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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을 파서 지은 ‘땅 집’
-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 어느 왕조王朝의유물遺物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 나는 나의 참회懺悔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만 이십 사년 일 개월 /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던가. 윤동주(1917. 12. 30 ~ 1945. 2. 16)의시 '참회록'일부다. 일본 교도소 복역 중 병을 얻어 요절한 윤동주의 시를 읊조리며 설계한 '땅 집(Earth House)'은 건축가 자신 뿐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개개인에게 내미는 거울이다. 윤동주의 '구리거울'은 녹을 닦아야 올 곧게 볼 수 있고 조병수의 '땅집거울'은 지하 좁은 계단과 문을 통하고 낮은 방문을 통과해야 볼 수 있다.글 박지혜 기자 사진 홍정기 기자 자료협조 조병수건축연구소 02-537-8261 www.bchoarchitects.com 경기도 양평군 지제면 수곡리 '땅 집'주소지에 도달하면 초행자를 당황케 하는 것은 '도대체 집이 어디 있단 말인가'하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건물이 땅 위로 우뚝 서 있어야 할 위치에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집은 땅 속에 들어가 있다. 지하 1층 집이다.3.2m 깊이 지하에 14m×17m의 장방형 콘크리트 옹벽을 설치해 측벽 토압을 지지토록 하고 이 박스 안에 6평 작은 집과 마당을 배치한 형태다. 건물은 다짐공법 흙집(담틀집, Rammed Earth House)이고 지면에 노출된 사각 평지붕은 콘크리트로 노출콘크리트 박스와 유기적으로 결속돼 있다. 지붕은 측벽에서 받는 하중을 지탱한다.7m×7m 정방형 마당은 하늘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고 담틀집 정면에 두 개의 작은 판문이 마당을 향해 열리도록 설치됐다. 지하에 지어졌으므로 태생적으로 어둠의 집이나 하늘빛이 오롯이 닿는 마당(Sunken Garden)을 앞에 두어 극도의 어둠과 갑갑함을 상쇄시킨다. 가만히 들여다보는 여유를 가지는 공간마치 교도소를 연상시킨다. 개구부의 제한적 설치로 외부와 단절된 채 유일한 통로인 회색 철문 그리고 성인 한 명이 서면 꽉 차는 좁은 계단실. 지상에서 지하로 이르는 계단을 타고 철문에 다다르기까지 마치 교도소로 들어가는 기분이 들게 한다. 바닥에 낀 녹색 이끼와 습한 공기를 마시는 지렁이가 오래된 집처럼 느껴지게 한다.실내 공간 역시 외부와 단절된 느낌이다. 6평 공간을 1평씩 여섯 칸으로 구획해 전후 3칸씩 겹집으로 구성됐다. 후면 방은 전면 방을 통해 출입 가능하다. 외부 판문과 내부 두 겹 창호지문, 겹문으로 된 출입문은 고개를 푹 숙이고 힘들게 들어가야 할 정도로 낮고 좁다. 건물전체 비례미를 고려한 것도 있고 건축가 조병수 씨가 민족시인 윤동주의 시를 음미하며 설계 반영한 때문이기도 하다.교도소는 계도의 공간으로 자성自醒과 자괴自愧의 시를 읊은 윤동주의 시세계와 맞닥뜨려진다. 또한 지하공간과 좁은 문은 내면 침잠沈潛의 세계로 들어가는 자아와 무의식의 추상적 문을 상징하기도 한다.교도소와 내면의 세계 둘 다 세상과 단절된 공간이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으며 건축가는 땅 집에 바로 그러한 이미지를 표현하려 했을 것이다."나는 건축가이기 이전에 한 사람으로 또한 생명체로 이곳을 만들고, 가만히 들여다보는 여유를 가지고 싶었다. 그리고 한 평짜리 방과 서재, 욕실, 부엌에서, 또한 바깥 하늘과 땅, 흙 마당에서 달을 보고 싶었다. 마치 절박했던 시대 윤동주의 시가 언제나 미래를 향해 희망적이었던 것처럼, 그가 희망을 자기 자신에 대한 절제와 성찰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것과 같이. 