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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복동천이라고도 불리는 우복종택愚伏宗宅(경북 상주시 외서면 우산리 193-2, 시도민속자료 제31)은 우복 선생이 38세 되던 해에 벼슬을 버리고 내려와 7년간 거처하던 곳으로 영조 때인 1750년 전후에 다시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우복 선생이 일상생활을 위해 지은 대산루對山樓(시도유형문화재156)는 보기 드문 2층에 온돌방을 드린 복층 건물이다. 일반 한옥에서 볼 수 없는 중후함을 느낄 수 있다.

글 최성호   사진 홍정기

명조 때 태어나 류성룡에게 수학한 진주 정씨 우복 정경세鄭經世(1563~1633) 선생은 선조 때 문과에 합격해 관직에 진출했다. 우복 선생은 영남학파 4세대 대표자로 추앙받았던 분으로 이 황의 학문을 계승한 것으로 알려진다. 우복 선생은 17세기 김장생의 주기론적 예학에 맞서는 영남학파 사상적 지주였다.

우복종택愚伏宗宅은 선생이 38세 되던 해에 벼슬을 버리고 내려와 7년간 거처하던 곳이다. 우복동천이라고도 불리고 영조 때 남북 10리와 동서 5리 우복동천구역을 하사하자 5대손인 정주원鄭胄源부터 이곳에 대대로 살았다. 그러므로 종택은 영조 때인 1750년 전후에 다시 지은 것으로 보인다.

보기 드문 2층에 온돌방을 드린 복층 건축물 대산루. 왼쪽 단층 부분은 강학공간으로 사용했다.

겹집에 내외 구분이 심하지 않은 종택
집은 넓은 산등성이에 동향으로 지어졌다. 배치는 튼 ㅁ자로 ㄱ자형 안채와 ㅡ자형 곁채를 ㄷ자로 구성했고 그 앞에 전면 다섯 칸 측면 한 칸 사랑채를 배치했다. 종택 좌측 조금 떨어진 사당에는 우복 6대손인 입재立齋정정로의 불천위가묘가 있다.
 
솟을대문을 들어서자마자 높은 단 위에 우뚝 선 사랑채를 마주하게 된다. 사랑채는 전면 다섯 칸 측면 한 칸으로 안채는 중문을 별도로 두지 않고 사랑채를 돌아들어가도록 구성했다. 사랑방에서 안채로 바로 통하는 문이 있다는 점, 사랑마루에서 안채를 들여다볼 수 있게 했다는 점 등을 볼 때 내외 구분이 경상도 다른 집과 달리 심하지 않다.
 
사랑채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대청으로 올라가는 곳이다. 사랑채 앞 툇마루는 계자난간을 둘렀는데 계자난간이 없는 한 칸이 바로 대청으로 올라가는 입구다. 오르내리기 편하게 하려고 다른 부분보다 조금 낮게 만들어 낮춘 것 같은데 어설퍼 보인다. 여기서 조금 더 낮게 했다면 더 편리했을 텐데 아쉽다.
 
사랑채 당호는 산수헌山水軒이다. 워낙 높은 곳에 자리 잡다 보니 솟을 대문이 시야를 가리고 있음에도 사랑 대청에서 보면 앞산이 바로 발치에 있는 것처럼 다가온다. 그야말로 산수헌이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풍광이다.
 
안채는 ㄱ자를 뒤집어 놓은 형태로 전면 네 칸 측면 다섯 칸에 겹집 구조다. 인근 양진당에서 소개했듯 이 지역은 겹집 구조 잔재가 남아있는데 우복종택 역시 지역적 특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안채 몸체는 좌측 한 칸을 안방, 다음 두 칸을 대청, 나머지 한 칸을 건넌방으로 구성됐다. 안채에서 바깥으로 나온 날개 채는 앞 두 칸이 부엌이고 뒤 세 칸이 안방과 상방이다.
 
곁채는 뒤로부터 두 칸이 광이고 가운데 부엌이 있으며 앞 두 칸은 방이다. 곁채를 붙여 적극적으로 ㄷ자 형으로 만들지 않은 것은 다른 튼 ㅁ자 집처럼 전면 행랑채에 광을 만들 수 없었기 때문이다. 행랑채가 아닌 곁채에 광이 들어오면서 광으로의 출입을 원활하게 하고자 약간 간격을 둔 것으로 보인다.

종택 사랑채에서 본 솟을대문과 전경.
내외 구분이 심하지 않은 안채는 전면 네 칸 측면 다섯 칸 겹 집 구조다.
높은 단 위에 우뚝 선 사랑채는 계자난간으로 둘러 조망을 맘껏 감상토록 했다. 산수헌이란 당호가 붙었다.
안채 좌측 후면에서 본 모습.

단출한 계정과 중후한 대산루
우복종택으로 올라가는 길 우측에 작은 초가와 커다란 누각이 있다. 작은 초가집이 계정溪亭, 뒤에 있는 누각이 대산루對山樓다. 대청 한 칸, 방 한 칸으로 꾸민 계정은 지붕을 초가로 올린 단출하면서도 검박한 건물이다. 우복 선생이 정착하면서 일상생활을 위해 지은 것으로 보이는데 우복의 평소 마음가짐을 엿볼 수 있는 건물이 아닌가 한다.
 
