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메뉴보기
 

온실을 만든 지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꽃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고 느끼고 만질 수 있는 정겨운 곳입니다. 안방 앞 남쪽 벽면 전체를 허물고 유리 문을 달았습니다. 맨발로 바로 안방에서 걸어나가 꽃을 즐기도록 말입니다.
 
가장 아끼는 홑동백과 천리향을 위해 만들었는데 뜰에서는 월동이 되지 않거나 강한 햇볕에 아름다운 모습을 유지할 수 없는 식재들을 위한 곳으로 발전했습니다. 한겨울 붉은 동백꽃과 시클라멘부터 노루귀, 앵초, 물망초 등 사계절 꽃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온실은 앞뜰보다 먼저 봄이 오고 겨울은 늦게 옵니다.

이곳에 어릴 때 친구들과 창꽃을 따러 간 손골새라는 곳을 생각나게 하는 실개울과 작은 연못을 만들었습니다. 작은 연못 속에는 금붕어와 우렁이가 삽니다. 연못 속을 들여다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참 많은 일이 일어납니다. 또 하나의 세상이 있습니다. 호시탐탐 금붕어를 노리는 밤 고양이와 밖에서 가끔 날아오는 새들부터 물과 공기, 바람, 햇살을 받아 작은 돌들에서 피어나는 아주 귀여운 이끼까지 많은 식구가 서로서로 연관돼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 실바람, 작은 분수에서 떨어지는 물방울과 창틈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금붕어, 우렁이를 키우고 이끼를 만들면서 예쁜 세상을 창조해 갑니다.
 
이 작은 세상에도 세월은 흘러갑니다. 어느 날 귀여운 금붕어가 사라졌고 사랑스러운 이끼가 모습을 감췄습니다. 그 모습이 그리워 아무리 애를 써 봐도 다시 오지 않지만 이들은 분명 이전과는 다른 또 다른 세상을 만들 것입니다. 온실 속에서 살아가는 식구들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연못 주변 돌 위에서 자라는 이끼와 온실에서 가장 작은 식물들(물방울 풀, 빈카, 누운주름잎) 이야기입니다.
 
연못 주변 돌에서 자라는 이끼는 보기만 해도 귀엽고 신비롭습니다. 그런데 천사의 눈물이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물방울 풀은 마냥 예쁘게 보이지는 않습니다. 이 아이는 연둣빛 눈물 덩이처럼 참으로 연약해 보이지만 온실에서는 강한 생명력을 보입니다. 처음 만난 곳은 양재동 어느 화원으로 한 귀퉁이 바닥에 잡초처럼 작은 풀이 나 있는 모습이 하도 귀여워 대려 왔습니다. 살던 환경이 온실과 비슷해 연못 주변 귀퉁이에 조금 심었습니다. 처음에는 잘 자라 기특해 바라보기만 해도 좋았습니다. 하지만 두서너 해가 지나자 이 아이의 기세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서서히 다른 영역을 침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잎겨드랑이에서 초록색 꽃이 핀다고 했지만 아무리 고개 숙여 들여다보아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꽃이 보이지 않는 아쉬운 마음과 무성하게 자라는 기세를 제어하고자 이를 보완할 식재를 찾았습니다.
 
그러던 중 뜰 난간 용기에서 마음껏 긴 줄기를 늘어뜨리고 잘 자라고 있는, 연보랏빛 꽃을 피우는 빈카 Vinca가 생각났습니다. 빈카는 온실환경에 딱 맞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5, 6년 전 아주 멀리서 온 빈카는 한 줄기가 뿌리를 내리더니 어느새 많은 식구를 거느리게 됐습니다. 바로 가까이 용기 속에서 참으로 잘 자라고 있던 녀석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습니다. 2010년 봄 물방울 풀이 자라는 곳에 심었습니다.
 