그리고 땅 집은 이 시대 '우리'를 돌이켜 볼 수 있는 집이었으면 했다." 환경 친화 · 효율적 구조 시도땅 집은 환경 친화적이며 최대한 효율적인 구조를 시도했는데 그만큼 공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담백한 느낌을 표현하는 다짐흙벽은 꽤 두꺼운데 구조적 역할 및 단열을 고려해 무려 50㎝ 두께로 했다. 흙은 지하 건물을 만들기 위해 땅을 파서 나온 흙으로만 사용했고 허물었을 때 다시 땅으로 돌아가도록 다른 첨가물을 제한적으로 사용했다.성인이 겨우 두 다리 뻗고 누울 수 있는 좁은 공간이니만큼 가구와 문짝 배치에 재치가 발휘됐다. 목재 칸막이 설치로 심플한 다용도 수납장이 완성됐고 방과 방 사이, 건물 후면 창호는 포켓 미닫이문 설치, 또한 보일러실을 벽장 속에 숨겨 불필요한 요철이 생기지 않도록했다.이 집은 조 씨가 대학원 졸업 작품으로 구상한 땅 밑 공간에 대한 이미지를 수년이 흐른 지금에 와서 실현한 것이라 한다. 땅 집은 땅 위 집보다 하늘과 더 멀리 있지만 땅 집에서 보는 하늘은 더 크고 고즈넉하다고 그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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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을 파서 지은 ‘땅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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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여덞 건축가의 시선들
- Attempts and Anchoring 여덟 건축가의 시선들 글 김수진 사진 백홍기 취재협조 온그라우드 갤러리_지상소(Onground Gallery_jisangso) T 02-720-8260 집에 대한 이해의 시작은 건축가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이 어떤 시선으로 건축과 사회를 바라 보는지를 아는 것에서부터 건축물의 가치는 재정립하기 시작한다. 젊은 건축가의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획 전시가 시작됐다. 건축 전문 갤러리 온그라운드에서 향후 5년간 이어질 기획 전시 시리즈 Cross-Section의 첫 번째 전시로 <Attempts and Anchoring>를 개최한 것. 지난 9월 1일부터 시작한 이번 전시는 10월 31일까지 계속된다. 전시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 조병수의 사무소에서 지난 20여 년 동안 배출된 젊은 건축가 여덟 팀이 참가했다. 참여 건축가들은 영상과 구조·설치조형, 사진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자신의 가치관을 관람객에 전달한다. 김경순|(X)_scape Studio 대표 집합적 전이 : 건축에서의 인지적 공간 보는 시점에 따라 상이 달리 보이는 애너모픽anamorphic 기법을 이용한 설치 작품. 서로 다른 이미지를 투영하는 수 많은 레이어를 설치해, 특정 각도에서 봐야 특정 형상이 보인다. 각 레이어는 다른 이미지를 투영하지만 하나의 형상에서 파생됐기 때문에 본질은 같다. 서로 다른 부분의 합은 보는 각도에 따라 다양한 형태 또는 현상들로 전이돼 실체와 다른 형태를 만들며 독특한 아이덴티티를 형성한다. 한 곳에 서서 이미지의 실체를 바라보고 다시 다른 각도에서 새롭게 파생된 아이덴티티를 바라볼 때 관람자는 그 이미지의 실체를 인식해 전혀 다른 형태의 이미지를 실체 이미지로 대입한다. 개인의 경험과 인식체계를 통해서만 인지하는 개인 공간을 시공간적 연결성이 없는 모호한 본질을 지닌 불확정적 공간으로 가정한다고 할 때, 시공간적 개념을 포함하게 될 장치를 통해 또 다른 정체성을 가지면서도 본질은 변함없는 새로운 인지적 공간으로 변화된다. 이진욱|이진욱 건축사사무소 공동대표 달이네 집 이야기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파주 심학산 자락에 지어질 단독주택. 3명의 가족이 거주하게 될 120㎡(36평)의 작은 집이다. 