들어와요. 자연에 대한 관심이 반은 본능적으로 왔던 것 같아요.” 그의 목소리는 조용하다. 조용하면 많은 게 보인다. 자연은 그에게 모든 이야기가 됐고, 정원의 테마는 음률을 타고 서술형으로 펼쳐졌다. 그는 즉물적 작가들에게선 보기 힘든 요소를 지녔다. 균형 감각과 유연성 말이다. 가족과 작업, 자연과 정원, 감성과 이성.... 그의 시작과 끝은 안정돼 있고, 그 사이에 드라마와 나른함이 있다. “사람들이 절박한 시간들을 겪을 때가 있잖아요. 극한이라고 하죠. 제가 극에 달했을 때, 무릎을 꿇고 신께 기도했어요. 그때 비워지고 겸허해지면서 정말 제로가 되는 걸 느꼈어요. 그 경험이 너무나 커서 회사 이름도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모습처럼 보이는 ‘뮴’이라고 지었어요. 중심을 잃지 않으려는 거죠.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보면 반지 때문에 사람들이 변하잖아요. 그런 거죠. 자연을 통해서 메시지를 전달해야 전달자가 되는 역할인데, 자꾸 내가 드러나서 초심을 상실하고 자연이 얘기하는 소리에 둔감해질까 겁이 나요. 그래서 마음을 다잡기 위해 형상화한 거예요.” 작업하고 정원에 나가는 일상 위에 본질을 잃지 않기 위해 자기 자신이 드러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작가라는 말이 감사한데, 별 의미가 없다고. 매번 작업이 끝나고 나면 부끄럽다고 그가 조심스레 말했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원 디자이너의 도표를 펼치면 어느 색인에서나 그 이름이 보인다. 그러나 무작정 돌진하기엔 그는 너무 자기 검증적이다. 극에 달하는 결핍은 나의 힘 “자부심은 상황에 따라 정말 거짓말같이 없어져요. 제가 작가라고 생각하는 순간이 있었어요. 제 정원에 와서 눈물 흘리시는 분을 뵌 적 있어요. 서로 낯선 관계지만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고 그 삶을 다 이해할 순 없지만, 제가 어떤 생각과 방향을 가져야 하는지 다짐하게 됐어요.” 모든 작품이 죄다 장엄한 교향곡은 아니다. 정크 푸드나 자크 달린 윗옷에 대해서만 다루는 것도 정당하진 않지만. 어쨌든 작품은 즐겨도 좋고, 개념을 이해 못 해도 좋다. 공허한 등식과, 끔찍한 이론에 감금되지 않은 순수 속에서만 정원은 존재하니까. “제가 글을 잘 쓴다면 소설가나 시인이 됐을 거예요. 좋은 책 한 권과 같은 정원을 만들고 싶어요. 읽으면 읽을수록 매번 새로운 그런 책과 같은 정원을 만드는 게 꿈입니다. 또 하나는 좀 서사적인 얘긴데, 구석지고 결핍돼 우울함을 보상할 수 있는 작품들을 하고 싶어요. 다음 세대를 위한 건강한 영향력을 보여주고 싶어요.” 작가는 지속적 이미지의 제공자. 급한 속도로 국제적 작가 그룹에 합류했고, 추가된 후광은 자랑할 만큼이지만, 그는 명성의 구슬픈 찌꺼기 속에서 맴돌지 않는다. 어쨌든 그가 지닌 작가적 엄격함과 애정과 스타적 요소 속엔, 그는 진정 자연적인 이미지에 합당한 작가라는 확신이 오버랩돼 있었다. 그러나 그 무엇에도 불구하고 그를 만난 후 내게 남은 유일한 단어는 그는 치열한 생활전선 속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라는 것이었다. 모든 작품이 다 증명될 순 없다. 모든 정원들이 다 유용한 것도 아니다. 모든 음악이 다 아름다운 것이 아니듯이. 하지만 그 앞에서, 구름 없는 하늘 아래 박공 장식으로 선 성당을 보는 것 같은 이 기분은 뭘까. 정원 곳곳에는 접시꽃, 물망초, 찔레, 쑥부쟁이, 도라지, 개정향풀, 범부채, 등골나물 등 나비가 좋아하는 꽃과 한국 자생종을 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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