빈카 역시 잘 적응해 식구를 더 거느리게 됐고 몇몇의 아이들은 연보랏빛 꽃망울을 터트리기도 했습니다. 물방울 풀과 빈카는 좋아하는 환경이 비슷하지만 빈카가 좀 더 강인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두 녀석이 자라나는 기세를 보아하니 만만치 않습니다. 제발 서로 잘 어울리길 바라지만 아무래도 무리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일단 두고 봐야겠습니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지금까지 보지 못한 또 다른 전경을 만들어 낼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작은 바위 하나가 있는 실개울에서도 신비로운 광경을 자주 봅니다. 바위는 연약한 초록 생명의 강인함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추운 겨울이 끝날 무렵 봄이 오는 소식을 제일 먼저 알려주는 곳이기도 합니다. 따사로운 햇살이 느껴질 때 이곳으로 나와 초록빛 작은 생명을 찾아봅니다.

생각지도 못한 반가운 아이를 만났습니다. 아무도 데려다주지 않았는데 언제 어떻게 왔는지 참으로 예쁘게 뻗어 나가고 있습니다. 바로 저 스스로 터를 잡아 탄생한 '누운 주름잎' 입니다. 오래전 이 녀석을 처음 만났을 때 나름 키워 보려고 무던히 애를 썼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녀석에 대한 애착이 없어진 지금, 온실 실개울 바위 주변에 나타난 것입니다. 누운 주름잎이 오기 전 이른 봄 이곳에는 원래 물망초와 콩제비꽃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누운 주름잎이 너무 잘 자라 아무도 이곳에 침범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작은 실개울에선 누운 주름잎과 천사의 눈물의 영역 다툼이 시작됐습니다. 보기에도 기싸움이 치열합니다. 조금씩 누운주름잎 편을 들어줬습니다. 물방울 풀이 누운 주름잎이 있는 곳에 더는 가지 못하게 한 것이지요. 키우려 아무리 애를 써도 잘 자라지 못했던 아이가 이곳에서 꿋꿋이 자라면서 개울 주변으로 펼쳐나가는 모습에 애틋함을 느꼈다고 할까요. 조그만 보랏빛 꽃을 품은 모습이 매우 연약해 보이지만 아주 당당하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이젠 누운 주름잎이 이기고 있습니다. 더 이상 도와주지 않아도 혼자 힘으로 물이 마른 실 개울가 작은 바위 위를 모두 차지했습니다. 어디까지 뻗어 가는지 두고 봐야겠습니다. 두 아이가 참 예쁘게 살고 있습니다.

물망울 풀, , 누운주름잎 습성과 재배 환경
학명이 솔레이 롤리에 Soleirolia, Soleirolii인 물방울풀은 천사의 눈물이라고도 불리며 서지중해 섬지역에서 자라고 습하고 그늘진 장소를 좋아합니다. 덩굴성 키 작은 초본성 상록 다년생으로 둥근 연둣빛 작은 잎은 매우 촘촘하게 자라며 실처럼 생긴 가는 줄기에서 나옵니다. 겨울에도 온실에서는 초록빛을 유지해 사철 지면을 덮는데 햇볕과 부분 그늘이 있는 곳에서 잘 자라고 마사와 자갈과 흙이 섞인 땅, 즉 배수가 잘 되는 곳을 좋아합니다. 밖에서는 햇볕이 있거나 그늘진 곳이라면 어떤 흙에서도 잘 자랍니다.
 
추위에 약해 밖에선 월동이 되지 않습니다만 시원하게 키우는 것이 좋습니다. 일부 원예 식물 사전에는 0℃ 이상에서 가능하다지만 내 경우에는 영하 5℃에서도 무난히 잘 견딥니다. 가벼운 이슬에 손상되기도 하지만 봄에는 회복이 빠르기에 큰 걱정 하지 않아도 됩니다. 병 속에서도 잘 자라 고운 초록 잎을 관상하고자 테라리엄 Terrarium으로 또는 용기에 심어 관상용으로 활용하기도 합니다. 따듯한 지역에서는 지면을 덮는 용(지피식물)으로 쓰이고 매우 공격적이어서 한 번 심으면 뿌리째 제거하기 어렵습니다. 번식은 늦봄에 포기나누기로 합니다.
 