구조방식과 디테일의 개성, 공간의 풍요로움이 서로 어떻게 관계 맺을 수 있는지 모형과 드로잉을 통해 보여준다. 커다란 지붕은 공간을 풍성하게 해주는 건축적 요소로, 공사비 예산 한계 내에서 저렴한 기성 각재와 합판을 사용한 트러스를 짜서 긴 경간에 경제적으로 대응하는 목조 합성보를 적용할 계획이다. 높고 낮은 변화를 하는 경사진 천장 면은 곡면의 얇은 합판으로 마감돼 전체적으로 세장하고 우아한 작은 볼트들의 연속으로 느껴진다. 김동우|DK Design workshop 대표 귀소歸巢 건축설계에서 관성적으로 사용하는 기본적인 요소들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졌다. 기둥, 벽, 창문 등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과정을 통해 건축 본질에 대해 생각하도록 한다. 복합적인 기능과 공간을 가지며 다중적인 의미를 지니게 된 현대 건축의 움직임을 기둥 형태의 소재로 표현했다. 210mm x 210mm x 2,100mm 크기의 솔리드한 목재의 내부를 비워, 단순하게 채워진 기둥이 채움과 비움이 공존하는 복합적 상태로 전이transition 되는 모습을 개념적으로 표현했다. 김호중|ABIM Architects 대표 숨하우스 서울 강동구 암사동 선사 유적지에 맞닿아 있는 부지에 짓게 될 단독주택의 일부 구조물을 전시장에 설치했다. 삼각형 모양의 독특하면서도 협소한 대지 위에 6개의 분리된 공간과 삼각형 모양의 계단실을 설계했다. 계단실을 통하면 6개 분리된 공간이 하나로 연결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계단에서 올려다보이는 삼각형 천창을 직접 체험할 수 있으며 영상물도 볼 수 있다. 이주형|에이알에이 건축사사무소 건축적 증강현실 ‘건축은 우리 생활과 밀접한 곳에 늘 가까이 있어, 아주 작은 변화 하나로도 우리 생활을 바꿀 수 있다’는 건축가의 오랜 철학을 새로운 방법으로 전달한다. 이번 건축전시에서는 별다른 장치 없이, 익숙한 요소 중 딱 한가지에만 변화를 줘 늘 경험하던 육면체 공간이 다르게 느껴지도록 했다. 이를 통해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어떻게 하면 다른 느낌을 경험할 수 있는지 관람객이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강우현, 강영진|아키후드 WXY 공동대표 하얀민들레농원 투병생활로 몸과 마음이 지친 이들이 많이 찾는 하얀민들레농원을 소개했다. 자연과의 교감이 가장 중요한 만큼 건물은 북쪽 뒷산에서 내려오는 자연의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계획했다. 가운데 공간이 앞뒤로 트여있어 자연이 건물 안마당으로 흘러들어올 수 있게끔 설계됐다. 툇마루와 들어열개창과 같은 역할을 하는 캐노피와 데크도 자연과 사람이 한데 어우러질 수 있게 했다. 생동감 넘치는 관람을 위한 장치도 설치했다. 일반 동영상과 VR기어 영상을 통해 관람객이 마치 현장에 있는 듯한 느낌도 선사한다. 니콜라스 락Nicholas Locke|Zeroline 대표 Baik Ackerman Brimberg Residence 미국 포틀랜드의 리치몬드 지역의 베이크 애커만 브림버 하우스 & 스튜디오의 리모델링 프로젝트. 1949년 지어진 중세 목장 형태의 이 집은 낮고 긴 처마와 큰 창문이 특징이다. 최근 해당 지역이 핵심 상업지구로 변화하면서 이 집의 기본 외형과 원 디테일은 남기고 내부 인테리어를 개조했다. 이 과정을 이번 전시에서 소개한다. 심사숙고된 변경요소들도 언젠가는 다른 누군가에 의해 원상태로 되돌아갈 것이며, 이 변화의 의미는 건축 이상의 것을 만들어내며 반복되는 과정에서야 진정 빛을 발한다고 말할 수 있다고 건축가는 말한다. 오성헌|동아대 건축학 조교수 가파도 아름다운 섬 만들기 문화예술창작공간 & Urban Nomad(순천 예술 광장 국제 건축 공모전) 가파도의 아름다운 섬 만들기 프로젝트는 섬의 생태학, 경제학, 풍경, 인문학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섬의 미래상에 부합하는 시나리오를 제안한 건축 계획안이다. 지하 1층 철근 콘크리트 골조가 진행되다 존치되고 있는 구조를 적극적으로 이용해 새롭게 문화 예술 창작 공간으로 탈바꿈하고자 하는 실험적인 작업이다. 