계정 뒤에 위치한 대산루는 우복종택보다 주목받아온 건물로 정종로가 1700년대 후반 이름을 붙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2층에 온돌방을 드린 복층 건물이란 점에서 주목받고 있으며 실제 우복종택보다 자주 소개되기도 했다.
 
ㅜ자 형태 대산루는 좌측으로 뻗은 날개는 단층이고 누마루 부분은 복층이다. 1층은 학문을 수양하거나 가르치던 강학공간講學空間으로 2층은 개인 공간으로 활용했다. 강학공간은 측면 두 칸, 정면 다섯 칸으로 좌측 두 칸은 대청, 중간 두 칸은 전면에 툇마루를 둔 방으로 구성했으며 우측 한 칸은 부엌과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꾸몄다.
 
정면 두 칸, 측면 다섯 칸인 누마루 1층은 부엌과 창고로 2층은 온돌방, 고방, 책방(두 칸)으로 쓴다. 뒤편 고방과 책방을 모두 방을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게 한 것으로 보아 2층 후면은 모두 주인 전용공간이었던 보인다.
 
2층 온돌방 하부는 모두 흙으로 채워 쌓았다. 온돌 특성상 같은 위치 1층에 방을 놓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2층에 온돌방을 드리는 경우 지상에서 5자 정도 흙을 채운 후 그 위에 아궁이와 고래를 만들고 구들장을 올린 다음 흙을 덮어 마무리한다. 그래서 아궁이가 낮은 곳에 있지 않고 사람 눈높이 정도에 설치되는 게 일반적이다. 이곳도 같은 형태다.
 
들이치는 비 등으로 벽이 손상될 것을 우려해 누마루 1층과 온돌을 들이지 않은 1층 창고는 돌로 마감했다. 그래서 대산루에서는 일반 한옥에서 볼 수 없는 중후함이 느껴진다.

대산루 1층 평면도
대산루 2층 평면도

대산루에서만 보이는 누마루 구멍과 돌로 만든 계단
재미있는 것 중 하나는 누마루에 난 구멍이다. 중간에 뚫린 구멍 형태가 마치 옛날 변기인 매화틀과 비슷하게 생겨 용변을 보는 구멍이 아니었나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속단하기는 쉽지 않은 문제다. 옛날에는 요강을 사용했기에 굳이 이곳에서 용변을 볼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용도를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다음으로 사람들에게 논란이 되는 것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다. 현재 모습을 보면 계단 양 측면과 후면은 돌을 쌓아 마감하고 하부는 흙으로 채웠는데 왜 나무가 아닌 돌로 마감했는가 하는 점이다.
 
김봉렬은 돌계단을 대산루 계획 핵심이라 정의하면서 누각에 차별성을 두기 위한 무언의 통제소 역할을 한 것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조금은 과한 해석이 아닌가 한다.
 
계단 뒷부분 두 기둥 기초를 큰 댓돌로 앉힌 것을 보면 처음부터 돌로 마감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봉렬의 말대로 차별성을 두기 위한 것일 수도 있으나 돌을 놓으면 바닥이 차 특히 노인에게 좋지 않다. 이런 문제점까지 감수하면서 돌로 계단을 놓은 것은 다른 뜻이 있었을 것이다. 돌 구조에 나무 계단은 어울리지 않는다. 나무로 계단을 짜 설치하는 것도 쉽지 않고 설사 나무 계단을 설치했다 해도 쉽게 썩는다. 목수는 계단 재료에 대한 선택 여지가 별로 없었을 것이다.
 
대산은 산을 마주 대한다는 뜻이다. 지금은 나무가 크게 웃자라 왼쪽 산이 조금 보일 뿐이지만 처음 누정을 지었을 때는 아주 잘 보였을 것이다. 대산루를 제대로 느끼기 위해 나무를 약간 잘라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대산루로 향하는 진입로. 지금은 나무가 크게 자라 시야를 가리지만 처음 지었을 당시는 훌륭한 경관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안채 곁채 동쪽에 놓인 사당으로 우복 6대손인 정정로의 불천위 가묘가 있다.
대청 한 칸, 방 한 칸을 들인 계정은 우복 선생이 일상생활을 위해지었다. / 단층 대청에서 본 모습으로 누마루로 오르는 계단이 돌로 마감된 특이한 경우다. 기둥 기초를 댓돌로 한 것으로 보아 처음부터 돌로 마감하려 했던 의도로 여겨진다.
산을 마주한다는 뜻을 지닌 대산루. 일반 한옥에서 볼 수 없는 중후한 멋이 있다.
우복종택 입구 우측에 자리한 계정과 대산루.

글쓴이  최성호
1955년 8월에 나서, 연세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했습니다. 1982년에서 1998년까지 ㈜정림건축에 근무했으며, 1998년부터 산솔도시건축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현재 전주대학교 건축학과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한옥으로 다시 읽는 집 이야기》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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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택을 찾아서, 수려한 경관을 담은 우복종택과 대산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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