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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이뤄지는 생활 가운데서 중요한 부분은 의식생활 그리고 관혼상제(冠婚喪祭)에 관한 것이다. 이것을 통틀어 ‘가사’라 부르기도 한다. 가사 활동을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집의 구조가 많이 달라진다. 반대로 집의 구조에 따라 가사 활동이 변하기도 한다.

조선조나 근대까지는 가사 활동의 대부분이 여성의 몫이었다. 그리고 근대에 이르기까지 큰 변화가 없었다. 서양 문물을 수용하고 70년대 이후의 급격한 경제 성장과 사회구조의 변화로 가사 활동이 예전하고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 원인은 사회 활동에 참여하는 여성이 늘어나고 생활 방식이 서구화된 것에 있다. 집은 생활을 담기 위해 만들어진 도구이기 때문에 생활의 변화는 집 구조를 바뀌게 한다. 예를 들어 관혼상제에 관련된 의식을 모두 집에서 해야 한다면 집의 규모는 매우 커질 수 밖에 없다. 반대로 이러한 의식을 집 밖에서 한다면 집의 규모는 일상생활을 영위할 정도면 족할 것이다.

최근에 발간된 어느 요리책을 보면 과거하고 다른 모습을 몇 가지 찾아볼 수 있다. 이 책은 오랫동안 직장 생활을 해온 여성이 직장을 가진 다른 여성들에게 자기 나름대로 깨우친 음식 만드는 법을 소개하고 있다. 이 책에서 살펴볼 수 있는 차이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로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장보는 것을 2주마다 하라고 권하고 있으며, 두 번째로 사온 음식을 냉동고에 보관하도록 권하고 있다. 세 번째는 시간 절약의 방편으로 식기세척기로 설거지를 대신 하라고 권한다. 마지막으로 음식을 만들 때도 가공 포장된 재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도록 권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의 핵심은 어떻게 하면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가공식품을 사서 요리에 이용한다는 것은 ‘게으른 주부’의 상징이었다. 많은 여성이 사회활동을 하게 되면서, 이제는 식생활도 주부의 수고를 덜어 주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음을 이 책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처럼 현재의 생활은 불과 20년 전과 많은 차이를 보인다. 더욱이 조선조의 생활과 많은 차이를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나라는 서구와 교류를 시작하면서 그들의 식문화를 받아들였다. 그 뒤로 음식을 조리하는 과정도 예전하고 많이 바뀌었다.

부엌이 사라지고 주방이 들어오다
식생활의 변화는 식단이 우리식에서 서양식으로 바뀐 것만 가리키지 않는다. 여러 변화 가운데서 특히 식사의 양이 예전과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조선조 말에 찍은 식탁의 사진을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식사량이 꽤 많았음을 알 수 있다. 그렇게 많이 먹던 것이 최근 30년 동안에 급격히 줄어들었다. 식사량이 줄어든 원인은 음식을 섭취하는 방법이 다양해지고 활동량이 급격히 감소한 것에 원인이 있지 않은가 추측해 본다.
음식량과 식단의 변화는 식습관이 달라지는 데 그치지 않고, 식기 및 조리 기구의 발달로 이어져 예전의 부엌 체계로는 수용할 수 없게 됐다. 조리 기구의 변화는 우선 가구의 모양이 달라지게 하고, 결국은 집의 구조도 바뀌게 한다. 예를 들면 냉장고도 예전에는 차게 하는 것으로 만족했는데, 이제는 음식을 보관하는 저장고의 기능까지 겸하게 됐다. 냉장고의 용량이 점점 커지고 나아가서는 냉동고까지 필수품이 됐다. 그러니 부엌의 면적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90년대에는 김치냉장고까지 등장했으니 10년 전에 지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필자의 집은 새로운 가전제품으로 주방이 더욱 좁아졌다.

다음으로 식사량의 차이가 가져온 변화를 살펴보자. 식사량이 감소하고 그릇을 만드는 재료가 다양해지면서 그릇의 크기와 무게가 많이 줄어들었다. 조선조나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우리의 식기는 도자기의 한 종류인 사기그릇이 주종을 이루었다. 식사의 양이 많아 식기의 크기와 무게도 만만치 않았다. 그 때문에 과거의 부엌 가구인 찬탁(饌卓)과 찬장을 보면 통나무로 든든하게 짰다. 현재의 부엌 가구들하곤 전혀 다른 모습일 뿐만 아니라 공간을 차지하는 면적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식사의 양이 줄어드는 요사이는 모든 그릇이 점점 작아지는 추세에다 식기를 만드는 소재도 다양해져 그 무게가 많이 줄었다.

또한 식생활의 서구화 때문에 예전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았던 접시를 쓰고 있으며, 조리 기구의 발달로 각종 분쇄기, 믹서 등과 같은 도구들이 추가돼 예전과는 다른 수납공간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의 집은 과거의 한옥과는 달리 여러 가지 형태의 식기와 주방 기구를 효율적으로 수납하는 방향으로 바뀌었고, 한식, 중국식, 양식 등 다양한 요리를 할 수 있도록 바뀌고 있다. 게다가 부엌의 실내화 및 입식 부엌의 도입으로 ‘부엌’이 사라지고 ‘주방’이라는 단어로 불리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모습의 새로운 부엌 시스템이 도입된 것이다.