또한, Urban Nomad는 순천 원도심에 광장과 미술관, 방문객 센터, 외부공간을 계획해 구도심과 지역 사회를 연계하는 랜드마크를 제안한다. Attempts and Anchoring 전시일정 : 2016.09.01. ~ 2016.10.31 관람시간 : 10:00 ~ 19:00(일, 월 휴관) 전시장소 : 온그라우드 갤러리_지상소 (Onground Gallery_jisangso) 주 소 : 서울시 종로구 자하문로10길 23 문 의 : 02-720-8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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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여덞 건축가의 시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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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에서 만난 사람] 정신적 중심성을 찾아서 前 국토개발연구원 원장 황명찬
- “거의 모든 사람들이 삶을 살아감에 있어서 바락바락 애를 쓰니까 노자 같은 이가 무위(無爲)를 가르쳤다. 그는 유위(有爲)의 병에 걸린 인간들에게 무위라는 약을 처방한 것이다. 그렇다고 무위에 안주한다면 그것 또한 큰 병이 아닐 수 없다. 유위와 무위를 나눈 것부터가 사실 잘못된 것이다. 우리 인간의 관념과 사고가 만들어 놓은 함정이다. 자연상태에서는 유위와 무위의 구별이 없다. 그저 그럴뿐이다.” - 황명찬의 《무위(無爲)도 넘어서》 중에서 어린아이에게 하양 백지를 준다면 조만간에 본연의 색을 잃고 어떤 추상적인 선들로 채워질 것이다. 그 시간이 짧든 길든 간에 분명 그리될 것이다. 이는 아이에게만 국한된 일이 아니다. 연륜이 쌓일수록 채워지는 선이 추상에서 구상으로 바뀐다는 차이를 보이겠지만 말이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빈 것’을 보면 채워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아주 어린시절에야 큰 억압이 안 되지만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그것은 일종의 강박으로 작용해 수시로 스스로를 억압한다. 빈 것을 채우되 가능하면 ‘잘’ 채울 것. 그러나 백지는 ‘하양’으로 이미 차있는 것일 수 있다. 물을 비워낸 컵은 ‘빈 컵’이 아니라 공기로 가득 찬 컵일 수 있고, ‘아무 것도 없음’은 그 ‘아무 것도 없음’으로 가득 차 있을 수 있다는 거다. 동양화에서의 여백이 주는 그 풍부한 느낌 역시 이와 같은 이치다. 여백의 미. 도시인에게는 좀체로 찾아보기 어려운 그것을 찾아내고 싶었다. 한 달 내내 마감과 사람들에 얽혀 너무 ‘꽉 찼다’고 생각할 즈음 사람을 찾아 나섰다. 다행히 제법 규모있게 내린 눈이 세상살이로 과포화된 뇌를 식혀준다. 내면적인 혁명 “주위에서 전원생활을 한다니까 용기있다고 하데요.” 사실 맞는 말이다. 아무리 각박한 도시라지만 어느날 툴툴 털고 귀향할 수 없음은 그를 구체적으로 계획해 본 사람이 더욱 절실히 깨닫는 문제일 것이다. 전원생활이란 돈만 있으면 집을 구해서 들어가는 도시와 달리 터잡는 것부터 온 몸으로 부딪혀야 되는 수고로움이 요구되는 것이다. 그래서 돌연 전원행을 택한 이들에게 사람들은 ‘대단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황명찬 선생은 그 용기를 좀 더 구체화시킨다. 일종의 ‘혁명’이라고 보는 것이다. 세계 유명 아이스크림회사 사장 아들이 상속권을 포기하고 전원으로 들어가는 것이나, 미국의 잘 나가는 법률가들이 직업을 포기하고 다른 방향을 모색하는 것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어떤 계기로 충격을 받고, 그에 대한 반성이 따르면서 내면적인 혁명이 발생해야 합니다.” 그에게도 이러한 변화가 있었다. 외국에서 수학하면서 오히려 동양에서 지켜야 할 것이 있다는 깨달음이 생겼고, 동양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물질적인 것, 양적인 것을 최고의 가치로 추구하던 것에서 정신적이고, 질적인 것으로의 전환. 