빈카는 유럽과 북아프리카, 아시아 등 산림 지역에서 자라고 7종류의 가느다란 줄기를 가진 상록 진 관목(Subshrub)과 상록 초본 다년생이 있습니다. 속명 Vinca는 라틴어 Vincire에서 유래했는데 '매다' 또는 '연결하다'라는 뜻으로, 줄기가 구부러지는 성질을 가졌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땅 위로 덮어가는 긴 줄기 각 마디에서 뿌리가 나와 뻗어 나갑니다.
 
우리 집 빈카(Vinca minor L)는 잎에 광택이 있고 봄부터 여름까지 연보랏빛 꽃을 피우는 덩굴성 상록 초본 다년생입니다. 반그늘, 다습한 곳을 좋아하지만 어떤 환경에서도 잘 자라 매우 건조한 환경에서도 건강을 유지합니다. 나무 아래에서도 잘 자라고 있습니다. 부분적으로 그늘진 곳도 좋아하나 꽃을 잘 피우기 위해서는 햇볕이 잘 드는 양지바른 곳이 좋습니다. 대체로 추위에는 강해 어느 원예사 전엔 영하 10℃, 다른 사전엔 영하 4℃까지 견딜 수 있다지만 우리 집 온실에서는 영하 5℃에도 잎이 상하지 않고 잘 견디고 있습니다. 새봄에는 연둣빛 새순들을 많이 데리고 나옵니다. 실내 조경용이나 지피식물로도 활용하며 이 또한 매우 공격적이어서 성장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봄에 강하게 잘라줘야 합니다. 이른 봄이나 늦가을에 잘라 번식하며 포기를 나눠 심어도 잘 번식합니다. 이 아이의 어떤 부분이라도 섭취하면 위를 상하게 할 수 있다고 하니 식용은 주의합니다.

Mazus라는 학명을 지닌 누운 주름잎은 30여 종류의 일 년생과 다년생이 있으며 매트 형태를 만들면서 누운 채로 길게 뻗어 나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낮은 지역에서부터 히말라야, 인도, 파키스탄, 중국, 타이완, 일본 등 아시아와 호주 고산지대 습한 곳에서 서식합니다.

햇볕이 들고 적절한 영양분과 습기가 있으며 배수가 잘 되는 곳에서 잘 자랍니다. Encyclopedia of Garden Plants(The American horticultural society)에 간단히 소개돼 있긴 하지만 이 아이에 대한 정보는 더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독일 마을 길 돌담 틈에서 누운 주름잎이 무리 지어 자라 담을 타고 흘러내리는 모습을 보고는 참으로 반가웠습니다. 내가 그렇게도 잘 키워보려고 애를 썼던 아이가 이곳에서는 그냥 길옆 흔한 잡초로 귀여운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햇볕도 흙도 거의 없는 돌 틈에서 말이지요. 제가 키운 경험으로는 밖(서울)에서는 월동이 되지 않으며 겨울 온실에서는 영하 5℃까지는 잘 견딥니다. 특별한 거름이 없는 얕은 마사토와 바위에서도 잘 자라고 여름철 햇볕이 강할 땐 옅은 회색빛을 지닌 녹색의 귀엽고 아주 작은 보랏빛 꽃을 피웁니다. 그리고 겨울에는 아주 연한 연둣빛을 띄웁니다. 나의 온실에서는 5월부터 꽃이 피었습니다. 
  
참고문헌  Encyclopedia of Garden Plants(The American horticultural society)

글. 사진 이명희
숙명여자대학교 가정 대학 졸업 후 평소 관심 분야인 정원 공부를 체계적으로 하기 위해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조경학과에 입학. 졸업논문'서민주택 정원 활성화에 관한 연구'로 석사학위 취득. 평생 꽃을 가까이하여 얻은 경험과 대학원에서 연구한 이론적 체계를 바탕으로 아름다운 마을 가꾸기(담장 허물기 등)에 참여하고 있으며, 버려진 공간 속에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라도 심어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데 노력 연구하고 있다.

태그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식물 이야기, 온실 속 작은 식물 이야기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