아파트 때문에 쫓겨나는 발효 음식
이번에는 집 구조가 바뀌면서 식생활이 달라진 예를 살펴보자. 아파트로 대표되는 공동주택이 빠른 속도로 보급되면서 우리의 식생활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여러 가구가 한곳에 모여 사는 공동주택의 성격 때문에 냄새나는 음식을 멀리하게 됐고, 만들고 관리하는 데 넓은 마당이 필요한 장류가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공동생활에서 소음만큼이나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이 냄새다. 그런 이유로 청국장처럼 냄새나는 음식을 아파트에서 해먹는 것이 점점 힘들게 됐다.

우리에게 많은 발효 음식은 냄새뿐만 아니라 관리를 하기 위해 통풍과 햇빛이 필요하다. 하지만 아파트에서는 그런 조건을 만족할 수 없기 때문에 발효 음식을 직접 담가 먹는 것이 어렵게 됐다. 아파트가 우리의 대표적 주거로 자리 잡으면서 발효 음식을 가까이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각 가정마다 담가서 먹던 장이 사라져 가고 시장에서 필요한 만큼 사다 먹고 있다. 집마다 고유의 맛을 간직하고 있던 된장이, 사 먹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단순해지고 있는 것이다. 집에서 장을 담가 먹을 수 없게 되면서 장을 담글 때 필요한 그릇과 도구도 덩달아 사라지게 됐다. 이제 아파트에서는 장독이 사라졌으며 가마솥도 볼 수 없게 됐다.

여성의 경제활동으로 달라진 주방
사회가 변하면서 주방 구조에 영향을 미친 사례를 알아보자. 70년대에는 30평대의 아파트도 부엌 옆에 ‘식모’가 기거하는 방이 있었다. 식모방은 급속한 경제 발전에 힘입은 인건비의 상승으로 ‘식모’를 고용할 수 없게 되면서 사라졌다. ‘식모’는 그 후 ‘가정부’라는 새로운 직업으로 바뀌었다. 식모하고 달리 가정부는 출퇴근을 한다. 현재는 대형 평형의 아파트에도 가정부가 기거하는 방이 없다. 이것은 가족의 프라이버시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식모’가 사라지면서 식사 방법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부엌에서 상차림을 하여 거실로 옮겨 식사를 했지만, 식사 준비가 주부의 몫으로 전담되면서 편의를 위해 서양식 개념의 식당을 도입했다. 과거에 식모 방으로 사용했던 면적만큼 식탁이 차지하게 됐다. 아파트 평면의 변화를 살펴보면 그 같은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70년대의 아파트를 보면 주방의 구조가 지금하고 사뭇 다르다. 당시의 주방은 지금보다 작아 식탁을 놓을 만한 넓이가 되지 못했고 옆에 ‘식모방’이 붙어 있었다. 70년대 후반부터 주방에 식당의 기능이 들어와 현재의 구조로 변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아파트의 구조가 달라진 것은 삶의 변화를 좇아갔기 때문이다.

앞으로 식생활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올 요인 중의 하나는 여성의 경제 활동 참여다. 여성이 적극적으로 경제활동에 참여하게 됨으로써 가사 활동의 양상은 지금보다도 더 많이 변할 것이다. 여성이 식생활을 전담할 수 없게 됨으로써 많은 부분을 시장에 의존하게 된다. 그러한 변화 중 하나가 집에서 김치를 담그는 사람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다. 반대로 여성의 사회활동이 늘어나면서 김치를 사 먹는 가정은 늘어나 이미 식료품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커졌다.

이러한 현상은 김치만의 문제가 아니다. 김치 이외에도 많은 밑반찬을 시장에 의존하고 있다. 그런 집에서는 부엌의 중요도가 상대적으로 감소하게 된다. 그 대표적인 예로 독신자를 위한 원룸이나 오피스텔은, 부엌 설비를 최소화하고 다른 부분의 면적을 키우는 방식으로 내부를 설계한다. 그간 냉장고는 대형화 추세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소형 냉장고가 독신자를 위한 필수품으로 각광을 받으면서 생산량을 늘리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사회 구조가 변하면서 집의 구조에 영향을 미친 대표적인 예다. 田

■ 글 최성호<산솔·도시건축연구소 대표,전주대 건축학과 겸임교수>

∴ 글쓴이 최성호는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전주대학교 건축학과 겸임교수로서 ‘산솔·도시건축’을 운영 중입니다. 주요 건축작품으로는 이화여자대학교 유치원·박물관·인문관·약학관, 데이콤중앙연구소, 삼보컴퓨터사옥, 홍길동민속공원 마스터플랜, SK 인천교환사 등이 있습니다<02-516-9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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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 이야기] 식생활 변화의 원인은 달라진 집 구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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