그것은 일종의 수련이 되어 그의 마음은 서서히 변화했다. 치유의 집 몇 년 전 병이 있는 사람이 들어가면 누구나 곧 낫게 된다는 ‘치유의 사원(Healing temple)’이야기를 보고 감명받은 선생은 집과 가족 역시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모든 관계자들이 ‘사랑, 평화, 자비, 조화’라는 공통의 염원으로 건설해 그러한 정신과 기운으로 몸의 병까지 치유된다는 그 곳처럼 집도 가족도 그러해야 한다는 생각. 이것이 전원으로 오면서 ‘집’ 자체에도 신경을 쓰게 된 동기다. 설계와 시공은 건축가 조병수에게 의뢰했다. 세월리에서 본 그의 주택이 좋았던 탓이다. 요구사항은 ‘편해서 들어가면 나오기 싫은 집’일 것. 편하고, 따뜻한 집,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당연하다고 해서 쉬운 것은 아니다. 집도 편안함으로 가족을 불러들이고, 가족 역시 그러한 기운 속에서 서로를 사랑으로 대해야 모두가 건강하다는 생각이다. 전원주택으로 흔히 볼 수 없는 박스 형태의 집이 지어졌다. 외부로는 절제와 정돈을, 내부로는 가변성과 시각적 자유를 준 디자인이다. 주변의 풍광은 창문을 투과하면서 크고 작은 그림이 되고, 창문들은 제 구실을 다해 모자람 없이 햇빛을 전달한다. 따뜻하고 편안한 내부는 최소의 가구만이 놓여져 그 주인의 성품을 대변한다. 정신적으로 충만한 삶 부부 모두 시골출신이라 전원생활에 거부감이 없었고, 워낙 호흡기가 민감해 서울서 살 적에도 공기 좋은 곳만 찾아다녔다. 현재 서울의 투기지역으로 지정된 곳에서 두루 살았지만, 집값이 오르기 직전 이사를 나오곤 해, 아들은 “돈 피해 다니시냐”며 놀린단다. 이런 사정이야 남들이 보기에는 참 아깝고 답답하겠지만 정작 그들 부부는 태연하다. 현재의 생활에 만족하고 있고 앞으로 할 것도 남아있으니 부족함이 없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태극권과 태극검으로 하루를 열고, 책을 읽거나 주변에 산책을 나가 사색에 잠기며, 아내와 함께 맛있는 식당으로 마실을 간다. 어찌보면 심심할 수 있는 일상. 그러나 다른 방향으로 바라보면 도시인과는 다른 무엇으로 꽉 차있어 풍요로운 모습이다. 현재 이들 부부에게 소망하는 것이 하나 있다면 바로 티벳으로의 여행이다. 그 중에서도 ‘카일라스 산’. 4대 종교의 성지라 알려진 성산이다. 사진과 지도를 펼치며 설명하는 황명찬 선생의 마음은 이미 티벳에 있다. 선생의 목소리를 따라 함께 티벳의 고원을 달린다. 田 ■ 글·사진 이민선 기자 ■ 프로필 황명찬. 1936년 생. 전 국토개발연구원 원장. 강원도 간성의 시골마을에서 출생해 그 곳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며 어린시절을 보냈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동대학 행정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뒤, 1969년부터 약 4년 간 도미, 씨라큐스대학에서 사회과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건국대학교 행정대학원 원장, 대학원 원장, 충주캠퍼스 부총장 등을 역임하고, 환태평양지역 지역학회(PRESCO) 회장, 한국환경정책학회 회장,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 고문, 한국 지역학회 고문, 한국 주택정책학회 고문 등을 역임했다. 2년 전부터 양평에 전원주택을 짓고 부인 이명숙 씨와 함께 야생화를 키우며 자연생활의 아름다움을 즐기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지역개발론》, 《한국의 토지와 주택》 등의 전문 서적과 수필집 《한 손으로 치는 손뻑소리》, 수상집(隨想集) 《무위(無爲)도 넘어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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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에서 만난 사람] 정신적 중심성을 찾아서 前 국토개발연구원 원장 황명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